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먹고 사는 문제

언론사의 사업부와 편집부는 수익사업의 정당성을 두고 종종 싸운다. 한 조직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인데, 그 돈으로 월급 받는 기자들에겐 왜 비난받을까? 저널리즘 추구와 수익사업은 언론사라는 조직 안에서 공존할 수 없는 가치여서일까?

저널리즘이 정신이라면 언론사는 기업형태의 육신에 해당한다. 여느 기업처럼 언론사는 수익창출과 성장을 목표로 하기에 저널리즘의 목표를 저해하고, 저널리즘은 기업의 형태를 빌려야만 존재할 수 있기에 비난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으려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한 언론인은 이 상충하는 두 가치를 모두 잡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타락’이 필요하다고 표현했다. 어떤 타락들이 있는지, 어느 정도가 허용 가능한 수준인지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 언론 상품 1 – 콘텐츠 제작능력을 판매

올봄, 한국일보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카드뉴스를 제작해주겠다는 제안서가 유출되어 논란이 일었다. 제작과정, 비용, 발행의 성과까지 꼼꼼하게 적힌 제안서를 보니 언론사가 아닌 마케팅 대행사에서 만들어진 느낌까지 들었다. (관련 내용)

언론사 사이에서 이 사건으로 인해 비난과 사과가 오갔다. 이내 윤리적인 선을 넘었는지 말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커졌다. 사실 언론사들의 비난 뒤에 숨겨진 속뜻은 “이런 상품을 염치없게 공식화시키면 어떡하냐”일지도 모른다.

언론사가 비용을 받고 콘텐츠를 제작해주는 상품은 최근에 발명된 것이 아니다. 잡지 바닥에서는 이를 애드버토리얼이라 부르고, 온라인 언론사들은 네이티브애드라 부른다. 카드뉴스를 만들어준다는 제안 또한 새로운 채널에 형식을 최적화시켰을 뿐, 돈 받고 콘텐츠를 만들어준다는 개념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언론사가 보유하고 있는 핵심 인적 자원인 콘텐츠 제작능력을 판매하는 고전적인 대행 상품이다.

올해 초부터 언론사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저널리즘의 정의는 이제 독립성이 아닌 투명성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기업과 거래를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투명하게 밝힐 것이니 나쁘게 보지 말아 달라는 뜻이다.

 

  • 언론 상품 2 – 공신력 판매

비슷한 시기에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홍보대행사의 영업 메일이었다. 돈을 내면 언론사에 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며 친절한 가격표도 첨부했다. 조선일보는 35만 원, 동아와 중앙은 30만 원. (보기)

현직 기자에게 보여주니 자신의 회사 이름을 찾아내곤 “우리는 그저 순진한 기자들이네”라며 낯부끄러워했다. 언론인 지망생에게 보여주니 “썩은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썩은 줄은 몰랐다”며 언론고시 때려치우고 적당히 취업이나 하겠단다.

‘언론에 기사를 낸다’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언론-홍보계에서는 이를 의도적으로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체라면 ‘기사를 낸다’는 곧 발행을 뜻했지만, 온라인에서는 발행과 게시는 별개 행위다. 게시 상태의 콘텐츠를 온라인에선 무제한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데, 온라인 게시판에 글 쓰는 것과 개념적으로 다른 게 전혀 없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구세대의 언론광고상품인 지면광고가 채널 영향력을 파는 것이었다면, 이 상품은 매체의 공신력을 파는 것이다.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린 뒤, URL을 광고주에게 보내주면 장사 끝난다. “OO일보가 우리를 알아 봐주고 기사를 다 써줬네~”라고 광고주가 능청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 자료를 제공하는 비공식적 사기행각이다.

온라인에서의 발행은 제휴 된 포털에 띄우거나 보유 SNS에 포스팅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또는 자체 웹사이트의 메인화면이나 다른 기사를 보는 독자들에게 연관콘텐츠라며 간접 노출이라도 시켜줘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상품으로 판매한 기사는 어떤 발행의 노력도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기사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을 받고 게시했지만, 발행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사의 공신력을 돈과 바꿈으로써 생긴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면책사유가 된다.

 

  • 언론 상품 3 – 브로커를 통한 음성적 거래

정상적인 방법으로 언론에 홍보하고자 하는 기업의 홍보담당자나 홍보회사도 있지만, 비공식적이고 음성적인 방법으로 언론사와의 연결을 중재하는 브로커도 있다.

어떤 브로커가 한 식당 사장님에게 3,000만 원을 받고 유명 일간지에 특집기사가 실리도록 작업했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한 브로커는 1,000만 원을 주면 주요 일간지 셋 중에 적어도 한 곳에는 1면에 나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제안했다. 나가는 것을 100% 보장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보겠으니 나의 실력을 믿어달라고 말하는 투가 왠지 께름칙했다.

그 막대한 기사 발행 비용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짐작하건대 언론사의 공식수입으로 잡히진 않았을 것이다. 사측에서 이 사실을 알면 화들짝 놀라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발행을 허락한 편집장을 문책하고 징계할 것이다.

받아먹은 돈은 회사에 토해내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러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기업의 홍보비를, 브로커가 삥뜯어서, 편집장과 나눠 가진 것을, 다시 회사에서 삥뜬는 꼴이 아닌가? 그렇다고 받은 돈을 퍼뜩 돌려주라고 할 수도 없다. 언론사의 체면이 뭐가 되나? 이미 기사는 발행되어 채널 영향력과 공신력을 다 퍼줬는데, 돈까지 돌려주면 자진해서 호구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브로커를 통한 음성적 거래는 부정청탁관계로 콘텐츠를 발행한 것과 돈도 못 받고 핵심역량을 뺏겼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언론으로서 통제능력을 강도당했다는 점이다.

시대가 바뀌면 많은 것이 변한다. 콘텐츠형식, 유통채널, 사업전략, 업무방식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언론사에 주어진 게이트키핑의 역할과 책임이다. 브로커에게 이용당한 언론사는 게이트키핑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했다.

브로커에게 이용당했다고 언론사가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일은 어떤 소식을 발행할지 말지를 통제해야 하는 게이트키퍼의 책임을 가진 언론사가 그 책임을 직무유기했기에 일어난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브로커가 아니라, 브로커가 판치도록 방조한 언론사들이란 말이다. 파리를 쫓을 게 아니라 개똥을 치워야 한다.

 

  • 음성적 거래의 양성화

기업과 언론이 맺고 있는 깊은 유착관계에 대해 나는 경험해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기업의 홍보팀에는 언론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예산이 별도로 책정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국가가 나서서 이런 음성적인 거래를 제재하기 시작했다. 청탁금지법에 언론인이 대상으로 지정된 것은 밥값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지켜야 할 게이트키퍼로서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을 규제하겠다는 뜻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 했으니, 언론이 이에 대해 도덕적으로 자각하는 수준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성 언론사의 수익사업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분들은 내가 미디어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자, 역사는 골프장에서 이뤄진다고 했다. 하나같이 음성적인 거래의 필요성을 충고한 것이다. 언론사가 지금까지 양성화된 수익사업인 후원이나 구독료로는 충분히 돈을 벌지 못했단다. 협박, 뒷거래, 명분팔이, 여론유도와 같은 음성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내는 게 보통이었다고 그들은 충고했다.

음성적 거래를 해오던 습관은 결국 언론사의 미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양성화된 수익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음성적인 거래를 양성화시키는 타락 과정에서 ‘적절한 수준’을 찾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일까?

윤리적인 문제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다. 사업부를 속물취급하며 비판하던 편집부마저도, 기자는 밥 좀 얻어먹어도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모순되는 상황 같다.

언론사의 어떤 수익사업도 저널리즘-수익창출의 모순되는 상호대립가치 사이에서 겪어야 할 괴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게이트키핑의 책임까지 저버려선 안 될 것이다. 저널리즘은 곧 정신이고, 그 정신은 언론사라는 기업 형태의 육신에 담겨 존재한다. 하지만 기업의 생존만을 위해 게이트키핑의 책임까지 저버리게 되는 순간, 그 육신에는 올바른 정신을 담아둘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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