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부유함, 쓸모와 가치

나는 미디어 전공자이다. 비가시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미디어로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경제적인/사업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능력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가치의 유무는 그 자체로 고유하게 평가할 수 있지만, 쓸모의 유무는 철저하게 시대와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

경제체제 속에서 어떤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흑자 상태가 지속되어야 한다. 밥벌이를 하지 못하면 그 능력이 아무리 고상해도 존재할 수가 없다. 결국 이루어낼 수 없다. 쓸모를 충족시키는 가치만이 지속될 수 있고 이루어질 수 있다. 쓸모를 충족시키지 못한 가치는 안타깝지만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일단 거래를 하기로 했다. 거래가 모여 시장이 되고, 시장이 모여 산업이 되고, 산업이 모여 경제가 된다고 했으니 최소 단위인 거래를 깨우쳐야겠다. 거래를 단기간에 가장 많이 경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래보다 더 작은 단위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신뢰였다.

그 때 내 나이 33살 이었다. 특정한 고객과 특정한 공급자가 거래할 수 있도록 돕는 시장을 만들었다. 이 시장을 운영하며 밥벌이를 했고 생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단히 감격할만한 성과는 아니었다. 굶어 죽을지도 모를 상태에서 벗어난 게 35살이니 남들보다 늦어도 훨씬 늦었다. 재정적으로는 늦었어도 야전에서 자생했다는 점은 높게 살만하다. 이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상황 속에서도 자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된다.

보통 부유함은 개인의 안위와 풍요를 위해 추구된다. 성공이라는 추상적인 목표가 보편적으로 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천박하고 저급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미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가고 싶은 곳을 가는 데 제약이 없는 풍요의 시대다. 새 시대가 열렸는데 어찌 과거의 결핍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가. 부유해지려면 우선 이전의 가치관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쓸모를 충족시켰다고 해서 가치를 추구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은 아니다. 더 쓸모있어져야 한다. 더 부유해져야 한다. 나는 이제 굶어 죽는 단계를 벗어 났을 뿐이다. 더 의미있는 일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더 쓸모있어야 한다. 너무나도 쓸모가 있어서 쓸모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단계까지 가야 한다.

쓸모와 가치는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단계적으로 선후행의 관계에 놓일 뿐이다. 쓸모를 충족시키는 방법과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에는 분명 유사한 기술과 실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알기 때문에 당장은 더욱 쓸모있는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데에 집중해도 좋다.

 

— 덧붙임 —

이렇게라도 생각을 뜯어 고쳐 먹어야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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