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직업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광대한 산업 내에서 우리를 필요로하는 역할의 빈틈을 찾아냈다. 그 일을 43개월 동안 꾸준히 해오니, 어떤 일인지 조금 알 것 같다.
이젠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산업에서 지켜져야 할 표준이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믿을만한 파트너스 모여있어 제작업무 신임하니 고객응대 종일할수 있었다. 농담삼아 콜센터 돌린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연구소를 돌렸다. 기술은 없고 노가다만 할 줄 알아서 수천건의 거래를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사고 터지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다. 수천만원의 비용과 두어달의 시간이 허비되는 걸 눈뜨고 지켜보기 힘들어 오지랖이 발동했다. 온갖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구경하는 재미는 덤이다.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고객의 양은 세상 어떤 피디가 평생 겪을 수 없는 양이다. 경험이 경험으로만 그치지 않고 절차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광고계엔 이런 말이 있다.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 우리 회사엔 이런 말이 있다. “좋은 광고주는 내가 만든다” 우리가 찾아낸 표준 거래 절차로 산업의 비효율과 사고를 줄이고 있다. 표면적으론 그렇다. 실제론 의지를 심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좋은 광고주는 공통적으로 프로젝트 완수를 향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의지는 고유하거나 독립적이지 않다.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면 의지도 만들어질 수 있다. 앞으로 닥칠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프로젝트에 강한 의지를 심어 Deal Closing까지 이끌어내는 것이 이 일이다.
몇 사람들은 이 일을 하러 왔다가도 금새 떠났다. 진짜 콜센터로 생각하는 사람은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가장 처음 팀을 꾸렸던 권프로와 이프로만 남았다. 다시 둘이 되었는데 회사는 더 잘 돌아간다. 결국 이 일에 진심인 사람만 남았다. 권프로는 나를 위해서 일하는 건 아닐 것이다. 산업 내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두 명 짜리 회사면 뭐 어떤가. 물리적인 일터는 4평짜리 사무실이지만 실질적인 일터는 3000억의 산업이다.
매니저로 시작한 직함을 작년엔 코디네이터로 바꿨다. 이젠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바꾼다. 세어보니 권프로가 230건을 했고 이프로는 130건을 했다. 내가 만든 직업이라 앞에 수석을 붙이고 싶었지만, 양으로 밀리니 명분이 적다. 그냥 둘 다 컨설턴트 하기로 했다. 나 스스로 임명할 순 없어서 친정 식구에게 임명식을 도와달라 했다.
제가 알던 페달링을 다 써봐도 그 리듬감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제까지 전 다른 걸 외전근 페달링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나봐요? 실망스럽진 않아요. 오히려 좋은 소식이죠. 그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걸 깨우치게 되면 제 실력은 또 얼마나 성장할까요? 벌써 설렙니다.
강습이 끝난 뒤 한시간 더 탔습니다. 말씀해주신 힌트들을 의식할수록 어색해졌습니다. 몸이 박자감을 찾기보단 독립적으로 동작하는 느낌. 머리로 안 찾아지니 몸으로 찾아보려 했습니다. 눈을 감고도 하늘을 보고도 땅을 보고도 해보았습니다. 탈진한 상태라면 무의식적으로 찾아내지 않을까 싶어 서너번 털어보기도 했습니다.
이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비슷한 리듬을 찾은 것 같습니다.
힘의 타이밍. 제 몸의 느낌대로라면 무릎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왔을 때부터 짧게 스트로크를 쳐야 했습니다. 12-5는 정말 찰나의 순간입니다. ‘12시부터 5시까지만 힘을 줘’라는 코딩이 작동할만큼의 제 하드웨어는 좋지 않습니다. 명령어를 바꿔보았습니다. ‘12시에서 짧게 툭툭’ 더 잘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당기는 근육의 습관도 잠시나마 잊혀집니다.
힘의 시작점. 무릎의 위치. 제 습관대로의 페달링보다 무릎은 안으로 2~3cm 가량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외전근은 다리를 바깥으로 회전시킬 때 쓰이는 근육 너댓개를 묶어 부르는 것인데, 이름 그대로 바깥 회전이 일어나려면 시작점이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의 방향. 외전근은 무작정 바깥으로만 빼는 줄 알았는데 안으로 넣었다가 밖으로 밀어내듯 밟았습니다. 수직보다 5도 정도의 작은 차이였지만 몸 바깥쪽 근육이 많이 개입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릎의 시작점과 벡터의 방향만 정해두니 새끼발가락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습니다. 새끼발가락에 힘준다는 코딩도 안하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Q. 이게 제대로 찾은 것인지 그 리듬감만 비슷하게 흉내내기 위한 요령을 부린건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종일 외전근 시팅 리듬만 찾으려다 아무것도 못했다. 이걸 못하면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없단다. 별 지랄을 다 했다. 당기는 근육의 관여를 줄여보자고 클릿도 압수당했다.
선생님을 퇴근시키고 혼자 돌리자니 오늘은 다른 회원이 없다.
나 하나 때문에 사장님이 퇴근 못하시는 것 같아 챙겨 나왔다.
나왔다.
나오니 나왔다.
필드에 나오니 리듬이 나왔다.
안장 코가 사타구니를 치고 사타구니는 다시 안장을 튕겨내는 이 리듬.
이 리듬. 나 안다. 아는 수준도 아니고 잘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주 우수한 동작으로 우아하게 리듬에 변주까지 먹일 수 있다.
나 평생 이 리듬으로 타왔다. 세발자전거도 이렇게 탔던 것처럼 페달에 발만 올려도 이 리듬은 나온다.
평로라에서만 안 나온다.
당겨 올리는 페달링 연습 (학원 셋째 날)
■ 선생님 말씀
오늘은 당겨 올리는 것만 연습할 거에요. 직근이에요. 대퇴직근. 장요근과 대퇴직근으로 끄집어 올리세요.
프로 중에서도 직근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기량이 크게 차이납니다. 이게 필살기에요.
끝까지 끌어올려서 앞으로 밀어내는 것까지 얘 역할이에요. 뒤에서 앞으로 끌어 당기듯이 무릎으로 니킥 차듯이 당겨 올리세요.
■ 훈련 후 소감
당기는 근육 아예 쓰지 말란 사람도 있고 조금씩만 쓰란 사람도 있었는데 아니네? 오늘 두시간 동안 당기기만 했다.
고관절 주변 근육을 위주로 쓰니 무릎 주변 근육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무릎에 대미지도 없다.
선생님은 장요근과 복근이 당기면서 온몸이 웅크려지듯이 힘들거라 했는데 작년에 뺑뺑이 돌리면서 이 근육 자주 썻는지 몸에 전혀 무리 없고 너무 상쾌하다.
당기는 근육만으로는 평로라 시속 80 넘기기 힘들다. 케이던스도 높이기 어렵다. 그리고 다른 페달링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얘는 얘만의 타이밍이 따로 있는 것 같다.
■ 짬내서 던진 막간 질문에 대한 답변
장요근은 자주 쓰면 안 되는 줄 알고 가끔씩만 20번 스트로크 치고 말았다고 했더니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계속 쓰라 하셨다.
모든 근육은 수축하면서 힘을 낸다. 그래서 관절을 뻗는 것보다 관절을 굽히는 힘이 더 세다. 온 몸을 굽히면서 니킥으로 당기는 페달링은 가장 큰 파워를 단기간에 뽑아낼 수 있다.
최대심박측정방식은 계단을 뛰어오르는 때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니킥 댄싱으로 심박을 240까지 올렸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만큼 온 몸의 에너지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신호다.
3분 정도의 업힐 코스를 공략할 땐 밟는 페달링에서 당기는 페달링으로 점점 바꿔나가는 게 좋다. 큰 근육을 나중에 써서 마지막에 쥐어 짜는 것이 에너지를 모두 쏟아낼 수 있어 효율적이다.
평소에 훈련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당기는 페달링을 먼저 써서 밟는 페달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당기는 근육으로 젖산역치에 빠르게 다다른 후에 밟는 근육으로 지속지극을 주는 방식이다. 그렇다. 젖산역치 훈련이다.
■ 나의 상태 진단
당기는 페달링에선 파워밸런스 60:40 까지 커졌다. 오른다리에 비해 왼다리엔 자극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에 자주 사용한 것이다. 오른다리는 왼다리가 굴리는 페달링에 얹혀가듯 살아온지라 상사점에서 좌우로 흔들렸다.
왼쪽은 수직 직선운동이 이뤄지지만 오른다리는 11자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허벅지가 근육량이 적어 얇은데도 싯포스트에는 더 가깝게 붙어 있었다. 선생님은 골반이 열리지 않은 것이라 말했다. 오른 골반만 열어야 했으나 그것은 무릎의 위치만 바꾼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 처방
선생님도 이정도의 언밸런스는 본 적이 없다며 비장한 표정으로 이걸 고치는 게 가장 시급한 숙제라고 말씀해주셨다.
정 안 된다면 오른발에 스페이서를 넣자고 하셨다. 그럼 힘점을 더 이르게 줄 수 있어 근육의 개입을 조금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그 방법은 최후의 처방인데다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선택지라며 머리를 쥐어 뜯으셨다. (아… 선생님… 모발을 소중히…) 선생님의 모발건강을 위해 나는 이 숙제를 기필코 풀어야 한다.
외발페달링 훈련에 대해선 좋은 생각이 아니라 하셨다. 자세한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자전거는 몸이 대칭된 상태로 좌우가 번갈아가며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항상 말해왔던 사람이다.
우선의 처방으로 오른 골반만 살짝 뒤로 빼라고 했다. 골반을 뒤로 뺄수록 큰 근육을 사용하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골반을 살짝만 뒤튼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익숙한 자세를 지우는 의식을 지속하기도 어려웠다.
이윽고 골반을 틀어내는 요령을 찾았다. 왼손은 후드, 오른손은 바엔드를 잡았더니 어깨와 골반이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확실히 오른다리가 페달링에 개입을 많이 한다. 밸런스 수치도 53:47 까지 줄어든다. 당분간은 일반 주행 자세에서도 이렇게 뒤틀어 잡아 교정해볼 계획이다.
■ 선생님의 화법에 대해
선생님의 수업을 세 번 들어보니 참 완곡한 표현이 잦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저는 그렇게 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어요”는 경상도 선생님의 “시킨거나 똑바로 해라임마”에 맞먹는 피드백이다. “그래도 엄청 잘하고 있으신거에요.”는 경상도 말로 “이정도는 할 줄 알았다. 등신새끼야” 정도에 맞먹는 피드백이다. 서울살이 어언 10년. 나도 스윗한 서울남자의 표현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이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10점만점에 3점쯤 되는 것 같다. 박수를 열번 연속 치는 것은 5점 쯤 된다. 나는 평생 누가 나에게 박수를 열번 연속 쳐준 적이 거의 없다. 이 선생님이 나에게 쳐준 박수, 그 빠르고 경쾌한 박수소리를 들었을 땐 내가 자전거 천재인줄로 착각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이은호를 자전거학원에 수강하게 만든다.
박수는 생각보다 자주 터져나왔다.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50대 아저씨가 한 손을 놓아 물통을 꺼내 마시고 다시 꽂아넣는 것을 성공했을 때에도 박수를 열번 쳐주셨다. 같이온 다른 아저씨가 양손을 놓고 셀카를 찍었을 땐 스무번 쳐주셨다.
아… 이분은 서비스 마인드가 아주 훌륭하신 분이구나… 이분 자전거 안타고 장사 하셨으면 뭘 팔아도 꽤 많이 파셨을 것 같다.
채우려면 비우라 (학원 넷째 날)
난 몸이 나빠서 머리가 고생하는 타입. 그런데 머리가 좋지도 않음. 혼자 주법연구하고 유튜브보면서 배운 게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음. 소프트웨어가 엉망진창인 상태. 명령어들이 충돌을 일으키고 새로운 명령어는 실행되지도 않음.
나는 제대로 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 찍어보면 전혀 다르게 타고 있음. 성립하지 않는 주법도 많고 비효율적인 주법을 몸에 익혀버린 탓에 결론적 연비가 나빠졌음.
다 버려야 함. 주법 많은 거 다 필요없음. 이소룡은 만가지 발차기를 연습한 놈은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했음. 그런데 한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무섭다고 했음.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 함. 주법을 다양하게 구사할수록 조빱이란 게 쉽게 들통날 뿐. 다 버려도 됨. 만가지 주법 다 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음.
망치를 들어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야 함. 고통과 위험을 스스로 받아들여 극복하는 자-초인-이 되기 위해.
——— 기타학원에서(어렸을 때 호호깔깔 유모어집에서 읽은 구절) ———
기타 강습료가 얼마인가요?
> 십만원입니다.
저… 다른 곳에서 배운 적이 있는데 강습료를 절반으로 깍아주실 수 있나요?
> 그렇다면 이십만원입니다.
깍아주진 못할 망정 왜 두배가 돼요?
> 다른 곳에서 배우셨다면 잘못된 습관이 들어있을거에요. 잘못된 습관을 지우는 건 백지 상태인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두배로 어렵습니다. 그러니 두배로 내셔야지요.
————————————————————————————————
스스로 백지의 상태가 되지 않으면 선생님은 올바른 가르침을 입력할 수 없음. 백지가 되지 않으면 수강료를 두배로 청구받게 될지도 모름. 이를 악물고 지워내야 함.
차사장님의 가르침, 친구의 훈수, 나름대로의 연구, 자덕유튜버의 자기주장, 다른 프로 선수의 설명, GCN콘텐츠, 이 모든 것을 버린다. 옳은거 틀린거 가리지 않고 모두 통째로 내다 버린다.
1. 모두 지운다.
2. 선생님이 “바로 그거에요” 라고 한 것만 남긴다.
3. 반복한다. 몸에 새긴다. 머리말고 몸에 새긴다. 머리로 이해하고 싶어지면 당장 생각을 멈춘다. 동작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잘못된 습관을 덮어버릴 정도로 반복한다. 백지의 상태에서 학습하는 것보다 최소 다섯 배는 많이 반복해야 할 것.
…. 라는 각오로 학원에 갔는데
더이상 가르칠 게 없다며
평로라 거꾸로 타보라고 시키심
거꾸로 타지니까
댄싱까지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댄싱을 또 시키심
댄싱이 되니까
제일 가벼운 기어로 케이던스 50놓고 손놓고 타보라는
말도 안되는 서커스를 숙제로 내주심 ㅡㅡ;;;
종일 서커스 연습을 하다가 어느덧 열시가 되었고
여느날처럼 가파른 지하주차장 언덕을 오르는데
아니 이거 뭐야
왜 자전거가 저절로 올라가지
이상하다 싶어서 또 평지를 달리는데
어라 이상하다
자전거가 가만히 서있네
어허 거참 이상하다
자전거가 저절로 서서 가네
난 얹혀만 있고 얘가 자율주행을 하네
밸런스 미쳐따리 오져따리
우리는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시대에는 올바른 정보를 분간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자전거 피팅에 대한 정보는 식품, 금융에 이어서 3번째로 쓰레기정보가 넘쳐나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진짜 정보는 찾기 더욱 어려워진다.
피팅에 관해서도 여러 계파가 있다. 첫째, 절대피팅신봉자 혹은 만사피팅해결주의자다. 이들의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어서 한마디 질문만 되물어도 자신의 모순에 스스로 막혀 벙어리가 된다. 그건 그저 광신이 아닌가 싶다. 둘째, 산업이다. 만사피팅해결주의자를 만드는 것이 산업이다. 산업이라 함은 생산자와 유통자를 함께 일컫는다. 이들은 모든 대화를 구입 혹은 교체로 귀결시킨다. 나는 의도를 전제에 깔고 접근하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결론이 바뀌지 않을 거라면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셋째, 신체해부학주의자도 있는데 이들은 불필요할 정도로 전문적인 지식으로 오히려 편협하게 신체의 사이즈에만 집중한다. 필드에서의 라이딩을 고려하지 않은 물리치료사에게 조언을 듣고 싶진 않다. 피팅 가격은 또 제일 비싸요. 넷째, 프로선수들이다. 이들이 피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입장은 대부분 비슷하다. 각자의 주장이 서로의 주장을 보완하고 뒷받침한다. 그들의 주장엔 이론적 배경과 근거가 뒤따른다. 실제로 자신의 몸 혹은 동료의 몸에 실험했던 경험까지 있다. 처방은 절대적이지 않고 융통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는 것보다 많이 들었다. 피팅에 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filter-in 시킬 정보는 네 번째 부류의 것이다.
나는 자전거의 세팅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피팅’이라고 검색하면 자전거 세팅에 관련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각 파츠의 위치나 신체관절의 각도를 맞추는 건 시간만 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정확하진 않더라도 아주 모자라지도 않다. 하지만 그건 피팅이 아닌 세팅이다. 나는 세팅을 넘어선 피팅을 원한다. 내가 신청한 피팅이 세팅에 그칠까봐 난 그동안 피팅을 받지 않았다.
오늘 아이윌사이클링을 찾은 것도 세팅을 넘어선 피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팅을 넘어선 무릎통증의 근본적인 문제해결까지도 기대했다. 무릎통증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이론과 경험을 쌓기엔 충분한 시간이 없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시행착오를 감당하기엔 건강에 위협이 가해질 우려가 있었다. 본격적인 시즌온에 앞서 오늘 딱 한시간만 써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박프로님과 나는 한시간 동안 신나게 웃고 떠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박수를 쳤다.
세팅을 넘어선, 피팅을 넘어선, 통증해결을 넘어선, 라이딩코칭까지 받고 왔다. 자전거 세상의 새로운 차원을 발견했다.
들은 것, 해결한 것, 느낀 것 등, 내가 이해한 만큼만 나의 언어로 다시 써본다.
개요
자전거의 목적은 적은 힘으로 / 더 빠르게 / 더 멀리 가는 것이다.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을 “주행효율”이라 부른다. 주행효율은 종합적인 결과다. 주행효율을 높이는 데에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 심폐능력, 근력, 근지구력, 페달링효율 등이다. 이런 요인들을 향상시키면 실력은 몇 배로 향상시킬 수 있다. 신체적인 것 이외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있지만 크지 않다. 기재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향상시킬 수 있는 주행효율은 기껏해봐야 5% 내외다.
클릿과 페달
모든 피팅의 시작은 신발과 클릿에서 시작한다. 다른 지점을 잡아놔도 클릿이 조금만 변해도 모든 것이 틀어진다. 그래서 클릿부터 잡아야 한다.
Q. 오다리다. 큐팩터에 영향을 미치는가? >> 큰 영향 없다.
Q. 일단 큐팩터는 최대한 넓혀 놓았다. 그리고 발목을 사용하지 않도록 클릿은 약간 뒤로 위치시켰다. >> 잘했다. 큐팩터 최대한 넓혀두자. 이 신발은 엘리트들이 신는 신발이다. 바깥으로 웻지도 들어가있다. 다른 신발보다 1도 이상 세워져 있다. 엄청 큰 차이다. 그리고 클릿의 중앙점 위치가 다른 신발보다 절반가량 앞에 있다. 중간에 맞춰도 다른 신발 최대한 앞에 있는 것과 같은 위치인 것이다.
Q. 발볼 기준으로 맞추라는 식으로 절대공식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지금과 같은 요인들을 고려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맞다. 신발마다 이렇게 차이가 큰데 클릿의 위치를 발 기준으로 잡을 수 없다. 그런 주장을 만든 사람은 한가지 신발만으로 테스트 했을 거다.
와트바이크
왼발이 더 강하다. 55%. 당기는 힘에는 차이가 없다. 밟는 힘에서만 차이가 난다. 이 차이는 토크형 주행으로 바꾸면 줄어든다. 토크형이 익숙한 것이다. 익숙하고 좋은 수치가 나오는 주법을 우선으로 세팅해야 한다.
프레임, 피팅, 신체 특이성
프레임은 두 치수 작은 걸 타고 있다. 원래라면 피팅 자체가 안 될 정도다. 종아리가 긴 편이라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비율이다. 이런 비율은 자주 보지 못했다. (립서비스였던 것 같다.) 이런 비율이라면 피팅을 폭넓게 소화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밟는 힘점이 다운튜브부터 시작되지 못한다. 안장을 조금 더 뒤로 빼서 큰 근육을 사용하게 만들어보자.
>> 나중에 프레임을 교체하게 된다면 이탈리아나 미국 브랜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싯튜브 각도가 세워진 편이라서 안 맞을 것이다.
>> 핸들바는 리치가 짧은 게 좋겠다.
>> 안장 높이는 5mm 낮추긴 하지만 코스에 따라 조정하면서 타시라.
호흡
작년의 호흡 왼(후)오왼오왼(후)오왼오왼(후)로 탔다. 왼발을 밟을 때 호흡을 맞추던 습관이 있어서 왼다리에만 무리가 갔고 왼다리만 성장했다. 이후 왼(후)오왼오(후)왼오왼(후)오왼오(후)로 바꿨다.
>> 페달링 타이밍에 호흡을 맞추면 편하긴 할텐데 좋은 방법은 아니다. 자주 쓰진 마라. 근력의 한계에 심폐능력이 갇히거나 반대로 심폐능력의 한계에 근력의 한계가 갇힐 수 있다. 산소를 충분히 흡입해야 젖산역치가 늦게 온다. 그리고 에너지로 전환한다. 뱉는 데에 집중해라. 뱉으면 들이쉬는 것은 자동이다.
>> 페달 몇 바퀴 돌릴 동안 천천히 4~5초 길게 다 뱉어라. 후~~~~~~ 길게 뱉어 줘라. 그럼 페달링과 호흡의 박자가 깨지게 된다. 지금 당장은 이 방식이 도움 될 거다.
무릎 통증
>> 관절이 아프다는 것은 관절에 연결된 수많은 근육에 의한 것이다.
나쁜 페달링 습관 교정
오른 다리가 올라올 때 안으로 모이는 습관 >> 외전근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케이던스 페달링을 할 때 발을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습관(노후된 스피드플레이 수평유격 없애려던 습관) >>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밀어 밟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 발가락에만 집중하면 모든 것은 맞춰진다.
오른 발꿈치가 많이 내려가며 발목이 꺽이는 습관 >> 안장을 뒤로 빼고 토크형 외전근 주법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상사점이 너무 이르고 하사점이 너무 늦어서 오른다리 페달링 중 무릎이 꺽여버리는 현상 >> 돌리는 걸 의식해서 그렇다.
내전근과 외전근
근전환을 하지 않으면 한가지 근육만 사용해야 한다. 한 가지 근육으로는 성장할 수 있는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무리가 온다. 그래서 절대 피팅은 없는 것이다. 근육의 효율, 페달링의 효율을 높일 수 있으려면 한 자전거 위에서도 다양한 주법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자세가 좋고, 이 각도여야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는 꼴이다.
클릿을 딛고 섰을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딛으면 무릎이 모이고 무릎 안 쪽의 내전근이 자극된다. 새끼발가락에 힘을 주고 딛으면 무릎이 벌어지고 바깥 쪽 외전근이 자극된다. 중간에 힘을 주면 대퇴직근 전체가 자극된다.
토크형주법에서는 5 : 2 : 3의 비율로 근육을 전환시키는 것이 좋다. 외전근을 많이 쓰는 것이다. 케던형 주법에서는 3 : 2 : 5의 비율이 좋다. 내전근을 더 많이 쓰는 것이다.
코어와 다리근육
전면코어는 앞에 보이는 복근이다. 안장 앞에 앉아서 움추리듯 자세를 취하면 자연스럽게 전면코어에 힘이 들어간다. 보디빌더 복근자랑 포즈처럼. 이 때의 페달링은 내전근위주로 당겨서 굴러가듯 이뤄진다. 다리와 복근을 이어주는 장요근이 페달링에 쓰이게 된다.
후면코어는 스쿼트 근육이다. 스쿼트 하는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외전근을 주로 사용한다. 가장 큰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기간 지속시킬 수 있다.
페달링과 근육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폼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자세를 찾아야 했다. 그 자세는 이미 몸이 알고 있었다. 몸이 아는 자세를 지워버리고 몸에 맞지 않는 자세로 타려고 했다. 그러니 2년을 타도 북악 기록을 겨우 1분 30초 밖에 못 줄인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탔던 그 때,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주행했다.
굴려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의식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안장 뒤에 앉아 후면코어를 사용하고 스쿼트하듯이 밀어내는 데 집중하면 큰 근육으로 12시부터 5시까지 힘을 줄 수 있다. 앞으로 당겨 앉으면 자연스럽게 밀어 밟는 구간은 줄어들고 작은 근육들로 당겨서 굴리는 페달링이 된다.
당기는 근육은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들이고 크기도 작기 때문에 오랫동안 무리하면 안 된다. 오금에 부상을 입으면 회복도 어렵다.
안장의 위치를 바꾸고 발의 어느 부분에 힘을 주는지만 생각하면 근육의 사용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발목도 더 이상 접히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보통 토크형이 많다. 토크형이라고 토크만 타는 건 아니다. 비율의 조정이다. 토크형으로 70%를 타고 30%를 케이던스로 타라. 고속주행을 하거나 경사가 높은 업힐에서 케이던스형을 사용해 공력한다. 맞바람이나 약업힐, 장거리 주행에 토크형을 사용한다.
토크형 주법에서는 새끼발가락에 힘을 주고 외전근을 사용한다. 무릎바깥에서 골반 바깥으로 이어지는 근육에 무리가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을 주동근으로 쓴다. 이때 당기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미는 데에만 집중하면 몸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찾는다. 바깥쪽 근육을 쓰기 때문에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린다. 자연스러운 리듬이다. 바닥에서 샤카샤카 파워전달되는 소리가 기분좋게 들린다.
걱정과 우려가 사라졌다. 더 자신감 있게 밟을 수 있게 되었다. 더 강한 부하를 신체에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더 강한 운동강도는 더 큰 성장을 견인할 것이다. 더 큰 성장을 이루면 5월엔 4.0watt/kg 가능할 것인가?
롤토체스에 빠져버렸다. 협곡엔 재능이 없고 체스를 좋아하던 사람도 아니었다. 롤토체스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나는 지난 6개월 간 롤토를 500판을 넘게 한 것 같다.
게임을 플레이한 시간을 말할 때마다 인생을 허비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괜히 나는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었다고 강조한다. 이런 내 얘기를 듣던 상대방은 괜한 부연설명에 적잖이 당황해한다. 그럼 나는 더욱 변명처럼 들리는 구체적 설명을 덧붙인다. 단순히 게임이 재밌어서 추천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 인생을 그만큼 할애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만큼 값어치가 있다고 설명을 한다.
구차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게임에 대한 태도가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게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나는 아직 혼란스럽다. 인간은 생산을 해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게임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시간을 생산에 쓰지 않고 게임에 썼다는 것에 죄책감이 생기는 것이고, 지레 제발저려 생산에 도움이 된다고 변명을 해대는 것이다.
롤토는 생산적인 게임일까. 게임이기에 생산적일리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생산의 원리를 알려주었다.
시즌 2가 시즌 1보다 랭크가 올라갈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공부도 하고 유튜브도 많이 본 것도 분명 도움이 되었겠지만, 게임을 학습하는 나만의 방법을 시도했다는 데에 의의를 둔다.
그러니까 나는 게임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고도 플레1밖에 못 갔으니 그냥 아주 게임상병신이다.
단계 1 –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는 멍청이
멍청이의 상태로 게임을 했다. 라운드 준비시간 30초 동안 아무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멍하니 감상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르는갑다. 싸우면 싸우는갑다. 이기면 와 이겼다 좋아하고, 지면 아 졌구나 안타까워한다. 이기는 것과 지는 것에 대해 내가 관여하지 않고 관람만 한 것이다. 그래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는 있었다. 그러다가 시너지를 맞추고 챔프를 고르고 아이템 계획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뇌는 정지했다. 창고는 항상 꽉 채웠다. 왜냐면 계획이 없으니까. 뜨는대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선택을 하지도 못한 채로 수많은 패배만 맛보았다. (다른 아이디로) 100판 할 때까지는 실버 이상 오르지 못했던 것 같다.
단계 2 – 뭐라도 일단 정리하기 시작
하루는 잠이 안 오는 것이다. 롤토의 챔프들이 막 머릿속에서 시너지가 맞춰지느라. 그래서 폰에 적기 시작했다. 얘랑 얘랑 같이 들어오면 시너지가 어떻게 나올지를 계산했다. 며칠을 이 짓을 반복하니 시너지를 다 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구글닥스를 하나 켜서 이것들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양이 많아지자 쓸 수가 없게 되었다. 게임에 임하기 전에 내가 어떤 덱과 전략을 사용할지 정해야 하는데, 여전히 게임의 진행에 내가 반응하듯이 하려니까 이런 아카이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임을 진행하는 급박한 시간흐름 속에서 다른 도구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오픈북 테스트여도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뿐더러 책 내용도 엉망인 것이다.
그래도 노트를 정리하는 데에 나름 몇 가지 규칙은 있다. 모든 챔프의 이름을 두글자로 줄여서 적는다. 내가 쓰는 것도 쉽지만 읽는 것도 쉽다. 가독성과 직관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lolchess.gg의 시뮬레이터로 조합을 만들어서 아카이빙해보았다. 오히려 더욱 보기 힘들었다.
단계 3 – 경험의 축적
바둑기사가 대국을 끝낸 뒤 복기를 하듯, 이 게임 또한 복기될 수 있다. 복기노트를 만들었다. 게임의 진행경과를 파악할 수 있도록 간단한 항목들을 기입하고, 무엇을 배웠는지 적는다. 너무 주절대거나 결론이 없으면 안된다. 복기의 과정을 어떻게 거치든 간결한 1줄 교훈으로 최종 정제한다.
교훈 중에는 너무 당연하고 기본적인 rule도 있었다. 이것마저 모른채로 게임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기를 하고 나서야 이런 기초적인 내용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란 놈에겐 정말 직관이란 게 없는걸까?
> 갖춰진 시너지 중에 약한 시너지가 있다면 버려라.
> 시너지에 집착해서 2성작을 등한시하지 마라
> 롤토는 강해지는 게임이지 시너지를 맞추는 게임이 아니다.
그리고 몇 교훈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알려주는 듯한 명언처럼 나왔는데 꽤 마음에 든다.
> 이기고 싶다면 매드무비를 꿈꾸지 마라.
> 가지기 위해선 비워라
> 더 유동적으로, 더 융통성있게
> 계획이 없다면 지금의 최선만 생각해라.
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나는 롤토체스가 어떤 게임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복기할 내용이 너무 많다보니 부담스럽고 몇 판은 빠트리게 되었다. 그래서 양식을 간소화시켰다. 기록만 남기는 데에 집중하고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다른 곳에 적기로 했다. LOG를 검토하고 정리하는 것은 게임이 끝나고 여유가 있을 때 몰아서 하면 되니까.
단계 4 – 나만의 시너지북 만들기
내가 직접 전략을 개발하는 것보다 세계적인 랭커들이 개발한 전략이 더 강하고 승률도 높았지만, 왠지 남이 개발한 것을 베껴 쓰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난 실력을 키우고 싶은데 컨닝만 하고 있는 느낌이란 말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던 것 같다. 유튜버들이 새로 발견한 덱을 소개할 때면 3~4명의 덱이 겹치는 판도 허다했다. 게임을 꼭 승리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인가. 나는 배움의 과정이 즐겁다는 뜻을 나이를 먹을수록 이해하게 된다.
롤토를 배워가면서 가장 재밌었던 때가 이 때다. 시너지북을 만들 때. 롤체지지 족보를 그대로 가져와서 구글닥스에 옮겼다. 그리고 Ctrl+C,V를 통해서 카드 형태의 시너지 묶음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조합을 개발하고 연구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그나마 쓸만했던 재밌게 연구했던 덱이 깔끔세나덱과 시너지천국덱(지옥타일한정)이다. 강하고 완벽한 덱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덱이 엄청 좋았으면 나도 꿀빨아서 랭크가 더 올라갔겠지.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의 랭크 위치도 아니오, 이번 게임의 승패도 아니다. 게임이라는 비생산적 행위를 하면서도 생산적인 결과물을 냈다는 뿌듯함에 도취되어 있는데 더이상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단계 5 – 아이템
시너지를 한참 연구하고나니 시너지로 게임의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코스트 유닛이 얼마나 많은지, 2성작이 얼마나 되었는지, 아이템이 적절히 사용되었는지의 요인들도 중요했다. 중요함을 비교하자면 일반적으로 시너지가 가장 덜 중요하고 아이템이 제일 중요했다. 시너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아이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롤체지지 시뮬레이터에 들어가서 챔프마다 가장 효율이 좋은 아이템을 다 끼워넣은 뒤에 캡쳐해서 저장해두었다. 그리고 아이템들간의 시너지도 중요했기 때문에 아이템의 조합을 미리 묶어보는 시도도 해보았다.
단계 6 – 몰빵형 설계
위 과정을 거치면서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덱 전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떤 덱으로 갈지는 아이템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챔프도 시너지도 바꿀 수 있는데 아이템은 못 바꾸기 때문이다.
시너지는 시너지일 뿐 조합이 아니다. 조합이라 함은 싸움을 더 잘하는 팀이 좋은 조합인 것이다. 그래서 시너지 정보는 제거해버렸다.
연구를 마치며
게임은 너무 어렵다. 나는 게임을 너무 못한다.
이렇게 열심히 하고도 플레1밖에 못 갔으니 그냥 아주 게임상병신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롤토는 너무 재밌다. 히히
연구의 결론은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는 데에 다다랐다. 위에 연구한 것들 외에도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너무 많다.연구 과정을 통해 시도되었던 보조도구들은 게임에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 그리고 머리를 써야 하는데 두뇌 밖에 있는 보조도구로 게임을 하려 하니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두뇌 밖에 있는 어떤 보조도구에 의존하려는 태도부터가 잘못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 구글닥스에 안 들어간다. 복기도 안한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싶지 않다. 다시 멍청이의 상태로 게임을 할 때도 있다. 그것도 뭐 나름 재밌다. 유행하는 덱을 따라해도 재밌고, 자다가 생각난 나만의 전략을 실험하다가 쓰디쓴 패배를 맛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게임이니까 재미가 있고 재미있으려고 게임을 한다.
이야기의 끝을 재미가 아닌 생산으로 맺어보자면 ;
난 이 연구 과정을 통해 여러 연구 방법을 익혔다. 복기를 한다거나, 설계의 방법론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은 게임이 아닌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프로젝트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강력한 기술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뿐더러 강한 확신이 있다.
IT 스타트업 생태계 언저리에 몇 년 기웃거렸지만, 나는 코드 한 줄도 못 쓰는 사람이다. 정보처리기술이 없다는 것에 대해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엑셀을 중급 수준으로 할 수 있었고, 워드프레스로 웹사이트를 몇 개 만들어본 게 전부인 상태였다. 구글은 지난달 GDSS(Google Docs Spread Sheet)를 통해 앱을 만들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클라우드-엑셀을 넘어서, 누구나 응용하면 정보처리엔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사용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나에겐 두번째 사업인 비드폴리오를 운영하면서, 아웃풋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대신 인풋을 몇 배나 더 줄이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잡았다. 초경량 린스타트업의 태도를 지향한 것은 나의 일습관이나 비용절감에 대한 집착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시장규모가 나오지 않는 환경이 더욱 근본적인 이유다. 버티컬 중개 플랫폼의 경우, 적은 자원으로 사업체를 궤도에 올려야 하는데, 적은 자원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런 시스템이 없던 2개월차, 밤낮없이 일을 해도 동시관리 프로젝트 5건 넘기기 힘들었다. 지금은 매니저 1인당 동시응대 가능수량이 40건까지 올라갔으니 생산성이 최소 8배 이상 증가했다고 가늠할 수 있겠다. 임시방편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GDSS는 저렴한 비용과 관리효율성 측면에서 아주 만족스럽다.
물론 더 고도화된 시스템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요리를 못하는 사장님이 식당을 운영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개발자가 1명이라도 있으면 적자가 날 정도로 매출규모가 적은 상황인데, 그 인원의 공백이 생겼을 때 무거운 시스템을 내가 다룰 수 없다면 사업이 위태해지기 때문이다. 어설프지만 사업운영에 필요한 핵심자원을 내재화했다는 데에서 안심이 된다.
근본없는 시스템을 공개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정리하는 이유는 우선 나를 위해서다. 얼마 전부터 생산성 증대의 정체기가 왔는데, 개선의 여지를 파악하고 싶다. 또 혹여나 GDSS를 유사한 방식으로 응용해 정보처리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이 있다면 연결되어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구글닥스로 고객응대 처리시스템 구축하기
비드폴리오 최초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에는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고, 광고를 게시하자마자 30분만에 고객의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이 전화를 한 이유는 나에게 연락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객의 정보를 더 수월하게,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form을 만들어 삽입했다. form 서비스 중에서 손에 가장 손에 익었던 Google form을 4개월 정도 사용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찾다가 form서비스의 시조새 격인 wufoo를 구입했다. 하지만 서베이몽키로 인수된 이후 몇 년째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었고 실망이 너무 커서 환불 받았다. 워드프레스 플러그인으로 연동되는 form 중에서 Caldera Form을 선택해 적용했다. Caldera Form은 TOP5에도 못 드는 비주류 폼이지만 내가 필요한 기능들을 가장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
고객이 자신의 정보를 제출하는 방법은 총 7가지다. 전화, 이메일, 채널톡, Form 4가지다. (채널톡은 섬세한 설정 없이 채팅창만 열어두는 것은 오히려 비정형 대화로 유도하는 격이기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채널로 들어온 고객의 DB를 모두 개별적으로 관리하기는 힘들었다. 일부는 고객이 직접 제출한 정보인 RawData가 있었지만, 전화나 이메일로 받은 고객은 매니저가 직접 입력해야 했다. 때문에 통합적인 고객DB인 CDB(Client Data Base)시트를 만들었다. 고객이 직접 제출한 정보가 자동으로 연동되진 않고 매니저가 일일이 옮겨야 한다. DB를 직접 입력하고 만져야 하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정상적인 데이터베이스라면 입력기와 뷰어가 별도로 있어야 할 것이다.
RAW DB가 CDB로 바로 연동되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두 정보는 어차피 분절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직접 제출한 정보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며, 그 정보만으로 거래를 진행시킬 수도 없다. 때문에 전담 매니저가 개입하고 판단해 고객의 프로젝트를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특성이 있다. 고객이 최초에 제출한 정보는 고객의 주문사항이 아니라, 고객을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로 여겨진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정의해내는 것은 결국 전담 매니저의 몫으로 남는다. 때문에 CDB는 단순히 통합Intergrated되었다는 의미보다는 정제Refined되었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정제된 고객의 정보를 관리하는 CDB의 최초 버전에는 고객의 컨택포인트와 2~3칸의 노트만 있었다. 어떤 종류의 정보를 받고, 기록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고객이 수십명을 넘어가자 관리가 힘들었다. 그 고객이 어떤 상태이고, 어느 매니저가 배정되었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고객의 상태를 분류했다. [응대중/전형중/제작중/완료/취소] 5가지 색상의 약속을 정하고 상태가 바뀔 때마다 다시 바꿔 칠했다. 색상표시가 안 되어 있으면 찾아내기 힘들었으나, 색상을 일일이 표기하는 것은 번거로우며 휴먼에러도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조건부서식으로 상태표기숫자에 따라 해당 행이 자동으로 색상이 적용되게 설정했다. 고객상태 분류 방법은 총 9가지로 늘어났다가, 13가지로 늘어났다가, 지금은 16종류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늘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CDB시트의 칼럼 종류는 [정보취득창구/담당매니저/방문목적/고객입력정보/응대방향/공고제목/공고경로/비밀번호/적합제작사대상] 등 추가하며 사용하고 있다. 입력기와 뷰어가 별도로 없는 상황에서 데이터베이스를 직접 확인하고 입력하고 있다 보니 칼럼 종류가 너무 많아지면 매니저의 업무 직관성에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고객을 응대한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집중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과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메일로 주고받았던 내용들만이라도 우선 표준화시켜야 했다. 매일 메일을 작성하는 데 3시간을 넘게 들였기 때문이다. 이전 고객에게 제공한 고객 경험을 미래 고객에게도 재사용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 고객의 상황이나 상태를 분류해야 했다. 고객을 응대한 경험이 100회를 넘어가자 중요하거나 자주 쓰였던 메일을 한 곳에 모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아카이브에 접속하면 유사한 메일을 작성할 때 참고할 수 있었으므로 일을 조금 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각 단계마다 메일의 템플릿을 만들어 특정 부분만 변경해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보냈던 이메일을 쌓아두었던 시트는 FUW(Frequently Used Wordings)라고 이름을 붙였다. 처음에는 작성하는 데 3시간씩 걸렸던 메일도 10분만에 베껴쓸 수 있게 되었다. 메일의 템플릿이 규격화되고, 고객마다의 정보를 특정위치에 입력하는 과정을 로봇처럼 반복하다보니, 문득 이 과정을 기계에게 위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성하는 내용중 매번 들어가는 공통요소가 있었고, 변경이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는 위치 또한 항상 일정했기 때문이다. 고객의 정보를 고정적인 위치에서 불러낼 수 있으면 메일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어 보였다.
이것이 작동되기 위해서는 고객의 정보를 CDB에서 불러낼 수 있어야 했다. 고객의 정보가 300개를 넘어갈 즈음이었다. 고객 마다의 고유 번호는 입력된 순서대로 매겨져 있었지만, 이를 ProjectCode를 부여하기로 했다. 컴퓨터가 고유의 Data를 구분할 수 있으면서, 사람이 보더라도 간략하게나마 직관적으로 코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년월일6자리에 고유번호2자리를 붙이기로 약속을 정했다. 19052703은 19년 월 27일 3번째로 들어온 프로젝트를 칭하는 식이다.
이제 FUW에서 ProjectCode만 입력하면 십수개의 이메일이 자동 생성되고, 그 중에서 골라서 발송하면 된다. GDSS에서 제공되는 부가기능인 Mail Sender를 사용하면 Gmail로 가지 않고도 바로 발송시킬 수 있지만 상황별로 메일의 종류가 80개를 넘어가는 경우엔 큰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나는 사용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도움없이 중개를 하던 과정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웠던 것은 미팅일정을 조율하는 일이었다. 한 번 작성하는 데에 최소 30분씩 걸렸고, 미팅시간이 잘못 조율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려 발송 전에 2번씩 체크하느라 정신이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뿐만 아니라 정신노동의 부담을 덜어내는 것이 과제였다. 미팅일정 안내메일 생성기가 작동하려면 파트너스의 정보도 단번에 불러들일 수 있어야 했다.
파트너스의 Code는 숫자가 아닌 닉네임을 부여하기로 했다. 주식시장의 기업코드의 형태로 할지, 중복이 없이 이메일로 할지 고려했으나, 모두 직관성이 떨어졌다. 매니저가 Code를 외우거나, 조회하는 별도의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부르는 구어로 닉네임을 쓰기로 했다. 닉네임은 회사이름을 단순화시킨 것인데 [무조건 한글로 적을것, 띄어쓰기는 없앨 것, ㈜없이, ‘프로덕션’이나 ‘스튜디오’는 제외]의 약속을 지켜 입에 잘 붙는 것으로 정했다.
GDSS로 만들어진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유지보수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고객에 대한 데이터규격이나 파트너스 평가기준을 업데이트하는 일은 일반적인 개발팀에서는 주 단위의 작업이 요구될 것이다. 나도 연동된 시트들이 늘어날수록 주요 구조 변경에 따른 부가작업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여전히 계획만 확실하다면 반나절만에 리팩토링을 끝낼 수 있다.
파트너스의 정보도 처음에는 구글form으로 받았다. 서비스 공급자인 파트너스가 제출한 정보 또한 거래중개에 바로 쓸 수가 없다. 온라인 상에서 심사를 강화하거나 form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도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일을 받고 싶은 공급자 입장에서는 무조건 자신들이 잘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중개 플랫폼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려는 공급자가 너무 많은 탓에 정보보다는 노이즈가 더 많았다. 노이즈를 제거하는 일은 받은 정보와 기록하는 정보의 분절로 해결한다. 모든 파트너스는 방문심사를 거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파트너스의 DB를 정제Refined해서 관리하게 되었다. 중개자는 단순히 연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검증과 심사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정제된 파트너스 정보에는 파악, 분류, 평가, 심사, 활동기록 등 여러 가지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세부 항목들을 따지면 40가지가 넘는다. 처음에는 제작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위주로 측정했다. 지금은 제작실력은 3가지 항목으로 줄여버렸고 사업안정성과 서비스가치제안능력 등 고객만족요인에 더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 과정은 내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고, 할 일도 많았으며, 복잡했다. 지금까지 7차 업데이트가 이뤄졌다. 시스템 구현의 문제도 있었지만 내 주관적 평가가 개입되는 문제도 있었다. 인문대학원을 나온 친구에게 사회조사방법론을 1일 과외받고 객관적 지표를 만드는 법을 흉내냈다.
서비스 공급자를 평가하는 과정은 네 단계에 걸쳐 개선되었다. 처음에는 각 제작사의 사무실을 방문해 백지의 노트에 대화내용을 기록해나갔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필수 질문을 몇 가지 만들어서 공통적으로 활용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필수 질문과 선택적 질문을 구분해서 대화가 풍부해지도록 유도했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실시간으로 파트너스를 평가할 수 있도록 Refiner를 만들었다.
좌측의 리파이너에 입력하면 Refined DB의 데이터 순서와 일치된 data set이 생성된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긴 일이지만, 최초 제출된 RawDB가 관리되지 않고 소실되던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Caldera Form의 Processor기능을 활용해 GDSS의 특정 시트로 데이터를 누적시킬 수 있었다. 이전의 방법대로라면 웹사이트 상에서 제출된 고객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워드프레스관리자 > form플러그인설정 > form선택 > 데이터확인] 과정을 거쳐야했기에 시간과 단계가 오래 걸렸는데 클릭을 몇 번이라도 더 줄였다. Caldea Form은 한국어를 인식하지 못하는지 데이터를 엑셀에서 불러들이면 깨지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GDSS에 직접 연동하자 해당 문제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form에 정보가 입력되는 순간, 관리자에게 메일을 자동으로 발송하는 기능도 설정했다. 덕분에 Gmail의 검색창으로 고객 정보를 조회할 수 있었다.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GDSS 앱을 켜고 접속하는 데에는 로딩이 느려 20초 이상 걸렸는데 Gmail 앱을 켜고 들어가면 10초 내외로 찾아낼 수 있었다. 메일을 자동으로 보내게 하려면 WP Mail SMTP라는 것을 설정해야 했다. 어떻게 한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3일 정도 걸렸으며 당시 너무 무섭고 어려웠었다는 기억은 선명하다.
데이터 관리의 자동화는 소홀했던 편인데, 데이터가 자동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으니 몇 가지 통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 플랫폼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어간 제작사, 지원은 적게 했으나 승률이 높은 제작사, 고생은 많이 하고 돈은 못 번 제작사 등을 솎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재밌는 통계를 내는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지만, 우리의 생산성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작업은 진행하고 있지 않다.
서비스 공급자 입장에서 자신과 상관없는 프로젝트 알림을 받게 되면 그 또한 스팸으로 여기게 된다. 어차피 계약을 맺는 곳은 한 업체니, 그 과정에서의 경쟁을 줄여야 공급자의 출혈경쟁을 방지하고 오랫동안 플랫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장려할 수 있다. 때문에 비드폴리오에 등록되는 프로젝트는 매니저들의 검토를 거쳐 10~20곳의 제작사에게 배포된다. 서로의 시간을 5분씩 빌리는 것은 큰 수고가 아니다. 이 과정은 사람 매니저들이 상호 의견을 주고 받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니저들이 프로젝트에 적합한 공급자를 추려내는 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도구를 만들고, 선정된 제작사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편하도록 이메일 묶음을 만들어주는 추출기도 만들었다.
매니저는 하루에도 전화를 20통씩 한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자주 오는데, 기존 고객인지, 감독님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번호 조회기도 만들었다.
ProjectCode를 해체하면 날짜를 추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 숫자일 뿐, 서식상에서 날짜로 인식되는 정보가 아니다. 19052703에는 년/월/일/순번의 정보만 있기 때문에 주 단위의 구분은 불가능하지만 월간 단위로는 끊어낼 수 있다. 일련을 규칙대로 개수를 세어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표를 직관적인 차트로 바꾸면 플랫폼 운영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DASHBOARD가 된다.
이 외에도 제작중 특이사항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별도의 시트를 만들었고, 비용처리하는 시트도 만들어 회계업무를 간소화시켰다. 월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마케팅 데이터들도 연동해 성과를 측정할 수 있다. 꾀를 좀 부려 응용하고자 한다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너무 시스템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같아 요즘은 지나친 고도화에 집착하진 않으려 자중하고 있다.
10년 전, MIT에서 콜라병을 따서 잔에 부어 마시는 과정을 147단계로 구분했다는 발표를 듣고 충격 받았다. 당시엔 왜 그런 연구를 무엇을 위해 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연속 동작이 그렇게나 많은 최소 행위 단위로 분절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만 했다. 요즘은 반대의 의미로 놀란다. 그렇게나 많은 행위의 묶음을 의식하지 않고도 인간의 두뇌는 연속 행위로 인지하고 처리해낸다는 사실.
내가 수행하던 과업을 시스템에 위임해 생략시키려는 시도는 매번 순탄하진 않았다. 그 행위가 가시적이며 측정가능하고 선형적으로 이뤄져 있다면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정성적이며 비체계적이고 순서상으로 일관성없는 행위가 더 많았다. 그런 영역의 업무는 당분간 인간이 계속 수행해야 할 것이며, 그런 영역의 일이라면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거나 판단을 돕는 보조도구를 통해 정신노동의 생산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맺음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두번째 사업을 하고 있다. 시간도 1년 10개월이 지났다. O2O로 불리다가 온디맨드로 불리기도 하는 이런 종류의 사업 유행이 한풀 꺾이고 있다. 대부분 사라지고 일부는 남았다. 흑자로 전환하지 못하고 사라진 사업체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문제는 생산성이다. 애초부터 생산성이었고 앞으로도 생산성일 것이다. 생산성은 온전히 나에게 달린 문제다.
1년만 일렀어도 지금의 시스템은 구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3년쯤 후라면 유사한 수준의 생산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론과 보조도구들이 일반화될 것이다. 놀랄 일도,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10년 전에는 수천만원 들었던 웹사이트를 지금은 몇 만원에도 만들어낼 수 있다. 수기를 문서로 작성하던 시기에 타자기가 도입되고, 다시 워드프로세서로 넘어간 흐름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는 시기적으로 혜택을 받은 것일 뿐이며, 머지않아 이 또한 보편화될 것이다.
GDSS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적은 자원으로 정보처리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일 뿐이다. 이 것은 보조도구일 뿐, 정보처리방법의 유일한 해결책도 아니다. 이 외에도 도움될 수단과 방법이 있다면 확보해 정보처리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정보처리능력 또한 플랫폼 운영의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플랫폼 운영 또한 회사의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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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드폴리오는 이렇게 일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담당자 채용 중입니다. 사업기획분야도 채용중입니다. 플랫폼 사업을 운영하며 축적되는 경험자산을 토대로 추가 사업을 검토중입니다. 영상광고시장에 뜻과 비전이 있는 분이라면 robin@vidfolio.kr
강변북로 도로변에 짐승한마리가 보였다. 차를 바로 세우진 못했다. 그 짐승이 염소인지 개인지도 확실히 몰랐다. 염소여도 말이 안 되고 개여도 거기 있어선 안 될 상황이었다. 근처 한강공원에 차를 대고 찾아 나서니, 강아지 한마리가 내려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저도 다가오다 막상 겁이 나는지 멈춰서 고개를 휙 돌렸다. 무섭다는 것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너가 무서우면 나도 다가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개가 놀라 차도로 뛰어들면 큰일이었다. 조심히 한 발씩 뗀다. 꼬리를 흔들면서도 궁댕이 방향을 튼다. 도망갈 준비를 하는듯 나와 뒤를 번갈아 본다. 녀석이 망설이는 사이 손에 닿을 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냅다 목덜미를 잡았다.
깨갱 소리와 함께 배를 까보였다. 오줌이 질질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를 공격하지 마세요. 이렇게 오줌도 못가리잖아요.”라는 뜻이었다. 뜻을 알았지만 솔직히 개 드러웠다. 진정시키기 위해 궁댕이를 팡팡쳤다. 먼지가 온데 날렸다. 그러고보니 궁디팡팡은 고양이용인데 강아지는 어떻게 만져야 하더라. 머리도 만지고 턱도 만지고 발도 만지고 배도 만졌다. 귀가 앞으로 접히고 턱 주름이 흐물거리는게 똥개는 아닌 것 같고 리트리버인 것 같다. 강아지 특유의 뽀얀 냄새는 나지 않고 개 냄새가 지독했다.
바닥에 내려놓아도 졸졸 뛰어온다. 5분만에 새주인이 되었다. 강변북로에서 발견됐으니 이름은 강북이라 했다. 엎드려 안으면 오줌이 묻을 것 같았다. 개들은 눕혀 안기는 걸 안 좋아하지만 강북이는 아랑곳않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금새 잔다. 쭈끌쭈글한게 너무 예쁘다. 배가 빵빵하고 뜨거웠다. 잃어버린 것인지 버려진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강북이의 바깥생활은 오늘이 첫날이었으리라 추측했다.
120에 전화해서 유기견 구호후속조치를 안내받았다. 민원을 접수해주셨다. 그러곤 연락이 없었다. 다시 전화했더니 민원이 처리중이며 해당부서로 전달은 되었다고 했다. 나 지금 추운 겨울에 개 데리고 한강공원에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니 자기도 잘 모르겠단다. 당신 이름이 뭐요 했더니 담당부서로 직접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준다. 담당부서에 연락했더니 민원내용은 이미 들었다더라. 왜 연락을 안주고 마냥 기다리게 하냐 했더니 처리 중이었다더라. 언제 오냐 했더니 그건 잘 모르겠단다. 당신 이름이 뭐요 했더니 아무 말이 없더라. 당신들 일처리를 내가 못믿겠으니 내가 직접 보호소에 배달하겠다 했다. 그제서야 근처 제휴되어있는 동물병원을 알려준다고 했다. 강북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네 다리를 쭉 펴더니 기지개를 한 번 하곤 그 자세로 계속 잤다.
도시에서 대형견을 키우는 게 걱정됐을까. 리트리버 새끼를 2주차에 분양받고 2달차에 버린 것이 아닐까. 이빨이 나기 시작하자 이것저것 물어뜯는 게 감당이 안 된 것일까. 산책중 실종된 것은 아닐까. 이렇게 느린 개를 잃어버릴 수 있었을까. 강북이가 그 가파른 담벽을 스스로 올라갔을까. 왜 목줄은 없었을까. 밥은 실컷 먹이면서 왜 씻기진 않았을까. 씻겨놓으면 키우는 개인줄 알고 구조되지 못할까봐 그랬을까. 강변북로에서 개를 던지고 간 것이라면 뒷차는 못봤을까. 강북이를 본 차량은 족히 5백대가 넘었을 것인데 우리 말고는 신고가 없었을까. 강북이는 나를 통해 구조된 것일까, 나를 통해 두번 유기당한 것일까. 나는 직접유기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인가. 인간을 위해 개량된 종이 어찌 인간에게 버림받게 되었을까. 보호소에서 안락사당하기까지의 20일, 그 사이에 강북이는 새 주인을 찾을까. 47%의 확률로 생을 마감할까. 대형견이라 그보다 더 힘들까. 이 사실을 알고도 나는 왜 다른 방안이 떠오르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강북이 냄새가 밴 옷을 빨았다. 호두는 개냄새를 탐색하느라 바쁘다.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문자가 왔다. 탐색반이 이촌한강공원 축구장 일대를 수색했으나 유기견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셰프뉴스팀은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동면기에 접어들었다. 겨울 동안 광고주도 얼어붙고, 남은 자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3명일 때 1달 반, 1명일 때 6달을 버틸 수 있었기 때문에 조직 축소의 결정을 내렸다. 빚을 내면서까지 버티는 것은 원칙에 어긋났다.
GoD 1기에 붙었다. 동면해제.
합격해서 기쁘거나, 공간이 생겨 다행이라는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원해주는 디캠프가 고맙고 미안해서라도 성과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급해졌다.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좌불안석한 마음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물리적인 공간이 아무리 편하더라도 총 12팀 중 일부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걸 직접 보게 되니까.
GoD에 붙기 전에는 스스로를 스타트업이라 생각지 않았다. 기술기반도 아니고, 혁신적이지도 않으며, 지금의 비즈니스모델로는 투자 대상도 아니었다. 디캠프에 들어오면서 스타트업이라 할만한 회사,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핏을 맞춰보려고 했다. 독립사무실을 쓰면서 먹고사니즘 고민만 하던 때보다 생각의 속도가 다섯 배는 빨랐던 것 같다.
12페이지 피칭덱 형식에 맞춰 비전과 비즈니스를 우겨 넣는다. 잠재 파트너에게 업데이트를 보내고 진부한 답변을 받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캐내고, 투자유치 경험담을 찾아 듣는다. 오피스아워에 다섯 번 신청했다가 네 번 거절당한다. 발표 스크립트를 수십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본다.
이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상처를 입는다고들 한다. 투자를 받으려면 모든 리소스를 올인하고, 아니라면 아예 사업에만 집중하라는 조언들이 많았다. 투자자에게 심사대상이 되기 위해 노력한 이 경험이 나에겐 정말 의미있었다. 너무나 당연히 생각해야 할 부분들을 많이 빠트리고 있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투자자가 사업이 되고 안되고를 판단하는 기준들은 정말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그 기준들 앞에서 완벽한 팀은 많지 않다. 우리 팀을 포함해 세 팀은 개발자가 내부에 없었다. 개발력은 뛰어난 데 아이템을 한 달에 한 번씩 바꾼 팀도 있었다. 문제점 인식은 명확한데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되지 않은 팀도 있었다. 현금이 부족한 팀도 있을 것이고, 오픈했는데 사용자 확보가 예상보다 느린 팀도 있었을 것이다. 매출은 나는데 운영 비용이 이익보다 큰 팀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게 다 좋은데 시장이 작은 팀도 있을 것이다.
너무 흔하고 뻔하고 진부하기까지 한 초기기업의 어려움이다. 그런데 그게 다 내 얘기인 줄 몰랐다. “난 지금 뭘 해야 하지?”,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뭘 해야 하지?”, “우리 회사의 정체성은 뭐지?”와 같은 1인칭적 사고만 했다.
지난 4.5개월 동안 좁았던 사고의 틀이 깨진 것 같다. 혼신의 힘을 다해 박치기 하는 식의 태도에서 벗어나 이성을 좀 찾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