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가 족히 10미터는 되었던 것 같다.
전시에 참여했던 부스 업체들이 물밀듯 빠져나가자
바닥에는 전시패널들과 각종 쓰레기들이 나뒹굴었고
천장에는 지름 1미터 크기의 헬륨풍선이 붙어 있었다.

풍선을 준비한 부스는 여럿이었지만
대형 풍선을 준비한 곳은 분명 한 곳이었기에
범인을 특정해 전화로 문책하자
잘 안들린다며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겼다.

연기가 어설펐지만 민망함과 송구스러움은 묻어났기에
사과를 받은 셈 치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천장에 붙어버린 헬륨풍선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사다리차를 부른다거나
10m의 막대를 구하면 된다거나
총을 쏴서 터뜨리자는 등
대부분의 최초 아이디어가 그러하듯
실현가능성이 낮은 안들이 나왔다.

지난 일주일동안 잠을 10시간도 못 잤지만

자발적으로 모여든 풍선제거TF는 어느덧 여섯이 되었고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음에도
실현가능성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바람이 빠질 것이라는
태평한 얘기를 늘어놓던 셋은 떠나고 셋만 남았다.

대관담당자를 불렀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그 경험 속애 해법이 있는지 여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행사장소를 원상복구하는 건 임차인의 책임 이라고
당부한 뒤 사라졌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동료들 뿐이었다.

집념의 두 사내는
막대로 당겨오는 방법과
투사체로 터뜨리는 방법을 실현하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당겨오기 위한 테이프
터뜨리기 위한 금속류
닿기 위한 막대기
던져질 투사체
가 될만한 것들을 모았고
이 안에 분명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각 재료를 조합해보고 있는데
30분 전 TF를 떠난 배신자가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쓸데없는 짓 말고 짐이나 하차장으로 옮기라며 윽박질렀다.

가위를 던지려고 하던 녀석을 진정시키고 나니
다른 녀석은 비비탄 총을 사오겠다며 법카를 달라 했다.
사비로라도 사오겠다는 녀석을 말리는 와중에
테이프를 뭉쳐 만든 투사체에 압정이 바깥으로 꽂힌
해결책이 완성되었다.

천장을 향해 날아오르는 압정테이프공을 바라보며
던져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성공의 희열은 실현가능성을 찾아낸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강호의 도리였다.

팔힘이 떨어져 더이상 던질 수 없다고도 했지만
어깨에 목청껏 파이팅을 질러주고
피칭 순간엔 제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숨죽여 기다려주었다.

스무번의 시도 끝에 풍선은 터졌다.
투수의 어깨를 주무르며 축하해주었고
낙하하는 풍선을 낚아채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환호했다.

투수는 자신이 만든 압정테이프공이 뿌듯했는지
전시장을 정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머니에 넣어 간직하다가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상징적인 물건임에도
본질적으로 쓰레기일 수 밖에 없는 그것을
전시장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야 폐기하고
우리의 TF도 그렇게 해산했다.

 

다음 해에는 행사 장소가 바뀌어
천고가 족히 15미터는 되었던 것 같다.
전시에 참여했던 부스 업체들이 물밀듯 빠져나가자
천장에는 헬륨풍선 30개 묶음이 붙어 있었다.

던진다해도 닿지 못할만큼 높았고
터뜨린다해도 30번을 터뜨려야 했기에
함께 과제를 풀어보자며 인원을 모집했으나
올해의 서포터즈 중에선
집념은 커녕 흥미조차 보이는 사람 없었다.

환상적이었던 작년 TF의 팀워크가 그리웠지만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며 해법을 공모했다.

현장 경험이 많았던 업체 실장님 중 한 분이
풍선은 풍선으로 갖고 오면 된다는
수수께끼같은 힌트만 남긴 채 사라지셨다.

장내 청소를 맡았던 분들이
남은 풍선을 밟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서
몸을 날려 풍선을 사수했다.
풍선을 손에 쥐고나니 해법이 이해됐다.

낚시줄로 길이를 연장하고
테이프를 뒤집어말아 접착기능을 추가하니
해결책이 금새 완성되었다.

풍선낚시는 단 번의 시도에 성공했고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격정적인 환호와 박수로
나의 월척을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왠지
성공의 희열은 작년만치 못했다.
민망하고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문제를 풀어내는 고민은 없었고
해법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해결했다.
작년대비 3배 적은 인력으로 3배 빠르게 문제를 풀었음에도
과정없는 실행만으로 도달한 성공엔 성취감이 없었다.
나는 부지런한 실행가라고 할 순 있어도
발명가나 개척자라고 할 순 없었다.
나는 박수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리버스엔지니어링 패스트팔로우 전략으로
비어있는 기회를 선점하는 데에 집중했던
창발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성장과정을
나 개인이 그대로 답습한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과정을 거친 사람보다 빠르게 완료한 사람에게
성공의 과실이 돌아가는 결과중심주의
경제보상체계가 시키는대로
요행과 편법, 합법적 반칙을 실행하는 것이
성공의 공식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넘어
챗GPT까지 튀어나와 실행자의 속도만 높여주고 있으니
과정의 낭만은 사라져가는 경향이다.

하이퍼 커넥티드 글로벌 시대에는
불가능해보이고 막연해보이는 과제들도
누군가에 의해 진즉 도출된 해법이 이미 존재할 것이기에
풍선을 처리하는 방법 또한 검색만 하면 나올 것이기에
문제를 직접 풀겠다는 시도는
바퀴를 다시 발명하겠다는 시도처럼 미련한 일로 격하된다.

해법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지만
해법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기에
성취감은 느껴지지 않고 도전의 의미와 의욕이 상실된다.

남아있는 과제 중에
과연 내가 직접 해결할 문제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 세대에 남겨진 과제들은
지나치게 거대해서 엄두가 나지 않거나
형편없이 초라해서 같잖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 뿐이라
개척과 발명의 기회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를 갖게 된다.

과제는 사라지지 않았고 피하고 있을 뿐이다.
과제대비 높은 보상을 좇거나
보상대비 쉬운 과제만 찾거나
해법을 손쉽게 취하려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당면 과제에 집중하지 않아야 하는 변명거리만 찾아내
본인의 비겁함을 가려 덮고 있을 뿐이다.

과제가 없다면 과제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우선적인 과제가 되는 것처럼
우리 세대에 남겨진 대부분의 과제는
거대하거나 초라한 것이 아니다.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이다.

 

오늘 지금 여기 살자.

과제가 있음에 감사하자.
천장에 붙어버린 헬륨풍선을 처리하는 방법을 두 가지나 알고 있는 나는
같은 과제가 다시 주어지더라도 과정을 누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실행만 해야 하기에 성공의 희열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어버린 당신도 그렇게 되어 버렸다.
성공의 희열이란 보상의 크기와 전혀 연관성이 없으며
원초적인 쾌락 보상 체계에 의해 작동하는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인간 고유의 인간성이다.

과정을 인내하며 문제해결능력을 키우자.
남겨진 과제가 없어 보이는 시대지만
역설적이게도 문제를 풀어내는 고유한 능력은
더욱 희소한 자원이 되고 있다.

복잡하고 복합적인 과제가 주어졌음에 감사하자.
문제해결능력은 더이상 창의와 연산에만 국한되지 않고
부지런한 실행력과 완수가능성을 분간하는 예리함까지
포함시켜야 할 정도로 개념이 넓어지고 있다.

높은 난이도와 낮은 성공률도 환영하자.
내가 풀기 어렵다면 남들고 풀기 어려울 것이고
그렇게나 어려운 문제를 내가 풀게 된다면
남들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의
진입장벽을 세울 수 있다.

풍요를 경계하고 척박한 환경에 머물자.
복잡하고 복합적인 과제들은
자원의 투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보유한 자원의 여부로 승부가 갈리지 않는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환영하자.
시련이 있어봐야 죽을 시련은 아닐테고
적당한 긴장감과 분노 또한 에너지의 원천이 되며
날파리 따위에 신경을 뺏기지 않을 집중력과 관대함을 키우게 될 것이다.

 

– 2024년을 맞이하며

know what 교육과정을 마칠때쯤 know where 중요하다고 하더니
이젠 know what to know 중요한 시대가 되어부렀다.

배움의 속도는 0으로 수렴하기 what to know 올바르게 인지하는 순간, 배움을 완료한 상태, 지식과 지혜가 반영된 시스템, 시스템을 통해 도출하는 결과까지 정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지식의 계보를 파악하고 올바른 셀프 맞춤 커리큘럼을 세우는 것은 빠른 학습속도보다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이 되었다.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이지만
다음의 시대도 같은 거리만큼 가까워졌으리.
다음은 분명 adoptation, amalgamation 시대일 것이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남이 잘 된 이야기를 들으면 배가 아프다. 매출이 높다고, 이익이 크다고, 직원이 늘었다고, 투자를 받았다고 하면 배가 아프다.

다행히도 복통은 일시적이다. 타인의 행복에 배알이 꼴리는 반사적 반응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보양식을 공급한 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금새 낫는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부럽지가 않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 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내가 그 일을 할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소름이 막 끼쳐. 오싹해져. 지금 내 인생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져.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아마도 나는 일에 대한 가치기준이 더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고 성과가 뛰어나 보여도 그 속성이 저급한 것이 있고,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어떤 이도 부러워하지 않지만 그 속성이 숭고한 것이 있다.

하면 안 되는 일부터 구분해본다.

 

1. 앵벌이

잘나가는 누구 밑에서 일하기, 로또 당첨되기, 구걸하기, 정부지원사업으로 연명하기.

돈을 벌려면 그릇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앵벌이들은 그릇을 키우지 않고 들어오는 돈만 키우려고 한다는 점이다. 본인 또한 자신의 그릇보다 큰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앵벌이로 돈을 크게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배가 아프다. 하지만 복통은 금새 낫는다. 작은 그릇에 담기지 못하고 흘러 넘칠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앵벌이로 돈을 크게 버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외려 불행이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수동적 용역

모든 회사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을이다. 이 일을 반복하다보면 갑질을 감내하는 것이 을질이라고 믿게 된다. 을질을 잘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면 배가 아프다. 하지만 복통은 금새 낫는다. 그 크기가 작거니와, 그 이상으로 키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을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거래의 결정권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사업의 성패는 갑이나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공급만 하다가보면 산업 내에서의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될 경우 더욱 수동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3. 밑빠진 독

시스템화할 수 없는 일은 개선할 수 없다. 개선하지 못하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개선하지 않은 상태로 돈을 벌었다는 소식도 들으면 배가 아프다. 하지만 복통은 금새 낫는다. 비효율과 손실을 감안할 정도로 큰 input을 투입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었다면 분명 몸 어딘가가 망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미래 수익은 고정적이다. 다른 사업체들은 개선한다. 남들은 개선할 때 나는 개선하지 못하면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그 역할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개선이 가능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밑빠진 독의 구멍을 메울 생각은 않고 더 열심히 들이 붓기만 한다.

 

4. 맨손

문명과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도구없이 맨몸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 선조가 발전시켜온 문명의 혜택 위에 우리는 역량을 펼친다. 도시의 높은 산업밀집도, 정보통신의 인프라,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진 거래규약, 도구와 기술의 보급, 직무적으로 훈련된 인력을 활용해 우리는 사업을 구성한다. 바퀴와 인터넷을 새로 발명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발명을 하는 게 아니라면 나머지는 발명된 것들을 현 시대와 상황에 맞게 구성해내는지의 싸움이다. 문명과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는 소식도 들으면 배가 아프겠지만, 이 소식은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이렇게 구분하면 부러워보이는 일 90%는 부럽지 않게 된다.

내려 놓았다.

도통 무엇을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느낌은 수 개월이 아니라 년 단위를 넘어섰다. 출근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데도 개선의 진척이 없으니 나는 방향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출근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자전거를 탔다. 동네에서 자전거를 제일 잘 타는 놈이 되었다. 출근자덕보다 무직자덕이 아무렴 잘 타야 했다. 일의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운동으로 만들어낸 성과를 확인하며 자존감을 지켜냈다.

다른 회사에 출근도 해봤다. 지식도 능력도 요령도 많은 나같은 일꾼이 일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국가적으로 산업경쟁력에 손실이 발생하는 낭비이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내 모습도 관찰해볼 겸 회사도 다녀봤다.

기세를 몰아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기로 했다. 모든 역할을 직원에게 위임했다. 출근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모든 책임을 내려 놓는다고 명문화해 사인까지 하고나니, 완전한 자유인이다. 평소라면 전혀 만날 일이 없던 호화궁상을 만나보고 철학공부를 유튜브로 2달 내내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깥으로 돌았다. 갇혀버린 상태에서 벗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알차게 보냈다. 장장 2년의 기간이었다.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만큼이나 모든 것을 내려 놓아본 시간 또한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기에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사람도 떠났다.

부친상을 당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여읜 후의 감상을 공유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덧붙였다. 사람들은 으레하듯이 나에게 상실을 위로했지만 나는 요상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공유하고자 했던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되었다. 부친상은 조부모상과 분명 달랐다. 나는 비로소 내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 좋으나 싫으나 내 존재를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되었다. 트라우도 흑역사도 짧은 인생의 덧없음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더이상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가장 오래 일한 직원도 떠났다. 국가는 무엇이고 기업은 무엇이며 개인은 무엇이고 존재란 무엇인가.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때로는 아주 중요하기도, 때로는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한다. 혼자서 달성해낼 수 없는 목적이기에 여럿이 모이고 조직을 형성한다. 또 다른 구성원의 조합으로 또 다른 조직이 되어 또 다른 도전에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한다.

 

유사 서비스도 생겼다.

매해 서너개씩 나왔지만 궤도에 오른 것은 그동안 하나도 없었다. 다들 모냥새만 흉내내다 요구되는 비용과 자원과 시간과 복잡성에 손을 들고 떠났다. 미련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에서 나만큼 미련한 사람은 없었다.

실행의 싸움도 기술의 싸움도 디자인의 싸움도 마케팅의 싸움도 효율의 싸움도 자본의 싸움도 아니다. 이것은 개념파악의 싸움이다. 누가 다음 개념을 찾아낼 수 있을 때까지 미련하게 들러 붙어 있을지의 싸움이다.

적어도 나는 창조자가 아니다. 정리하는 사람에 가깝다. 지저분한 귀납적 현상들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이고 정제하고 재분류하고 정의하고 종합적으로 정리해내는 정보처리기계이다. 이전보다 나은 다음을 한 단계씩 만들어내며 도달한 게 지금의 문명이다. 오늘도 분야마다 한 단계씩 다음 모습을 찾으려고 아둥바둥거리는 게 현대 문명인의 책무다.

나 또한 앞선 서비스의 시도를 오답노트삼아 만들어낸 유사서비스였다. 그리고 더이상 참고할 성공사례도 실패사례도 없을 때 나는 정체기를 맞았다. 앞서 존재한 서비스를 내가 이겨낸 것이 아니다. 앞선 서비스의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존재했기에 유사 서비스들이 또 나올 수 있었다. 나 또한 유사 서비스 덕분에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다.

이렇듯 동시대를 살아가며 교류하는 모두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감사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일이 많았던 때도 아니고, 문제가 어려웠던 때도 아니다. 일이 없었을 때다.

일이 많다는 것은 세상을 인지할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역량을 강화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사회에 쓸모있는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다.

문제가 어렵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어려운 문제일 것이기 때문에 문제의 어려움은 문제가 아니다. 내 능력의 한계를 돌파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도전과제이며 이 또한 축복이다.

나는 오히려 일이 없었을 때 방향을 잃었다. 내 존재가 무의미해졌고, 짧은 생을 살면서 세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기력을 느꼈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작년 여름부터 일의 호흡을 바꾸었다. 주단위로 끊어 가기로 했다. 주마다 결산을 하며 한 줄 평이 남겨진다. 문장들이 쌓이니 내가 어떤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 잘 보여지는 것 같다. 묶어본다.

 

 

Reset everyweek.

정리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습니다.

“솔직, 간결, 즉시”

설레는 일을 합시다.

비효율은 적이다. 적을 섬멸하자.

Concise and Precise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제대로 일하게 된다.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수요가 시스템에 선행한다.

Active한 일을 Passive로 바꾸는 일

어떤 바람이 불더라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면 세상은 우리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양의 영역은 AI인공지능기계에 맡기고 우리 인간은 질에 집중하자.

숨쉬듯 운영정비

문제를 Universal하고 Permenant하게 풀자.

개인의 업무 역량을 키우는 일은 가장 확실하게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다.

see wider, aim higher.

[목표설정 > 시도 > 회고]의 무한반복

구조는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구조가 없는 환경에 내던져 지더라도 올바른 판단을 찾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끔 나는 구조가 없는 환경 속으로 제발로 걸어 들어간다.

Due가 있고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일은 마무리된다.

당장의 문제에 집중. 오늘의 최선.

KISS & MISS(Keep It Super Simple, Make It Super Simple.) Simple is best.

자원은 언제나 부족하고 기술의 제약은 누구에게나 있다. 부족한 자원임에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제약이 있는 기술임에도 궁극의 구현을 해내는 것이 가치 창출의 본질이다.

일이라는 것은 내 능력과 기술을 시대와 환경과 산업에 최적화시키는 일이다. 사업의 기회도 직무의 역할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잠시 주어질 뿐이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이상 될 수 없다. 같은 일을 120% 집중할 때 도달하는 제로의 영역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일을 절반 이상 버리는 것이 시작이다.

기술이든 콘텐츠든 디자인이든 모두 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자원은 언제나 부족하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은 우리를 더욱 우리답게 만든다. 자원이 풍족하면 오히려 우리답지 못하게 된다.

being Original.

기술의 보급, 낮아지는 요구 자원, 높아지는 구현 가능성, 짧아지는 사업 경쟁력 지속시간.

같은 일을 같은 방법으로 하면서 같은 성과를 내고 있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다.

10번을 개선하는 게 아니다. 10번을 버리는 일이다.

노동은 사라지고 올바른 판단만 남는다. 올바른 판단은 다시 노동을 없앤다.

Do the right thing, right way, right now.

It takes time. It takes steps.

한 가지 발차기의 만 번 연습.

테크가 별건가. 일 잘하는 게 테크다. 높은 생산성이 테크다. 적은 자원으로 높은 성과를 내는 게 테크다.

나의 강점은 교집합이 아닌 차집합에 있다.

Get Things Done.

나 자신은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자기확신을 가지자. 설령 오늘 정답을 찾지 못했더라도 내일의 나는 정답을 찾을 것이라는 긍정을 가지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뛰어나듯이, 오늘의 나보다 뛰어난 내일의 내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자기확신을 가지자.

인간이라는 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다. 내 생의 시작과 끝은 이미 정해졌다. 거기엔 내 의지가 개입할 여지도 없었다.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내가 결정할 수 있고 집중해야 하는 문제는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한 것이다.

내가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작게나마 내 방식으로 돌아가는 더 나은 세상을 일궈 냄으로 내 존재 가치를 만들어낸다. 생물학적 욕구인 행복, 쾌락, 고통회피, 안위를 충족되는 환경이 건강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태생적 동물 욕구만을 위해 사는 것은 저급한 일이다. 나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사유를 하고 작은 세상을 설계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만들기 위해서 지금의 세상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인식은 관점의 문제다. 만든다는 것은 곧 바꾼다는 의미다. 무엇을 바꿀지 바라보기 가장 좋은 것은 비판적인 시각이다. 세상의 변화는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향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 어렵다. 대체로 직전 세대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한 단계만 나아갈 뿐이다. 한 번에 열 단계를 건너 뛰어 이루려고 시도해 성취한들 그것 또한 바로 다음 단계다.

이전 시대엔 기근, 가난, 전쟁, 불균형, 비효율, 단절의 문제가 있었다. 인류는 그 문제를 풀었다. 이미 풀어진 문제에 붙들려 있을 필요는 없다. 인간 유전자 구조가 모두 파악되고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정신노동력은 인공신경망에 의해 추월 당한 지금 생체적인 한계의 극복은 무의미해졌다. 공급이 소비를 넘어서서 기본권이 보장된 시대에 부의 축적이나 사치를 추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소비기계로 전락해버리게 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세상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모든 문제가 사라지면 인간은 그저 사육당하는 개체가 되어버린다. 인간 스스로가 이룩한 문명에 의해 스스로 사육당하는 짐승의 상태로 회귀하게 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개척하는 역할과 구축하는 역할을 맡을 기회는 적어진다. 비극이다. 하지만 이 비극 또한 문제다.

다음 단계의 세상에 도달하면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앞으로도 꾸준히 비극이 발생할 것이란 사실은 얼마나 다행이고 희망적인 일인가.

우리는 만족을 모른다. 강하게 열망하던 대상도 소유하게 되면 흥미를 잃는다. 강하게 추구하던 목표도 달성하게 되면 만족감은 급격하게 추락한다.

우리는 이런 성향 때문에 만성적 불만족에 시달린다. 이미 가진 것과 이룬 것을 보는 것으로는 만족감이 충족되지 못한다. 열망은 가지지 못한 것을 향해 생긴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해서는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성향 덕분에 인간이라는 종은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다. 개인은 불안과 권태에 고통받지만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쉴새없이 움직일 수 있다.

인간은 세 가지 의지를 가지고 있다. 생존의지, 증식의지, 개선의지다. 생의지가 있어야 일단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의지는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다. 증식의지가 있어야 대를 잇고 다음 세대가 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거의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다. 증식의지가 있기에 개척을 했고, 지구를 다 개척하고 나니 인류는 화성으로 가겠다고, 미시의 세계로 가겠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개선의지가 있기에 그 모든 일을 해낸다. 개선의지는 인간만 가진 고유한 의지다. 개선의지가 있기 대문에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고,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킨다. 개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그저 짦은 시간 살아 숨쉬다 생을 마감하는 생물학적인 존재들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만드는 것이 삶이다. 만드는 과정이 삶이다. 만든 결과물은 아니다. 결과물은 영원하지 않다. 결과물이 세상에 선보인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무가치 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만들던 과정은 값지다.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시도가 가장 고상하고 고결한 가치를 가지는 일이다.

내 삶을 값지게 보내려고 한다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고 노력하는 시간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 무엇을 만들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만들지 생각해야 한다. 목적과 수단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하면 결과물은 만들어진다.

생각은 마음에 영향을 받는다. 아니, 지배를 받는다. 만들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각을 지속해야 하고, 올바른 생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지난 달에 꽤 대단한 것을 만든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멘탈이 반질반질한 사람” 마음의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 위한 생각, 올바른 생각으로 하루를 가득가득 채워왔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반질반질한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 사람을 완전히 알지 못하니 그 사람의 마음이 날 때부터 티가 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회복탄력성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서 인지는 모른다. 대체로 마음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래야 생각할 수 있고, 그래야 만들 수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불안, 비관, 불신, 비난, 부정, 염세, 허무의 마음이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긍정, 희망, 변화, 흥미, 발전, 개선, 칭찬, 격려, 감사, 만족, 자존의 마음이 넘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된다. 한양에만 도착한다면 불완전한 탈 것이어도 괜찮다. 애초에 완전하거나 불완전한 것은 없다. 인생은 항해이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일의 연속이다. 완전해 보이는 탈것이라도 시대가 변하면 불완전한 탈것이 된다. 탈것이 아닌 목적지를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