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물질적 풍요는 충족되지 못했을 때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 또한 결여되어 있을 경우 좇게 되는 것이다. 예술적 창조성은 내면에서 분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은 배움을 갈망하는 자가 원하는 것이다. 욕구가 없는 내 인생은 갈 곳을 잃었다.

욕구가 없는 내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1., 욕망의 대상을 가지는 것이다. 2. 역할을 통해 의무와 책임에 구속되는 것이다. 3. 내면의 창조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4. 가장 순수한 내 모습을 찾는 것이다.

직업이란 종종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단순히 여겨지고 있지만, 어쩌면 이 네 가지, 순수한 욕구를 일깨우는 일이다.

나는 나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할수록 나의 추악함에 실망하고 경명감을 느낀다. 인간은 아름답지 않으며, 나는 그 인간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한,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은 별종인 셈이다. 인간적이지 않으며 더 우월하다고 착각하지만 전혀 그렇지도 않은, 그저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먹고, 보고, 반응하는 기계로서의 인간에 그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그 이상의 존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도망쳤다. 기계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도망쳤고, 생존의 위협에서 도망쳤다. 월세 30만 원짜리 지하방에서 도망쳤고, 싫은 놈들로부터 도망쳤다. 싸움과 분쟁이 있으면 도망쳤으나 내가 간 곳에 평화와 이상이 있는 곳 또한 아니었다. 목적지를 정해두고 달린 적도 있었으나, 이내 달성하고 지루해져 탈출하고자 안달이 난다.

기계단계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기계로서의 인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기계 내에서 서로 갈등을 일으켰다. 기계적 인간 단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정교하게 기계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해진다 한들 일련의 자극-반응 과정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천천히 우연적으로 일어나던 반응이 더욱 빠르고 실수없이 일어나는 쪽으로 인간이 향해가고 있다면, 아마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일 것이다.

그렇다고 경이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계적으로 계산된 쾌락 알고리즘이 나에게도 장착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작동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미녀를 마주하거나, 동물을 만지거나, 새로운 풍광을 보고, 음악을 듣고, 스토리를 듣는다. 특정한 감정을 활성화하는 자극들은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에 손만 뻗으면 언제나 취할 수 있다.

미션 달성을 통한 만족감, 성취감은 그보다 더욱 크다. 나는 사회적 관계에서 이런 성취를 느끼지도 않고, 창작물을 통해서 느끼지도 못한다. 두 목표는 내가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앞서 나의 욕구가 향할 곳을 찾지 못했다는 혼란스러움을 고백한 바에 따르면, 나는 성취를 통한 쾌락도 충족이 어려운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쉽고 빠르게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인스턴트 성취를 좇는다. 게임이다. 미션이 주어지고, 단시간에 몰입 가능하며, 내 노력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고, 성취를 통해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정신적 쾌락이 엄청나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것이 쾌락이 아니라, 어떤 숭고한 가치는 있을까? 과연 있을까? 이렇게 염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그런 가치가 있을까?

 

— 덧붙임 (21.02.24) —

이놈의 허무주의가 또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네. 이 에너지를 추구와 탐구를 향하게 해야 한다. 이놈에게 잠식당해선 안 된다.

성인이 된 직후, 난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다. 내 몸속에 그와 관련된 것이 있다면 다 끄집어내려고 했다. 그도 모자라 주변 사람들의 믿음마저 틀렸다고 간섭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신론자라는 타이틀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의 무신無神이긴 하지만, 신이 있건 말건 무신 상관이냐는 무신無信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여 반신反神론자나 불신不信론자로 불러 달라 했다.

그리곤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논리를 챙겨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 세계관을 선택하는 것인 줄로 알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나는 당연히 과학의 편에 서야 한다고 믿었다. 과학은 세상의 거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지만, 종교의 관점으로는 모순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게 나의 근거였다.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다르니, 종교인과의 세상 이해 방법에 대한 논의는 정상적으로 진행된 적이 없다. 나도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 외엔 별 목적도 없었다. 내뱉은 이야기가 서로의 고막까진 닿았을까? 주워들었던 논증을 더듬거리며 끄집어낼 뿐이었다.

 

난 오래 지나지 않아 반신론자가 아닌 불가지론不可知論자가 되기로 했다. 겸손해졌다기보다는 허무함이 들어서였다.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말을 함으로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은 말할 수 없기에 침묵해야 했다. 세상의 방대함에 비하면 인간은 너무 하찮은 존재였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하찮은 나 따위가 감히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내가 가졌던 믿음에 대해서도 의심해보았다. 아구가 좀 잘 맞아 떨어졌을 뿐이지, 과학 또한 상당 부분 가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상은 제한적임에도, 그마저도 불확실한 감각기관에 의존해 읽어 들이고 있었다. 세계관에 대한 고집은 자연스럽게 꺾였다.

난 검증되지 않은 것을 추종했고 맹신해왔다. 종교를 극복한 게 아니었다. 과학과 이성을 그 대상으로 택해 종교 삼은 것이었다. 타인을 비방하는 데 바빴던 나는 정작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삶에 대한 성찰이나 감사함이 결여되어 있었기에 내가 비방하던 이들보다 나을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생긴 신념의 공백 상태는 다행히도 금세 다시 채워졌다. 먼저 살다간 분들이 샘플 삼을만한 신념을 책에 많이 남겨둔 덕이다. 적극적으로 복제하기도 하고 나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신념은 다시 내뱉기도 하면서. 그리고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살아갈 태도라는 것을.

 

핸들을 잡지 않은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다. 결국 내가 잡아야 할 핸들이지만, 가끔 겁이 난다. 핸들을 잡으면 피곤해도 졸 수 없고, 신경 써야 하는 게 어찌 그리 많은지. 주행 경험도 없을뿐더러, 사고가 났을 때의 책임을 생각하면 사는 게 너무 버겁다.

신념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주변에서 보이는 대로 아무거나 주워 담기도 한다. 내가 과학을 기반으로 한 atheist의 논리를 주워 담았던 것처럼. 비단 종교뿐만 아니라 부모, 선배, 친구, 소속된 사회에 제 핸들을 떠넘긴다.

나약해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내 인생의 핸들을 잡아주길 바라는 것. 나의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는 것. 책임을 떠넘기면 당장은 홀가분하지만 이내 손해 보는 장사라는 것을 깨닫는다. 책임과 권한은 언제나 쌍으로 붙어 다니기에 권한도 함께 넘어간 탓이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내 삶의 통제권을 타인에게 이양하는 셈이다.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든 치열한 시대에, 핸들을 선뜻 잡아주겠다고 나타난 사람이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독재자의 야욕, 자본의 탐식, 절제 없는 욕망 따위의 것들이 아니고서야 타인의 핸들에 관심 가질리 없다. 한 번 타인에게 넘긴 핸들은 다시 되찾아오기가 어렵다. 권한도 책임도 없는 평안한 상태에 너무 익숙해진 것이다.

나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삶의 통제권과 책임을 모두 내가 쥐게 된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겁도 났다. 이제는 내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사고를 고용주의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시나 무겁다. 그런데 묘하게 안정감이 든다.

“이거 하면 대박 날 것이다”, “저 아이템은 이제껏 없던 혁신이다” 따위의 이야기들에 진절머리가 난다. 사업은 도박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의 시도에 모든 것을 걸어선 안 된다. 성공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성장이라도 이뤄 내려면… 아니, 그보다 앞서, 최소한의 밥벌이라도 하려면, 실행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오늘 할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통제가능성이 높아야 하고, 통제가능성을 높이려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곱씹기 위함이다.

성과를 낼 수 있겠단 확신이 들면 통제가능성이 높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면 통제가능성이 낮다고 말할 수 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시간, 자본, 인력, 지식, 인프라 따위를 쏟아 붓는데, 인풋 대비 아웃풋을 예측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통제가능성을 알지 못하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무작정 시작하더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한다.

첫 창업에서는 통제가능성이 높게 나오지 않는다. 처음 해보는 일 투성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어느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 개발/생산/인사/전략/영업… 언제 어디서 사건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심지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통제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성공확률도 낮다.

사람의 일자리를 로보트가 대체해나가고 있다. 인간보다 생산성이 뛰어난 이유도 있지만, 로보트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전력이 공급되는 한 약속을 지킨다. 성능이 일정해 비용, 시간, 성과를 사칙연산만으로도 쉽게 도출해낼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일을 로보트에게 맡기고 싶지만, 로보트가 맡을 수 없는 영역의 일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로보트를 만드는 일?

나는 꽤 로보트처럼 일하고자 하는 타입이다. 내 역량과 속도, 체력을 파악하고 있으면 내가 맡은 일의 성과를 미리 계산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안정감이 든다. 내게 주어진 일은 내가 실력을 키운다면 통제가능성을 높여 완수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일해야 한다면? ‘인성이 바르고, 적극적이며, 업계 경력을 보유하고, 특정 툴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의 인재상을 충족시킨 사람이라도 일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은 약속을 종종 어기고, 아무래도 로보트보단 통제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을 더 치밀하게 세우는 것은 어떨까? ‘거짓말 안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가정환경이 화목했던 사람, 취미 특기가 요란하지 않은 사람’ 따위의 항목을 추가하는 것이다. 또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들 하니, 매일 아침 조례를 통해 희망의 연설을 하는 것은? 아쉽게도 이런 방법들이 먹히지 않는 걸 경험했고, 또 전해 들었다.

생각해보면 꽤 간단한 일이다. 사람을 통제할 순 없어도 사람과의 약속은 통제할 수 있다. 약속을 한 번 지킨 사람은 앞으로도 약속을 지킬 확률이 높고, 약속을 자주 어긴 사람은 앞으로도 약속을 자주 어길 것이다. 처음에는 신뢰가 낮기 때문에 주고받는 약속의 크기가 작지만, 약속을 지킨 횟수와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 약속의 크기를 키워나갈 수 있다. 사회에서 어디 일방적인 약속이 있는가? 조금 더 기대했다가 더 받아 내고, 더 받았으니까 더 주고, 더 준 것에 비해 다시 더 큰 걸 받고… 약속의 크기를 키워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사장이 할 일인가 싶다.

나는 누군가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꽤 관대했던 편이다. 쓴소리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약속을 어기는 사람과는 그 이상의 관계를 안 가지면 그만 아닌가?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속 관계가 꽤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그만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 내가 다른 이와 맺은 약속도 어겨지는 구조에 놓였다.

내가 약속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상대가 약속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접속 중심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그때그때 팔아 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 상품과 서비스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데 유념해야 한다. 산업 시대에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팔면서 무료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되고 있다. 요즘은 후속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겠다는 계산으로 상품을 아예 공짜로 제공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의 의식도 소유에서 접속으로 서서히 기울 것이다. 값싼 내구재는 여전히 시장에서 거래되겠지만 가전 제품이라든지 자동차나 집 같은 고가품은 공급자에 의해 소비자에게 단기 대여, 임대, 회원제 같은 다양한 서비스 계약의 형태로 제공될 것이다.

앞으로 25년 정도만 지나면 소유에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고 구태의연하다는 인식이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서 일반화될 것이다. 소유는 모든 것이 휙휙 바뀌는 풍토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느려터진 생각이다. 사람들은 물적 자산이나 재산을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하는 것이 이롭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소유를 한다. <가진다>, <보유한다>, <축적한다>는 생각은 그 동안 금과옥조로 떠받들어졌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경제 활동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세상에서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곧 자멸하는 길이다. 주문 생산이 일반화되고 끊임없는 혁신과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며 제품의 수명이 점점 단축되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퇴물이 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변화 밖에 없는 세상에서, 소유하고 보유하고 축적하는 태도는 점점 설득력을 잃어간다.

접속의 시대를 지배하는 경영학적 전제는 시장의 시대를 지배하던 전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새로운 세계에서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고 판매자와 구매자는 공급자와 사용자로 바뀐다. 사실상 모든 것이 접속된다.

완전히 성숙한 시장 경제에서도 아직 상업성은 주기적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잠깐 만나서 상품과 서비스의 인도 조건을 협의하지만 그 다음에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 나머지 시장은 시장과 상업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문화적 시간-상품화되지 않은 시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접속 관계에 치우친 하이퍼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우리의 시간이 거의 모두 상품화된다. 가령 소비자가 자동차를 살 때 그가 자동차 판매상과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똑 같은 자동차를 임대의 형태로 빌릴 경우 사용자와 공급자의 관계는 지속되며 계약 기간 동안에는 중단되지 않는다. 공급자는 소비자와의 <상품화된 관계>를 선호한다. 얼마든지 갱신할 수 있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영속적인 교분을 맺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임대, 가입, 등록, 수임료 등을 통해 이런저런 형식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모든 시간은 영리적 시간이 되어버린다. 문화적 시간은 기울고 인류는 영리적 고리를 통해서만 문명을 지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탈근대 사회의 위기이다.

뭔가 하고 싶은데 계획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14년 6월 한 달 동안은 집구석에 박혀서 음식 콘텐츠만 소비했다. 거의 모든 F&B관련 앱을 사용해보고, 거의 모든 F&B 관련 미디어를 돌아다녔다. 밀린 마셰코 틀어놓고 잠들었다가 아침엔 고든램지 욕하는 소리에 일어났다. 조사만 하느라 한 달이 금세 지나갔다.

기존에 존재하는 서비스와 사업모델들, 할 수 있을 법한 아이디어를 한 줄로 정리하니 총 15개가 나왔다. 그래도 뭘 해야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자, 다섯 가지 기준에 따라 각 아이템들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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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로 인해 세상은 고통받고 있는가 / 이 문제를 풀면 세상은 행복해지는가? / 이 문제를 풀면서 돈을 벌 수 있는가 / 나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는가 /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가

총점이 높은 순으로 소트아웃하니 할 법한 일이 몇 개 보였다. 아직 조사가 더 필요했다. 하지만 더 이상 조사할 여유가 없었다. 조사는 이미 2011년도부터 하고 있었으니, 이러다 조사만 하다 생을 마감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엔 F&B 온라인 미디어가 텅 비어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미디어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거라 판단했다. 14년 7월 10일 사업자를 냈다. 일주일 밤새가며 워드프레스로 미디어 구축했다. 매체에 적합한 글을 쓴 사람들을 찾아가 좋은 취지에 공감해달라고 부탁하며 글을 받아 냈다. 핵심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 인맥을 소개받았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다”라며 셰프에 대한 이야기도 다뤘고, 시간이 지나선 셰프가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을 더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미디어 영향력(트래픽, 평판, 활용도)은 예상보다 높은 수치를 달성할 수 있었다. 사람을 꾸준히 만났다. 일주일에 최소한 두 명의 새로운 사람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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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정표의 일부분

15년도 한 해 동안 1일 1콘텐츠 발행을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금은 한 달에 PV가 60~90만가량 나온다. 페이스북 팬 수는 5.9만 명을 넘어가고 있다. 뉴스레터 구독자는 6천 명이다. 취미, 특기, 직업이 모두 요리인 사람들을 독자로 두고 있으니 인게이지먼트와 관련된 수치들이 아주 높게 나온다. 미디어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들 한다. 콘텐츠 소비자가 직접 돈을 주지 않는다. 제 3자의 홍보나 광고를 도와주는 대행일도 외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적게나마 매출은 냈다. 식품회사 홍보부서, 마케팅부서를 찾아가 대행 일을 땄다. 2015년도 한 해 동안 3명이 겨우 라면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냈다. (현재 팀은 2명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궁극적으로 갖춰야 할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 산업은 테크 황무지이며, 산업 내 연결이 부족하구나.” 실제로 셰프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채용서비스는 앞서 평가했던 15개의 사업아이템 중에서 뒤에서 세 번째에 있던 것이었다. 이젠 주 수익원으로 삼을 것이다. 조사만 계속하고 있었다면 기회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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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무실을 얻은 후 벽에 회사의 비전을 붙였다. “산업역군 셰프뉴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미식 콘텐츠기업”를 덮어 붙이고, 또 “요리사에게 가장 신뢰받는 온라인 미디어”를 덮어 붙였다. 지금은 “Connect Culinary People”이 붙어 있다. 사무실을 옮겨서도 비전변경기록은 남기고 싶어 덮어 붙인 느낌을 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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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도 봄부터 푸드테크 열풍이 불었다. 디캠프에서 매달 주제를 바꿔 개최하는 특정 산업 네트워킹 행사인 디파티에서 푸드테크를 주제로 행사를 연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공부도 할 겸 한국의 음식산업 역사, 해외의 푸드테크 시장현황을 조사해서 소개하는 발표를 했다. 이후에 언론에서 뜨겁게 들고 일어났다. 대부분의 푸드테크 서비스들은 소비자단에 몰려있다. B2C가 크면 B2B도 크기 마련이다. 결국 F&B시장의 모든 상호작용은 생산자의 상품이 최종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사람 몰리는 곳에 가지 말라더라. 나는 아무도 가지 않는 B2B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더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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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5 = 625 / 산업에 연결할 지점은 수도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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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뉴스가 바라보는 산업의 모습

15년 봄, 미디어를 기반으로 교육서비스와 채용서비스 쪽으로 확장하겠다고 사업계획서를 업데이트해서 정부지원사업에 지원했다. 연세대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할 수 있었다. 다행히 빚을 지는 상황은 면했다. 지원금 대부분은 제품개발비에 들어갔다. 현금이 생긴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숨통이 많이 트이진 않았지만, 라면에 계란을 풀어 먹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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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뻔하다. 정보제공, 커뮤니티 구축, 홍보 및 광고대행, 이벤트 대행 또는 주최, 박람회, 공간사업, 채용대행, 커머스… 산업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F&B산업에서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은 이 그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수직적확장 이후에 수평적으로 확장한다. 참 꿈만 같은 일인데 그림 그려놓고 보니 안 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스타트업은 기존의 낙후된 시장을 기술로 혁신시키고, 확장성 있는 사업 모델로 빠르게 성장하고, 수익성이 큰 규모의 시장을 두드려야 한다. 스타트업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전의 셰프뉴스를 스타트업으로 보긴 어려웠다. 전혀 다를 게 없는 방식으로 미디어를 운영하려 했고, 전혀 다르지 않은 수익모델들을 검증해왔다.이때까지 셰프뉴스는 임시조직이었으며, 자영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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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디캠프에 입주했다. Game of D.Camp 1차 배치에 합격한 12팀 중 한팀이 되었다. 영광스러운 마음과 가능성을 알아봐 준 사람이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이 일은 셰프뉴스에게 인정받거나 합격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셰프뉴스에게 디캠프 입주는 자영업자의 태도를 벗어던지고, 스타트업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버티컬 미디어’ 또는 ‘산업 미디어’로 소개했으나 오늘부로 미디어 스타트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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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으로 디캠프에서 퇴근한 후, 새벽 다섯 시까지 잠이 안 오길래 그렸다. 계획된 주요 사업(뉴스&잡스)로고를 박고 수평확장 영역에 컬러 브랜딩을 입혔다. 가야할 길이 시각적으로 보이니 지도로 삼을 수 있겠다. 2017년도에는 명함 뒷면을 저 이미지로 바꾸겠다. 물론 로고들도 꽤 채워져 있을 것이다.

 

1달 뒤에는 셰프잡스가 론칭된다.

* 개발팀장님을 재촉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 합류할 동료, 팀장, 직원을 구하고 있으니 회사의 비전과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 첫번째 운영일지 | 8월 21일

셰프뉴스 페이지를 운영한 지 4주가 넘어간다.
운영일지를 쓴다.

  1. 모바일 접속자가 92%에 달한다.
    젊은독자층과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기에 모바일로 접속하시는 분들이 대다수다.
  2. 페이스북이 유일한 콘텐츠 유통 창구
    독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더 효과적인 유통창구는 없을 듯하다. 외식 관련 종사자분들은 IT종사자들에비해 페이스북에 대한 거부감이 더 낮은 것으로 보인다.
  3. 콘텐츠에 따른 반응, 기복이 심하다.
    hook할 만한 콘텐츠 위주로 사이트 트래픽을 높이는 전략은 초기에 필수라 생각했지만, 콘텐츠만으로 웹사이트의 정기방문자를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실시간 소통에 더욱 성실해야 함) 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4. 페이지보다 영향력있는 팔로워 분들도 있다.
    몇 개의 콘텐츠는 페이지에서 공유된 것보다 팔로워(스타셰프)가 공유했을 때 더 큰 인기를 끌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덕분에 새로운 좋아요는 급증한다. 대중을 타겟으로 하기보다는 이 분들을 위한 콘텐츠를 준비하는 것이 더 선명한 목표가 된다.
  5. 소비용 콘텐츠보다는 소장용 콘텐츠의 가치가 높다.
    독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콘텐츠가 독자의 허영심 덕분에 공유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외식산업과 관련된 분들 중에는 배움을 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최신의 실용적인 지식도 다뤄야 한다.
  6. 산업에 네트워킹이 부재한다.
    이 산업에는 온, 오프라인 모두 네트워킹이 부재한다. 이는 3년 전에도 짐작했던 바지만 그 필요성은 3년 전보다 많이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셰프뉴스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
  7. 실속없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대중매체는 대중이 좋아할만한 내용만 쏙 뽑아서 스타셰프를 만들어낼 뿐이다. 광고주와 독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매체는 산업의 주인공을 하이라이트해주긴 하지만 지원해주진 못한다. 그래서 영혼과 철학이 없이 과포장된 정보만 돌아다닌다.
  8.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 : 토론공간, 네트워킹 (가설과 계획)
    한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 정보가 돌아야 하고 사람이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실제 산업 역군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채널로 산업미디어가 필요하다. 실제 산업 역군들끼리 영향을 주고 받을 중간자 역할도 도맡아야 한다. 온라인 포럼과 오프라인 이벤트 진행, 채용 플랫폼 개발이 필요하다.
  9. 혼자 일하기 싫다.
    어떻게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일을 펼치거나 내가 이해한 다음에 일을 진행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아무한테도 도움구하지 않고 혼자 일하고 있다. 그래서 고독하다.
    일의 진척속도가 느려지는 것도 문제인데, 어디 사람 없나? 이 글 보고 간이라도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편히 연락주세요.

 

  • 두번째 운영일지 | 9월 14일

주말에 카페와서 일하고 있다. 주말인건 괜찮은데 카페가 질린다. 다음주엔 사무실을 좀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두번째 운영일지를 쓴다.

  1. 8월 마지막주엔 1주일치 콘텐츠를 모두 예약발송해놓고 4박5일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신나게 놀고 돌아오니 팬이 세 배로 늘었더라. 영상 하나가 250만명에게 전달됐고 6만명이 좋아요를 눌렀더라. 바이럴되는 가속도가 확산이 느려지는 감속도를 훨씬 앞질러서 연쇄반응이 일어나 새 독자를 이끌고 왔다. 임계점을 넘긴 쾌감이 있었지만 모든 콘텐츠가 이와 같은 무작위 확산을 목표로 해선 안된다.
  2. 추석 기간 동안 페이지 홍보를 써봤다. 1명 데려오는데 80~100원 정도 비용이 지출되었으니 다른 페이지보다 훨씬 효율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페이지를 눌렀으니 Engagement가 높은 고객층일 것이라 예상했다.
  3. 이번 주부터 갑자기 스페인, 멕시코,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출신 신규구독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신규팬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당장 광고를 중단시켰다. 한국인들이 주로 유학가는 국가를 제외한 모든 국가의 접근을 차단시켰다.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좋은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2시간 동안 일일이 수작업으로 600명에 달하는 외국인을 솎아내 모두 쫓아냈다. 페이스북에 광고비가 아까웠다며 항의하려 했으나 페이스북은 항의 창구를 만들어놓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 쓴다. 보고 있나!?
  4. 공유 수는 100개가 넘는데 실제로는 10명도 채 확인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 친구들에게만 공유하거나 혼자보려고 숨겼기 때문이다. 유용한 정보들은 확실히 더 그러하다. 바이럴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독자들과 친밀도가 높아졌으니 어쨌든 개이득.
  5. 타 페이지에서 발행하는 콘텐츠 도달율이 보통 전체 팬 수의 10~15%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셰프뉴스는 80~200% 이상 나오고 있다.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코드가 있는 주제라서 다행이다.
  6. 지금까지의 성장률이면 2015년 초까지 10만명의 팬이 모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7. 기존 매체의 소싱, 제작, 유통과정을 온라인 매체에 비교하면 온라인 매체는 콘텐츠 유통비용이 거의 0에 가깝다. 하지만 이걸 이득인줄로 알고 꽁으로 먹으려 해선 안된다. 유통에도 비용을 써야 한다. 콘텐츠 유통량이 곧 매체 영향력의 척도가 된다. 그러니 안본다는 신문도 집어넣어주고 자전거도 주고 하는거다. 온라인도 비용을 아껴선 안된다.
  8. 웹 트래픽은 현재 일평균 800정도, 어떻게든 연말까지 10,000을 찍어야 한다. 일단 트래픽이 있어야 뭐 어디서 본적은 있느냐, 광고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을 꺼낼건데, 아직 800이다. 광고주가 좋아할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여기에 쓴다. 나라면 지금 이 글 보고 바로 광고문의 한다. 왜냐고? 왜냐면 지금 광고 넣어주시면 제가 3달 동안 트래픽 상승해도 광고비 안 올려받을거니까요! 마수걸이 특가할인 혜택을 놓치지 마세요! 하하! (010-7388-1276)
  9. 생각보다 게시판 설치가 쉽게 되었다. 생각보다 사용성이 좋다. 사용자들에게 쓸모 있는 온라인 공간을 기획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PC형 게시판인데 독자 중 90%가 모바일로 접속을 한다는 것도 난제다. 괜스레 디씨도 일베도 운영자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10. 콘텐츠 소싱과 제작에 대해서 어느정도 체계를 잡아놓았으니, 이를 맡아줄 팀원이 필요하다. 셰프뉴스 기자, 편집장, 상시 채용 중입니다. ~_~

 

  • 세번째 운영일지 | 9월 18일

셰프뉴스 의 세번째 운영일지를 씁니다.

3분전에 페이지 알람을 모두 확인했는데도 30개의 알람이 새로 뜬다. 확인해보면 뒤늦게 셰프뉴스를 발견한 팬이 기존에 올려진 게시물을 모두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를 한 상황이다. 페이스북이 아카이빙을 하는 데에는 좋은 플랫폼이 아니지만 콘텐츠 발행자의 기준이 엄격하면 책장을 계속해서 넘기는 잡지만큼이나 볼만한 담벼락이 나올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SNS는 책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지 인사이트(관리자 분석 정보 제공 툴)를 보면 ‘총 도달’수치에 현혹되기 마련이다. 총 도달 수치를 올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대박 콘텐츠를 공들여 기획해 발행하거나 다수의 콘텐츠를 마구잡이로 발행하는 것이다. 다수의 콘텐츠를 마구 발행하면 단기적으로 총 도달이 늘어나지만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껴 이내 기본 도달마저 줄어들게 된다. 팔로우 취소와 게시글 숨기기는 곧 채널의 죽음을 뜻한다. 한 번 잃은 팬과 평판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평판상실은 불과 2주도 채 걸리지 않는다.

콘텐츠 유형에 따라 확산이 많이 되기도, 적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도달은 똑같다. (이는 팬/팬이 아닌 사람의 비율로 알 수 있다.) 모든 콘텐츠가 달리기를 시작하는 출발선은 같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특정 콘텐츠 유형에 잘 반응하는 경향도 있지만 엣지랭크(페이스북의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의 지속적인 정책 변화도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페이스북 엣지링크 정책 변화의 목적은 콘텐츠편식을 중재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광고수익을 늘리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매체라면 그들의 지면을 자신들의 콘텐츠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지면 흐름도 조정하고 콘텐츠의 강약조절도 해야 한다. 페이스북에서의 지면은 페이지나 담벼락이 아니라 독자들이 보는 뉴스피드다. 다른 매체들의 콘텐츠와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페이스북에서 강약 조절을 하려고 했다간 볼폼없고 쓸모없는 콘텐츠만 발행하는 곳으로 보여지게 된다. 플랫폼에 따라 이상적인 편집의 방법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래서 강강강강강 콘텐츠만 발행하는 인사이트와 허핑턴포스트가 뉴스피드에서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레전다리, 에이스, 킬링 스프리, 펜타킬. (제 뉴스피드에선 이미 탈주시킴. 내 뉴스피드의 편집자는 나다!)
미국에서 타블로이드가 판쳤던 125년 전, SNS상에서 황색언론이 재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인쇄할 수 있는 기사는 모두 씁니다.”=>”퍼 나를만한 기사는 모두 씁니다.”

이런 현상이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거나 의식수준이 높아져서 어느 순간에 중단되든, 플랫폼에서 언론중재를 하든, 결국에는 정리되어야 할 상황이고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혹여나 이 상황이 계속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사회현상이라는 소신은 지켜야 한다.

강강강강강을 이용하면서도 올바른 새 언론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곳도 있다.
버즈피드는 미디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술회사로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 포맷을 계속 찾아내고 있다.
ㅍㅍㅅㅅ는 편집자의 역량이 뛰어나서 깊이도 있는 콘텐츠가 있다. 슬로우 뉴스의 좋은 정신을 잘 이어간다고 생각한다.
피키캐스트는 모바일에서 최적화된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 네번째 운영일지 | 11월 14일

운영일지를 쓴다. 한동안 안썼다.

창업일지가 아닌 운영일지로 이름을 붙여 썼던 이유는 3달 전, 페이스북으로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이 재미가 있기에 소셜 마케팅 노하우를 공부하고 복습하고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건 그 둘의 중간 쯤 되겠다.

셰프뉴스는 온라인 미디어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이것 저것 모든 일을 하려는 노가다 서포터 집단이라고 보면 된다. 해야 할 수많은 일 중 온라인 미디어는 30%정도의 비중을 넘지 않게 될 것이다. (미래의 일이겠지만)

구색을 갖추기는 쉽다. 워드프레스 7일 배우니 다 되더라. 영양가있는 콘텐츠 채우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70일 정도 관련 콘텐츠 서핑 계속 하니까 어지간히 볼만한 내용 소싱은 할 수 있겠더라. 산업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실행하는 것은 꽤 어렵다. 아마 700일 정도 계속 하면 될 일일까?

온라인 미디어를 활용해 특정 타겟을 사로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그 사람들의 서재를 뒤지고, 그 사람들의 꿈과 미래 계획을 듣는 것이다. ‘가설 설정과 실행’이라는 어려운 방법론도 필요 없다. 그냥 독자를 만나는 방법이 제일 빠르고 정확하다. 물론 해당 타겟의 울타리가 명확할 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세상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뉜다.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과 미디어에 의해 이용당하는 사람.
산업미디어는 산업 구성원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다. 생태계를 건강하게 발전, 진흥시키기 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은 자신의 이기심을 드러내줘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원동력 또한 기업들의 이기심 아니었던가. 모든 구성원의 이기심이 충족될 때, 그 상태가 건강하다고 정의된다.

산업미디어도 미디어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로써 가져야 할 최소한의 사명감과 책임감은 똑같이 부여 받는다. ‘독자가 원한다’는 변명으로 트래픽 장사를 하다가 욕 먹고 있는 게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이 아닌가. 트래픽 장사치들을 이겨낼 욕심도 없고, 그걸 이긴다고 승리하는 게임도 아니다.

산업이 생기면 정보가 돌아야 한다. (미디어의 역할)
산업이 생기면 사람들이 만나야 한다. (이벤트, 모임, 커뮤니티, 박람회, 컨퍼런스, 포럼, MICE, whatever etc.. 의 역할)
산업이 생겨서 미디어와 모임이 생기는 것일까, 미디어와 모임이 있기에 산업이 성장하는 것일까. 닭과 달걀 이야기다.

미디어가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박람회는 그렇게 될 수 없다.
온라인 미디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산업미디어로써 절대불패의 장점은 아니다. 그냥 조금 유리할 뿐이다.(이미 온라인 미디어로 접근했다가 은근슬쩍 운영 접은 곳 여럿 발견) 미디어로서 해야 할 과제는 똑같이 부여되고, 누가 얼마나 핵심을 잘 파악해 실행해내느냐에 달린 문제다.

새로운 정보나 웹사이트를 찾아내는 방법이 발전되어야 새로운 온라인 활동이 생긴다.

웹 ‘서핑’이라는 표현이 부끄러울 정도다. 더 많은 정보-사람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웹 2.0 시대가 열린 것으로 보자면, 당연히 웹 3.0 또한 정보-사람의 연결을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그 시점에서 일어날 것이다.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 그나마 생각있는 애들이 스텀블 어폰이랑 레딧 정도이다.

https://www.stumbleupon.com/ 모든 서비스가 개인화 큐레이션으로 갈 때 얘는 반대로 간다. 무작위로 간다. 한 페이지로 구성된 웹 정보를 책 넘기듯이 계속 넘겨보면 된다. 진정한 의미의 서핑이다. (2015년 현재, 서비스가 운영되지 않고 있다.)

http://www.reddit.com/ 수많은 페이지들이 공유되고 유저들은 끊임없이 해당 정보에 대한 점수를 매겨서 실시간으로 인기가 있는 정보들이 랭크되어 보여진다. 한국의 라이크링크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http://digg.com/ 얘네들도 레딧이랑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서비스를 했었는데 2012년도쯤 들어서면서 손 큐레이션으로 바꼈다. 전문 큐레이터들이 15명 모여서 종일 큐레이팅만 하는 것이다. 언론사로 보자면 기자는 한 명도 없는데 편집장만 15명이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virtual한 세계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물리적인 한계를 갖게 된다. 위 서비스들과 네이버같은 대형 포털도 결국엔 하나의 infuluencer에 그친다는 점이다. 트래픽이 많든 적든 결국 한 가지 방식으로 정렬된 정보들이라는 것이 한계다.

얘네들의 등장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아직도 아쉬운 것은 이런 key-influncer들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새로운 웹세계로의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섯다리 건너면 세계인이 모두 친구”라지만 이 다리를 두번이라도 건너는 순간 그 사람은 평생 만나지도 못했고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달되어 마땅한 정보는 모두 한 다리안에 놓여져야 하는데 지금의 웹 지도는 그런 상황이 아닌 것이다.

윕키(http://www.wibki.com/) 얘네들도 좀 개념있게 즐겨찾기를 정리하긴 했지만 결국 개인의 생산성 증가 보조도구로만 접근한 것 같아 아쉽다.
즐겨찾기를 chunk 지어서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기대했는데.. (http://8tracks.com/ 처럼…) 타인의 즐겨찾기를 관음하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그 당시 공사가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언제 쯤에야 개관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저 확인하고 싶었다. 저 공간이 뭐하는 곳인지, beLAUNCH가 담길 수는 있는 공간인지.

몇 달에 걸쳐 서울시와 디자인재단에 수십번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는 연결되지 않았고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말하거나, 그런 계획은 없다는 답을 들을 뿐이었다.

한 번은 공사장 개구멍을 통해 몰래 들어가 훔쳐본 적도 있다. 공사와 관련된 사람인척 행세하며 시치미를 뗐으나 “안전모도 안쓰고 어디서 거짓말을 하냐”며 이내 쫓겨나고 말았다.

13년 11월, 드디어 사업담당부서가 신설되었다. 담당자와 연결된 후 하루 세끼 밥은 걸러도 담당자 안부전화 세번은 안거르는 적극적인 구애 후에 beLAUNCH2014 @ DDP 유치 계획서를 보낼 수 있었다.

DDP는 다른 컨벤션 센터와 비교해 대관 Hall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체 전시 이외에는 1년에 10개 정도의 외부 행사만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 가능성을 믿어주신 통찰력있는 담당자분(그분은 유명 방송국 PD 출신이라 하셨는데 나도 모르는 해외 VC이름도 알고 계셨다.)덕에 개최가 승인되었다.

3년차 행사지만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다. 지금까지 올 수 있도록 가능성을 믿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beLAUNCH2014를 그저 대관 고객으로 여기지 않고, 좋은 콘텐츠를 함께 담겠다며 협력해준 DDP에도 감사드린다.

힘찬 출발이었다. 앞으로 남은 한달도 힘내서 화이팅!

나는 편집공학을 준비하면서 기묘한 훈련을 나 자신에게 부과하기로 했다. 그것은 지금 현재 내 머릿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편집 프로세스를 리얼 타임으로 관찰하는 훈련이었다. 즉 생각이 흘러가도록 그대로 두고, 이와 동시에 그 프로세스를 관찰하는 훈련이었다. 잇달아 전개되어 가는 ‘주의’의 ‘추이를 관찰하겠다는 것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 知의 편집공학 중에서

오, 오오… 저는 지금 훌륭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지난 해 11월 서울로 올라왔다. 조연출 자리를 하나 얻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 2007년 9월, 내가 2학년 2학기를 재학하던 중에 그 감독님을 처음으로 뵈었다.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으며, 카메듀서 1세대, 외주 프로덕션 1세대라는 부가설명을 붙일 수 있는 분이었다. 전적으로 그 감독님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나는 정말 큰 횡재를 했다고 감사함을 느끼며 감지덕지 서울로 올라갔다.

내가 투입된 프로젝트는 공중파에 1시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로 나가는 작품이었고 포지션은 조연출. 분에 넘치는 직책과 책임감을 맡은 것 같아서 ‘딴에 뭐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후배들을 모아서 술을 한 잔 샀다.(그것은 실수였다. 후배들은 내가 취업을 한 줄로 알고 연신 축하했고, 무엇보다 나는 조연출 생활 1달 3주를 하면서 고작 120만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60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일당 2만원? 방세를 안냈고 끼니를 모두 제작비로 해결했기에 생활이 가능했었다.)

처음 사무실로 들어서던 그날, 나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될 PD, 작가, 막내작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낮술로 반겼다.

12월 25일 방송을 10월부터 아이템조사를 하면서 11월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됐다. 2달에 가까운 기간을 준비만 한 것이다. 방송국 본사에는 ‘외주제작팀’이 따로 있었다. 외주프로덕션이었던 감독님의 회사는 ’어린이재단‘이라는 단체의 의뢰를 받아서 작품을 기획했고 방송국에서 나온 공고에 지원한 뒤, 수주해서 제작에 돌입했다. 제작비의 총액은 8000만원이었다. 1시간짜리 휴먼다큐를 만드는데 8000만원의 제작비가 책정되었다. 그 중 4000만원은 방송송출료로 본사가 떼먹었다. 한 마디로 4000만원을 내면 공중파에 1시간의 방송을 틀 수 있는 권한을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남은 4000만원으로 회사가 어떻게든 방송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방송국 내부 기관 중 ’컨텐츠허브‘라는 부서에서 또 1000만원을 꼭 가져가야 한다고 우겨대서 어쩔 수 없이 강도당하고 말았다. 회사엔 3000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차를 한 달간 대여하고, 장비도 대여했다. 차는 렌트카회사에서 빌렸고 장비는 여의도의 한 장비대여업체에서 빌렸다. (여의도에는 방송에 관련된 모든 업체가 모여 있는 곳이다. 장비 대여업체부터 외주프로덕션들, 종편실, 녹음실까지 모여있다.) SONY의 Z-5, 와이어리스 마이크, 트라이포드, 도시락(포터블데크)가 빌린 장비였다. DV테잎은 30개를 샀다. HDV1080i로 촬영했다.

촬영이 끝났다. DV테잎은 총 45개 정도를 썼던 걸로 기억한다. (진행하는 중에 아이템이 두 번 엎어졌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다 더하면 총 70개가 넘었다.) 방송이 나가는 25일을 3주 앞두고 편집에 들어갔다. 종로에 있는 맥킨토시 전문 업체에서 맥프로를 한 대 빌렸다. 한 달에 40만원, 깎아서 30만원에 빌렸다. 부산에서는 PD님이 혼자 촬영을 마무리짓고 있었고,(사실 이 때쯤 되니 현장성이니 사실성이니 진정성 따위의 것들은 전혀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 1시간짜리 이야기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그 스토리를 이어가기에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작가언니는 계속해서 논리를 끼워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장면이나 소재들을 PD에게 부탁하고 PD는 그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정 안되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연출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나는 혼자 회사 사무실에서 맥킨토시를 설치한 뒤 캡쳐를 떴다. (부산역에 KTX직송 택배가 있다. 그것을 이용하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6시간 만에 물건 배송이 가능하다.)

부산에서 올라온 DV테잎을 나는 계속 캡쳐했다. 테잎 45개를 캡쳐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45시간이다. 물론 1시간마다 제 때 테잎을 갈아줄 경우에 말이다. 나는 유난히 잠이 많은 편인데 의자에 앉아서 1시간마다 울리는 알람에 테이프를 갈며 3일을 보냈다. 3일 째, 테잎을 거의 다 떠갈 때 쯤 FCP를 확인한 PD에게 혼났다. HDV로 찍은 테잎을 캡쳐뜰 때에는 FCP에서 기본적으로 레코딩버튼을 누른 시점을 기준으로 모든 클립이 잘려져서 캡쳐된다. 나는 그것이 문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PD에겐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캡쳐를 뜰 동안 막내작가는 도시락(포터블데크)를 가지고 프리뷰를 한다. 몇 번 테잎에는 무슨 내용이 찍혀있으며 등장인물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두 녹취하고 카메라 앵글은 어떻게 변하는지 따위를 모두 기록하는 것을 프리뷰라고 한다. 프리뷰노트에는

              Tape 2

0000             칼라바

0030    FS     경윤이가 윤정이를 쳐다본다.

0045    OS    경윤 : 꽈자줘.

와 같은 식으로 모든 것을 기록한다. 앞의 숫자 0000네자리 중 앞의 두 자리는 분을 표시하고 뒤의 두 자리는 초를 표시한다. (1348은 13분 48초이다.)

 45개의 테이프를 모두 확인하면서 편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프리뷰노트를 책처럼 인쇄해놓고 노트에 표시하고 적어가며 전체적인 구성을 짜는 것이다. 이 과정은 작가가 주도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클립이 쪼개져있으면 (8번 테이프의 13‘48“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을 수가 없다면) 쓸 데 없는 시간이 소비되는 것이다. 나는 3일 간의 캡쳐를 다시 시작했다. (사실 시퀀스를 하나 만들고 그 위에 나눠진 클립들을 줄줄이 올려 놓은 뒤 인,아웃점을 잡고 Make Subclip 기능을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지만 PD는 자신이 모르는 기능을 이용할 바에야 내가 잠을 안자고 수고하는 편을 택했다.)

또 3일이 지났다. PD도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PD가 편집하는 동안 나는 멍한 정신으로 그저 뒤에 앉아서 졸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존다고 혼났다. 인간의 신체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고 우리의 몸속 유전자에 140만년 동안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역행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편집하는 중에는 일주일에 20시간을 못잤다. (그만큼밖에 못잔다는 건 나에겐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동시에 PD에겐 조연출새끼가 그만큼이나 처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60시간이나 되는 일주일에 10시간, 20시간을 짬내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바쁜 것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고 또 혼나고.. 감독님과 PD님은 나란 녀석이 ‘커트가 어떻게 붙고 있는지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켜보는 열정을 가진 조연출’이 되길 바랐지만 나는 혼이 나더라도 조금 더 자는 것을 택한 게으른 녀석이었다.

지난 새벽 5시까지 깨어있던 것은 기억하는데 책상에서 눈을 뜨니 7시였다. 게다가 PD님이 사라졌다. 2시간이나 엎드려 자다니.. 또 혼나겠구나, 각오를 하고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고 물으니 용산에 와있다고 했다. 왜갔냐 했더니 외장하드가 날라 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본체 옆에 있던 외장하드가 없었다. 3시간 뒤에 PD님은 새 외장하드를 들고 돌아왔고 PD는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일주일이 날아갔다. 또 다시 3일간의 캡쳐가 시작되었다.

PD가 새우잠을 자거나 사우나에 잠시 갔다오는 동안 나는 막내작가와 함께 예고편을 만들었다. 예고편을 만들고 난 뒤에는 중요한 몇 몇 장면들만 골라 6mm에 떠서 방송국 본사로 갖다 줬다. ‘이어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방송국의 한 편에는 프리미어 컴퓨터가 설치된 방이 여러 개 붙어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은 ‘이어서’ 편집기사였다.(“이어서 ~~프로그램이 방영되겠습니다.”만 하루 종일 만드는 사람)

방송까지 정확히 5일 남은 날의 새벽이 또 밝았다. 나는 여전히 졸린 상태이고, 사무실은 담배연기로 꽉 차있었다. 가편이 끝난 프로젝트 파일을 외장하드 통째로 들고 여의도로 향했다. 보통 6mm테잎에 떠서 가져가거나 DigiBETA테잎으로 가져가야 하지만 편집실에 FCP가 가능한 곳을 갔기 때문에 외장하드를 가져가서 바로 열어 수정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그 편집실은 3일에 100만원이었던 것을 70만원으로 협상했다.) 그 편집실은 방이 여러 개 있었으며 항상 밤샘하는 실장들이 있었다. 실장들을 대부분 나이가 어렸으며 레귤러방송(매주 1시간씩 나가는 주기적인 방송)을 주로 편집하는 듯 했다.

종편실에서는 FCP작업과 DigiBETA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실장은 FCP로 작업할 수 있는 부분까지(갖가지 Transition들과 프롤로그 이미지 만들기, Color Collection, 모자이크)만 손본 뒤 디지베타 테잎으로 떴다. 그 편집실엔 자막실이 따로 있었는데 자막을 치는 아가씨가 5여 명이 있었고 2교대로 24시간 대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막은 프리뷰노트를 제작했던 우리의 막내작가가 만들어서 가져갔었고, 어떤한 프로그램을 써서 자막 폰트설정과 데코레이션 설정하는 것이 순식간에 가능했다. 1시간짜리 자막을 모두 만들어 내는 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이미 여러 가지 컨셉과 프리셋을 미리 만들어 놓고 적용만 시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막파일들은 targa확장자로 출력했다. (학교에서는 포토샵에서 뒷 배경이 없이 타이포 레이어만 띄운 뒤 PNG파일로 저장하여 FCP에서 가장 윗 트랙에 자막을 얹히는 식으로 작업했었다.)

리니어 편집실 안에서는 실장, 보조, 자막팀 그리고 PD 총 네 명이 나란히 기계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뒤에 쇼파에 앉아서 또 졸았다. 보아하니 보조하는 분도 실장눈치를 보며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FCP에서 가편을 끝낸 뒤 바로 출력한 테잎을 ‘클린본’이라고 불렀다.(순수하게 컷만 붙어있고 CG나 자막 따위의 것들이 들어있지 않은 테잎.) HD였기 때문에 HDCAM테잎을 썼다. (하지만 녹음실에는 HDCAM이 지원되지 않아 녹음/믹싱작업만을 위한 DigiBETA 테잎으로도 클린본을 만들었다.) 클린본 테잎을 기계에 넣고 리니어 기계에서 실시간으로 테잎을 재생하면서 PD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순간마다 자막을 넣고 뺀다. 실시간이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이며 호흡을 조절하는데 특히 훌륭한 시스템이었다. FCP에서 모든 자막을 마우스로 조정하려 했다면 무척 시간도 오래 걸렸을 것이다.(물론 FCP에서도 실시간 재생을 하면서도 자막이 들어갈 타이밍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방송을 틀 수 있을 준비가 된 테잎이 나왔다. 이 테잎은 ‘마스터’테잎이라고 부른다. 방송국 본사에 마스터 테잎을 넘겨줄 때 외주제작국 팀장과 여러 사람들이 더 모여 테잎을 한 번 확인한다. 모자이크가 더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자막에 오타는 없는지 따위를 6여 시간에 걸쳐 수정했다. 이 날 방송국 본사의 심의 총 책임을 맡은 본부장님(?)정도의 분이 작업하기 전에 커피나 한 잔 하자면서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다들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본부장님은 카페라떼를 시켰다. 나에겐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안될 것 같게 아니라 그러고 싶지 않았다. 대신 각설탕을 많이 챙겼다. 전날 한 끼만 대충 챙겨먹었던 나는 각설탕 여섯개를 넣은 커피를 입 데이는 줄도 모르고 마셨다.

방송이 나간 뒤, 나는 제작비 정산을 하게 되었다. 장비대여 업체와 편집실, 녹음실에 나간 돈은 얼마이며 인건비로는 얼마가 들었는지 따위를 모두 정리함과 동시에 제작 기간동안 영수증을 모두 정리해야했다. 수백 개가 되는 영수증을 엑셀로 내역과 액수를 정리하여 대표님께 전달했다.

방송이 나간 뒤,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났기 때문에 PD도 작가언니도 막내작가도 다 흩어지게 되었다. 작은 프로덕션에서 진행하는 이런 프로그램은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제 갈길을 알아서 가야한다.

나는 갈 곳이 없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지, 다른 외주프로덕션에 들어가 볼지를 따져보았다. 미디어자과 사람인 사이트를 통해서 외주프로덕션 몇 개를 알아봤으나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았다. (주변의 인맥을 통해 아름아름 사람을 구할 수 없는 ‘평이 좋지 않고 왕따를 당하는’프로덕션만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정보를 올려 사람을 뽑고 있다는 것이 선배들의 충고였다.) 내 첫 사수는 6mm 꼭지물로 여의도바닥에 이름을 꽤나 날린 PD라고 소문이 나있었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런 것 같기는 했다. VJ특공대와 무한지대Q를 오랜 기간 동안 했다고 들었다. 내가 사고도 많이 치고 잠도 졸라 처자고 했지만 갈 곳 없는 내 처지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곳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다. 자신이 무조건 입사시켜 줄 수 있는 파워는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6mm를 한 번 잡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겁먹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침방송이나 6mm프로그램들을 보면 보통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 4개의 ‘꼭지’로 이루어진다. 한 꼭지는 14~15분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보통 1년 정도의 조연출수련생활을 하게 되면 한 꼭지를 맡을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된다.)

내 사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편집기간 동안 가끔 사무실에 왔었기 때문에 인사를 하고 지내게 되었다. 다행히 그 PD분에게는 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는지 나를 데려다 쓰겠다고 했다. 부산 촌놈이 강남바닥을 처음 가보게 되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인턴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선배가 한 명도 없었기에 헛소리를 제 맘껏 내뱉은 것이었다. 난 비싼 등록금을 내면 학교를 다니면서 수업을 들으면서 지식과 교양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란 곳이 취업알선센터가 아닌데 왜 인턴따위를 나가서 미리고생 사서고생을 해야 하냐고 반박했다.

필드에 나와 보니 시발, 이거 뭐 다 처음 듣는 소리에다가 가르쳐주는 PD도 아카데미 나온 녀석보다 아는 게 없으니 ‘시발 이새낀 도대체 뭐야 아는 게 하나도 없다’며 귀찮아했다. 대학교가 취업알선센터로 변해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나처럼 대학교를 4년 동안 다니면서 그 후의 삶에 대해서 전혀 준비하지 않는 놈은 문제가 정말 큰 것 같다.

그래서 후배님들은 얘기라도 좀 들어보라고 뭘 적어봤어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강남의 포스트프로덕션 이야기입니다.

제가 필드 경력이 5개월 밖에 안되서 지금 자리가 잡힌 게 아닙니다. 공식적으론 아직도 백수상태죠. 학교에서 전화도 와요. 그거하지 말고 다른데 알아봐 줄테니 4대보험 되는 데로 가서 우리 학교 취업률 높이잡디다. 저는 아직도 선배들이 뭐할래, 연출할 생각은 있는거지? 꿈이 뭐니? 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합니다. 그러니 제 주관적인 감정이 있는 것들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방송일 영상일 힘든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일인들 어디 쉽고 편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다르며 후배님들은 어떤 준비를 하는 게 옳을지 고민하는데 참고가 되기만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