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질

내 성격을 아는 사람들이 나에게 한 조언은 한결같았다. 그냥 적당히 시키는 것만, 남들만큼만 하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내 눈에 보이는 영역, 아니 조금 양보해서 내 손에 닿는 영역은 무조건 내 방식과 원칙대로 일이 돌아가야 했다. 어릴 때에도 새우깡 봉지를 세로로 찢거나 뒤집어서 뜯거나 뜯는 중에 삑사리가 나면 나는 나뒹굴며 통곡을 했고 그 새우깡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들었다.

성격을 바꾸려고도 노력해봤다. 하지만 예외를 용납하거나 원칙을 어기는 상황은 언제나 비극으로 귀결되었고,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원래 성격대로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원칙은 나날이 빡빡해졌고, 나는 보통 이상의 꼰대가 되어간다.

새우깡을 어떻게 뜯어야 잘 뜯는 것인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지적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내게도 유쾌하지 않은 사건이다. 돈벌기 위해 하는 일에 유쾌하고 말고를 따질 건 아니지만. 부양할 가족, 자식, 와이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지도 않고, 챙길 건 고양이 한 마리 뿐. 그래서인지 생계유지가 가능해진 시점 이후로는 일이 돈을 벌기 위한 행위가 아니게 된 것 같다. 일을 통해 자존감을 충족시키거나, 정체성을 찾으려 시도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못하면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낙담에 빠져 좌절한다는 걸 이번 계기로 알게 되었다.

관계의 지속가능성은 계산이 가능하다. 40점 이하는 서로 손해보는 거래, 40~60점은 죽지 못해 사는 사이, 60~80점은 윈윈 관계의 파트너십, 80점 이상은 환상의 콤비. 이렇게 숫자로 딱 짚어낼 수 있다. 후하게 줘도 60점을 넘기진 못할 것 같다는 계산이 나오자 난 결별을 준비했다.

이별의 순간은 말처럼 쉽진 않다. 지난 금요일부터 닷새를 누워 지냈다. 짜장면도 탕수육도 치킨도 시켜먹었다. 담배도 폈다. 동굴이다.

이젠 이 곳이 동굴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동굴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게 된다는 것도 안다. 불안해하거나 미리 나오려고 해도 달라질 것 없다는 것도 안다. 나란 짐승은 일년에 열흘 정도는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냥 그렇게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스스로를 놓아두었다.

오늘은 동굴에서 나온 날이다. 몸무게가 2키로가 불었다. 일주일간 밀렸던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네 봉지 버렸고, 냉장고 청소를 했고, 대형폐기물 하나를 버렸고, 옷장의 규칙을 새로 만들었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했고 새벽엔 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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