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사업부와 편집부는 수익사업의 정당성을 두고 종종 싸운다. 한 조직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인데, 그 돈으로 월급 받는 기자들에겐 왜 비난받을까? 저널리즘 추구와 수익사업은 언론사라는 조직 안에서 공존할 수 없는 가치여서일까?

저널리즘이 정신이라면 언론사는 기업형태의 육신에 해당한다. 여느 기업처럼 언론사는 수익창출과 성장을 목표로 하기에 저널리즘의 목표를 저해하고, 저널리즘은 기업의 형태를 빌려야만 존재할 수 있기에 비난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으려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한 언론인은 이 상충하는 두 가치를 모두 잡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타락’이 필요하다고 표현했다. 어떤 타락들이 있는지, 어느 정도가 허용 가능한 수준인지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 언론 상품 1 – 콘텐츠 제작능력을 판매

올봄, 한국일보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카드뉴스를 제작해주겠다는 제안서가 유출되어 논란이 일었다. 제작과정, 비용, 발행의 성과까지 꼼꼼하게 적힌 제안서를 보니 언론사가 아닌 마케팅 대행사에서 만들어진 느낌까지 들었다. (관련 내용)

언론사 사이에서 이 사건으로 인해 비난과 사과가 오갔다. 이내 윤리적인 선을 넘었는지 말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커졌다. 사실 언론사들의 비난 뒤에 숨겨진 속뜻은 “이런 상품을 염치없게 공식화시키면 어떡하냐”일지도 모른다.

언론사가 비용을 받고 콘텐츠를 제작해주는 상품은 최근에 발명된 것이 아니다. 잡지 바닥에서는 이를 애드버토리얼이라 부르고, 온라인 언론사들은 네이티브애드라 부른다. 카드뉴스를 만들어준다는 제안 또한 새로운 채널에 형식을 최적화시켰을 뿐, 돈 받고 콘텐츠를 만들어준다는 개념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언론사가 보유하고 있는 핵심 인적 자원인 콘텐츠 제작능력을 판매하는 고전적인 대행 상품이다.

올해 초부터 언론사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저널리즘의 정의는 이제 독립성이 아닌 투명성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기업과 거래를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투명하게 밝힐 것이니 나쁘게 보지 말아 달라는 뜻이다.

 

  • 언론 상품 2 – 공신력 판매

비슷한 시기에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홍보대행사의 영업 메일이었다. 돈을 내면 언론사에 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며 친절한 가격표도 첨부했다. 조선일보는 35만 원, 동아와 중앙은 30만 원. (보기)

현직 기자에게 보여주니 자신의 회사 이름을 찾아내곤 “우리는 그저 순진한 기자들이네”라며 낯부끄러워했다. 언론인 지망생에게 보여주니 “썩은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썩은 줄은 몰랐다”며 언론고시 때려치우고 적당히 취업이나 하겠단다.

‘언론에 기사를 낸다’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언론-홍보계에서는 이를 의도적으로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체라면 ‘기사를 낸다’는 곧 발행을 뜻했지만, 온라인에서는 발행과 게시는 별개 행위다. 게시 상태의 콘텐츠를 온라인에선 무제한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데, 온라인 게시판에 글 쓰는 것과 개념적으로 다른 게 전혀 없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구세대의 언론광고상품인 지면광고가 채널 영향력을 파는 것이었다면, 이 상품은 매체의 공신력을 파는 것이다.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린 뒤, URL을 광고주에게 보내주면 장사 끝난다. “OO일보가 우리를 알아 봐주고 기사를 다 써줬네~”라고 광고주가 능청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 자료를 제공하는 비공식적 사기행각이다.

온라인에서의 발행은 제휴 된 포털에 띄우거나 보유 SNS에 포스팅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또는 자체 웹사이트의 메인화면이나 다른 기사를 보는 독자들에게 연관콘텐츠라며 간접 노출이라도 시켜줘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상품으로 판매한 기사는 어떤 발행의 노력도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기사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을 받고 게시했지만, 발행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사의 공신력을 돈과 바꿈으로써 생긴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면책사유가 된다.

 

  • 언론 상품 3 – 브로커를 통한 음성적 거래

정상적인 방법으로 언론에 홍보하고자 하는 기업의 홍보담당자나 홍보회사도 있지만, 비공식적이고 음성적인 방법으로 언론사와의 연결을 중재하는 브로커도 있다.

어떤 브로커가 한 식당 사장님에게 3,000만 원을 받고 유명 일간지에 특집기사가 실리도록 작업했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한 브로커는 1,000만 원을 주면 주요 일간지 셋 중에 적어도 한 곳에는 1면에 나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제안했다. 나가는 것을 100% 보장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보겠으니 나의 실력을 믿어달라고 말하는 투가 왠지 께름칙했다.

그 막대한 기사 발행 비용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짐작하건대 언론사의 공식수입으로 잡히진 않았을 것이다. 사측에서 이 사실을 알면 화들짝 놀라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발행을 허락한 편집장을 문책하고 징계할 것이다.

받아먹은 돈은 회사에 토해내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러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기업의 홍보비를, 브로커가 삥뜯어서, 편집장과 나눠 가진 것을, 다시 회사에서 삥뜬는 꼴이 아닌가? 그렇다고 받은 돈을 퍼뜩 돌려주라고 할 수도 없다. 언론사의 체면이 뭐가 되나? 이미 기사는 발행되어 채널 영향력과 공신력을 다 퍼줬는데, 돈까지 돌려주면 자진해서 호구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브로커를 통한 음성적 거래는 부정청탁관계로 콘텐츠를 발행한 것과 돈도 못 받고 핵심역량을 뺏겼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언론으로서 통제능력을 강도당했다는 점이다.

시대가 바뀌면 많은 것이 변한다. 콘텐츠형식, 유통채널, 사업전략, 업무방식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언론사에 주어진 게이트키핑의 역할과 책임이다. 브로커에게 이용당한 언론사는 게이트키핑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했다.

브로커에게 이용당했다고 언론사가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일은 어떤 소식을 발행할지 말지를 통제해야 하는 게이트키퍼의 책임을 가진 언론사가 그 책임을 직무유기했기에 일어난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브로커가 아니라, 브로커가 판치도록 방조한 언론사들이란 말이다. 파리를 쫓을 게 아니라 개똥을 치워야 한다.

 

  • 음성적 거래의 양성화

기업과 언론이 맺고 있는 깊은 유착관계에 대해 나는 경험해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기업의 홍보팀에는 언론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예산이 별도로 책정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국가가 나서서 이런 음성적인 거래를 제재하기 시작했다. 청탁금지법에 언론인이 대상으로 지정된 것은 밥값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지켜야 할 게이트키퍼로서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을 규제하겠다는 뜻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 했으니, 언론이 이에 대해 도덕적으로 자각하는 수준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성 언론사의 수익사업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분들은 내가 미디어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자, 역사는 골프장에서 이뤄진다고 했다. 하나같이 음성적인 거래의 필요성을 충고한 것이다. 언론사가 지금까지 양성화된 수익사업인 후원이나 구독료로는 충분히 돈을 벌지 못했단다. 협박, 뒷거래, 명분팔이, 여론유도와 같은 음성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내는 게 보통이었다고 그들은 충고했다.

음성적 거래를 해오던 습관은 결국 언론사의 미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양성화된 수익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음성적인 거래를 양성화시키는 타락 과정에서 ‘적절한 수준’을 찾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일까?

윤리적인 문제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다. 사업부를 속물취급하며 비판하던 편집부마저도, 기자는 밥 좀 얻어먹어도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모순되는 상황 같다.

언론사의 어떤 수익사업도 저널리즘-수익창출의 모순되는 상호대립가치 사이에서 겪어야 할 괴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게이트키핑의 책임까지 저버려선 안 될 것이다. 저널리즘은 곧 정신이고, 그 정신은 언론사라는 기업 형태의 육신에 담겨 존재한다. 하지만 기업의 생존만을 위해 게이트키핑의 책임까지 저버리게 되는 순간, 그 육신에는 올바른 정신을 담아둘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끊이지 않는 발걸음, 이슈의 발원지가 되었다는 자부심, 독자들의 감사인사, 사람들이 알아봐 줄 때의 콧대등등함, 발행인으로서 느끼는 사회적인 책임감, 사업화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미한 희망

작은 규모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 대형 언론사에 근무하는 사람 모두 느껴봤을 공통적인 감정들이다. 이 감정들 때문에 밤도 새서 조사하고 연구하고 발로 뛰어 글을 쓴다. 하지만 밥을 벌어먹지 못하면 이 모든 감정과 노력은 모두 헛수고에 불과해진다. 미디어로 밥값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환이다. 전환transition을 일으키지 못하면 미디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미디어와 콘텐츠 자체가 목적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광고를 수익사업으로 삼는 미디어는 철저한 수단이고, 좋은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전환을 일으키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 AARRR

전환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AARRR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 기준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낯설게 들리지만, 오프라인 매장에 비유를 들어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은 개념이다. 온라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의 모든 고객 접점을 대입해볼 수 있다.

Acquisition은 최초노출에 해당한다. 오프라인 매장에 비유하면 손님이 간판을 본 순간이다.
간판을 본 사람 중에서 몇 명이나 상점으로 들어왔는가? 상점으로 들어온 사람을 Activation이라 한다.
그 손님이 또 방문했다? 매장에 관심 있는 물건이 있는지 이것저것 뒤져보면 Retention이다.
상품을 고르고 지갑을 열었다. 돈을 내면 드디어 Revenue가 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손님이 주변 사람도 데리고 다시 방문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준다. Referral이다.

매 단계를 온라인에 대입해도 맞아 떨어진다. 각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 시점마다 일부분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 이 과정은 선형적이고 이후 단계가 전 단계보다 커질 수는 없으므로 깔때기funnel이라고도 부른다. 다음 단계로 전환시킬 때 이탈하는 사람을 최소화하고, 전환되는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게 관건이다.

 

  • 허무지표

“월간 100만 PV를 기록Acquisition”, “누적 회원 수가 30만 명Activation”, “재방문 비율이 50%Retention”라는 소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위의 숫자들이 얼마로 바뀌건 간에 특별한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 달성해도 내 인생에(우리 회사에) 도움이 안 되는 목표를 허무 지표라 한다. 앞의 세 수치는 허무 지표다.

각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얼마나 전환되는지는 조금 중요하다.
Acquisition에서 Activation으로 상당수의 %가 전환이 일어났다고 하면 귀를 한 번 기울일 만하다. Activation에서 Retention으로 상당수의 %가 전환이 일어났다고 하면 눈길을 한 번 줄 만하다. 하지만 세 번째 단계인 Retention까지 왔다 하더라도 수고했다고 칭찬하긴 이르다. 간판도 많이 노출되고, 매장도 붐비고, 재방문자도 많지만, 정작 물건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은 시간대로 성장하는 허무지표가 아니라, 단계별로 전환되는 %의 성장에 있다. 전환의 %가 예측 가능하고 조절 가능하다면 Acquisition에 돈을 쏟아부었을 때, 깔때기 마지막에 나오는 수량이 얼마나 될지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깔때기 중간이 꽉 막혀있는 상황이라면? Acquisition에 들어가는 비용은 목적 없는 지출이 된다.

정작 중요한 4번째 수익화 계획Revenue이 없으면 앞의 수치들은 전혀 의미 없다. ARPU Average Revenue Per User 또는 ARPPU Average Revenue Per Paying User 가 의미 있는 지표들이 된다.

나 또한 그랬고, 많은 언론사가 허무지표만을 목표로 삼았다. 왜 이토록 중요한 전환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까? 내부에 수익전략Revenue이 없기 때문이다.

 

  • 전환 빌려주기 = 광고

전통적으로 언론사는 자체적인 판매 상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지 않다. 자체적으로 수익전략을 가지기보다는 수익전략을 가진 외부 파트너를 도와주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외부 파트너를 도와주기 위해 미디어 트래픽을 빌려주는 것을 광고라 한다. 트래픽을 빌려주는 단계에서도 전환이 일어나는데 내부적으로 전환을 일으킬 때보다 외부로 전환을 빌려줄 때, 대체로 전환율이 낮다.

언론사의 관점에서 Acquisition을 빌려주는 것을 광고시장에서는 CPI Cost Per Impression이라 부른다. 언론사의 관점에서 Activation을 빌려주는 것을 광고시장에서는 CPC Cost Per Click이라 부른다. AcquisitionActivation은 직접적인 Revenue로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광고 효율이 불확실하다. Acquisition만으로 광고효과가 나던 시대에는 광고주가 KBS건물에 두 바퀴를 돌아 줄을 섰다는 전설이 내려 전해진다. 하지만 콘텐츠 과잉시대에 접어든 이상, 그런 시대가 다시 오길 기대할 수 없다.

언론사가 내부적으로 수익전략이 있었다면 Revenue에 직결되는 전환전략을 세워놓았을 것이다. 그런 전환전략이 있었다면 외부에 빌려줄 때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사는 그런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외부에서 요청하는 AcquisitionActivation만 빌려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광고주도 AcquisitionActivation만 빌리는 데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외부의 요구에 따라 전환을 빌려주니 실제 트래픽 보유 가치보다 평가절하해서 팔 수밖에. 이제 시장가격을 광고주가 정한다.

온라인 광고시장은 언론사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한국의 웹사이트 중 트래픽 상위 50개 중에서 언론사는 3곳이다. (22동아, 30조선, 40중앙) 반면 커뮤니티 사이트는 8곳이다. (14디씨, 15SLR, 17일베, 25베스티즈, 29인벤, 33오유, 34뽐뿌, 37인스티즈) 연봉 5,000만원의 엘리트 기자가 쓴 기사와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올라온 콘텐츠가 동점으로 평가되니 콘텐츠 생산 비용에서 큰 손실을 본다.

 

  • 전환은 전략이 아닌 태도

세상에는 세 가지의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통계. 이 중에서 통계가 가장 나쁜 이유는 스스로마저 속이기 때문이다. 동접자 수를 보며 뿌듯한 마음에 취해있던 나, 허무지표를 엑셀에 넣고 돌려 어떻게든 J커브를 산출했던 나, 데이터를 자신을 속이는 데 사용했던 나를 반성한다. 3달 전 나는 개별 계정으로 Google Analytics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시켰다. Google Analytics는 손실이라는 고통을 망각하게 해주는 진통제다. 페이스북 페이지 인사이트도 같은 놈이다.

“방문자와 회원 수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잖아요? 전환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지 않나요?”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이 또한 틀린 생각이다.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허무지표는 없애야 한다. 허무지표는 돈을 쓰면 나올 수밖에 없다. 공짜로 밥 주고 술 주는 이벤트를 매일 하는데 매장에 손님이 끊길 리 있겠는가?

뉴미디어라는 간판이 무슨 벼슬인지, Revenue전환의 전략도 의지도 없이 수백만의 다운로드와 억소리나는 허무지표를 성과라고 자랑스럽게 인포그래픽까지 만들어 공개하는 곳이 있다. 너도나도 뛰어드는 MCN사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직원은 200명인데 하루에 나오는 콘텐츠 수는 고작 20개란다. “버는 돈은 없는데 쓰는 돈은 많아요”라는 뜻인데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내뱉는 말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다들 좀… 취하신 것 같다.

 

허무지표를 집어치우고 Revenue를 위한 전환전략을 찾아내자. 전환을 자유자재로 드리블할 수 있는 기술을 내재화하자. DNA에 새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함께 작업한 해외 미디어 동향 보고서가 나왔다. 셰프뉴스는 한 페이지 가량 소개되었다. 이메일로 문의왔던 당시 답변했던 내용을 이 곳에 기록으로 남긴다.

보고서 다운받기(169MB) : http://www.kpf.or.kr/downloadfile.jsp?num=6369&board_data_id=7824

 

정보전달발전역사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이전 세대의 기술은 매정하게도 세상에서 잊혀졌습니다. 봉화, 전령, 목판인쇄, 타공프린터, 모스부호, 흑백 TV, 모뎀 등 모두 잊혀졌습니다. 인류는 정보전달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고 있고, 불과 몇 년 전에 사용하던 전달기술들이 새로운 기술들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적인 환경 속에서 언론사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콘텐츠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반대의 의견을 내겠습니다. 기존 언론사들이 콘텐츠를 못 만들어서 위기가 왔나요?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는 전적으로 시대적인 현상이며, 언론사 외부의 환경적인 문제입니다. 내부에서는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콘텐츠가 아닌 역할입니다.

이전 세대까지 언론사가 하고 있던 역할은 수많은 대체재에 의해 대체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남길 것이며, 다른 서비스에 의해 대체되어버린 분야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언론사들이 각자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시점일수록 업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현대적인 ‘언론사’의 범위를 넘어, 더 큰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미디어의 본령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결국 ‘중간자’, ‘매개자’, ‘연결자’, ‘전달자’입니다. 여전히 연결이 필요한 곳은 많이 있고, 새로운 기술로 그 연결을 더욱 효과적으로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14년 7월 셰프뉴스를 창업하기 전까지 IT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에서 3년 가까이 근무했습니다. 없던 IT산업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고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 산업미디어가 필요하다. 산업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하고, 사람들의 연결을 도모한다.”라는 산업미디어의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이 맥락에서 외식산업은 미디어가 가장 필요한 산업입니다. 테크황무지에 가깝지요. IT기술을 아는 사람은 외식 산업을 이해하지 못해 매번 실패하고, 외식 산업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기술을 이해하지 못해 실패합니다.

이 산업에는 총 25종 가량의 오프라인 매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려는 시도를 안 한 게 아닙니다. 매번 실패했고, 지금도 여러 시도들이 실패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많이 있겠지만 공급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외식 산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F&B(Food & Beverage)두 개로 구분하거나, HoReCa(Hotel & Restaurant & Café)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공급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소비자 중심적인 관점에서 매체를 기획하면 산업 종사자를 독자로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측정 가능한 외식업 종사자가 3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주방 근무자는 140만 명입니다. 이들이 볼만한 매체가 있을 법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없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기존 언론은 “셰프에 관한 뉴스”만들 생각은 하지만, “셰프가 보는 뉴스”를 만들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간 ‘버티컬 미디어’라는 어휘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소재를 버티컬하게 접근하면 보기엔 그럴싸한 미디어가 만들어지겠지만 역할을 찾기 힘들 것입니다. 독자를 버티컬하게 설정하면 그들이 역할을 알려줄 것입니다. 구인구직서비스도 독자분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셰프뉴스가 지금까지 매체 영향력을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저희가 잘해서라기보다 독자의 특이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리사라는 독자는 다소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습니다. 하루에 14시간씩 창문도 없는 주방에서 육체노동을 하지요. 잠시 담배를 피러 나와 휴대폰을 보는 게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취미, 특기, 진로가 모두 요리인 삼위일체형 직군입니다. 인생에 요리밖에 없다고 합니다. 다른 매체가 독자들과 가지는 약한 연결고리에 비교하면 훨씬 큰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는 두 가지로 구분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콘텐츠 생산자(Media as Contents Creator)이며, 또 다른 하나는 채널(Media as Channel)입니다. 콘텐츠를 돈 주고 사보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으므로 미디어 운영의 목적은 채널을 구축하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콘텐츠는 목적이 아닌 철저한 수단이 됩니다.

채널로서의 미디어도 전환(transition)을 일으키지 못하면 아무 짝에 쓸모가 없습니다. 전환도 안 일어나는 채널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콘텐츠 생산부서는 애물단지 지출부서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셰프잡스에서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셰프뉴스는 애물단지 지출부서에 해당하므로 1.2명의 최소 리소스만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중입니다. 셰프뉴스로부터 전환을 일으켜 셰프잡스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셰프뉴스의 미디어 운영 비용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입니다. 셰프뉴스의 독자와 셰프잡스의 고객이 같으므로 전환 효율이 아주 높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나는 미디어 운영을 시작한 지난 1년 8개월 동안 몇 번의 죄책감을 느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면 기자가 저널리즘 정신을 가지고, 소재에 집착하고, 연출과 편집에도 욕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일해 많이 만들어내라는 생산목표를 설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생산성을 강요하고 있었다. 심지어 미디어 운영의 본질은 언론이 아닌 제조업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언론의 측면에서 최소한의 정의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 기대했고,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산업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행동의 방향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어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고전경제학에서는 성장을 생산의 문제로 보았다. 적은 비용을 들여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달성과제였다. 그래서 경제성장에 필요한 요소로 노동, 자본, 기술 이 세 가지를 꼽았다. 미디어 운영 또한 생산과정에서 비용이 들어가고 생산결과물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제조업과 다르지 않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미 수적으로 과도한 미디어사들의 무지막지한 생산성 경쟁시대, 오늘을 되돌아보자. 생산성 경쟁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 소싱-생산성

15년 한 해 동안 신규 등록된 온라인 미디어만 6,000개에 달한다. 그렇다고 언론의 목소리가 다양해졌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베끼고 베낀다.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였으면 모를까, 정보가 넘쳐나서 문제가 되는 정보과잉시대. 특종에 열을 올리고 새로운 소재를 잘 찾아내는 매체가 있다면 어뷰징 전문 미디어의 1차 타겟으로 선정된다. 먹성 좋은 대왕고래 턱 밑에 빨판상어가 여럿 붙어있는 모양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니, 곰이 재주부릴 의욕이 나질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며 너도나도 빨판상어나 되겠다는 것을 대부분의 온라인 언론사들이 전략이랍시고 내세운다. 콘텐츠가 낱낱이 쪼개져 전달되는 지금, 단독속보가 큰 흥행과 보상을 가져다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소싱, 소재를 찾아내는 일이다. 80년대에는 9시 뉴스가 조금 일찍 끝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오늘은 특별한 소식이 없어 방송을 이만 마칩니다.” 당시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마 언론사의 소싱능력이 제한적이었던 게 그 이유였을 것이다. 30년 전과 비교해보면 소싱할 수 있는 창구가 훨씬 많아졌다. 세계 주요 도시에 특파원이 파견되어 있고, 기관이나 기업의 홍보부서에서 내용을 정리해주는 담당자가 따로 있다. 블랙박스나 스마트폰 영상도 소재거리가 된다.

소싱이라는 작업을 위해 제보창구를 열어 두고, 편집기준에 딱 맞아 떨어지는 정보를 하루에 수백 건씩 제보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페이스북 페이지 ‘오늘뭐먹지?’와 같은 선순환 구조가 나오는 경우는 아주 희귀한 경우다. 소싱이라는 작업은 유사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관련 키워드를 몇 개 골라 네이버 뉴스 검색에 입력하고, 그 결과창의 RSS소스를 긁어 피들리에 등록해놓으면 매번 키워드를 새로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클릭 한 번만으로 사전에 입력한 키워드에 대해 실시간으로 언론에서 노출되는 기사들이 검색되어 보여진다. 지니뉴스 앱에도 맞춤뉴스라는 비슷한 기능이 있다. 영상 콘텐츠를 같은 방식으로 투어할 수 있는 앱 vodio가 있어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1차적으로 검증된 콘텐츠를 참고하는 것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영어를 할 줄 안다면 해외의 관련 매체 50여 개 정도를 모니터링 할 수 있다. 해외의 매체들도 나름의 편집기준, 소재 검토 기준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보 공해를 걸러내 줄 필터 역할을 해준다. 한국 F&B 산업 소식은 홍보팀이 작성한 신제품 나왔다거나 메뉴가 바뀐 소식, 자본이 관여되어 인위적으로 작성된 기사, 방송리뷰기사, 먹어보니 맛있더라는 감동도 재미도 근거도 없는 이야기 등이 대부분이라 해외 매체를 참고하는 것이 더욱 성과가 좋다. 이 작업도 일주일에 2회만 한다고 했을 때 총 4시간 정도면 훑어보기에 충분하다. 페이스북의 친구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뉴스피드에 어떤 소식들을 띄울지를 세팅하는 것도 검증된 뉴스를 소싱받을 수 있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다루는 콘텐츠의 경우 위의 작업과정을 통해 1,000개 정도의 기사 제목을 훑어보면, 20개 정도는 읽어볼 법하고, 그 중에서도 5개 정도만 소재거리가 될 법하니. 이 작업의 핵심은 효율성이 아니라 “편집기준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찾아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방식들로 정보에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 수는 있지만, 아무리 효율성이 좋아져도 이미 생성된 정보를 조회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NEWS를 만드는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선 평생 OLDS밖에 못 만들어낸다. 콘텐츠 생산자에게 달성목표를 양적인 수치로 설정한다면 시간에 쫓겨 효율성이 높은 일만 좇고자 하게 되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이 순간부터 보도자료를 들추고, 전화벨이 울리기만 기다리고, 온라인 뉴스를 큐레이팅하는 일만 하게 될 우려가 있다. 취재관행이 생긴 순간, 사실상 기자는 산 송장이 된 것과 다름없다. 적은 리소스를 들여 생산량을 높이는 것을 우선시해선 안 된다. 새로운 영역, 미개척 분야를 끊임없이 탐험하고 취재해내는 것이 본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소싱 작업을 빠르게 반복함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시스템에 갇혀 발이 묶여선 안 된다.

진정 보석 같은 소재, 편집기준에 꼭 들어맞는 소재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발굴’ 수준의 소싱을 하기 위해서는 기자가 곡괭이 들고 땅파러 나서는 수 밖에 없다. 좋은 소재를 찾아내는 데에 미치는 요소는 오직 기자의 적극성과 집요함 말고는 없다. 기자의 덕목으로 술을 잘 먹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는 데에도 다 발품을 잘 팔기 위한 데 있다. 수습 3개월 동안 경찰서 옆 쪽방에서 잠도 안 재우고 취재시키는 것도 발품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효과적으로 소재 소싱할 방법에 대해 물었지만, 그들도 특별히 다른 방도를 알지 못했다. 기사는 결국 발로 쓰는 것이기 때문일까. ‘발로 쓴다’는 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만 의미하진 않는다. 스스로 취재처를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전화를 돌리거나, 먼저 제보가 들어올 수 있도록 관계를 만드는 것 또한 모두 발품에 해당할 것이다. 기자 지망생 중 기자가 글 쓰는 직업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볼 땐 소싱 작업이 기자에게 주어진 일의 8할이다. 소싱만 제대로 된다면 제작이야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 제작-생산성

글은 참 종류도 많다. 크게 문학적인 글과 비문학적인 글로 구분하지만, 기사의 종류만 세어 보아도 스트레이트, 단신, 가십, 르포, 해설, 인터뷰, 사설, 칼럼, 독자투고 등으로 다양하다. 콘텐츠가 어떤 포맷을 갖추는지와 상관없이 일반적인 글쓰기 능력은 모든 콘텐츠 제작에 요구된다. 뉴미디어 시대에는 새로운 포맷의 콘텐츠가 많이 등장했다. 카드뉴스, 동영상 해설기사,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복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면서 기자에게 글쓰기 이외의 콘텐츠 생산을 주문한다. Snowfall 기사가 퓰리쳐상을 받자,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기획기사를 웹사이트 하나 개발하는 규모로 만들어내는 유행이 불었다. 이내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얻은 트래픽의 활용가치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카드뉴스도 요즘은 왠지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 Snowfall은 12명이 6개월 동안 겨우 기사 하나만 만들었을 뿐이다. 미디어사의 규모가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제작 효율성은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04년도에 영상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당시 방송현장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 개편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피디, 조연출, 작가, 촬영감독, 음향감독이 떼를 지어 나가 촬영하던 과정을 없애고 카메듀서(Cameraman + Producer)에게 어떻게든 혼자 말아오라고 주문했다. 예전만큼 높은 수준의 방송을 만들어 내긴 어려우니 질을 포기하고 저렴한 양을 선택한 것. 이때 자리 잡은 포맷이 VJ특공대다. 카메듀서 8명을 고용해 한 사람당 2주에 1편씩 만들어라 하면 1주에 4개의 꼭지를 제작할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그럴싸한 소개액션을 보여준 뒤 13분짜리 꼭지를 4개 틀어주면 1시간 방송을 채울 수 있다. 88만 원짜리 조연출 경력을 2년 정도 거치면 120만 원짜리 꼭지피디로 입봉하는 코스가 보통이 되었다. 장비는 조악하고, 지원도 열악하고, 경험과 경력 또한 부족하다. 다룰 수 있는 소재는 제한적이고, 콘텐츠 포맷은 획일화되어 개성을 잃는다. 3포세대 제작자가 이 구조 안에서 저널리즘을 추구할 리 만무하다.

종편에서 패널토의 형식의 보도가 유행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순발력 좋은 사회자가 전문성 갖춘 패널을 초청해, 한 시간 노닥거리면 몰입도 높은 방송이 완성된다.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키워드인 MCN, 유튜버와 1인 콘텐츠 제작자들이 연합함으로 기존에 다루지 못했던 콘텐츠들도 커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또한 ‘효율성 높은 생산공정의 혁신’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BJ나 인기 유튜버와 같은 1인 영상물 창작자들을 묶어 편집부를 꾸리는 구조. 인기 유튜버는 이미 콘텐츠 기획력, 콘텐츠 생산능력, 흥행까지 모두 검증된 보증수표다.

최근 미디어 업계에서 주가 분석 기사를 작성한 로봇기자에 대한 소식이 화두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사람이 하게 되고 자동화가 가능한 영역은 로봇이 대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로봇이 쓴 기사를 읽어보니 사람이 쓴 것보다 정확해 놀랐다. 하지만 여전히 그 콘텐츠가 매력적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다. 뉴스의 대체재는 다른 뉴스가 아니다. 증권 정보를 바로 볼 수 있는 앱서비스가 많다. (앱서비스에서는 증시 그래프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회원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다.) 콘텐츠의 전달채널은 이미 모바일 디바이스로 인해 직접적인 연결이 이뤄졌으므로 필요가 없어졌다. 해석 또한 자동화가 가능해졌으니 굳이 인간이 그사이에 들어가서 불필요한 coding – 발행 – 구독 – decoding의 복잡한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다.

대체 가능한 콘텐츠 생산자는 대체된다면,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 생산자는 어떤 모습인가. 나는 얼마 전 우연히 자동차 전문온라인미디어 모토그래프의 유튜브 채널에서, 김한용 기자의 25분짜리 자동차 리뷰를 한 편을 보게 되었다가 살 능력도 없는 차 리뷰 영상을 몇 십 편 이어보다 새벽 4시까지 잠을 못 잔 경험이 있다. 어찌 모든 표현이 그렇게도 맛깔 나는지, 여간 자동차 덕후가 아니고선 만들 수 없는 콘텐츠라는 생각을 했다. 2년마다 부서를 옮겨 다녀야 하는 기자에게선 저런 콘텐츠가 나올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결국 기자도 생산라인에 선 생산자로 본다면 공장에서 인형 눈알을 붙이는 작업과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로봇이 대체 가능할 수 없는 기자의 자질을 구별해내야 한다. 전문 분야에 덕후인 기자는 로봇은 물론 어떤 기자와도 대체 불가능하다. 전문매체, 버티컬 미디어에서 요구하는 기자는 기자로서의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을 갖추었냐 보다는 한 분야에 깊이 있게 몰입했는지, 그 콘텐츠의 값어치를 스스로 이해하는지, 생산의 과정 자체에서 직무 만족을 느끼는지 등이 우선 요구된다.

언론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전달자로 공통적인 요건을 갖춘 사람을 찾았다.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정확하게 수집한 뒤, 그 내용을 흥미롭게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은 전적으로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생산이 목적인 제조기업이라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겠지만, 언론사가 생산성 향상이라는 정량적인 지표에 매몰되면 어뷰징회사가 되고 만다. 시상식에서 여배우의 치마가 펄럭였고 7미터짜리 갈치가 잡혔다는 소식을 누가 그냥 지나칠 수 있나. 그런 콘텐츠도 조회수 1, 좋아요 1, 우리의 생계에 연관되는 정치적 사안에 관련된 심층 분석 기사도 조회수 1, 좋아요 1로 동점 카운트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 기준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자정신이 투철하거나 체류 시간이 길다고 해서 수익이 늘어나질 않는다. 정량적인 지표가 공정하지 않다면 정성적인 지표는 통용될 수 있을까? 미디어의 평판, 신뢰, 독자와의 끈적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정성적인 지표는 참으로 달달하게 들리는 표현이지만, 자율경제 시장논리가 이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면접을 보러 왔던 한 친구는 이름 꽤 알려진 언론사에서 두 달의 인턴 기간을 격주로 출근했다고 말했다. 왜 격주로 나갔냐 했더니 인턴은 4명인데 책상은 2개밖에 없어 격주로 돌아가며 자택근무를 했다고 고백했다. 인턴 책상값도 아껴가며 하루에 3개씩 방송리뷰기사를 꼬박꼬박 받아낸 언론사가 콘텐츠의 무지막지한 양산에 전력을 다하는 데에는 온라인 광고시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언론사가 생산성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온라인 광고를 주요 수익원으로 삼은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CPC 또는 CPM방식의 광고비 책정은 실시간 경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광고비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균형점을 찾아간다. 이걸 전체적으로 계산해보자면; (모든 클라이언트의 광고 집행비)를 (생산된 모든 콘텐츠의 수)로 나눈다. 이 값이 콘텐츠 하나당 가져갈 수 있는 광고비이다. 비용 대비 생산량을 경쟁사보다 배로 달성하게 되면 당장 이익은 배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콘텐츠 하나당 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시장논리는 미디어사에 양적생산을 요구하고, 양적생산은 광고비 하락을 초래한다. 광고비가 하락하니 수익을 높이기 위해 다시 양적 생산을 늘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생산되는 물품은 넘쳐나는 데, 소비할 사람이 늘어나진 않으니 공급 과잉의 문제를 겪는 것이다. 지금의 미디어 시장은 콘텐츠 공급 과잉 시대로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미디어 시장에도 머지않아 고통스러운 디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인가.

기득권이 아닌 나는 걱정보단 기대가 앞선다. 디플레이션 이후에 새롭게 열릴 시대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