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학원 수강기 (자전거박사박박사님 박프로 수강후기)

올 봄, 자전거 학원을 다녔다. 4주 짜리. 수강일기를 썼었다. 한데 모아 기록해둔다.

 

평로라에서 외전근 페달링 리듬 찾기 (학원 첫날)

제가 알던 페달링을 다 써봐도 그 리듬감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제까지 전 다른 걸 외전근 페달링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나봐요? 실망스럽진 않아요. 오히려 좋은 소식이죠. 그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걸 깨우치게 되면 제 실력은 또 얼마나 성장할까요? 벌써 설렙니다.

강습이 끝난 뒤 한시간 더 탔습니다. 말씀해주신 힌트들을 의식할수록 어색해졌습니다. 몸이 박자감을 찾기보단 독립적으로 동작하는 느낌. 머리로 안 찾아지니 몸으로 찾아보려 했습니다. 눈을 감고도 하늘을 보고도 땅을 보고도 해보았습니다. 탈진한 상태라면 무의식적으로 찾아내지 않을까 싶어 서너번 털어보기도 했습니다.

이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비슷한 리듬을 찾은 것 같습니다.

힘의 타이밍. 제 몸의 느낌대로라면 무릎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왔을 때부터 짧게 스트로크를 쳐야 했습니다. 12-5는 정말 찰나의 순간입니다. ‘12시부터 5시까지만 힘을 줘’라는 코딩이 작동할만큼의 제 하드웨어는 좋지 않습니다. 명령어를 바꿔보았습니다. ‘12시에서 짧게 툭툭’ 더 잘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당기는 근육의 습관도 잠시나마 잊혀집니다.

힘의 시작점. 무릎의 위치. 제 습관대로의 페달링보다 무릎은 안으로 2~3cm 가량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외전근은 다리를 바깥으로 회전시킬 때 쓰이는 근육 너댓개를 묶어 부르는 것인데, 이름 그대로 바깥 회전이 일어나려면 시작점이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의 방향. 외전근은 무작정 바깥으로만 빼는 줄 알았는데 안으로 넣었다가 밖으로 밀어내듯 밟았습니다. 수직보다 5도 정도의 작은 차이였지만 몸 바깥쪽 근육이 많이 개입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릎의 시작점과 벡터의 방향만 정해두니 새끼발가락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습니다. 새끼발가락에 힘준다는 코딩도 안하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Q. 이게 제대로 찾은 것인지 그 리듬감만 비슷하게 흉내내기 위한 요령을 부린건진 모르겠습니다.

Q. 발목을 펴고 11-3시까지 앞으로 던지듯이 내미는 페달링은 무엇인가요? (둔근과 대퇴직근만 사용)

Q. 860칼로리밖에 안태웠는데 왜때문에 필드라이딩에서 1200태운만큼 힘들죠?

Q. 두시간 지났는데도 심장이 쿵쾅대는데 저 죽는건 아니죠?

 

클릿 압수 (학원 둘째 날)

오늘도 종일 외전근 시팅 리듬만 찾으려다 아무것도 못했다. 이걸 못하면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없단다. 별 지랄을 다 했다. 당기는 근육의 관여를 줄여보자고 클릿도 압수당했다.

선생님을 퇴근시키고 혼자 돌리자니 오늘은 다른 회원이 없다.
나 하나 때문에 사장님이 퇴근 못하시는 것 같아 챙겨 나왔다.

나왔다.
나오니 나왔다.
필드에 나오니 리듬이 나왔다.

안장 코가 사타구니를 치고 사타구니는 다시 안장을 튕겨내는 이 리듬.

이 리듬. 나 안다. 아는 수준도 아니고 잘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주 우수한 동작으로 우아하게 리듬에 변주까지 먹일 수 있다.

나 평생 이 리듬으로 타왔다. 세발자전거도 이렇게 탔던 것처럼 페달에 발만 올려도 이 리듬은 나온다.

평로라에서만 안 나온다.

 

당겨 올리는 페달링 연습 (학원 셋째 날)

■ 선생님 말씀

오늘은 당겨 올리는 것만 연습할 거에요. 직근이에요. 대퇴직근. 장요근과 대퇴직근으로 끄집어 올리세요.
프로 중에서도 직근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기량이 크게 차이납니다. 이게 필살기에요.
끝까지 끌어올려서 앞으로 밀어내는 것까지 얘 역할이에요. 뒤에서 앞으로 끌어 당기듯이 무릎으로 니킥 차듯이 당겨 올리세요.

■ 훈련 후 소감

당기는 근육 아예 쓰지 말란 사람도 있고 조금씩만 쓰란 사람도 있었는데 아니네? 오늘 두시간 동안 당기기만 했다.
고관절 주변 근육을 위주로 쓰니 무릎 주변 근육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무릎에 대미지도 없다.
선생님은 장요근과 복근이 당기면서 온몸이 웅크려지듯이 힘들거라 했는데 작년에 뺑뺑이 돌리면서 이 근육 자주 썻는지 몸에 전혀 무리 없고 너무 상쾌하다.
당기는 근육만으로는 평로라 시속 80 넘기기 힘들다. 케이던스도 높이기 어렵다. 그리고 다른 페달링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얘는 얘만의 타이밍이 따로 있는 것 같다.

■ 짬내서 던진 막간 질문에 대한 답변

장요근은 자주 쓰면 안 되는 줄 알고 가끔씩만 20번 스트로크 치고 말았다고 했더니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계속 쓰라 하셨다.
모든 근육은 수축하면서 힘을 낸다. 그래서 관절을 뻗는 것보다 관절을 굽히는 힘이 더 세다. 온 몸을 굽히면서 니킥으로 당기는 페달링은 가장 큰 파워를 단기간에 뽑아낼 수 있다.
최대심박측정방식은 계단을 뛰어오르는 때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니킥 댄싱으로 심박을 240까지 올렸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만큼 온 몸의 에너지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신호다.
3분 정도의 업힐 코스를 공략할 땐 밟는 페달링에서 당기는 페달링으로 점점 바꿔나가는 게 좋다. 큰 근육을 나중에 써서 마지막에 쥐어 짜는 것이 에너지를 모두 쏟아낼 수 있어 효율적이다.
평소에 훈련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당기는 페달링을 먼저 써서 밟는 페달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당기는 근육으로 젖산역치에 빠르게 다다른 후에 밟는 근육으로 지속지극을 주는 방식이다. 그렇다. 젖산역치 훈련이다.

■ 나의 상태 진단

당기는 페달링에선 파워밸런스 60:40 까지 커졌다. 오른다리에 비해 왼다리엔 자극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에 자주 사용한 것이다. 오른다리는 왼다리가 굴리는 페달링에 얹혀가듯 살아온지라 상사점에서 좌우로 흔들렸다.
왼쪽은 수직 직선운동이 이뤄지지만 오른다리는 11자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허벅지가 근육량이 적어 얇은데도 싯포스트에는 더 가깝게 붙어 있었다. 선생님은 골반이 열리지 않은 것이라 말했다. 오른 골반만 열어야 했으나 그것은 무릎의 위치만 바꾼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 처방

선생님도 이정도의 언밸런스는 본 적이 없다며 비장한 표정으로 이걸 고치는 게 가장 시급한 숙제라고 말씀해주셨다.
정 안 된다면 오른발에 스페이서를 넣자고 하셨다. 그럼 힘점을 더 이르게 줄 수 있어 근육의 개입을 조금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그 방법은 최후의 처방인데다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선택지라며 머리를 쥐어 뜯으셨다. (아… 선생님… 모발을 소중히…) 선생님의 모발건강을 위해 나는 이 숙제를 기필코 풀어야 한다.
외발페달링 훈련에 대해선 좋은 생각이 아니라 하셨다. 자세한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자전거는 몸이 대칭된 상태로 좌우가 번갈아가며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항상 말해왔던 사람이다.
우선의 처방으로 오른 골반만 살짝 뒤로 빼라고 했다. 골반을 뒤로 뺄수록 큰 근육을 사용하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골반을 살짝만 뒤튼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익숙한 자세를 지우는 의식을 지속하기도 어려웠다.
이윽고 골반을 틀어내는 요령을 찾았다. 왼손은 후드, 오른손은 바엔드를 잡았더니 어깨와 골반이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확실히 오른다리가 페달링에 개입을 많이 한다. 밸런스 수치도 53:47 까지 줄어든다. 당분간은 일반 주행 자세에서도 이렇게 뒤틀어 잡아 교정해볼 계획이다.

■ 선생님의 화법에 대해

선생님의 수업을 세 번 들어보니 참 완곡한 표현이 잦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저는 그렇게 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어요”는 경상도 선생님의 “시킨거나 똑바로 해라임마”에 맞먹는 피드백이다. “그래도 엄청 잘하고 있으신거에요.”는 경상도 말로 “이정도는 할 줄 알았다. 등신새끼야” 정도에 맞먹는 피드백이다. 서울살이 어언 10년. 나도 스윗한 서울남자의 표현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이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10점만점에 3점쯤 되는 것 같다. 박수를 열번 연속 치는 것은 5점 쯤 된다. 나는 평생 누가 나에게 박수를 열번 연속 쳐준 적이 거의 없다. 이 선생님이 나에게 쳐준 박수, 그 빠르고 경쾌한 박수소리를 들었을 땐 내가 자전거 천재인줄로 착각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이은호를 자전거학원에 수강하게 만든다.
박수는 생각보다 자주 터져나왔다.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50대 아저씨가 한 손을 놓아 물통을 꺼내 마시고 다시 꽂아넣는 것을 성공했을 때에도 박수를 열번 쳐주셨다. 같이온 다른 아저씨가 양손을 놓고 셀카를 찍었을 땐 스무번 쳐주셨다.
아… 이분은 서비스 마인드가 아주 훌륭하신 분이구나… 이분 자전거 안타고 장사 하셨으면 뭘 팔아도 꽤 많이 파셨을 것 같다.

 

 

채우려면 비우라 (학원 넷째 날)

난 몸이 나빠서 머리가 고생하는 타입. 그런데 머리가 좋지도 않음. 혼자 주법연구하고 유튜브보면서 배운 게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음. 소프트웨어가 엉망진창인 상태. 명령어들이 충돌을 일으키고 새로운 명령어는 실행되지도 않음.

나는 제대로 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 찍어보면 전혀 다르게 타고 있음. 성립하지 않는 주법도 많고 비효율적인 주법을 몸에 익혀버린 탓에 결론적 연비가 나빠졌음.

다 버려야 함. 주법 많은 거 다 필요없음. 이소룡은 만가지 발차기를 연습한 놈은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했음. 그런데 한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무섭다고 했음.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 함. 주법을 다양하게 구사할수록 조빱이란 게 쉽게 들통날 뿐. 다 버려도 됨. 만가지 주법 다 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음.

망치를 들어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야 함. 고통과 위험을 스스로 받아들여 극복하는 자-초인-이 되기 위해.

——— 기타학원에서(어렸을 때 호호깔깔 유모어집에서 읽은 구절) ———
기타 강습료가 얼마인가요?
> 십만원입니다.
저… 다른 곳에서 배운 적이 있는데 강습료를 절반으로 깍아주실 수 있나요?
> 그렇다면 이십만원입니다.
깍아주진 못할 망정 왜 두배가 돼요?
> 다른 곳에서 배우셨다면 잘못된 습관이 들어있을거에요. 잘못된 습관을 지우는 건 백지 상태인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두배로 어렵습니다. 그러니 두배로 내셔야지요.
————————————————————————————————

스스로 백지의 상태가 되지 않으면 선생님은 올바른 가르침을 입력할 수 없음. 백지가 되지 않으면 수강료를 두배로 청구받게 될지도 모름. 이를 악물고 지워내야 함.

차사장님의 가르침, 친구의 훈수, 나름대로의 연구, 자덕유튜버의 자기주장, 다른 프로 선수의 설명, GCN콘텐츠, 이 모든 것을 버린다. 옳은거 틀린거 가리지 않고 모두 통째로 내다 버린다.

1. 모두 지운다.
2. 선생님이 “바로 그거에요” 라고 한 것만 남긴다.
3. 반복한다. 몸에 새긴다. 머리말고 몸에 새긴다. 머리로 이해하고 싶어지면 당장 생각을 멈춘다. 동작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잘못된 습관을 덮어버릴 정도로 반복한다. 백지의 상태에서 학습하는 것보다 최소 다섯 배는 많이 반복해야 할 것.

…. 라는 각오로 학원에 갔는데
더이상 가르칠 게 없다며
평로라 거꾸로 타보라고 시키심
거꾸로 타지니까
댄싱까지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댄싱을 또 시키심
댄싱이 되니까
제일 가벼운 기어로 케이던스 50놓고 손놓고 타보라는
말도 안되는 서커스를 숙제로 내주심 ㅡㅡ;;;

종일 서커스 연습을 하다가 어느덧 열시가 되었고
여느날처럼 가파른 지하주차장 언덕을 오르는데
아니 이거 뭐야
왜 자전거가 저절로 올라가지
이상하다 싶어서 또 평지를 달리는데
어라 이상하다
자전거가 가만히 서있네
어허 거참 이상하다
자전거가 저절로 서서 가네
난 얹혀만 있고 얘가 자율주행을 하네
밸런스 미쳐따리 오져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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