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스친 스타트업! 그들이 말하는 뉴욕!

K-app Global HUB 뉴욕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스타트업 24팀에게 뉴욕시장은 어땠는지 들어보자.
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이라는 난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관련 기사 보기> 24개의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 동부시장의 문들 두드려보다. 미국동부 시장개척단

 

 

WePlanet 목진건 공동창업자

뉴욕에 친구 몇 명이 있다. MBA를 나온 친구도, 월가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는데 작년에는 스타트업에 관심도 없던 친구들이 이번에 만나보니 스타트업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헬스케어, 바이오테크, 언론, 금융 분야에서 전문성있는 고학력자들이 스타트업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StyleWiki Ciren Jang CEO

패션의 도시 뉴욕! 패션 스타트업이 이렇게도 많이 있구나! 이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팍팍 솟는다. 뉴욕 사람들은 모두 아이폰을 쓰고 있다. 엊그제 안드로이드 버전을 먼저 론칭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iOS부터 개발할걸! 멘토들이 많은 의견을 줬지만 우리의 타겟인 패션 매니아가 아니라 그런지 ‘패션정보의 산재’라는 고통을 이해시키지 못한 점이 아쉽다. 뉴욕에 있는 실제 유저들로부터의 피드백을 받아내고 싶다!!

두잇서베이 최종기, 정민구 공동창업자

그나저나 여기는 인터넷이 너무 안터진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높은 옥상에서도 휴대폰이 안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모바일의 온라인 상태가 필요한 서비스라면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아이폰 유저가 다른 OS를 사용하는 유저보다 구매력이 높고 트렌드를 앞서나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뉴욕은 확실히 아이폰 비율이 높다.

WOLFMENT 이주현, 김민준 공동창업자

애초에 미국시장을 목표로 준비했고, 마침 이번 기회에 뉴욕에 오게 되었으니 우리는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계속 여기 머무를 생각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업무적으로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것에 대해서 개방적이다. IT관련 산업에 있는 사람은 물론 하버드 출신, 커머스 전문가, 금융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개방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미국 여자를 만나서 결혼해라. 사업이 수월해질 것이다.”라는 멘토의 충고가 기억에 남는다.

Wishbenn 이지현 COO

데모데이에서 발표를 하는데 심사자 한 분이 “오 마이 갓, 대박이야! 나 저거 쓰고 싶어!”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도 서비스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투자자가 굳이 물리적으로 떨어져있는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할까? 아직도 확신이 안선다. 투자를 논의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현지에서 몇 개월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마이리얼트립 백민서 공동창업자

멘토들에게 우리가 “뭘 할거다”라고 얘기하면 먼저 “왜 할건데?”라고 되묻고, “어떻게”라는 의견을 덧붙여서 돌아왔다. 여행산업의 온라인화가 많이 되어 있어서 여행사업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데, 5개가 넘는 다양한 사이트들과 협업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다.

외국시장에 진출하겠다면 그 시장의 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향인 것 같다. 그렇게 현지에 적을 두지 않을 것이라면 현지 투자자들이 투자할 이유도 없고 깊은 관심도 안 가질 것이다.

SinglePet 전혜린 공동창업자

이곳엔 도시 곳곳마다 개공원이 있다. 싱글펫 프로토타입을 들고 나가서 산책나온 사람들에게 제품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기로 했다. 이 사람들이 사고 싶다는 정도를 넘어서 가격이 얼마든지 상관없으니 제품으로 나오면 꼭 살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하더라. 미국에는 정말 개를 키우는 사람이 많다. 한국보다 대형견들도 많아서 미국 시장에 오려면 대형견용 제품을 따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해외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유통 관계자를 멘토로 만났는데, 우리 회사에 투자를 고려해보겠다고 얘기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4억을 불렀는데 “고작 4억으로 뭐하겠느냐? 배포를 키워라”라는 답변을 들었다.

VCNC 김주연 Value Innovator

사전 오리엔테이션이 많았던 덕분에 1분/6분 발표는 정말 달달 욀 수준이 되었다. 서비스를 소개하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도착하니까 이게 웬걸! 모두가 우리 서비스를 알고 있었다. ~_~
Between은 언론홍보보다는 사용자들간의 입소문을 통한 viral 홍보가 더 큰 확산을 불러일으키는데 뉴욕은 그렇게 확산되기 좋은 배경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일회성으로 보이긴 하지만, 싱가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채용으로 이어졌고 그 관계를 계속 팔로업하고 있기 때문에 물꼬를 트는 의미가 크다.

Enkino 송기범 대표, Shawn Park CMO

미국 동부는 지역에 따라 투자생태계가 극명하게 나뉜다. 하드웨어, 헬스케어가 특화된 지역이 따로 있고, 뉴욕은 미디어, 문화산업에 관련된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이 많이 모여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 내에서 주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간의 네트워킹이 잘되어 있는데 자발적으로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제품만 잘 만들어서 모든 사업이 잘 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생태계의 관계는 스타트업들이 사업하는데 중요한 요인이다.
같이 진출한 팀들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이미 미국이나 글로벌 시장에 뒤지지 않는 서비스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Dooub 나현기 팀장

‘우리 게임이 진출하기 가장 적합한 미국 내 시장은 어디일까?’ 라는 질문에 모든 사람들이 ‘뉴욕’이라는 대답을 한다. 게임이기 때문에 다른 서비스들의 진출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고 소요되는 시기도 짧을 수 있을 것이다. 현지의 음원사와 미팅도 했는데 게임에 K-POP도 들어가있고 J-POP도 들어가있다는 과거의 성과가 있다는 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윤활유가 되어 주었다.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일년이 걸렸으니 미국 시장도 일년 걸릴 것으로 보고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겠다.

TGENS 조용철 팀장

회사 내부의 역량으로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시아지역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과 같은 시장이라면 이 곳 시장을 잘 이해하는 담당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리의 기술은 메신저 내 뿐만 아니라 광고에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라이센싱을 판매함으로 사업확장하는 것이 지금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인 접근법인 것 같다.

CloudVision 김정호 대표

이 사람들은 제품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시장에 대한 분석’,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받았는데, CloudVision은 너무 기술적으로 접근했다는 평이었다. 한국에서 B2B로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핵심에 집중하라는 이야기가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미국의 B2B시장은 한국과 다르니 우리가 더욱 핵심기술에 집중하고, 글로벌 진출에 관해서는 현지 파트너를 만드는 방식을 권고하더라.

Mindwareworks 이재인 COO

글로벌 시장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면 개발계획보다는 비즈니스모델, 사용편의성 등에 먼저 집중해야 할 것이다. 개발계획을 먼저 세우면 고객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lean하게 방향을 틀기가 힘들다. 개발단계가 비효율적이라도 사용자로부터 시작된 서비스 기획이 우선이고 개발은 그 후에 시작되어야 한다.

Smile Family 김동신 대표

미국은 각 지역마다의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시장의 문화적인 배경을 세부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는 처음으로 동부시장을 경험한 것인데, 스마일패밀리의 잠재유저와 잠재투자자가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동부도 충분히 괜찮은 환경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보스톤이라는 도시는 정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강도는 한국 시장보다 훨씬 치열하다. 준비하고 있는 사람 수, 스타트업 수, 퀄리티있는 서비스의 개수도 너무 많다. 이 곳에서는 높은 수준으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메일을 보냈는데 7번 거절당하고 8번째 미팅제안에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순간이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이다. 나를 알리는 데에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Gist 조승민 대표

서비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뉴욕에와서 자리를 잡을 계획이다. LA, 실리콘밸리 모두 좋지만 뉴욕만큼 뉴스관련 스타트업에게 좋은 지리적 위치는 없는 것 같다.
관습과 문화가 다르다는 상황은 난관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에 집중하게 되면 그 생각 자체가 장애로 작용한다. 내가 무엇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 의지는 해결책을 가져다준다.

—- 덧붙임 (21년 2월 27일) —

짧은 일정 속에서 24팀을 모두 인터뷰하느라 하루에 3팀씩 인터뷰해야 했다. 숙소에서, 버스에서, 세션 중간에, 식사시간에 짬을 냈다. 마지막 2팀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인터뷰했다.

13년 늦가을, 당시 편집부에서 이 글 발행을 빠트렸다. 나는 행사 준비에 바빠서 글이 발행되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안타까워하고 길길이 화를 냈다. 7년이 지난 오늘 문득 생각났다. 들어가보니 draft가 다행히 아직 있다. 여기로 가져와 붙인다.

나는 지금 가장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금전적인 부분도 아니오, 고용보장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앞으로 60년 더 일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살아 남아야 한다.

잘 되는 카페가 잘 되는 이유.

올해 설, 부산에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부산에서 3번째로 번화가인 부산대 앞에 멋진 카페가 새로 오픈했다며 친구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차피 현대인들은 하루에 일정량의 카페인을 마셔야 하고, 이왕 커피를 마실거면 본인이 추천하는 곳으로 가보자고 우겨댔다. 카페의 이름은 제이스퀘어(JQUARE)였다. 이 카페의 건물은 본래 고급 양식전문 식당이었는데, 매출이 좋지 않아 현재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로 넘어간 듯했다. 구글지도에 검색을 해봤더니 ‘㈜세일기업 제이스퀘어’라고 검색결과가 나왔다. 주식회사로 등록된 카페였다. 그럴 수가 있는 이유는 총 4층짜리 건물 중에 1, 2층은 카페로 운영되지만 3층에는 세미나룸, 4층에는 학술공간이 마련되어 카페 이외의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와 다른 공간을 잘 융합시킨 것을 제외하더라도 카페가 잘되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았다. 많은 매력들 중에서도 무엇보다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그 카페로부터 큰 감동을 받은 나는 다른 카페들은 어떤 방법들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고객과의 소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잘되는 카페가 잘되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다양한 종류의 카페와 다양한 컨셉의 카페들이 있는 것처럼 성공한 카페들이 잘되는 이유들 또한 각기 다를 것이다. 반면에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들려서 커피를 마시는 장소’라는 의미는 어느 카페든 가지고 있는 요소일 것이다. 모든 카페들이 가지는 공통요소 ‘커피의 맛’과 ‘매력적인 공간’을 고객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매력을 느끼도록 만드는지, 제이스퀘어에서 경험한 것들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본다.

 

부산에서 3번째로 큰 번화가인 부산대 앞에 위치한 제이스퀘어에 들어서면 한 쪽 벽면에 크게 틀어지고 있는 영상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 2층은 아주 거대한 복층 구조인데 2층 높이가 되는 한쪽 벽면의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상을 1층의 고객도, 2층의 고객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내가 갔을 때에는 두 종류의 영상이 반복되어 틀어지고 있었다. 하나는 지난 11월 카페 새단장을 위해 카페경영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가 기록된 3분정도의 영상이었고, 또 하나는 외국의 유명 바리스타의 에스프레소 추출시범영상이었다.

카페 한가운데에는 빵이 전시되어있는데, 새단장 하면서 베이커리가 새로 생겨났다. 젊은 아가씨 제빵사 두 분이 모든 빵을 만드는데, 완성된 빵을 카페 한가운데 있는 진열대에 올려다 놓는 순간 모든 고객들의 시선은 파티셰에게로 집중하게 된다. 파티셰가 진열대에 빵을 가져다 놓으면서 이렇게 외치기 때문이다.

“제이스퀘어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블루베리 에클레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모든 스탭들이 동시에 이렇게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파티셰 김성희님, 계속해서 맛있는 빵 만들어 주세요^^”

나는 파티셰가 진열대에 빵을 놓으로 온 틈을 타서 최고의 빵을 추천해달라고 말을 걸었다가 한참동안 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를 고르려고 메뉴를 보던 중에는 바리스타가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얘기할수록 나도 궁금한게 많아져서 주문하는데만 1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바리스타와 파티셰가 진심으로 나와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 하고 있었다. 나또한 전문가를 통해서 탁월한 선택을 하게 되었으므로 큰 만족을 했다.

주문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베이커리 안에 김성희 파티셰가 어느새 또 자리로 돌아가 반죽을 밀고 있는 게 보였다. 밤 9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파티셰 두 명은 피곤한 기색은커녕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했다. 2층에 올라가서 일부러 난간 쪽에 자리를 잡았다. 주방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통유리방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방은 카페를 만들기 위해 작업한 흔적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경영기획팀의 방이었다. 아이맥이 2대 있고 많은 양서들과 참고할 카페정보들, 디자인작업중인 흔적들이 남아있어서 경영자가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벽에 영사되고 있는 영상 또한 이 방에서 제작되었고, 간판과 프로모션 안내문도 직접 제작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이스퀘어라는 카페는 모든 공간이 이렇게 투명했다. 평소 나는 고객으로서 무뚝뚝한 편인데 카페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던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나선다면 나는 이 카페를 신뢰할 수 밖에 없다! 2층에서 턱을 괴고 1층의 주방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주방이 가장 전망이 좋은 모서리 창가 쪽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었다. 나는 이렇게 바깥쪽에 위치한 카페의 주방은 본 적이 없다. 일반적인 카페라면 당연히 좋은 전망을 가진 위치에 손님의 좌석을 놓고 주방은 구석으로 위치시키겠지만 제이스퀘어의 주방은 모든 손님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모든 손님들도 주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카페의 구조, 스탭들의 마인드, 경영기획팀의 통유리방, 벽면에 틀어지고 있는 영상을 포함한 카페의 모든 요소들이 하나같이 제이스퀘어의 철학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처음 이 카페에 들어설 때 이런 정보들이 불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커피와 빵을 고르는데는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내가 먹을 것을 누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만드는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한 고객이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니! 나는 나의 통찰력과 카페의 명료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서 또 다시 한번 감탄해서 고개를 떨군 뒤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조금 후 조심스럽게 블루베리 에클레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생크림이 잔뜩 묻은 나의 입가엔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그곳엔 내가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부드러움이 있었다.

 

앞에서 카페가 잘되거나 안 되는 조건으로 ‘커피의 맛’과 ‘매력적인 공간’ 두 가지로 구분지어 생각해보자고 했었는데,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커피가 맛이 좋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모든 카페가 자신의 커피가 최고라고 외치고 있어서 똑 같은 방식으로 커피 맛을 홍보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서 커피의 맛이 좋고 나쁨을 구별하여 카페를 고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즘 대부분의 커피전문점들이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힘들기도 하겠지만, 언젠가 ‘커피 소믈리에’라는 직업도 있다고 들은적이 있다. 그만큼 커피의 종류가 다양하고 맛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커피의 품질차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커피의 맛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커피를 선택하도록 선택권을 주려는 방법은 안일한 생각일 것이다. 사람들이 혀로 커피맛을 구분해내지 못하는 지금, 커피의 맛을 증명하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돈이 많다면 언론홍보를 할 수 있다. ‘조인성이 멋진 펜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내린 커피를 들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커피가 고파질 것이다. ‘카메라를 보고 미소를 한 번 짓는’모습까지 보게 되면 커피가 두 배로 고파진다. 혹여나 커피가 고파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해당 커피의 매출상승엔 기본빵을 하지 않겠는가? 인쇄나 방송을 통해서 홍보되는 것들은 대부분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미각적인 자극을 비유해내는 방식이다. 그럼과 동시에 타 사물의 품격과 명성을 빌려오기도 한다. 많은 커피광고에서 남자연예인의 훈남 이미지를 빌려온다. 본고장의 명성을 빌려오기도 하고, 자격증이나 각종 수상경력들과 같은 인증을 통해 품격을 높인다. ‘세계 최고의 판매량’, ‘우리나라에 10대 밖에 없는 에스프레소 머신’,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 우승’ 따위의 객관적인 사실들은 맛을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프렌차이즈 지점 그 자체로도 홍보수단이 될 수 있다. 브랜드 프랜차이즈 카페에겐 수많은 가맹점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의 간판이 되고 홍보매체가 된다. 이것을 잘 이용한 카페베네는 1년 마케팅 예산을 초창기 3개월에 몰아서 사용함으로 3개월만에 200개 지점을 개업시켰다. 단기간에 지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현상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는 장사가 잘된다.]

[장사가 잘되는 카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지점을 늘릴 수 있다.]

[그러므로 지점이 많은 브랜드 카페는 맛있는 커피를 만들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많은 지점을 무리해서라도 단기간에 개업함으로 ‘사업이 흥하는 이유는 커피 맛이 좋기 때문이다’라는 논리를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심어주었던 것이 카페베네의 전략이었다.

강남대로의 CGV뒤편 골목에 있는 잘되는 카페들 중에 COFFEE REPUBLIC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카페는 커피전문점으로서의 명성을 스스로 표현하고 있었다. 제이스퀘어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얼마나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는데 2층 카운터 앞에 사람 5명의 크기정도 되는 커피 로스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고 비싼 전문기계를 쓸 정도라면 분명 이 커피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커피맛 또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신뢰감이 높아진다. 입구에 널부러져 있는 커피포대자루와 커피원두가 담겨있는 거대한 깡통은 직접 엄선한 커피콩을 공수해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스스로 명성을 인정해내는 카페들의 태도는 여느 카페와는 다른데, 그것은 손님에 대한 관습적인 접대가 아닌 것 같다. 무조건 손님의 취향에 맞춘다거나, 손님이 왕이라며 넙죽거리는 자본주의 시대의 얼빠진 노예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곳에서의 바리스타들은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예술가이자 장인이다.

커피의 맛을 증명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최고의 커피를 만든다는 사실보다 훌륭한 홍보아이템은 없다고 생각한다. COFFEE REPUBLIC과 제이스퀘어에서는 실제로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커피전문점들이 장사가 잘되도록 도모하여 많은 손님들에게 커피를 팔도록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올바른 소비와 판매를 이루어지게 하는 긍정적인 일이다. 반대로 적당히 인지도가 있는 커피원두를 가져와 시급이 낮은데도 불평이 없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커피를 내리게 하는 카페들의 커피가 홍보하는 것은 부정의한 일이다. 인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정정당당한 마케팅이 많으면 좋겠다.

 

카페가 잘되거나 안 되는 또 하나의 조건으로 ‘매력적인 공간’이 있다. 이미 모든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어떻게 차별화 할지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안되는 카페들의 안되는 이유들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인테리어에만 집착하는 실수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카페가 카페를 카페처럼 꾸미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왜 카페가 카페처럼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 장소에서 커피를 팔고 있다는 사실은 간판과 메뉴판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는데 말이다. 언젠가 외국인 친구와 고풍스럽고 이국적인 카페에 들렸다가 “이 인테리어가 너네 나라의 것과 비슷하지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면서 “It’s cheesy”라는 말을 덧붙였다. 건축양식과 외향에 문화와 역사가 깃들어있지 않으면서 그 겉모습만 따라 하는 것은 가식적이고 저급하다는 직설적인 비판이었다. 인테리어가 이국적이고 고풍스럽다고 해서 맛있는 커피를 만든다는 증명이 될 수는 없다. 인테리어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페인트를 두번 칠해서 사포로 문지르면 빈티지한 느낌을 낼 수 있다. 칠판에 분필로 메뉴를 적어놓거나, 폴라로이드 사진을 잔뜩 벽에 붙여놓고, 라이트 브라운의 매끈한 목재로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를 구비한다던지 조경나무를 설치하는 것도 카페를 카페답게 꾸미기 위한 유행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인테리어들에는 피상적인 분위기만 있을 뿐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내지도 못한다. 보편적인 카페 인테리어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이런 양식들만으로는 ‘커피를 만들어 파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있으나 ‘좋은 커피를 만들어 파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담을 수는 없다.

다방에 가면서 커피 맛을 따지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카페에 들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카페들은 다른 공간의 매력을 빌려서 사람을 유도하기도 한다. 특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만을 위한 타게팅이다. 독서공간을 병합한 북카페, 커피도 마시며 운세도 아는 사주카페, 고양이 매니아들을 위한 고양이카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무그늘이라는 카페에서는 닥터피쉬를 체험할 수 있게 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 했었다. 최근 주춤하고 있는 듯한 민들레영토는 어느 카페보다 편안한 최고의 쉼터이고, 음악인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문화와 예술이 함께 숨쉬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카페도 있다. 제이스퀘어는 학술공간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세미나도 개최하여 자기계발에 힘쓰는 청년들의 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카페들이 있을 것이다.

카페들이 다양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카페에 오는 이유들도 다양하다. 노트북을 들고 혼자 개인공부를 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도, 사업얘기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조용히 쉬러 오는 사람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떨기 위해 오는 아가씨들도 있다.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공간을 마련해주는지가 지속적으로 방문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조건이 아닐까? 대부분의 카페들은 이런 공간에 대한 만족을 주려고는 하지 않고 특색 있어 보이려 하고, 튀려고만 하던지, 신기한 것들을 가져다 놓아서 이슈가 되려고만 한다. 카페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그런 카페들은 결국 Cheesy하다는 평을 듣고 카페의 겉모습을 따라해서 돈을 벌어보려는 속내를 들키고 말 것이다.

설 연휴가 지나고 서울로 올라 온 뒤, 제이스퀘어의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보느라 반나절 정도를 보냈던 것 같다. 카페에서 보고 느꼈던 것 이상으로 카페운영진들에 대한 호감을 느낄 수 있었고 젊은 친구들이 참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산다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블로그에는 실제로 카페에 들렸을 때 알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인 ‘내가 먹을 것을 누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들이 충분히 있었다. 바리스타가 웃으며 커피를 내리는 모습, 세계적인 명성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았다는 이야기, 밥보다 빵이 좋다는 파티셰의 이야기, 신상품으로 나온 빵이 너무 잘 팔려서 직원들도 아직 맛보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 실감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또 다시 커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빵 사진을 보면서 침을 한 바가지 흘렸다.

내가 제이스퀘어를 이렇게까지 예찬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하자면; 하나는 앞서 충분히 소개한 카페 자체의 매력이고, 또 하나는 그 카페의 모습을 드러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려 카페를 노출시키는 것은 여느 카페나 하고 있겠지만 제이스퀘어만큼 잘하지는 못한다. 내색을 겸손하게 잘 하는 것, 노력한 만큼 티를 내는 것, 그를 통해서 정정당당하게 인정 받는 것, 그것이 잘되는 제이스퀘어가 잘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PS

여기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으나, 글을 쓰는 중에 나는 지갑을 정리한 적이 있다. 설 연휴 동안 썼던 영수증들을 모두 꺼내놓고 하나씩 보면서 버리다가 이 영수증을 발견하고는 고이 접어서 보관하고 있다. 아.. 다시 한 번 커피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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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판에서의 5개월

지난 해 11월 서울로 올라왔다. 조연출 자리를 하나 얻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 2007년 9월, 내가 2학년 2학기를 재학하던 중에 그 감독님을 처음으로 뵈었다.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으며, 카메듀서 1세대, 외주 프로덕션 1세대라는 부가설명을 붙일 수 있는 분이었다. 전적으로 그 감독님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나는 정말 큰 횡재를 했다고 감사함을 느끼며 감지덕지 서울로 올라갔다.

내가 투입된 프로젝트는 공중파에 1시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로 나가는 작품이었고 포지션은 조연출. 분에 넘치는 직책과 책임감을 맡은 것 같아서 ‘딴에 뭐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후배들을 모아서 술을 한 잔 샀다.(그것은 실수였다. 후배들은 내가 취업을 한 줄로 알고 연신 축하했고, 무엇보다 나는 조연출 생활 1달 3주를 하면서 고작 120만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60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일당 2만원? 방세를 안냈고 끼니를 모두 제작비로 해결했기에 생활이 가능했었다.)

처음 사무실로 들어서던 그날, 나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될 PD, 작가, 막내작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낮술로 반겼다.

12월 25일 방송을 10월부터 아이템조사를 하면서 11월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됐다. 2달에 가까운 기간을 준비만 한 것이다. 방송국 본사에는 ‘외주제작팀’이 따로 있었다. 외주프로덕션이었던 감독님의 회사는 ’어린이재단‘이라는 단체의 의뢰를 받아서 작품을 기획했고 방송국에서 나온 공고에 지원한 뒤, 수주해서 제작에 돌입했다. 제작비의 총액은 8000만원이었다. 1시간짜리 휴먼다큐를 만드는데 8000만원의 제작비가 책정되었다. 그 중 4000만원은 방송송출료로 본사가 떼먹었다. 한 마디로 4000만원을 내면 공중파에 1시간의 방송을 틀 수 있는 권한을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남은 4000만원으로 회사가 어떻게든 방송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방송국 내부 기관 중 ’컨텐츠허브‘라는 부서에서 또 1000만원을 꼭 가져가야 한다고 우겨대서 어쩔 수 없이 강도당하고 말았다. 회사엔 3000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차를 한 달간 대여하고, 장비도 대여했다. 차는 렌트카회사에서 빌렸고 장비는 여의도의 한 장비대여업체에서 빌렸다. (여의도에는 방송에 관련된 모든 업체가 모여 있는 곳이다. 장비 대여업체부터 외주프로덕션들, 종편실, 녹음실까지 모여있다.) SONY의 Z-5, 와이어리스 마이크, 트라이포드, 도시락(포터블데크)가 빌린 장비였다. DV테잎은 30개를 샀다. HDV1080i로 촬영했다.

촬영이 끝났다. DV테잎은 총 45개 정도를 썼던 걸로 기억한다. (진행하는 중에 아이템이 두 번 엎어졌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다 더하면 총 70개가 넘었다.) 방송이 나가는 25일을 3주 앞두고 편집에 들어갔다. 종로에 있는 맥킨토시 전문 업체에서 맥프로를 한 대 빌렸다. 한 달에 40만원, 깎아서 30만원에 빌렸다. 부산에서는 PD님이 혼자 촬영을 마무리짓고 있었고,(사실 이 때쯤 되니 현장성이니 사실성이니 진정성 따위의 것들은 전혀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 1시간짜리 이야기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그 스토리를 이어가기에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작가언니는 계속해서 논리를 끼워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장면이나 소재들을 PD에게 부탁하고 PD는 그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정 안되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연출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나는 혼자 회사 사무실에서 맥킨토시를 설치한 뒤 캡쳐를 떴다. (부산역에 KTX직송 택배가 있다. 그것을 이용하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6시간 만에 물건 배송이 가능하다.)

부산에서 올라온 DV테잎을 나는 계속 캡쳐했다. 테잎 45개를 캡쳐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45시간이다. 물론 1시간마다 제 때 테잎을 갈아줄 경우에 말이다. 나는 유난히 잠이 많은 편인데 의자에 앉아서 1시간마다 울리는 알람에 테이프를 갈며 3일을 보냈다. 3일 째, 테잎을 거의 다 떠갈 때 쯤 FCP를 확인한 PD에게 혼났다. HDV로 찍은 테잎을 캡쳐뜰 때에는 FCP에서 기본적으로 레코딩버튼을 누른 시점을 기준으로 모든 클립이 잘려져서 캡쳐된다. 나는 그것이 문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PD에겐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캡쳐를 뜰 동안 막내작가는 도시락(포터블데크)를 가지고 프리뷰를 한다. 몇 번 테잎에는 무슨 내용이 찍혀있으며 등장인물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두 녹취하고 카메라 앵글은 어떻게 변하는지 따위를 모두 기록하는 것을 프리뷰라고 한다. 프리뷰노트에는

              Tape 2

0000             칼라바

0030    FS     경윤이가 윤정이를 쳐다본다.

0045    OS    경윤 : 꽈자줘.

와 같은 식으로 모든 것을 기록한다. 앞의 숫자 0000네자리 중 앞의 두 자리는 분을 표시하고 뒤의 두 자리는 초를 표시한다. (1348은 13분 48초이다.)

 45개의 테이프를 모두 확인하면서 편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프리뷰노트를 책처럼 인쇄해놓고 노트에 표시하고 적어가며 전체적인 구성을 짜는 것이다. 이 과정은 작가가 주도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클립이 쪼개져있으면 (8번 테이프의 13‘48“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을 수가 없다면) 쓸 데 없는 시간이 소비되는 것이다. 나는 3일 간의 캡쳐를 다시 시작했다. (사실 시퀀스를 하나 만들고 그 위에 나눠진 클립들을 줄줄이 올려 놓은 뒤 인,아웃점을 잡고 Make Subclip 기능을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지만 PD는 자신이 모르는 기능을 이용할 바에야 내가 잠을 안자고 수고하는 편을 택했다.)

또 3일이 지났다. PD도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PD가 편집하는 동안 나는 멍한 정신으로 그저 뒤에 앉아서 졸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존다고 혼났다. 인간의 신체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고 우리의 몸속 유전자에 140만년 동안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역행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편집하는 중에는 일주일에 20시간을 못잤다. (그만큼밖에 못잔다는 건 나에겐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동시에 PD에겐 조연출새끼가 그만큼이나 처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60시간이나 되는 일주일에 10시간, 20시간을 짬내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바쁜 것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고 또 혼나고.. 감독님과 PD님은 나란 녀석이 ‘커트가 어떻게 붙고 있는지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켜보는 열정을 가진 조연출’이 되길 바랐지만 나는 혼이 나더라도 조금 더 자는 것을 택한 게으른 녀석이었다.

지난 새벽 5시까지 깨어있던 것은 기억하는데 책상에서 눈을 뜨니 7시였다. 게다가 PD님이 사라졌다. 2시간이나 엎드려 자다니.. 또 혼나겠구나, 각오를 하고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고 물으니 용산에 와있다고 했다. 왜갔냐 했더니 외장하드가 날라 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본체 옆에 있던 외장하드가 없었다. 3시간 뒤에 PD님은 새 외장하드를 들고 돌아왔고 PD는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일주일이 날아갔다. 또 다시 3일간의 캡쳐가 시작되었다.

PD가 새우잠을 자거나 사우나에 잠시 갔다오는 동안 나는 막내작가와 함께 예고편을 만들었다. 예고편을 만들고 난 뒤에는 중요한 몇 몇 장면들만 골라 6mm에 떠서 방송국 본사로 갖다 줬다. ‘이어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방송국의 한 편에는 프리미어 컴퓨터가 설치된 방이 여러 개 붙어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은 ‘이어서’ 편집기사였다.(“이어서 ~~프로그램이 방영되겠습니다.”만 하루 종일 만드는 사람)

방송까지 정확히 5일 남은 날의 새벽이 또 밝았다. 나는 여전히 졸린 상태이고, 사무실은 담배연기로 꽉 차있었다. 가편이 끝난 프로젝트 파일을 외장하드 통째로 들고 여의도로 향했다. 보통 6mm테잎에 떠서 가져가거나 DigiBETA테잎으로 가져가야 하지만 편집실에 FCP가 가능한 곳을 갔기 때문에 외장하드를 가져가서 바로 열어 수정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그 편집실은 3일에 100만원이었던 것을 70만원으로 협상했다.) 그 편집실은 방이 여러 개 있었으며 항상 밤샘하는 실장들이 있었다. 실장들을 대부분 나이가 어렸으며 레귤러방송(매주 1시간씩 나가는 주기적인 방송)을 주로 편집하는 듯 했다.

종편실에서는 FCP작업과 DigiBETA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실장은 FCP로 작업할 수 있는 부분까지(갖가지 Transition들과 프롤로그 이미지 만들기, Color Collection, 모자이크)만 손본 뒤 디지베타 테잎으로 떴다. 그 편집실엔 자막실이 따로 있었는데 자막을 치는 아가씨가 5여 명이 있었고 2교대로 24시간 대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막은 프리뷰노트를 제작했던 우리의 막내작가가 만들어서 가져갔었고, 어떤한 프로그램을 써서 자막 폰트설정과 데코레이션 설정하는 것이 순식간에 가능했다. 1시간짜리 자막을 모두 만들어 내는 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이미 여러 가지 컨셉과 프리셋을 미리 만들어 놓고 적용만 시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막파일들은 targa확장자로 출력했다. (학교에서는 포토샵에서 뒷 배경이 없이 타이포 레이어만 띄운 뒤 PNG파일로 저장하여 FCP에서 가장 윗 트랙에 자막을 얹히는 식으로 작업했었다.)

리니어 편집실 안에서는 실장, 보조, 자막팀 그리고 PD 총 네 명이 나란히 기계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뒤에 쇼파에 앉아서 또 졸았다. 보아하니 보조하는 분도 실장눈치를 보며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FCP에서 가편을 끝낸 뒤 바로 출력한 테잎을 ‘클린본’이라고 불렀다.(순수하게 컷만 붙어있고 CG나 자막 따위의 것들이 들어있지 않은 테잎.) HD였기 때문에 HDCAM테잎을 썼다. (하지만 녹음실에는 HDCAM이 지원되지 않아 녹음/믹싱작업만을 위한 DigiBETA 테잎으로도 클린본을 만들었다.) 클린본 테잎을 기계에 넣고 리니어 기계에서 실시간으로 테잎을 재생하면서 PD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순간마다 자막을 넣고 뺀다. 실시간이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이며 호흡을 조절하는데 특히 훌륭한 시스템이었다. FCP에서 모든 자막을 마우스로 조정하려 했다면 무척 시간도 오래 걸렸을 것이다.(물론 FCP에서도 실시간 재생을 하면서도 자막이 들어갈 타이밍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방송을 틀 수 있을 준비가 된 테잎이 나왔다. 이 테잎은 ‘마스터’테잎이라고 부른다. 방송국 본사에 마스터 테잎을 넘겨줄 때 외주제작국 팀장과 여러 사람들이 더 모여 테잎을 한 번 확인한다. 모자이크가 더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자막에 오타는 없는지 따위를 6여 시간에 걸쳐 수정했다. 이 날 방송국 본사의 심의 총 책임을 맡은 본부장님(?)정도의 분이 작업하기 전에 커피나 한 잔 하자면서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다들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본부장님은 카페라떼를 시켰다. 나에겐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안될 것 같게 아니라 그러고 싶지 않았다. 대신 각설탕을 많이 챙겼다. 전날 한 끼만 대충 챙겨먹었던 나는 각설탕 여섯개를 넣은 커피를 입 데이는 줄도 모르고 마셨다.

방송이 나간 뒤, 나는 제작비 정산을 하게 되었다. 장비대여 업체와 편집실, 녹음실에 나간 돈은 얼마이며 인건비로는 얼마가 들었는지 따위를 모두 정리함과 동시에 제작 기간동안 영수증을 모두 정리해야했다. 수백 개가 되는 영수증을 엑셀로 내역과 액수를 정리하여 대표님께 전달했다.

방송이 나간 뒤,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났기 때문에 PD도 작가언니도 막내작가도 다 흩어지게 되었다. 작은 프로덕션에서 진행하는 이런 프로그램은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제 갈길을 알아서 가야한다.

나는 갈 곳이 없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지, 다른 외주프로덕션에 들어가 볼지를 따져보았다. 미디어자과 사람인 사이트를 통해서 외주프로덕션 몇 개를 알아봤으나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았다. (주변의 인맥을 통해 아름아름 사람을 구할 수 없는 ‘평이 좋지 않고 왕따를 당하는’프로덕션만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정보를 올려 사람을 뽑고 있다는 것이 선배들의 충고였다.) 내 첫 사수는 6mm 꼭지물로 여의도바닥에 이름을 꽤나 날린 PD라고 소문이 나있었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런 것 같기는 했다. VJ특공대와 무한지대Q를 오랜 기간 동안 했다고 들었다. 내가 사고도 많이 치고 잠도 졸라 처자고 했지만 갈 곳 없는 내 처지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곳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다. 자신이 무조건 입사시켜 줄 수 있는 파워는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6mm를 한 번 잡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겁먹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침방송이나 6mm프로그램들을 보면 보통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 4개의 ‘꼭지’로 이루어진다. 한 꼭지는 14~15분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보통 1년 정도의 조연출수련생활을 하게 되면 한 꼭지를 맡을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된다.)

내 사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편집기간 동안 가끔 사무실에 왔었기 때문에 인사를 하고 지내게 되었다. 다행히 그 PD분에게는 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는지 나를 데려다 쓰겠다고 했다. 부산 촌놈이 강남바닥을 처음 가보게 되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인턴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선배가 한 명도 없었기에 헛소리를 제 맘껏 내뱉은 것이었다. 난 비싼 등록금을 내면 학교를 다니면서 수업을 들으면서 지식과 교양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란 곳이 취업알선센터가 아닌데 왜 인턴따위를 나가서 미리고생 사서고생을 해야 하냐고 반박했다.

필드에 나와 보니 시발, 이거 뭐 다 처음 듣는 소리에다가 가르쳐주는 PD도 아카데미 나온 녀석보다 아는 게 없으니 ‘시발 이새낀 도대체 뭐야 아는 게 하나도 없다’며 귀찮아했다. 대학교가 취업알선센터로 변해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나처럼 대학교를 4년 동안 다니면서 그 후의 삶에 대해서 전혀 준비하지 않는 놈은 문제가 정말 큰 것 같다.

그래서 후배님들은 얘기라도 좀 들어보라고 뭘 적어봤어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강남의 포스트프로덕션 이야기입니다.

제가 필드 경력이 5개월 밖에 안되서 지금 자리가 잡힌 게 아닙니다. 공식적으론 아직도 백수상태죠. 학교에서 전화도 와요. 그거하지 말고 다른데 알아봐 줄테니 4대보험 되는 데로 가서 우리 학교 취업률 높이잡디다. 저는 아직도 선배들이 뭐할래, 연출할 생각은 있는거지? 꿈이 뭐니? 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합니다. 그러니 제 주관적인 감정이 있는 것들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방송일 영상일 힘든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일인들 어디 쉽고 편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다르며 후배님들은 어떤 준비를 하는 게 옳을지 고민하는데 참고가 되기만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