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기르는 게 아니라, 자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초연한 것이 아니라, 세속의 보편성에 얽매이지 않을 뿐이다. 묵언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말을 꺼버렸을 뿐이다.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뿐이다. 평온한 것이 아니라, 동요하지 않을 뿐이다. 겸손한 것이 아니라, 자만하지 않을 뿐이다. 신중한 것이 아니라, 경솔하지 않을 뿐이다. 유연한 것이 아니라, 완고하지 않을 뿐이다. 독립적인 […]

없음이 있고 있음은 없는 이 곳에선 고가소성과 고결합성을 요구하는 현대사회로부터 강요받았던 약동과 정동을 잠시 멈춘다 끊임없는 생성과 결합을 요구하는 도시 그 중심에 있는 요가원은 고장나버린 생산부품을 정비하고 도구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곳이 아닐까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 숨어도 완전한 사육장인 트루먼쇼 세트장 빨간약을 먹고 진실을 마주하려해도 토템없이 들어선 인셉션 이것이 돼지에게 틀어주는 클래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나 […]

근 3년 사이에 발생했던 사건 중, 오늘 아침의 인생 첫 요가는 가장 재밌는 사건이었다. 스노우보드를 처음 탔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스노우보드를 타기 위해 태어났다고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 복싱 도장을 한 달 쯤 다녔을 때에도 그런 느낌이 들었었고, 비트박스로 뽀꼬찌꼬 비트를 쪼갤 수 있게 되었을 무렵에도 그랬다. 내 인생이 나아가야 […]

우리는 언어를 기능적 도구로 여겨왔다. 소통의 수단으로, 개념을 담는 그릇으로, 경계를 구분하는 울타리로, 환영의 표상으로, 권력장악의 무기로, 문화감각의 자극제로, 실천파동의 증폭제로… 언어는 ‘문자언어와 음성언어로 나뉜다‘ 라는 좁은 설명에 담길 수 없고, 설명과 주석을 늘여 붙여도 장님이 코끼리 고루만지는 노력에 불과하다. 언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기 무섭게 언어는 그 경계를 탈주해 튀어 나갔으니, 기능적 도구라는 내 편협한 […]

언어는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결정한다. (는 사피어-워프 가설이 있다.) 시간에 대한 개념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시간을 좀체 인지하지 않거나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어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인식하기 위한 개념어로 인해 우리는 시간을 단절적이고 선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인식론적 관점은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는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게 […]

공급이 부족했을 때에는 필요에 의해 소비했다. 90년도에 접어들자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소비는 더이상 자연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자 하기에, 인위적으로 소비를 늘릴 방안을 강구했다. 광고 기법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제품이라고 주장해 보았다. 합리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라고 하니 현명하신 분들이 조금 더 사주셨다. 이 제품이 당신의 결핍과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며 이상적인 모습을 […]

천고가 족히 10미터는 되었던 것 같다. 전시에 참여했던 부스 업체들이 물밀듯 빠져나가자 바닥에는 전시패널들과 각종 쓰레기들이 나뒹굴었고 천장에는 지름 1미터 크기의 헬륨풍선이 붙어 있었다. 풍선을 준비한 부스는 여럿이었지만 대형 풍선을 준비한 곳은 분명 한 곳이었기에 범인을 특정해 전화로 문책하자 잘 안들린다며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겼다. 연기가 어설펐지만 민망함과 송구스러움은 묻어났기에 사과를 받은 셈 치고 […]

know what의 교육과정을 다 마칠때쯤 know where이 중요하다고 하더니 이젠 know what to know가 중요한 시대가 되어부렀다. 배움의 속도는 0으로 수렴하기에 what to know를 올바르게 인지하는 순간, 배움을 완료한 상태, 지식과 지혜가 반영된 시스템, 시스템을 통해 도출하는 결과까지 정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지식의 계보를 파악하고 올바른 셀프 맞춤 커리큘럼을 세우는 것은 빠른 학습속도보다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

남이 잘 된 이야기를 들으면 배가 아프다. 매출이 높다고, 이익이 크다고, 직원이 늘었다고, 투자를 받았다고 하면 배가 아프다. 다행히도 복통은 일시적이다. 타인의 행복에 배알이 꼴리는 반사적 반응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보양식을 공급한 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금새 낫는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부럽지가 않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 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

내려 놓았다. 도통 무엇을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느낌은 수 개월이 아니라 년 단위를 넘어섰다. 출근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데도 개선의 진척이 없으니 나는 방향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출근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자전거를 탔다. 동네에서 자전거를 제일 잘 타는 놈이 되었다. 출근자덕보다 무직자덕이 아무렴 잘 타야 했다. 일의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