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전에 본 풍경들. 이전에 느낀 감정들. 라이더 이은호는 다시 깨어났다. 몇 달 동안 숫자에 묻혀 사느라 잊고 있었다.

모든 숫자엔 의도가 들어가있다.

속도는 더 빠르게
파워는 더 높게
심박은 더 가쁘게
거리는 더 멀리
밸런스는 더 동일하게
평활도는 더 균일하게
주행시간은 더 오래
주행빈도는 더 자주

사실 숫자는 잘못 없다. 해석하는 사람의 잘못이다. 숫자는 그저 보여줬을 뿐이다. ‘더더더더’ 를 붙여 해석한 건 나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난 너를 주머니에 넣었고, 오늘 저물어가는 저 해와 함께 너의 역할 해임식을 거행할 것이다.

숫자가 나의 라이딩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겠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유치한 게이미피케이션. 실존하지도 않는 허무하고 과장된 목표를 백개씩 만들어 사람을 옥죈다. 나는 네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다. 설계된 사육을 당하지 않겠다.

스트라바는 나를 위한 서비스가 아니다. 선수 또는 선수를 꿈꾸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나도 선수가 된 것 마냥 세상을 다 씹어먹을 각오로 클릿을 꽂아넣곤 하지만 매일 그럴 순 없다.

가민을 켜고 스트라바에 로그를 올린다는 것 때문에 나의 저녁 라이딩이 레이싱이 되어선 안 될 일이다. 숫자로 타는 자전거는 분명 새로운 세계였지만 내 자전거 세계의 전부가 될 순 없다.

오래 탈 필요도 땀흘릴 필요도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땀띠나는 심박계를 찰 필요도 쫄쫄이를 입을 필요도 없다. 장갑도 안끼고 헬멧도 안썼다. 클릿슈즈도 벗고 빤쓰도 벗고 타려다가 참았다.

오늘도 느긋한 마음에 낙조를 보러 나온 것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전거를 되찾기 위함이다.

랜스 암스트롱도 한쪽 부랄을 잃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마실라이딩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랜스 형은 요즘 자전거를 좀체 안 탈런지, 샤방 마실 즐길런지, 존나 빡세게 로라 굴릴지 대뜸 궁금하다. 이 글 본다면 오랜만에 카톡 한 통 해주길 바란다.

 

 

 

인간은 이미 사이보그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안경을 꼈다. 태생적 신체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신체를 후천적으로 개조하거나 외부의 물질로부터 도움받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다.

옷과 신발은 피부의 확장이고, 안경은 시력의 확장이며, 보청기는 청각의 확장, 탈 것은 다리의 확장이 되었다. 더 찾아보자. 백신은 면역력의 확장이고, 노트는 기억력의 확장이며, 컴퓨터는 연산능력의 확장이고, 인터넷은 사회적 연결의 확장이다. 사이보그는 신체 외적인 도구,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욱 강한 존재로 거듭난다.

어디까지가 신체의 개조이고, 어디부터가 신체의 확장인지 경계는 불분명하다. 인간사회에선 인간들끼리 법적으로 허용되는 기준을 마련해두고 있을 뿐이다.

더 강한 존재가 되길 원하는 사이보그는 고민한다. “나의 미천한 신체 능력을 어떻게 더 강화할 것인가” 태생적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외부의 물질적, 기계적 도움을 얼마나 많이 활용할 수 있는지가 곧 능력의 총합이 된다. 인간이 기술을 만들었지만 그 기술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

사람을 그리라고 하면 누구나 옷을 입고 있는 상태의 사람을 그릴 것이다. 나체를 그릴 사람은 없다. 원시인을 그리라고 해도 나체에 창 같은 무기를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릴 것이다. 사용하는 도구까지 포함시켜 사람으로 정의된다. 도구까지가 신체다. 도구도 존재에 귀속된다.

갓난 상태의 조카는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의 신체를 조작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물체를 집으려 할 때 모든 손가락을 한번에 쥐어 잡는 방식에서 엄지를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익혔다.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렸지만 동시에 꽤 빠른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 감탄했다.

우리 모두의 출발이 갓난아이였던 것을 생각하면 태생적 신체 또한 도구다. 난 아직도 네번째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정교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일상에서 필요하지 않은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36년 달고 살았던 신체가 새로운 도구를 조작하는 것보다 때론 더 낯설다.

반면 내 젓가락질은 아주 정교하다. 하루에 두번 이상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판도 잘 친다. 자판을 처음 칠 땐 손가락의 방향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50타를 넘기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분당 700타를 쳐내고 있다. 그리고 자전거도 잘 탄다.

신체 조작 숙달의 과정과 도구 조작 숙달의 과정은 전혀 다르지 않다. 유아기를 벗어난 아이가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조작하듯, 성인인 우리들은 도구를 자유롭게 조작한다. 숙달된 도구는 직관적이다. 직관적이란 말은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난 자전거를 직관적으로 다룬다. 자전거는 이미 내 신체의 일부다.

쓸모없이 어려운 내용만 많아서 내가 이해한 것만 요약한다.

근육을 움직이는 데에는 ATP가 필요하다. ATP를 공급하는 방법은 4가지가 있다. 각 단계는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1. 저장된거 바로 쓰기 (3초)
2. 급한대로 만들어 쓰기 | 무산소 ATP-PC (10초)
3. 빚내서 쓰기 | 무산소 젖산 (2분)
4. 정직하게 만들어 쓰기 | 유산소 (∞)

근육 속에 저장된 ATP는 아주 적어서 강한 근력운동이 시작되면 3초만에 고갈된다.

저장된 ATP를 모두 썼으니 만들어 써야 한다. 산소를 공급받을 겨를은 없어서 근육 속에 저장된 화학물질(PC : 인산 크레아틴)을 분해해서 ATP를 급조한다. 이 물질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10초 동안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10초가 넘는 기간 동안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면 젖산시스템을 사용한다. 혈액, 근육, 간에 저장되어 있는 글리코겐을 분해시켜 ATP를 합성하는 방식이다. 글리코겐은 섭취된 탄수화물이 잘게 쪼개진 형태라 생각하면 된다. 체내에 글리코겐과 혈당이 부족하면 젖산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 상태를 봉크bonk라 한다. 무엇인가를 태울 때 산소가 부족하면 그을음이 발생하듯, 글리코겐을 태울 때도 산소 없이 태운 탓에 부산물로 젖산이 생성된다.

2분 이상 운동이 지속되면 유산소 시스템을 사용한다. 탄수화물, 지방을 산화시켜 ATP를 합성한다. 체내에 저장된 지방은 아주 많기 때문에 숨만 제대로 쉬어준다면 제한없이 ATP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생산 속도는 가장 느리다. 살이 빠질 때 지방은 똥구멍으로 나가지 않고 이렇게 연소과정을 거쳐 날숨으로 나간다. 살을 빼기 위한 유산소운동이라면 탄수화물을 공급하지 않고 지방을 주연료로 쓰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퍼포먼스를 내기 위한 유산소운동이라면 탄수화물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한다. 탄수화물이 과도하게 공급되어 잉여량이 남는다면 지방으로 저장된다. 탄수화물과 지방이 없다면 단백질까지 분해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살 빼겠다고 탄수화물과 지방을 무조건적으로 제한한다면 오히려 운동을 할수록 근육량이 줄어드는 역효과 발생.

ATP생성의 네 단계를 태우는 것에 비유하면 꼭 들어맞는다.
1. 성냥 대가리에 불 붙이면 3초 동안 화르륵 탄다.
2. 성냥 몸체에 붙이면 추가 연료 공급 없이 10초 동안 탄다.
3. 신문지 한 부에 불을 붙이면 가장 큰 불을 낼 수 있지만 1:30만에 신문은 다 타버린다.
4. 각목은 오래 탄다. 하지만 한 번 불이 붙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불의 세기도 크진 않다.

이 비유가 적절한 이유는 ATP를 생성하는 과정이 연소 과정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 중 탄소는 18.5%로 산소 다음으로 풍부하다. 다양한 유기화합물의 형태로 존재하는 탄소 분자를 산화시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곧 땔감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은 작용이다. 탄단지도 성냥도 종이도 각목도 모두 탄소다. 탄소분자가 크면 오래 타고 작으면 빨리 격하게 탄다.

몸을 속여 글리코겐 저장량을 늘리는 방법도 있다. 이를 카보로딩이라 부른다. 시합 6~4일 전에는 저탄 1~3일 전에는 고탄으로 식단을 조정하면 몸이 탄수화물을 갈구하는 상태가 되어 평소대비 2배 가량 저장 가능. 계체량을 통과해야 하는 운동선수들이 하루에 7키로씩 체중이 불어나는 이유도 수분과 글리코겐을 뺐다 채웠다 하기 때문이다. 글리코겐 저장량은 근육량에 비례한다. 운동 직전이나 도중에는 흡수가 빠른 단당류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알이 배기거나 근육통이 있는 것은 젖산이 쌓였다는 것이다. 유산소운동을 통해 젖산 제거를 촉진시킬 수 있다. VO2MAX 30~40%의 강도가 젖산 제거에 가장 효과적이다. 10분만에 25%, 25분만에 50%, 1시간 15분만에 95%를 제거할 수 있다. 리커버리 라이딩은 이 원리를 활용하는 것이다.

ATP-PC시스템은 30초만에 70%를 회복하고 180초만에 100%를 회복한다. 지속시간이 40초 이내인 운동이라면 ATP-PC 시스템을 위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빚내서 쓴거 갚아야지? 근육에 ATP, PC, 글리코겐을 재충전, 몸 속의 산소 재포화, 근육 합성, 노폐물 분해 등의 활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운동 후에도 산소소비량, 소모열량이 늘어난다. 운동 후 초과 산소 섭취량(EPOC)으로 측정 가능하며 이를 애프터번 효과라 부른다. 3시간 후 13%, 16시간 후 4%수준으로까지 급격히 떨어지며 최대 38시간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각 단계마다의 회복요구시간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걸 알아야 성냥이 충전되었는지 말았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딩 중에도 충전되는지, 얼마나 빠르게 충전되는지, 운동 강도에 따라 충전 속도는 달라지는지, 달라진다면 비례하는지 반비례하는지, 특정 조건에서만 충전활동이 일어나는지도 알고 싶었다. 유산소 모드를 지속하는 와중에 무산소 모드를 얼마나 자주 전환시킬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걸 알아야 다리가 털리기 전에 자중할 수 있을 것이다. 어택을 언제 얼마나 강하게 쳐야 친구 멘탈을 털어버릴 만큼 거리를 벌릴 수 있을 지 전략을 짤 수 있을 것이다. 저 앞의 깔딱고개를 탄력을 유지해 넘기는 게 가능할지, 유산소로 쉬어가며 넘기는 게 좋을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없다. 이론만 넘치고 해석이 없다. 정작 필요한 정보는 찾지 못했고 화학 공부만 하고 있다. 왜 아무도 쓸모있는 정보를 주진 않고 복사 붙이기만 해둔걸까? 이러니까 먹물 소리 듣지?

아쉽지만… 직접 실험해서 감으로 익힐 수 밖에.

▣ 연구 배경

주법을 연구하고 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순간 주법을 무한정 다양화시키는 것으로 목적이 변질되었다. 종류만 많아질 뿐 나의 라이딩 스타일 스펙트럼이 넓어지진 않는다.

어떤 일이건 진행과정에서 퇴적물이 쌓여 복잡도가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주기적으로 리팩토링 해줘야 한다. 바탕화면 정리, 디스크 조각모음, 안쓰는 책 버리기 같은거.

미분 후 경우의 수 조합 방법론을 적용한다. 어떤 이는 이런 나를 보고 분류를 하지 않고선 못배기는 분류불안에 빠졌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이런 나의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분류병자라고 욕했다. 어쩌나. 이게 나인 걸. MECE는 나의 삶인걸.

▣ 주법 해체분석 개요

주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속성을 계열로 삼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조합한다.

자전거 위에서 구현가능한 페달링은 무궁무진하지 않다. 안장에 골반의 위치가 속박되는 시팅일 경우 더욱 제한적이다.

밟땡, 밀땡은 가능하지만 밟밀은 불가능하다. 밟거나 밀거나 둘 중 하나다. 크랭크를 회전시키는 역할을 밀어서 수행할지, 밟아서 수행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골반의 위치와 주동근의 차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는 것은 둔근 위주 밟는 것은 대퇴근 위주라고 보면 된다.

시팅에서는 힘의 전달이 안장을 중심으로 전해진다. 핸들 그립의 위치나 상체의 각도, 움츠린 정도는 댄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에어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면 각 주법에 자연스러운 상체 각도와 핸들의 위치를 취하면 된다. 시팅의 상체 포지션까지 의식할 필요는 없다. 척추 모양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니 제 몸이 알아서 찾아낼 것이다.

반면 댄싱은 핸들 그립의 위치와 상체의 기립정도, 무게중심이 중요하다. 골반이 안장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변수들이 많아진다. 변주를 통한 확장응용이 가능하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 연구 난이도는 높아진다. 댄싱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장기연구과제이므로 오늘은 시팅에 관한 얘기만 한다.

▣ 미분, 연산, 출력, 정리

시팅의 경우의 수 : 독립행위 9개에 복합행위 6개 총 15가지 나온다. (3*3)+(2*3)=9+6=15

댄싱의 경우의 수 : 독립행위 18개에 복합행위 12개 총 30가지 나온다. (3*2*3)+(2*2*3)=18+12=30

상체기립의 정도와 그립의 위치까지 고려한다면 경우의 수는 (3*2*2*2*3)+(2*2*2*2*3)=72+48=120가지가 되어 너무 어려우므로 두 속성은 제외한다.

경우의 수가 나온다고 주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현이 불가능한 주법도 있고, 활용효율이 떨어지는 주법도 있다. 제거한다.

▣ 연구 결과

본 연구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시팅주법은 5가지 밖에 없다.

나는 구현할 수 있는 시팅이 7가지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제로는 4가지만 쓰고 있었다. 결국 같은 주법에 이름만 다르게 붙였던 것.

본 연구에 따르면 댄싱주법은 6가지 밖에 없다.

네이밍이 입에 잘 붙는 형태는 아니지만 코드화 해두어서 정보가 함축적이다. ex) 싵전밀땡 : 시트의 앞부분에 앉아 밀고 당기는 주법이란 뜻이다.

▣ 실전 적용 후기 (일단 오늘은 시팅만)

싵후밀 : 둔근으로 민다. 새끼발가락이 앞으로 향하도록 힘주면 신체와 머신은 리듬감있게 비틀어진다. 12시-3시까지 민다. 라이더는 느낌상 수평으로 앞으로 미는 것 같은 착각이 들 것이다. 미는 발 쪽의 후드를 힘껏 잡아 당겨야 후면코어가 골반을 통해 힘을 전달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또는 바탑을 주먹 바깥쪽에 힘을 주어 잡고 팔꿈치를 약간 굽혀 흉곽을 넓히는 것도 방법이다. 프룸의 업힐 그립이다.

싵중밟땡 : 엄밝으로 2-4시 밟는다. 발 끝으로 통통 튀듯이. 반대편 발은 보조하듯 7-11시 당긴다.

싵전밟땡 : 엄밝으로 3-5시 밟는다. 발 끝으로 통통 튀듯이. 스트로크를 짧게 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대편 발은 보조하듯 8-12시 당긴다. 안장 위치만 조금 당기면 각도조절은 알아서 다 된다.

싵전땡 : 장요근으로 허벅다리 당긴다.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립적으로 사용해 다른 주동근들을 모두 쉬게 할 수도 있는데, 파워가 약하고 장기지속이 불가능하므로 스트로크 20번 이내에 다른 주법으로 교대해주어야 한다.

싵전밀밟땡 :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내밀고 숙여 TT자세를 억지로 만들어내낸다. 내전근 주법과 안장위치가 같지만 상체의 각도에서 차이가 생긴다. 둔근도 쓰고 햄스트링도 쓸 수 있어 폭발적인 파워를 낼 수 있다. 지오메트리가 이 자세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둔근을 쓰려면 발목이 꺽인 상태로 눌러야 한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고 안장의 좁은 부위에 골반을 걸어야 하므로 노면이 좋지 않은 상태에선 위험할 수 있다.

▣ 싵전밀밟땡 주법 심층분석

둔근을 활용해 다리를 펼치면서 햄스트링으로 당기는 모션도 동시에 취할 수 있다. 밀어내는 데에 최적화된 포지션은 아니지만 더블 스트로크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단일 근육에 걸리는 부담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더 적은 힘으로 스트로크한다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파워를 낼 수 있다.

싵전밀밟땡을 4월 9일 북악 다녀오는 길에 우연찮게 구현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내전근으로 빠르게 굴린답시고 안장의 앞에 앉아서 에어로 자세를 취했던 것인데, 내전근 페달링으로 굴린다는 느낌과는 뭔가 달랐다. 잘 나가길래 6키로 정도를 그 상태로 밟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 구간 동안 심박이 210이 찍혀 있었다.

높은 심박은 동시에 활용한 근육의 양이 많았다는 것이다. 밟는 근육인 대퇴부는 보조적으로 지원되지만 밀밟땡이 어느정도 가능한 주법이다. 대미지를 큰 근육들이 골고루 분담하기 때문에 심박과 심폐의 능력을 끌어쓸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세의 변화없이도 장기간 지속시킬 수 있다.

이 자세에선 상사점이 1시 하사점이 7시가 된다.

싵후밀을 주주법으로 쓰면 근전환을 자주 해줘야 한다. 안장 뒤에 앉았을 때는 하사점까지 내려갔을 때의 다리가 너무 펴져있는 상태라 땡기는 모션이 비효율적이며 파워를 내지도 못한다. 또 단일 스트로크를 좌우가 번갈아서 반복할 뿐이다. 이 경우 밀어내는 둔근에만 피로가 축적되기 때문에 근전환을 자주 해주어야 한다. 싵전밀밟땡만으로 지속적으로 조질지, 싵후밀을 주주법으로 사용하되 근전환으로 풀어주며 조질지는 선택의 문제다.

▣ 연구 이후

싵전밀밟땡 자세가 더 잘 나올 수 있도록 안장코를 5mm정도만 높이겠다.

주법들의 전환 순서를 묶어서 묶음동작화 시켜 숙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숙달 과정은 이와 같은 이론적 접근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주법들을 조합하는 것 또한 5! 또는 6! 또는 11!의 조합갯수가 발생한다. 39,916,800가지의 조합방식이 존재한다. 전환 순서는 몸이 알아서 찾아내도록 하자. 이제 몸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여라.

마르코 판타니라는 라이더를 알게 된 이유는 단순히 그가 빡빡이이기 때문이다. 머리숱이 풍성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나도 몇년 전부터 머리가 한웅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약을 추천했지만 나는 세월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대꾸하며 무시했다. 그렇게 일말의 저항도 하지 않고 머리털의 절반을 떠나 보내었다. 보름 전 엄마는 아들의 두피가 훤히 들여다보이자 크게 놀라시었다. 당신의 자식도 당신만큼이나 늙고 있다는 것을 평소엔 의식하지 못했던 탓인지 꽤나 큰 충격을 받으시었다. 지난 주 미용실에 갔을 땐 계획에 없던 파마를 했다. 떠나고 나서야 허전함을 알게 된다는 말이 이런 걸 뜻하는 것일까.

대화의 주제로 탈모가 거론될 때마다 나는 대머리가 뭔 대수냐며 너스레를 떤다. 대머리가 되면 열 방출이 빨라지기 때문에 자전거를 더 잘탈 수 있는 공짜 튜닝이라고 농을 던진다. 상황을 희화시키고 억지 웃음을 짓는다고 해서 두려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애써 외면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그 시기를 조금이나마 늦추는 정도. 대머리가 되는 것은 남자라면 받아들여야 할 필연적 운명이다.

이러니 최근 판타니의 민머리가 더욱 강렬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나보다. 민망한 핑크색 저지, 귀걸이, 흉악하게 생긴 얼굴을 보았을 때 첫인상이 좋진 않았다. 코도 왠지 나의 것과 비슷한 모양이라 기분이 나빴다. 머리가 빠져서 대머리가 된 것일까, 머리가 빠지지 않았음에도 빡빡 민 것일까… 허튼 생각이 이어지다 문득 그의 댄싱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댄싱은 자전거탈 때 하지 말라는 짓들을 모두 모아놓은 모습이었다.

업힐에서 드롭바 잡지 마라.
케이던스 무겁게 타지 마라.
댄싱할때 자세 웅크리지 마라.

상식이 파괴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자세에 대해 훈수할 수 없다. 그가 세운 알페듀에즈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의 라이딩을 흉내냈다. 케이던스가 30아래로 떨어지도록 기어비를 무겁게 잡았다. 근육의 자극부위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드롭바를 잡고 궁디를 띄워 지긋이 누르고 돌렸다. 그가 이 자세로 타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리고베르토 우란의 햄스트링 활용 토크주행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해 우란의 것을 따라했다. 둘의 주법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판타니의 것이 무엇인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고개 두개를 넘겼다.

댄싱으로만 타는 세번째 고개를 맞이했을 때 알게 되었다. 그가 사용한 근육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근육이었다. 둔근이었다. 우리 신체 중에서 가장 크고 긴 근육. 둔근을 사용하는 댄싱인 것이다. 이 댄싱은 콘타도르의 댄싱과 정반대에 놓여 있다. 이번에도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알아냈다. 궁디 뒤로 빼고 수평으로 밀어내기 주법을 댄싱화한 것이다. 똑같은 원리이지만 궁둥이를 들고 핸들의 포지션을 낮춤으로써 둔근의 자극이 극대화된다. 핸들이 아래로 내려가니 자세는 앞으로 꼬꾸라져 다리를 통해 전달되는 힘에 체중까지 실린다.

근육의 작용만 보자면 자전거 위에서 데드리프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른팔로 당기고 오른다리로 민다. 왼팔로 당기고 왼다리로 민다. 당길 때는 광배근을 써서 과감하게 당길 수 있다. 다리에 가야할 대미지를 상체가 효과적으로 분담한다. 밸런스도 쉽다. 신체의 좌측과 우측이 한번씩 번갈아가며. 왼팔왼다리가 일할 땐 오른쪽은 아예 쉴 수 있다. 정말 단순하고 경쾌한 리듬이다.

흡사 무엇인가를 발로 밟아 고정시킨 뒤, 찢어버릴 각오로 당겨올리는 느낌이다. 예초기 시동거는 느낌이랄까. 우물에서 물 떠올리는 느낌이랄까. 뿌리채소를 수확하는 느낌이랄까. 물고기를 뜰채로 떠올리는 느낌이랄까. 꽉 끼는 청바지를 입는 느낌이랄까. 친구 발목을 잡고 가랑이 맛사지를 해줄 때의 느낌이랄까. 엑스칼리버를 뽑는 느낌이랄까. 내 몸은 이미 이 동작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주법에서의 페달은 밟는 게 아니다. 돌리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밀어내는 것에만 집중하면 다리의 관절 각도와 크랭크가 환상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원운동으로 변환시켜준다.

자전거 위에서 우리의 신체는 갇힌다. 페달과 핸들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 몸을 말아넣어야 한다. 갇힌 상태에서 둔근을 활용해 기지개를 펴고 뻗어 나가는 듯한 동작. 흡사 새 생명이 알을 깨부수고 나오는 관경이다. 희열이 끓고 축복이 내리쬐며 갤러리는 환호한다. 생명력이 폭발하는 탄생의 순간. 나는 오늘 판타니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대머리가 되어도 여한이 없다.

 

두바퀴를 돌고나니 제자리다.
돌고 도는 자전거가 무슨 의민가 싶어 한동안 누워 하늘을 보았다.
서울의 하늘은 밝았다. 내 자전거의 전조등도 저 밝음에 조금을 보태고 있으리라.

완전 진 벚꽃과 반쯤 진 벚꽃 아래에서 계절의 변화를 알아챘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보냈던 봄이다. 작년에도 맞았던 여름이다.
돌고 도는 것은 내 자전거만이 아니다.

밀었다 당겼다
뻗었다 접었다
올렸다 내렸다
잡았다 놓았다
가볍게 무겁게
빠르게 느리게
이렇게 굴리고 저렇게 굴리고
굴리는 방법이 다 달라도
세 개의 동그라미는 제자리에서 돌아갈 뿐이다

자전거는 유난히 잘 돈다
돌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여서일까
제 존재의 숙명대로 그저 하염없이 돌기만 한다

내 인생에서 아직 한바퀴를 돌려보지 못한 것은 내 인생 뿐이다
그것말곤 모든 것이 돈다
끊임없는 순환이다

채우면 비워야 하고
비우면 다시 채운다
찾아오면 떠나고
떠나면 찾아온다
올라가면 떨어지기 마련이고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는다

두바퀴를 돌고나니 제자리다.
돌리고 돌려서 제자리에 온것이
느닷없이 낯설게 느껴진 연유를 모르겠다
굴림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서울의 하늘은 밝았다.

누군가의 낙선
누군가의 작별
누군가의 발암
그들의 사건도 저 밝음에 조금을 보태고 있을까

그대들도 처음 돌려보는 인생이겠지만
자전거는 한번쯤 타봤을 터이니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믿어주길 바란다

일 보고 집에 오니 8시다. 밥 먹으니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었다. 이 때는 운동하기 적합하지 않다. 식사 후 3시간은 지나야 운동하기 적합하다. 고등학교 때 아침먹은 직후인 1,2교시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잤다. 쉬는 시간에 빵하나 처먹으면 또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3,4교시를 잤다. 점심시간에 밥 묵고 5,6교시를 잤다. 그 뒤에 달리기를 하고 와서 피곤해서 잤다. 저녁 묵고 야자시간에 잤다. 독서실 가면 휴게실에서 온게임넷 스타리그 보면서 컵라면 하나 말아먹고 또 잤다. 다 부교감신경 때문이었다. 아무튼 오늘도 그놈의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 탓에 밥 먹고 바로 잤다. 밤 10시가 되어서 정신이 들었다. 할머니의 걱정대로 소가 되어 있진 않았다. 난 소띠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다. 옷을 챙겨입고 하늘-노을 공원을 조지러 갔다.

 

너무 늦은시간이라 그런지 공원 샤따 내렸다. 2분 30초짜리 업힐 연속 열개 타면서 다리를 함 조져볼까 했는데 아쉬운대로 중간길 언덕을 탔다. 오히려 1분 30초 짜리 업힐이라 인터벌에 더 적합했다. 좋다. 오늘은 이걸로 10바퀴다.

 

 

▣ 인터벌 한사이클

정방향 24미터 오르막 1:30 > 0:40 쉬고
역방향 17미터 오르막 0:50 > 2:30 쉬고

 

▣ 심박 해킹의 개요

내 최대 심박은 191이 아니었다. 심박을 올리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찾아냈다. 케이던스가 아니었다. 호흡도 아니었다. 근력이다. 호흡이 가빠지면 심박이 따라 올랐기 때문에 심-폐를 묶어 생각했다. 그것이 고정관념. 난 여태 심박에 큰 무리를 준 적이 없었나 보다. 무리를 주는 방법도 몰랐다. 항상 다리가 먼저 털리거나 숨이 턱까지 차올라 목구멍이 따가워졌으니까. 근력-심박-호흡 중에서 호흡이나 근력의 한계에 갇혀 심박은 제대로 일한 적이 없는 것이다. 심박의 능력을 최대로 발동시키는 것은 간단한 원리였다. 무산소 상태에서 근력을 최대한 끌어다 쓰는 것이다.

무산소 상태에서 빠르고 강하게 근육을 탈진시킬수록 심박에 강한 구조요청신호가 전달된다. 구조요청신호가 강할수록 심박은 급발진한다. 문제는 어떻게 다리가 털리지 않고 더 많은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소진하는지다. 40초 동안 시팅으로 500와트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정도 빠워는 내모메 무리데스. 근전환을 해도 30초만에 다 털린다. 가장 큰 근육인 둔근과 외전근을 써도 400을 넘기지 못한다. 다리가 다 털려 일을 하지 않으니 심박에게 요청신호를 보내지도 않는 것이다. 더욱 폭넓은 근육의 동시사용이 필요하다.

 

▣ 심박 해킹 매뉴얼

15초 무릎치기내전근댄싱으로 600와트 낸다.
20초 무릎치기외전근댄싱으로 500와트 낸다.
10초 외전근시팅으로 400와트 낸다.
나머지 시간은 어떤걸로든 전환시켜 침을 질질 흘리며 300와트 이상 유지시킨다.

이러면 10회전을 하면서도 1:30동안 350와트 이상 낼 수 있다. 젖산이 쌓이려고 할 때 쯤 휴식기에 접어드니 다리가 털리지 않는다.
15-20-10을 똑같이 한 이후 200와트로 설설 탔더니 구조요청신호가 끊겨 심박이 170까지만 올라간 뒤 멈췄다. 심박이 오르는 동안 계속 산소부족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 주법의 개선 – 무릎치기 댄싱

온몸의 근육을 단기간에 최대한 활용하는 댄싱이다. 어떤 강좌나 댄싱분석영상에서도 본적이 없어서 내멋대로 이름을 붙였다. 핸들바에 무릎을 찍는다는 느낌으로 당기다가 발견했는데 내 잔차는 프레임이 작아서 실제로 무릎이 바탑에 닿는다.
자세는 스프린터의 라스트 댄싱과 콘타도르의 업힐댄싱의 중간이다. 스프린터의 라스트댄싱만큼 무게중심은 앞으로 이동하지만 콘타도르의 업힐만큼 상체는 곧게 펴고 발목은 세운다. 스프린터의 댄싱보다 햄스트링, 내전근을 덜 쓰고 대둔근과 외전근을 약간 더 자극한다.
물론 여기서도 당겨서 무릎을 치는 모션을 우선시할 것이냐, 발끝을 세워 찍어 누르는 모션을 우선시할 것인지에 따라서 근전환이 2가지로 가능하다. 당겨서 무릎을 칠 때 평소의 주법에선 안 쓰는 근육을 더 많이 쓴다. 더 많은 종류의 근육을 쓰기 때문에 순간 파워도 더 높다. 안쓰던 근육이기 때문에 먼저 털어버리는 게 좋다.

 

▣ 무릎치기 댄싱에 대해 끊이지 않는 찬사

이 댄싱은 상사점과 하사점이 2시 8시로 바뀐다. 그러므로 중력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상사점에서의 무효성도 없고 하사점에서의 정체도 없다. 상사점에선 앞으로 차는 모션, 하사점에선 뒤로 긁어 당기는 모션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회전운동이 자연스럽다. 토크 유효성이 93%까지 나온다.(평균대비 +13%) 온 근육이 템포를 찾았고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에 이미 다음 모션을 준비하고 있다. 상체의 위아래 흔들림도 적어진다. 닭대가리마냥 눈알 높이가 고정되어 손떨방 모드가 작동된듯 시야도 맑아진다.

자전거 탈 때 동원되는 근육의 종류가 10개, 최대효율이 100%라고 했을 때 ;
무릎치기내전근댄싱 8종 80%
무릎치기내전근댄싱 5종 70%
외전근시팅 3종 50%
내전근시팅 4종 30%
정도의 느낌이다. (인체해부학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든 수치적 비교를 해보려고 함. 정확할 리 없음)
이 방법이 지금의 나로선 심박에 가장 강한 구조요청신호를 보내는 방법.

 

▣ 다시, 심박 해킹

근력 > 심박 > 호흡 순이었다.
근력을 쓰고난 후 30초 뒤에 심박이 반응한다.
심박이 벌컥댄 후 30초 뒤에 호흡이 반응한다.
근력을 써서 체내에 저장된 산소를 소진해버리면 가리느까 심박이 추가적인 산소를 지원하기 위해 혈액공급을 늘리는 것이고, 순환이 빨라진 혈류 속 산소량이 적어지니 호흡이 가빠지는 것이다.

한심할 정도로 느린 반응이다. 힘을 쓰기 시작한 뒤 1분이나 걸려서 지속적인 상태유지를 위한 모드에 접어들게 된다니. 아쉽지만 이 메커니즘은 내가 조정할 수 있는게 아니다. 중추신경계 방화벽은 꽤나 튼튼하다. 중추신경계 해킹법을 터득한 놈들이 있다한들 살아남지 못해 대가 끊겼겠지.

심박을 해킹했다고 표현했지만 설레발친거고 공략일 뿐이다.

 

▣ 마무리

업힐을 오르기 전에 체내 산소를 미리 공급해둔답시고 호흡을 과하게 마셨던 것은 다 헛짓이었다.

심박 170으로 탄 것과 220으로 탄 것의 퍼포먼스 차이는 오늘 없었다. 당연하지. 오르막 다 오르고 내리막에 접어들 때가 되어서야 220까지 올랐다. 이 모드를 어떤 구간에 적용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퍼포먼스의 차이를 알아 보려면 5분짜리 업힐 시작지점에서 적용해봐야 한다.

10회전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로누적을 감안하면 회복기간 단축에는 확실히 도움된 것 같다.

심박을 높이는 방법을 찾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심박이 높은 것 자체는 좋은 일이 아니다. 미겔 인두라인의 심장은 일반인의 두배 크기였고 그의 심박은 1분에 28번 뛰었다. 일반인은 65bpm 나는 50bpm 말은 48bpm이다. 그는 심박을 높이지 않고도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었다. 심박이 높다는 말은 그만큼 심박출량이 낮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또는 부정맥이 의심되기도 한단다. 다음주엔 병원에 한 번 가봐야겠다.

 

▣ 숙제

1. 근력을 쓴 직후 심박의 반응을 앞당기거나 심박이 벌컥댄 후 호흡의 반응을 앞당기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젖산역치를 몇초나마 더 미룰 수 있지 않을까.

2. 산소가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진시킬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은 어떻게 키우는가? 어떤 트레이닝이 요구되는가?

우리는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시대에는 올바른 정보를 분간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자전거 피팅에 대한 정보는 식품, 금융에 이어서 3번째로 쓰레기정보가 넘쳐나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진짜 정보는 찾기 더욱 어려워진다.

피팅에 관해서도 여러 계파가 있다. 첫째, 절대피팅신봉자 혹은 만사피팅해결주의자다. 이들의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어서 한마디 질문만 되물어도 자신의 모순에 스스로 막혀 벙어리가 된다. 그건 그저 광신이 아닌가 싶다. 둘째, 산업이다. 만사피팅해결주의자를 만드는 것이 산업이다. 산업이라 함은 생산자와 유통자를 함께 일컫는다. 이들은 모든 대화를 구입 혹은 교체로 귀결시킨다. 나는 의도를 전제에 깔고 접근하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결론이 바뀌지 않을 거라면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셋째, 신체해부학주의자도 있는데 이들은 불필요할 정도로 전문적인 지식으로 오히려 편협하게 신체의 사이즈에만 집중한다. 필드에서의 라이딩을 고려하지 않은 물리치료사에게 조언을 듣고 싶진 않다. 피팅 가격은 또 제일 비싸요. 넷째, 프로선수들이다. 이들이 피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입장은 대부분 비슷하다. 각자의 주장이 서로의 주장을 보완하고 뒷받침한다. 그들의 주장엔 이론적 배경과 근거가 뒤따른다. 실제로 자신의 몸 혹은 동료의 몸에 실험했던 경험까지 있다. 처방은 절대적이지 않고 융통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는 것보다 많이 들었다. 피팅에 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filter-in 시킬 정보는 네 번째 부류의 것이다.

나는 자전거의 세팅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피팅’이라고 검색하면 자전거 세팅에 관련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각 파츠의 위치나 신체관절의 각도를 맞추는 건 시간만 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정확하진 않더라도 아주 모자라지도 않다. 하지만 그건 피팅이 아닌 세팅이다. 나는 세팅을 넘어선 피팅을 원한다. 내가 신청한 피팅이 세팅에 그칠까봐 난 그동안 피팅을 받지 않았다.

오늘 아이윌사이클링을 찾은 것도 세팅을 넘어선 피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팅을 넘어선 무릎통증의 근본적인 문제해결까지도 기대했다. 무릎통증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이론과 경험을 쌓기엔 충분한 시간이 없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시행착오를 감당하기엔 건강에 위협이 가해질 우려가 있었다. 본격적인 시즌온에 앞서 오늘 딱 한시간만 써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박프로님과 나는 한시간 동안 신나게 웃고 떠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박수를 쳤다.

 

세팅을 넘어선, 피팅을 넘어선, 통증해결을 넘어선, 라이딩코칭까지 받고 왔다. 자전거 세상의 새로운 차원을 발견했다.

들은 것, 해결한 것, 느낀 것 등, 내가 이해한 만큼만 나의 언어로 다시 써본다.

 

 

개요

자전거의 목적은 적은 힘으로 / 더 빠르게 / 더 멀리 가는 것이다.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을 “주행효율”이라 부른다. 주행효율은 종합적인 결과다. 주행효율을 높이는 데에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 심폐능력, 근력, 근지구력, 페달링효율 등이다. 이런 요인들을 향상시키면 실력은 몇 배로 향상시킬 수 있다. 신체적인 것 이외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있지만 크지 않다. 기재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향상시킬 수 있는 주행효율은 기껏해봐야 5% 내외다.

 

클릿과 페달

모든 피팅의 시작은 신발과 클릿에서 시작한다. 다른 지점을 잡아놔도 클릿이 조금만 변해도 모든 것이 틀어진다. 그래서 클릿부터 잡아야 한다.

Q. 오다리다. 큐팩터에 영향을 미치는가? >> 큰 영향 없다.

Q. 일단 큐팩터는 최대한 넓혀 놓았다. 그리고 발목을 사용하지 않도록 클릿은 약간 뒤로 위치시켰다. >> 잘했다. 큐팩터 최대한 넓혀두자. 이 신발은 엘리트들이 신는 신발이다. 바깥으로 웻지도 들어가있다. 다른 신발보다 1도 이상 세워져 있다. 엄청 큰 차이다. 그리고 클릿의 중앙점 위치가 다른 신발보다 절반가량 앞에 있다. 중간에 맞춰도 다른 신발 최대한 앞에 있는 것과 같은 위치인 것이다.

Q. 발볼 기준으로 맞추라는 식으로 절대공식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지금과 같은 요인들을 고려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맞다. 신발마다 이렇게 차이가 큰데 클릿의 위치를 발 기준으로 잡을 수 없다. 그런 주장을 만든 사람은 한가지 신발만으로 테스트 했을 거다.

 

와트바이크

왼발이 더 강하다. 55%. 당기는 힘에는 차이가 없다. 밟는 힘에서만 차이가 난다. 이 차이는 토크형 주행으로 바꾸면 줄어든다. 토크형이 익숙한 것이다. 익숙하고 좋은 수치가 나오는 주법을 우선으로 세팅해야 한다.

 

프레임, 피팅, 신체 특이성

프레임은 두 치수 작은 걸 타고 있다. 원래라면 피팅 자체가 안 될 정도다. 종아리가 긴 편이라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비율이다. 이런 비율은 자주 보지 못했다. (립서비스였던 것 같다.) 이런 비율이라면 피팅을 폭넓게 소화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밟는 힘점이 다운튜브부터 시작되지 못한다. 안장을 조금 더 뒤로 빼서 큰 근육을 사용하게 만들어보자.

>> 나중에 프레임을 교체하게 된다면 이탈리아나 미국 브랜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싯튜브 각도가 세워진 편이라서 안 맞을 것이다.

>> 핸들바는 리치가 짧은 게 좋겠다.

>> 안장 높이는 5mm 낮추긴 하지만 코스에 따라 조정하면서 타시라.

 

호흡

작년의 호흡 왼(후)오왼오왼(후)오왼오왼(후)로 탔다. 왼발을 밟을 때 호흡을 맞추던 습관이 있어서 왼다리에만 무리가 갔고 왼다리만 성장했다. 이후 왼(후)오왼오(후)왼오왼(후)오왼오(후)로 바꿨다.

>> 페달링 타이밍에 호흡을 맞추면 편하긴 할텐데 좋은 방법은 아니다. 자주 쓰진 마라. 근력의 한계에 심폐능력이 갇히거나 반대로 심폐능력의 한계에 근력의 한계가 갇힐 수 있다. 산소를 충분히 흡입해야 젖산역치가 늦게 온다. 그리고 에너지로 전환한다. 뱉는 데에 집중해라. 뱉으면 들이쉬는 것은 자동이다.

>> 페달 몇 바퀴 돌릴 동안 천천히 4~5초 길게 다 뱉어라. 후~~~~~~ 길게 뱉어 줘라. 그럼 페달링과 호흡의 박자가 깨지게 된다. 지금 당장은 이 방식이 도움 될 거다.

 

무릎 통증

>> 관절이 아프다는 것은 관절에 연결된 수많은 근육에 의한 것이다.

 

나쁜 페달링 습관 교정

오른 다리가 올라올 때 안으로 모이는 습관 >> 외전근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케이던스 페달링을 할 때 발을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습관(노후된 스피드플레이 수평유격 없애려던 습관) >>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밀어 밟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 발가락에만 집중하면 모든 것은 맞춰진다.

오른 발꿈치가 많이 내려가며 발목이 꺽이는 습관 >> 안장을 뒤로 빼고 토크형 외전근 주법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상사점이 너무 이르고 하사점이 너무 늦어서 오른다리 페달링 중 무릎이 꺽여버리는 현상 >> 돌리는 걸 의식해서 그렇다.

 

내전근과 외전근

근전환을 하지 않으면 한가지 근육만 사용해야 한다. 한 가지 근육으로는 성장할 수 있는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무리가 온다. 그래서 절대 피팅은 없는 것이다. 근육의 효율, 페달링의 효율을 높일 수 있으려면 한 자전거 위에서도 다양한 주법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자세가 좋고, 이 각도여야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는 꼴이다.

클릿을 딛고 섰을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딛으면 무릎이 모이고 무릎 안 쪽의 내전근이 자극된다. 새끼발가락에 힘을 주고 딛으면 무릎이 벌어지고 바깥 쪽 외전근이 자극된다. 중간에 힘을 주면 대퇴직근 전체가 자극된다.

토크형주법에서는 5 : 2 : 3의 비율로 근육을 전환시키는 것이 좋다. 외전근을 많이 쓰는 것이다. 케던형 주법에서는 3 : 2 : 5의 비율이 좋다. 내전근을 더 많이 쓰는 것이다.

 

코어와 다리근육

전면코어는 앞에 보이는 복근이다. 안장 앞에 앉아서 움추리듯 자세를 취하면 자연스럽게 전면코어에 힘이 들어간다. 보디빌더 복근자랑 포즈처럼. 이 때의 페달링은 내전근위주로 당겨서 굴러가듯 이뤄진다. 다리와 복근을 이어주는 장요근이 페달링에 쓰이게 된다.

후면코어는 스쿼트 근육이다. 스쿼트 하는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외전근을 주로 사용한다. 가장 큰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기간 지속시킬 수 있다.

 

페달링과 근육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폼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자세를 찾아야 했다. 그 자세는 이미 몸이 알고 있었다. 몸이 아는 자세를 지워버리고 몸에 맞지 않는 자세로 타려고 했다. 그러니 2년을 타도 북악 기록을 겨우 1분 30초 밖에 못 줄인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탔던 그 때,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주행했다.

굴려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의식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안장 뒤에 앉아 후면코어를 사용하고 스쿼트하듯이 밀어내는 데 집중하면 큰 근육으로 12시부터 5시까지 힘을 줄 수 있다. 앞으로 당겨 앉으면 자연스럽게 밀어 밟는 구간은 줄어들고 작은 근육들로 당겨서 굴리는 페달링이 된다.

당기는 근육은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들이고 크기도 작기 때문에 오랫동안 무리하면 안 된다. 오금에 부상을 입으면 회복도 어렵다.

안장의 위치를 바꾸고 발의 어느 부분에 힘을 주는지만 생각하면 근육의 사용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발목도 더 이상 접히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보통 토크형이 많다. 토크형이라고 토크만 타는 건 아니다. 비율의 조정이다. 토크형으로 70%를 타고 30%를 케이던스로 타라. 고속주행을 하거나 경사가 높은 업힐에서 케이던스형을 사용해 공력한다. 맞바람이나 약업힐, 장거리 주행에 토크형을 사용한다.

토크형 주법에서는 새끼발가락에 힘을 주고 외전근을 사용한다. 무릎바깥에서 골반 바깥으로 이어지는 근육에 무리가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을 주동근으로 쓴다. 이때 당기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미는 데에만 집중하면 몸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찾는다. 바깥쪽 근육을 쓰기 때문에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린다. 자연스러운 리듬이다. 바닥에서 샤카샤카 파워전달되는 소리가 기분좋게 들린다.

 

걱정과 우려가 사라졌다. 더 자신감 있게 밟을 수 있게 되었다. 더 강한 부하를 신체에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더 강한 운동강도는 더 큰 성장을 견인할 것이다. 더 큰 성장을 이루면 5월엔 4.0watt/kg 가능할 것인가?

 

 

▣ 팩라이딩 개요

솔로로 라이딩하면 200W를 써야 30키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피를 빨면 150W만 써도 30키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룹 중앙에 서면 130W만 써도 된다.
속도가 높아지면 이 차이는 더 커진다. 선두가 40키로를 유지하기 위해 350W를 써야 한다면 바로 뒤에서 피빠는 사람은 220W만 써도 되고, 그룹 중앙에선 200W만 써도 된다.
무리지어 바람저항을 이겨내는 진영을 활용한다면 FTP가 200W인 사람들이 모여서 FTP 250W인 사람의 솔로 라이딩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또는 멀리 갈 수 있다.
모든 이동수단인 본질은 “더 빠르게, 더 멀리”이고,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효율적인 드래프팅과 팩라이딩 기술을 통해 우리는 혼자 달리는 것 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갈 수 있다.

▣ 드래프팅

가깝게 붙을수록 앞차가 일으킨 난류 속에 내 몸을 집어넣을 수 있다. 주행효율을 높일 수 있는 대신 사고 위험은 커진다. 적당히 빨고 안전을 챙기자.
라이딩 호흡을 맞춰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2m 정도가 적당하다. 서로의 라이딩 패턴이 익숙해졌다면 1m까지 좁혀도 좋다. 하지만 1m보다 가까우면 너무 위험하다.
지그재그로 1m의 거리를 두고 달리면 시야도 확보되고 상황 대처의 거리도 있으며 정지가 필요할 때 좌우로 퍼질 공간도 마련되기 때문에 동호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진영이다.

▣ 팩라이딩의 원리

기량의 차이가 크다면 바람을 맞음으로 체력을 의도적으로 소진시킬 수 있다.
기량이 높은 사람이 2~3명 있다면 로테를 돌려도 된다.
로테를 돌리는 선두 중에서도 기량차이가 약간 있다면 60초/30초/10초 씩 로테유지시간을 달리해 체력소진을 배분한다.
5명이서 로테를 돌리되 4,5번은 선두에 서기 힘들 정도로 기량이 떨어진다면 로테방법은 2가지가 있다.
① 60초/30초/10초/0초/0초로 돌리는 방법
② 1,2,3번은 로테가 끝난 후 3번 자리로 껴들어가는 방법

▣ 체력한계 공유의 필요성

팩 구성원 간 서로의 체력한계를 공유해야 한다. 힘에 부치거나, 힘이 남아도는 사람은 자신이 한계에 임박했음을 알려야 한다.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것은 팩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다.
내가 힘이 남는다면 선두에 서서 바람을 맞아 팩에 기여하면 되고, 내가 힘이 부친다면 팩 후미에 서서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야 한다.
체력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버리면 나중에 팩에 합류할 때 바람을 직접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에너지 손실을 혼자 감당하게 되고, 장거리 라이딩이 될 경우 피로도는 더욱 누적된다.
결과적으로는 팩 선두로 2교대를 돌린 사람보다 혼자 흘러서 뒤늦게 쫓아온 사람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결과가 될 것이다.
흐르기 시작하면 에너지 소진 격차는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흐름이 반복될수록 팩 전체의 속도를 더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 번 흘렀다면 속도를 아예 늦춰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 합류해야 하는 것이 좋다.
일부 구성원만 바람을 맞는 것을 미안하다거나 불평등하다고 여겨선 안 된다. 내 체력을 보존하는 것은 나를 위한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팩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이다.
팩라이딩은 함께 간다는 전제가 있다. 퍼포먼스가 가장 떨어지는 구성원을 기준으로 속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팩의 최저속도를 더 낮추지 않게 하려면 나의 체력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존하고 효율적인 주행을 해야 한다.

▣ 팩 찢기

팩의 크기가 너무 크면 아코디언 효과가 발생해 후미의 부담이 커진다. 선두의 가속과 감속이 후미로 전달될 때 증폭되어 급가속과 급감속을 하게 된다. 이는 후미에 급격한 체력부담을 안긴다. 그래서 기량이 부족한 사람은 2~3번째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코스에 변수가 많고, 서로 라이딩 호흡도 익숙하지 않으며, 팩라이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껴있거나, 평속 30이상으로 달릴 계획이라면 찢어야 한다.
난 3~5명의 팩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 커뮤니케이터의 역할

기량이 부족한 사람은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야 한다. 말을 끊임없이 하는 것은 팩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다. 타인의 체력한계를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챌 사람은 없다.
신호는 후미에서 선두로 전달되어야 한다. 선두는 뒤돌아보기 힘들다. 뒤돌아봐서도 안 된다. 선두는 바람을 이겨내고 도로의 상황을 파악하는 두 가지 역할 이외에는 다른 역할을 맡아선 안 된다.
5명 이상의 팩이라면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뒤에서 중간으로 중간에서 다시 앞으로 신호를 전달해야 한다. 팩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페이스 조절을 커뮤니케이터가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가도 좋다는 신호 : 붙었다/더더더/오라이/높여
늦춰야 한다는 신호 : 흘렀어/같이가/못붙어/천천히
오라이는 alright을 말한건데 일본어처럼 들렸다면 기분탓이다. 내가 마 경상도 사람이어가…

▣ 솔직한 의사표현의 필요성

힘이 넘치는 굇수도 힘에 부치는 초급도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해야 그날의 라이딩 콘셉을 결정할 수 있다.
초급이 굇수에게 맞추려고 무리하는 것도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 굇수가 초급을 배려하면 불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게 된다. 달리는 중간에 라이딩 콘셉을 바꾸는 것도 모두에게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2019년 오크밸리 그란폰도에서 울분이 폭발해버린 미녀라이더가 기억난다. 처음엔 자신의 완주를 위해 서포트해줄 것처럼 보였던 남성들이 라이딩 도중 변심해 그녀를 버리고 질주한 것이다. 라이딩 시작 전에 솔직하게 자신의 라이딩 목적을 알렸다면 서로에 대한 원망도 아쉬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달리려고 마음잡고 나왔는데 마음껏 달리지 못하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보통 선두가 가장 열심히, 의욕적으로 타려고 하기 때문에 기량 차이가 클수록 아쉬움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기량이 부족한 사람의 부족의 정도를 솔직히 공유한다. 서로 기량의 차이가 20%정도일지, 30%일지, 40%이상일지 측정한다.
기량의 부족을 커버하며 달릴지, 커버하지 않고 달릴지는 기량이 뛰어난 사람이 우선 결정권을 가진다.
이 의사결정 방법론은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공리주의>에 의거한다.

▣ 라이딩 콘셉 개요

아래 라이딩 콘셉은 기량차이가 발생하는 상황을 전제로 작성되었다. 기량차이가 없다면 이런 콘셉 구분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기량차이가 없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기량차이가 난다고 누군가를 원망해서도 안 된다.
자전거 좀 타려고 생업을 미룰 순 없지 않은가.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하자. 자전거가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라이딩 콘셉과 코스의 상관관계

기량 차이는 곧 선두의 에너지를 의도적으로 소진시킴으로 좁힐 수 있다.
평지라면 라이딩에 가해지는 저항의 대부분이 공기저항이기 때문에 40%의 기량차이가 나더라도 팩라이딩이 가능하다.
하지만 업힐에서는 저항의 대부분이 중력이기 때문에 누구나 같은 저항을 받고, 때로는 후미가 더 큰 저항을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때문에 팩 구성원 간 기량차이가 크다면 평지 중심의 코스를 선택하고, 기량차이가 크지 않다면 업힐 위주의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 라이딩 콘셉 제안

[사이좋은 토끼와 거북이] 후미 최저속도 기준 함께가기 라이딩
모두가 가장 느린 페이스로 맞춰 가는 것이다. 선두는 아마 근질근질할 것이다. 후미는 미안해할 것이다. 좋은 콘셉이 아니다.

[그룹1] 오픈과 팩라이딩의 적절한 배분
오픈 구간에서는 버리고 중간 지점에서 모여서 다시 팩을 이루길 반복한다.
선두의 남는 에너지는 평지 바람막이로 소진시킨다.
구성원의 퍼포먼스가 30% 이상 벌어진다면 이 방식으로도 팩을 구성하기 적합하지 않다.

[그룹2] 오픈과 팩라이딩의 적절한 배분 & 선두의 에너지 의도적 낭비
평지에서는 드래프팅 효과로 퍼포먼스가 40% 차이나는 사람도 후미에 붙으면 선두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해 팩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업힐에서는 선두와 후미의 소진 에너지가 크게 차이나지 않기 때문에 언덕을 몇개 넘다보면 선두와 후미의 잔여배터리양이 크게 차이날 수 있다.
업힐에서 발생하는 잔여 배터리양을 선두가 소진시키면 기량차이와 상관없이 함께 체력을 고갈시켜나갈 수 있다.
방법 ① 선두는 업힐을 두번탄다.
방법 ② 선두는 업힐을 오른 뒤 내려온다. 후미를 만나서 다시 꼭대기를 찍는다. 다시 내려온다. 후미를 만나서 다시 꼭대기를 찍는다.
방법 ③ 쉬는 시간에 선두는 혼자 인터벌 5번 친다.

[그룹3] 팩 찢기 & 코스 찢기
대회 코스가 그란폰도와 미디어폰도로 구분되듯이 실력에 따라 코스를 분리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뺑뺑이 코스라면 그룹을 나눠 목표 회차수를 달리 설정할 수도 있다.
후미그룹은 최단직선거리로 코스를 완주하고, 선두그룹은 남은 체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의도적 우회용 코스를 추가할 수도 있다.
함께 달린다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레이싱] 흐르면 버린다. 버리기 위해 짼다. (더더마 벙)
흐르는 사람을 버리기로 약속하면 각자의 라이딩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한 퍼포먼스의 사람들끼리 묶이게 된다.
팩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후미에게도 요구되는 최소한의 파워가 높아지기 때문에 아무리 선두보다 효율적으로 바람저항의 이득을 보다라도 커트라인이 생겨 흐르게 된다.
피를 빠는 것도 기술이기에 파워와 스태미너가 남아 있더라도 효율적으로 피를 빨지 못해 팩이 분리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높은 저항을 유지하는 지구력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 팩이 분리되기도 한다. 팩이 너무 길어지게 되면 작은 속도 변화가 후미에서는 크게 증폭되게 된다. 선두 가속에 대한 반응을 즉각 하지 못함으로 격차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며 함께가는 것이 리드아웃이고 이를 이용하여 분리시키는 것이 어택 혹은 BA다.
어느정도 팩이 분리되면 선두와 후미의 실력격차가 크지 않게 된다. 기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위에 언급한 팩 분리요인들이 적게 작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팩이 유지될 수 있다.

▣ 마무리

구성원간 퍼포먼스가 30%이상 차이난다면 선두는 선택해야 한다.
후미를 찢고 레이스를 할지, 레이스는 포기하고 서포트 모드로 라이딩할지.
어떤 선택지든 장단점이 공존하고 선두가 결정할 일이다. 최선을 다해 체력의 한계에 몰아붙이는 것의 장점이 있다면 동료와 함께 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고, 동료와 함께 달리는 즐거움의 장점이 있을 땐 만족스러운 운동이 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어떤 선택에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반대로 아쉬운 부분도 남기 마련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선택이 그러하다고 법륜스님이 얘기했다. 때문에 콘셉을 한 번 정했다면 마음의 미련을 버려야 한다.

문제는 페달이었다. 문제는 스피드플레이였다. 다 닳아버린 스피드플레이 페달을 누르려면 쇠구슬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누르는 느낌이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는 각도가 쇠구슬의 정중앙을 벗어난다면 덜컥거리며 각도가 변하고 만다.

최근 주법을 다양화한다고 평지에서 4가지, 댄싱에서 3가지를 종류를 나눠 연습하던 것이 더욱 문제가 되었다. 주법을 다양하게 쓸수록 마모는 더 심해졌고 무릎에 가해지는 대미지도 커졌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았던 주법은 단 한가지 뿐이다. 평지에서 엄지발가락을 안쪽으로 밀면서 밟는 방법. 더이상 안으로 젖혀질 수 없을 정도로 바짝 밀어둔 상태로 꾸준히 밟기만 한다. 당기는 순간 덜컹거리기 때문에 꾸준히 밀어야 한다. 그래서 평지에서는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이 페달링은 나의 주페달링이 아니다. 약간 팔자로 벌리고 지긋이 눌리듯이 밟는 것이 나의 주페달링이었다. 그 페달링은 쓰지 못하게 되었다. 쇠구슬 위에 올려져 좌우로 흔들리니까.

 

페달의 유격은 주행에 필요한 기능이다. 수평은 유지하며 뒷꿈치의 각도가 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노후한 스피드플레이는 왼쪽으로 기울고 오른쪽으로 기운다. 이런 유격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무릎에 대미지를 준다. 기우는 각도가 2도면 1.75cm만큼 무릎이 좌우로 흔들리고 5도면 4.36cm만큼 흔들린다. 정밀하게 세팅하기 위해서 각도가 있는 스페이서를 끼우기도 하는데, 노후된 페달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단순히 무릎의 위치가 옮겨지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로 인해 무릎의 각도도 꺽이게 된다. 클릿에서 2도 차이가 나면 무릎에서는 4도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5도 차이가 발생하면 10도 차이가 발생한다. 1도의 차이를 추구하는 것이 피팅인데 이정도면 관절을 부수기 위해 작정한 수준이다. 무릎이 이정도만 아프고 끝나서 정말 다행이다.

스피드플레이는 플로팅이 있는 편이다. 꽉 조여져 있지 않다. 밀다가 당기면 털컹하면서 페달을 끌어 올린다. 플로팅 간격은 시간이 갈수록 넓어진다. 꾸준히 밀어 밟는 단순한 페달링이면 이런 플로팅이 크게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페달이란 무엇인가. 잡아주는 것이 본디 목적이다. 굴리는 페달링을 할 때나, 내전근-외전근을 전환할 때, 댄싱 근전환을 할 때마다 플로팅이 생긴다면 한 바퀴를 돌릴 때마다 무릎에 대미지를 주게 된다.

 

나는 문제를 다른 곳에서 찾느라 한참 헤맸다. 다른 사람들도 스피드플레이는 원래 그렇게 타는거라고 했기에 이것이 문제의 원인이 아닐 것이라 여긴 것도 잘못이다. 영상에 보이는 것보다 각도가 좀 더 심할 정도로 마모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올바른 무릎의 위치와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노력이 클수록 문제의 원인은 더욱 가려질 뿐이었다.

 

스피드플레이는 의도적으로 내구성이 부족한 제품을 만든다. 좌측의 제품은 어떤 것을 쓰더라도 스피드플레이 측에서 의도한 마모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좌우측이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최상급 제품은 모두 금속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페달과 클릿이 결착되기 위한 4가지 접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거했다. 가장 이상적인 제품은 오른쪽의 모습인 것이다.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두고, 하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다운그레이드해서 상품선택지를 늘리는 것은 일반적인 장사 방식이다. 하지만 스피드플레이는 지켜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적어도 고객의 무릎건강에 해가 될만큼의 다운그레이드는 하면 안 될 일이었다. 무게를 줄인다거나 구름성의 차이를 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돈을 많이 지불하지 않은 자는 무릎이 박살나 버려”라는 식의 상품군은 정말 비인륜적이다. 최소한 스포츠 산업이라는 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기업이라면 건강증진이라는 최우선 목표는 지키며 개별성을 추구해야 할텐데, 제 1전제를 어겼다. 돈을 버는 것이 산업의 1전제보다도 앞서버린 것이다.

스피드플레이라는 제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살려 제품군을 나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내구성에 따라 50,000키로를 타도 끄덕없는 제품, 20,000키로 이상을 탈 수 있는 제품, 10,000키로 이하 제품, 5,000키로 이하 제품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한계파워에 따라 800W의 파워에도 끄떡없는 초강성제품, 600W의 파워를 잘 견디는 엔듀어런스제품, 400W 언더의 초보나 여성용 제품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구름성에 따른 차이로도 구분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건 제품의 기술이나 기능에 관한 것이 아니다. 고객 설정과 상품화에 관한 지극히 마케팅적인 요소다. 석박사MBA 다 나온 애들이 머리맞댔을테니 이런 상품군 분류 기준이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팔면 안 팔리니까 채택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상품을 어떻게 나눴는지를 들여다보면 고객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유추해볼 수 있다. 지금 상품군으로 보면 경량과 디자인이 기준이다. 경량이라는 요소는 선수에겐 성적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겠지만 동호인에겐 허영심 충족일 뿐이다. 츄파춥스 대가리 색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냔 말이다. 그런 방식으로 팔았는데 잘 팔린다는 것은 고객들도 딱 그정도 수준이라는 방증이기에 씁쓸해진다.

 

어떤 기업이든 이윤을 추구하고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갖은 방식의 노력을 한다. 시장이 포화되면 과점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과점이 일어나면 재구매를 유도해 지속매출을 올릴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브라더에서 미싱을 너무 튼튼하게 잘 만들었더니 30년 동안 고장이 안나서 재구매가 일어나지 않았고 수리산업도 돌아가지 않았을 정도로 경제 성장과 유동성에 방해가 되었다. 이 실패 사례를 전세계 기업이 모두 배웠다. 제품의 수명을 의도적으로 낮추거나 부품의 내구성이 의도적으로 낮추는 것은 필수 장사기술이 되었다. 좋은 마음으로만 장사해선 살아남지 못한다. 기술을 개발해야 할 제품생산자들이 거의 이상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나니, 더이상 개발할 기술이 없어 결함을 개발하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이걸 계획적 구식화라고도 부른다. 한 때 앱손은 프린터를 엄청 싸게 팔았는데 그 프린터에서 작동하는 카트리지가 프린트를 몇 장 못 뽑도록 해둔 것이 들통나서 질타를 받았다. 프린터를 구매한 사람은 잉크 값으로 몇 배나 많은 돈이 유지비로 나가야 했다. 애플도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면 오래된 기종은 속도가 느려지게 만든 것이 들통나서 고소당했고 패소한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다. 대량생산 시대에서 대량소비의 시대로, 대량소비에서 대량폐기의 시대가 되었다. 폐기되지 않으면 소비될 수 없고, 소비될 수 없으면 생산할 수 없다. 공급이 포화된 시장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취해야 할 필수 생존전략. ‘폐기는 생산에 선행한다’ 두 수 앞을 내다본 똑똑한 생산자들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다.

꼴사납지만 나따위가 뭘 어쩌겠는가. 다운그레이드를 통한 제품군의 확장, 괜찮단 말이다. 계획적 구식화를 통해 재구매와 총매출을 늘리겠다는 전략, 이것도 괜찮단 말이다. 판매자는 고객을 조삼모사 원숭이 취급하고, 원숭이는 어느 쪽도 이득이 아닌 선택지를 골라놓고 이득을 보았다고 착각하는 것도 좀 한심하지만 그것까지도 괜찮다 이거다. 고객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갈 수 밖에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 지속적인 고정매출을 장기화시키는 것도 괜찮다 이거다. 21세기의 식민지화는 이런 식인데 나따위가 뭘 어쩌겠는가. 이것까진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는 정상이란 말이다. 그래야 더 큰 돈이 돌고, 경제의 규모도 커지고, 미세먼지도 많아지고, 태평양 쓰레기섬도 커지고 하는거니까. 괜찮다 이거다. 이렇게 돌아가는 게 세상인데 나따위가 뭘 어쩌겠는가.

 

다 괜찮은데 스피드플레이는 안 괜찮단 말이다.

로드자전거의 클릿페달 시장은 3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 여기도 계획적 구식화는 반영되어 있다.

Look은 원조라는 Legacy를 내세워 최상위 고객을 타겟층한다. 이런 고객은 Luxury 고객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가성비는 잘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Loyalty가 높아서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내구성이 나쁜 클릿을 만든다. 지우개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내구성을 높이지 않는다. Look 고객들은 5개씩 쌓아두고 쓰면 되니까. 기술이 없거나 적절한 신소재가 없어서도 아니다. 고객이 만족하는 선에서 최대한의 매출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시마노는 지불능력이 부족하거나 가격민감성이 높은 고객을 위해 자신들의 기술력중 일부만 반영하거나 다운그레이드시킨 제품군을 출시한다. 듀라에이스는 너무 비싸다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고객을 위해 울테그라와 105가 출시되어 있다. 시마노가 제일 양반이다. 그래서 시마노로 갈아탔다. 조삼모사 원숭이는 가성비충이라 105를 골랐다.

스피드플레이의 계획적 구식화는 안 괜찮단 말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지켜져야 할 1전제는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산업이라면 건강증진이란 말이다. 왜 내 무릎을 박살내면서까지 재구매를 유도하냔 말이다. 당신들은 내구성이 구리니까 5,000km마다 페달을 교체해야한다는 안내를 해야했다. 하지만 너네는 영구히 사용할 수 있다고 개구라를 쳤지. 철학도 신념도 없는 기업. 자본주의에 기생하고 있을 뿐이다. 너네같은 기업은 그냥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