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라이딩

하노이, 그곳이 어딘지도 모른채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다 관두고 떠날 작정이었다. 그러니 하노이가 어떤 곳인지, 어디 붙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뜬지 20분만에 결제는 완료되었다. 출국일을 사흘 앞두고야 그곳이 베트남의 수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떠나본 해외 여행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만족스러운 여행의 조건으로 도시의 매력도 중요하겠지만 여행자의 마음상태는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내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던 지난 겨울은 참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잔인할 정도로 가학적인 사람이란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난 정체(停滯:발전없이 한자리에 머무는 상태)가 발견될 때마다 윽박지르고 채찍질하는 사람이었다. 이 방식은 좋은 방식이 아닐 뿐더러 좌절한 사람에겐 더욱이 부적절한 처방이다. 그걸 알면서도 난 습관을 고치지 않았다. 지난 겨울 난 정체했고 좌절에 빠졌다. 가학의 대상이 누군지 따지지않고 처방은 예외없이 이루어졌다. 이윽고 자기파괴가 시작되었다. 정체를 벗어나긴 더욱 어려워졌고 처방은 잔혹하게도 멈추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당장 벗어나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난 미지의 도시에 몸을 던졌고 하노이는 날 품었다. 종일 걸었고 종일 구경했고 종일 멍때렸고 종일 스쿠터를 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날이다. 비가 왕창 내렸고 난 스쿠터를 타고 온 도시를 구석구석 조지고 다녔다.

20년 봄, 자기파괴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첫째가 하노이고 둘째는 자전거다. 하노이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미친듯이 자전거를 탔다.
정체된 일과 커리어는 내버려두고 클릿을 꽂았다. 반백수의 상태로 자전거만 탔다. 다소 인위적이고 인스턴트적인 응급처방이었지만 자전거는 분명 결여되어있던 성취감을 공급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수단이었다.
20년 여름, 나는 지금 완전히 회복했다. 주당 50키로도 못타고 있는 라이딩 로그가 회복의 증거라는 점은 조금 안타깝지만.

구정에 귀국하고 나니 코로나가 창궐해 전 지구가 떠들썩해졌다. 한동안은 꿈도 꾸지 못할,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도 모를, 해외여행의 마지막이 하노이였다니. 시간이 지날수록 하노이의 기억은 더욱 특별하게 여겨진다.
지난 주엔 연남동에 있는 베트남 콘셉의 카페를 20분이나 들여 찾아갔다. 현지에서 먹었던 에그커피가 아니었다. 전혀 달랐다. 공통점을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제멋대로의 액체를 5,000원 내고 먹다 반을 남겼다.
도시 하노이로부터 받았던 마음의 안식을 미각경험를 통해 조금이나마 회상하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완전 짓뭉개졌다. 서울사람들의 현대적 관습대로 솔직한 피드백은 숨겼다. 잘 마셨단 거짓말을 던졌다.
다시 돌아온 차엔 불법주차 딱지가 붙어있었다.

하노이에 다시 갈수도 없거니와 그리워하는 것마저 허락지 않으니 나의 마음은 일종의 실연 상태에 빠졌다.
어제 스트라바 피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하노이라이딩’은 그 이름만으로 내 마음에 적셔들었다. 20년도에 내가 제일 좋아한 두 가지가 모두 들어가있는 이름.
하노이에서 스쿠터를 탄 기억은 자전거를 탄 기억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아이레벨, 주행경로, 흘러가는 풍경의 속도까지 거의 흡사하다. 그날의 기억을 살짝 조작해보니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탔던 것 같기도 하다.
조작된 기억이 아주 흡족하기에 같은 이름의 파일이 이미 있습니다. 기존 파일을 덮어쓰시겠습니까? 네네. 아무렴요. 그렇게 해주세요.

하노이에서의 마지막날엔 비가 왕창 내렸고 난 자전거를 타고 온 도시를 구석구석 조지고 다녔다.
어제 스트라바 피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하노이라이딩’은 그 이름만으로 내 마음에 적셔들었다. 20년도에 내가 제일 좋아한 두 가지가 모두 들어가있는 이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끌림에 오후 8시 정모 장소에 덜컥 참석해버렸다.

‘하노이라이딩’은 하늘공원 노을공원 라이딩의 줄임말이었다. 오늘은 샤방이라 1회전만 가볍게 돌린 후 편의점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고 예상치못한 선물도 받게되어 민망함과 감사함을 표했으며 이젠 낯선 사람들을 만나도 꽤나 여유로운 척 할 수 있게 된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칭찬한 뒤 15키로만 타고 집에 돌아가기엔 쫄쫄이를 꺼내입은 수고에 비해 운동성과 회수가 경제적이지 못하단 판단에 서오릉을 찍고 집에 돌아오던 중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하노이에서의 마지막날 자전거 탈 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그토록 고맙고 그리웠던 하노이가 오늘 여기 있다. 코로나도 자가격리도 다 이겨내고 와주었구나. 난 오늘 하노이라이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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