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이 담긴 글의 첫 시작은 인용을 피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영향을 피한다는 것. 내 인생에서는 절대 불가능하겠지. 이 글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글이다. 마음이 허하기 보단 인생이 무의미하여 조금의 목적이라도 생길까 쓰는 그런 글. 좋은 글은 간결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담는다. 좋은 글에 평생 달하지 못하겠지만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래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채로 아무렇게나 떠도는 것을 볼 수 없으니. 무엇을 부여할까 생각해본다. 가벼운 이야기가 좋겠다. 심오한 것은 사실 알고 보면 가장 실 없고, 별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말에 대한 이야기를 쓰자. 말이란 인류 역사상 가장 심오한 것 중 하나니까, 적절하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말하는 법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말 많은 사람들은 거의 부정적으로 묘사되지만 어찌보면 가장 동정심이 드는 사람들 아닌가. 다양한 유형이 있을 수 있지. 첫째, 상황이나 상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 둘째, 존재를 부각하거나 드러내야 하는 사람. 셋째, 지지와 칭찬, 애정 따위의 것들을 갈구하는 사람.

나는 마지막 유형의 인간을 가장 경멸하면서도, 내 존재가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증오가 향하는 것 역시 내 자신의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 그 치부가 그 사람의 모습으로 드러나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냐고 물으면 답은 정해져 있다. 양육. 양육의 문제. 뻔하고 무책임한 이유지만 팔십의 인생이 십여년의 유아기로 결정된다는 데에는 살아갈수록 더 공감하게 된다. 미성숙한 단계, 다 자라지 못한 그 자리에 머물러서 끊임없이 지지와 애정을 바라는 존재.

상대의 눈을 딱 마주하고 팡하며 쏠 수 있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 좋은걸 좋다, 필요한 것을 달라, 나는 이렇게 잘났다, 네가 싫다. 한 마디, 열 자 내외로 정리할 수 있는 게 마음이다. 좋으면서 싫다도 마찬가지. 복잡한 감정이라는게 대체 무엇인가, 다차원적인 인간이라는 게 존재하느냔 말이다. 말 많은 자들은 타인의 미움을 두려워하여 직격탄을 팡 날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무 의미 없는 이 글이 길어지는 이유도 그러하다. 매해 신년에 세우는 한 해 목표는 몇 년째 ‘관용(寬容)’이다. 네가 하는 이야기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봉하고 서고 싶지만 사실은 네가 나다. 너와 너의 말을 관용한다는 것은 나와 나의 말을 관용한다는 것이다. 관용의 이유는 단순하다. 너를 밀어냄으로써 나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의 관용은 내가 너와 같은 미성숙의 단계에서 벗어나야 가능할 것임을 알고 있다.

 

— 덧붙임 —

이렇게 재밌는 글을 써놓고,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어 지워 버리겠단다. 그래서 내가 대신 올린다.

저는 2009년 8월 ~ 2010년 3월, 약 8개월 동안 호주의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첫 번째 식당은 브리즈번의 시내에 있는 이태리/그리스 식당이었고, 두 번째 식당은 멜번의 하드웨어 레인에 있던 POP Restaurant이었습니다. 그 곳엔 20개 정도의 노천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는데 제가 일했던 곳은 프렌치풍의 파인다이닝을 하고자 했던 헤드셰프와 수익을 위해 저가형 비스트로를 하자는 보스가 매일 같이 메뉴 변경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던 곳이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날, 주방에 피자오븐이 들어왔습니다. 프렌치 요리를 하고자 했던 셰프는 그 사건으로 식당을 옮기겠다 선언했고 저를 포함한 모든 팀원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귀국행 비행기표를 끊고 다른 셰프님들보다 일주일 앞서 근무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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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3일 전 저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일하느라 고생이 많았으니 한 번은 내 손님이 되어주지 않겠냐는 수셰프 브라이언의 초대에 홀로 노천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음식이 식기 전에 빨리 가져가라고 욕을 했던 매니저가 무릎에 냅킨을 깔아주고 포크와 나이프를 세팅하며 저를 반겼습니다. 주방에서 봤을 땐 겉멋만 든 답답한 녀석이었는데 그 날 따라 꽤 젠틀한 녀석이었습니다. 이미 메뉴는 준비되어 있으니 고를 필요가 없다며 화이트 와인을 먼저 따라주었습니다. 달콤시큼한 샤도니였습니다. 브레이크 타임에 매니저를 꼬셔 와인을 빼먹은 적도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그 때 배운대로 입안을 화이트와인으로 고루 헹궜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앙트레가 나왔습니다. 당근퓨레를 곁들인 송어구이, 브로콜리니와 관자구이, 허브 라임 드레싱을 곁들인 굴이 한 접시에 보기 좋게 담겨 나왔습니다. 그 앙트레는 분명 메뉴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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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날씨에 혼자 노천 레스토랑에 앉아 있으려니 머쓱해졌습니다. 길거리에서 항상 공연을 하던 밴드의 노래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노래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섞여 들려왔습니다. 왠지 다른 손님들보다 대접받았다는 생각에 우쭐해졌습니다. 앙트레를 마치고 남은 화이트와인으로 입을 헹구니 벌써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멀리 주방에서는 대머리 브라이언 셰프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문을 읽고 불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필렛 스테이크가 나왔습니다. 바삭한 감자 로스티 위에 미디움레어 아이필렛이 차분히 올려져 있고 사골육수로 우려내 버섯의 풍미를 더한 소스가 그 위에 끼얹혀 있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제일 비싼 메뉴였습니다. 매니저가 잔을 바꿔 피놋누와 레드와인이 잘 어울릴 거라며 한 잔 따라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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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맛에 대해선 더 묘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테이블에서 제가 느꼈던 생각과 감정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득 스테이크를 썰어 먹으면서 영문법도 틀린 이력서를 들고 여길 무턱대고 찾아왔던 그 날이 기억났습니다. 첫 2주 동안 접시만 닦다가 타파스와 디저트를 맡아 달라고 했을 때가 기억났습니다. 근무 시간이 아닌데도 일찍 나와 남의 일을 훔쳐 했지요. 저를 휘어잡으려고 대머리 브라이언 셰프가 온갖 트집을 잡으며 욕을 했던 것도 기억났습니다. 몇 일 전 굿바이 파티에서는 서로 껴안으며 작별인사를 했었지요. 음식을 먹을 줄도 모르면서 분위기 때문에 프렌치 레스토랑에 온 손님들은 미개하다며 욕을 하던 헤드 셰프도 생각났습니다. 저는 지금 먹는 이 음식을 누가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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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했는데 매니저녀석이 12불을 내 놓으라 합니다. 100불이 넘는 음식을 먹었는데 뭔 소리냐 했더니 “You deserve it” 한마디만 하며 손을 내밀 뿐이었습니다.

분명 그 날 제가 먹었던 음식들은 식당에 쪼그려 앉아 한입씩은 먹어본 것들이었습니다. 근데 왜 맛이 달랐을까요. 맛이란 것은 혀로 느끼는 물리적, 화학적 감각이 아니라는 것을 난생 처음으로 깨닫게 된 날이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저는 파인다이닝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날 브라이언의 손님이 되어보지 못했다면 저는 셰프뉴스를 창업해야겠단 생각조차 못했을 겁니다. 다시 그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그 경험을 다시 하기 위해서 고급 식당을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먹는 음식을 누가 만들고, 얼마나 공들여 만드는 지를 알면 됩니다.

요리하는 당신을 아는 것, 그것으로 대한민국 식문화 발전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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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한테 뜯기다보니 어느덧 새벽 세 시다

내 꿀같은 선잠과 교환해
모기 한마리를 짓이겼다

그놈의 시체를 창밖으로 던지려다
방충망에 들러 붙은 모기 10마리를 발견하곤
오늘 밤 모기로부터 벗어나긴 글렀구나

가을이 왔다며 모기야 내년에 또 보자꾸나
접어 넣었던 원터치 모기장을 다시 꺼낸다

내 방충망에 들러 붙은 녀석을 잡을 재간은 없어도
모기장을 통발삼아, 이 한 몸 미끼삼아
집안의 모기를 끌어 모으는 중이다

들어올 땐 자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온 집안 모기를 전기 파리채로 살짝 기절시켜
날개를 뜯어내고 에프킬라에 익사시키겠다
모기향 위에 올려놓고 줄줄이 화형시키겠다
테이프로 땅에 붙여놓고 망치로 내려 쳐야겠다

아무리 잔인한 복수를 생각한들
아직 한마리도 잡히진 않았고
모기향에 눈코가 맵싹하고
물린 곳은 간지럽고

내 꿀같은 잠 다 날아갔다

지금까지 beSUCCESS가 봐왔던 수많은 스타트업 비디오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상 여섯개를 뽑아서 소개한다.

 

WISTIA

동영상의 코덱문제를 모두 없애겠다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영상을 보기 위해 플러그인을 깔아야 하거나 곰플레이어에서도 맞는 코덱이 없어서 영상을 재생하지 못한다는 경고는 누구나 한 번쯤은 받아봤을 것이다.

사용자가 동영상을 WISTIA에 올릴 때에 자동적으로 Flash와 HTML5를 포함한 다양한 버전과 화질로 영상을 자동컨버팅해서 저장하는데, 재생할 사람들에 맞춰서 적합한 동영상을 틀어주는 방식이다.

기술적인 내용을 들어서는 이해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밝은 분위기의 회사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노력하고 있고, 영상에도 자신들이 키우고 있는 개를 등장시켜 위트 넘치게 풀어나간다. 필자도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본 영상을 수십번 봤지만, 뭐 하는 회사인지는 5분 전에 이해했다.

 

 Musixmitch

네이버의 음악검색과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고 노래를 들을 때 가사도 제공한다는 아주 단순한 서비스다. 서비스를 소개할 때 짧고 명료하게 소개할 수 있겠지만 너무 제품이 단순해서 그 외에 할 말이 없다. 홍보영상은 사무실 내에서 만화 같은 상황들을 깨알같이 연출했다. 경쾌하고 훈훈한 결말에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AeroPress

별다른 각본도 없고 제품 사용법을 천천히 보여줄 뿐이다. 제품을 부각시키기 위해 과도한 클로즈업을 사용하고, 모든 소리를 죽인 뒤 커피를 만들 때 나는 작은 소음들을 크게 키웠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보여주기는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Couple 

1:1폐쇄형 메신저 시장에서 VCNC를 따라올 서비스는 없지만, 비트윈의 홍보영상보다는 Couple의 것이 조금 더 볼만하다. 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DEMO도 보여주었고, 실제 연인들이 이 앱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해냈다. 전문 연출가가 만든 화면들의 퀄리티가 썩 괜찮지만 “본격 연애하고 싶어지는 영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직접 만나서 연애하지 않고 손바닥만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 연애하는 게 찌질해보여서일까?…)

 

 Warby Parker

오늘 선별된 6개의 비디오 중에서 유일하게 내레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서비스가 물리적인 것이 아닌, 쇼핑의 ‘과정’을 개선한 것이기 때문에 영상이라는 시각전달매체로 서비스를 소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얼굴사진에 안경이미지를 얹혀볼 수 있는 가상현실 서비스를 재밌는 상황들에 비유해 내레이션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영상의 가장 앞부분과 마지막 부분의 상황, 화면구도, 배우들의 움직임 등이 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두 장면을 비교하기 위함이다. 이런 영상의 요소들을 고정시킨 뒤, 더 매력적인 여성모델을 보여주고 웃음까지 띄며, 작가의 의상이 더 패셔너블해지는 등의 상황들이 극명하게 대립된다. 이는 서비스를 사용하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후가 낫다는 전형적인 광고의 논리전개방식이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센스있게 풀어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Dollar Save Club

남성들이 정기적으로 소모하는 면도날을 매달 싼 값에 배송시키는 섭스크립션 서비스이다. 워낙 이슈도 많이 되었고 유튜브 조회수도 3개월 만에 5백만, 현재는 1천만에 달하는 자타공인 가장 유명한 스타트업 비디오. CEO이면서 영상의 호스트로 등장한 Michael Dubin은 말한다. “사람들은 음악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코메디는 음악의 한 종류다.” 실제로 Dubin은 영상을 제작할 때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라는 것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Our Blades are F**cking Great”를 과장되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CEO의 태도, 유치한 개그와 어설픈 척 깨알 같은 연출들은 절대 광고대행사에게 영상 제작을 맡겨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닐 것이다.

 

 

beSUCCESS에 발행 : https://besuccess.com/product/top-6-best-startup-promotion-videos-chosen-by-besuccess/

50, 촥, 촥, 51, 촥, 촥, 52, 촥, 촥…

문득 고등학교 때 줄넘기를 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점심시간에 줄넘기를 하곤 했다. 02년도 강서고등학교 2학년 4반 교실 뒤편에서 나는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던 2단 뛰기 50개를 성공한 뒤 쓰러져서 한동안 숨을 헐떡였다. 친구들은 쓰러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대단하다는 존경심을 표하며 내가 숨을 되찾을 수 있도록 부축해주었다. 내가 50개 신기록을 세우면서 줄넘기는 반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친구들도 내 기록에 도전했지만 50개는 커녕 30개를 성공하는 친구도 없었다. 그 당시 옆 반의 한 친구가 유일한 경쟁상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친구는 2단 뛰기로는 내 기록을 깨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3단 뛰기로 11개를 성공해서 이목을 끌었다. 그것은 2단 뛰기 50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나는 무시했고 내가 줄넘기의 최강자라고 우겼다. 그렇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상에서 2단 뛰기를 가장 잘하는 사나이가 되었다.

59, 촥, 촥, 60, 촥, 촥…

나는 이미 내가 세웠던 2단 뛰기의 기록 50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숨은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2단 뛰기의 최고신기록 보유자가 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다물지 못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내가 줄넘기 할 때마다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던 서경진이라는 녀석이 갑자기 줄을 잡더니 필요 이상의 점프를 하며 2단 뛰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점프를 높게 하면 에너지 소비가 커서 20개도 채 못할 것이라고 떵떵거렸다. 그런 나를 무시하듯 20개를 거뜬히 넘기고 30개가 되어서야 콧소리를 조금 내면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서경진은 절대 내 기록을 깨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붉어진 얼굴은 더 이상 붉어지지 않았다. 호흡도 규칙적으로 리듬감을 찾아갔다. 불안정한 점프였지만 사방팔방을 다 활보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2단 뛰기를 성공해내고 있었다. 좀체 멈추지 않는 줄넘기 소리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경진이에게로 모였다.

71, 촥, 촥, 72, 촥, 촥…

경진이는 그렇게 첫 도전에서 74개의 기록을 세웠다. 나는 그 당시 너무 충격이 컸던지 코웃음이 나왔다. 줄넘기에선 나를 능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을 거라 자부했는데 너무나 쉽게 깨지고 말았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서경진은 줄넘기의 신이다. 인간의 한계는 50개이고 신의 한계는 75개쯤 되나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 하면서 나는 인간으로서 2단 뛰기의 최고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74, 촥, 촥, 75, 촥, 촥…

그 이후로 내가 줄넘기 할 때 시선을 주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줄넘기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렇게 경진이의 기록을 넘어섰다. 줄넘기의 신을 능가했다. 신의 한계인 75개도 넘었다.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나는 장담할 수 없었다.

83, 촥, 촥, 84, 촥, 촥…

나는 이미 내 몸의 한계를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산소 공급이 많이 안되는지 팔 끝이 저려오기 시작했고, 눈 앞도 차츰 캄캄해져 갔다. 이제껏 오래달리기를 할 때에도 줄넘기를 할 때에도 이렇게 힘들어본 적은 없었다. 내 몸의 모든 부분들이 고통을 부르지었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턱을 처들려 졌다. 거울 위에 적혀있는 ‘투지’와 ‘집념’이 눈에 들어왔다.

89, 촥, 촥, 90, 촥, 촥…

10개만 더 하면 100개다. 벌써부터 나의 뛰는 폼은 서경진이 뛰던 폼보다 훨씬 불안정해져 있었다.

92, 촥, 촥, 93, 촥, 촥…

단 몇 개만 더하면 100개를 성공할 수 있고 세자리 숫자라는 값진 의미의 신기록이 된다. 나는 숨을 참았다. 눈도 감았다. 입도 다물었다.

97, 촥, 촥, 98, 촥, 촥, 99, 촥, 촥, 100!

줄넘기가 나의 발아래를 빠져나가자마자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100개를 성공했다! 나는 인간의 한계도 넘었고 신의 한계도 넘은 2단 뛰기에 있어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강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고등학생 때 고작 50개를 해놓고 저질렀던 서툰 오만을 나는 반성했다. 그럼과 동시에 더 이상의 최고기록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또 확신했다.
한참을 숨을 고른 뒤 여전히 쓰러진 채로 외쳤다. 누군가와 이 희열을 공유하고 싶었다.

“관장님!! 헉, 헉, 100개 했습니다! 100개! 헉헉.”

관장님이 대답했다.

“뭐.”

관장님은 내가 그렇게 열심히 2단 뛰기 신기록을 세우는 동안 신경을 쓰지도 않으셨나보다.

“헉헉헉. 2단 뛰기 백개 했습니다! 백개!”

관장님이 대답했다.

“그래, 열심히 해라.”

어리둥절해 했다. 관장님은 2단 뛰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으신 것일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왜 모르시는 걸까. 관장님은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오시더니 다시 말씀했다.

“열심 해라, 열심. 막 300개도 하고 그래야 된다. 초딩들 300개 막 쉽게 한다. 열심 해라.”

내가 몇권의 속독책을 읽은 결과 모든 속독법 책에서 말하는 바는 같은 내용이었다. 빨리 읽으면 좋은 이유를, 그리고 빨리 읽을 수 있는 요령들을 많이 소개해놓았다.

나는 그 요령들을 제대로 연습하지 않아 완전히 속독법을 습득할수는 없었으나 문자를 빨리 읽는 새로운 개념과 방법들을 아는 것만으로 독서속도를 세배나 증가시킬 수가 있었다. 읽는 속도는 세배 빨라졌지만 독서의 깊이또한 두배나 깊어졌다. 속독법을 익힘으로 책과 친해지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수가 있게 되었다.

우리는 가나다라를 외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글을 읽는 속도가 향상되어 왔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한번 분석해보자.

우리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들어갈 즈음부터 글을 배우게 된다.

처음에 ㄱㄴㄷㄹ을 외우는 것으로 시작한 어린아이는 가나다라처럼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 소리를 낼 수 있다는걸 배우며, 그 형태소들이 모여 단어를 만든다는 것도 이해하게 된다. 단어를 이해한 학생은 문장 문단의 개념까지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나비라는 단어를 말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보도록 하자.

맨 처음 ‘나비’라는 단어를 해체하여 ㄴ+ㅏ + ㅂ+ㅣ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분석한 뒤 ‘ㄴ’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ㅏ’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를 떠올린다음 여러번 시도 끝에 “느으아아뷔이이”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다.

글에 조금 더 익숙해진 아이라면 ‘나비’라는 단어는 나+비로 이루어져 있다고 인식한다. ‘나’라는 형태소가 ㄴ+ㅏ 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과정은 생략하게 된다.

학교를 계속 다녀 ‘나비’라는 단어를 여러번 마주쳤을 경우 그 학생은 ‘나비’라는 단어를 보고 습관처럼 ‘나비’라고 말할수가 있다. 또 학생이 ‘나비’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경우 머릿속에는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의 이미지가 떠올라 문자로이루어진 단어와 음성발음과 머릿속에 떠오른 나비가 같다는걸 이해할 수 있다.

단어를 많이 알면서 또 글을 많이 접한 사람은 단어 뒤에 일정한 형태의 조사가 온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있다. ‘나비를’, ‘나비가’, ‘나비도’ 와 같이 단어와 조사의 결합형태까지 한번에 인식할수 있게 된다.

우리 대부분은 단어를 인식하는 정도나 단어 뒤에 붙는 조사나 접미사들을 한꺼번에 인식할 수 있는 정도에 도달하면 글공부를 그치게 된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인간이 한 번에 인식할 수 있는 문자양의 최대단위가 단어라고 단정지은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석한 우리들은 그 이상의 독해능력을 키우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

문장의 형식을 여러가지로 나눌 수가 있지만 대부분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위대한 한글의 큰 틀은 S+O+V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단어+조사,접미사’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는 단계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것이 문장의 형태를 분석하고 그 안에 들어가는 성분을 유추해낼 수 있는 정도이다. 이전 단계에서는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례대로 눈으로 읽어나가지만, 이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면 문장 전체구조를 먼저 파악한 후 그 안에 어떤 단어들이 있는지 인식하고 머릿속에서 문장의 의미를 한 번에 이해하게 된다.

이 단계까지 올라가는 것은 무척이나 오랜 시간과 많은 연습이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문장의 패턴을 많이 분석하여 알고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한데 문장을 주어와 목적어, 수식어로 나누어 인식하던지 또는 적당한부분을 너댓마디 정도로 끊어서 인식하는 연습을 하는게 우선이다.

창의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 수준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속독이 있다.

문장을 한번에 인식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 다음과제는 문단을 한번에 인식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지에 오른 속독법은 이것 말고도 꽤 많다.

  • 좌우로 눈알을 굴리는 안구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 두줄씩 또는 서너줄씩 한번에 읽는 것
  • 한페이지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대각선으로 읽는 것
  • 정 중앙에 세로로 한번 그어내려 읽는 것
  • 두괄식과 미괄식 형식의 글이 많은것을 이용하여 앞 뒷부분만 읽는 골라읽기
  • 페이지를 아예 사진으로 찍어버리는 포토리딩

이 정도의 속독법을 익히게 되면 200페이지 책 한권을 30분안에 독파할 수 있고, 포토리딩을 마스터 한 사람은 5분만에 한권을 다 읽는다. 1분에 10만개의 단어를 읽어버리는 수준이다. 제대로 단련된 속독법은 읽는 속도는 물론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 또한 천천히 읽는것보다 훨씬 이해도가 높다.

나는 창의력이 무척이나 뛰어난 사람이라서 책에서 소개된 위의 속독법 보다도 효과적인 방법을 창안해내어 더 높은 경지의 책읽기 방법을 터득하였는데, 그것은 목차만 보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는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3일 전 나는 책 제목만 보고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도서관에 가서 뱀처럼 책장사이를 기어다니며 3일만에 도서관에 있는 책의 1/3을 다 봐버렸다.

조금만 더 갈고 닦은 후에 전국의 각 도서관들만 찾아다니며 도서관 입구에 앉아 도서관 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독서법을 깨우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