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누구나 기억하는 광고 문구다. 제품을 팔지 말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교과서적 가르침을 지켰다. 고객은 쇳덩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매를 구입하는 것이다. 쇳덩이라면 오만 원도 아깝겠지만, 건강한 몸매를 가질 수 있다면 오십만 원도 쓸 수 있다. 고객의 문제에서 출발해 제품으로 향하는 것은 판매의 기본이다. 모든 광고는 이 기본원칙을 준수해 만들어진다.

제품의 값어치는 고객 문제의 크기에 비례한다. 문제가 클수록 비싸게 팔 수 있다. 그래서 판매자는 고객이 문제를 크게 인식하도록 부추긴다. 작은 문제는 부풀리고 없는 문제도 만들어낸다. 불안을 조장하고 공포를 유발하는 판매 방식은 지푸라기도 십 억에 팔 수 있는 고급 기술이다. 사람을 물에 빠트린 뒤 지푸라기를 내밀면 된다. 지푸라기를 팔겠다고 사람을 물에 빠트리는 것도, 물에 빠졌을 때 십 억을 내고 지푸라기를 사는 것도 이 곳에선 정상이다. 건강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합법적 거래다.

판매자는 모든 대화를 구매로 귀결시킨다. 나도 꽤 팔아본 사람인지라 그들의 공격 패턴을 훤히 읽을 수 있다. 판매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접근한다면 어디 한 번 지껄여 보란듯이 지켜본다. 그들이 아무리 다양하고 창의적인 공격을 펼쳐도 나의 방어는 한결같다.
“안사요”
모든 종류의 창을 막아내는 만능 방패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쉴 새 없이 공격받았다. 속도를 더 내고싶다 했더니 뭘 사야 한대, 삭신이 쑤신다 했더니 뭘 바꿔야 한대, 훈련을 제대로 하고싶다 했더니 또 뭘 사야 한대, 멀리 가려고 했더니 뭐가 필요하대, 자전거 얘기를 할 때마다 지갑을 열어래. 그래서 입 닥치고 가만 있었더니 먼저 다가와서 문제가 많대. 20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탔다 했더니 자기가 볼 땐 너무 위험해서 곧 사고가 날거래. 이놈들이 나를 아주 물에 빠트리려고 작정했나보다. 뻔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수법이구먼.

“안사요” 방어모드로 일관했지만 이번 공격은 왠지 끊이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났다. 욕을 한 바가지 쏟아 붇고 소금을 뿌릴 참이었다. 그러다 눈을 마주쳤다. 초점없는 광신도의 눈이었다. 판매자가 아니었다. 소비자였다. 딴에는 날 위한답시고 조언했지만 의도치않게 공격이 된 것이다. 이들은 진심으로 돈을 쓰는 게 이로운 것이라 믿고 있었다.

 

판매자를 대신해 서로 물에 빠트리고 돈을 안 쓰면 큰일난다고 호들갑떤다. 자본주의 피착취계급이 자가증식하는 신비로운 관경이다. 부익부빈익빈이 왜 갈수록 심해지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찾았다. 가난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나.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종교나 이념도 이정도의 전파력은 갖지 못했다. 개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디어환경에선 잘못된 신념이 더욱 빠르게 퍼진다. 자전거 레이스는 하덜 않고 경쟁적인 소비 레이스만 펼친다.

돈을 한 웅큼 쥔 채로 문을 박차고 들어와 “Shut up and take my money”라고 외치는 고객을 물에 빠트릴 필요는 없다. 더러운 작업은 하지 않고 신성한 구세주 역할만 하면 되니, 판매자는 신이 나서 고객의 엉덩이에 최고 호갱등급 도장 VVIP를 찍어 준다. 감격한 호갱은 펄쩍 뛰어올라 발로 박수를 치고 앞돌기를 한 뒤 착지와 동시에 넢죽 엎드려 절을 두 번 한다. 감격의 눈물을 닦으며 다음달 월급도 모조리 갖다 바치겠다 맹세하고 뒷걸음질치며 퇴장한다.

 

자전거 고객의 소비행태는 기존의 구매행동이론으론 설명되지 못한다. 기존 이론에선 상품을 보아야 구매의사가 생긴다고 전제한다. Attention Interest [발견>관심] 순서다. 1920년도에 정립된 구매행동이론 AIDMA도 2010년도 미디어 환경변화에 맞춰 개정된 AISAS도 모두 AI단계가 선행한다.

하지만 요즘 고객은 다짜고짜 ASS다. Action Search Share [구매결정>검색>자랑] 어떤 상품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기변 결심부터 한다. 돈이 생기는 족족 다 털어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상품을 검색해 예정된 소비를 하는 셈이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제 구실을 못하는 제품들이 있다. 아껴 써야 하는 수첩, 비를 맞히면 안 되는 가방, 한 달째 비닐포장 뜯지 않은 새 차, 김치국물 한 방울 튀었다고 종일 기분이 우울해질 정도로 비싼 정장. 닳는 게 아까워서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명품 신발. 그런 신발을 신고 어떻게 달리겠는가? 달리는 게 목적이라면 닳아도 아깝지 않을 신발을 신어야 한다.

자전거도 너무 비싸면 제구실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자전거가 월급보다 비싸면 마음껏 밟을 수 없을 것이다. 난 월급이 작아서 중국산 가품을 타지만 대신 마음껏 찢어발길 수 있다. 자전거는 밟고 뜯고 비틀어 당겨서 밀고 던지고 엎어치듯 찢어발겨 타는 것이다. 타다 보면 기름때도 묻고 닳고 망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건 보물이 아니다. 탈 것이다.

 

돈이 썩어 남아서 자전거에 수천만원을 쓰건, 없는 잔고를 쥐어짜 장만하건, 미래를 저당 잡혀가면서까지 빚내 지르건,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나도 판매자들의 소비조장 공격이 달갑지 않듯이 내 자산운용 철칙을 알려주는 것도 상대방에겐 불쾌한 일일 것이다.

“정녕 당신의 인생이 자본주의 소비이념을 전파시키기 위한 숙주로 쓰이다 내팽개쳐져도 괜찮단 말입니까? 깨어나서 주체적 삶을 살아가십시오.”
라고 내 진심을 전하는 순간 그들은 나를 광신도 쳐다보듯 할 것이다. 이어서 나의 공격을 막아낼 만능 방패를 들어올릴 것이다.
“니는 니 대로 살아라(live) 내는 내 대로 살게(buy)”

 

같을 同, 좋을 好. 같은 걸 좋아해야 동호인인데 내가 자전거 쇼핑 동호회로 잘못 찾아왔나 싶다.

당신과 나 사이에 라이딩의 즐거움이란 교집합이 존재하길 바랄 뿐이다.

▣ 연구 배경

주법을 연구하고 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순간 주법을 무한정 다양화시키는 것으로 목적이 변질되었다. 종류만 많아질 뿐 나의 라이딩 스타일 스펙트럼이 넓어지진 않는다.

어떤 일이건 진행과정에서 퇴적물이 쌓여 복잡도가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주기적으로 리팩토링 해줘야 한다. 바탕화면 정리, 디스크 조각모음, 안쓰는 책 버리기 같은거.

미분 후 경우의 수 조합 방법론을 적용한다. 어떤 이는 이런 나를 보고 분류를 하지 않고선 못배기는 분류불안에 빠졌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이런 나의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분류병자라고 욕했다. 어쩌나. 이게 나인 걸. MECE는 나의 삶인걸.

▣ 주법 해체분석 개요

주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속성을 계열로 삼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조합한다.

자전거 위에서 구현가능한 페달링은 무궁무진하지 않다. 안장에 골반의 위치가 속박되는 시팅일 경우 더욱 제한적이다.

밟땡, 밀땡은 가능하지만 밟밀은 불가능하다. 밟거나 밀거나 둘 중 하나다. 크랭크를 회전시키는 역할을 밀어서 수행할지, 밟아서 수행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골반의 위치와 주동근의 차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는 것은 둔근 위주 밟는 것은 대퇴근 위주라고 보면 된다.

시팅에서는 힘의 전달이 안장을 중심으로 전해진다. 핸들 그립의 위치나 상체의 각도, 움츠린 정도는 댄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에어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면 각 주법에 자연스러운 상체 각도와 핸들의 위치를 취하면 된다. 시팅의 상체 포지션까지 의식할 필요는 없다. 척추 모양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니 제 몸이 알아서 찾아낼 것이다.

반면 댄싱은 핸들 그립의 위치와 상체의 기립정도, 무게중심이 중요하다. 골반이 안장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변수들이 많아진다. 변주를 통한 확장응용이 가능하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 연구 난이도는 높아진다. 댄싱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장기연구과제이므로 오늘은 시팅에 관한 얘기만 한다.

▣ 미분, 연산, 출력, 정리

시팅의 경우의 수 : 독립행위 9개에 복합행위 6개 총 15가지 나온다. (3*3)+(2*3)=9+6=15

댄싱의 경우의 수 : 독립행위 18개에 복합행위 12개 총 30가지 나온다. (3*2*3)+(2*2*3)=18+12=30

상체기립의 정도와 그립의 위치까지 고려한다면 경우의 수는 (3*2*2*2*3)+(2*2*2*2*3)=72+48=120가지가 되어 너무 어려우므로 두 속성은 제외한다.

경우의 수가 나온다고 주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현이 불가능한 주법도 있고, 활용효율이 떨어지는 주법도 있다. 제거한다.

▣ 연구 결과

본 연구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시팅주법은 5가지 밖에 없다.

나는 구현할 수 있는 시팅이 7가지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제로는 4가지만 쓰고 있었다. 결국 같은 주법에 이름만 다르게 붙였던 것.

본 연구에 따르면 댄싱주법은 6가지 밖에 없다.

네이밍이 입에 잘 붙는 형태는 아니지만 코드화 해두어서 정보가 함축적이다. ex) 싵전밀땡 : 시트의 앞부분에 앉아 밀고 당기는 주법이란 뜻이다.

▣ 실전 적용 후기 (일단 오늘은 시팅만)

싵후밀 : 둔근으로 민다. 새끼발가락이 앞으로 향하도록 힘주면 신체와 머신은 리듬감있게 비틀어진다. 12시-3시까지 민다. 라이더는 느낌상 수평으로 앞으로 미는 것 같은 착각이 들 것이다. 미는 발 쪽의 후드를 힘껏 잡아 당겨야 후면코어가 골반을 통해 힘을 전달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또는 바탑을 주먹 바깥쪽에 힘을 주어 잡고 팔꿈치를 약간 굽혀 흉곽을 넓히는 것도 방법이다. 프룸의 업힐 그립이다.

싵중밟땡 : 엄밝으로 2-4시 밟는다. 발 끝으로 통통 튀듯이. 반대편 발은 보조하듯 7-11시 당긴다.

싵전밟땡 : 엄밝으로 3-5시 밟는다. 발 끝으로 통통 튀듯이. 스트로크를 짧게 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대편 발은 보조하듯 8-12시 당긴다. 안장 위치만 조금 당기면 각도조절은 알아서 다 된다.

싵전땡 : 장요근으로 허벅다리 당긴다.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립적으로 사용해 다른 주동근들을 모두 쉬게 할 수도 있는데, 파워가 약하고 장기지속이 불가능하므로 스트로크 20번 이내에 다른 주법으로 교대해주어야 한다.

싵전밀밟땡 :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내밀고 숙여 TT자세를 억지로 만들어내낸다. 내전근 주법과 안장위치가 같지만 상체의 각도에서 차이가 생긴다. 둔근도 쓰고 햄스트링도 쓸 수 있어 폭발적인 파워를 낼 수 있다. 지오메트리가 이 자세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둔근을 쓰려면 발목이 꺽인 상태로 눌러야 한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고 안장의 좁은 부위에 골반을 걸어야 하므로 노면이 좋지 않은 상태에선 위험할 수 있다.

▣ 싵전밀밟땡 주법 심층분석

둔근을 활용해 다리를 펼치면서 햄스트링으로 당기는 모션도 동시에 취할 수 있다. 밀어내는 데에 최적화된 포지션은 아니지만 더블 스트로크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단일 근육에 걸리는 부담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더 적은 힘으로 스트로크한다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파워를 낼 수 있다.

싵전밀밟땡을 4월 9일 북악 다녀오는 길에 우연찮게 구현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내전근으로 빠르게 굴린답시고 안장의 앞에 앉아서 에어로 자세를 취했던 것인데, 내전근 페달링으로 굴린다는 느낌과는 뭔가 달랐다. 잘 나가길래 6키로 정도를 그 상태로 밟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 구간 동안 심박이 210이 찍혀 있었다.

높은 심박은 동시에 활용한 근육의 양이 많았다는 것이다. 밟는 근육인 대퇴부는 보조적으로 지원되지만 밀밟땡이 어느정도 가능한 주법이다. 대미지를 큰 근육들이 골고루 분담하기 때문에 심박과 심폐의 능력을 끌어쓸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세의 변화없이도 장기간 지속시킬 수 있다.

이 자세에선 상사점이 1시 하사점이 7시가 된다.

싵후밀을 주주법으로 쓰면 근전환을 자주 해줘야 한다. 안장 뒤에 앉았을 때는 하사점까지 내려갔을 때의 다리가 너무 펴져있는 상태라 땡기는 모션이 비효율적이며 파워를 내지도 못한다. 또 단일 스트로크를 좌우가 번갈아서 반복할 뿐이다. 이 경우 밀어내는 둔근에만 피로가 축적되기 때문에 근전환을 자주 해주어야 한다. 싵전밀밟땡만으로 지속적으로 조질지, 싵후밀을 주주법으로 사용하되 근전환으로 풀어주며 조질지는 선택의 문제다.

▣ 연구 이후

싵전밀밟땡 자세가 더 잘 나올 수 있도록 안장코를 5mm정도만 높이겠다.

주법들의 전환 순서를 묶어서 묶음동작화 시켜 숙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숙달 과정은 이와 같은 이론적 접근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주법들을 조합하는 것 또한 5! 또는 6! 또는 11!의 조합갯수가 발생한다. 39,916,800가지의 조합방식이 존재한다. 전환 순서는 몸이 알아서 찾아내도록 하자. 이제 몸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여라.

▣ 팩라이딩 개요

솔로로 라이딩하면 200W를 써야 30키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피를 빨면 150W만 써도 30키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룹 중앙에 서면 130W만 써도 된다.
속도가 높아지면 이 차이는 더 커진다. 선두가 40키로를 유지하기 위해 350W를 써야 한다면 바로 뒤에서 피빠는 사람은 220W만 써도 되고, 그룹 중앙에선 200W만 써도 된다.
무리지어 바람저항을 이겨내는 진영을 활용한다면 FTP가 200W인 사람들이 모여서 FTP 250W인 사람의 솔로 라이딩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또는 멀리 갈 수 있다.
모든 이동수단인 본질은 “더 빠르게, 더 멀리”이고,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효율적인 드래프팅과 팩라이딩 기술을 통해 우리는 혼자 달리는 것 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갈 수 있다.

▣ 드래프팅

가깝게 붙을수록 앞차가 일으킨 난류 속에 내 몸을 집어넣을 수 있다. 주행효율을 높일 수 있는 대신 사고 위험은 커진다. 적당히 빨고 안전을 챙기자.
라이딩 호흡을 맞춰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2m 정도가 적당하다. 서로의 라이딩 패턴이 익숙해졌다면 1m까지 좁혀도 좋다. 하지만 1m보다 가까우면 너무 위험하다.
지그재그로 1m의 거리를 두고 달리면 시야도 확보되고 상황 대처의 거리도 있으며 정지가 필요할 때 좌우로 퍼질 공간도 마련되기 때문에 동호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진영이다.

▣ 팩라이딩의 원리

기량의 차이가 크다면 바람을 맞음으로 체력을 의도적으로 소진시킬 수 있다.
기량이 높은 사람이 2~3명 있다면 로테를 돌려도 된다.
로테를 돌리는 선두 중에서도 기량차이가 약간 있다면 60초/30초/10초 씩 로테유지시간을 달리해 체력소진을 배분한다.
5명이서 로테를 돌리되 4,5번은 선두에 서기 힘들 정도로 기량이 떨어진다면 로테방법은 2가지가 있다.
① 60초/30초/10초/0초/0초로 돌리는 방법
② 1,2,3번은 로테가 끝난 후 3번 자리로 껴들어가는 방법

▣ 체력한계 공유의 필요성

팩 구성원 간 서로의 체력한계를 공유해야 한다. 힘에 부치거나, 힘이 남아도는 사람은 자신이 한계에 임박했음을 알려야 한다.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것은 팩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다.
내가 힘이 남는다면 선두에 서서 바람을 맞아 팩에 기여하면 되고, 내가 힘이 부친다면 팩 후미에 서서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야 한다.
체력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버리면 나중에 팩에 합류할 때 바람을 직접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에너지 손실을 혼자 감당하게 되고, 장거리 라이딩이 될 경우 피로도는 더욱 누적된다.
결과적으로는 팩 선두로 2교대를 돌린 사람보다 혼자 흘러서 뒤늦게 쫓아온 사람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결과가 될 것이다.
흐르기 시작하면 에너지 소진 격차는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흐름이 반복될수록 팩 전체의 속도를 더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 번 흘렀다면 속도를 아예 늦춰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 합류해야 하는 것이 좋다.
일부 구성원만 바람을 맞는 것을 미안하다거나 불평등하다고 여겨선 안 된다. 내 체력을 보존하는 것은 나를 위한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팩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이다.
팩라이딩은 함께 간다는 전제가 있다. 퍼포먼스가 가장 떨어지는 구성원을 기준으로 속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팩의 최저속도를 더 낮추지 않게 하려면 나의 체력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존하고 효율적인 주행을 해야 한다.

▣ 팩 찢기

팩의 크기가 너무 크면 아코디언 효과가 발생해 후미의 부담이 커진다. 선두의 가속과 감속이 후미로 전달될 때 증폭되어 급가속과 급감속을 하게 된다. 이는 후미에 급격한 체력부담을 안긴다. 그래서 기량이 부족한 사람은 2~3번째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코스에 변수가 많고, 서로 라이딩 호흡도 익숙하지 않으며, 팩라이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껴있거나, 평속 30이상으로 달릴 계획이라면 찢어야 한다.
난 3~5명의 팩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 커뮤니케이터의 역할

기량이 부족한 사람은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야 한다. 말을 끊임없이 하는 것은 팩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다. 타인의 체력한계를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챌 사람은 없다.
신호는 후미에서 선두로 전달되어야 한다. 선두는 뒤돌아보기 힘들다. 뒤돌아봐서도 안 된다. 선두는 바람을 이겨내고 도로의 상황을 파악하는 두 가지 역할 이외에는 다른 역할을 맡아선 안 된다.
5명 이상의 팩이라면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뒤에서 중간으로 중간에서 다시 앞으로 신호를 전달해야 한다. 팩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페이스 조절을 커뮤니케이터가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가도 좋다는 신호 : 붙었다/더더더/오라이/높여
늦춰야 한다는 신호 : 흘렀어/같이가/못붙어/천천히
오라이는 alright을 말한건데 일본어처럼 들렸다면 기분탓이다. 내가 마 경상도 사람이어가…

▣ 솔직한 의사표현의 필요성

힘이 넘치는 굇수도 힘에 부치는 초급도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해야 그날의 라이딩 콘셉을 결정할 수 있다.
초급이 굇수에게 맞추려고 무리하는 것도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 굇수가 초급을 배려하면 불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게 된다. 달리는 중간에 라이딩 콘셉을 바꾸는 것도 모두에게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2019년 오크밸리 그란폰도에서 울분이 폭발해버린 미녀라이더가 기억난다. 처음엔 자신의 완주를 위해 서포트해줄 것처럼 보였던 남성들이 라이딩 도중 변심해 그녀를 버리고 질주한 것이다. 라이딩 시작 전에 솔직하게 자신의 라이딩 목적을 알렸다면 서로에 대한 원망도 아쉬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달리려고 마음잡고 나왔는데 마음껏 달리지 못하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보통 선두가 가장 열심히, 의욕적으로 타려고 하기 때문에 기량 차이가 클수록 아쉬움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기량이 부족한 사람의 부족의 정도를 솔직히 공유한다. 서로 기량의 차이가 20%정도일지, 30%일지, 40%이상일지 측정한다.
기량의 부족을 커버하며 달릴지, 커버하지 않고 달릴지는 기량이 뛰어난 사람이 우선 결정권을 가진다.
이 의사결정 방법론은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공리주의>에 의거한다.

▣ 라이딩 콘셉 개요

아래 라이딩 콘셉은 기량차이가 발생하는 상황을 전제로 작성되었다. 기량차이가 없다면 이런 콘셉 구분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기량차이가 없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기량차이가 난다고 누군가를 원망해서도 안 된다.
자전거 좀 타려고 생업을 미룰 순 없지 않은가.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하자. 자전거가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라이딩 콘셉과 코스의 상관관계

기량 차이는 곧 선두의 에너지를 의도적으로 소진시킴으로 좁힐 수 있다.
평지라면 라이딩에 가해지는 저항의 대부분이 공기저항이기 때문에 40%의 기량차이가 나더라도 팩라이딩이 가능하다.
하지만 업힐에서는 저항의 대부분이 중력이기 때문에 누구나 같은 저항을 받고, 때로는 후미가 더 큰 저항을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때문에 팩 구성원 간 기량차이가 크다면 평지 중심의 코스를 선택하고, 기량차이가 크지 않다면 업힐 위주의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 라이딩 콘셉 제안

[사이좋은 토끼와 거북이] 후미 최저속도 기준 함께가기 라이딩
모두가 가장 느린 페이스로 맞춰 가는 것이다. 선두는 아마 근질근질할 것이다. 후미는 미안해할 것이다. 좋은 콘셉이 아니다.

[그룹1] 오픈과 팩라이딩의 적절한 배분
오픈 구간에서는 버리고 중간 지점에서 모여서 다시 팩을 이루길 반복한다.
선두의 남는 에너지는 평지 바람막이로 소진시킨다.
구성원의 퍼포먼스가 30% 이상 벌어진다면 이 방식으로도 팩을 구성하기 적합하지 않다.

[그룹2] 오픈과 팩라이딩의 적절한 배분 & 선두의 에너지 의도적 낭비
평지에서는 드래프팅 효과로 퍼포먼스가 40% 차이나는 사람도 후미에 붙으면 선두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해 팩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업힐에서는 선두와 후미의 소진 에너지가 크게 차이나지 않기 때문에 언덕을 몇개 넘다보면 선두와 후미의 잔여배터리양이 크게 차이날 수 있다.
업힐에서 발생하는 잔여 배터리양을 선두가 소진시키면 기량차이와 상관없이 함께 체력을 고갈시켜나갈 수 있다.
방법 ① 선두는 업힐을 두번탄다.
방법 ② 선두는 업힐을 오른 뒤 내려온다. 후미를 만나서 다시 꼭대기를 찍는다. 다시 내려온다. 후미를 만나서 다시 꼭대기를 찍는다.
방법 ③ 쉬는 시간에 선두는 혼자 인터벌 5번 친다.

[그룹3] 팩 찢기 & 코스 찢기
대회 코스가 그란폰도와 미디어폰도로 구분되듯이 실력에 따라 코스를 분리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뺑뺑이 코스라면 그룹을 나눠 목표 회차수를 달리 설정할 수도 있다.
후미그룹은 최단직선거리로 코스를 완주하고, 선두그룹은 남은 체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의도적 우회용 코스를 추가할 수도 있다.
함께 달린다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레이싱] 흐르면 버린다. 버리기 위해 짼다. (더더마 벙)
흐르는 사람을 버리기로 약속하면 각자의 라이딩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한 퍼포먼스의 사람들끼리 묶이게 된다.
팩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후미에게도 요구되는 최소한의 파워가 높아지기 때문에 아무리 선두보다 효율적으로 바람저항의 이득을 보다라도 커트라인이 생겨 흐르게 된다.
피를 빠는 것도 기술이기에 파워와 스태미너가 남아 있더라도 효율적으로 피를 빨지 못해 팩이 분리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높은 저항을 유지하는 지구력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 팩이 분리되기도 한다. 팩이 너무 길어지게 되면 작은 속도 변화가 후미에서는 크게 증폭되게 된다. 선두 가속에 대한 반응을 즉각 하지 못함으로 격차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며 함께가는 것이 리드아웃이고 이를 이용하여 분리시키는 것이 어택 혹은 BA다.
어느정도 팩이 분리되면 선두와 후미의 실력격차가 크지 않게 된다. 기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위에 언급한 팩 분리요인들이 적게 작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팩이 유지될 수 있다.

▣ 마무리

구성원간 퍼포먼스가 30%이상 차이난다면 선두는 선택해야 한다.
후미를 찢고 레이스를 할지, 레이스는 포기하고 서포트 모드로 라이딩할지.
어떤 선택지든 장단점이 공존하고 선두가 결정할 일이다. 최선을 다해 체력의 한계에 몰아붙이는 것의 장점이 있다면 동료와 함께 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고, 동료와 함께 달리는 즐거움의 장점이 있을 땐 만족스러운 운동이 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어떤 선택에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반대로 아쉬운 부분도 남기 마련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선택이 그러하다고 법륜스님이 얘기했다. 때문에 콘셉을 한 번 정했다면 마음의 미련을 버려야 한다.

나의 머신은 이미 한 명의 무릎을 박살냈다. 전주인은 이번 생엔 더이상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되었다며, 자전거를 나에게 넘겼다.

그렇게 로드바이크에 입문한 지 2년이 되었다. 난 20대 초엔 MTB를 탔다. MTB를 타듯이 로드 탔더니 온몸이 아팠다. 대부분의 통증은 일시적 사건으로 지나갔다. 몸이 적응한 것이다. 하지만 무릎 통증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MTB를 십년 넘게 타면서도 무릎이 아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로드는 왜?

무릎이 박살난 전주인은 문제가 뭐였는지 정확히 모른다.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는 있었다. 『실내에서 고정된 로라를 오래 탔다. 저회전 고파워 페달링을 사용했다. 안장을 높이고 당기는 근육을 너무 많이 썼다. 클릿의 유격을 넉넉하게 줬어야 했다… 』 하지만 어떤 단서가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혔는지 확신하진 못했다. 원인이 하나일 수도, 여럿이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켰을 수도, 또는 파악하지 못한 다른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잦은 무릎 통증을 걱정하는 지인들의 피팅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가피팅을 고집하고 있다.

피터가 내 무릎 통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피팅-서비스는 3가지 꼭지점의 적정 위치를 찾아주는 데에 그치기 때문이다. 정상범주 피팅은 어렵지 않다. 책도 있고 구글도 있고 유튜브에도 있다. 모르는 내용은 찾으면 금새 나온다. 나도 정상범주를 벗어났던 피팅을 교정함으로 통증을 해결해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새로운 종류의 통증이 발생했다. 피팅이 안 맞아서가 아니다. 피팅이 안 맞는 것이 문제라면 육각렌치만으로도 해결되었어야 할 일이다.

피터가 내 무릎 통증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난 해법만 덜컥 받고 싶진 않다. 과정까지 알아야 하겠다. 피터가 내린 처방이 어떤 이론적 배경과 추론을 통해 도달한 것인지 나는 알아야 하겠다. 피터는 피팅 다 받았으면 자전거 갖고 빨리 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피터는 버럭 화낼 것이다. 내가 당신 선생이냐며,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왔냐고 할 것이다.

이번 통증에 대한 처방을 받아 오더라도 머지않아 새로운 통증이 발생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 무릎 통증에 영향을 미치는 수십가지 단서를 찾았다. 어제도 새로운 통증이 나타났고 새로운 단서를 찾았다. 다음달에 통증이 발생한다면 어제와는 다른 원인으로 인한 새로운 문제일 것이다. 누구도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통증까지 예측하고 예방할 순 없다. 그렇다고 매번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피터를 찾을 수도 없다. 왜 또 왔냐고 버럭 화낼 것이다.

결국 내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피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외부의 존재에게 의존하려는 태도. 그것은 나약함이다. 나는 강해지기 위해 자전거를 탄다. 타인에게 의존하면서 강해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모순이다. 그것은 강해진 것이 아니다. 자력으로 생존이 불가능해진 원숭이일 뿐이다.

오소리는 착한 원숭이의 먹이를 빼앗을 목적으로 꽃신을 선물했다. 원숭이는 꽃신이 다 닳아 다시 맨발로 다니려고 했지만 이미 꽃신에 익숙해져 맨발로는 발이 아파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오소리는 처음과 달리 꽃신을 선물로 주지 않고 값을 올려 비싸게 판매하려 하였다. 결국 더 이상 꽃신을 살수 없게 된 원숭이는 오소리의 종이 되어 ‘내힘으로 살아갈수 없게 된 것’을 후회한다. ─ <원숭이 꽃신>의 줄거리, 1977, 정휘창

 

    • 피팅의 3가지 꼭지점 : 안장 / 페달 / 핸들

안장의 종류 : 내 척추가 snake / cameleon / bull 셋 중 어떤 타입인지
안장의 위치 : 안장이 높다 / 낮다 / 앞으로갔다 / 뒤로갔다 / 각도가 내려갔다 / 각도가 올라갔다

페달 : 페달의 종류(평페달 / MTB클릿 / 시마노 / 스피드플레이 / 룩)
페달의 위치 : 앞으로갔다 / 뒤로갔다 / 안으로갔다 / 바깥으로갔다
페달의 각도 : 안짱으로모으냐 / 팔자로벌리냐 / 유격이몇도냐

핸들 : 좁냐 / 넓냐 / 깊냐
스템 : 머냐 / 가깝냐

    • 3가지 꼭지점으로 인해 결정되는 신체의 각도

상체와 팔의 각도
골반과 허벅다리의 각도 (가장 높을 때, 가장 낮을 때)
허벅다리와 종아리의 각도 : 무릎 (가장 높을 때, 가장 낮을 때)
종아리와 발의 각도 : 발목 (펴졌을 때, 당길 때)

    • 피팅 : 원인 >> 증상 >> 처방

3가지 꼭지점으로 적정 위치를 찾아내는 피팅은 어렵지 않다. 의사가 진료를 볼 때 증상을 통해 원인을 추측하고 처방을 내린다. 똑같이 [원인 >> 증상 >> 처방]의 틀에 넣어보면 해법이 정리된다.

3시 방향 무릎이 페달보다 앞에 위치 >> 무릎 앞 통증 >> 안장 위치 뒤로 or 클릿을 슈즈에서 앞으로
3시 방향 무릎이 페달보다 뒤에 위치 >> 무릎 뒤 통증 >> 안장 위치 앞으로 or 클릿을 슈즈에서 뒤로
큐팩터를 너무 좁힌 문제 >> 내측관절부하 >> 슈즈에서 클릿 안쪽으로 밀기
슈즈와 클릿의 나사가 헐거워져서 플로팅 발생 >>무릎 전체 통증 >> 나사 죄기

일반적인 피팅-서비스는 [꼭지점세팅 > 신체각도구현] 두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고 했다. 더 포괄적인 의미의 피팅을 구현하기 위해선 신체특이성과 주법이라는 요소도 포함시켜야 한다. 네 가지 요소의 상관관계를 순서를 바꾸면 다양한 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다. 피팅을 접근하는 방법이다.

① [꼭지점세팅 > 신체특이성 > 신체각도구현 > 주법]
② [신체특이성 > 꼭지점세팅 > 신체각도구현 > 주법]
③ [주법 > 꼭지점세팅 > 신체특이성 > 신체각도구현]
④ [주법 > 신체특이성 & 신체각도구현 > 꼭지점세팅]

①번은 이상적인 꼭지점을 세팅한 뒤 자세를 교정해서 신체각도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경험이 없는 입문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다양한 주법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기본부터 잘해라.
②번은 신체에 특이사항이 있거나 뒤틀림 정도가 심각해 피팅에 반영해야 하는 경우다. 안장 또는 신발을 체형에 맞는 것으로 고른다거나, 다리길이의 차이를 반영하기 위한 스페이서를 꽂는다거나.
③번은 라이더의 주법을 유지한 채로 세팅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라이딩 습관이 몸에 익어버렸거나, 습관을 바꿀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더 이상 강해질 욕망이 없는 나약한 존재들.
④번은 새로운 주법을 위해 머신 위에서의 이상적인 신체각도를 먼저 구상한 뒤 꼭지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①②③번은 공통적으로 [꼭지점세팅 > 신체각도구현] 순서를 따르고 있다. 자전거에 몸을 끼워맞추는 것이다. 자전거에 몸을 끼워 맞춰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플라톤주의적이다. 플라톤의 세계에서는 현실이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꼭지점과 신체각도를 맞추는 것만이 이상이라 생각한다면 자전거의 세계를 너무 좁게 본 것이다. 이런 태도는 성장가능 퍼포먼스 한계를 스스로 봉인시키는 꼴이다. 이 세상에 절대피팅이상주의자들만 가득했다면 스파이더 댄싱 같은 건 탄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④번은 [신체각도구현 > 꼭지점세팅]순으로 이뤄진다. 이게 맞다. 자전거의 세팅은 나중에 따라와야 한다. 자생력을 잃은 원숭이들은 ①②③번 피팅 서비스를 받으면 되고 나같은 야생의 라이더는 ④번 피팅을 통해 성장할 것이다. 퍼포먼스 향상에 적합하도록 자전거를 세팅하는 접근방식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오르막만 줄창 타는 코스라면 안장을 앞으로 당기고 코를 낮출 것이다. 공기를 뚫어야 하는 평지라면 스템을 길게 빼고 안장 코는 약간 올릴 것이다. 산에서는 MTB가, 장거리 오프로드는 그래블바이크가, 평지에서는 에어로가 적합한 것처럼 피팅도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는 상식처럼. 자세와 주법에 자전거가 따라와야 한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단순히 정해진 자세로 페달을 열심히 굴리는 것이 아니다. 같은 자세로 페달만 굴려선 퍼포먼스를 일정 수준이상 높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자세로 다른 근육을 쓰는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새로운 주법을 익히는 것은 곧 새로운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주법이 다양해질수록 엔진은 강해진다. 6기통에서 8기통 정도로, 차츰차츰 주법을 다양하게 숙달시키면 12기통정도까지는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절대피팅이라는 만들어진 이상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피터들도 피팅을 하며 피드백을 귀담아 들으며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피팅만사해결주의로부터 좀 벗어나자. 피팅은 상품이 아니다. 한 번의 구입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다. 자전거에 대한 이해다. 정비 상식, 근육성장에 대한 이해, 훈련에 대한 이해와 같은 주제들인 것이다. 자전거와 함께 하면 자전거 라이프가 풍성해지는 주제들.

나는 MTB를 10년 넘게 타면서 잘못된 자세와 습관이 몸에 익었다. 습관대로 타기 편하게 세팅하게 된다면 정상적인 라이딩 자세를 취하지 못할 것이고, 나의 성장한계는 딱 거기까지. 선이 그어질 것이다. 정상적인 라이딩 자세를 취하거나 더 좋은 주법을 익히지 않으면 성장은 없다. 성장 과정에서 통증이 발생할 수 있고 몸이 적응하는 기간도 가져야 할 것이다. 단번에 급작스럽게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무릎통증은 현명하게 극복할 문제지, 피할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은 내가 나의 피터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원리와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내 자전거 세상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무릎 통증의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 이 문제는 정말 재밌고 보람차다. 도전의식도 끓어 오른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북악 PR을 단축하는 것보다 더 큰 성취감을 가져다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멸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가 우려하던 부작용은 여전히 가진 채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세상을 집어삼켰다. 돈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돈이 사람행세를 한다. 사람은 되려 돈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개인의 의지와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흐름의 방향에는 더욱 가속이 붙고 관성은 커진다. 패러다임 쉬프트의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한 두 건의 사건만으로 이 관성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고쳐나가자는 사람은 있어도, 자본주의를 엎어버리자는 극단적인 사람은 없다. 그만큼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위에 삶의 터전을 쌓아 올렸다.

 

  • 시작과 방향

이 모든 사건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돌도끼를 만들고, 바퀴를 만들고, 옷을 만들어 입으며 시작되었다. 만드는 행위가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었으니 인간은 만드는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도구를 가진 부족은 생존확률이 높아졌다. 만들지 못하는 부족은 자연 도태되었다. 살아남은 부족은 만드는 능력을 후대에 물려주었고, 후대는 다시 발전시키는 것을 반복하며 인간은 더욱 잘 만드는 존재로 거듭났다. 만드는 존재, 지금 경제가 가지고 있는 벡터의 시작이다.

만들어진 물건을 교환하며 경제가 생겨났다. 경제의 가장 작은 단위는 교환이며, 중간 단위는 시장이고, 가장 큰 단위가 경제다. 교환을 쉽게 하고자 조개 껍데기로 환산하던 약속이 발전해 돈이 되었다. 돈은 노동가치를 환산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만드는 데에 12시간 들어간 의자는 12시간 동안 포획한 생선과 같은 값어치를 가졌다. 노동이 있으면 돈을 벌어낼 수 있고, 돈이 있으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돈은 노동본위제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비결, 승리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고객 중심” 돈을 가진 자의 번영과 풍요를 위해 모든 것을 최적화하면 그만이다. 돈을 가진 자의 게으름과 탐욕을 위해 모든 것을 최적화하면 그만이다. 혁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에도 공통점이 있다. 더 많은 양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효율적으로,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빠르게, 더 직관적으로, 더 편리하게, 더 쾌적하게,  더 더 더 더 더 뒤에는 무엇을 붙여도 맞는 말이 된다. 더 하기만 한다면 승리의 전략이 된다.

 

  • 최적화

경제에는 세 가지 구성원이 있다. 생산자, 소비자 그리고 중간자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이어지기 어려우니 연결의 역할만 하는 중간자가 생겨났다. 재화시장에서는 유통업자라 불리고 서비스 시장에서는 중개업자라 불린다. 교환은 가치의 이전이다. 가치는 고유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교환이 이뤄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가치다. 가치의 차이를 통해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이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보다 쉬운 방법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높은 가치의 상품을 싸게 사거나 낮은 가치의 상품을 비싸게 팔면 이익이 남았다. 포장, 설득, 제안, 협상 능력이 생산능력보다 중요해졌다.

생산자와 중간자는 돈 맛을 봤다. 신이 나서 손을 잡고 춤을 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전만큼 팔리지 않았다. 필요에 대한 공급은 포화되었다. 욕망에 공급하니 조금 더 팔 수 있었다. 오래가지 않아 필요도 욕망도 포화되니 더이상 팔 것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더 더 더 관성을 유지하고 싶어했다. 시장의 합인 경제는 더 더 더욱 그러했다. 국가도 나선다. 생산자, 유통자, 국가가 함께 손을 잡고 미친듯이 소비자를 만들어냈다.

모든 것이 포화되었다 싶으면 침체가 찾아왔다. 몇년 주기의 소침체, 기십년 주기의 대침체를 겪고 나면 경제는 다시 일어서서 가던 길을 갔다. 지구의 땅덩이는 좁고 인구는 무한정 늘어날 순 없으니, 소침체 대침체는 넘겨도 기백년 주기의 태침체는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드디어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는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나왔다. 실체는 없어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주장. 어떤 상품도 서비스도 없다. 알맹이는 가라. 껍데기는 남고. 거래의 형식만 남겨라. 가상의 가치를 교환하자. 희망과 불안이란 감정에 팔자. 실존하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다. 돈만 오가면 그만이니까. 금융시장 얘기다. 실존하지 않음에 거래는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물리적인 제약도 시간적인 제약도 없다. IT기술이란 부스터도 달았다. 거래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거래가능한 품목의 수량도 무제한에 가깝게 늘어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 [객단가*거래수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 비판

생산 도구로서의 인간 값어치는 하루가 다르게 무의미해진다. 결정된 미래이기에 이미 무의미해졌다는 미래완료시제를 써도 틀리지 않다. 생산성 측면에서 인간은 로봇에 한참 못미친다. 이 이유로 사람을 해고해도 비난받기는 커녕 우수한 경영자라고 상을 준다. 만 명의 일자리를 없앤 사람도 백 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

유통업자와 중개업자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같다. 중간자는 곧 시장이 된다. 시장의 앞면엔 번영과 풍요가 그려져 있다. 뒷면엔 인간의 게으름과 탐욕이 그려져 있다. 당연하게도 모든 시장은 앞면의 모습으로만 보여지길 바란다. 활기 넘치는 건강한 시장의 모습이지만,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미친 자본의 사회를 가속화시키는 것도 시장이다. 연결이 조금만 천천히 되었다면 지금의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인류가 적응할 시간을 조금은 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인간의 의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돈의 의지로 돌아간다.

나에게도 다른 대책은 없다. 내일도 출근하면 돈이 시키는대로 직원의 생산성을 측정하고 평가해 키워내라고 닦달할 것이다. 인간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한없이 나이브하고 비생산적인 낭만주의자로 취급받겠지만. 빨리 이 자본주의 룰속에서 게임을 승리시킨 뒤에 여생을 보장할 만큼의 현금 다발을 쥐고 낭만을 찾아 세속을 뜨고 싶다. 낭만의 세계는 성과로 측정되지 않으니 낭만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적어도 그 곳에선 미친 자본이 나의 의지와 판단을 조정하진 않을 것이다.

 

  • 그리고

게임의 룰이 그렇다. 이익을 조금 취하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익을 많이 취하면 나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쁜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룰에 따라 이겼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더군다나 개인의 안녕과 풍요, 가족의 안녕과 풍요를 위한 일이기에 선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폐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으니 악한 것이다. 거래상대는 상대적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의 욕망, 이익추구, 이기심이 부딪혀가는 곳이라는 배웠기에 나쁜 것은 아니다. 한 건의 거래에도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잣대를 들이대면 이렇게 복잡해진다. 이곳엔 윤리가 없다.

가치판단이다.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그르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대립하는 사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모순되는 가치관을 한 사람의 좁은 마음에 품어낼 순 없다. 누구든 치우친다. 치우친 상태로 대립하고 혼돈에 빠져 허우적 대는 것이 한낱 개인의 최선이다.

치우치면 편할 것을, 선택하면 편할 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이렇게 정리해보려고 글을 쓴다. 돈을 벌고자 한다면 부자의 가치관과 생각구조를 따르면 될 것이고, 다른 곳에 삶의 의미를 두고 있다면 그것을 따르면 될 일이다. 선택한 사상 이외의 가치관은 배척하고 부정하면 될 일이다. 굳이 모순되는 가치관을 내가 다 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나는 선뜻 택하지 못한다. 모순만 발견했다. 나는 오늘도 치우치지 못했다.

세상이 그러하듯 나 또한 카오스모스다. 괜찮다. 혼란과 대립이 존재하기에 당신은 균형의 상태다. 그저 엔트로피가 조금 높을 뿐이다.

 

— 덧붙임 —

생각숙제1 : 생산하는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무가치해진 시대, 인간의 가치는 0인가 null인가.

생각숙제2 : 비생산의 영역에서 인간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생각숙제3 : 노동은 이미 무의미해졌는데(미래완료), 왜 돈은 여전히 노동본위제일까?

 

— 덧붙임 210619 —

경제가 시키는대로 움직이다보니 존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였다. 정반대로 향하려는 가치 사이에서 고민했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이 답을 주었다. 존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경제활동을 추구하면 된다.

  • Mission / Job / Work / Task

전형적인 상하위 hierachy구조, 피라미드 구조다. 이 구분법은 “그 일은 너무 중요하지 않아.” 혹은 “그 일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와 같이 현실적으로 오늘 당장 집중해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할 때에 자주 쓰인다. 또는 미래 계획을 세울 때에 너무 구체적인 실행단계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실행에 집중해야 할 때에 근원적인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을 막아야 할 때에도 도움된다. 하지만 일의 계층을 구분하고 레벨을 구분하는 것은 추상적으로 도움될 뿐, 실무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 일의 단위화

일을 Chunk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모두 파악된 상태라는 것이다. 일에 대한 파악은 [현황파악 > 문제정의 > 해법제시 > 실행방안] 네 단계로 진행한다. 지금 비드폴리오의 구성원들과의 협업관계에서는 일을 Chunk단위로 만드는 단계가 생략되어 있다. 현 구성원들은 일을 Chunk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Chunk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현황파악 > 문제정의]을 제시해야 한다. 현황파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불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더라, 저렇더라. 보이는 대로 씨부리면 그것이 현황파악이다. 현황과 문제를 구분하는 이유다.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 풀어야 하는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 문제를 구분해내지 못하는 단계에서 현황만 지껄여대는 것은 도움 되기는커녕 정보의 공해를 만들어 훼방을 놓는다.

때문에 정의되지 않은 현황, 정의된 문제, 완성된 Chunk의 과업은 모두 구분되어야 한다. 현황은 쏟아 내고 끄집어 내야 한다. 문제의 정의는 파고들어야 한다. 각각의 행위가 다른 것임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구성원들의 role playing도 정의되어야 한다. 업무 논의, 기록 공간 또한 각 행위에 최적화되어 마련되어야 한다.

완성된 Chunk의 과업은 따질 게 많다. 완성된 일의 성과가 얼마나 큰지, 소요 자원은 얼만큼 들어가는지 input과 output을 비교해 가치를 판단한다. 해법이 얼마나 적합한지도 따져야 한다. 실현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도 따져야 한다. 해당 일을 담당하는 사람의 역량도 따져져야 한다.

  • 로드맵을 짭니다.

실행하는 사람의 로드맵은 실행자 각자 짜여져 있어야 합니다. 실행자의 로드맵이 없는 상황에서 상관, 상부 관리자는 어떤 판단과 지시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로드맵의 부재는 부하의 문제입니다.

  • Priority Management

상관은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부하는 판단기준과 판단방법을 배웁니다. 상관의 판단과 부하가 판단이 일치해지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상호 노력합니다.

  •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빠지지 않습니다.

[문서냐 이메일이냐 노션이냐 GDSS냐 카톡이냐 대면맞짱이냐 커피타임이냐 이면지낙서냐 단체회의냐 좌장주도지시냐 상명하복하달이냐 실무자의바텀업이냐 브레인스토밍이냐 연구조사냐 R&D냐 정보취합이냐 데이터기반통계냐 머신러닝이냐 MECE냐 귀납이냐 연역이냐 린스타트업이냐 해커톤이냐 역할게임이냐 OO학원이냐 스프린트냐]에 상관없습니다. 그건 그저 매개체일 뿐입니다. 실행방안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방법일 뿐입니다. 도구일 뿐입니다. 뭐든 어떤방식으로 하든 문제가 문제해결의 틀에 맞춰져야 합니다.

일을 지독히도 못하는 조직에 몸 담은 적 있다.
그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을 망치고 있었다.
공통점을 찾으라면 ‘지들 마음대로’
그들은 천성대로 일하고 있었다.

성급한 사람은 아무 소리나 지껄였고,
주장이 강한 사람은 고집을 피웠으며,
소심한 사람은 의견을 숨길 수 밖에 없었고,
권위적인 사람은 결속력을 헤쳤다.

경험삼아 용돈벌이삼아 방학이면 노가다판에 종종 나갔다. 공사장에서는 6시가 되면 조례를 하고, 안전수칙을 외고, 운동으로 몸을 풀며, 서로 조심하고 주의하라고 반복했다. 팔자에 없는 요리를 하느라 주방에서도 몇 년 일했다. 주방에서는 정신을 팔면 손가락이 날아간다. 흉터가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일에 임하기에 적합한 태도와 자세를 익히게 된다.

셔츠입고 출근해 궁둥짝 깔고앉아 모니터 앞에서 하루를 보내는 우리는 육체노동하는 분만큼 일에 적합한 태도와 자세를 갖추려고 할까? 대체로 아닌 것 같다. 일에 임하는 태세가 일의 품질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올바른 태세를 취하지 않고 일을 한다. 가끔 보면 일을 망치려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것 같다. 아이고! 제 인생 밖에서 망해주세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럽답니다.

일에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없다. 반대로 사람에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일도 없다.

인간은 본디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태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업무 능력은 돌 쪼개기, 물건 수집하기, 개구리 사냥하기 따위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업무능력은 현대 인류에게 부자연스러운 과업이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위적 학습과 숙달이 요구된다.

천성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발전하는 기계화와 자동화로 인해 대체되고 있다. 표면적인 현상으로 경쟁과잉이라 일컫어진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은 지속가능성이다. 결국에는 일자리 소멸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해진 미래의 역사다.

태생적인 능력과 업무요구자질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질 것이다. 인구의 절반이 농사를 짓던 시대에는 태생적 업무 능력만으로 절반가량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업무는 더욱 전문화될 것이고, 하나의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전교육과 준비기간도 길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이 평생 과업인 것으로 여긴다. 천성에 맞는 직업을 찾은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특별한 케이스들이 많겠지만, 내 인생계획에 대체로 참고되지 않으니 일반화 시켜선 안 되겠다.

사람에 맞춰진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해선 안 된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진입장벽이 낮은 시장은 쉽게 포화된다. 시장이 포화되면 보상의 크기가 작아진다. 보상이 작아지면 지속가능성이 없어진다. 지속가능성이 없는 일은 1년 뒤에 어차피 망한다.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일이라는 것은 대체로 우리의 습관에 반대한다. 어렵고 불편한 과제다. 하지만 천성을 거스르고 이겨낼 수 있을 때, 그 보상의 크기는 커진다. 어려운 과제일수록 도전하는 사람은 적고, 성공하는 사람은 더 적다. 경쟁자가 자연히 줄어들어 성공확률은 높아진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고유한 가치란 없다. 모든 가치는 관계 속에서만 평가된다. 일하는 사람은 일로 평가된다. 반대로 일 또한 독자적이지 않다. 인간 천성에 맞춰지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지만, 너무 어려워도 달성하지 못한다. 사람을 일에 맞추려는 노력만큼 일도 사람에 맞춰야 한다.

일을 사람에 맞추고, 사람을 일에 맞추려는 노력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노동의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시대에 가장 확실하게 성과를 추구하는 방법이다.

일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은 헛되다.
일 안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성과가 필요한 것이지, 일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일은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일이 아닌, 성과를 좇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일은 성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은 성과가 아니다.
되레 일은 비용이고, 지출이다.

일은 input이고,
성과는 output이다.
적은 input을 들이되, 많은 output을 내어야 한다.
최대 output이 한정적이라면, input을 최소화해야 하며,
요구 input이 고정적이라면, output을 극대화해야 한다.

조상님들은 일을 하면 돈은 자연 따라온다 했다.
조상님들은 집을 직접 지었고, 벼를 직접 키웠다.
당시엔 일이 성과로 직결되었다.
당시엔 일을 적게 하면 output이 줄었고,
당시엔 일을 많이 하면 output이 늘었다.
당시엔 input과 output이 정비례했다.
집구석에서 밥만 축내는 삼득이는 input이 0으로 계산되었다.
따라서 output을 늘리기 위해 input을 최대투입하는 게 옳은 계산이었다.

직업의식, 노동정신, 올바른 인간상이 만들어졌다.
피땀흘린 노동은 보람차고, 요령을 피워선 안 되며, 불로소득은 죄악이라 했다.
식충이 삼득이를 생산인력으로 만들 설득논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필요에 따른 이데올로기였을 뿐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일이 성과로 직결되지 않는다.
일과 성과의 거리가 꽤 멀어졌다.
고차 산업에서는 생산결과물이 가시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일을 한다고 해서 성과가 약속되지 않는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다.
성과가 나지 않으면 돈이 따라올 리 없다.

자동차가 나온 뒤 마차는 무의미해졌다.
세탁기가 나온 뒤 손빨래는 무의미해졌다.
농약드론이 보급되면 농약치는 행위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output이 input보다 작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output이 input보다 작아졌다는 것은 생산성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뜻한다.
정말 지긋지긋하고 숨막히는 싸움이지만 도망칠 길은 없다.

일을 정면으로 응시해보자.

일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의 통념을 뿌리뽑아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습관과 행동양식을 교정해야 한다.

일을 좇는 사람은 노예가 되고,
성과를 좇는 사람은 자유인이 된다.
피땀흘린 노동은 미련한 짓이며, 요령껏 효율적으로, 소극적 소득을 추구해야 한다.
최대한 적게 일하고, 최대한 쉽게 일해야 한다.
일은 수단이다.
일은 비용이다.

일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성과가 가장 우선이다.
일은 가장 나중이다.
무턱대고 일에 달려드는 태도는 올바른 순서가 아니다.
일이 무의미해진 시대에 일로 승부를 보려다간 몸이 박살나고 말 것이다.
기대되는 output을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input을 따져보아야 한다.
input대비 output이 상회한다면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input대비 output이 2배수라면 짭짤하겠다.
input대비 output이 4배수라면 재미 좀 있을까?
input대비 output을 10배로도 만들 수 있을까?
이미 이긴 게임을 확인하는 과정으로서 일에 임해야 한다.

어떤 일이건 목표는 똑같다.
빨리, 많이, 잘하면 된다.
잘하는 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생략된다.
잘하지 못한다면 속도와 양을 따질 필요도 없이 무의미해진다.
빨리는 input을 줄이라는 뜻이고,
많이는 output을 늘리라는 뜻이다.
이 둘을 합쳐 Quantity라 부르고, 잘하는 것을 Quality라 한다.
잘한다는 전제 하에,
빨리, 많이 하면 된다.

성과가 유의미하고,
일은 무의미하지만,
일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은 유의미하다.
성과를 높여야 하고,
일은 줄여야 하기에,
일을 줄이기 위한 일을 해야 한다.

일을 줄이고,
성과를 내자.

— 덧붙임 —

인생철학 아니다.
게임공략 같은 것이다.

나는 매체를 운영했다. 하루에 2만 명씩 들어왔다. 서버 전송 트래픽은 일 50기가에 달했다. 팬 수는 쌓여 7만 명의 팔로워가 생겼다. TAT지수도 아주 높았고 좋/댓/공의 비율도 타 채널과 비교해 아주 높게 유지됐다. 핵심 독자 층이 어느 매체보다도 높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확보한 이 트래픽의 값어치가 대단히 가치있는 것인 줄 알았다. 트래픽 장사치였던 나는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렇게 자신을 속였다.

트래픽 측정 단위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각각의 전환에 대한 값어치를 계산해보자. 일반적인 계산법이 없으니, 나의 지난 3년 경험을 토대로 상대 비교 공식을 마련해본다.

 

PV (Page View)

PV는 가장 낮은 트래픽 측정 단위이다. 한 페이지가 보여졌다는 조회 기록이다. 어떤 이는 2분 동안 정독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페이지에 들어오자마자 3초만에 나갔을 수도 있다. 또 해킹 로봇에 의해 공격 당해 증가하기도 한다.

1PV

좋아요 / ♡ / 공감

콘텐츠를 단순히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한 번의 클릭을 통해 자신의 감정반응을 남긴다. 10PV가 발생하면 그 중 1/10의 사람이 피드백을 남긴다. 10PV는 1좋아요와 맞먹는다.

10PV = 1좋아요

댓글 / 공유

댓글과 공유는 단순한 클릭 피드백보다 높은 단위이다. 텍스트를 입력해야 하고, 공유시 소개할 멘트를 새로 생각해야 한다. 피드백을 남기기 위해 더 큰 수고와 시간을 요한다. 10좋아요는 1댓글 혹은 1공유와 맞먹는다.

100PV = 10좋아요 = 1댓글(공유)

도달

Social Network Service는 네트워크 서비스다. 이름대로 연결을 촉진시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그들이 연결을 많이 발생시키기 위해 쓰는 전략으로 트래픽을 쪼개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PV보다도 낮은 단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리보기 콘텐츠를 만들어 냄으로 콘텐츠의 목차를 만들어낸다. 세분화된 프리뷰 콘텐츠를 묶어서 보여주기도 하고, 빠르게 다수의 콘텐츠를 검토할 수 있도록 사용자 환경을 제공한다. 페이스북의 ‘도달’이 대표적이다. 자발적으로 퍼져나가는 아웃링크 콘텐츠는 도달>PV 전환비가 5:1 수준이지만, 광고 콘텐츠의 경우 100:1이하의 전환이 일어나기도 한다. 평준화하기에는 너무 폭이 크지만, 트래픽 계산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 광고이기 때문에 조금 후하게 쳐서 10도달이 1PV와 맞먹는다 하겠다.

1,000도달 = 100PV = 10좋아요 = 1댓글(공유)

메시지

매체 운영자 혹은 콘텐츠 게시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댓글 혹은 공유보다 높은 트래픽 단위이다. 댓글에 친구를 소환하거나 시덥잖은 농담을 남기는 것보다 적극적인 피드백이기 때문이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면 메시지의 비중이 아주 높을 것이다. 나는 콘텐츠 배포가 주요 활동인 매체를 운영했기 때문에 메시지로의 전환은 낮은 편이었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100개의 댓글이 달리면 1개의 메시지가 왔다.

100,000도달 = 10,000PV = 1,000좋아요 = 100댓글(공유) = 1메시지

메일 / 전화문의

메일을 받았다면 메시지를 받는 것보다 10배 기쁜 일이다. 메시지는 SNS에서 연결을 늘리기 위해 마련해둔 여러 장치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증폭된 트래픽이기 때문이다. 페이지 관리자의 메시지 응답률 및 평균 응답시간을 노출시킴으로 메시지가 활성화되길 넛지 유도한다. 메일을 보낸다는 것은 이런 인위적인 공작활동과 상관없이 진정 연락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어서 연락하는 것이다. 메시지는 ‘하이, 헬로, 저기요’라고 구어체로 말을 해도 되지만, 메일은 자기소개와 함께 비즈니스 매너를 갖춰 맥락에 맞춰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역시 요구되는 시간과 노력 측면에서도 차이 난다. 전화문의는 메일과 거의 동일한 무게를 가진다. 나는 메시지 10개를 받으면 메일은 1통 정도 받았다.

1,000,000도달 = 100,000PV = 10,000좋아요 = 1,000댓글(공유) = 10메시지 = 1메일(전화)

대면 미팅

나는 매체를 운영함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도달되었다. 동시에 온갖 세상 뜨내기들과 연결되었다. 댓글도 보고, 메시지도 주고 받고, 메일도 주고 받고, 전화 통화도 온 종일 하는데, 실제로 쓸모있는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 의아했다. 직접 대면미팅으로 이어질 정도로 강한 관계는 없이, 상대가 별 생각 없이 엄지손가락으로 10초 만에 남긴 피드백에 내가 10분씩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 억울했다. 각 트래픽 마다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서 서로의 손을 쥐며 인사하고, 커피를 서로 사겠다며 다투는 정도의 인연은 10통의 메일 혹은 전화를 받으면 1회 발생했다.

10,000,000도달 = 1,000,000PV = 100,000좋아요 = 10,000댓글(공유) = 100메시지 = 10메일(전화) = 1미팅

 

따라서, 내가 당신을 만나 커피를 한 잔 마신다는 것, 그 관계는 페이스북에서 1천만 명에게 도달하고, 10만 명에게 따봉을 받는 것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

이 외에도 술자리를 갖는 관계의 무게 X10, 메말라빠진 디지털 시대에 쓰여진 아날로그 감성 손편지의 무게 X10,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관계의 무게 X10로 측정해보려고 했으나 무리수인 것 같아 그냥 관둔다.

 

난 3년간 매체를 운영했고, 3달 전부터는 거래 중개일을 하고 있다. 다시금 확인한다.

10만 개의 페이스북 좋아요 보다 10만원 짜리 거래 한 건이 훨씬 중요하다.

기술기반도 아니고, 혁신적이지도 않았으며, 비즈니스 모델도 명확하지 않아 좋은 투자대상도 아니었다. 따라서 스스로를 스타트업이라 하지 않았다.

산업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발을 들이려 미디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창업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간다. 이 쯤되니, 스타트업이고 말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나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일까? 라는 궁금증이 든다. 그래서 기록을 남겨보자면;

 

2014년 06월 온라인 큐레이션 매거진 & 페이스북 페이지
2014년 07월 식품산업의 MICE 활동을 온라인화
2014년 09월 셰프를 소재로 하는 버티컬 미디어 – 셰프에 관한 뉴스, 셰프가 보는 뉴스
2014년 12월 F&B 관련 업체들이 함께 쓰는 코워킹 스페이스
2015년 01월 미식 콘텐츠 기업 – 식품기업 홍보 & 마케팅 대행
2015년 03월 요리사에게 가장 신뢰받는 온라인 미디어
2015년 05월 주방근무자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2016년 02월 News & Jobs 모델로 F&B의 산업인력을 위한 구인구직 서비스
2016년 04월 레스토랑의 수발주 시스템 – 외식산업의 B2B 시장 47조 중 음식점납품은 27조
2016년 06월 ….

 

이렇게 많은 일을 벌이고, 조사하고 그림 그리기를 반복한다. F&B 산업은 테크황무지라는 것은 명확한데, 내가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 수 있겠단 확신이 없으니까 계속 헤매는 것이다. 기술이 있어야 한다. 기술을 내재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