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의 끊이지 않는 발걸음, 이슈의 발원지가 되었다는 자부심, 독자들의 감사인사, 사람들이 알아봐 줄 때의 콧대등등함, 발행인으로서 느끼는 사회적인 책임감, 사업화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미한 희망

작은 규모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 대형 언론사에 근무하는 사람 모두 느껴봤을 공통적인 감정들이다. 이 감정들 때문에 밤도 새서 조사하고 연구하고 발로 뛰어 글을 쓴다. 하지만 밥을 벌어먹지 못하면 이 모든 감정과 노력은 모두 헛수고에 불과해진다. 미디어로 밥값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환이다. 전환transition을 일으키지 못하면 미디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미디어와 콘텐츠 자체가 목적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광고를 수익사업으로 삼는 미디어는 철저한 수단이고, 좋은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전환을 일으키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 AARRR

전환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AARRR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 기준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낯설게 들리지만, 오프라인 매장에 비유를 들어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은 개념이다. 온라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의 모든 고객 접점을 대입해볼 수 있다.

Acquisition은 최초노출에 해당한다. 오프라인 매장에 비유하면 손님이 간판을 본 순간이다.
간판을 본 사람 중에서 몇 명이나 상점으로 들어왔는가? 상점으로 들어온 사람을 Activation이라 한다.
그 손님이 또 방문했다? 매장에 관심 있는 물건이 있는지 이것저것 뒤져보면 Retention이다.
상품을 고르고 지갑을 열었다. 돈을 내면 드디어 Revenue가 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손님이 주변 사람도 데리고 다시 방문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준다. Referral이다.

매 단계를 온라인에 대입해도 맞아 떨어진다. 각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 시점마다 일부분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 이 과정은 선형적이고 이후 단계가 전 단계보다 커질 수는 없으므로 깔때기funnel이라고도 부른다. 다음 단계로 전환시킬 때 이탈하는 사람을 최소화하고, 전환되는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게 관건이다.

 

  • 허무지표

“월간 100만 PV를 기록Acquisition”, “누적 회원 수가 30만 명Activation”, “재방문 비율이 50%Retention”라는 소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위의 숫자들이 얼마로 바뀌건 간에 특별한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 달성해도 내 인생에(우리 회사에) 도움이 안 되는 목표를 허무 지표라 한다. 앞의 세 수치는 허무 지표다.

각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얼마나 전환되는지는 조금 중요하다.
Acquisition에서 Activation으로 상당수의 %가 전환이 일어났다고 하면 귀를 한 번 기울일 만하다. Activation에서 Retention으로 상당수의 %가 전환이 일어났다고 하면 눈길을 한 번 줄 만하다. 하지만 세 번째 단계인 Retention까지 왔다 하더라도 수고했다고 칭찬하긴 이르다. 간판도 많이 노출되고, 매장도 붐비고, 재방문자도 많지만, 정작 물건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은 시간대로 성장하는 허무지표가 아니라, 단계별로 전환되는 %의 성장에 있다. 전환의 %가 예측 가능하고 조절 가능하다면 Acquisition에 돈을 쏟아부었을 때, 깔때기 마지막에 나오는 수량이 얼마나 될지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깔때기 중간이 꽉 막혀있는 상황이라면? Acquisition에 들어가는 비용은 목적 없는 지출이 된다.

정작 중요한 4번째 수익화 계획Revenue이 없으면 앞의 수치들은 전혀 의미 없다. ARPU Average Revenue Per User 또는 ARPPU Average Revenue Per Paying User 가 의미 있는 지표들이 된다.

나 또한 그랬고, 많은 언론사가 허무지표만을 목표로 삼았다. 왜 이토록 중요한 전환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까? 내부에 수익전략Revenue이 없기 때문이다.

 

  • 전환 빌려주기 = 광고

전통적으로 언론사는 자체적인 판매 상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지 않다. 자체적으로 수익전략을 가지기보다는 수익전략을 가진 외부 파트너를 도와주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외부 파트너를 도와주기 위해 미디어 트래픽을 빌려주는 것을 광고라 한다. 트래픽을 빌려주는 단계에서도 전환이 일어나는데 내부적으로 전환을 일으킬 때보다 외부로 전환을 빌려줄 때, 대체로 전환율이 낮다.

언론사의 관점에서 Acquisition을 빌려주는 것을 광고시장에서는 CPI Cost Per Impression이라 부른다. 언론사의 관점에서 Activation을 빌려주는 것을 광고시장에서는 CPC Cost Per Click이라 부른다. AcquisitionActivation은 직접적인 Revenue로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광고 효율이 불확실하다. Acquisition만으로 광고효과가 나던 시대에는 광고주가 KBS건물에 두 바퀴를 돌아 줄을 섰다는 전설이 내려 전해진다. 하지만 콘텐츠 과잉시대에 접어든 이상, 그런 시대가 다시 오길 기대할 수 없다.

언론사가 내부적으로 수익전략이 있었다면 Revenue에 직결되는 전환전략을 세워놓았을 것이다. 그런 전환전략이 있었다면 외부에 빌려줄 때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사는 그런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외부에서 요청하는 AcquisitionActivation만 빌려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광고주도 AcquisitionActivation만 빌리는 데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외부의 요구에 따라 전환을 빌려주니 실제 트래픽 보유 가치보다 평가절하해서 팔 수밖에. 이제 시장가격을 광고주가 정한다.

온라인 광고시장은 언론사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한국의 웹사이트 중 트래픽 상위 50개 중에서 언론사는 3곳이다. (22동아, 30조선, 40중앙) 반면 커뮤니티 사이트는 8곳이다. (14디씨, 15SLR, 17일베, 25베스티즈, 29인벤, 33오유, 34뽐뿌, 37인스티즈) 연봉 5,000만원의 엘리트 기자가 쓴 기사와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올라온 콘텐츠가 동점으로 평가되니 콘텐츠 생산 비용에서 큰 손실을 본다.

 

  • 전환은 전략이 아닌 태도

세상에는 세 가지의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통계. 이 중에서 통계가 가장 나쁜 이유는 스스로마저 속이기 때문이다. 동접자 수를 보며 뿌듯한 마음에 취해있던 나, 허무지표를 엑셀에 넣고 돌려 어떻게든 J커브를 산출했던 나, 데이터를 자신을 속이는 데 사용했던 나를 반성한다. 3달 전 나는 개별 계정으로 Google Analytics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시켰다. Google Analytics는 손실이라는 고통을 망각하게 해주는 진통제다. 페이스북 페이지 인사이트도 같은 놈이다.

“방문자와 회원 수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잖아요? 전환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지 않나요?”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이 또한 틀린 생각이다.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허무지표는 없애야 한다. 허무지표는 돈을 쓰면 나올 수밖에 없다. 공짜로 밥 주고 술 주는 이벤트를 매일 하는데 매장에 손님이 끊길 리 있겠는가?

뉴미디어라는 간판이 무슨 벼슬인지, Revenue전환의 전략도 의지도 없이 수백만의 다운로드와 억소리나는 허무지표를 성과라고 자랑스럽게 인포그래픽까지 만들어 공개하는 곳이 있다. 너도나도 뛰어드는 MCN사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직원은 200명인데 하루에 나오는 콘텐츠 수는 고작 20개란다. “버는 돈은 없는데 쓰는 돈은 많아요”라는 뜻인데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내뱉는 말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다들 좀… 취하신 것 같다.

 

허무지표를 집어치우고 Revenue를 위한 전환전략을 찾아내자. 전환을 자유자재로 드리블할 수 있는 기술을 내재화하자. DNA에 새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함께 작업한 해외 미디어 동향 보고서가 나왔다. 셰프뉴스는 한 페이지 가량 소개되었다. 이메일로 문의왔던 당시 답변했던 내용을 이 곳에 기록으로 남긴다.

보고서 다운받기(169MB) : http://www.kpf.or.kr/downloadfile.jsp?num=6369&board_data_id=7824

 

정보전달발전역사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이전 세대의 기술은 매정하게도 세상에서 잊혀졌습니다. 봉화, 전령, 목판인쇄, 타공프린터, 모스부호, 흑백 TV, 모뎀 등 모두 잊혀졌습니다. 인류는 정보전달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고 있고, 불과 몇 년 전에 사용하던 전달기술들이 새로운 기술들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적인 환경 속에서 언론사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콘텐츠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반대의 의견을 내겠습니다. 기존 언론사들이 콘텐츠를 못 만들어서 위기가 왔나요?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는 전적으로 시대적인 현상이며, 언론사 외부의 환경적인 문제입니다. 내부에서는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콘텐츠가 아닌 역할입니다.

이전 세대까지 언론사가 하고 있던 역할은 수많은 대체재에 의해 대체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남길 것이며, 다른 서비스에 의해 대체되어버린 분야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언론사들이 각자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시점일수록 업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현대적인 ‘언론사’의 범위를 넘어, 더 큰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미디어의 본령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결국 ‘중간자’, ‘매개자’, ‘연결자’, ‘전달자’입니다. 여전히 연결이 필요한 곳은 많이 있고, 새로운 기술로 그 연결을 더욱 효과적으로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14년 7월 셰프뉴스를 창업하기 전까지 IT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에서 3년 가까이 근무했습니다. 없던 IT산업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고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 산업미디어가 필요하다. 산업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하고, 사람들의 연결을 도모한다.”라는 산업미디어의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이 맥락에서 외식산업은 미디어가 가장 필요한 산업입니다. 테크황무지에 가깝지요. IT기술을 아는 사람은 외식 산업을 이해하지 못해 매번 실패하고, 외식 산업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기술을 이해하지 못해 실패합니다.

이 산업에는 총 25종 가량의 오프라인 매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려는 시도를 안 한 게 아닙니다. 매번 실패했고, 지금도 여러 시도들이 실패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많이 있겠지만 공급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외식 산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F&B(Food & Beverage)두 개로 구분하거나, HoReCa(Hotel & Restaurant & Café)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공급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소비자 중심적인 관점에서 매체를 기획하면 산업 종사자를 독자로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측정 가능한 외식업 종사자가 3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주방 근무자는 140만 명입니다. 이들이 볼만한 매체가 있을 법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없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기존 언론은 “셰프에 관한 뉴스”만들 생각은 하지만, “셰프가 보는 뉴스”를 만들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간 ‘버티컬 미디어’라는 어휘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소재를 버티컬하게 접근하면 보기엔 그럴싸한 미디어가 만들어지겠지만 역할을 찾기 힘들 것입니다. 독자를 버티컬하게 설정하면 그들이 역할을 알려줄 것입니다. 구인구직서비스도 독자분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셰프뉴스가 지금까지 매체 영향력을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저희가 잘해서라기보다 독자의 특이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리사라는 독자는 다소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습니다. 하루에 14시간씩 창문도 없는 주방에서 육체노동을 하지요. 잠시 담배를 피러 나와 휴대폰을 보는 게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취미, 특기, 진로가 모두 요리인 삼위일체형 직군입니다. 인생에 요리밖에 없다고 합니다. 다른 매체가 독자들과 가지는 약한 연결고리에 비교하면 훨씬 큰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는 두 가지로 구분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콘텐츠 생산자(Media as Contents Creator)이며, 또 다른 하나는 채널(Media as Channel)입니다. 콘텐츠를 돈 주고 사보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으므로 미디어 운영의 목적은 채널을 구축하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콘텐츠는 목적이 아닌 철저한 수단이 됩니다.

채널로서의 미디어도 전환(transition)을 일으키지 못하면 아무 짝에 쓸모가 없습니다. 전환도 안 일어나는 채널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콘텐츠 생산부서는 애물단지 지출부서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셰프잡스에서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셰프뉴스는 애물단지 지출부서에 해당하므로 1.2명의 최소 리소스만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중입니다. 셰프뉴스로부터 전환을 일으켜 셰프잡스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셰프뉴스의 미디어 운영 비용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입니다. 셰프뉴스의 독자와 셰프잡스의 고객이 같으므로 전환 효율이 아주 높을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