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디어 운영을 시작한 지난 1년 8개월 동안 몇 번의 죄책감을 느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면 기자가 저널리즘 정신을 가지고, 소재에 집착하고, 연출과 편집에도 욕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일해 많이 만들어내라는 생산목표를 설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생산성을 강요하고 있었다. 심지어 미디어 운영의 본질은 언론이 아닌 제조업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언론의 측면에서 최소한의 정의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 기대했고,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산업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행동의 방향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어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고전경제학에서는 성장을 생산의 문제로 보았다. 적은 비용을 들여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달성과제였다. 그래서 경제성장에 필요한 요소로 노동, 자본, 기술 이 세 가지를 꼽았다. 미디어 운영 또한 생산과정에서 비용이 들어가고 생산결과물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제조업과 다르지 않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미 수적으로 과도한 미디어사들의 무지막지한 생산성 경쟁시대, 오늘을 되돌아보자. 생산성 경쟁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 소싱-생산성

15년 한 해 동안 신규 등록된 온라인 미디어만 6,000개에 달한다. 그렇다고 언론의 목소리가 다양해졌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베끼고 베낀다.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였으면 모를까, 정보가 넘쳐나서 문제가 되는 정보과잉시대. 특종에 열을 올리고 새로운 소재를 잘 찾아내는 매체가 있다면 어뷰징 전문 미디어의 1차 타겟으로 선정된다. 먹성 좋은 대왕고래 턱 밑에 빨판상어가 여럿 붙어있는 모양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니, 곰이 재주부릴 의욕이 나질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며 너도나도 빨판상어나 되겠다는 것을 대부분의 온라인 언론사들이 전략이랍시고 내세운다. 콘텐츠가 낱낱이 쪼개져 전달되는 지금, 단독속보가 큰 흥행과 보상을 가져다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소싱, 소재를 찾아내는 일이다. 80년대에는 9시 뉴스가 조금 일찍 끝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오늘은 특별한 소식이 없어 방송을 이만 마칩니다.” 당시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마 언론사의 소싱능력이 제한적이었던 게 그 이유였을 것이다. 30년 전과 비교해보면 소싱할 수 있는 창구가 훨씬 많아졌다. 세계 주요 도시에 특파원이 파견되어 있고, 기관이나 기업의 홍보부서에서 내용을 정리해주는 담당자가 따로 있다. 블랙박스나 스마트폰 영상도 소재거리가 된다.

소싱이라는 작업을 위해 제보창구를 열어 두고, 편집기준에 딱 맞아 떨어지는 정보를 하루에 수백 건씩 제보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페이스북 페이지 ‘오늘뭐먹지?’와 같은 선순환 구조가 나오는 경우는 아주 희귀한 경우다. 소싱이라는 작업은 유사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관련 키워드를 몇 개 골라 네이버 뉴스 검색에 입력하고, 그 결과창의 RSS소스를 긁어 피들리에 등록해놓으면 매번 키워드를 새로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클릭 한 번만으로 사전에 입력한 키워드에 대해 실시간으로 언론에서 노출되는 기사들이 검색되어 보여진다. 지니뉴스 앱에도 맞춤뉴스라는 비슷한 기능이 있다. 영상 콘텐츠를 같은 방식으로 투어할 수 있는 앱 vodio가 있어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1차적으로 검증된 콘텐츠를 참고하는 것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영어를 할 줄 안다면 해외의 관련 매체 50여 개 정도를 모니터링 할 수 있다. 해외의 매체들도 나름의 편집기준, 소재 검토 기준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보 공해를 걸러내 줄 필터 역할을 해준다. 한국 F&B 산업 소식은 홍보팀이 작성한 신제품 나왔다거나 메뉴가 바뀐 소식, 자본이 관여되어 인위적으로 작성된 기사, 방송리뷰기사, 먹어보니 맛있더라는 감동도 재미도 근거도 없는 이야기 등이 대부분이라 해외 매체를 참고하는 것이 더욱 성과가 좋다. 이 작업도 일주일에 2회만 한다고 했을 때 총 4시간 정도면 훑어보기에 충분하다. 페이스북의 친구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뉴스피드에 어떤 소식들을 띄울지를 세팅하는 것도 검증된 뉴스를 소싱받을 수 있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다루는 콘텐츠의 경우 위의 작업과정을 통해 1,000개 정도의 기사 제목을 훑어보면, 20개 정도는 읽어볼 법하고, 그 중에서도 5개 정도만 소재거리가 될 법하니. 이 작업의 핵심은 효율성이 아니라 “편집기준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찾아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방식들로 정보에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 수는 있지만, 아무리 효율성이 좋아져도 이미 생성된 정보를 조회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NEWS를 만드는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선 평생 OLDS밖에 못 만들어낸다. 콘텐츠 생산자에게 달성목표를 양적인 수치로 설정한다면 시간에 쫓겨 효율성이 높은 일만 좇고자 하게 되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이 순간부터 보도자료를 들추고, 전화벨이 울리기만 기다리고, 온라인 뉴스를 큐레이팅하는 일만 하게 될 우려가 있다. 취재관행이 생긴 순간, 사실상 기자는 산 송장이 된 것과 다름없다. 적은 리소스를 들여 생산량을 높이는 것을 우선시해선 안 된다. 새로운 영역, 미개척 분야를 끊임없이 탐험하고 취재해내는 것이 본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소싱 작업을 빠르게 반복함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시스템에 갇혀 발이 묶여선 안 된다.

진정 보석 같은 소재, 편집기준에 꼭 들어맞는 소재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발굴’ 수준의 소싱을 하기 위해서는 기자가 곡괭이 들고 땅파러 나서는 수 밖에 없다. 좋은 소재를 찾아내는 데에 미치는 요소는 오직 기자의 적극성과 집요함 말고는 없다. 기자의 덕목으로 술을 잘 먹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는 데에도 다 발품을 잘 팔기 위한 데 있다. 수습 3개월 동안 경찰서 옆 쪽방에서 잠도 안 재우고 취재시키는 것도 발품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효과적으로 소재 소싱할 방법에 대해 물었지만, 그들도 특별히 다른 방도를 알지 못했다. 기사는 결국 발로 쓰는 것이기 때문일까. ‘발로 쓴다’는 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만 의미하진 않는다. 스스로 취재처를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전화를 돌리거나, 먼저 제보가 들어올 수 있도록 관계를 만드는 것 또한 모두 발품에 해당할 것이다. 기자 지망생 중 기자가 글 쓰는 직업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볼 땐 소싱 작업이 기자에게 주어진 일의 8할이다. 소싱만 제대로 된다면 제작이야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 제작-생산성

글은 참 종류도 많다. 크게 문학적인 글과 비문학적인 글로 구분하지만, 기사의 종류만 세어 보아도 스트레이트, 단신, 가십, 르포, 해설, 인터뷰, 사설, 칼럼, 독자투고 등으로 다양하다. 콘텐츠가 어떤 포맷을 갖추는지와 상관없이 일반적인 글쓰기 능력은 모든 콘텐츠 제작에 요구된다. 뉴미디어 시대에는 새로운 포맷의 콘텐츠가 많이 등장했다. 카드뉴스, 동영상 해설기사,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복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면서 기자에게 글쓰기 이외의 콘텐츠 생산을 주문한다. Snowfall 기사가 퓰리쳐상을 받자,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기획기사를 웹사이트 하나 개발하는 규모로 만들어내는 유행이 불었다. 이내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얻은 트래픽의 활용가치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카드뉴스도 요즘은 왠지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 Snowfall은 12명이 6개월 동안 겨우 기사 하나만 만들었을 뿐이다. 미디어사의 규모가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제작 효율성은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04년도에 영상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당시 방송현장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 개편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피디, 조연출, 작가, 촬영감독, 음향감독이 떼를 지어 나가 촬영하던 과정을 없애고 카메듀서(Cameraman + Producer)에게 어떻게든 혼자 말아오라고 주문했다. 예전만큼 높은 수준의 방송을 만들어 내긴 어려우니 질을 포기하고 저렴한 양을 선택한 것. 이때 자리 잡은 포맷이 VJ특공대다. 카메듀서 8명을 고용해 한 사람당 2주에 1편씩 만들어라 하면 1주에 4개의 꼭지를 제작할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그럴싸한 소개액션을 보여준 뒤 13분짜리 꼭지를 4개 틀어주면 1시간 방송을 채울 수 있다. 88만 원짜리 조연출 경력을 2년 정도 거치면 120만 원짜리 꼭지피디로 입봉하는 코스가 보통이 되었다. 장비는 조악하고, 지원도 열악하고, 경험과 경력 또한 부족하다. 다룰 수 있는 소재는 제한적이고, 콘텐츠 포맷은 획일화되어 개성을 잃는다. 3포세대 제작자가 이 구조 안에서 저널리즘을 추구할 리 만무하다.

종편에서 패널토의 형식의 보도가 유행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순발력 좋은 사회자가 전문성 갖춘 패널을 초청해, 한 시간 노닥거리면 몰입도 높은 방송이 완성된다.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키워드인 MCN, 유튜버와 1인 콘텐츠 제작자들이 연합함으로 기존에 다루지 못했던 콘텐츠들도 커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또한 ‘효율성 높은 생산공정의 혁신’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BJ나 인기 유튜버와 같은 1인 영상물 창작자들을 묶어 편집부를 꾸리는 구조. 인기 유튜버는 이미 콘텐츠 기획력, 콘텐츠 생산능력, 흥행까지 모두 검증된 보증수표다.

최근 미디어 업계에서 주가 분석 기사를 작성한 로봇기자에 대한 소식이 화두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사람이 하게 되고 자동화가 가능한 영역은 로봇이 대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로봇이 쓴 기사를 읽어보니 사람이 쓴 것보다 정확해 놀랐다. 하지만 여전히 그 콘텐츠가 매력적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다. 뉴스의 대체재는 다른 뉴스가 아니다. 증권 정보를 바로 볼 수 있는 앱서비스가 많다. (앱서비스에서는 증시 그래프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회원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다.) 콘텐츠의 전달채널은 이미 모바일 디바이스로 인해 직접적인 연결이 이뤄졌으므로 필요가 없어졌다. 해석 또한 자동화가 가능해졌으니 굳이 인간이 그사이에 들어가서 불필요한 coding – 발행 – 구독 – decoding의 복잡한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다.

대체 가능한 콘텐츠 생산자는 대체된다면,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 생산자는 어떤 모습인가. 나는 얼마 전 우연히 자동차 전문온라인미디어 모토그래프의 유튜브 채널에서, 김한용 기자의 25분짜리 자동차 리뷰를 한 편을 보게 되었다가 살 능력도 없는 차 리뷰 영상을 몇 십 편 이어보다 새벽 4시까지 잠을 못 잔 경험이 있다. 어찌 모든 표현이 그렇게도 맛깔 나는지, 여간 자동차 덕후가 아니고선 만들 수 없는 콘텐츠라는 생각을 했다. 2년마다 부서를 옮겨 다녀야 하는 기자에게선 저런 콘텐츠가 나올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결국 기자도 생산라인에 선 생산자로 본다면 공장에서 인형 눈알을 붙이는 작업과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로봇이 대체 가능할 수 없는 기자의 자질을 구별해내야 한다. 전문 분야에 덕후인 기자는 로봇은 물론 어떤 기자와도 대체 불가능하다. 전문매체, 버티컬 미디어에서 요구하는 기자는 기자로서의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을 갖추었냐 보다는 한 분야에 깊이 있게 몰입했는지, 그 콘텐츠의 값어치를 스스로 이해하는지, 생산의 과정 자체에서 직무 만족을 느끼는지 등이 우선 요구된다.

언론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전달자로 공통적인 요건을 갖춘 사람을 찾았다.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정확하게 수집한 뒤, 그 내용을 흥미롭게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은 전적으로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생산이 목적인 제조기업이라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겠지만, 언론사가 생산성 향상이라는 정량적인 지표에 매몰되면 어뷰징회사가 되고 만다. 시상식에서 여배우의 치마가 펄럭였고 7미터짜리 갈치가 잡혔다는 소식을 누가 그냥 지나칠 수 있나. 그런 콘텐츠도 조회수 1, 좋아요 1, 우리의 생계에 연관되는 정치적 사안에 관련된 심층 분석 기사도 조회수 1, 좋아요 1로 동점 카운트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 기준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자정신이 투철하거나 체류 시간이 길다고 해서 수익이 늘어나질 않는다. 정량적인 지표가 공정하지 않다면 정성적인 지표는 통용될 수 있을까? 미디어의 평판, 신뢰, 독자와의 끈적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정성적인 지표는 참으로 달달하게 들리는 표현이지만, 자율경제 시장논리가 이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면접을 보러 왔던 한 친구는 이름 꽤 알려진 언론사에서 두 달의 인턴 기간을 격주로 출근했다고 말했다. 왜 격주로 나갔냐 했더니 인턴은 4명인데 책상은 2개밖에 없어 격주로 돌아가며 자택근무를 했다고 고백했다. 인턴 책상값도 아껴가며 하루에 3개씩 방송리뷰기사를 꼬박꼬박 받아낸 언론사가 콘텐츠의 무지막지한 양산에 전력을 다하는 데에는 온라인 광고시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언론사가 생산성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온라인 광고를 주요 수익원으로 삼은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CPC 또는 CPM방식의 광고비 책정은 실시간 경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광고비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균형점을 찾아간다. 이걸 전체적으로 계산해보자면; (모든 클라이언트의 광고 집행비)를 (생산된 모든 콘텐츠의 수)로 나눈다. 이 값이 콘텐츠 하나당 가져갈 수 있는 광고비이다. 비용 대비 생산량을 경쟁사보다 배로 달성하게 되면 당장 이익은 배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콘텐츠 하나당 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시장논리는 미디어사에 양적생산을 요구하고, 양적생산은 광고비 하락을 초래한다. 광고비가 하락하니 수익을 높이기 위해 다시 양적 생산을 늘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생산되는 물품은 넘쳐나는 데, 소비할 사람이 늘어나진 않으니 공급 과잉의 문제를 겪는 것이다. 지금의 미디어 시장은 콘텐츠 공급 과잉 시대로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미디어 시장에도 머지않아 고통스러운 디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인가.

기득권이 아닌 나는 걱정보단 기대가 앞선다. 디플레이션 이후에 새롭게 열릴 시대가 궁금할 뿐이다.

뭔가 하고 싶은데 계획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14년 6월 한 달 동안은 집구석에 박혀서 음식 콘텐츠만 소비했다. 거의 모든 F&B관련 앱을 사용해보고, 거의 모든 F&B 관련 미디어를 돌아다녔다. 밀린 마셰코 틀어놓고 잠들었다가 아침엔 고든램지 욕하는 소리에 일어났다. 조사만 하느라 한 달이 금세 지나갔다.

기존에 존재하는 서비스와 사업모델들, 할 수 있을 법한 아이디어를 한 줄로 정리하니 총 15개가 나왔다. 그래도 뭘 해야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자, 다섯 가지 기준에 따라 각 아이템들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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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로 인해 세상은 고통받고 있는가 / 이 문제를 풀면 세상은 행복해지는가? / 이 문제를 풀면서 돈을 벌 수 있는가 / 나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는가 /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가

총점이 높은 순으로 소트아웃하니 할 법한 일이 몇 개 보였다. 아직 조사가 더 필요했다. 하지만 더 이상 조사할 여유가 없었다. 조사는 이미 2011년도부터 하고 있었으니, 이러다 조사만 하다 생을 마감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엔 F&B 온라인 미디어가 텅 비어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미디어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거라 판단했다. 14년 7월 10일 사업자를 냈다. 일주일 밤새가며 워드프레스로 미디어 구축했다. 매체에 적합한 글을 쓴 사람들을 찾아가 좋은 취지에 공감해달라고 부탁하며 글을 받아 냈다. 핵심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 인맥을 소개받았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다”라며 셰프에 대한 이야기도 다뤘고, 시간이 지나선 셰프가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을 더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미디어 영향력(트래픽, 평판, 활용도)은 예상보다 높은 수치를 달성할 수 있었다. 사람을 꾸준히 만났다. 일주일에 최소한 두 명의 새로운 사람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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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정표의 일부분

15년도 한 해 동안 1일 1콘텐츠 발행을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금은 한 달에 PV가 60~90만가량 나온다. 페이스북 팬 수는 5.9만 명을 넘어가고 있다. 뉴스레터 구독자는 6천 명이다. 취미, 특기, 직업이 모두 요리인 사람들을 독자로 두고 있으니 인게이지먼트와 관련된 수치들이 아주 높게 나온다. 미디어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들 한다. 콘텐츠 소비자가 직접 돈을 주지 않는다. 제 3자의 홍보나 광고를 도와주는 대행일도 외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적게나마 매출은 냈다. 식품회사 홍보부서, 마케팅부서를 찾아가 대행 일을 땄다. 2015년도 한 해 동안 3명이 겨우 라면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냈다. (현재 팀은 2명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궁극적으로 갖춰야 할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 산업은 테크 황무지이며, 산업 내 연결이 부족하구나.” 실제로 셰프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채용서비스는 앞서 평가했던 15개의 사업아이템 중에서 뒤에서 세 번째에 있던 것이었다. 이젠 주 수익원으로 삼을 것이다. 조사만 계속하고 있었다면 기회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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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무실을 얻은 후 벽에 회사의 비전을 붙였다. “산업역군 셰프뉴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미식 콘텐츠기업”를 덮어 붙이고, 또 “요리사에게 가장 신뢰받는 온라인 미디어”를 덮어 붙였다. 지금은 “Connect Culinary People”이 붙어 있다. 사무실을 옮겨서도 비전변경기록은 남기고 싶어 덮어 붙인 느낌을 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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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도 봄부터 푸드테크 열풍이 불었다. 디캠프에서 매달 주제를 바꿔 개최하는 특정 산업 네트워킹 행사인 디파티에서 푸드테크를 주제로 행사를 연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공부도 할 겸 한국의 음식산업 역사, 해외의 푸드테크 시장현황을 조사해서 소개하는 발표를 했다. 이후에 언론에서 뜨겁게 들고 일어났다. 대부분의 푸드테크 서비스들은 소비자단에 몰려있다. B2C가 크면 B2B도 크기 마련이다. 결국 F&B시장의 모든 상호작용은 생산자의 상품이 최종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사람 몰리는 곳에 가지 말라더라. 나는 아무도 가지 않는 B2B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더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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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5 = 625 / 산업에 연결할 지점은 수도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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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뉴스가 바라보는 산업의 모습

15년 봄, 미디어를 기반으로 교육서비스와 채용서비스 쪽으로 확장하겠다고 사업계획서를 업데이트해서 정부지원사업에 지원했다. 연세대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할 수 있었다. 다행히 빚을 지는 상황은 면했다. 지원금 대부분은 제품개발비에 들어갔다. 현금이 생긴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숨통이 많이 트이진 않았지만, 라면에 계란을 풀어 먹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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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뻔하다. 정보제공, 커뮤니티 구축, 홍보 및 광고대행, 이벤트 대행 또는 주최, 박람회, 공간사업, 채용대행, 커머스… 산업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F&B산업에서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은 이 그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수직적확장 이후에 수평적으로 확장한다. 참 꿈만 같은 일인데 그림 그려놓고 보니 안 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스타트업은 기존의 낙후된 시장을 기술로 혁신시키고, 확장성 있는 사업 모델로 빠르게 성장하고, 수익성이 큰 규모의 시장을 두드려야 한다. 스타트업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전의 셰프뉴스를 스타트업으로 보긴 어려웠다. 전혀 다를 게 없는 방식으로 미디어를 운영하려 했고, 전혀 다르지 않은 수익모델들을 검증해왔다.이때까지 셰프뉴스는 임시조직이었으며, 자영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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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디캠프에 입주했다. Game of D.Camp 1차 배치에 합격한 12팀 중 한팀이 되었다. 영광스러운 마음과 가능성을 알아봐 준 사람이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이 일은 셰프뉴스에게 인정받거나 합격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셰프뉴스에게 디캠프 입주는 자영업자의 태도를 벗어던지고, 스타트업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버티컬 미디어’ 또는 ‘산업 미디어’로 소개했으나 오늘부로 미디어 스타트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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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으로 디캠프에서 퇴근한 후, 새벽 다섯 시까지 잠이 안 오길래 그렸다. 계획된 주요 사업(뉴스&잡스)로고를 박고 수평확장 영역에 컬러 브랜딩을 입혔다. 가야할 길이 시각적으로 보이니 지도로 삼을 수 있겠다. 2017년도에는 명함 뒷면을 저 이미지로 바꾸겠다. 물론 로고들도 꽤 채워져 있을 것이다.

 

1달 뒤에는 셰프잡스가 론칭된다.

* 개발팀장님을 재촉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 합류할 동료, 팀장, 직원을 구하고 있으니 회사의 비전과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이버도 윙버스를 인수해 윙스푼으로 운영하다 13년 12월 18일 서비스 종료.

Yelp는 12년 IPO 했지만, 15년 5월 8일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왜 다 망하나.

 

  1. 날것의 정보 자체가 의미를 가지진 않는다.

백종원 아저씨가 2010년에 쓴 책 <초짜도 대박 나는 전문식당>에서는 상권을 3가지로 나눈다. 1차 상권은 걸어서 갈 수 있는 지역을 뜻한다. 2차 상권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동네를 이동하는 정도다. 3차 상권은 미디어에 나온 소식을 듣고 도시를 이동하는 정도다. 서비스가 전국구를 대상으로 하려면 아주 극단적으로 로컬한 정보를 다루거나 3차 상권에 대한 정보를 다뤄야 한다. 이 상권 구분은 장사하는 사장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지만, 각 상권 고객마다 필요로 하는 정보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게 내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부분이다.

한국 도시의 음식점들은 고밀도로 밀집해 있으므로 아무리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모은다 한들, 1차 상권에서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보다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 가로수길이 흥했다가 2년 만에 죽고 경리단길이 또 떴다가 식어가는 변화는 얼마나 빠르며 한 지역 내에서도 개폐업은 얼마나 잦은가. 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10년도 올라웍스에서 내어놓은 스캔서치의 사용자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빨라진다. 손바닥만한 아이폰 안에서 재현되는 virtual layer에 published된 정보는 2~3개의 상점이지만, 두 눈으로 실제 세계를 맞이하면 50개의 간판을 읽을 수 있다. ‘후보 식당의 리스트 확보’라는 가장 우선적인 사용자 경험단계에서 큰 실망을 안겨준다.

식당정보서비스는 모바일기기에서 실행되는 앱서비스가 출시되기 전에도 ‘맛집추천’이라는 키워드로 네이버에 검색하면 104개의 맛집소개 플랫폼들이 나왔을 정도로 많았다.(자체조사, 2011년) 블루리본서베이는 10년째 식당정보를 묶어 책으로 발간하고 있으니 식당정보서비스는 새로운 서비스라고 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 어떤 디바이스를 통해 전달되는지완 상관없이 제공되는 정보의 종류들은 대충 이러하다. 식당의 이름, 식당의 위치, 식당의 사진, 음식 사진, 메뉴명, 음식가격, 연락처, 비전문가나 전문가의 리뷰…. 이러한 정보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움직이게 하거나 지갑을 열게 만들 수 없다. 데이터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생성해낼 수 없다. 3차 상권 사람들이 이 정보들을 보고 식사 경험까지 이어지도록 유도하기에는 너무나 생기가 없는, 발굴 상태 그대로의 static 정보다.

 

  1. 괜찮았던 서비스들

한국에선 쓸 수 없는 서비스지만, Yelp의 사용자 만족도는 어찌 그렇게나 좋았는가? 2013년 가을, 촌놈이 미국 땅을 처음 밟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거긴 땅이 넓어서 1차상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 동부(뉴욕)는 한국의 서울처럼 지하철도 있고 마천루가 빼곡한 도심지가 컸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은 서울 강남역-역삼역 사이의 테헤란로 거리 정도가 전부였다. 숙소가 있던 서니베일, 40분 걸리던 도심지, 그 외에도 팔로알토와 산호세를 매일같이 옮겨 다니며 끼니를 해결해야 했으니, 동네마다 먹을만한 식당을 헤맬 때 yelp에서 제공하는 저런 static한 정보들도 가뭄에 단비같이 느껴졌다. 밥을 먹으려면 어차피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으니 안 쓸 이유가 없었다. 아침을 제외하고 하루에 2번, 보름 동안 30번 yelp의 도움을 받았다. 확보된 데이터도 많고 음식 범주도 넓어 새로운 음식을 explore하는 데 더없이 좋은 서비스였다. 한국의 서비스보다 어뷰징 이슈가 적어 정보신뢰도 또한 높았다. 별 4개짜리를 받은 식당이 실망을 안겨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위시랜드는 2011년도부터 사업을 시작했는데 공격적인 영업력으로 서울지역의 50개 식당과 계약을 맺었다. 앱에서 보이는 식당 리스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 뚜렷한 편집(또는 선별)기준이 좋았다. “연인과 함께 특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파트너사와 미팅을 잡아도 가오가 떨어지지 않는 곳, 오랜만에 가족끼리 근사하게 식사할 곳”을 찾는 사람이 2인 기준 4~10만 원 사이에서 식사할 수 있는 식당들이었다. 상권으로 구분하면 3차 상권 중에서 특정 목적을 가진 고객만으로 더 좁힌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제품은 누구를 위한 제품도 아니다”라는 교과서에 나오는 말씀segmentation을 잘 따랐다.) 이 고객의 가장 우선적인 사용자 경험인 ‘후보 식당의 리스트 확보’를 훌륭하게 충족시켰다. 나는 여길 통해 예약을 3번 정도 했다. (위시랜드 통해서 예약하면 30% 할인받을 수 있다는 파격적인 조건은 소셜커머스와 같은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해부터 제휴업체 확장을 위해 샤브샤브집, 쇠고기구이집등을 무리하게 집어넣으면서 나에겐 그 리스트들이 무의미해졌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확장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엔 지금만큼 파인다이닝 시장이 크지 않았다. 위시랜드는 2년 전 서비스를 종료했다.

 

  1. 왜 돈을 못 버나.

식당에 대한 정보, 먹을 것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나 넘쳐난다. 페이스북에도 하루에 몇 번씩, 인스타그램에는 종일 먹고 마셨다는 소식이 원치 않는데도 보인다. 대중매체에서는 방송과 기사가 앞다투어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쏟아낸다. 내가 원하면 블로그를 찾거나 친구에게 물어보거나 수많은 앱 서비스에서 리스트를 받아볼 수 있고, 책을 사도 되고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거나 직장 동료들끼리 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한다.

식당정보서비스를 ‘정보플랫폼’이라고 정의할 때, 정보 자체가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기 힘들다. 그 이유를 정보 자체에서 찾으면 안된다. 누구도 정보를 독점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그 이유다. 모든 종류의 식당정보가 서로의 경쟁 상대가 된다. 경쟁앱 뿐만 아니라, 새로 출간되는 책도, 생생정보통도, 생활의 달인도, 블로거도 경쟁 상대가 된다. 앱 정보가 부족한 시대라면 모를까, 정보가 넘쳐나서 다른 정보들을 제치고 턱 밑에까지 정보를 밀어 넣어줘야 겨우 정보를 받아먹는 정보과잉시대에는 정보독점을 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잘못된 설정이다. (최근 앱서비스 대다수는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긁어모아crawling서 빅데이터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재정렬된 것이기 때문에 이 목표를 지향하진 않을 것이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정보를 독점하지 못하면 플랫폼이 수익전략을 구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보를 독점하면 상위노출, 순위조작의 고전적인 방법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겠지만, 대체재가 넘쳐나는 지금 봉이 김선달식 전략이 먹힐 리 없다.

 

  1. 그럼 돈을 어떻게 벌까?

‘미디어가 돈 벌기 힘든 이유’와 공감대가 생긴다. 콘텐츠를 생산해도 재화로 교환할 수 없다. 정보이용자가 많아도 직접 돈을 내진 않는다.

돈을 ‘어떻게’보다 돈을 ‘어디서’부터 고민해보자. 고객이 누구인지부터 설정해보자. ①식당주인에게 받을 것인가? ②식당에 가는 손님에게 받을 것인가? ③아니면 이 두 집단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제 3자에게서 받을 것인가?

미디어에선 기본적으로 ③번 고객에 해당하는 광고주에게 돈을 받는다. 정보과잉시대라 광고효율과 광고비가 낮아지고 있다. 예전엔 ②번에 해당하는 독자에게 유가지로 돈을 받았지만, 지금은 선물을 얹어주며 공짜로 보라 해도 구독률이 떨어지는 현상을 막기가 힘들다. ①번에게 돈 받고 홍보기사 쓰는 건 누구나 아는(?) 업계의 비밀(?)이었으나 강도질도 금고에 돈이 있을 때 수익이 나는 법이다. SK최회장이 언론사에 삥뜯기기보단 커밍아웃을 택한 최근의 사건은 이 수익모델이 앞으로 더욱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복선이 될 것이다.

옐프는 ①번을 택해 sponsor마크 붙이고 상위에 노출시켜 주었다. Yelp의 시도는 네이버에 검색되던 104개의 맛집추천 플랫폼과 같이 작동하지 않았다. 식당 사장님들을 잘 사기쳐설득해 노출강화 광고상품을 팔았다 한들 플랫폼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사용자 경험을 저해한다. 광고한 식당은 ‘우리 가게 장사 안되니까 좀 와주세요’라고 외치는 꼴이 되고 만다.

Open Table은 ②번 고객에게 돈을 받는다. 엄밀히 말하면 돈나오는 구멍은 ①번과 ②번 사이에 있는 관계에서다. 예약과 결제과정을 대행할 수 있어야 중간자가 수수료를 청구할 명목과 권리가 생기는데 Open Table에선 이것이 작동한다. ‘pay first, eat later’이라는 캠페인이 먹힌다. 파인다이닝 식당 중에서 예약은 무조건 open table로만 받는 곳도 많다. 이곳은 식당정보제공은 뒷전이고 포스기를 제공해서 고객(식당)의 사용경험개선, 손님의 예약과 결제를 포함해 관련된 모든 활동을 한 큐에 지원하고 있다. 한국은 노쇼에 대한 이슈가 이제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달엔 조선일보에서 천박한 시민의식 훈계하듯 1면에 기사를 냈고, 최근 셰프님들 노쇼 때문에 얼굴이 늙어간다며 연합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윙스푼도 옐프도 ①번과 ②번 사이에 있는 관계를 잡진 못했다.

이도 저도 못했다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④번을 누구보다 빨리 찾아내야 한다.

아이스버켓챌린지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확산되고 있다. 이 캠페인의 요점은 SNS를 통해 ‘행운의 편지’가 현대판으로 되살아났다는데 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행운이 깃들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7년의 행운을 빌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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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은 받았던 이 행운의 편지는 영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넘어온 유행된 것으로 추적된다. 일본에서 행운의 편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때는 1966년으로, 1968년에는 일본 전역으로 확대되어 망상에 빠진 청소년의 자살 사건도 벌어져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조금 잠잠해졌다 싶을 때에도 대중소설이나 라디오 사연 같은 데서 이 행운의 편지는 이따금 언급되면서 명줄을 이어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워드프로세서가 보급된 이후부터는 프린터로 인쇄된 편지가 우편함에 들어와있는 일이 발생했고, PC통신과 인터넷의 시대가 열리면서 전자우편함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어지럽히곤 했다.

 

버켓 첼린지와 행운의 편지의 공통점

새로운 숙주를 찾아 전염되는 바이러스처럼 새로운 매체가 생길 때마다 옮겨 다니던 행운의 편지가 드디어 2014년 여름, 모바일의 시대와 SNS라는 채널을 통해서 적합한 형태로 진화해 번식하고 있다. 행운의 편지와 아이스버켓챌린지의 확산 매커니즘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행운의 편지와 아이스버켓챌린지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는 이유는 ‘Call to Action’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Call to Action’이라 함은 게시물을 전달받은 사람에게 정확하게 어떤 행위를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것인데 구매를 유도해야 하는 광고나 마케팅에서는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콘텐츠가 바이럴 확산을 일으킬 때에도 ‘Call to Action’은 중요한데, 보고 난 후 “그래서 어쩌라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콘텐츠 소비자를 이내 콘텐츠 (재)생산자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행운의 편지가 가진 ‘Call to Action’ 방법은 ‘협박’이다. 목숨을 위협하고 소중한 사람을 앗아가겠다는 등 그 내용에 비하면 편지 한 통 쓰는 것은 큰 고생이 아니므로 못미더우면서도 기꺼이 같은 편지를 복제해낸다.

아이스버켓챌린지 또한 ‘Call to Action’으로 ‘협박’을 사용한다. 사회적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도덕성이라는 포장지로 완벽한 약자를 인질 삼아 지목당한 이들의 평판을 협박한다.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진 캠페인에 너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너는 그럼 ALS환자들이 고통 속에 죽어나가도 괜찮다는 얘기야? 너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니? 게다가 너는 이미 전세계인과 약속했다고! (그 약속은 너랑 상의없이 내가 먼저 해버렸지만 말야).”

아이스버켓챌린지는 이렇게 병을 주면서 약도 같이 준다. 이 캠페인에 참가한 후에는 사회적 명성을 보상받는다. 기꺼이 ALS환자를 위해서 고통을 감수한 용감한 사람이 되고, 선택받은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캠페인을 통해 참여한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되어 우상화된다. 동영상이 유포되고 나면 몇 일간은 평생 접해보지 못했던 영웅 대접을 받게 된다.

행운의 편지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이름 모를 복권 당첨자의 사례”는 필수적으로 들어가있다. 부정적인 미래로 위협하고 협박을 했다면, ‘복권 당첨’이라는 긍정적인 미래로 다시 한 번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최고의 상황이 동시에 ‘Call to Action’을 불러일으킨다.

아이스버켓챌린지에 참여하는 사람은 대중의 시선 속에서 평판을 지키려는 자기보호적인 차원과 자신을 매력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자기과시적인 차원에서 참여한 것이라고 해석해보자. 지목 당한 사람이 그저 시키는 일만 잘 수행하면 부정적인 상황의 방어와 긍정적인 상황의 성취를 이끈다는 점에서 누구나 미션을 수행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행운의 편지의 ‘96시간 내에 자신의 손을 떠나야 한다’는 조건과 아이스버켓챌린지의 ‘24시간 내에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도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다. 촉박한 시간은 비판적 사고를 할 기회를 박탈한다. 바이러스로 치자면 면역체계가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21세기 SNS 버전 행운의 편지, 그리고 아쉬움

아이스버켓챌린지는 대다수의 바이럴콘텐츠가 그러했듯, 시일 내로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껴 인기를 잃고 식어버릴거다. 다만 행운의 편지가 가졌던 전염성은 분명 또 다른 콘텐츠를 숙주로 재생산 될 것이고, 우리는 또 다른 버전의 행운의 편지를 앞으로 계속 접하게 될 것이다. 아이스버켓챌린지는 수많은 행운의 편지 중 하나의 새로운 버전이다.

숙주를 매개체로 삼아 자가증식을 한다는 점에서 생물학적인 바이러스, 컴퓨터 바이러스, 콘텐츠 바이러스가 공통점을 가진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2014년 여름, SNS를 숙주로 삼은 콘텐츠 바이러스가 탄생했다. 이 역사적인 시점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나, 우리는 사회적으로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체계를 키워나가야 한다. 정보 불균형과 올바른 정보소비를 위한 소양이 SNS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시되는 시대다.

한편 미국에서 아이스버켓챌린지가 대중의 인기를 끌면서 확산되기 시작한지 2주가 지나고 있고, 한국에 상륙한지도 3일이 지나고 있다. 캠페인의 성과로 보면 아주 우수하다. 지난 해 동월 대비 열 배에 가까운 기부금이 들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부의 본래 취지로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테레사 수녀는 기부에 대해 “당신이 얼마나 많이 하는가 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갖고 하는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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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에 기고 : http://ppss.kr/archives/26866

정보의 과잉/홍수/공해 이런 시대적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큐레이팅 서비스도 많이 나오고 있고 무엇보다 UI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입니다.

지금 필요한 완전한 혁신의 모습은 우선

1) 수동적인 정보가 능동성을 가지고,
2)웹 브라우징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 매칭 알고리즘이나 큐레이팅도 좋지만 이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이 두가지 방식은 많은 정보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낸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인간이 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드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정확도를 아무리 높인다 한 들 인간이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Glance하고 빠르게 Choice해서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접근해야 합니다. 가장 쉬운 방식으로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모자이크UI를 자동적으로 스크롤다운되게 만들어 빠른 Glance를 유도하고, 그 다음에 간편한 조작으로 흘러 지나가는 콘텐츠를 Choice할 수 있도록 하면 어느정도의 성취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다 개인화된 큐레이팅을 제공해 소비할 콘텐츠의 개인적인 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도 좋은 기능이 되겠네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간이라는 현재 웹 브라우징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조작을 하지 않으면 정보는 언제까지고 하염없이 멈춰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삽입하게 된다면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더욱 빠른 콘텐츠 소비를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들 인터넷 하다보면 어느새 목이 의자 엉덩이 부분까지 내려가 있지 않나요?)

이 생각은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목도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사람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수많은 알파벳이 모니터에 흘러들어오고 입력하고 싶은 알파벳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아이트래킹되어 인터랙티브하게 UI를 콘트롤 하는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이는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UI는 http://famo.us/ 에서 만든 프로토타입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저 뿐만이 아닐테고… 프로토타입도 만들어졌으니 웹 브라우저가 조금만 더 발전하면 5년 내로 실현가능하다고 보는데… (마우스와 키보드 외의 입력방식이 근미래에 보급되길 바라는 1인)

 

— 덧붙임 (2015.12.19) —

내가 안하면 아무도 안 할 것 같다.
famo.us는 서비스가 약간 피벗된 것 같다.

광고라는 커뮤니케이션은 보여주는 사람이 유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정보에 대한 편집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전달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광고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지게 되고 사람들이 수용할 한도를 넘어서게 되자 그 우위는 반전되었다.

보는 사람이 많은 정보들을 골라서 보게 되고, 유익하지 못한 것들을 골라내는 편집권을 가지게 되었다. 웹2.0이 나타난 시점을 기준으로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한도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 전세는 더욱 심해지게 되었다.

광고기피증이라는 단어가 최근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심각성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기울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인지 기업과 고객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새로운 방향으로 진보하게 되었는데, 플랫폼을 통해서 기업과 고객이 더 밀접한 공간에서 더 집중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플랫폼의 예로는, 소개팅 주선자나 구인구직 사이트, 각종 fair 및 세미나, 또 최근에 세상의 흐름을 가장 많이 바꾼 애플의 앱스토어를 들 수 있다.

기존의 커뮤니케이션과 비교되는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이 나서느냐, 고객이 직접 나서느냐는 점이다.

기존의 광고나 홍보 따위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고객을 찾아나서는 과정이었다면, 플랫폼에서는 공통된 욕구를 가진 고객들이 서로 무리를 형성한 뒤 그 장소에 기업들이 찾아 드는 방식으로 플랫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이는 플랫폼 설립 순서에 따른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이 서로 부합하는 두 집단이 만나서 집중된 커뮤니케이션을 벌이는 곳이 플랫폼이다.

내가 디지털영상을 배우는 학교엔 암실이 하나 있다. 흑백사진을 인화하는 곳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필름 소비량은 줄어만 가는데 사진과에서도 배우지 않는 암실수업이 영상전공 학과에 떡하니 있다. 사진과에서 고지식한 교수 하나가 넘어왔는데 영상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니 머라도 가르친다고 가르쳤던 게 검은 방에서 약품냄새 풀풀 풍겨가며 사진 현상하는 수업이었다.

DSLR 카메라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암실수업은 필요한가? 난 필요 없다고 말해보겠다. 내가 필요 없다고 말하면 우리 교수님께선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실 게 눈에 선하다. “사진이 발전해온 역사를 배우지 않고선 사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거나 “정성들여 사진을 한 장씩 인화해 본 사람만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디지털편집이 보급화 되면서 방송국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테이프 두 개를 동시에 기계 안에 넣고 복사를 했던 ‘리니어 편집’방식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컴퓨터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넌-리니어 편집’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전에 비하면 너무 고생을 덜 한다는 이유였다. 고생을 하지 않는 편집,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태우지 않는 편집은 편집자의 참 모습이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술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아마 ‘오리지널’과 ‘본질’의 차이점을 오해하는데서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리지널’은 그야말로 시간상에서 앞서 존재했던 것들을 말하지만, ‘본질’은 그 사물의 존재의 목적에 더 가까운 것이다. 위의 사람들은 두 개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이 고지식한 아저씨들을 보면서 원시인들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구석기인들은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차례대로 맞으면서 기술의 발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돌도끼를 쓰던 중, 청동도끼가 나오니 돌도끼를 버리고 쇠도끼가 나오니 청동도끼를 버렸다. ‘Orignal’이라는 단어에는 ‘기원이 되는’ 이나 ‘최초의’ 라는 좋은 뜻도 담겨 있으나 동시에 ‘구식의’라는 뜻도 함께 담겨있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새 기술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한 구식에 정을 떼질 못한다. 이유는 사실 기술이 너무 급속도로 발전하다 보니 자신들은 그 기술을 따라갈 자신이 없는 거다. 나이가 어린것들이 순식간에 배워버리는 그 기술이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정체는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상대적인 퇴보를 겪게 되니 난감하여 헛소리가 저도 모르게 세어 나오는 것이다.

청동기인들은 새로 나온 쇠도끼를 보고 ‘이것이야 말로 도끼의 진정한 완성형’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도끼는 도끼의 오리지널이긴 했지만, ‘날카롭고’, ‘단단하고’, ‘사용하기 편한’ 도끼의 본질에는 전혀 거리가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이다.

필름 사진기가 사진의 역사에서 오리지널이긴 하겠지만, ‘선명하고’, ‘사용이 편하고’, ‘셔터스피드가 빠르고’, ‘색감이 좋고’ 등의 사진이 지향하는 목적까지 발전하기엔 한계가 있는 기계라는 것이다.

기계뿐만이 아니다. 파피루스나 대나무 또는 천 쪼가리 위에 글을 썼던 옛날에 비하면 오늘날의 책이 ‘기록을 남기기 위한’ 책의 의도나 목적에 가깝다.

성냥보다는 라이터가, 소보다는 트랙터가, 연필보다는 샤프가, 짚신보다는 나이키가, 선풍기보다는 에어컨이, 삽보다는 포크레인이, 디스켓보다는 CD나 USB가, 편지보다는 e-mail이, 브라운관보다는 LED가 제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술이 인간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너무나 명백하게 역사적으로 남겨진 사실들이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기술들은 발전되었고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은 기술은 개발되지도 않았다.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했고, 자유로운 인간은 더욱 기술을 발전시켰다. 오늘날까지도 인간과 기술은 뗄 레야 뗄 수가 없다.

한참을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얼핏 기술 예찬론자처럼 보인다. 기술의 장점만을 떠들어댔다. 하지만 기술도 완벽하지 못하다. 내가 위에 나열한 것들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구식의 것을 도태되게 만든 최신기술의 선두주자’ 쯤이 될 수 있다. 오늘날의 기술들이 가지는 한 가지 더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효율’이다.

효율이 대량생산체제를 만들어서 실업자를 무지막지하게 쏟아냈다. 효율이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도록 하였고 일부 인간은 비인간적인 계산기로 만들고 일부의 인간들은 낙오자로 만들어냈다. 효율성을 지향하는 기업이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람을 버린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인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효율에서 나온 것이며, 효율은 기술이 지향하며 달려가는 종착역이다.

인간의 손을 통해서 실현되지만, 전혀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기술은 인간의 친구인가? 적인가? 기술이 앞으로도 계속 효율을 따지며 자가발전 할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부정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 인정해야 할 암흑시대의 임박이다.

글을 쓰는 중에 글의 의도가 많이 바뀌어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되었다. 시간도 늦었고 어딜 손봐야 될지도 모르겠다. 글은 이만 줄인다.

애초의 의도는 ‘기술은 발전하는 만큼 교육자는 퇴보한다.’는 의도였다.

몇일 전에 썼던 글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예술도 발전한다.’ 와 대칭되는 글이다.

20100614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