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삭제(유튜브, 롤토모바일, 고급유머, 인스타)와 가상현실에 대한 고찰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삶은 확장되었다. 가상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 공간은 물리적으로 실존하진 않지만 기능적으로는 작동한다. 오히려 시간한계와 물리한계가 없기 때문에 확장을 넘어서 역전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확신하는 편이다. 역전의 특이점은 이미 왔을지도 모른다. 그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곳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공간의 확장이 일어났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인지, 내가 이렇게 쉽게 삶의 터전을 그 방향으로 확장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조상님 중에서는 가상의 공간에서 삶의 터전을 시작한 사람이 없으실 뿐더러, 나도 시골에서 자란 非-digital native 이기 때문에 급작스런 터전의 변화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우려가 된다.

우선 당장의 문제만 보자면 나는 가상의 공간을 도피의 공간으로 쓴다. 아무 생각 없이 그것들을 보고 있다. 그 시간은 죽은 시간이 된다. 사라진 시간이 된다. 그 시간이 현실 세계에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라면 물리적으로 현실세계라고 느낄 수 있는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진행해야 한다.

핸드폰이라는 매체는 신체에 너무 가깝다. 가상현실이라고 하면 대부분 VR기기를 덮어 쓴 뒤 현실세계를 차단하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걸 뒤집어 쓰나 안 쓰나 어느 정도 가상현실에 깊이 빠지게 되는가를 따지면 될 일이다. 그래픽이 더 좋다거나 덜 좋다고 몰입의 차이가 발생하는 게 아니다. 경험 주체가 어느 현실에 발을 딛였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면 모든 현실의 감각기관을 off시키게 된다.

반명 노트북을 키는 것은 현실에서 가상으로 접속한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완전 몰입되진 않는다. 의식이 각성되어 있는 상태로 가상의 공간을 탐험하고 활용할 수 있다. 여전히 의식은 실제 세계에 머무른다.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정보입력장치는 우리 신체기관의 확장으로 여겨진다. 별도의 도구를 조작하지 않고 화면을 터치한다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가상현실로 도피했다. 꽤 오래된 것 같다. 일을 하지 않으면 가상현실로 도망쳐있었다. 그곳에서 뭔가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활동이 이뤄진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개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심하게 망가졌다. 현실감각이 많이 사라졌다. 집안에서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다. 가끔 방이 낯설게 느껴진다. 물리적인 힘을 들여서 책상위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가상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정리보다 너무 버거운 일로 여겨졌다.

터치 UX는 나에게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버렸다. 신체부위가 직접 가상현실을 조작하는 도구로 연결되어 있으니 나의 욕망을 억제할 단계도 장치도 없다. 아 심심해 > 앱 키면 심심하지 않아진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나 > 인스타 피드 보면 뭔가 세상 소식을 들은 것 같다. 실제로는 어떤 방향성도 가지고 있지 않고 정보의 흐름에 떠밀리고 있을 뿐이다.

현실세계의 감각이 떨어지고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정보입력도구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정보입력도구가 VR이나 터치UX처럼 직관적이지 않았을 때에도 이런 사람들은 있었다. 나보다 훨씬 증세가 심각해서 문제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20년 전에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을 것이고, 그 중 일부는 현실 감각이 떨어져서 현실 생활이 어려워지게 되는 사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가상현실로 주된 삶의 터전을 옮기려는 의도, 또는 그곳으로 도피하려는 의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이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상태라고 가정했을 때,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가상현실로 도피하는 길목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단계도 없고 장치도 없다. 그러니까 이건 신경망을 끊는 것과 같다. 이미 내 욕망은 앱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욕망이 앱을 작동시키는 사이에 나의 이성이나 의식이 개입할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단순히 앱을 지운 것이 아닌 신경망을 끊은 것이다. 현실에 집중하자.

블로그에 글을 끄적이니 건강해짐을 느낀다!

나는 건강하다!

 

 


덧붙임 (21년 2월 25일)

언어는 두 종류다. 음성언어와 문자언어. 언어는 머릿속의 개념이 문자나 음성으로 표현되는 과정을 거친 뒤 전달되어 다시 해석되는 일련의 시스템이다. 개념을 언어로 담아내는 coding의 과정과 해석하는 decoding의 과정이 이뤄진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직관적이라는 측면에선 좋은 점이다.

터치 UX는 언어인가. 터치UX는 언어가 아니다. 주어진 객관식의 답변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feedback일 뿐이고 reaction일 뿐이다. coding을 하지 않는다. 주체성이 없는 인터랙션이다. 터치 UX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수동의 상태가 된다. 주체성을 잃는다. 모바일은 작은 PC가 아니다. PC는 발언자의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만 모바일은 주체성을 잃게 만든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도 외부의 자극에 반응한다. 반응의 종류와 수준을 제외하면 구조적으로 반응자라는 점에서 짐승과 다른 점이 없다. 자극을 주는 자여야 한다. 터치UX의 상태로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은 하이테크 문명의 혜택을 받는 게 아니다. 야만 상태로의 회귀다. 수동적인 짐승의 인생을 살아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면 모바일 기기의 활용빈도를 줄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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