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민주주의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곳의 목적은 평등하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은 목적이 있다. 목표가 있다. 하나의 미션을 바라보고 치고 나가서 달성해나가는 것이다. 치고 나가서 달성하기에 적합한 조직마다의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은 기업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황파악, 의견제시, 판단기준, 의사결정, 결론도출 등의 모든 활동에 스며들어 있다. 조직이란 일종의 유기체다. 조직이 겪는 현상은 다양하고 활동 또한 다양하므로 조직의 메커니즘을 하나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조직의 메커니즘은 곧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문제를 찾아내는 것 / 문제를 정의하는 것 / 문제의 해법을 도출하는 것 / 문제해법을 실행하는 것 – 전체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공정이나 방법론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적절하지 않다. 공정과 방법론이라면 다른 상황에 옮겼을 때도 작동하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은 다른 조직으로 옮겨지지도 않고, 옮기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은 이 곧 조직의 구심점이다. 모든 구성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같아야 한다. 같은 방식을 갖춘 사람을 합류시켜야 한다. 같지 않아도 이 방식을 따르는 사람을 합류시켜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을 지키지 못할 사람은 핵심조직 안에 들여선 안 된다.

함께 뭉쳐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함께 문제를 풀어보면 드러난다. 별도의 평가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를 함께 풀면서 각자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 문제를 정의하는 판단, 해법을 제시하는 창의력, 실행하는 수행능력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 여기서 ‘이끌든지’는 빠져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내 상황에선 소용없다. ‘이끌든지’는 적임자, 총책임자의 문제해결방식의 개별성과 독창성을 인정하고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는 뜻인데, 나는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는 2명짜리 조직이다. 조직이 20명을 넘기기 전까진 ‘이끌든지’는 필요없을 것 같다. 그럼 “따르든지, 비키든지”만 남는다. 조직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주 단순명료해졌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곧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내 방식을 고집하고 내 구심점을 강요해야 한다. 구심점을 고집하는 것으로 많은 문제가 사라진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다. 구심점에 맞지 않는 사람을 평가하고 해고할 필요도 없다. 구심점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알아서 모이고, 알아서 비킨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알아서 모일 수 있도록 구심점을 공개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선택지가 없다고 마음을 쓸 필요도 없다. 없다면 그냥 없는대로 가면 될 일이다.

내 문제해결방법이 모든 문제를 풀진 못한다. 당연하다. 그리고 괜찮다. 나는 모든 문제를 풀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문제만 잘 풀리면 그만이다. 그 문제를 푸는데 내 방법이 적절하지 않으면 개선하면 된다. 우선 내 방법이 옳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의심은 소용없다. 옳은지 그른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책에 나와있어도 나의 것이 아니다. 잔소리를 해줘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경청하더라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끝을 봐야만 내 방법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끝까지 가봐야 한다. 끝을 보는 것만이 문제해결 방법을 검증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끝을 볼 때까지는 내 방법을 믿어야 한다. 세상엔 다양한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푸는 조직도 많지만 문제해결방식이 문제의 갯수나 조직의 갯수만큼 다양하진 않다. 제대로 일하는 곳은 다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내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취향이 반영되거나 내가 창안한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옳다고 배운 것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 방식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옳은 방식이라 표현하면 좋겠다. 옳은 방식대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내 방식이 옳다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휘발성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면 좋다. 문제를 찾고 정의하고 풀어나가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글로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구심점만 생각한다면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우리만의 방식”을 가시화하기 위해 슬로건을 만들어 붙이거나 매일 외칠 수도 있다. 송파구에서 일잘하는 10가지 방법 포스터를 만들거나, 우수한 사례에 수상하는 등의 문화적인 접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강령을 만드는 것은 실수다.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해 기계어로 작성된 알고리즘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대한민국에 살기 위해 헌법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심점을 제시하는 것과 행동강령을 하달하는 것은 작동원리가 정 반대다. 바라보게 하는 것과 관리당하는 것은 힘의 작용이 정 반대로 일어난다. 구심점을 추구하면 구성원의 능동성을 이끌어내지만 룰을 하달하는 순간 피하달자는 수동적으로 변한다. 지시와 통제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피하달자에게 하달하는 순간 서로 마주보게 된다. 마주보면 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푸는지를 설명하는 글을 쓴 적은 있다. <1> <2>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다. 적어도 이 글이 선언된 덕에 조직에 맞지 않는 구성원은 자발적으로 나가게 되었다. 남은 구성원은 이 글에 공감하고 또 같은 태도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적어도 명문화된 구심점은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글만 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글이 쓰여져 있으면 근거가 된다. 명문화하고 선포해서 모든 의사결정이나 판단의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글만 쓰고 최소한의 시범을 보여주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우리만의 일하는 방식 없이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삽질을 하는 안쓰러운 상태로 접어들었다.

간다. 오면 오는대로 같이 가고 없으면 없는대로 홀로 간다. <leadership lesson from dancing guy>

비즈니스를 확장한다는 것은 더 많은 수요를 받아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수요를 가장 많이 받아낸다는 것은 Capacity다.

‘많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려면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공간은 복제를 통한 확장이 가능하고 시간은 연산처리의 기계화를 통해 줄여낼 수 있다. 이 둘은 Velocity다. 그러므로 Capacity를 달성하려면 Velocity부터 우선 충족시켜야 한다.

Velocity가 충족되었다고 Capacity가 자연스럽게 달성되진 않는다. Capacity를 키우기 위해서는 territory를 넓혀야 한다. 이를 웹 용어로는 Domain이라 부르지만 Domain의 개수만 많다고 Territory가 넓은 것은 아니다. 브랜딩이 잘 되어 있거나, 각인성이 좋거나, 도메인의 경계를 넘어서는 접근이 가능한 방법이 있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넓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Territory가 넓다고 수익이 자연스럽게 뒤따르지도 않는다. 기업의 최소 존속 요건인 수익은 Funnel에서 나온다. Funnel은 수익모델이다. 목 좋은 곳에선 어떤 장사를 해도 잘 되겠지만, 수익이 나려면 어떤 장사든 해야 한다. 사람만 모으고 장사를 하지 않으면 수익이 날리 만무하다. Domain이 없다면 Funnel을 갖다 댈 곳이 없기 때문에 돈을 내고 도메인에 대한 접근 권한을 빌려와야 한다. 접근 권한을 빌려오는 것을 광고라 부른다.

다시 만들자. 만들기를 계속 하자. 의식을 깨워두자.

언젠가부터 나를 만들지 않고 있다. 성장하지 않고 있다. 능력이 계발되지 않고 있다. 근 몇 년간 집중력을 잃었다. 나는 집중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최소 1년 반 정도는 이 능력들이 제대로 활용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 잘난 능력도 퇴화하고 있을 것이다.

매체가 많아졌고 받아들이는 정보도 많아졌다. 수동적인 정보소비 환경에 놓이자 나는 정보의 소비자가 되었다. 외부자극-반응기계가 되었다. 능동적으로 정보를 탐색하는 방법은 잃어버렸다. 피드에 줄지어 소비되길 기다리는 정보들을 소비하고 반응할 뿐이었다. 주체성을 잃었다. 주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소비습관만이 아니다.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일과 사건에 대해 그저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기계일 뿐이다.

기계나 동물의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동물과 인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생물학적으로 별 다를 게 없다. 의식이라고 하는 것 또한 정도의 차이일 뿐 명확한 기준이 없다. 주체성. 주체성을 구분 기준으로 놓는다면 명확해진다. 현대 인류의 대부분 9할 이상이 동물로 분류될 것이다. 그렇다 나도 인간이었다가 짐승이었다가를 반복한다. 짐승의 상태로부터 벗어나자. 인간의 상태를 추구하자. 의식을 깨어두자.

내가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에는 모두 각성상태에서 이뤄졌다. 모든 감각이 깨어있는 상태,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Stay Awake도 한참이나 잊고 살았다.

성과는 행동의 결과다. 행동은 생각의 결과다. 생각은 태도의 결과다. 태도는 감정의 결과다. 감정이라는 것을 쉽게 여길 수 없다. 주체성이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감정에 지배를 당한다. 감정이 무너지면 태도가 올바르지 않고, 태도가 올바르지 않으면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다. 이런 심각한 상황 속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무감만 부여하니 실행될 리 만무하다. 그런 속이 텅 빈 실행은 에너지도 없을뿐더러 성과가 날 리 없다.

모멘텀을 왜 잃었는지 중요하지 않다. 분명 어떤 계기나 사건이 있었겠지.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순간 수십 혹은 수백 가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순간 비겁한 자가 된다. 설령 원인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내 삶이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생 외부의 원인에 의해 반응하는 기계가 되어버리고 만다.

좋은 원인이 있을 때 좋은 결과가 되고, 나쁜 원인이 있을 때 나쁜 결과가 된다면 나는 그 인과관계에서 무엇을 했는가? 자유의지는 있었는가? 주체성은 있었는가? 그것은 짐승의 상태인가 인간의 상태였는가? 중요한 것은 원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원인이 되는 것.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곧 나 스스로가 사건이 되고, 계기가 되려는 태도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원인이다. 내가 계기다. 나의 태도, 나의 생각, 나의 행동, 나의 성과를 통해 세상은 반응한다. 내가 원인이다.

정보처리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분류의 도구를 익혀야 한다.
어떤 도구들이 있는지, 각 도구는 무엇인지, 언제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다.
몇 가지는 실무에 적용하고 활용하면서 이해하는 중이다.
2020년도 36살의 이은호로선 대단한 수준의 정리요약을 해낼 순 없으므로, 간단한 항목들만 리스트업한다.

 

Type 유형
Class 구분
Property 속성
Stage 단계
Level 등급

Affiliation
Asset
Tag
Labeling
Statement
Coverage 역할범위
Key figure 요인

명목척도 nominal scale 속성을 분류하는 척도
서열척도 ordinal scale 순서 관계를 밝혀주는 척도
등간척도 interval scale 순서 사이의 간격이 균등한 척도
비율척도 ratio scale 순서 사이의 간격이 균등하고, 절대값(0)이 존재하는 척도

+
메타데이터
더블린코어
데이터맵

세상엔 많은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그 중 어떤 이야기가 중요하고
어떤 이야기는 덜 중요한지
쉽게 분간하기 어렵다.

보편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야기들은
양적으로 많이 생성되었거나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요소를 갖춘 이야기들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가능성이 높다.

가짜가 판치고 진짜를 구분해내기 어려워진
시대를 맞이한 현대 인류는
‘큐레이션’, ‘검증된’, ‘엄선된’ 등의 키워드를 들먹이며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을 뿐이다.

안건이 중요한지 또는 중요하지 않은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크게 4단계의 구분, 다시 3단계의 하위 구분으로 나누어 총 12단계로 구분해본다.

 


화학
물리

가치
희망
믿음

경제 : 시장이 모인 것
시장 : 거래가 모인 것
거래 : 경제활동의 최소단위

전략 : WHY
해법 : HOW
실행 : WHAT

 

수, 화학, 물리는 역학영역이다.
가치, 희망, 믿음은 추구영역이다.
경제,시장,거래는 체제영영역이다.
전략, 해법, 실행은 수행영역이다.

각 항목은 경제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적용될 가장 일반적인 예를 든 것이다.
경제활동이 아닌 여가활동을 한다면 체제영역, 수행영역은 다르게 바뀔 것이다.
문학, 창작, 예술, 정치, 사회 등의 활동을 할 경우 추구, 체제, 수행의 영역이 다르게 바뀔 것이다.

이 개념도는 어떤 일을 진행시키거나 조직을 구성할 때 도움될 수 있다.
아래 단계에서 이슈가 발생했을 경우 상위 개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수행 단계의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수행의 차이를 좁히기보단 가치의 동기화를 진행시켜야 한다.
상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어야 역할을 맡거나 일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화면부터생각하면망해요>쓰고나서 연장, 관통된 글이다.
이 글에서는 뿌리-기둥-줄기-잎파리의 순서를 예시로 들었다.
일이 제대로 안 될 때의 현상의 공통적인 이유를 파헤치다 찾아낸 틀이다.

나와 다른 수행방식, 다른 사회에서의 성장,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인간의 다양성의 한계가 얼마나 넓은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일부 사람들에겐 역학영역 위에 신의 영역이 존재한다.

역학 영역에서 모순이 되는 이슈는 내 삶에서 좀체 발생하지 않는다.
때문에 일상에서 신경써야 할 정보 분류는 대체로 2~4단계의 것들이다.

하위 개념은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상위 개념이 결정되지 않았을 경우 무의미해지는 선행-후행 관계에 놓인다.

나에게 20년도는 생각을 전혀 정리하지 못한 절망적인 한 해였다.
최근 이 틀에 넣어보니, 내가 할 일과 생각을 정리해내지 못하고 패닉을 맞았던 상황들을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13단계, 14단계와 같이 수행단계보다도 더 하찮은 단계의 매몰되어있었다.
14단계의 이슈를 A6크기 카드로 50장 넘게 만들어 온 벽에 도배했었다. 압도당했다. 그 외의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결국 현상계에 갇혀버린 나는 폭주해버렸다.
상위 단계를 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두뇌는 병렬적으로 정보의 동시처리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생각을 동시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이슈를 단위화시켜야 한다.
저장해두었다가 다시 불러내 이슈를 처리해야 한다.
직전의 생각 context가 지워진 상태에서도 즉각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저장해두어야 한다.
저장하는 공간과 규칙도 중요하다.
물리적인 공간을 떠올려 구조화하는 것도 좋다.

hierarchy를 시각화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상하위 트리구조
트리구조 (뿌리 > 기둥 > 줄기 > 잎파리)
Circle (내핵, 외핵, 표피)
좌-우 선형선상

자전거 SNS에 라이딩 로그를 남기곤 하는데 보는 사람 몇 없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싸낸다.
지금까지 써오던 글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글을 써 본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마음에 드는 대목들이 있어서 블로그에 복사기록한다.

 

라이더 정보 : https://www.strava.com/athletes/30110228


상암뱅뱅 * 10

지도를 보고 뱅뱅을 찾았다. 뱅뱅은 무정차구간이다. 뱅뱅을 찾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한바퀴를 크게 그릴 수 있는 곳을 우선 찾는다. 우측통행을 하는 도로에서 좌회전은 신호를 받아야 하지만 우회전은 신호와 상관없이 언제든 가능하다. 경로상에 삼거리나 횡단보도가 있어도 무정차에 방해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지나가거나 속도를 늦춰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사거리가 있다면 정차해야 하기 때문에 뱅뱅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무정차뺑빼이 구간은 총 열아홉 개로 다음과 같다. 성산, 상암, 상암롯데, 하노이*, 망월, 대덕, 향동, 정발산, 호수공원청평지, 경복, 백범, 효창, 운양, 용산, 고양종운, 광명스피돔*, 아라*, 올공, 공항로* (*표시는 이미 알려진 곳들)

새로 찾은 뱅뱅 중 하나를 조질 작정이었다. 노면이 마른 아침에 나가려 했으나 새벽에 잠이 안오는 것이었다. 새벽에 나가면 차량이 없어서 뱅뱅을 만끽하기엔 더할나위없이 좋다. 세바퀴만 돌리려고 나갔다가 열바퀴를 돌리고 말았다.

워밍업없이 무리했더니 근육이 다 찢어진 것 같다. 적당한 자극은 근육의 성장을 견인하지만, 과도한 자극은 근육의 파열을 야기한다. 사흘 정도는 걷지도 못할 것 같다.

20년 8월 16일

 

대덕뱅뱅 * 5 + 2

안녕~ 친구들!
아무도 안가본 뱅뱅을 찾아서 소개하는 RBTC(Robin’s Bangbang Training Club) 로빈 아저씨야~
오늘 소개할 코스는 대덕뱅뱅이야.

대덕뱅뱅은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대덕동에 걸쳐서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아파트단지도로를 타기 위해서 만들어진 코스야. 아파트단지는 22년 11월에 완공된다고 하니 내후년 가을까지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코스라고 봐.

다만 공사중이다보니 오가는 대형 트럭이나 공사차량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 언제 어떤 공사 때문에 뱅뱅을 돌리지 못하게 될지 사전에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은 감안해야해.

이런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코스를 추천하는 이유는 완전한 무정차 코스이기 때문이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지점이 딱 두 곳 밖에 없고 이마저도 코너링을 과격하게 하면 브레이크 밟지 않고 통과할 수 있어. 평속에 환장하는 친구들이라면 정말 혹할만한 부분 아니겠어?

코스의 시작과 끝은 4시야. 5시부터 8시까지 약 1.9km의 구간이 공사중인 아파트단지의 주요 통행로이자 대덕뱅뱅의 메인 스프린트구간이야.

9시와 1시에는 20m짜리 깔딱고개가 있는데 탄력받아서 단숨에 넘어가버려야 해. 탄력을 잃고 평속 25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딱 기운이 빠져버리니까 기왕이면 평지에서 힘을 아끼더라도 고개를 넘는데 사력을 다하길 추천해. 그래야 뭔가 코스를 돌린다는 느낌이 들거야.

어이어이, 뱅뱅코스에 웬 20m짜리 언덕이 두개나 있냐며 불평할 평속충 친구들, 실망하진 마라구. 이 언덕을 넘어도 평속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 말이야. 내리막에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40Km까지 속도가 오르는 완만한 경사가 펼쳐지기 때문에 오르막에서 감속한만큼 그대로 보상받을 수 있거든.

한바퀴 돌리면 5.7km에 약 11분 정도 소요되니까 한시간동안 5바퀴를 무정차로 돌린다는 목표를 세우면 같은 코스를 돌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한계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거야.

저녁 8시까지는 퇴근차량과 현장철수차량이 꽤 있었는데 9시가 지나면서 이동량이 현저히 줄었다는 점 참고하길 바라.

그리고 메인 스프린트 구간을 제외하곤 시골길 중에서도 상태가 꽤 안 좋은 편이니 홀, 자갈, 흙더미, 공사잔해는 조심해야 해.

9시 방향에 미친 흑구 한마리가 갑자기 뛰쳐나와 추격전을 펼칠 수도 있으니 물리지 않게 조심하라구.

아저씨는 대덕뱅뱅에 별 네개반 줄 수 있어.

카본 하이림이 수명을 다해서 뱅뱅에 맛들이자마자 싸구려 알루휠로 타야하지만, 대신 변명거리가 하나 생겼으니 다운그레이드라고 무조건 나쁜점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 뭐. 하하.

다음에 또 보자구.
요호호~

20년 9월 1일

 

개화뱅뱅 * 10

난 뱅소남! 뱅뱅을 소개하는 남자!
오늘 소개할 코스는~
바로바로바로~
개화뱅뱅!

지도에서 중식도 모양 찾아봐. 거기가 거기야. 개화뱅뱅. 제일 서쪽에 있어.

여기 도착하면 기억할 거 단 하나. 철조망을 오른쪽에 둔다. 그것 말곤 없어. 그러고 계속 돌아. 한바퀴 3.65km 평속 32로 달리면 7분쯤 나오니까 페이스 조절에 참고하시고.

그나저나 코스가 왜 저렇게 생겼냐. 저 꼬부라진 손잡이 모양. 지상철이 지하철이 되는 지점이야. 개화역은 9호선의 시작역이야. 개화역 빼곤 다 지하에 있지. 지하철과 경주하는 무한도전 같은 건 하지 말고. 걘 곧바로 땅굴로 사라질 거거든.

원래는 다른 뱅뱅을 가려했는데 오늘 하늘이 미쳤지 뭐야. 안되겠다. 하늘 많이 보이는 데서 돌려야겠다. 그래가지고 일이고 뭐고 내팽겨치고 여기 오게 된거야. 그래 맞아. 뱅소남은 하늘 보는 거 좋아해. 무일푼으로 스무일곱에 서울에 올라와서 지하방에 살….

됐고. 오늘은 조망권에 대한 얘기를 하러 온게 아니라서 말이야. 오늘은 말이야. 10바퀴를 돌리기로 작정해서 말이야. 나름대로의 전략을 짰단 말이야. 그 전략이 뭐냐면 말이야.

강약중중약 중약중중중

아~ 아주 도움되었어. That helped alot. 뱅소남이 자전거를 16년을 탔어도 한시간 넘게 무정차로 꾸준히 밟아본 적이 많이 없단 말이지. 그런데 해냈단 말이지. 그것도 아주 거뜬히.

회복과 전념의 계획이 구분되어 있는 상태로의 라이딩은 뭐랄까, 아주 안정적이야. 페이스오버라거나 중도포기라거나 잠시라도 멘탈이 흔들려서 타기 싫어져버리는 그런 나태의 마음이 조금도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굳건해진 느낌이랄까. 처음 돌아보는 코스인데도 두려움이나 의심은 전혀 없이 오로지 질주와 완주를 향해서만 온 정신과 체력이 일치합동협력한 상태. 솔직히 10분짜리 업힐을 타도 중간에 아 시바 때려칠까 생각이 다섯번 드는데 오늘은 한번도 그런 마음이 안들었단 말이지. 그래서 더욱 뿌듯하단 말이지.

아, 쫌 아쉬운것도 있다! 시멘트 길이야. 약 65프로가 시멘트 길이야. 아스팔트도 있는데 거긴 또 과속방지턱이 6개 있네. 중간에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홀 3개 있다. 오늘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물도 다섯 곳 있더라. 피치못할 감속구간은 두 곳 이다.

그래서~
뱅소남은~
개화뱅뱅에~
별점~
두구두구두구~~~
3.5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뱅소남은 고기 먹으러 갈게!
모두 즐뱅!

20년 9월 3일

 

국회뱅뱅 * 11

뱅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도 새로운 뱅뱅을 찾아 수도권 방방곡곡 헤집고 다닌 저는 뱅뱅매니아, 뱅마닙니다.

오늘 방역당국은 코로나 재확산을 억제하고자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일주일간 연장하기로 발표했죠. 이런 시기엔 떼라이딩보단 한적한 곳에서 솔뱅을 돌리는 것이, 나라의 방침에 협조하는 일이고 곧 애국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다녀온 곳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바퀴에요. 줄여서 국회뱅뱅이라 부를게요. 국회뱅뱅은 국회의사당 정문에서부터 출발해요.

국회뱅뱅은 이제껏 소개한 뱅뱅 중에서 가장 길이가 짧아요. 2.46km밖에 안돼요. 37km/h로 달리면 한바퀴 4분컷. 얼마나 짧은지 열바퀴 돌리려다 실수로 한바퀴를 더 돌려버렸어요.

과속방지턱이 대여섯개 있었던 것 같고, 두 개의 코너가 있는데 브레이크를 잡지 않아도 약간의 감속만으로 진입할 수 있어요.

오늘은 별점부터 줄까요?
빠밤-
5.0 드리겠습니다!

국회뱅뱅은 여의도 가장 서쪽 도로인 여의서로를 달리는 게 메인인 코스인데요, 여기 줄지어 있는 나무들은 벚꽃이에요. 여의서로라고 검색하면 벚꽃 핀 풍경만 나올거에요. 벚꽃축제 기간엔 차량을 통제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4월에만 사람들이 몰리고 그 외의 기간엔 아무도 찾지 않죠.

이렇게 좋은 코스를 8명 밖에 타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길 예쁘죠. 완전 무정차죠. 도심지에 있죠. 차없죠. 사람없죠. 자전거도 없어요. 있는 건 나무랑 의경이에요. 둘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서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국회의사당 주변에 의경아저씨가 많다고 겁낼 필요가 없어요. 군인들은 하달받은 명령대로만 움직이거든요. “난봉꾼이 나타나면 잡아와”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저를 제재했겠지만 그들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어요. 추측컨대 “가만히 서있어”라는 지시를 받은 것 같아요. 자유를 만끽하는 민간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부러움이란 감정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그들이 저를 의식하는만큼 저는 더 열심히 달렸어요.

아직 뱅뱅을 돌려보지 않은 뱅린이가 있다면 뱅뱅은 체력으로 타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멘탈로 타는 거에요. 특히 솔뱅은 더욱 그래요. 솔뱅의 목표는 내가 정하고 내가 달성해요. 지금 당장 마주할 한시간 동안 “나는 쉬지않고 몇 W를 유지할 수 있는가.” 또는 “평속을 몇 km/h이하로 안 떨어뜨릴 수 있는가.” 이런 간단하고 단순한 목표를 세우는 거에요.

중요한 점은 충분히 달성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거에요. 쉬운 목표부터 시작해 차츰차츰 점진적으로 높여야 해요. Winning Habit을 위해서에요. 승리의 습관. 너무 쉬운 목표를 세우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목표를 너무 쉽게 달성했다면 남은 구간의 페이스를 올리거나 바퀴수를 추가하면 그만이거든요. 내가 세운 목표를 초과달성함으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표현도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이 악물고 근성으로 이겨내는 혹독한 느낌이 아니거든요. 경쟁이라는 프레임에서 완전 벗어나야해요. 솔뱅은 그 무엇과도 경쟁하지 않아요.

저는 알아요. 일년에 만키로를 탄 사람을 이길 수 없단 걸.
저는 알아요. 타고난 사람은 따로 있단 걸.
저는 알아요. 제 자전거 구린거.
저는 알아요. 초기화돼서 세달 전보다 훨씬 못타는거.
저도 알고 모두가 아는 현실을 외면한 채로 이상을 추구하진 말아요.
나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 외부의 기준에 따라 목표를 세우진 말아요.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서 실패한 경험이 쌓이면 Losing Habit이 생기거든요. 이내 포기를 쉽게 생각하게 될거에요. 어느 순간 시도도 하지 않고 “난 안될거야” 생각하게 될거에요. 생각이 습관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아요.

솔뱅을 돌리다보면 이런 생각이 순서대로 들거에요.

아직 1/5밖에 못 돌았네
아직 1/3밖에 못 돌았네
아니벌써 1/2이나 돌았네
이거웬걸 1/3만 더 돌면 되네
아아십네 1/5밖에 안남았네
와따야마 벌써 다 탔네?

솔뱅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를 도는 게 무의미하다 생각할지 몰라도, 돌려본 사람은 다 알아요.

그 모든 바퀴가 다 다르다는 걸.

무정차로 꾸준히 뱅뱅을 돌릴 동기는 꾸준한 진척을 지켜보는 데서 와요. 하지만 길이가 너무 긴 코스는 진척이 너무 더뎌서 잡생각이 날 수 있어요.

국회뱅뱅은 한바퀴의 길이가 짧은 만큼 멘탈 변화의 단계가 빨리 찾아와요. 멘탈이 흔들릴 여지조차 주지 않고 어느새 성공은 코앞에 다가와있죠. 별점 만점을 주면서까지 뱅린이에게 추천하는 이유에요.

20년 9월 4일

 

망원트랙 * 100

안녕하세요, 뱅뱅에 미친남자 미치뱅입니다.
여러분 BBTC라는 클럽을 들어보셨나요? 수도권에서 돌릴 수 있는 뱅뱅코스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훈련하는 클럽입니다. BangBang Training Club. 어제 만들어진 클럽이라 다들 처음들어보셨을 겁니다.

제가 뱅뱅을 탐사하고 있지만 제 라이딩 기록은 live feed에서 한 번 보여진 뒤 휘발됩니다. 정보를 기록하고 조회하기 편하도록 분류하는 archiving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 클럽에 제가 찾은 뱅뱅 코스정보를 정리해둘 계획입니다. 올 가을까지 약 20여개의 수도권 뱅뱅을 탐사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저 미치뱅, 지금은 뱅뱅만 돌리지만 두어달 가지 않아 흥미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단기과몰입형인 저, 제가 잘 압니다. 하지만 제게 뱅뱅현타 찾아오더라도 뱅뱅 탐사 프로젝트의 성과는 길이길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잘 정리된 코스 정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호인 뿐만 아니라 후대의 자덕들에게도 라이딩의 새로운 면면을 찾을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제 뱅뱅탐사의 가장 큰 동기이며 그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입니다.

아무쪼록 오늘은 망원트랙에 다녀왔습니다. 일년 전부터 벨로드럼을 타보고 싶었으나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트랙이 떡하니 있었습니다. 비록 경사가 없는 평지 트랙이었지만 제가 원하던 무정차 뺑뺑이를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망원유수지체육시설 또는 망원유수지공원으로 불립니다. 유수지라함은 홍수가 발생했을 때 하천 수위를 일시적으로 낮추기 위해 빗물을 옮겨담아두는 인공 저수지를 말합니다. 유수지시설은 평소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기에 이렇게 근린체육시설로 활용하거나 주차장으로 씁니다. 다만 5~10월에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비 때문에 주차장은 폐쇄됩니다.

망원동은 본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굽이쳐 흐르던 한강을 직선화하기 위해 높은 제방을 쌓고 복개하여 만들어낸 땅입니다. 고도가 낮다보니 비가 올 때마다 물난리가 났고 73년에 유수지가 만들어진 후에야 사람들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합니다. 그 전에는 둑방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니 난지 쓰레기섬과 함께 서울 최대의 슬럼가였던 곳입니다.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기도 하고 조금 찝찝하단 생각이 들어서 제가 좀 딴데로 샜습니다. 죄송합니다. 코스 소개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 코스의 이름은 뱅뱅이 아닌 트랙입니다. 뱅뱅은 연구하고 탐사해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 트랙은 애초에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길입니다. 뱅뱅과 트랙은 회전방향도 다릅니다. 뱅뱅은 신호정차를 피하기 위해 시계방향으로 돌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트랙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돕니다. 제가 탐사할 20개의 코스 중 유일하게 CCW(Counter Clock Wise)로 돌릴 수 있는 곳입니다.

달리기를 CW로 돌릴 때와 CCW로 돌릴 때를 비교했더니 CCW방향이 200미터 기준으로 1초 가량 더 빨랐다는 실험결과를 어릴 적 호기심천국에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오른팔을 크게 흔들 수 있는 왼쪽 커브가 오른손잡이에게 편하다거나, 심장이 왼쪽에 있어서라거나, 여러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어떤 것도 확실하게 증명되진 못했습니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많은 선수들이 왼쪽으로 도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국제육상연맹은 1913년부터 뺑뺑이는 왼쪽으로 돌아라고 명문화했습니다.

사족동물이나 자전거도 왼쪽으로 돌려야 성적이 잘 나오는지까진 모르겠으나 관객이 있을 경우 골인지점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경마장이나 경륜장이나 다른 각종 대회장도 자연스럽게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좀 TMI네요. 코스 소개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망원트랙은 세 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가장 가운데는 달리기용, 중간은 인라인스케이트용, 가장 바깥은 자전거용입니다. 꽤 넓습니다. 달리기 트랙을 돌면 한 바퀴 400미터입니다. 바깥쪽 자전거 트랙으로 돌리면 460미터입니다. 오늘은 무정차 100바퀴를 돌려 46키로를 탔습니다. 비오는 날 커브에 접어들 때 슬립나지 않을지 걱정했으나 바닥의 접지력은 좋았습니다.

비오는 날이었음에도 트랙엔 6명 정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맑은 날 저녁에 평속 30이상으로 달리면 보행자 분들과 위험한 상황이 수차례 발생할 것 같습니다. 나 운동 좀 하자고 시민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 일부러 비오는 날 탔습니다. 비오는 날 타기엔 더없이 좋은 코스인 것 같습니다. 마침 자전거에 진흙도 많이 묻어있던 터라 일거양득으로 세차도 할 수 있었습니다. 트랙에 고인 물은 맑디 맑은 빗물이었습니다. 80바퀴쯤 돌리니 물통에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입을 좀 열고 탔더니 앞바퀴가 뿌려 올리는 물방울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90바퀴째부턴 쿨다운하려고 페이스를 늦췄는데 어두운 수풀 속에서 원숭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상하다, 이런 곳에 짐승이 있을 리가 없는데… 생각하며 91바퀴째 같은 지점을 지났습니다. “우.. 우욱!! 우꺅!!!!!” 이번엔 분명히 들렸습니다. 뭐지? 92바퀴째 그 소리는 더욱 크고 선명해졌고 개체수는 추정컨대 3마리 쯤으로 늘어났습니다. 94바퀴째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응원해주는 여성분들이었습니다. 오밤중 불꺼진 유수지 공원에서 빗속을 가르는 라이더의 수중투혼은 흔히 볼 수 없는 구경거리였나봅니다. 그들의 나이대를 짐작해보았습니다.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저는 여고생 여대생 아줌마를 불문하고 원숭이 소리를 내는 여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짐승이 아닐거란 생각에 일단 안심한 저는 어두운 수풀 지점을 지날 때마다 스프린트 댄싱을 쳐서 더욱 큰 환호를 유도했습니다. 응원해주는 고릴라 무리가 있었던 덕에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무정차 100바퀴를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말이 유난히 많은 것 같습니다.
빨리 별점 매기고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4.5입니다.
모두 즐뱅하세요.

그리고 혹시 망원트랙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셨다면
방문객이 적은 시간대에 찾아가시길 추천드리며
고릴라를 조심하세요.

20년 9월 7일

 

목운트랙 * 32

“좋은 뱅뱅있으면 소개시켜줘” 좋뱅소TV의 조퐝메이입니다.

오늘 다녀온 곳은 목동 종합운동장 트랙입니다. 별점 4.5입니다.

체크포인트는 북문에서 시작합니다. 야구장과 주경기장 두 개를 묶어서 바깥으로 돌립니다. 자전거 타라고 만들어놓은 길은 아닙니다. 코로나 때문이겠지만 차량이 없어서 지금 가면 달리기 딱 좋습니다. 완전 무정차코스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코너링이 익숙해지면 감속하지 않으면서 페달을 종일 굴릴 수 있습니다.

한 바퀴가 1.09Km입니다. 33km/h 놓고 타면 한바퀴에 딱 2분 걸립니다. 2분으로 30바퀴 돌리면 1시간 무정차 훈련이 가능해집니다. 이 계산을 기준으로 32바퀴 돌려 1시간을 채웠습니다.

과속방지턱이 9개쯤 됩니다. 가쪽으로 붙어서 가면 충격을 덜 받을 수 있습니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 위에서 과감한 코너링을 할 때 바닥에 달라붙는 맛이 좋은 코스입니다. 길 옆에는 평지와 높이가 같은 대리석 연석이 있는데 코너링을 한 뒤 연석을 살짝 밟고 다시 도로로 들어오면 마치 F1레이싱카의 코너링을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멋짐이 막 넘쳐 흐르기 때문에 또 힘을 내서 돌릴 수 있게 됩니다. 한 바퀴의 3/4지점에 5미터 정도의 완만한 언덕이 있습니다.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탄력으로 넘겨버리는 것이 페이스 유지에 도움되므로 댄싱을 치거나 외전근 밀어내기로 꾹꾹 밟아 올라가면 좋습니다. 이 오르막이 있기에 오히려 지루함이 줄어들고 몸이 코스에 따라 리듬감있게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실감이 안나는 분들을 위해, 한 바퀴를 돌릴 때 페달을 열심히 굴리는 것 외에 해야 하는 것들을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코너에서 아웃인으로 과감하게 눕히기
코너에서 파워높여 튕겨나오듯 인아웃하기
맨홀피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아웃인을 대비해 가쪽으로 연석밟고 달리기
아웃인아웃 코너안쪽 과감하게 찍기
코너에서 잃은 속도 다시 올리기
물마시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댄싱으로 업힐 공략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S커브 감속없이 아웃인인아웃으로 빠져나오기
연석에 살짝 올라탔다가 도로로 복귀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내리막길 에어로 모드로 바람 가르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연석 살짝 올라타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골인지점까지 라스트 스프린트

2분이 채 안되는 시간에 위 내러티브가 쉴새없이 채워집니다. 이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고 타면 그냥 지겨운 뺑뺑이입니다.

하지만 F1카레이서가 모든 코너링에 최선을 다하듯 온 신경을 곤두세워 최적의 경로로 지나가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면 더욱 재밌게 탈 수 있고 과속방지턱도 더이상 장애물이 아닌 공략대상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20년 9월 8일

 

경복뱅뱅 * 10

뱅뱅오타쿠 오타뱅의 “오늘도 탄다 뱅뱅!”
오늘 다녀온 코스는 경복궁 열바퀴입니다.

지금까지 총 10개의 뱅뱅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로써 뱅뱅탐사 시즌1이 종료되었습니다. 시즌2는 할지말지, 한다면 언제할지, 기약 없습니다. 10뱅의 요약은 <아래>에 붙여 정리합니다.

가는 길에 홍제동을 지나다 가파른 언덕을 만났습니다. 근래에 평지만 뺑뺑 돌다가 만난 언덕, 얼마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댄싱을 조졌는데 와 이게 바로 자전거의 맛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즌1 종료를 단호하게 결심했습니다.

줄창 뱅뱅만 타니까 솔직히 이제 뱅뱅 재밌는 줄 모르겠습니다. 콘셉도 다 떨어지고 남아있는 아이디어도 억지노잼입니다. 콘셉만 잘 정해지면 글이 술술 나오는데 콘셉이 어설프니까 글도 잘 안나옵니다. 오타뱅은 뭐고 오타쿠는 또 뭡니까. 개연성도 없고 파생되는 것도 없고 언어유희도 아니고 해석할 것도 없고 반전도 없고 그냥 마 억지콘셉인겁니다.

오타뱅 아니고 안타뱅입니다. “안탈란다 뱅뱅따위” 돈나오는 일도 아닌데 저도 마 대충 아무말이나 지껄이고 빨리 누워 잘랍니다. 여러분도 이런 뻘글은 그만 읽으시고 우리집 고양이 사진이나 감상하시고 생업으로 돌아가 현실세계에 집중하십시오. 스트라바는 인생의 낭비입니다.

경복궁에 도착했을 때 저에겐 두 가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 시즌1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자. 둘, 컨디션도 안 좋은데 어차피 시즌 끝난 마당에 대충 타다 집에 가자. 두번째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레임덕이 온 거지요.

한시간 무정차를 채우려면 15바퀴를 돌려야 하는데 10바퀴만 돌리고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혼자 피자를 한판 다 처먹지만 않았어도 더 열심히 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좀 더 열심히 탔다면 뱃속에 있던 피자가 다 튀어나왔을 것 같습니다.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개방된 것은 2017년도 부터입니다. 50년만의 개방이라 합니다. 그 전엔 일과시간에만 통행할 수 있었답니다. 개방되었어도 경비원 많습니다. 총들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전거로 뺑뺑이 돌지마라고는 안 합니다.

완전 무정차구간이고 전구간 자전거도로가 있습니다. 평점 4.0드립니다.

6시부터 시작입니다. 11시까지 약오르막이고 12시까지 급격한 언덕이 있습니다. 1시부터 다운힐이 시작되어 50키로까지 올라갑니다. 탄력을 유지해 40키로를 유지하다 체크포인트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급격한 오르막에서 탄력을 유지해 30키로로 넘길지, 전체적인 페이스를 고르게 분배해 25키로로 넘을지에 따라 경복뱅뱅을 돌리는 리듬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다운힐에서 페이스를 늦춰 주행한다면 효율적인 주행에는 도움될겁니다. 하지만 다운힐에서 얻은 속도를 에어로 자세로 바람을 가르며 45키로를 유지하며 최대한 버텨보는 것도 꽤 재밌습니다.

< 아 래 >
아라뱅뱅 4.46km 8:16 32.4km/h 224W 1.5
용산뱅뱅 6.51km 11:42 33.4km/h 215W 2.5
상암뱅뱅 5.22km 8:22 37.5km/h 256W 3.5
서식뱅뱅 3.12km 5:17 35.4km/h 220W 3.5
대덕뱅뱅 5.72km 10:35 32.5km/h 225W 4.5

개화뱅뱅 3.65km 6:21 34.6km/h 273W 3.5
국회뱅뱅 2.46km 3:59 37.1km/h 272W 5.0
망원트랙 0.46km 0:45 37.1km/h 280W 4.5
목운트랙 1.09km 1:45 37.5km/h 287W 4.5
경복뱅뱅 2.61km 4:15 36.9km/h 249W 4.0

20년 9월 10일

 

사르트르는 인생이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고 말했다. 알베르 카뮈는 “자살을 할까, 커피를 마실까”라는 명언을 남겼다. 가장 일상적인 사건과 가장 낯선 사건을 선택지로 두니 실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지난 글 <라이딩 콘셉 결정 방법론>에서 방법론적 접근을 시도했다. 결론이 썩 만족스럽진 않다. 방법론은 언제나 그렇듯 한계가 있다. 구성원이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따르지 않는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방법론은 도움되기보단 탁상공론으로 남는다.

라이딩 코스를 짤 때, 그저 모두가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코스였다면 의사결정 방법론을 적용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또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수준의 케미가 있었다면 방법론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손해 혹은 불만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이익 혹은 만족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론을 꺼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안타까운 수준을 넘어 절망스럽고 비참하다. 올바르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정작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선택지로 향하는 집단적 오류도 흔히 발생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명제를 도덕시간에 배웠음에도 우리는 그 상태에 한발짝이라도 다가갈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방법론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집단적 협력을 통해 인류를 진보의 길로 이끌 유일한 희망이라 믿는다.

기업의 임원은 실무적 노동은 전혀 않고 종일 의사결정만 하는데 그 양이 80회에 달한다. 도구적, 기술적 방법이 없다면 처리할 수 없는 분량이다. 세계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자주 일어나는 언택트(un-tact)의 시대를 맞이했다. 대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훨씬 더 적은 정보만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잦아져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비용 손실은 커질 것이다. 직관, 촉, 케미에 의한 판단은 이미 비합리적인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활용되기 어려워진다. 앞으로 인류는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 뼈저리게 실감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단순히 라이딩 코스를 더 잘 결정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지구적인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물론 나의 본업과도 연관이 있다. 나로선 1타 3피다. 구조적인 선택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다가오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선진적인 자세, 생존과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슬기로운 자세다.

인류가 이제껏 제안한 의사결정방법론만 간단히 추려도 60개 이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먹물들이 써놓은 것들이라 실용적이지 않다. 분야가 상이해 적용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기존에 제시된 방법론도 검토는 하겠지만,  라이딩이라는 분야에 적합한 의사결정방법론을 내가 기필코 새로이 창안하겠다는 각오로 접근할 것이다. 철저하게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구조적인 관점을 고수할 것이다.

 

가위바위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줄곧 즐겨운 친숙한 의사결정 방법론이자 게임이다.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상호 격렬한 대립이나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가위바위보를 통해 결정하게 되면 긴장감도 즐기며 빠르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각자 한 가지씩의 선택지를 주장해야 하고, 자신의 선택지가 선택되길 강렬히 원해야 이 게임의 의미가 있다. 결정 방식은 거의 랜덤에 가까워 비이성적이다. 따라서 승자는 있으나 패자는 없는 경우,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자가 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주로 경품을 추천할 때나, 길거리에서 주운 만원을 누가 가질지를 결정할 때 적용되곤 한다.

동전 던지기 / 사다리타기

가위바위보와 다른 점은 참가자들이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외부의 무작위성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최종결과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순응하게 된다. 승리의 쾌감은 반감되지만, 패배의 충격도 완화시킬 수 있다.

다수결

민주사회에서 만장일치를 이뤄낼 수 없을 때 이용하는 대표적인 차선책이다. 다수의 횡포에 의한 패권주의가 형성되어 소수를 배척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특정 분야에선 다수의 비전문가들 오답을 선택하곤 하기에 이 의사결정 방법이 해당 사안에 적합한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일차원적으로 추구할 땐 좋은 선택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의 총합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고, 문제를 감안하고 갈 뿐이다.

리스트 제시 & 투표

선택지의 이름만 달랑 있고 디테일이 결여되어 있는 불완전 정보로는 올바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없다. 구성원 모두가 선택지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고 있다면 제목만 적힌 리스트로도 충분하겠지만, 추가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택지의 추가 정보를 어떤 형식으로 준비할 지에 따라 다음 4가지 방법론으로 분화된다.

요요 다 붙어라 **

집단의 규모가 너무 커서 부분 집단을 만들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의 맹점은 제안자가 수용적인 상황에 놓인다는 데서 발생한다. 일단 지원자가 모집되면 제안자는 지원자를 검토하거나 심사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지원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상황에 주로 적용되곤 한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제안을 할 때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명시해 공고를 배포하면 지원자를 박탈할 권한을 가질 수 있다.

피칭 & 투표

<요요 다 붙어라>와 개념이 같지만 제안자가 2명 이상일 때 선택 절차가 추가된 것이다. 선택 절차는 다수결의 원리에 따른다. 집단이 분리되어도 괜찮은 상황이라면 <요요 다 붙어라>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도 선택 절차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선택지로 추려야 한다는 상황이다. <요요 다 붙어라>는 제안자가 지원조건을 설정하는 권한을 가진 갑이었지만, <피칭 & 투표>에서는 반대로 구걸과 부탁을 해야 하는 을이 된다. 제안자는 자신의 선택지가 선택될 수 있도록 경쟁적인 홍보활동을 펼쳐야 하는 게 관전포인트 꿀잼 팝콘각이다.

장단점{Pros/Cons} 서술 > 순위 조정

<피칭 & 투표>의 절차에 주관을 빼고 객관성을 가미한다. 개인의 주관이 들어갔던 피칭은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나열하는 것으로 바뀌고, 구성원들의 주관적인 의사표현은 조직 관점에서 합리적인 우선순위 조정으로 바뀐다. 순위의 조정은 1군, 2군, 탈락 정도로 불명확하게 그룹핑한 뒤 1군의 선택지에 대해서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빠른 진행에 도움된다.

시나리오 서술 > 순위 조정 *

시나리오 기법은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상황과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예측해 서술하는 것이다. 장단점을 융통성없이 나열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끌리는 지를 가늠해보려면 생동감있는 정보가 이야기를 전달하듯이 시나리오로 작성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미래의 경험에 대해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냄으로 의사결정권들은 상황별 판단의 근거를 제공받을 수 있다.

후회 최소화 선택 방법론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 창업을 결심할 당시 사용한 방법론이다. 무탈하게 잘 다니고 있던 연봉 2억의 회사를 계속 다닐지, 리스크를 감안하고 모험을 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그는 고민했다. 확정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이익을 모두 포기할 리스크 앞에서 리스크만 따지면 1대 99의 차이다. 그는 리스크를 보지 않기로 했다. 선택을 포기했을 때 얼마나 큰 후회가 남을지를 따지기로 했다. 실리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마음이 동하는 곳으로 향했던 그는 20억의 자산을 포기한 대신 200조의 자산가가 될 수 있었다.

형이 짜르고 동생이 골라 **

케익을 먹을 때마다 싸우는 형제에게 내린 현명한 부모의 지혜를 빌린다. 코스를 제안하는 사람과 선택하는 사람을 분리한다. 코스를 제안하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만 제안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 내려지더라도 만족할 것이고, 선택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만족할 것이다.

모든 구성원의 강제 제안 > 탈락 > 선정 *

우리 회사에서 점심 식당 고를 때 쓰는 방법론이다. 각자 2개의 식당(또는 메뉴)을 제안한다. 제안 개수는 무조건 채워야 하기에 별다른 의견이 없는 날엔 김밥천국이나 3만원짜리 한정식 같은 얼척없는 제안으로 개수를 채우면 된다. 그렇게 6~8개의 선택지가 후보로 제시되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최악의 선택지를 제거한다. 누구부터 선택지를 제거할지, 1인당 몇 개를 제거할 지는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 최종 선택지가 2~3개로 좁혀질 때까지 계속 돌아가며 선택지를 탈락시킨다. 최종 선택지가 2~3개로 좁혀진다면 그 중 1개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체로 최종 단계에선 만장일치로 결정되기 때문에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식당에 향할 수 있어 밥맛도 좋게 느껴진다.

이 의사결정 방법론을 거치면 모든 구성원이 모든 절차에 같은 무게로 관여하게 되므로 입체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의견을 평면배치한다는 것도 좋은 점이지만, 아무런 의욕없이 집단생활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아싸도 참여할 수 밖에 없는 강제사회화 기능도 있다.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무례하다 여겨지는 문제, 내성적인 사람의 소극적인 태도 문제,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해서 자신의 의견을 숨기는 문제를 유쾌하게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매번 무난한 식당을 가게 된다. 탈락 과정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예측불허하고 기발한 선택지는 매번 탈락할 수 밖에 없어 평균 편향 현상이 발생한다.

다중 기준 의사 결정 (Multiple-criteria decision analysis)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여러 기준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경우 적합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입할 때라면 가격, 연비, 승차감, A/S편의성, 기업이미지와 같은 기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평가 기준들은 속성(Attribute) 혹은 목적(Objective)으로 나뉠 수 있다. 속성은 스펙을 따지는 것이고 목적은 해당 선택지를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를 따져보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여러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 MCDA를 사용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평가해도 좋다.

등간 척도와 비율 척도로 나타낼 수 있다면 수량화, 정량화 할 수 있다.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면 연산할 수 있다.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준마다 가중치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관적 판단의 영역, 정성적인 영역을 정량적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준이 많아지면 오히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MCDA + 표준편차 분석 + 끝장 토론

나는 운이 좋게도 어린 나이에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한 적이 있다. 스타트업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 대부분의 스타트업 평가 담당자들은 나름대로의 MCDA를 만들어 썼는데, 자신이 개발한 MCDA의 이유와 근거를 알진 못했다. 이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으나 아무도 해법을 제시하진 못했다.

심사위윈이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온 의견과 실제로 MCDA과정을 거친 평가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작성할 때가 문제인지, 취합하는 과정에서 문제인지를 찾아내야 했다. 우선 점수를 취합하기 전 심사위원들 간의 점수 격차를 눈여겨보았다. 극단적인 점수 차이를 보이는 스타트업을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으로 쉽게 계산해 추려낼 수 있었다. 사업에 대해 이해할 수 없기에 0점을 줬다는 심사위원의 점수는 평균점으로 제출하도록 조정했고, 프로그램과 별개로 이미 스타트업과 인연을 맺어오고 있어 평가에 중요한 정보를 공유한 심사위원 덕에 다른 심사위원의 최종 점수가 바뀌기도 했다. 이런 끝장토론을 한차례 거치고 나니 10팀 중 3팀의 운명이 바뀌었다.

정량의 기법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면서 정성적 논의를 중점적으로 전개시킨 훌륭한 사례랄까. 7년 전 고안한 절차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스럽다.

목표지향(Goal Oriented) & 제한조건(Don’t) 수렴 > 선택지 구성 **

이 방법론엔 모더레이터가 필요하다. 선택지를 제시하기에 앞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다. 구성원은 “이런 라이딩을 하고 싶어요”, “이런 라이딩은 싫어요”와 같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조건을 수렴한 뒤 선택지를 찾거나 생성하기 때문에 선택지 결정 과정은 생략, 축소될 수 있다.

제한 조건이 많아질수록 선택지가 줄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구체적인 제한 요건이 있어야 선택지가 명확하게 추출된다. “흰색 물체 10개를 말하시오”라고 물었을 때보다 “당신의 방 안에 있는 흰색 물체 10개를 말하시오”라고 물었을 때 더 많은 답을 할 수 있다.

Goal은 지향점이고 Don’t는 지양점이다. 추구하는 것과 피하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고려한다. 제한조건(Don’t)을 수렴한다면 구성원들의 불만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악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으로 향할 수 있다.

간혹 대립하는 목표들이 제시될 수 있다. [침질질 운동하고 싶어요]와 [샤방으로 타고 싶어요]는 대립한다. 조건의 대립이 있다면 합의점을 애써 도출하는 것보다 그룹을 쪼개는 판단이 나을 때도 있다.

실질적 문맹률이 높은 대한의 현대인들은 문장보다 키워드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자신이 원하는 라이딩의 해시태그로 표현하라고 하면 의견을 더 많이 수렴할 수 있다.

의견을 수렴할 때 의견의 무게를 구분하는 것이 좋다. [알러지가 있어서 꽃가루 날리는 곳은 불가능해요]는 필수 조건으로 접수해야 하지만 [차량통행이 적은 곳이면 좋겠어요]는 부수적인 조건으로 접수해야 한다. 필수조건과 욕심조건을 구분한다면 의견 수렴에 도움된다.

 

 

* 표기는 라이딩 코스 결정 방법론에 적합한 것

하노이, 그곳이 어딘지도 모른채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다 관두고 떠날 작정이었다. 그러니 하노이가 어떤 곳인지, 어디 붙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뜬지 20분만에 결제는 완료되었다. 출국일을 사흘 앞두고야 그곳이 베트남의 수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떠나본 해외 여행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만족스러운 여행의 조건으로 도시의 매력도 중요하겠지만 여행자의 마음상태는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내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던 지난 겨울은 참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잔인할 정도로 가학적인 사람이란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난 정체(停滯:발전없이 한자리에 머무는 상태)가 발견될 때마다 윽박지르고 채찍질하는 사람이었다. 이 방식은 좋은 방식이 아닐 뿐더러 좌절한 사람에겐 더욱이 부적절한 처방이다. 그걸 알면서도 난 습관을 고치지 않았다. 지난 겨울 난 정체했고 좌절에 빠졌다. 가학의 대상이 누군지 따지지않고 처방은 예외없이 이루어졌다. 이윽고 자기파괴가 시작되었다. 정체를 벗어나긴 더욱 어려워졌고 처방은 잔혹하게도 멈추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당장 벗어나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난 미지의 도시에 몸을 던졌고 하노이는 날 품었다. 종일 걸었고 종일 구경했고 종일 멍때렸고 종일 스쿠터를 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날이다. 비가 왕창 내렸고 난 스쿠터를 타고 온 도시를 구석구석 조지고 다녔다.

20년 봄, 자기파괴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첫째가 하노이고 둘째는 자전거다. 하노이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미친듯이 자전거를 탔다.
정체된 일과 커리어는 내버려두고 클릿을 꽂았다. 반백수의 상태로 자전거만 탔다. 다소 인위적이고 인스턴트적인 응급처방이었지만 자전거는 분명 결여되어있던 성취감을 공급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수단이었다.
20년 여름, 나는 지금 완전히 회복했다. 주당 50키로도 못타고 있는 라이딩 로그가 회복의 증거라는 점은 조금 안타깝지만.

구정에 귀국하고 나니 코로나가 창궐해 전 지구가 떠들썩해졌다. 한동안은 꿈도 꾸지 못할,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도 모를, 해외여행의 마지막이 하노이였다니. 시간이 지날수록 하노이의 기억은 더욱 특별하게 여겨진다.
지난 주엔 연남동에 있는 베트남 콘셉의 카페를 20분이나 들여 찾아갔다. 현지에서 먹었던 에그커피가 아니었다. 전혀 달랐다. 공통점을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제멋대로의 액체를 5,000원 내고 먹다 반을 남겼다.
도시 하노이로부터 받았던 마음의 안식을 미각경험를 통해 조금이나마 회상하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완전 짓뭉개졌다. 서울사람들의 현대적 관습대로 솔직한 피드백은 숨겼다. 잘 마셨단 거짓말을 던졌다.
다시 돌아온 차엔 불법주차 딱지가 붙어있었다.

하노이에 다시 갈수도 없거니와 그리워하는 것마저 허락지 않으니 나의 마음은 일종의 실연 상태에 빠졌다.
어제 스트라바 피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하노이라이딩’은 그 이름만으로 내 마음에 적셔들었다. 20년도에 내가 제일 좋아한 두 가지가 모두 들어가있는 이름.
하노이에서 스쿠터를 탄 기억은 자전거를 탄 기억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아이레벨, 주행경로, 흘러가는 풍경의 속도까지 거의 흡사하다. 그날의 기억을 살짝 조작해보니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탔던 것 같기도 하다.
조작된 기억이 아주 흡족하기에 같은 이름의 파일이 이미 있습니다. 기존 파일을 덮어쓰시겠습니까? 네네. 아무렴요. 그렇게 해주세요.

하노이에서의 마지막날엔 비가 왕창 내렸고 난 자전거를 타고 온 도시를 구석구석 조지고 다녔다.
어제 스트라바 피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하노이라이딩’은 그 이름만으로 내 마음에 적셔들었다. 20년도에 내가 제일 좋아한 두 가지가 모두 들어가있는 이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끌림에 오후 8시 정모 장소에 덜컥 참석해버렸다.

‘하노이라이딩’은 하늘공원 노을공원 라이딩의 줄임말이었다. 오늘은 샤방이라 1회전만 가볍게 돌린 후 편의점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고 예상치못한 선물도 받게되어 민망함과 감사함을 표했으며 이젠 낯선 사람들을 만나도 꽤나 여유로운 척 할 수 있게 된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칭찬한 뒤 15키로만 타고 집에 돌아가기엔 쫄쫄이를 꺼내입은 수고에 비해 운동성과 회수가 경제적이지 못하단 판단에 서오릉을 찍고 집에 돌아오던 중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하노이에서의 마지막날 자전거 탈 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그토록 고맙고 그리웠던 하노이가 오늘 여기 있다. 코로나도 자가격리도 다 이겨내고 와주었구나. 난 오늘 하노이라이딩을 했다.

 

 

 

 

 

 

 

 

 

며칠 전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정리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야망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과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꽤 도움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경제의 구조, 경제의 구성원과 관계, 거래의 기술, 협상의 범위, 가치, 신용 따위의 항목들을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했다. 더 잘 정리된 책이나 자료들은 많이 있지만, 책장에 꽂힌 지식과 소화시킨 지식은 다르기 때문에 어설프더라도 정리하는 것은 도움될 일이다. 이 작업을 통해 경제적인 성공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따져보았다.

내가 지금 하고있는 서비스 중개업으론 부자가 되기 어렵겠단 계산이 나왔다. 애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익을 크게 발생시키는 욕심을 내진 않았다. 사업을 통해 경험자산과 지식자산을 관리하는 순환고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했고, 어느 정도 달성했다. 지금 이 사업으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선 확장성을 높이거나 사업의 통제불가능요인을 제거할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딱히 찾아내지 못했다. 또는 그게 가능하더라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으로 보였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충족요건에 맞아 떨어지는 아이템을 난 이미 갖고 있었다. 라자냐다. 라자냐는 피자와 치킨을 대체시킬 수 있는 배달음식이 될 수 있다. 비싼 양식의 메뉴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방안을 찾아낸다면 지금은 없는 시장을 만들어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땄던 한식조리기능사자격증으로 군대에서 2년 동안 취사병을 했고, 그 기간에 양식조리기능사를 땄고, 호주에 나갔을 때도 주방에서 일하다 온 뒤, 셰프뉴스라는 매체를 3년간 운영하며 국내 외식업계에 있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외식사업에 대해 머리로는 배운 상태이기 때문에 라자냐를 사업화하려는 시도로는 크게 결격사유는 없는 것 같다. 창업도 두 번 했더니 대충 사업이란 무엇인지 감을 잡은 상태라 구상이 빠르게 진척되었다. 최근 나의 일상은 아주 늘어지고 마음이 향하는 프로젝트가 없어서 한동안 방황하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온 종일 하나의 프로젝트만 생각하는 완벽한 몰입의 상태에 접어들 수 있었다. 3년만이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이웃집 라자냐라는 식당 한 곳이 같은 전략으로 라자냐를 9,900원에 팔고 있었다. 처음엔 8,900원에 팔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와우라자냐라는 곳은 6,900원에 파는데 너무 품질이 떨어져 패스트푸드의 대체음식으로 포지셔닝되었다. 두 곳 모두 확장성은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일단 작은 업장을 운영하는 것에 그치거나 배달 및 단체주문을 통해 업장외 수익을 내고 있었다.

내가 라자냐가 확장성이 있다고 생각한 데에는 생산 프로세스에서 효율을 높일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재료준비/라구소스끓이기/라자냐조립/라자냐굽기/라자냐포션/배식] 총 6단계로 나뉘는 생산공정은 세부액션까지 계산하더라도 29단계밖에 되지 않는다. [라자냐포션/배식]은 생산량에 비례해서 단계가 늘어나지만 그 앞 단계들은 생산량이 늘어나도 양만 늘리면 되기 때문에 단계가 늘어나지 않는다. 라자냐 한 판을 구우면 12개가 나온다. 라자냐 하나를 만들어도 29액션, 12개를 만들어도 29액션이다. 24개를 만들면 31액션, 48개를 만들면 33액션, 120개를 만들면 49액션이다. 물론 실제 노동량은 이렇게 극단적이지 않겠지만, 공정의 개선으로 생산성을 높일 지점은 분명 있는 아이템이다.

공정의 개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확장이 가능하다. 한 개의 업장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한계수익은 어떤 아이템이든 얼마나 잘되든 기대수익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월 천만 원 이상 벌진 못할 것이다. 확장을 해야 하는데 그게 직영방식이든 가맹방식이든 확장을 하려면 공정 개선과 공정 통제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가맹사업도 포화시장이기 때문에 본사 측에서 웬만한 생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브랜드만 빌려주는 가맹사업은 존속이 어려울 것이다.

생산 프로세스의 효율을 높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거와 통합의 의도로 접근한다. quantity이다.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효율을 우선적으로 따지지 않는다. Quality다. 이 둘은 대립적이다. 어중간하게 중간에 타협점을 찾으려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가성비로 싸게 팔려면 quantity로 접근해야 하고, 비싼 값에 높은 고객만족도를 얻으려면 quality로 팔아야 한다. 결국 내가 정할 일이 아니고, 고객의 수요가 있는 지점을 공략해야 하지만.

8,900원짜리 라자냐로 연매출 3억을 올리고 1억의 이익을 남기려면 개당 마진 5,000원으로 하루에 300개를 팔아야 한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루에 300개는 하나의 업장에서도 달성하기 어려운 상태이긴 하지만, 라자냐를 통해 부자가 된다는 것은 이보다 더 많은 라자냐가 자동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하되 내가 라자냐의 공급라인을 확실히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략 하루에 3,000개의 라자냐가 어떤 방식으로 팔리는 상태를 라자냐로 부자가 된, 라자냐 왕의 상태라고 설정해보자.

라자냐를 통해 부자가 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출발은 여러 방식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의 출발점과 목적지를 구분해보자면 목적지는 하나, 출발지는 여럿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임대주방에서 배달로만 시작하는 방법도 있고, 동네 골목에서 1차상권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또는 59쌀피자나 피자스쿨이 폐업한 업장을 인수받아 (조리설비를 거의 그대로 쓸 수 있으니)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출발하든 거쳐야 하는 중간 목표들이 있다.

하나의 업장에서 300개를 판매하는 것 > 직영이든 가맹이든 판매 접점을 5배로 늘리는 것 > 생산공정의 중앙화를 이루는 것이다.

여전히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저가의 라자냐 판매점들은 조리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고객의 불만족을 떠나 회전률의 한계가 발생한다. 라자냐의 조리는 슬로우푸드지만 배식은 패스트푸드처럼 빨라야 한다. 배식의 효율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면 판매접점 확장은 이루지 못할 것이다.

생산공정의 중앙화는 반조리상태로 판매점에 납품되는 것을 말하는데, 고객입장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양식이란 해외의 르꼬르동 같은 어려운 이름의 조리대학교를 나온 젊은 사람이 점잖게 내어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조리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하물며 패스트푸드도 각 매장마다 직접 조리가 이뤄지는데.

생산공정 / 포지셔닝 / 마일스톤 / 수익화계획도 대충은 산출할 수 있었다. 이정도 사업성을 따지는 데에 불과 2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도 칭찬하지 않았음에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라자냐를 통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은 “할 수 있냐, 없냐”가 아니다. “할 거냐, 말 거냐”

내 마음이 답을 해야 한다. 라자냐 왕이 된다는 것은 이런 이성적인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자냐 왕이 되기까지의 5년의 기간동안 나는 라자냐에 미쳐야 할 것이다. 초기 창업의 2년 동안은 육체 노동에 시달려 하루에 5시간 이상 못 잘 것이다. 이후 3년은 내가 해보지 못한 사업적 확장과 경영적 도전들로 인해 난관을 겪을 것이다. 그것을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니 라자냐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라자냐 왕이 될 것인지에 대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라자냐 왕이 되는 것을 인생과업으로 여긴다면 앞선 마일스톤을 달성하는 것과 요구되는 자원, 맞이하게 될 난관 모두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의 극복의지가 나에겐 있을까? 없다. 지금의 사업도 매진하지 않고 지난 6개월 동안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하면 다 한다. 그리고 해내는 것이 일이기 때문에 해내지 못하면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얼만큼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지도 어느정도 알고 있다.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장대한 장대한 여정을 하기로 결정할 것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성공한 부자는 자신의 일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니 아이템도, 사업성계산도, 단계구상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누구도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고, 두 배로 살 수도 없다. 그 분야에 전력을 다할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사업구상의 진도를 이틀 동안 빠르게 진척시킨 것만으로 충분하다. 라자냐 왕의 꿈은 이렇게 접었지만, 너무나 통쾌하고 시원하다. “너 그럼 식당차려라”라는 얘길 자주 들었다. 그럴 때마다 “식당일은 나이 50먹고 할 거 없을 때나 해야지”라고 답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틀린 답변이었다. 50먹고 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본업에 집중해야 하겠다.

 

“건강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누구나 기억하는 광고 문구다. 제품을 팔지 말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교과서적 가르침을 지켰다. 고객은 쇳덩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매를 구입하는 것이다. 쇳덩이라면 오만 원도 아깝겠지만, 건강한 몸매를 가질 수 있다면 오십만 원도 쓸 수 있다. 고객의 문제에서 출발해 제품으로 향하는 것은 판매의 기본이다. 모든 광고는 이 기본원칙을 준수해 만들어진다.

제품의 값어치는 고객 문제의 크기에 비례한다. 문제가 클수록 비싸게 팔 수 있다. 그래서 판매자는 고객이 문제를 크게 인식하도록 부추긴다. 작은 문제는 부풀리고 없는 문제도 만들어낸다. 불안을 조장하고 공포를 유발하는 판매 방식은 지푸라기도 십 억에 팔 수 있는 고급 기술이다. 사람을 물에 빠트린 뒤 지푸라기를 내밀면 된다. 지푸라기를 팔겠다고 사람을 물에 빠트리는 것도, 물에 빠졌을 때 십 억을 내고 지푸라기를 사는 것도 이 곳에선 정상이다. 건강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합법적 거래다.

판매자는 모든 대화를 구매로 귀결시킨다. 나도 꽤 팔아본 사람인지라 그들의 공격 패턴을 훤히 읽을 수 있다. 판매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접근한다면 어디 한 번 지껄여 보란듯이 지켜본다. 그들이 아무리 다양하고 창의적인 공격을 펼쳐도 나의 방어는 한결같다.
“안사요”
모든 종류의 창을 막아내는 만능 방패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쉴 새 없이 공격받았다. 속도를 더 내고싶다 했더니 뭘 사야 한대, 삭신이 쑤신다 했더니 뭘 바꿔야 한대, 훈련을 제대로 하고싶다 했더니 또 뭘 사야 한대, 멀리 가려고 했더니 뭐가 필요하대, 자전거 얘기를 할 때마다 지갑을 열어래. 그래서 입 닥치고 가만 있었더니 먼저 다가와서 문제가 많대. 20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탔다 했더니 자기가 볼 땐 너무 위험해서 곧 사고가 날거래. 이놈들이 나를 아주 물에 빠트리려고 작정했나보다. 뻔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수법이구먼.

“안사요” 방어모드로 일관했지만 이번 공격은 왠지 끊이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났다. 욕을 한 바가지 쏟아 붇고 소금을 뿌릴 참이었다. 그러다 눈을 마주쳤다. 초점없는 광신도의 눈이었다. 판매자가 아니었다. 소비자였다. 딴에는 날 위한답시고 조언했지만 의도치않게 공격이 된 것이다. 이들은 진심으로 돈을 쓰는 게 이로운 것이라 믿고 있었다.

 

판매자를 대신해 서로 물에 빠트리고 돈을 안 쓰면 큰일난다고 호들갑떤다. 자본주의 피착취계급이 자가증식하는 신비로운 관경이다. 부익부빈익빈이 왜 갈수록 심해지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찾았다. 가난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나.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종교나 이념도 이정도의 전파력은 갖지 못했다. 개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디어환경에선 잘못된 신념이 더욱 빠르게 퍼진다. 자전거 레이스는 하덜 않고 경쟁적인 소비 레이스만 펼친다.

돈을 한 웅큼 쥔 채로 문을 박차고 들어와 “Shut up and take my money”라고 외치는 고객을 물에 빠트릴 필요는 없다. 더러운 작업은 하지 않고 신성한 구세주 역할만 하면 되니, 판매자는 신이 나서 고객의 엉덩이에 최고 호갱등급 도장 VVIP를 찍어 준다. 감격한 호갱은 펄쩍 뛰어올라 발로 박수를 치고 앞돌기를 한 뒤 착지와 동시에 넢죽 엎드려 절을 두 번 한다. 감격의 눈물을 닦으며 다음달 월급도 모조리 갖다 바치겠다 맹세하고 뒷걸음질치며 퇴장한다.

 

자전거 고객의 소비행태는 기존의 구매행동이론으론 설명되지 못한다. 기존 이론에선 상품을 보아야 구매의사가 생긴다고 전제한다. Attention Interest [발견>관심] 순서다. 1920년도에 정립된 구매행동이론 AIDMA도 2010년도 미디어 환경변화에 맞춰 개정된 AISAS도 모두 AI단계가 선행한다.

하지만 요즘 고객은 다짜고짜 ASS다. Action Search Share [구매결정>검색>자랑] 어떤 상품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기변 결심부터 한다. 돈이 생기는 족족 다 털어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상품을 검색해 예정된 소비를 하는 셈이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제 구실을 못하는 제품들이 있다. 아껴 써야 하는 수첩, 비를 맞히면 안 되는 가방, 한 달째 비닐포장 뜯지 않은 새 차, 김치국물 한 방울 튀었다고 종일 기분이 우울해질 정도로 비싼 정장. 닳는 게 아까워서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명품 신발. 그런 신발을 신고 어떻게 달리겠는가? 달리는 게 목적이라면 닳아도 아깝지 않을 신발을 신어야 한다.

자전거도 너무 비싸면 제구실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자전거가 월급보다 비싸면 마음껏 밟을 수 없을 것이다. 난 월급이 작아서 중국산 가품을 타지만 대신 마음껏 찢어발길 수 있다. 자전거는 밟고 뜯고 비틀어 당겨서 밀고 던지고 엎어치듯 찢어발겨 타는 것이다. 타다 보면 기름때도 묻고 닳고 망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건 보물이 아니다. 탈 것이다.

 

돈이 썩어 남아서 자전거에 수천만원을 쓰건, 없는 잔고를 쥐어짜 장만하건, 미래를 저당 잡혀가면서까지 빚내 지르건,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나도 판매자들의 소비조장 공격이 달갑지 않듯이 내 자산운용 철칙을 알려주는 것도 상대방에겐 불쾌한 일일 것이다.

“정녕 당신의 인생이 자본주의 소비이념을 전파시키기 위한 숙주로 쓰이다 내팽개쳐져도 괜찮단 말입니까? 깨어나서 주체적 삶을 살아가십시오.”
라고 내 진심을 전하는 순간 그들은 나를 광신도 쳐다보듯 할 것이다. 이어서 나의 공격을 막아낼 만능 방패를 들어올릴 것이다.
“니는 니 대로 살아라(live) 내는 내 대로 살게(buy)”

 

같을 同, 좋을 好. 같은 걸 좋아해야 동호인인데 내가 자전거 쇼핑 동호회로 잘못 찾아왔나 싶다.

당신과 나 사이에 라이딩의 즐거움이란 교집합이 존재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