그것은 마케팅이 아니다.

그것은 영업·세일즈다.

드러커 할부지는 “마케팅은 영업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마케팅의 목적은 고객창출이다. 고객창출엔 책임만큼의 권한도 함께 주어진다.
영업·세일즈의 목적은 판매촉진이다. 판매촉진엔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다.

영업·세일즈는 공급자주의에서 필요하던 역할이다. 만들어둔 상품 및 서비스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한 활동. 판매만 되면 그만이라는 태도. 상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지나 고객이 정말 필요한지 따지지도 않는다. 권한없이 책임만 강요받은 척박한 상황을 극복한 사람들이 써내려간 영업 분야의 책 대부분은 자화자찬 일기장이다.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를 판 사기꾼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마케팅은 소비자중심주의다. 만든 것을 팔자가 아니라, 애초에 팔릴 것을 만들자는 태도다. 그러려면 제품과 서비스의 기획에 관여할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에스키모인에게 최적화된 식품저장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상식적인 활동이 마케팅이다.

대체로 마케팅 부서와 영업 부서는 사이가 좋지 않다. 마케팅 부서는 영업부서를 보고 “우리는 스마트한 사무직인데 너네는 발로 뛰어라”고 폄하하고, 영업 부서는 “실적은 우리가 다 내는데 쟤네들은 그 돈으로 뻘짓한다”고 응수한다. 사측은 말리지 않는다. 싸움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달라서 싸우는 게 아니다. 같아서 싸운다. 둘 다 영업부서이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방법만 다를 뿐이다. 오프라인 영업부, 매체 영업부, 디지털 영업부가 싸울수록 판매량은 늘어난다. 이곳엔 마케팅은 없고 영업만 있다.

시간은 흘러 기술이 진보했다. 디지털 세계로 사람들의 활동영역이 넓어졌고 언제나 그랬듯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에 시장이 들어섰다. 여기도 마케팅은 없고 영업만 있다. 콘텐츠 마케팅은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영업이다. 영업사원의 접객, 설명, 설득, 회유의 과정이 디지털-전단으로 만들어져서 복제되는 것이다. 퍼포먼스 마케팅은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세일즈다. 기존의 영업사원이 하던 고객DB수집(타겟설정), 견적·제안(광고소재제작), LeadGen(전환), Closing(결제)을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수행한다.

두 종류의 활동은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디지털 마케팅이라고 모두 영업·세일즈인 것은 아니다. 고객의 가치 창출은 고객의 수요, 필요, 욕구에서 나온다. 고객의 수요, 필요, 욕구를 파악하는 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면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드물지만.

영업·세일즈부서엔 책임만 주어지고 권한은 없다. 대체로 사측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영업·세일즈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자 사측에선 마케팅이라는 표현을 훔쳐 쓰기 시작했다. 이로써 현대인의 95%가 마케팅이 무엇인지 오해하게 되었다.

마케팅을 마케팅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지만, 마케팅이 아닌 다른 어휘를 쓸 수도 없다. 마케팅이 Martet + ing인데 어떻게 다른 걸 쓰나.

이렇게 우리는 마케팅이라는 어휘를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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