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기다렸어요. 한국에 왔으니까 불을 질러야죠. 엄청나게 불 지르고 갈 거예요.

아키라 백 셰프(한국명 백승욱)는 지난 200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의 레스토랑 ‘옐로 테일’의 총주방장이 되던 때부터 한국에서 한식당을 열고 싶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곳에서 서비스하고 싶어서였다. 그 꿈이 10년 만에 이뤄졌다. 백 셰프는 지난 5월 초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청담동)에 모던 한식당 ‘도사 바이 백승욱’을 열었다. 오는 7월엔 서울 남산에 일본식 레스토랑 ‘아키라 백’을 연다. “불을 지르겠다.”며 강한 포부를 드러내고 있는 그는 그야말로 ‘스웩’이 넘치는 태도로 인터뷰에 응했다. 대답은 짧고 강렬했다. 아래는 아키라 백 셰프의 일문일답이다.

| Dosa By 백승욱

Q 도사는 무슨 뜻이죠?
A 술 많이 먹으면 ‘술도사’. 음식 많이 먹으면 ‘먹도사’ 되잖아요.

Q 레스토랑 ‘도사’의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A 모던 코리안. 내가 생각하는 한국 음식. 옛날에 먹어 본 것을 내 스타일로 만드는 거. 옛날부터 한국에서 음식 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식재료는 거의 다 한국 거예요. 다 달라야 해요. 식재료는. 코스 메뉴이기 때문에 똑같은 게 리핏(반복)되면 안 돼요. 소스도 다 만들어요. 비빔밥에 참기름, 고추장 들어가요. 참기름을 좀 맵게 해요.

Q 매운 참기름이요?
A 한국 요리가 맵잖아요. 그래서 매운 걸 넣는 거죠. 아키라 백은 모던 재팬이고요. 여긴(도사 바이 백승욱) 모던 코리안.

Q 일식이 아니라 한식으로 한국에 진출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한국 음식을 먼저 하고 싶어서죠.

Q 미국에서 레스토랑을 여는 게 더 쉽지 않나요?
A 미국에 여는 건 쉬워서 재미가 없어요. 편하게 있으려면 (굳이 한국에 오픈) 안 해도 돼요. 라스베이거스 장사 잘돼요. 돈도 아니고 명성도 아니고 그냥 많이 열고 싶어요. 내 음식을 많은 사람이 먹었으면 좋겠어요. 여행 갔을 때 맥도날드 먹고 싶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잖아요. 내 음식은 왜 안돼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Q 도사가 들어선 곳은 ‘피읖’ 자리였는데 여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키친(주방)이 마음에 들었어요. 기회가 돼서 사버린 거지. 돈이 예상보다 많이 필요해서 아버지한테 도와달라고 그러고. 제가 다 하려고 했는데 최근에 집을 사서 캐시(현금)가 좀 더 필요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도움을 주신 거죠. 아버지가 멋있는 게 갚지 말라고 해요. 안 줘도 된다. 대신 3년 안에 미쉐린 별 갖고 와라. 그게 더 무서운 말이죠.

Q 한국 호텔에서 하면 더 쉬울 수도 있을 텐데요?
A 호텔에서 오퍼가 되게 많아서 들어가려고 했어요. 오퍼는 좋은데 저하고 안 맞더라고요. 우리가 ‘노’ 했어요.

Q 앞으로 계획은요?
A 한국에 아키라 백 2개 열어요. 더 많이 열거에요. 왔으니까 불을 질러야죠. 10년을 기다렸는데. 이탈리안 레스토랑, 고깃집도 열고 다 할 거예요. 엄청나게 불 지르고 갈 거예요.

Q 고깃집이요?
A 삼겹살, 대창, 소주, 프레시 좋아해요.

Q 프레시는 뭔가요?
A 참*슬 프레시. 물보다 소주가 더 싸요. 제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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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가 싫었던 아키라 백, 최고의 셰프가 되기까지

아키라 백은 청소년 시절 세계 랭킹이 10위권에 달할 정도로 수준급 스노보드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그만둔 뒤 단골 일식집 셰프에게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요리하는 게 싫었지만 시작했기 때문에 계속했다고 한다. 좀 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다양한 직업이 있는데 굳이 ‘셰프’로 전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이유는 없어요.

Q 그래도 이유는 있지 않나요?
A 음. 뭐야. 음식 하게 된 동기는 제가 옛날에 음식점 많이 갔는데 그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편하게 일하는 게. 그래서 일했어요. 그분이 일식을 했으니까 일식을 했지만, 일식이 좋아서 한 게 아니라 사람이 좋아서 한 거예요. 제가 한국에서 야구했었거든요. 야구한 이유가 뭐야. 누구죠. OB.

Q 박철순!
A 그분이 좋아서 야구한 거거든요. 그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한 거예요.

Q 어떤 점이 좋았나요?
A 사람 멋있고 좋은 거 뭐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음식에 들어가게 된 거죠. 음식이 좋아서 한 게 아니라.

Q 일식당 켄이치에서 시작하신 거죠. 처음부터 요리를 잘했나요?
A 제가 실력이 없으니까 뭐 계속 생선도 못 만지고 밥만 만지고. 베지터블(채소)만 자르고. 솔직히 음식이 싫었어요. 음식 만들기 되게 싫었어요. 밥 떨어지면 밥알 세라고 하고. 요리는 안 시키고 이상한 걸 시키니까. 생각지 않은 걸 시키니까. 안 하려고 했어요. 음식을 하려고 그랬을 때 반대도 있었거든요.

Q 가족들의 반대요?
A 부모님. 반대하셨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라 그만두면 좀 그렇잖아요. 반대하셨는데. 그래서 있었죠. 일하고 3년이 지나면서 좋아졌어요.

Q 하기 싫었는데 3년을 버텼다?
A 창피하기 싫어서 한 거죠. 아빠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기브업(포기)하면. 스스로 창피하니까. 이민 간 이유도 우리 때문에 간 거 아니에요? 누나하고 나 공부시키려고 그런 건데. 그런데 저는 놀 것 다 놀고 스노보드 하면서 전 세계 돌아다닐 때도 아빠는 아무 말 안 했어요.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보드 그만둔다. 그랬을 때는 원하시는 게 대학가는 거였죠. 저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사립학교(고등학교) 엄청나게 비싼 학교 다녔어요. 스노보드만 탔지 배운 게 별로 없잖아요. 대학에 갈 레디(준비)가 안됐으니까 가기 싫은 거예요. 게다가 아빠가 또 돈을 내줘야 하는데. 그런 게 싫은 거예요.

Q 3년 일하다가 음식이 좋아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A 해보니까. 음식이라는 게 챌린지(도전)가 되니까 재밌더라고요.  재밌어요. 계속하면. 그런데 웬만한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그러죠.

Q 왜요?
A 어렵잖아요. 음식 하는 게. 진짜 좋아서 하지 않으면 어려운 잡(일)이에요.

Q 지금은 좋으세요?
A 어. 당연히 좋죠.

Q 켄이치에서 언제까지 있었던 거죠?
A 그건 모르고요. 7년, 8년 정도 있었다. 두 개 오픈 하고. 저는 몇 년도 이런 거 100% 잘 몰라요. 몇 년에 졸업했냐 그러면 몰라요. 음식에 대한 건 전 알아요. 한국은 몇 년도 그거 되게 좋아하잖아요. 전 몰라요.

Q 그럼 글쓰기가 너무 어려워지는데요. 다른 질문을 할게요. 요리학교 AIC(The Art Institute of Colorado)에 간 이유가 무엇인가요?
A AIC도 언제 졸업한 지 몰라요. 학교에 간 이유는 부모님과 약속한 거 때문이었어요. 대학 나온다고 약속한 거요. AIC 갔을 때는 벌써 마오(MAO)라는 레스토랑의 헤드셰프였어요. 제가 이미 헤드셰프인지 학교에서도 알고 있어서 학교에서도 많이 안 와도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돈이 너무 아까덥라고. 돈 낸 게. 배운 건 없는데. 그래서 ‘학교에 뭘 받아야겠다.’ 결국, 학교 다닐 때 광고를 받았어요.

Q 학교 광고를 받았다고요?
A 학교 모델을 한 거예요.

Q 얼마 받으셨죠?
A 뭘 그런 걸 물어봐요. 학비는 퉁칠 만큼. 하하.

Q AIC 생활은 어땠나요?
A 음식에 대한 거니까 쉽죠. 공부를 안 해도 다 아는 거니까.

Q 켄이치 이후 MAO로 바로 가신 건가요?
A 가기 전에 샌타바버라에 있는 식당은 다 돌아다녔어요. 배우려고. 그때 많이 배웠죠. 여기저기 일하려면 내 이름 그대로 일하면 소문나니까 이름이 되게 많았어요. 스티이브~. 새앰~. 이름을 계속 바꿨어요. 샌타바버라 같은 곳은 원 블록 안에 있는 식당에서는 다 일해 봤어요.

Q 옮겨 다니느라 눈치가 보였겠어요.
A 되게 안 좋게 봤겠죠. 여기저기 배우고만 가니까 평판이 나빴겠죠. 그래도 음식 맛있다는 데서 다 배웠어요.

Q 어쩌다 그런 전략을 세운 건가요?
A 더 배워야 할 것 같더라고요. 느낌이. 근데 일은 하더라도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랬던 거고. 근데 요리사라면 뭘 알아야지. 스시만 알면 저는 100% 셰프가 아니에요. 셰프는 다 알아야 해요. 요리가 뭔지 알아야 스시에도 도움이 되죠. 불란서 음식도 알아야 스시를 해도 최고의 셰프가 될 수 있죠. 저는 항상 생선만 만지니까. 딴 걸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미국 사는데 미국 음식도 못 만들고 불란서 음식도 모르고 그러면 셰프가 아닌 거죠.

Q 그래도 일식부터 시작하셨잖아요.
A 일식은 좋아서 한 게 아니에요. 생선을 싫어했어요. 회를 못 먹었어요. 김치도 안 먹을 정도로 되게 까다로웠어요. 입맛이.

Q 지금은요?
A 지금은 다 먹죠. 요리하게 된 다음부터 다 먹어요. 더 건강해진 거죠.

Q 학교가 영향을 미친 건 딱히 없네요.
A 없어요. 학교 다니지 말라고 해요. 이런 거 쓰면 학교에서 이제 날 안 부를 텐데. 하하. 학교는 나중에 가라고 말해요. 학교는 가긴 가야 하는데. 2년 동안 쿠킹 배운다고 하면 못하게 해요. 아무리 천재라도 4년 동안 공부만 하면 음식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제일 좋은 거는 음식점에서 제일 좋은 셰프하고 일하는 게 최고입니다.

Q 한국은 아직 학교를 강조하죠.
A 한국은 문화가 학교~학교~학교~학교~ 하니까. 그런데 솔직하게 학교라는 데서 2년, 4년 배운 친구들 쓰면 뭘 알겠어요? 솔직하게? 우리는 출신 학교를 안 봐요. 우리는 어디서 일했냐. 누구한테 배웠냐. 제일 중요한 게 얼마나 일했냐. 2~3년 경력은 안 뽑아요. 그런 요리사는 무조건 금방 그만둔다는 이야기죠.

Q 레스토랑 채용 기준도 이야기해 볼까요? 이번에 한국 진출할 때도 직접 채용한 건가요?
A 직접 봤어요. 남산(아리카 백)도 다 끝났어요. 제일 중요한 게 한 군데에서 몇 년 동안 일했냐는 건 끈기가 있는지 보는 거거든요. 한국 분들이 똑똑해요. 그런데 오래 못 버텨요. 우리 옐로테일 경우도 멤버가 98% 그대로예요. 8년이나 됐는데. 나간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한국 사람. 우리 이제 한국사람 안 써요.

Q 자 이제 옐로테일에 들어가기 전까지 얘기를 해보죠.
A 퓨처(미래)가 더 좋아요. 퓨처 얘기를 해요. (인터뷰가) 다 똑같은 게 이거에요.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저 열심히 했어요.’ 이런 거. 난 그런 얘기 할 게 없어요.

<라스베이거스 요리사 아키라 백>(김영사)를 보면 백 셰프는 일식의 명장 노부 마츠히사와 마사하루 모리모토로부터 요리를 배우면서 옐로테일에 가기 전 레스토랑 ‘노부 마츠히사’, ‘아스펜’의 총주방장으로 일했다. 미국의 유명 푸드 쇼 ‘아이언 셰프’에도 출연했다. 백 셰프의 올해 계획은 옐로테일, 아키라백, 도사 등 자신이 참여하는 레스토랑을 자카르타, 방콕, 두바이 등 세계 곳곳에 오픈하는 것이다.

| 아키라 백의 요리 세계

아키라 백은 어린 시절 먹었던 한국 음식이나 ‘맛집 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고 한다. 한국에 올 때마다 즐겨 먹는 음식을 꼽으라고 했더니 “짜장면 항상 먹어야 해요.”라면서 이미 이와 관련한 요리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했다.

Q 메뉴 개발 노하우가 있나요?
A 여행 다니면서 잘 얻어요. 아이디어나 콘셉트는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 그런 거에서 얻어요. 나의 입맛. 우리가 하려는 건 그걸 다르게 만드는 거예요.

Q 예를 들면요?
A 사람들이 보쌈을 먹는다고 하면 나는 보쌈 만두를 만들어 봐요. 보쌈 만두 먹어보면 ‘크레이지.’ 해요. 보쌈에 굴김치가 들어가죠. 먹다가 마지막에 쫙 터져요. 한국 분이 먹으면 “오오 이거 내가 먹었던 보쌈!” 이렇게 되도록.

Q 도사에서 제공하는 코스 요리도 소개해주시죠.
A 첫 번째. 광어회가 나가요.

Q 광어회요?
A 내 스타일이. 첫 번째 코스는 이쁘면 써요. 나의 자유인데. 피자는 무조건 들어가요. 비빔밥도 들어가요. 비빔밥은 만드는 데 7일 걸려요. 갈릭 빵이 들어가고 아몬드, 호두. 종류가 되게 많이 들어가요. 한국 된장도 들어가고 그걸 다 말려야 하니까요. 그게 흙 같이 생겼는데, 채소도 넣어요. 농장에서 채소를 보는 것 같은데 먹으면 비빔밥 맛. 그게 ‘서울 가든’이라는 메뉴에요. 아. 대신 참기름을 맵게 만들어서 내놔요. 매운 참기름을 뿌리고 비벼서 먹는 저의 버전의 비빔밥.

Q 메뉴가 많나요?
A 메뉴는 11~13개 하고 테스트한 뒤 고를 거예요. 한국 분들이 코스가 너무 길면 싫어한다고 해서요.

source : Dosa’s Facebook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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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남산에 여는 아키라 백은 새로운 메뉴가 있나요?
A 아키라 백은 전 세계 다 똑같아요.

Q 식문화가 나라마다 다른데요.
A 그 나라에 맞는 스페셜 메뉴를 딱 하나만 추가해요.

Q 일식 레스토랑 켄이치에서 요리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에도 일식 전문 레스토랑에서 일했는데, 일식 위주로 경험을 쌓은 게 셰프 경력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A 일식이라는 건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왜요?
A 칼. 칼 쓸 때. 이…. 뭐라 그럴까. 칼 쓸 때. 뭐라 그럴까. 정말 이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게 보통 분들이 칼질을 못 하는데. 칼질한 뒤 한 시간 있다가 두 시간 있다가 보면 맛이 달라져요. 칼질 때문에. 칼질은 일식 전통에서 배우는 게 제일 좋죠. 일식 같은 경우는 ‘페이션’이에요. 페이션. 그 뭐야.

Q 인내심이요.
A 그렇죠. 인내심이 많아야죠. 일식은 간단하잖아요. 그런데 되게 오래 해야 하고 손이 많이 가요. 한국 음식도 그렇지만,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고 밥 한 번 하는데도 그렇거든요. 비니거(식초)도 들어가고 다른 거소 많이 들어가요. ‘히든 테이스트’(숨은 맛)가 많죠. 그 첫 번째가 칼질.

Q 칼질 중요하죠. 본인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A 이제는 뭐 칼이 들어갈 때 느끼죠. 생선이 무슨 맛이 날지 느낌이 나요. 달까? 식감은 어떨까? 이런 것들. 달인은 아니지만. 하하. 이제는 엑스레이같이 뭔가 느껴져요. 많이 하면 할수록 달라지더라고요.

Q 채용할 때도 칼을 잘 쓰는지 보나요?
A 못하면 안 써요. 사람 보면 첫 번째는 어디서 일했냐. 얼마나 일했냐. 물어보고요. 어떤 사람인지 티가 나는데. 악수할 때 손 딱 보면 나와요.

Q 손이요? 어때야 하나요? 셰프님 손은 부드럽네요.
A 손이 거친 사람은 맛이 없어요. 이게 엉망이면 음식이 맛이 안 나요.

Q 칼질 노하우나 연구 방법이 있나요?
A 칼은 매일 갈아요. 연구하는 건 없고, 배우는 거죠.

Q 어디서요?
A 일본에 가서 배워요.

Q 언제요?
A 정해. 칼을 가는 걸 1년에 한 번씩 가서 봐요. 노부 헤드 셰프 그때부터. 아직도 마스터를 못 했다고 생각해요. 칼 가는 게 제일 어려워요. 진짜 장인이 갈면 날이 정말 오래가더라고요.

Q 칼질의 중요성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A 채소를 자른다고 생각하면 신선도가 훨씬 좋아져요. 칼질 잘못하면 (신선도를) 죽여요. 잘하면 슬라이싱을 하는 거죠. 칼질해서 전체를 죽일 수도 있고 두 개를 쓸 수도 있죠. 채소 같은 것도 칼 못하는 사람은 즙이 많이 나와요. 주부님들이 요리하실 때 매워하는 게 칼질 못 해서 그런 겁니다. 요리하면서 울잖아요. 그러면서 열심히 한다고 하잖아요. 그건 올드스쿨. 못해서 그런 거죠. 왜 울긴 울어요. 칼이 있는데. 칼질을 못 한다는 얘기죠.

Q 언제쯤 음식을 잘한다고 느꼈나요?
A 10년쯤 하니까 느낌 왔어요. 식당에서 일하기 전에는 음식을 한 번도 안 했어요. 이민 갔지만, 엄마가 다 해줬으니까요. 켄이치 갔을 때 저같이 못하는 사람 처음 봤다고 했어요.

Q 어떤 노력을 했나요?
A 잘 때 랩으로 싼 밥 만지면서 연습했어요. 초밥은 느낌이 있어야 하잖아요. 엄마가 요즘엔 안 그러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많이 우셨다고. 아들이 밥을 들고 자고 그러니까. 자는데 항상 나이트메어(악몽).

Q 악몽을 꾸셨다고요?
A 못한다고 하고, 열 받으니까 항상 꿈도 그거에요. 내가 봐도 못하는데. 어떡해요. 못하는데. 너무 기본을 못하니까. 그때 레스토랑에서 제발 좀 일찍 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일찍 오니까. 보통 오후 3시에 출근해요. 난 아침 10시에. 돈 안 받는다고 하고 프랙티스(연습)만 한다고 ‘오바’했죠. 베지터블 같은 거 제 돈으로 사고.

Q 승부욕이 있나 봐요.
A 이겨야 한다기보다는. 뭘 하면 잘하고 싶어요. 그런 건 없어요. 이겨야 한다는 건 없어요. 저의 만족. 제가 잘하고 싶거든요.

Q 지금은 잘한다고 생각하나요?
A 아직 배우지만 경력이 돼요. 내가 잘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 팀이 잘해요. 메뉴는 제가 컨트롤하지만요.

Q 레스토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요?
A 제일 중요한 게 고객 서비스. 음식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서비스가 제일 중요해요. 음식이 제일 중요하지 않아요. 음식이라는 건 다 좋아할 수 없어요. 맥도날드 가도 음식이 다 맛있진 않아요. 서비스는 ‘노’ 아니면 ‘예스’지만, 음식은 ‘메이비’가 많아요. 직원들에게도 엄마 아빠 왔는데 밥을 어떻게 서비스할 거냐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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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장 기억에 남는 주방, 요리, 고객 경험은 무엇인가요?
A 저는 맨날 맨날 익사이팅(즐겁고). 가족 올 때는 항상 너버스(긴장)해요.

Q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은요?
A 저의 음식. 제가 자신이 있다기보다는. 맛이 없으면 계속 열지 못할 거 아니에요? 맛은 있으니까 열겠죠.

Q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고, 자신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A 그건 없어요. 저는 성격이 다른 것뿐이지 누가 잘한다. 못한다 말할 수 없잖아요. 열심히 하는 친구들 얼마나 많아요. 나는 한 가지 다른 게 되게 운이 좋다. 그냥 운이 좋아요.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사람 뽑을 때도. 다 추천받고.

Q 주방에서의 규율이 엄격한 것으로 아는데, 같이 일하고 싶은 직원 상이 있나요?
A 개성이 센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 안 뽑아요.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면 가르치지 않아요. 어디서 일했어요. 몇 년 일했어요. 질문 끝이에요. 일한 게 6개월, 8개월 그러면 알고 보면 나쁜 말로 나 같은 놈. 배운 다음에 딴 데 간다는 거죠. 적어도 5년은 해야죠. 엄격하게 생각해요. 서로가 바쁘잖아요. 그래도 기회는 줘요.

Q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을 꿈꾸는 셰프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A 좋아서 한다면 하라고. 근데 아니면 말라고 해요. 조언 같은 거도 없고. 간단해요. 저스트두잇(Just do it).

Q ‘걍’(그냥) 해.
A 네. 걍 해.

Q 주방에서 제일 많이 쓰는 말은 뭐죠?
A f*ck, sh*t, hurry up.

Q 한국에 셰프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셰프들이 연예인화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좋죠. 상관 안 해요. 나쁜 게 뭐가 있어요. 셰프라는 직업이 더 좋아지는 거 아니에요? 물론 저는 그분들 몰라요. 다만 그분들 덕분에 셰프가 인기 있는 거죠.

Q TV 출연할 계획이 있나요?
A 그걸 하면 저는 목표 못 이뤄요. 또 TV 나가면 저는 개성이 강해서 누가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하면 못견뎌요.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해서.

Q 끝으로, 오너셰프와 요리사로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A 지금 고생이 더 많아요. 지금은 내가 잘 못 하면 한 사람 두 사람 잘라야 해요. 직원들과 친해졌고, 직원들도 가족이 있잖아요. 더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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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의요리(料理の鉄人), 1993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요리 대결 방송이다. 특정한 재료를 주제로 전문 셰프들이 나와 요리 대결을 펼치는 이 방송은 첫 방송 이후로 9년간 309편이 제작되었다. 이 방송 포맷은 아이언셰프Iron Chef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타국으로도 뻗어 나갔는데, 2001년도에는 미국에서, 2010년도에는 영국과 호주에서, 2012년도에는 베트남과 태국에서, 각 나라마다의 아이언셰프 방송이 만들어졌다.

2012년 방영된 태국 아이언셰프Iron Chef Thailand, 된소리가 강한 태국어 방송 중에서도 또렷한 한국어가 들렸다.

“SK의 스타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지켜봐라!”
당시 W 호텔 소속으로 모던 일식요리를 하고 있던 최신근 셰프였다. 새로운 레스토랑 오픈을 앞두고 잠시 한국에 들렀다는 그를 만났다.

 

|생선을 다리미로 익혀? 기발한 아이디어가 카메라의 시선을 빼앗았다.

“아이롱이라고 하잖아요. 스팀 나오는 다리미. 그걸로 다시마 사이에 재워 둔 생선살을 그냥 쫙!”

카메라가 놓칠 리 없다. 비록 주방에서는 해본 적도 없던 기이한 행동이었지만, 색다른 장면을 기대한 시청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장면이다.

태국에서는 최신근이라는 이름보다 이니셜 SK로 더 유명하다. 손님과 교감하며 초밥을 쥐어주는 오마카세를 자주 해서인지, 오픈 키친의 경험이 많아서인지 카메라 앞에서도 여유로운 모습이다.

“방송에 나가려니 겁도 많이 났죠.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도전하다 보면 돈은 못 벌 수는 있어도,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다’라고 말했던 조언이 생각나서 출연하기로 했어요”

태국의 한 매체는 그의 요리를 ‘진화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재료 간의 조합을 영리하게 풀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스타일의 아시안 퀴진을 선보이고 싶다는 진취적인 그에게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냐 물으니 “처음엔 요리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 생계를 위한 요리에서 자아실현을 위한 요리로

처음부터 요리사를 원한 건 아니었다. 보디빌딩 선수를 준비했으나 허리를 다쳐 진로를 틀어야 했고, 고등학생 때 친구를 따라 들른 요리학교 유학 설명회가 계기였다. “상담만 받아도 공짜로 밥 먹을 수 있다는 친구의 꼬임에 속아서 갔어요. 근데 그 설명회가 제 요리사로서의 첫 시작이 될 줄은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죠.” 그가 진학한 곳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학교, 핫토리 영양 전문학교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학업과 생계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신문 배달과 초밥집 막내를 전전하며 졸업할 수 있는 출석 일수를 겨우 맞췄다. 입에 풀칠하느라 3년 동안 배운 것이라곤 어깨너머로 배운 초밥 잡는 법이 전부였다. 그래도 이 요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건 “한국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이 기술만 있으면 굶어 죽지 않겠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3년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조선호텔 조리부에 입사했다. 한국의 일식은 그가 배운 것과 조금 달랐다. 일본 현지의 방식이 아닌 한국식 일식이라는 조금 변형된 형태로 일해야 했다. 처음부터 배운다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하는 수고로움은 당연히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요리를 배울 기회가 적고, 주방 밖에서 얻을 수 있는 자극이 없는, 쳇바퀴 같은 생활은 성에 차지 않았다.

“당시에는 새로운 요리를 접할 기회도 적었고, 새로운 요리를 배우려면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수입 원서가 있는 대형서점을 가끔 찾아갔는데, 거기서 그 책을 본 거죠.” 지금도 요리가 막힐 때면 가끔 꺼내 읽는다는 아키라 백 셰프의 책이었다.

“일식 요리사, 운동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요리를 시작했다는 점이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신근 셰프는 그 자리에 서서 두 시간 동안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책을 다 읽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요리를 계속할지, 틀을 깨고 나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지 선택해야 했던 그는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 무작정 달려들어 얻어낸 일식의 새로운 패러다임

책에 쓰여 있는 이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 열흘 만에 받은 답변에는 ‘열심히 해라. 응원한다’는 식의 상투적인 내용만 적혀있었다.

“당시 호텔을 나와서 대기업에서 일하던 중이었는데 한 달 만에 사표 쓰고 미국행 비행기 표를 샀어요. 가서 부딪혀보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미국에서 일하려면 워크퍼밋(EAD : 미국에 일시 거주 중인 외국인에게 주는 근로 허가증)이 필요하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그가 옐로 테일Yellow Tail에 처음 찾아간 날은 새해 첫날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유명 호텔 벨라지오 내에 있는 레스토랑답게 홀에는 신년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최신근 셰프는 겨우 바에 자리를 잡았다. 좁은 바 테이블에 앉아 셰프 테이스팅 메뉴를 주문했다. 혼자 온 동양인이 16만 원의 코스 요리를 시키자 주변 사람들은 쳐다보며 수군댔다. 개의치 않았다.

“음식을 가지고 오는 서버에게 셰프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고, 잠시 후 셰프가 나오더라고요. 저는 만나자마자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되냐고 다짜고짜 물었어요.”

어떻게든 미국땅에서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미 직장을 제 발로 나왔고, 그렇지 않아도 수중에 돌아갈 비행기 표를 살 돈도 없었다. 여차해서 주방일을 구하지 못하면 들고 간 200만 원어치 칼 가방이라도 팔아 다른 직업을 알아볼 각오마저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아키라 백 셰프 아래에서 무급 스타지 기회를 얻었고, 2013년에는 태국에 있는 W 리조트 꼬사무이Retreat Koh Samui에  주방장Chef de Cuisine까지 맡게 되었으니 무턱대고 떠났던 것 치고는 결과가 나쁘지 않아 보인다.

 

| 앞으로도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활동할 것

이젠 한국으로 돌아오기엔 현지인들에게 너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곧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새로 오픈할 레스토랑 준비에 한창이라며 사진을 보내왔다.

요리사라면 으레 음식을 만드는 종업원으로 여겨지는데 온 벽과 대문에 사진을 도배해놓으니 어색한 느낌이 든다. 스타덤으로 레스토랑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려 해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하지만 ‘레스토랑과 셰프, 어느 정도의 역할 구분이 필요하진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은 최신근 셰프를 만나면서 깨어지게 되었다. 레스토랑이 곧 셰프고, 셰프가 곧 레스토랑이고, 손님의 입장에선 전혀 구분이 없다.

주야장천 요리만 하느라 손님은 내다보지 못하는 요리사가 싫어 해외로 발길을 돌렸던 그는,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의 총 책임자를 넘어 한 레스토랑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어 있는 듯하다.

매사에 거침없이 결정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최신근 셰프. 요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요리를 시작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요리가 있었다기보다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도를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간 셈이다. 3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호텔을 나와 미국으로 갔을 때도, 미국에서 다시 태국으로 옮길 때도 겁이 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셰프들도 다 이런 공포를 경험했고, 고생도 말로 못 할 정도로 했을 거에요. 앞으로 요리하는 학생들이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겁이 날 때는 이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잘 모르니 두려울 수밖에 없죠. 근데 그걸 이겨내야 도전인 거에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한다. 요리사도 예외 없다. 아니, 요리사는 다른 직업보다 그 고민의 깊이가 더욱 깊을 것이다. 열악한 근무환경, 주변인의 만류, 정보의 부족, 다양한 근무 경험, 불안정한 생활, 낮은 보수…. 와 같은 현실적인 조건을 끊임없이 극복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꿈과 열정만으로 요리한다는 말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래서인지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은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선뜻 실행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호주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있는 4명의 여성을 만났다. 네 명의 공통점은 호주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요리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한가지 공통점 이외에는 모두 달랐다. 나이도, 전공도, 배경도, 환경도, 학교도 달랐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 깊이 있는 진로 고민을 들어보았다.

본격 요리사로서의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 대한 기록이 현실적으로 도움될 것이라 생각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녀들의 4인 4색 인터뷰 시작한다.

좌측부터> 최민아, 김해인, 전미미, 박주영

간단히 자기소개 해주세요!

최민아(30대 후반) :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이제 3년차 요리사에 접어들었습니다. QTHC 다니고 있고, 2년 과정 중 1년을 마쳤습니다.

김해인(21세) : 이화여대 휴학하고 에볼루션 다니고 있습니다. 1년 6개월 과정 중에 1년 남았습니다.

전미미(28세) : 6년 다니던 삼성전자 그만두고 요리유학 준비 중입니다. 8개월 후 윌리엄블루 입학 예정입니다.

박주영(30대 후반) : 디자인 일을 오래했고 지금은 르꼬르동블루에서 빠티셰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1년 6개월 과정에서 6개월 지났습니다.

 

다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다른 일을 하셨군요?
어떻게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박주영 : 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해서 컴퓨터 작업을 많이 했는데, 10시간씩 앉아 있는 게 힘들었어요. 디자이너로 4~5년 정도 일했어요. 20대 끝자락에 호주로 워킹 왔을 때,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미술선생님 일을 잠시 했고, 지금은 이렇게 요리 공부를 하고 있네요. 요리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기보다는, 그냥 집에서 즐겨 만드는 수준이었어요. 빠티셰리 과정을 배우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밀가루 한 번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었어요.

전미미 :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요리사가 멋있어 보였어요. 직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어요. 정말 막연했고, ‘나중에 크면 요리사가 될 거야’라고 장래희망 란에 적어내곤 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을 탈출하고 싶어서 우선 호주로 왔었어요. 아무런 준비 없는 워킹홀리데이였어요. 이 나라가 나와 맞는지 맞춰 보고 싶었는데, ‘집 떠나니 고생’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깨달았죠. 그 뒤로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기까지 6년이 걸렸네요.

최민아 : 저는 교육대학교를 나왔고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어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이 값지다고 항상 생각해왔어요.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는 중동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중동이라도 기름이 나오지 않는 나라는 정말 가난했고, 그 악순환을 풀기 위해서는 교육이나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레스토랑 사업 능력이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요리 공부를 시작한 게 33살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요리는 좋아했어요.

김해인 : 고등학생 시절 내내 입시 준비만 했어요. 경제학이나 경영학부로 진학하려고 했는데 정작 전공 선택할 때에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율전공학부를 선택했어요. 대학 입학하고 나니까 약간 의욕이 상실되었어요. 수능 끝내고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어요. 공부만 하느라 하고 싶은 일 못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의미로요. 그 뒤로 주말마다 요리봉사를 나가게 됐고, 실제 요리사분도 많이 만났고, 점점 요리에 빠져들었어요. 주말에는 요리봉사, 주중에는 학교에 나갔어요. 학교 수업 중에도 “나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나?”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고, 매 순간 요리라고 대답이 나왔어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는 게 맞다 생각해서 무작정 왔어요.

 

요리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진로를 세우는 데 확신이 있었나요?
어려움은 없었나요?

박주영 : 디자인도 그렇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렇고,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이전에 했던 일들이 요리와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기술을 배워서 오래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 우리는 기술이 좋은 세대에 태어나서 120살 까지 살 거에요. 앞으로 반 평생을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직업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아깝지 않은 것 같아요.

전미미 : 고등학교 때 저는 야자 빼고 요리학원 다녔어요. 제과 제빵 쪽 수업을 듣고 자격증도 땄어요. 딱 거기까지. 요리 전문 고등학교도 가려고 했었는데 어머니께서 말리셨어요. 여느 어른들이나 그러잖아요.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어요. 기본적인 교육이나 교양수업이 이뤄져야 나중에 많은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평범하고 일반적인 길을 걸었던 사람들과 공감대가 생기기 어려울 거라고 걱정해주셨어요.
저도 “요리가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아”라는 정도의 강한 고집이 있던 건 아니었거든요. 좋아하던 일의 연장이었죠. 제가 삼성에 들어갈 때는 마침 운 좋게 사람을 많이 뽑던 해였어요.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이 생겼기 때문에 고민은 계속 있었어요 삶이 안정적이니까 계속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 생각도 했어요. 안정적이죠. 그런데 안정적인 게 전부였어요. 그리고 그 안정적인 삶도 길어야 40대 초반까지만 보장되거든요. 직장생활을 할수록 “나는 한국에서 못살겠다” 확실해졌어요.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님께서 반대하시진 않았나요?

박주영 : 전 아직 젊으니까 외국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그게 서른 후반의 나이에 할 말이냐면서 부모님은 노발대발했어요. 늦은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간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우려했어요. 제가 고집을 부렸죠.

김해인 : 처음엔 반대하셨는데 설득시켰어요. 마음을 돌리는 데 한달 정도 걸렸어요. 제가 하고 싶어 하니까 막을 수는 없죠. 대신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 책임도 저에게 있어요. 부모님께서는 반 년 동안의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해 주셨어요. 그 이후의 필요한 생활비와 학비 모두 제가 벌어서 충당하고 있어요. 부모님께서는 지금도 한국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으세요.

최민아 : 저희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독립적으로 키우신 편이었어요. 그래서 믿어주는 면들이 많아요. 동의하거나 지지하진 않더라도, 너의 선택이 그러하다면, 너가 행복하다면 하라는 분위기요. 정말 가까운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저를 오히려 부러워해요. 한국 여성들은 애기 낳고 나면 산후우울증도 겪고 심리적으로도 위축되거든요. 사회적으로도 약간 고립되고요. 그런 친구들은 저를 통해서 오히려 대리만족하고 있어요.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써의 삶도 아름답지만,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투자하고,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것은 친구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일이거든요. 그런 저를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많아요.

전미미 : 부모님이 제 선택을 지지해준 건 완전한 독립을 했을 때부터였어요. 그 전에는 철없는 딸의 투정으로 받아들이셨어요. 요리사라는 직업에 발을 담그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부모님은 한국에서 대학교 갈 게 아니라면 직접 벌어서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3년을 모았는데, 또 다시 막으셨어요. 지금 모은 돈으로는 학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하나도 없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돈 버는 재미도 없고, 지칠 것이다. 일이 잘 안 풀려서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 직장도 없고 빈손일 텐데, 완전히 제로베이스로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완충장치가 될 수 있는 목돈을 마련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3년을 추가로 돈을 모았어요.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시는 분들 보면 부러워요. 우리 부모님은 독수리 부모님이에요. 자립심을 키워주려고 하거든요. 저는 20살이 되는 순간부터 모든 지원이 끊겼어요. 20살에 호주 워킹 올 때 비행기 티켓값, 어학원 3개월치를 마지막으로 지원받은 게 없어요. ‘쉽지 않구나’라는 걸 처절하게 느꼈어요. 나에게 맞는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유학은 어려울 것 같아요. 목돈을 만들지 않고 3년 전에 왔다면 저는 굉장히 불안했을 것 같아요.

 

요리를 실제로 해보니 어떻던가요? 어렵거나 힘들진 않았나요?

전미미 : 셰프라는 직업은 아직 안 해봤지만, 셰프크루 커뮤니티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몸이 너무 힘들다고 해요. 사실 어떤 직업이든 정신적인 힘듦은 어디에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다니던 대기업도 이직률이 굉장히 높았거든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뜻이에요. 돈을 거저 주지 않더라고요. 저는 그 때 일하면서 저 자신을 직장에 갈아 넣어야 했어요. 어떤 직업이든 힘들거나 힘들지 않다거나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박주영 : 이걸 직업으로 삼으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체력적으로도 힘들겠다고 생각해요. 요리를 고상한 취미생활로 즐기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집에서 식사를 챙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여기서는 생활비뿐만 아니라 학비도 벌어야 돼서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학교 입학 전부터 카페 일자리를 찾았어요. 저는 두 번째 오는 호주라서 어렵지 않지만 어린 친구들은 이런 생활 계획적인 부분에서 힘들어할 수도 있을 거에요.
“나는 요리만 해. 나는 만들기만 할거야”라는 생각으로 오면 안 돼요. 그 외적인 과제, 자발적인 학습이 정말 많아요. 어린 친구들은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중도 포기도 많이 해요. 학교잖아요. 어느 학교든 숙제가 있고 과제가 있어요. 저도 이렇게 과제가 많을 줄 몰랐어요. 실습만 따라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룹과제, 문제해결, 시험도 많아요. 시간 관리 잘 해야 돼요. 저는 일도 하면서 학교도 다녀야 하니까, 학기 중에는 4~5시간씩 밖에 못 잤어요.

김해인 : 한국에서 요리봉사를 통해 제가 만났던 요리는 나눔의 의미로서의 요리였어요. 그 때에는 요리에 대한 환상이 약간 있었던 것 같아요. 요리는 무조건 좋은 거라고만 믿었거든요. 여기서 만난 요리는 조금 달라요. 저는 경제학 분야에서 자본주의 폐해를 지적하는 부분에 공감을 했거든요. 제 3세계의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이나 공정무역을 통한 사회운동들에 관심을 가졌었어요. 그걸 한동안 망각하고 있다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너무 많은 음식들이 버려지는 걸 보고 다시 생각났어요. 예쁜 모양, 완벽한 퀄리티의 요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버려지는 재료가 너무 많았어요. 제가 처음 시작한 요리의 의미로 보거나, 제 가치관에서 보더라도 올바른 요리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고민이 많이 들어요. 제 소신과 충돌하는 데에도 시키는 대로 일하는 주관없는 요리사는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뒤늦게 들기도 해요.

최민아 : 제가 체력이 강한 편이 아니에요. 겁이 많이 났어요. 주변에서 저를 아시는 분들은 만류했어요. 여자에다가 체력도 약해서 다 못할 거라고 말했어요. 오기가 생겼어요. 어쩌면 정신적인 싸움일 수도 있겠다. 버텨봐야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그리고 한국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는데 들어가는 것부터 쉽진 않았어요. 주방장들도 다 저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저를 써주기가 한국 문화상 어려운 거에요. 그래서 호텔조리학과 교수님을 통해 소개 받아서 첫 취업을 했었어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지?” 생각이 들었어요. 다리뿐만 아니라 온 몸이 붓고, 집에 오면 누구한테 맞은 것처럼 몸이 아픈 거에요. 선배들이 2~3달이면 몸이 적응한다고 얘기했는데 3달 지나니까 거짓말같이 다리도 안 아프고, 몸이 견딜 만 해졌어요.
취미로서의 요리는 선택사항이에요. 직업으로서의 요리는 의무사항이에요. 정해진 시간, 열 시간 때로는 열여섯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고, 식사시간도 정해지지 않고, 어떻게 보면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마저 다 포기해야 하는 상황들이 닥치기도 해요. 나는 요리를 정말 하고 싶은데, 나에게 요구되는 것은 반복적인 과업들이에요. 감자 70키로를 씻고 자르고를 반복해요. 이 반복되는 과정의 무의미해지고 지루한 일상을 견뎌내는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시간들을 겪게 되면서 스스로는 더 강해지고, 육체적으로도 강해져요. 이런 과정을 겪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칼질, 손놀림, 요리기술이 쌓이는 직업 같아요. 저는 지금도 주방에서는 경력 3년차의 막내에요. 5년차가 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자신을 내려 놓고 겸손해지고, 밑바닥이 어딘지 알면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요리유학을 갈 수 있는 여러 나라가 있었을 것 같은데,
왜 호주를 선택하게 되었나요?

박주영 : 호주에서 1년을 살아봤기 때문에 고민없이 호주로 정했어요.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에 대해 배우고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잖아요? 저에게 호주는 그런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는 나라인 거죠. 한국에서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데 여기는 그런 면은 적어요. 한국에서는 “그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여자가 요리사 한다고? 너보다 나이 어린 상사 밑에서 일하려고?”라는 얘기를 듣게 되죠.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도 사회적 통념에 반대되는 듯한 충돌을 겪어요. 요리를 한국에서 시작하면 새 직장을 잡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호주에 왔어요. 내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 할 텐데, 그 경험은 호주에서 쌓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는 한국에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오고 나니까 이 곳에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서 영주권을 따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최민아 : 호주는 정말 매력이 많아요. 자연이랑 가깝고, 신선한 식재료가 많고, 관광산업이 발전해서 외식업도 수준이 높아요. 세계적인 레벨의 레스토랑도 많아요. 요리교육 사업도 같이 발전되어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학교도 많아요. 여러 측면에서 다 매력적이라 생각해요. 저는 외국에서 계속 생활할 생각을 갖고 있어서 영어가 좀 더 준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요리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영어도 같이 공부해서 국제적인 적응력을 갖추면 좋잖아요?

 

유학 준비 중에서도 영어 부분에서 어렵진 않았나요?
어학원을 다녔다면 어떤 코스, 커리큘럼을 거치고 있나요?

박주영 : 영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선 한국에서 IELTS 점수를 땄어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국에서 준비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어학시험을 쳐본 게 8년 전 토익이 전부라서 공부 계획을 세우는 데에만 2달 정도 걸렸어요. 부산에 살다 보니 서울에 비해 어학원도 많지 않았고 수업 시간대도 맞지 않았어요. 일하면서 공부해야 하니까 독학할 수 밖에 없었어요. 어학원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요리학교 학비에 보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고, 입학 가능 점수 만드는 데에 약 5~6개월 정도 걸렸어요.

김해인 : 저는 미국보단 유럽이나 호주권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IELTS시험을 준비했어요. 가장 빠른 시험부터 신청한 뒤 공부를 시작했어요. 당시 대학교 1학년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학교 공부는 안 하고 한 달 내내 IELTS 공부만 했어요. 점수는 7.0을 받았어요. 점수를 받은 상태로 유학 방안을 찾다가 셰프크루를 만나게 되었어요. 종로에서 진행하는 유학설명회에 갔는데, 영어를 그렇게 강조하더라고요. 저는 영어 점수가 있으니까 그 부분이 문제가 안 되잖아요? 유학설명회 끝나고 바로 전화통화로 추가로 상담받고 바로 입학신청 절차 들어갔어요. 수속까지도 2달이 안 걸렸어요. 입학시기를 맞추느라고 조금 기다렸는데 총 4달 걸렸어요.

전미미 : 어학 공부 효율을 따진다면 한국에서 공부하면 훨씬 효율적이에요. 저렴한 가격에 정말 잘 가르쳐줘요. 점수만 올려두고 현지 적응을 위해 어학원은 잠시 다니는 게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효율적이에요. 그런데 저는 어학원을 10개월 동안 끊었어요. 수업은 IELTS 점수가 없이도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EAP(대학진학준비코스English for Academic Purpose)를 밟고 있어요. 이 코스도 별도의 시험은 쳐야 되요. EAP 코스를 들으려면 하이인터High Intermediate레벨 수업을 들어야 해요. 그 정도면 IELTS 5.0 정도 나오는 수준이거든요. 시험에 대한 압박이 적을 뿐이지, 영어 공부를 덜하거나 장벽이 낮은 건 아니에요.
어학원 다니는 기간에는 영어에만 집중하려고요. 워킹홀리데이하면서 느꼈던 건데, 일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는 것은 쉽지 않아요. 간혹 가다 한 분씩 보여요. 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저는 제 자신을 알아서 그렇게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요. (웃음)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어서 그렇게 될 수 없어요”라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을 무리하게 세워서 실패해선 안 되잖아요?

최민아 : 저는 IELTS시험은 미리 쳐두었기 때문에 점수는 문제가 안 됐어요. 그런데 영어는 아직도 저에게 큰 숙제에요. 현장에서 정말 빠른 속도로 일하려면 말들을 알아듣고 반응해야 하는데, 아직도 항상 긴장하고 있어요.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해서 배려하고 봐주지 않아요. 영어 공부는 지금도 틈틈이 하고 있어요.

 

현지 생활은 어떤가요?

전미미 : 저희 집은 부자는 아니지만, 부족함은 크게 못 느끼면서 살았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할 수 있었고, 편하게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살이 되면서 호주로 처음 자립했을 때 느꼈어요. “내가 편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의 희생이 있어서였구나” 나는 그 편함을 포기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호주에 있으면서도 독방을 쓰고 싶었고, 취미활동도 많이 하고 싶었고, 여행도 자주 가고 싶었어요. 이런 것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포기가 힘들더라고요. 저는 지금 어학원을 조금 넉넉한 기간으로 다니고 있는데, 요리 시작하면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에 미리 쉬어두는 것이기도 하고, 지난 6년 동안 수고했던 저를 위해 보상해주는 시간이기도 해요.

박주영 : 한국에 다시 갈 생각으로 왔는데, 여기 오고 나니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서, 영주권 딸 수 있는 쪽으로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여기서 지내는 중에도 이민법이나 비자법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정책들을 염두에 둬야 해요. 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김해인 : 호주에 한 달 살고 나서, 현지 생활이 적응될 즈음부터 일을 시작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처음엔 의사소통 문제도 많았어요. 호주 영어만 할 줄 알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주방에는 다국적 요리사들이 많이 모이거든요.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당시에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위축된 상태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한국인 셰프들이 주변에 많아서 극복할 수 있게 서로 도움을 많이 줬어요.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신 분은 두 분인가요?
두분 모두 1년 가까이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현지 요리사 생활은 어떤가요?

최민아 : 학교 2년 기간 중에 1년이 끝났어요. 입학하고 나서 1달 만에 일을 구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2년 동안 모은 돈이 학비와 생활비에 급속도로 빠져 나가고 있었거든요. 마음이 급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력서를 70군데 돌렸어요. 그 중에서 트라이얼까지 이어진 곳이 4곳이고, 그 중 한 곳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작은 레스토랑이었는데 5개월 일했어요. 겨울에 저는 근무 시간을 더 늘리고 싶었는데 연말 휴일이 되자 손님이 적어서 늘려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식당으로 옮겼어요. 두 번째 식당은 셰프만 마흔 여섯 명 있는 큰 주방이에요. 이 곳에는 6개월 동안 일했고, 극한 체험 중입니다. 

김해인 : 학교마다의 커리큘럼은 조금씩 달라요. 저는 1년 더 다녀야 하는데 실습부터 우선 끝나고 이론만 남은 상태에요. 지금까지 2곳의 레스토랑에서 일했어요. 같은 벤틀리의 계열사이긴 한데 주방 환경은 많이 달라요. 처음 8개월 일한 씨러스는 파인다이닝 음식을 하는 곳이고, 지금 4개월 째 일하고 있는 모노폴은 바 형태에서 간단한 음식을 내보내고 있어요. 콜드 라더 섹션에 있었는데, 그렇게 한 두달 일하다가, 디저트 섹션이 너무 즐겁게 일하는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총주방장에게 디저트 파트로 옮겨달라고 말했어요. 말할 때 긴장해서 떨면서 말했는데, 그냥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요리를 전공하고 있지만 디저트, 케이크, 페스트리 쪽이 더 많은 관심이 생겨요.
첫 식당은 주방에 15명이 일했고, 지금은 5명이서 일해요. 이전 업장에서는 맡을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작은 주방 내에서 다른 동료들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나는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서비스는 어떻게 나가고 있는지 등 전체적인 흐름을 배울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요즘은 5일 일하고 2일 학교 가요. 휴일이 없어요. 계속 이렇게 일하게 될 것 같아서, 일주일 동안 여행가게 휴일 달라고 말해놓았어요.

유학 준비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전미미 : 저는 19살 때 진로 고민할 때부터 정보를 찾았어요. 당시 10대인 제가 찾을 수 있는 정보는 너무 적더라고요. 인터넷이랑 박람회가 전부였어요. 찾아보면 모두 좋은 얘기만 반복했어요. 꿈과 희망을 주는 얘기들. “이렇게 하면 당신도 할 수 있어”, “좋은 학교야, 졸업하면 취업해, 취업하면 영주권 나와”라는 얘기만 있었어요. 그런 게 신뢰가 가지 않았던 거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요. “요리학교 졸업하면 일자리 구해야 할텐데, 주방에서는 경력자만 찾는데, 경력도 없는 널 누가 써주겠어?”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곳이 없어요. 그래서 직접 가보는 수 밖에 없었어요. 20살에 호주에 와서 살면서 문화 차이도 느꼈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몸으로 겪었어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회사를 다니는 중에도 정보는 꾸준히 수집했어요.

최민아 : 저는 요리 경력과 레스토랑 사업 경험을 쌓아서 중동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어요. 학교를 다니고 경력을 쌓으려고 했는데, 학비가 너무 비싸니까 순서가 바뀌었어요. 일을 먼저 했고, 요리학교는 요리를 시작한 지 3년차가 되었을 때 진학할 수 있었어요. 호주의 요리학교는 기술학교다 보니 비싼 편이에요. 한국에서 2년 요리사로 일하니까 호주 요리학교 1년 학비를 겨우 모을 수 있었어요.
중동에 있을 때 르꼬르동블루가 레바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알아봤었어요. 중동 쪽 유학원 정보는 전혀 없더라고요. 한국 유학원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연락했고 알아봤어요. 레바논에 있는 학교를 몇 곳 추천해줬는데, 정작 수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가 원하는 수업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호텔경영이랑 외식경영 이론수업만 있는 학사과정이더라고요.
외국에서 준비할 때에는 너무 막연해요. 유학원들은 수속을 시키는 것만 목적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상담이나 자세한 사실 확인 등은 제쳐두고 의뢰자에게 동기 부여해서 빨리 수속 절차 밟도록 유도하려는 게 너무 티 나거든요. 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유학원을 검토하다가 셰프크루 블로그도 발견하게 됐었죠.

박주영 : 저는 유학원만 세 번 거쳤어요. 제가 좀 꼼꼼한 성격이라서 유학원에서 요청한 서류나 문서를 빠짐없이 챙겨 줬는데, 유학원에서 작은 실수가 너무 잦았어요. 나는 큰 결심을 하고 가는 일인데, 내가 생각하는 절박함만큼 일처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주더라고요. 수속 절차에서 생긴 실수로 학교에서 입학 거부당하면 제 계획이 모두 틀어지잖아요.
첫 번째 유학원에서는 에볼루션에 지원했는데 오퍼 레터를 받지 못했어요. 화상통화까지 진행했는데도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어요. 경력있는 사람만 요리 학교를 들어가야 하나요? 아니잖아요? 없으니까 가는 거잖아요? 모르니까 배우러 가는 거잖아요? 학교 측에서 왜 그런 답변을 보냈는지도 모르겠고, 유학원은 왜 저의 적극성을 어필해주지 않았는지도 이해가 안 돼요. 결국 서류상에서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이 학생이 입학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학교 측에 어필해주면 좋은데, 전혀 그런 노력을 해주지 못해요.
두 번째 유학원에서는 빠티셰 학교로 지원했어요. 그 때가 12월 말이었는데, 호주에는 연말 휴일이 길어서 일들이 많이 미뤄졌어요. 거긴 수속비도 별도로 요구해서 냈었어요. 그런데 제이 셰프 만나서 들어보니 수속비는 원래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두 번째 유학원에서도 진행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수속비는 다시 받아냈어요. 그렇게 유학원만 찾아보면서 시간을 두 세 달 낭비했어요.
저는 나이도 있고, 비자도 거절될 확률이 높다는 상황 때문에, 모든 우려 사항을 염두에 두고 있거든요. 다른 어린 친구들처럼 어려서 신청하면 대부분 비자가 나오면 저도 걱정 안 했을 거에요. 결국 유학원에서 대행을 해주더라도 결국 신청자 이름은 제 이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모든 신청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제 책임이거든요.

김해인 : 저는 셰프크루 알기 전에는 유학원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검색하면 요리대학교 다 찾을 수 있고, 웹사이트에 연락처도 다 나와 있잖아요. 요리대학교 국제학생부에 직접 연락하면 방법도 알려주더라고요. 각 학교 교무실이나 행정실에 연락해서 내 상태를 알려주고, 어떤 조건으로 진학할 수 있는지, 커리큘럼은 어떤지, 장학금 제도는 있는지, 기숙사 여부도 일일이 따졌어요.

 

그럼 셰프크루를 통해 유학을 진행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요?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김해인 : 현지 요리사 출신이라서 다른 점을 모두 제외하고, 기본적인 은행 계좌 개설, 휴대폰 개통 같은 현지 적응도 도와줘요. 셰프크루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면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나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선후배도 만날 수 있고요. 한국을 떠나서 요리를 배우러 왔다는 것만으로 친해질 수 있고 공감대가 생겨요. 이게 가장 큰 도움되는 부분 같아요.

전미미 : 몇 년 동안 유학 관련 정보를 찾다 보니, 내가 받아들여야 할 정보와 걸러내야 할 정보가 구분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셰프크루를 접하게 됐어요. 유학원 중에서 유일하게 안 좋은 얘기를 올려 놓은 곳이었어요. 블로그에 올려 놓은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니까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디테일한 부분에 공감이 됐어요. 진정성이 보였어요. 이 정도면 내가 비자를 맡기고, 이 곳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속하기 전까지 설명회 열릴 때마다 3번 찾아가니까 그만 찾아오라고 하더라고요. 첫 설명회 갔을 때에도 입학 예정일은 1년 6개월 뒤로 잡고 계획하고 있었거든요. 매번 똑 같은 얘기를 하는데 자꾸 오냐고 묻길래 “셰프님 보러 왔죠~ 팬이에요~” 하면서 계속 찾아갔어요.

박주영 : 셰프크루는 유학설명회에서 처음 만났어요. 다른 유학원을 통해서 입학 신청하던 상황을 설명하고 제 고민을 털어놨어요. 답변은 시간 낭비일 거라는 거였어요. 첫 유학원에서 실패한 것처럼 안 될 거라고. 나이도 많고, 워킹 경력도 있기 때문에 법이 바뀌는 시점에서 비자가 안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비자가 거절되는 것은 입학 거절보다 더 큰 문제거든요. 이민성에서 거절되면 아예 호주로 유학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거든요. 르꼬르동블루로 입학한 것은 비자 발급 안정성 때문이에요. 학비가 비쌌기 때문에 고민이 안 된 것은 아니에요. 더 저렴한 학교도 고려했는데, 전 확실한 계획이 필요했어요.

최민아 : 셰프크루 블로그에는 미사여구가 없어요. ‘세계 최고’, ‘세계 유일’ 이런 표현들이 없어요. 오히려 그런 학교의 혜택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알려줘요. 르꼬르동블루 출신인 사람이 자신의 모교를 설명할 때에도 그렇게 얘기하니까, 진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이 사람은 진심으로 후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글 읽는 중에 들어요.
서울에 왔을 때 직접 만났어요. 돈은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영어 점수는 받아왔는지를 따지더라고요. 제가 세운 계획도 다 무너졌어요. 이름있는 곳에서 제대로 된 출발을 하고 싶었거든요. 유명한 학교를 들어가는 게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고, 투자 대비 얻을 수 있는 게 작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적정한 수준의 학비와 적정한 교육이 제공되는 학교를 찾았어요. QTHC라는 학교가 애들레이드에서 시드니로 분교를 내려던 차에 전교생에게 5천불 가량 장학금 지급 프로모션 시즌이 있었어요. 저는 다행히 혜택도 받았어요.
학교에 대한 기대감은 줄이는 게 필요해요. 내가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사람들이 알아봐줄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에요.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은 정말 기초적인 지식이에요. 어떤 학교든 그 정도는 제공해요.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 수련을 통해 얻게 되는 기술이에요. 학비가 비싼 학교는 좋은 재료를 써서 좋은 실습 환경이 주어지지만, 그 비용대비 현장 실무에 크게 도움되진 않아요. 업장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새로 배워야 하거든요.

 

셰프크루 사람들 끼리도 자주 모이나요?

최민아 : 셰프크루는 요리유학만 집중적으로 하기 때문에 행정력도 좋고 수속이나 여러 절차에서 일처리가 깔끔해요. 일은 일대로고, 셰프크루는 유학원이라기 보다는 동료의식이 뭉쳐있는 끈끈한 공동체에 가까워요. 같은 학교에도 한국인이 많은데, 셰프크루를 통해서 온 사람들은 한 번씩 봤던 사람들이니까 더 가깝게 생각해요. 다른 유학원에서 온 친구들은 놀라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유학원만 같을 뿐인데, 어떻게 저렇게 친하지?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팔로업해주는 곳은 없거든요.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들, 만남을 추구하는 곳이에요. 이런 건 상업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인지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전미미 : 타지에 나와서 셰프크루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엄청 큰 경험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유학 후기 글도 읽다 보면,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몇 있는데, 실제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셰프크루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건 정말 도움되고 매력적이에요.

 

제이리 셰프는 어떤 사람인가요?

전미미 : 셰프크루는 요리유학에 있어선 현실을 바라보게 해주는 유학원, 정신차리게 해주는 유학원이에요. 삼성전자 그만두고 요리유학 갈 거라고 했을 때 들은 얘기가 “미쳤어요?”였어요. 본인이라면 절대 안 간다고 하는 거에요. 유학원 대표라는 사람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박주영 : 제이 셰프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해줘요. 그걸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요. 다른 유학원에서는 절대 얘기해주지 않는 얘기들이 많거든요. 여러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아내는 게 당사자에겐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제이 셰프가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받아들이길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고객이니까 극진한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들은 좋은 말만 해주는 다른 유학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최민아 : 호주에 오고 나서는 제가 바빠서 자주 보지 못하고 있지만, 어렵고 고민있을 때는 연락하면 언제든 시간을 먼저 내주고 진심으로 고민을 들어줘요.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항상 있다는 건 큰 도움이 돼요. 마음을 기댈 언덕 같은 거죠.

 

요리유학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자면?

전미미 : 셰프크루 설명회에서 알게 된 20살 동생은 정말 준비를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요즘 애들은 정말 생각도 깊고, 고민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반면 간혹 가다 꿈만 꾸고, 청사진만 크게 그리는 친구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겐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집에서 지원을 해주면 좋지만, 지원이 안 된다고 해서 조바심 가지지 않고 계속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6년 걸려서 왔잖아요.

김해인 : 저는 1년 전의 저에게 조언을 해보자면, 오라고 할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할 거에요. 지금도 한국으로 돌아갈지, 여기서 요리를 더 할지, 다른 공부를 할지 여전히 걱정이에요. 지금 당장 요리를 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무작정 왔어요. 대학교도 버리고, 힘들게 본 수능점수도 버리고, 부모님과 친구들도 다 제쳐두고 왔어요. 뭔가 많이 포기한 것 같지만, 요리라는 분야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기고, 스스로에 대한 용기도 생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부딪혀 봐야만 답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부딪히라고 할 거에요.

박주영 : 유학설명회든 상담이든 아무 고민 없는 상태에서 찾아가봐야 도움 안 돼요. 내가 조사하고 공부한 뒤에 부족한 것을 물어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말 기본적인 질문을 하는 건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영어는 어느 정도 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이 실제로 나오더라고요. 찾아볼 수도 있고,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해봐도 뻔히 답을 찾을 수 있는 얘기잖아요. 본인 인생이고, 본인 공부인데 스스로 알아보고 뽑아 먹으려고 해야 더 얻을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해선 안 돼요. 다른 유학원이든 셰프크루든 본인 인생을 대신 책임져줄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최민아 : 용기 있게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택하기 전에 본인이 이 일을 끝까지 할만한 준비가 된 사람인지도 점검해봤으면 좋겠어요. 요리사가 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한 뒤,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이 생겨요. 그 시간은 아깝고 비용도 많이 드는 선택이기 때문에, 이 과정을 사랑하고 끝까지 지켜 갈만한 열정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면 좋을 것 같아요. 현실은 상상하시는 것보다 냉혹하고 정말 어렵다는 것 알려주고 싶어요. 한국인들은 성실하고 일 잘한다고 알려져 있죠? 저도 많이 들었던 얘긴데요, 호주 와서 보니까, 유럽 친구들, 호주 친구들, 우리와 비교 안 될 정도로 열심인 애들 넘쳐요. 체력도 좋아서 혀를 내둘러요. 이런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 남으려면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해요. 그리고 그만큼 이 일을 좋아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주방에서 일하는 건 운동경기 피크타임 같아요.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스피드를 올려서 식재료를 만지고 요리로 창조해내죠. 이런 급박한 상황 뒤에는 누군가가 먹어 준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안도해요. 이런 상황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사람이라면 맞지 않을 거에요. TV에 나오는 요리사의 포장된 모습은 찰나적 순간이에요. 그런 모습에 미혹되지 않고, 이런 요리사의 일상들이 자신의 삶으로 이어졌을 때 견뎌낼 수 있는 인내와 지구력이 있어야 주방에서 일할 수 있어요. 이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용기있게 선택하실 수 있을 거에요.

 

2018년 10월 셰프크루 유학설명회 신청하기

“모든 경험은 하나의 아침, 그것을 통해 미지의 세계는 밝아 온다. 경험을 쌓아 올린 사람은 점쟁이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당신이 오너라면 유명 레스토랑에서 허브 정리나 잔기술을 배운 사람보다 작은 곳이라도 재료를 다듬고 불을 다뤘던 일을 한 사람 중 누구를 채용하겠는가? 요리사는 경험이 곧 스펙이다. 오감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실제로 그 맛을 구현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등학생 6만 3,862명을 대상으로 장래 희망을 조사한 결과 여학생은 3위, 남학생은 6위에 요리사를 꼽았다. 요리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요리유학을 가고 싶어 유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호주는 요리 유학을 많이 오는 나라 중에 하나다. 유학원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요리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스타셰프가 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쳐보면 괴리감은 상당하다.

이홍규 셰프는 호주에 온 예비 요리사들의 꿈을 설계해주는 요리사다. 일반적인 유학원에서는 대접받는 학생들이, 그를 만나면 혼이 나곤 한다. “도대체 왜 요리를 하려고 하세요? 요리사는 프로페셔널한 세계로 들어오면 너무나 힘든 직업이에요. 그래도 하겠다면 헛된 꿈은 버리고 오세요.” 실제 주방에서 일을 하지 않고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호주 주방에서 10년째 활동하고 있는 그와 동료들이 후배 요리사들을 위해 뭉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호주로 요리 유학을 가는 요리사 지망생의 선배로써 의무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유학 상담, 제 2의 삶을 살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배움이 빨리 느는 경우도 있다. 많은 요리사들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서 스타지Stage를 통해 경험을 쌓고 있다.

불과 2년 전만해도 이홍규 셰프는 요리유학 컨설팅 그룹인 셰프 크루Chef Crew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우연히 걸려온 전화 한 통화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날이었어요. 밤에 술 한잔 하고 자려고 누웠는데, 어느 여학생이 울면서 전화가 온 거에요.” 여학생은 호주에 도착한 지 두 달이 넘도록 직업을 구하지 못했던 요리사 지망생이었다. 영어도 잘 하지 못했고 성격도 내성적이었던지라 직업을 구하지 못한 시간이 계속 길어지고 있었고, 블로그에 적힌 글을 보고 용기 내서 전화했다고,

이홍규 셰프는 여학생을 일주일 만에 취업시켜 준 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제일 큰 규모의 유학원을 통해서 왔는데도, 사무적인 일만 계속 처리해주는 유학원에서는 실정에 맞는 지원을 제대로 못해주고 있구나.” 그리고 “이거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겠다!”

그의 유학원이 다른 유학원과 차별되는 점은 모두가 요리사 출신이라는 것이다. 비자를 신청해주고 유학 절차를 진행하는 건 어느 유학원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현직 요리사들은 학교 정보 같은 획일적이고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닌, 주방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반 유학원은 서류를 보내면 끝이에요. 하지만 저희는 학기가 시작되면 진짜 일이 시작돼요. ‘진로 계획’, ‘실무에 대한 조언’, ‘기타 개인적인 고민’도 들어줘요. 이 시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죠.” 요리 유학생들에게 건네는 말은 곧 이홍규 셰프가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 주방의 세계로 들어오다.

그의 요리 인생은 무지(無知)상태로 시작했다. 요리에 ‘요’자도 몰랐다. 심지어 외삼촌도 ‘너가 요리사가 되면 난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할 정도였다. 지방 4년제 학교를 나와 미래를 고민하던 택한 길은 어학연수였다. 일반 유학원의 말만 믿고 세계 3대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했다.

그에게 있어 요리는 관심 밖이었다. 재능도 없었다. 실습 자체가 그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것들이었다. 요리학교의 이론수업은 영어로 진행하기 때문에 숙제나 발표에 대해 스트레스가 쌓일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요리를 가장 못하고 가장 어렸어요. 첫 날에 손까지 베어서 3일동안 요리를 못할 정도였어요. 형들한테 꾸중도 많이 듣고, 그 때 당시 돈도 필요해서 새벽 청소 하고 오면 학교 생활을 잘 못했었죠”

졸업 후 2개월 동안 칼을 잡지 않았다. 다른 일을 하려고 찾아 다녔지만 영어라는 장벽에 가로 막혀 쉽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그는 제이미 올리버, 테쓰야, 고든 램지 같은 요리사가 되고 싶은 생각을 점점 키워갔다. 하지만 주위에는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이었다. 그날부터 호주를 돌며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 중엔 이력서를 100번도 넣은 곳도 있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선정되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 리스트에는 빠지지 않고 상위권으로 등장하는 테쓰야Tetsuya 레스토랑이다.

경력이 없어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던 그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체력이라도 길러야 되겠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 조깅을 하던 날이었다. 활짝 열려 있는 테쓰야 레스토랑 철문은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잠시 둘러보고 나가려 했는데 그만 문이 닫혀버렸어요. 3시간을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첫 출근하는 셰프한테 들켰죠.” 그의 간절함은 한참을 기다려 만난 헤드셰프에게 비로소 통했다. “헤드셰프는 3주동안 스타지 하면서 생각해보자고 했어요. 선배들에게 혼도 나고 3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라요. 헤드셰프는 조용히 사무실로 불러서 말했어요. Welcome to my team!” 그는 한국인 최초로 전쟁같이 치열한 테쓰야로 들어갔다.

테쓰야에서 일하는 남녀 종업원을 합치면 25명, 코스는 11개이거나 12개까지 나간다. 하루에 오는 손님은 약 380명이다. 이 모든 걸 요리사 25명이 하루에 준비한다. 아침 7시 반부터 시작해 새벽 1시까지 일을 한다. 중간에 쉬는 시간은 단 30분이다.

이홍규 셰프는 주방에서 나이도 많고 영어도 유창하지 않아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남들에게 안 밀릴려고 그 때부터 요리공부, 영어공부를 제일 많이 했어요. 2년동안 일이 끝나도 매일 집에서 2시간씩 책을 쌓아 놓고 봤어요. 그날 공부한 거는 무조건 가서 아는 척했어요.”

 

대회 에피타이져 (김밥) copy

2012 영셰프 대회때의 에피타이져 대회작 source : ja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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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렛 가나쉬와 유자 그리고 라임소배, 수정과 막대 source : jay lee

식혜와 쌀 아이스크림 source : jay lee

| 레스토랑 ‘소통’에서 매력을 찾다.

“비결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었어요.” 수많은 후배를 상담하고 호텔이나 레스토랑 담당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주업무가 된 요즘, 그는 워낙 말을 좋아했던지라 천직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심지어 요리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주방에서 일할 때에도, 그는 누구보다 말하길 좋아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호주 주방에는 특히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요리사들이 있다. 그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선 모든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소통의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거는 팀이 있어야 돼요. 20명의 셰프들이 있는데 말썽을 안 피울 수가 없어요.  그들의 문화를 알고 이해하는 것 가장 커요.안 되면 팀이 하나가 될 수 없어요.” 이홍규 셰프는 자신이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사람들과의 소통이었다고 말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서 그는 요리 외에 전반적인 레스토랑 경영Management도 배워갔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를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되기에 돈과 결부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어느 팀에 얼만큼 맞고 누가 어디서 일하면 어떻게 팀이 굴러가고 틈틈히 살펴야 되고  회계, 메뉴에도 신경써야 되기 때문에 헤드셰프와 플로워랑도 관계를 잘 이어가야 돼요”

요리사는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경력을 쌓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는 자연스럽게 넓어지게 된다.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면 얻는 것은 무엇일까? ‘퀄리티가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 ‘경력에 도움이 된다’, ‘돈을 많이 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동료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가 생기고, 그들에게서 열정을 배우고, 그들로부터 전혀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동료 셰프들에게 자극을 많이 받았고 많이 배웠어요. 무엇보다도 너무 창피했어요 제 자신한테.”

한식축제 메인셰프 source : jay lee

유자무스 유자커드, 유자거품, 유자 머랭, 유자쿠키 source : jay lee

| “꿈을 버려라. 차근차근 순서를 밟자.”

칼도 제대로 잡지 못했던 그가 2012년도 호주 영셰프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한식을 선보여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주 TOP3 안에 입상했다. 지금은 호주에서 유명한 한국인 셰프가 된 그가 이제는 후배 요리사들의 멘토가 되어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그는 후배 요리사들에게 세 가지 조언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호주 유학은 영어를 밑바탕에 두어야 한다. “영어는 학교를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공부보다, 현지에서 하는 영어를 더 중요시 여겨야 돼요. 현지에서 ‘문화’ 라는 영어를 체험하고 경험해야 요리유학이 값어치가 있어져요.” 호주에서는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부딪칠 기회가 많다.

학비를 벌어서 학교를 다닐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학비가 비싼 학교에 다니면 학업과 일을병행하기엔 부담이 크다. “반드시 유명한 학교를 다녀야만 요리사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졸업한 뒤 좋은 곳에 취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학교는 학교일 뿐이에요. 학교가 셰프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셰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이홍규 셰프가 호주로 유학을 갔을 때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인기로 요리유학의 붐이 일었다. 지금도 스타 셰프 열풍이 불면서 많은 사람들이 셰프들에 대해 환상이 커지고 있다.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버릴까 걱정하는 그는 “꿈을 버려라.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그 순서에 맞추어서 꿈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기 보다, 할 수 있는 당장의 것들에 자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요리사의 활동 영역도 넓히고 있다. 그는 호주 한국인 조리사 협회 대표이기도 하다. 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선후배요리사들이 자신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며 예비 요리사들의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한 이들은 요리라는 공통적인 묶이는 만큼 전통 한식에 새롭게 발전된 요리 기술을 적용하여 모던 코리안 퀴진 개발과 한식의 세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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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프크루와 함께하는 “요리유학 & 요리이민 설명회” : 신청하기

“업장 내 주방은 틀에 갇힌 공간이잖아요? 여기 있으면 일반 요리사들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한국에 없는 소스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테스트해 볼 수 있다는 거?” 라며 지난 4월 중국 네슬레 북경 출장 중에 가져왔다며 곧 한국에 출시를 검토 중인 소스를 몇 개 꺼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글로벌 식품기업에 근무하면서 기본적인 레시피가 여러 요리사들에 의해 다양하게 활용되는 사례를 보고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3년도부터 네슬레 프로페셔널Nestle Professional(롯데 네슬레 코리아)의 사업부 셰프로 근무하고 있는 정지선 셰프를 만났다.

그녀는 중식계에선 몇 안 되는 현역 여성 요리사 중 한 명이다. 그녀도 이미 주방의 법칙에 익숙해졌다.

17일부터 SBS에서 <강호대결 – 중화대반점>이 방영되고 있다. 같은 팀으로 참여하는 최형진 셰프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다. “어유~ 독종이에요, 독종. 남한테 지는 걸 죽는 것보다 싫어해.”

요리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든, 요리가 힘들어 포기한 사람이든, 누구나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인 주방을 맞이하는 순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정지선 셰프도 “텔레비전에 보던 요리는 접시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첫 출근을 해보니 하루 종일 쉬는 시간 없이 서서 일해야 하는 막노동이라는 걸 알고 이틀 동안 무단결근을 한 경험이 있어요”라고 고백한다. 높은 노동 강도 때문에 주방에서 여성이 근무하기란 쉽지 않다는 이야기는 이미 보편적인 사실이다. 현업 요리사라면 누구든지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 자신을 변화시킨 사람임이 분명해 보인다.

 

| 여성 요리사가 주방에서 살아남는 법

딸만 셋인 집안에서 둘째로 자랐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 세 딸은 청소, 빨래, 요리를 분담해야 했다. 학교에서 국·영·수 교과서를 아무리 봐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 레시피만은 예외였다. 한 번만 봐도 모든 것이 그려지면서 기억돼 그 길로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방에선 남녀 구분하지 않아요. 살아남으려면 실력은 물론 체력에서도 밀리면 안 되고, 눈치와 순발력도 있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정지선 셰프는 좋아하는 요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보다 1년 늦게 조리과로 진학해 중식을 선택했는데, 그 당시 일식과 중식이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았다고 한다. 한 주방에서 한 명의 스부(師父)만 모시며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정통 비법을 물려받는 도제식 수련이 일반화된 이곳에서도 정지선 셰프는 일반적이지 않은 길을 택했다. 중국요리의 깊이와 이해가 필요해, “더 공부하자. 유식해지자. 중국에 가서 배우고 와야 정통 중국 요리의 깊이와 뜻을 알 수 있겠다.”

대학교 졸업식 날, 학교에 가지 못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어 중국으로 가야 했다는 그녀는 쉴 새 없이 배우러 다녔다. “저는 학비가 아까워서 수업을 빡빡하게 다 신청해서 들었어요. 아침 여덟 시에 나가서 오후 다섯 시까지 수업을 다 채워 듣고 방과 후에는 조각 학원도 따로 다녔어요.” 미리 수업을 들어 놓아 4학년이 되었을 땐 지역 최대규모 연회시설인 영빈관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주방에만 80명이 근무하는 규모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딤섬 파트에서 만두만 빚다가 끝나는 6개월의 인턴 기간이지만 여러 부서를 경험할 수 있게 배려받았다. 양주대학교에서 흔치 않았던 외국인인데다 중국요리를 배우러 왔다는 열정을 현지인들은 높이 샀다.

방학 때면 한국에 돌아와 선배의 도움을 받아 단기적으로 일을 구할 수 있었고, 한국에 완전히 돌아와서도 주방 인원이 적은 곳, 배달전문점, 중식-양식 퓨전 요리를 도전하는 오픈팀 등,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일했다.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쌓고,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고 살아남겠다는 각오가 지나쳐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 또 동료와의 다툼으로 번진 적도 많았다. “선배들은 저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쉬게 내버려 둔 건데, 저는 ‘왜 나를 따돌리냐’며 대들고 싸우기도 했어요. 조금 재수 없었겠죠?(웃음)”

 

| 공유의 매개체가 된 그녀

중식에도 여자셰프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모임이란 모임은 다 따라 나섰다. 그 결과 인력사무소를 차려도 좋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인맥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급하게 일손이 필요하거나, 사람을 구할 일이 있으면 저한테 먼저 연락이 와요. 저는 그걸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죠.”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 모범적인 사회생활이며 정통된 가르침인 업계에서도 그녀의 다양한 경험과 인맥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 소개에만 그치진 않는다. 중국 유학생활과 다양한 업장의 경험을 가진 그녀에겐 선후배 가리지 않고 레시피를 가르쳐달라는 요청도 끊이지 않는다. 레시피를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자신의 자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정지선 셰프는 “이걸 사람들에게 풀어야 다시 저에게 더 큰 재산으로 돌아오거든요, 누군가가 써줘야 이런 자료들도 빛을 보지, 내 거라고 가지고 있으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죠.”라고 덧붙인다.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네슬레 프로페셔널의 자문 셰프로 일하기에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네슬레가 네스카페라는 커피 브랜드로 많이 알려져있거든요. 푸드 솔루션도 있다는 활동을 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미 이런 것들을 중국에서 접했고, 학생 때부터 써왔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 역할을 맡으면 잘 표현할 수 있겠단 생각을 했어요.”

 

| 중국 정통 요리와 한국식 중국 요리에 대해

광활한 중국의 영토에서는 지방마다 기후, 풍토, 산물이 다양했고 지난 4,000년간 그 조리법들이 다양하게 발전했다. 중국인은 네 다리가 달린 것이라면 책상 빼고 다 먹는다는 그들의 식성을 빗대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식문화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한국의 중식당에서도 사용하는 제품군이 다양해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공부를 안 하면 거지가 된다고 믿거든요?(웃음) 그만큼 학구열이 어마어마해요. 경쟁도 뛰어나고 공부양도 많은 만큼 제품도 다양한 것 같아요. 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시즈닝 소스도 중국에서는 동네 슈퍼에서만 10가지 이상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전 한국중식당의 우육탕면도 그냥 간장을 그을러서 불의 맛과 향을 낸 후에 육수만 넣어서 끝내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시중에 나와있는 제품이 많지 않으니까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죠. 요즘은 중국의 다양한 제품이나 조리법이 들어오면서 중국본토의 맛에 가깝게 발전되어가고 있어요.”

 

| 글로벌 회사 네슬레 프로페셔널 한국 담당 셰프로서

“이전의 국내 중국요리의 맛의 대부분이 굴소스가 중심이 되어있었다면, 지금은 식문화가 많이 바뀌면서 소스가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어요. 해외에서 소스류가 수입되면서 다양한 맛을 찾는 소비자를 위해 음식도 다양해지고 있죠.”

예전엔 대부분의 중식요리에 기본으로 쓰이던 육수를 우려내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닭 육수를 하루 종일 끓이는 데 정성을 쏟는데, 네슬레 프로페셔널에서는 고급요리에 필요한 감칠맛, 풍미를 가지고 있는 스톡 제품도 있어서 일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른 것처럼, 더 많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어야 메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새로운 맛과 메뉴를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재료를 찾는 게 중요한 만큼 소스도 많이 공부해야 해요. 최근엔 제품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토마토소스도 이탈리아 요리에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중식에도 많이 쓰이고 있거든요.”

 

이어 정지선 셰프는 매기 시즈닝MAGGI Seasoning 제품을 예로 들며 쉽고 다양한 사용법을 설명한다.

“매기 시즈닝 소스는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었는데, 기본적으로 웍소스로 사용되고요, 설탕을 넣어서 한식 불고기 소스, 식초를 넣어서 향이 풍부한 딥핑 소스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  레시피는 절대적인 비술이 아니라는 그녀의 주장이 쉽게 이해되는 순간이다.

 

좋은 제품을 선별해내는 것도 요리사에겐 꼭 필요한 능력이다. 요리사의 일손을 덜어준다는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요리는 요리사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제품이 나올 수록, 단순히 반복해야 하는 일이나 고된 육체 노동에 쓰이던 에너지가 더욱 창의적인 요리를 하는 데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중식 식문화 발전을 위해 앞으로 더욱 많은 제품을 통한 레시피가 개발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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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_MMP_Logo_LockUp_VER_RGB네슬레 프로페셔널은 소비자 만족을 위해 늘 혁신적이고 창적인 식음료 솔루션을 연구하는 식음료 파트너로서 레스토랑, 카페, 베이커리,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 호텔, 연회를 비롯하여 테마파크, 대학교, 항공사 및 오피스 등과 같은 다양한 채널 최상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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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없어도 주방이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먹고 싶은 음식을 요청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주방 말이야. 오늘 저녁엔 멕시칸 타코를 먹고, 내일 아침엔 이탈리안 브런치를, 저녁엔 인도 스타일 카레를 먹을 수 있다면 좋겠어.

누구나 해봄 직한 상상이다. 우리가 어려서 읽은 과학 만화에도 자주 등장했던 소재로, 미래를 배경으로 상상한 이야기가 있다면 자동화된 스마트 주방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어설프게 그려져 있던 미래의 주방을 실제로 만들어내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지난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 CES에서 가장 주목받은 제품 중 하나인 몰리 로보틱스Moley Robotics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활동이나 지루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 처리해줌으로 인간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주방의 자동화나 업무 효율 향상에 대한 시도는 인류 역사와 함께 꾸준히 이뤄져 왔다. 현대의 주방은 탈피기, 블렌더, 식기세척기 등과 같이 갖은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선 음식을 만들어낼 수 없을 정도로 기기 의존도가 높다. 무엇 하나 고장이라도 난다면 그 날 주방은 마비되고 만다. 뭐, 이미 초밥도 컨베이어벨트가 대신 나르는 시대가 아닌가.

자동화에 능한 로봇이 새로 개발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인간의 일자리 대체 문제’도 함께 나온다. 컴퓨터기술과 로봇기술이 발달해 2030년이면 지구 상에서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단순 반복 작업이라면 더욱 대체되기 쉬워 요리사도 단골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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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로보틱스의 설립자 마크 올리니크Mark Oleynik,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로봇전문가인 그가 한국에 들렀다는 소식에 찾아 나섰다. 그는 지난 11일, 상암동 누리꿈 스퀘어에서 개최된 미래창조과학부의 주최 ‘K-ICT VR Festival 2015’에 초청되었다.

청중은 몰리의 작동원리나 기술만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다. 마크 올리니크는 인간이 지루하고 단순한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야 삶의 질이 더 높아질 수 있다며,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 가능성을 더 넓힐 수 있도록 몰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Q. 몰리는 어떤 요리를 할 수 있나?
인간의 팔 동작을 흉내 내는 것으로 몰리는 모든 종류의 음식을 재현해낼 수 있다. 세상에는 120종류의 음식문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를 전파하려면 요리사가 다른 요리사에게 조리법을 가르쳐주고 교육과 연습을 시켜야 한다. 몇 년이 걸릴 일이지만 로봇은 이를 복제하는 데 제한사항이 적다. 같은 재료만 제공된다면 어떤 나라의 음식도 세계 전역에서 복제해낼 수 있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의 메뉴는 일 년에 두어 번 바뀔 뿐이다. 몰리는 제한 없이 메뉴를 바꿀 수 있다.

Q. 몰리는 어떻게 작동하나?
영국의 마스터셰프 우승자인 팀 앤더슨Tim Anderson의 동작을 보고 학습하고 있다. 앤더슨은 카메라 앞에서 같은 요리를 20회 이상 반복했고, 그 과정의 손동작을 센서로 기억해 재현하는 방식이다. 로봇팔에 장착된 20개의 모터, 24개의 관절, 129개의 센서가 정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요리 장면을 재편집, 이를 디지털 알고리즘으로 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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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셰프 몰리의 실제 작동 모습

Q. 요리사의 영역을 대체하는 것인가?
두 종류의 고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고기가 더 좋은 고기인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이건 절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가치 판단이 다를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선 로봇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기계 자체가 똑똑해지기란 어렵다. 여전히 셰프의 영역은 남아 있다.

Q. 왜 휴머노이드인가? 왜 인간의 팔을 흉내 내는가?
로봇이 인간의 모든 시중을 들고 있다면? 로봇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면? 로봇이 이런 일을 대신 일을 해준다고 해서 인간이 행복해지진 않는다. 하지만 베토벤의 연주를 똑같이 재현해내는 로봇이 있다면? 피카소의 붓터치를 한 획 한 획 재현하는 로봇이 있다면? 이런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모두 감성적인 영역이다. 우리는 그저 복제품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작업 과정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과정도 받을 수 있다. 요리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손동작을 그대로 기억해야 요리하는 당시에 셰프의 영감과 감정상태를 그대로 기억할 수 있다.

Q. 아무래도 인간의 행동을 기억해야 범용성이 넓어지겠다.
주방을 작은 공장에 비유해보자. 이미 자동화 기계는 많이 나와 있다. 초밥을 만드는 기계라거나, 국수 면발을 뽑아내는 기계라거나, 라면을 끓여내고 피자를 구워내는 기계는 많이 있다. 하지만 그 기계들은 한 가지 요리밖에 만들어내지 못한다. 1,000가지의 요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주방에 1,000대의 기계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자동화 기술이라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복잡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단순하게 일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동화기기들이 맛의 표준화를 이뤄낸 반면, 몰리는 고급 음식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다.

앱을 통해 조작할 수 있고, 전 세계와 레시피를 공유하거나 다운받을 수 있다.

영국의 마스터셰프 우승자, 팀 앤더슨의 게살 크림수프를 똑같이 재현해 낸 몰리

Q. 로봇만이 할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안전함과 편의를 추구한다. 로봇이 요리하면 어린아이가 주방에서 펄펄 끓는 냄비를 쏟을 가능성을 줄여준다. 보호 유리창으로 조리공간이 모두 막혀 통제되기 때문에 안전하게 조리할 수 있다. 같은 수준의 음식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도 절감시킬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조리과정을 최대한 간소화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들어가는 에너지의 총량은 줄어든다.

Q. 10명밖에 안되는 회사라 들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기술을 다 만들어 냈나?
많은 파트너와 함께 일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개발할 수 있다. 식기세척기, 인덕션 등 모든 기기는 기존의 제작사와 협력해서 그들의 기술을 넣고 있다. 로봇팔 또한 18년간 로봇을 개발해온 전문업체 섀도우 로봇 컴퍼니Shadow Robot Company에 의뢰해 제작했다. 우린 로봇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쓰일 가능성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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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계점도 많이 남아 있다. 로봇은 녹화 당시의 요리사 동작을 흉내 내기에 재료가 제자리를 벗어난다면 조리과정에 문제가 생긴다. 식재료의 신선함을 검사하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몰리 로보틱스는 2018년도까지 시제품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 각국의 레시피를 입력해 놓으면,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받듯이 레시피를 설치할 수 있다. 레시피는 한 번 입력해 놓으면 그 이후로는 무제한 공유가 가능하니 전 세계와 주고 받을 수 있는 디지털 레시피 창고가 만들어진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

몰리 로보틱스라는 미래 주방이 널리 사용되는 게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는 아직 모른다. 요리사 대신 몰리가 주방에서 일을 하는 레스토랑이 생기거나, 신혼부부들이 혼수품으로 하나씩 장만하는 유행을 불 수도 있지 않을까?

셰프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유명한 학교의 졸업장? 유명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10년 정도의 경력? 손에 남겨진 수많은 흉터? 누구나 인정할 만큼의 고단했던 수련 과정? 무엇이 셰프를 셰프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들까? 누구나 공감할만한 기준이 있기나 할까?

지금 미국 뉴욕의 한 식당은 개업을 며칠 앞두고 셰프의 자질을 거론하는 문제가 커지고 있다. 전국적인 논란의 주인공은 고작 16살.

“어머님은 요리에 흥미가 없었어요.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러려고 노력하지도 않으셨죠. 어느 날 푸드 네트워크 채널에 나오는 방송을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30cover_texttmagarticle.jpg.CROP.promovar-medium211살 때부터 요리 영재로 주목받은 플린 맥개리Flynn McGarry. 그는 뉴욕 타임즈에서 차세대 다이닝 시장을 이끌 셰프로 잡지의 전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아이는 서점에 들러 가장 두꺼운 요리책을 집어 들었다. 첫 요리책이 토마스 켈러의 <더 프렌치 런더리>였다. 그 요리를 하나둘씩 흉내 내기 시작했다.

요리에 두각을 나타내는 영재를 발견한 부모님은 아들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열 한 번째 생일에는 인덕션을 선물 받았고, 크리스마스에는 진공포장기를 선물 받았다. 플린도 자신이 아끼던 기타를 팔아 수비드 머신을 장만했다. 조리공간이 협소하자 침실을 개조해 주방으로 사용했다. 전기 공사도 새로 했고 고급 그릴을 집안에 들였다. 거실에 테이블을 놓기에 좁아 벽을 허물고 옷장을 뜯어냈다. 몇 개의 코스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11살의 나이에 18코스의 메뉴를 선보이는 팝업 레스토랑을 열어 비평가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침실을 고쳐 주방으로 활용했다

“저는 언제나 창의적이고 싶었고, 저만의 요리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죠.” 가족을 위해 하던 요리가 점점 발전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선보였다. 학교는 뒷전이었다. 인터넷 강의로 대체해 수료한 후, 얼리니아Alinea, 일레븐 메이슨 파크Eleven Maidson Park, 알마Alma를 거쳐 현업 경력도 쌓았다. 집에서 열리던 팝업 레스토랑은 베버리 힐즈Beverly Hills에 있는 비어비슬Bier Beisl로 옮겨 40명의 손님을 대상으로 12코스를 160불에 파는 큰 이벤트로 바뀌었다.

그는 전국 규모의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 유레카Eureka를 기획했다. 8~10개의 테이스팅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유레카는 이미 로스엔젤레스LA와 샌프란시스코SF에서 이벤트를 치렀다. 오는 12일에는 뉴욕 웨스트 빌리지West Village지역에서 개점될 예정이다. 미식의 도시 뉴욕에서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뉴욕의 유레카는 일주일에 3일 오픈하며, 올 연말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 유레카 뉴욕지점의 개점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팝업까지는 그러려니 했건만 16살짜리가 오너셰프로 활동하는 꼴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비판은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적고, 여러모로 셰프의 모자를 쓰기엔 아직 고생을 덜 했다.’로 축약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킨 건 셰프 데이비드 산토스David Santos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플린의 음식은 160불을 받을 가치가 없다며 “플린이 오너 셰프로 불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수많은 셰프를 모욕하는 일이 된다.”라고 언급했다. 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정말 미안하지만 플린이 오너셰프가 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 믿어. 오늘은 아침엔 변소에 다녀왔는데 그 16살짜리 꼬마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을 배설하고 왔어. 미디어도 플린을 셰프라고 띄워주는 데 나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 셰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얻을 수 있는 훈장이야. 훌륭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못 볼 꼴, 험한 꼴을 다 경험해야 하지. 부모가 깔아준 길을 잘 가는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진정한 셰프라면 바닥에서부터 피땀 흘려 요리사가 된 사람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당신을 똑같이 대할 수는 없어. 이런 식으로 160불의 음식값을 받는다? 난 그보다 값진 음식을 만들어내는 진짜 셰프의 이름을 수도 없이 댈 수 있어. 언젠가 당신도 훌륭한 셰프가 될 수 있겠지.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 아냐. 하지만 진짜 셰프의 반대편에 서려면 그에 상응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아야지. 일주일에 3일만 장사하면서 테이스팅 메뉴 몇 개 만들어내는 건 어떤 바보라도 할 수 있을 거야. 그것마저 못한다면 완전 쓸모없는 녀석이겠지. 창의적인 요리를 하고 영감 받는 척하기 전에 주방의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을 대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해. 혼란 속에서 요리를 실수 없이 내보낼 수 있어야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의 지식을 활용해 시너지를 낼 줄도 알아야 해. 이게 바로 셰프가 하는 일이야. 그럴싸해 보이는 음식 플레이팅만 하는 게 아니라고.

이에 플린은 “누구나 전면에 나서는 사람은 욕을 먹게 되어 있다.”라며 덤덤히 대응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미식전문지인 그럽 스트리트Grub Street는 플린과 인터뷰를 나눴고, 플린은 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수많은 의심과 비판에 대해 답변했다. 주요한 답변 여섯 개를 추렸다.

Q 오너셰프를 왜 이렇게 일찍 시작하려고 하나?
“왜 더 기다려야 하나?”라는 질문이 있으면 “왜 지금 하면 안 되나?”라는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10년 더 기다렸다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요리사가 되는 길을 간다고 해서 셰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뛰어들어야죠.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 아닌가요? 네, 물론 저도 지금 이 시도가 완전히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은 알아요. 그건 좋은 점이죠. 언젠가 저는 제 레스토랑을 가지게 된다면 지금의 이 시도가 경험으로 쌓여 있을 테고, 그 때에는 이미 실패하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을 배운 상태겠죠. 지금 시도하는 것을 미래의 관점에서 본다면 연습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서류 작업을 해보고 있고, 식재료 비용 관리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어요. 커리어를 쌓기 위한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죠. 그나저나 왜 일반적인 방법만으로 해야 하는 거죠?

Q 수많은 네티즌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와서 드세요! 100가지 오해를 불러 일으킬 기사만 읽고 있지 말고요. 저는 요리를 사랑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이건 정말 단순한 거에요. 저는 매일 밤 24명을 위해서 요리할거에요. 누군가는 와서 드실 수 있고, 어떤 바보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네요.

Q 160불이라는 다소 비싼 음식 가격에 대해
네, 여전히 비싼 가격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선보일 메뉴의 식재료 값에는… 캐비어와 푸아그라가 포함되어 있죠. 그 외에도 고급 식재료가 많이 있어요. 오늘 아침엔 청과물시장에 가서 사과를 샀는데 1파운드에 5불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좋은 음식은 싸게 살 수 없어요. 저는 쓰레기 재료로 70불짜리 음식을 만들 바에는 최고급 식재료로 160불짜리 음식을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식사는 14코스로 이뤄져 있어요.

Q 데이비드 산토스의 의견에 대해
저는 저 스스로를 셰프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셰프로 불리면 안 될 이유도 없잖아요? 데이비드의 초점은 이거죠. 사람들은 정말 고단하게 일하면서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어요. 맞아요, 인정합니다. 그런데 왜 그 고단한 삶이 요리사 인생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요리사가 되려면 누구나 끔찍한 삶을 살아야 하고, 가족과의 약속은 모두 포기해야 하고, 10년이 넘도록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건가요? 왜 그게 셰프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거죠? 그걸 인정하는 건 그저 인생의 쓴맛만 더 느낄 뿐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악의는 하나도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대중들에게 물어보세요. 나를 왜 셰프라고 불러야 하는지, 달리 방법이 있나요?

Q비판과 비난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때로는 불안했고 심란하기도 했습니다. 요리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존중하지 않았죠. 그리고 제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오해도 많았습니다. 완전히 사실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어린 시절을 좀 보낼 필요가 있어.”라고요. 왜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하죠? 저는 이미 저만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르네 레드제피Rene Redzepi도 처음엔 코펜하겐의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몇 년 걸렸죠. 다행히도 터널의 끝에 다다르면 빛이 보인다고 합니다. 데이비드는 저에게 호통을 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는 훗날 같은 길을 가고 있을 거라는 점이에요. 둘 다 요리를 하고 있겠죠.

Q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이야기에 대해
저는 12살 때부터 레스토랑에서 일했어요. 거의 5년이 되었네요. 말인즉슨, 제가 그저 아이디어만 가지고 이 일에 뛰어든 게 아니란 것입니다. 저는 요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시작했고, 여전히 요리를 사랑하니까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화를 내는지는 압니다. 모든 이야기는 저희 부모님이 돈이 많았다는 전제하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부자가 아니에요. 저희 부모님은 예술가인데, 그저 앞 뒤 가리지 않고 저를 지원했을 뿐입니다.

인터뷰 전문은 이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은 허구의 것에 속아주지 않는다. 더욱 사실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를 원한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런 배경에서 태어났다. 춤과 노래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넓혀져 나갔다.

2012년은 대한민국의 본격 쿡방 역사의 태동을 알린 해가 아니었을까? 바로 CJ E&M이 마스터셰프의 판권을 사들여 마셰코Master Chef Korea 시즌 1이 시작된 해다. 같은 해 미국에서도 마셰미Master Chef U.S. 시즌 3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도전자가 등장한다. 시각장애인이 저도 도전하겠다며 나타난 것.

오늘 소개할 여성은 마셰미 시즌 3의 도전자 크리스틴Christine Ha, 그녀는 작고 가녀린 체구의 베트남계 미국 여성이다. 어려서 앓은 병이 시신경을 손상해 그녀의 눈은 2007년에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지팡이를 휘두르며 심사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세 명의 심사위원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예선전 결과는 어땠을까? 직접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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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극복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얻고자 한다면 모두 얻을 수 있고요. 올해의 마스터셰프는 저의 것입니다.” 예선 합격 직후 인터뷰에서 감사함에 벅찬 그녀의 소감이다.

본선에 진출한 그녀는 여느 도전자와 같은 조건 아래서 경쟁을 이어나간다. 진행팀은 팬트리에서 재료를 고를 수 있도록 보조인력을 한 명 지원했을 뿐이다.

시각이라는 주요 감각기관이 없는 불리한 상황에서 펼치는 경쟁의 압박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5회차의 탈락미션은 베이킹 미션이었다. 조금의 측량 실수나 시간의 오차도 곧 실패로 연결된다. 요리를 중간에 맛볼 수도 없다. 그녀가 만든 애플파이는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지도 못한 채 독설가 고든램지 앞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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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상의 마지막 부분, 발코니 위의 도전자 중에서 아니꼬운 표정으로 억지 박수를 치는 한 남자가 보인다. 전 회차의 우승자였던 라이언은 예상치 못한 성과를 보여준 크리스틴을 본격 견제하기 시작한다.

“시각 장애인이라 살아있는 게는 다루기 힘들 것” 캔에 들어있는 게살과 살아있는 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분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던 그가 크리스틴에겐 살아있는 게를 준다. 겁에 질린 상태로 우여곡절 끝에 펄펄 끓는 솥에 게를 집어넣었으나. 게 껍데기에 손을 찔리고 만다. 마셰미에서 넘어서야 할 것은 자신의 신체적인 한계뿐만이 아니었다.

그렇다. ‘마스터셰프’는 남을 떨어뜨려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시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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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넌 날 골탕먹이려고 살아있는 게를 줬지만 난 그걸로 꽤 멋진 걸 만들어냈어.”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1위를 차지한 크리스틴은 다음 회차 팀 미션의 주장을 맡는다.

그녀의 도전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총 19회차에 이르는 시즌 3 방송 동안 그녀는 개인전과 팀전을 포함해 총 7번의 승리를 거둔다. 최고의 요리를 선보인 3인 그룹에 세 번 선정되었고, 최악의 요리를 선보인 그룹에도 두 번 포함되며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아래의 영상은 2013년 한 해 동안,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그녀의 마지막 시합 모습이다.

무려 결승 진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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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국 마스터셰프 시즌 3의 우승자가 되었고 25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우승 이후로 제작진의 지원을 받아 “나의 아시아-미국 가정식 레시피”Recipes from My Home Kitchen : Asian and American Comfort Food”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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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크리스틴이 경쟁의 중반까지도 올라올 수 있을 거라 상상조차 못 했어요. 장애 때문이 아니라 경쟁 기간 내내 선두를 질주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고 고집과 끈기를 부렸죠. 스스로 가지고 있던 의심과 불안함을 경쟁 과정에서 모두 극복해냈어요.”

마셰미의 심사위원 조Joe Bastianich는 크리스틴의 우승을 축하하며 말했다.

“심사자인 저 또한 스릴 넘치는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틴만큼 마스터 셰프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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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CHEF: The Top Two finalists have one last chance to prove to the judges that they have the passion, skill and drive worthy of the MASTERCHEF title. The judges will reveal America's next MASTERCHEF in the second part of the all-new "Winner Chosen" season finale episode of MASTERCHEF airing Monday, Sept. 10 (9:00-10:00 PM ET/PT) on FOX. L-R: Contestant Josh and contestant Christine. CR: Greg gayne / 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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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의 메뉴판은 단순히 음식의 종류만 나열된 것이 아니다. 셰프, 기획자, 컨설턴트 등 수많은 전문가가 동원되어 만들어진 복잡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더 쉽게 읽히고, 식당의 브랜드를 강조할 수 있도록 갖은 전략을 적용한다.
실제로 메뉴판은 손님이 어떤 음식을 고를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뿐더러, 수익에도, 고객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제까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레스토랑 메뉴 뒤에 숨겨진 8가지 심리학 비밀’을 소개한다.

 

1. 선택사항 제한하기

메뉴판에 음식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손님은 불안감을 느낀다. 심리학에서 익히 알려진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이다. 선택권이 많아질수록 “내가 고른 음식보다 다른 음식이 더 맛있는 것이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카테고리당 7개의 음식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 에피타이저, 타파스, 메인메뉴, 각각 큰 범주에 속하는 음식들이 7개를 넘어선 안 된다.
“만약 7개 이상의 음식을 메뉴에 넣을 때는 손님들이 압박감을 느끼고 혼란해 합니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불안해진 사람들은 예전에 먹었던 알고 있는 음식을 선택하게 되죠.” 메뉴 개발 전문가 그렉 랩Gregg Rapp의 말이다.

몇 레스토랑은 이 중요한 규칙을 어기고 있다. 맥도날드를 예로 들 수 있다. 맥도날드는 처음에는 메뉴 수가 적었지만, 지금은 140개 이상의 메뉴가 있다. 이로 인해 2015년도 1분기의 지점 매출이 11% 감소했다.
“우리가 메뉴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곧 고객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고객들이 식당을 떠날 때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음식의 맛이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들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인 이유가 더 큽니다.” 레스토랑 컨설턴트 애런 앨렌Aaron Allen의 말이다.
고객이 불만족스러운 상황으로 식당 문을 나가게 된다면 돌아오게 될 가능성도 작아지게 된다. 매출의 70% 이상이 재방문 고객으로 이뤄진 식당이라면 ‘고객 재방문’을 최우선이자 궁극적인 목표로 세워 매일 곱씹어야 한다.

 

2. 사진 추가하기

근사하게 나온 음식 사진을 메뉴 옆에 놓아두는 것만으로 매출의 30%를 높일 수 있다.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연구 결과, 두 그룹으로 나뉜 실험 대상은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통해 샐러드를 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70%나 더 많은 샐러드를 점심시간에 주문한다는 조사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이미지를 한 번 보는 것은 실제로 바로 앞에 놓인 음식을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봅니다. 배가 고픈 사람이라면 더욱 효과가 좋습니다. 우선 사진에 보이는 걸 달라고 말할 테니까요.” Information System의 부교수 브라이언 멘네케Brian Mennecke의 말이다.

이 효과는 출력된 사진보다는 더 선명한 디지털 사이니지, 밋밋한 사진보다는 화려하게 움직이거나 시선을 강탈하는 애니메이션 효과가 들어가 있으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최근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들 것 떠올려보면 쉽다. “이미지의 생생한 정도, 색상의 강렬함, 움직임, 재생 빈도, 현실성 등의 모든 것이 반응을 자극할 것입니다.” 멘네케의 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진을 넣는다면 전체적으로 싸구려 음식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급 정찬 식당에서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메뉴에 사진을 넣는 것을 꺼린다.

 

3. 교묘한 가격 노출 방법

손님이 더 많은 돈을 쓰도록 부추기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가격표가 보이지 않도록 배치해야 한다. “우리는 $ 단위를 아예 없애버립니다. 왜냐면 그 기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우니까요. 돈을 나타내는 표기들은 사람들에게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앨런의 말이다.
‘$12.00 Club Sandwich’ 라고 쓰인 것보다 ‘12.00 Club Sandwich’라고 쓰인 것이 더 좋고, 그보다 ‘12 Club Sandwich’라고 쓰인 것이 더 좋다. 코넬 대학교에서는 심지어 숫자도 사용하지 않고 글자로 가격을 써넣은 것(twelve dollars)이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유도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가격 기재 방식은 음식점의 말투입니다. $9.95라고 적혀진 것이 $10이라고 적힌 것보다 훨씬 친근해 보입니다. 또, 그 가격을 설정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과 태도가 묻어납니다.” 랩의 말이다.

메뉴 디자인에서 메뉴 이름과 가격을 점선으로 이어놓는 것은 절대로 해선 안 될 일이다. “메뉴와 가격을 이어놓는 것은 메뉴판을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지만, 결과적으로는 손님에게 가격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도록 유도합니다. 음식 이름을 하나씩 읽으면서 빠짐없이 가격을 따라 읽도록 만들죠. 결과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메뉴판을 주게 되면 낮은 가격의 메뉴만 팔리게 될 겁니다.” 앨런의 말이다.
해결책? 가격을 메뉴 속에 포함하는 방법이 있다. 가격을 따로 부각하지 않고 메뉴 이름 아래에 음식 설명에 녹아들도록 하는 것이다. 음식 설명과 같은 글씨체, 같은 크기, 같은 색상으로 그냥 훑어 읽고 지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4. 비싼 메뉴 미끼 만들기 (합리적인 가격이 좋은 가격은 아니다)

메뉴를 디자인하는 데에는 ‘관점’이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뉴 가장 상위에 믿기 힘들 정도로 비싼 가격의 음식을 하나 올려놓는 것은 유용한 속임수다. 이로 인해 다른 모든 메뉴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이도록 관점이 통째로 바뀐다.
웨이터는 어차피 30만 원이 넘는 랍스터를 시킬 것이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7만 원짜리 스테이크는 이제 좀 싸게 들린다. 그렇지 않나?
다른 메뉴보다 약간씩 비싼 메뉴를 놓아두는 것으로 음식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높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실제로 주문하길 바라는 음식의 가격을 섬세히 설정해야 한다. 손님이 낼 수 있는 범위와 도저히 낼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범위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이런 섬세한 가격구조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손님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는 데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에서 밝힌 결과, 8천 원짜리 뷔페가 4천 원짜리 뷔페보다 만족도 조사가 높게 나온 사례를 들 수 있다. 두 음식은 완전히 같았는데도 말이다.

 

5. 고객의 눈을 이해하기

슈퍼마켓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상품을 눈높이에 맞춰 진열하는 것처럼, 메뉴판에서도 가장 수익성이 좋은 메뉴를 눈이 가장 편한 위치에 놓아둔다. 우측 상단 코너 부분은 금싸라기 구역이다. 종이 신문과 인쇄 잡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이 가장 좋은 메뉴를 두는 장소다.

“그러고서 우리는 에피타이저를 좌측 상단에, 그리고 그 아래에는 샐러드를 놓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모든 메뉴를 술술 흐르듯이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랩의 설명이다.
가장 수익성이 높은 메뉴에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주변 여백을 많이 비워두는 속임수를 쓸 수도 있다. 박스를 씌워 넣거나 별도의 옵션으로 구분해서 띄워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색상과 대조되는 반전 색상의 포켓을 만들어 넣는다면 이목을 끌 수 있습니다.” 앨런의 말이다.

 

6. 색상의 활용

다양한 색상을 활용하는 것은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과 같다. 색상이 행동 결정에 직접적인 동기부여를 하기 때문이다. “푸른색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색상입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주죠.” 앨런이 말했다.
얼마나 많은 레스토랑이 빨간색과 노란색을 브랜드 컬러로 사용하는지 기억이 나는가? 색상이 우리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 보고서에 따르면 붉은 계열의 색상은 식욕을 돋우고 노란색은 우리의 시선을 끈다고 한다. “이 둘이 조합되어 사용된다면 음식과 관련된 최적의 색상 조합이겠죠?” 앨런의 말이다.

 

7. 매혹적인 어휘의 사용

음식에 대한 설명이 더 길어지고 상세할수록 더 많이 팔린다. 거의 30% 가까이 많이 팔 수 있다. 코오넬 대학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메뉴에 대한 설명을 많이 붙이는 것으로 생산 비용을 높이지 않으면서 손님의 마음에 주는 감동을 높일 수 있다. 손님이 지급한 가격에 대비해서 더 많은 것을 주고 있다는 상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랩이 설명했다.
기존에는 ‘초콜릿 푸딩’이라고 적어놓던 것을 ‘윤기가 매혹적인 초콜릿 푸딩’으로 적을 때 손님들은 실제로 음식을 더 맛있게 느낀다. “사람들은 당신이 말하는 대로 맛을 느낍니다.” 랩이 말했다.
와인으로 진행한 한 연구 결과에서도 같은 개념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조사대상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같은 와인에 다른 라벨을 붙여 맛보게 했다. 한 와인은 캘리포니아California산이라고 표기되었고 다른 와인에는 다코타 북부North Dakota(실제로 여기서 생산되는 와인이 있긴 한가?)라고 표기했다. 실제로 실험에 사용한 와인은 $1.99짜리 싸구려 와인이었다. 결과가 재미있다.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마셨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은 North Dakota산 와인을 마셨다고 생각한 사람보다 총 12%의 음식을 더 먹었다.

“‘산지 직송’, ‘지역 생산물’, ‘농장에서 직접 기른’과 같은 형용사 문구들은 손님들의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설명들이 메뉴의 퀄리티에 대해 지각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앨런이 말했다. 이 장황한 표현들은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미국의 어느 주는 ‘진실된 메뉴 작성법’을 개정해 공표하기도 했다. 식당들이 싸구려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원산지를 속여 파는데 손님들은 전혀 눈치를 못 챘기 때문이다.

 

8. 향수를 자극하기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기시키거나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음식이 있다. 레스토랑은 이런 경향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서 수익을 내기 위해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과거의 시점을 넌지시 언급하는 것은 좋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가족, 전통, 민족주의적인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의 음식은 전통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만들어졌음에도 손님은 전통적이라 믿으며 건강한 느낌을 주는 듯한 맛을 느낀다.”고 한다. 다음엔 ‘할머니가 끓여주신 치킨 스프’를 주문하기 전에 이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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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 본 콘텐츠는 Mental Floss의 <8 Psychological Tricks of Restaurant Menus>를 번역, 편집했음을 밝힙니다.

A : 어제 어땠어?
B : 말도 마라, 어젠 저녁에만 order 90개 cover했어. 그 중에 두 팀은 12 tops였고, VIP도 네 팀 왔어.
A : 그렇게 많이 왔어?
B : 9시까지는 한가하다가 갑자기 huge pick-up이 시작됐어. 20분 동안 물밀 듯이 주문이 들어오는데 스트라이퍼랑 타르틴은 순식간에 86’d 됐어. 우리 식당의 soigne한 메뉴 샹트렐 리조또를 네 개나 a la minute으로 만들어냈어.
A : 주방에 사람은 충분하고?
B : sauté 파트에 여자 green cook 하나가 들어왔는데, 걔한테 테이블 오더 3개가 한번에 들어갔어. 4접시, 4접시, 3접시를 차례로 빼라고 밀어붙였어. 그러고 나서도 6접시를 더 만들어야 하더라고. 다 만들고 나니까 이거 웬걸? 2개가 모자라더라고. 그럼 어떻게 돼? Dying on the pass 되잖아.
A : 그래서?
B : 어떻게 다 쳐내긴 했는데, 그래도 오더가 계속 들어오는 거야 Dupe 따라가느라 완전 쩔어 있는데 Salamander도 고장 났고, 어제는 porter애들도 안 나왔지, 아무튼 어제는 진짜 망하는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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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레스토랑에서 일해보지 못했다면 위의 대화는 알아듣기 힘들 것이다. 단순히 영어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겠지만, 주방에서도 그들만이 사용하는 용어가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는 기발하고 실용적이지만 가끔은 입에 담기 힘든 표현도 많이 있다. 주방마다 그들끼리의 은어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이제 막 요리에 입문한 사람에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오늘은 영어권 주방에서 일반적으로 자주 쓰이는 주방 사투리(Kitchen Slang)를 풀이해본다.

 

ON THE LINE
주방에서 “line”이란 재료를 요리하는 공간 혹은 가스버너가 길게 줄지어 있는 곳을 가리킨다. 당신이 “On The Line”이라면 “Line Cook”으로서 한 파트의 맡았다는 것이고, 이는 군대에서의 보병과 같은 존재로 큰 책임이 따른다.

RUNNING THE PASS
“pass”란 플레이팅을 마친 접시가 웨이터에게 전달되는 평평한 공간을 뜻한다. 주방장 혹은 경험이 많은 요리사가 “Run The Pass”를 맡으면 그들은 Pass 앞에 서서 그 날 나가는 모든 음식의 최종 모습과 품질을 점검한다. 이 책임자는 주방으로 전달되는 주문을 챙겨 받아 요리사들에게 만들 순서, 나가야 할 순서를 정해준다. 주방 안을 지휘함과 동시에 전체 코스 요리를 먹는 손님들을 살피며 식사 리듬을 조절하는 역할도 맡는다.

쉴 새 없이 음식을 내어 놓는 pass의 모습

5 OUT
한 번에 들어온 주문을 동시에 마무리해서 내보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고, 또 어렵다. 많은 요리사가 각기 다른 음식을 요리할뿐더러, 각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시간, 플레이팅에 필요한 시간도 다르기 때문이다. 여러 요리사를 협력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out’이란 각 요리의 완료 시간을 정해 주는 표현이다. 주방장이 “5 out” 혹은 “3 out on sirloin”이라고 한다면 요리사들은 그 시간 안에 자신이 맡은 요리를 완성해내야 한다. 늦게 내어놓는 것도 안되며 일찍 내어놓는 것도 당연히 안 될 일이다.

SOIGNE
“Soigne”는 프랑스 말이다. 사전적인 뜻은 ‘정성 들인’, ‘공들인’ 이라는 뜻이고 ‘고상한’, ‘우아한’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파인다이닝 허세남들 사이에서 주로 쓰이는 감탄사다. 이례적일 정도로 섹시한 음식이 만들어지거나 플레이팅을 완벽히 마무리했을 때 이 표현을 외칠 수 있다.

A LA MINUTE
“A la minute”또한 프랑스 말이다. 영어로는 “In the minute”로 바꿔 쓸 수 있다. 주문이 자주 들어오는 음식들은 쉽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대량으로 준비를 해두곤 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수량에 맞춰서 간단히 데워서 내보내는 등 조리법을 간소화시켜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A la minute”은 이런 사전 준비 없이 주문이 들어온 후에야 모든 조리 단계를 정석적으로 끝내는 것을 의미한다.

MISE
“mise en place”의 준말이다. 이 말 또한 프랑스 말이다. 영어로는 “everything in its place.” 모든 것을 제 자리에 갖다 놓으라는 뜻이다. 물밀듯이 주문이 들어와도 동시에 일을 쳐 낼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각 섹션마다 정해진 자리에 준비해 놓는 것을 뜻한다.

으흠… 미쟝이 아주 잘 되었군. 이제 손님만 있으면 되겠다.

12-TOP/4-TOP/DEUCE
“12 Top”은 한 테이블에 12명의 단체 손님이 앉는 것을 말한다. 4명이 한 테이블에 앉은 것은 “4 Top”이라 부르고, 2명이 한 테이블에 앉으면 “deuce”라고 부른다.

NO SHOW
“no-show”는 주방에 일하는 직원이 무단결근 했을 때 쓰는 표현이다. 예약 손님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도 쓰인다. 양쪽 모두 주방장에겐 용납할 수 없는 암적 존재들이다.

ON DECK / ON ORDER
프린터기에 주문서가 출력되어 나올 때, ‘Pass’를 담당한 주방장이 요리사에게 주문내용을 큰 소리로 읽어주는 것을 말한다. “4 Steak, 2 Quail, 1 Blue, on order.”라고 주문서를 읽으면 각 파트를 맡은 요리사들은 “Yes, Chef”라는 우렁찬 대답과 함께 자신이 맡은 요리를 시작하기 위해 정신 무장을 하게 된다.

FIRE
주방장이 “fire” 또는 “pick-up”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다른 일을 제쳐놓고 그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order fire”란 무엇보다 우선으로 조리하라는 뜻인데, 한 코스의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 식사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파악해 먼저 요리를 내보내야 할 경우 자주 쓰인다. 간혹 주문이 꼬이는 경우에 주문서를 다시 정리하기 위해서도 쓰인다.

RUN THE DISH
플레이팅이 끝난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보내라는 뜻이다. 요리사들은 서버들에게 음식을 가져가라며 “run the dish”라 말한다. 반대로 서버들은 음식을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을 때 “Can you run?”이라고 묻는다.

DYING ON THE PASS
뜨겁게 나가야 할 음식인데 Pass 위에 올려진 채로 식어가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웨이터들이 너무 바쁘거나 혹은 게을러서 음식을 제때 가져가지 않으면 온도가 내려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공들여 만든 음식이 더 이상 ‘Soigne’하지 않게 된다.

86’D
주방의 음식재료가 떨어졌을 경우 “86’d”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날 준비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주방장이 임의로 몇 가지 메뉴를 “86’d”시킬 수도 있다. 마음에 안 드는 손님이 있다면 “86’d”시켜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이 표현은 금주령이 있던 시대, 맨하탄 시내에 있었던 Chumley’s Bar에서 유래되었다. Chumley’s Bar의 출입구는 파멜라 법정을 향해 있었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비밀 출구도 있었다. 이 비밀 출구가 ‘베드포드 86번가’로 이어져 있었다. 경찰들도 이따금 이 바에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검문 일정이 잡히면 단골 경찰들이 몰래 바텐더들에게 주의하라고 일러주었다. 소식을 받은 바텐더들은 손님들을 86번가로 향한 뒷문으로 긴급히 내보냈는데, 이 긴급 퇴출 상황이 관용적인 표현으로 굳어져 쓰이고 있다.

WEEDED/IN THE SHIT/IN THE WEEDS
“weed”는 대마초를 뜻하는 은어다. 요리사들이 미칠 듯이 바쁠 때, ‘약 빨고 요리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밀려드는 주문서에 파묻혀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요리할 때 쓰인다.

THE RAIL/THE BOARD
주문서를 쉽게 탈부착할 수 있는 긴 레일이다. “Clearing the board”라는 표현은 수많은 주문서를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CHECK YOUR PLATES
손님들을 내다볼 수 있는 오픈 키친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미남 혹은 미녀가 식사하러 들어왔다는 신호로 “이번에 나가는 음식은 특별히 신경 쓰자”라고 돌려 말한다. 간혹 “Ace!”라고 말하기도 하고 “Yellowtail!”라고 말하기도 한다.

VIP/PPX/NPR
“Very Important Person,” “Persone Txtrodinaire,” 그리고 “Nice People Get Rewarded”의 줄임말이다. 중요한 손님이 오는 경우, 극진히 접대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은어다. 업계 사람이거나, 연예인, 친구 혹은 가족들에게 서비스가 나가야 할 때 주문서에 기록해 전달된다.

“이 손님은 특별히 신경쓰라구.”

THE SALAMANDER / ROBOCOP / SIZZLE / COMBI
주방 기구들 또한 줄임말로 불리거나 각각의 별명을 갖고 있다. 버너가 상단에 부착된 그릴(broiler)은 “salamander(도롱뇽)”으로 불리고, 믹서기는 “Robocop”으로 불린다. 뜨겁게 데워 나가는 철판접시는 “sizzle(지글거리는 소리)”, 다양한 기능을 갖춘 콤비네이션 오븐은 “combi”로 줄여 부른다. 생선을 구울 때 사용하는 납작한 뒤집개는 “fishpat”, 뜰채는 “spider(거미)”, 고깔 모양으로 생긴 체는 “chinacap(중국인모자)”로 부른다. “low-boy”는 허리 높이로 낮은 냉장고를 뜻한다. 나열하려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 정도만..

CUPCAKING
바텐더가 특정 손님 앞에서 관심을 끌려고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SHORT
접시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쓰는 표현이다.

FLASH
고기가 약간 덜 익었을 경우 오븐에 1~2분간 넣어다 빼서 적절한 익힘 상태로 맞추는 것을 말한다.

SANCHO
멕시코에 짓궂은 농담이 있다. 사내가 일하느라 밖에 나와 있는 동안 “Sancho”라는 정력가가 돌아다니며 홀로 남겨진 부인이나 남자친구(?)와 놀아난다는 낭설이다.
주방에서 요리사가 재채기하면 동료들이 “Sancho”라고 외친다. 어이없고 유치한 농담이지만 당황하지 않고 “No mames guey!(지랄 마!)” 라고 답해주면 된다.

DUPE
“duplicate(이중의, 복사된)”의 줄임말이다. 프린터가 여러 개 있는 주방에서 쓰이는 표현이다. 코스 주문이 들어올 때 2가지 혹은 3가지 색상으로 구분되어 주문서가 출력되는 곳도 있다. 이때 “pass”에서 일하는 주방장이 지시를 내리면, 다른 요리사가 복사된 주문서에 똑같이 따라서 체크한다.

BUKKAKE
요거트 흩날리기, 크림을 짜서 올리기 혹은 생크림을 뿌리는 테크닉을 부카케라 부른다. “ぶっかけ(부카케)”는 일본어다. 왜 하필이면 흰색 계열의 액체를 뿌리는 데에만 이 표현이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1/8 PAN, 1/6 PAN, 1/3 PAN, HOTEL
‘호텔 팬’은 깊이가 한 뼘 정도 되고 겹겹이 쌓을 수도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를 찌거나 채소를 운반할 때, 각종 재료를 구울 때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각기 팬은 사이즈가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앞의 숫자들은 이 철제 팬의 표준화된 사이즈를 나타낸다.

BEHIND/ATRAS
비좁은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요리사들은 자칫 사고의 위험이 크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요리사의 옆이나 뒤를 지나갈 때 “Behind!”라고 외쳐주는 매너가 필요하다. 칼을 들고 있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고 지나갈 때 특히 자주 쓰인다. “Atrás “는 스페인어로 ‘뒤’를 뜻하며 뜨거운 물체를 옮길 때는 “Hot behind”라고 외친다.

CHARPY
주방에서는 용기마다 어떤 재료가 담겨 있는지 표기할 일이 많다. 그래서 항상 필요한 게 유성 마커펜이다. 본래는 “Sharpie”가 맞으나 멕시코 요리사 특유의 억센 발음을 흉내 내듯이 불리고 있다.

LEFT-HANDED SPATULA / BACON STRETCHER / LONG STAND / GRILL EXTENDER
왼손잡이용 주걱, 베이컨 운반대, 그릴 확장기구…
세상에 이따위 물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 갓 주방에 들어온 신입에게 이것들을 찾아오라고 시켜보자. 있지도 않은 물건을 찾느라 진땀 빼는 모습이 배꼽 빠지게 웃기다.

GETTING A PUSH
서비스 시간이 되면, 주문이 균일하게 들어오질 않는다. 한가하다가도 이따금 물밀 듯이 주문이 들어오는데, 주문서 출력 빈도가 점점 빨라지고 바빠져 가는 순간을 “getting a push”라 부른다.

TRIAL/STAGE
“trial”이란 주방장과의 대면 면접까지 통과한 지원자가 실제로 주방에서 일하며 실무 면접을 받는 것을 뜻한다. 불 앞에 서서까지 일을 제대로 해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stage”란 조금 더 오랫동안 무급으로 일하며 주방의 일을 배우는 것을 뜻한다. 보통 몇 주, 길게는 두 달 정도를 일한다.

CROP DUSTING
“crop dusting”은 농약 살포를 뜻하는데 주방에서는 ‘방귀 살포’를 뜻한다. 고의로 나온 것이든 본의 아니게 사고로 나온 것이든 비위생적인 건 매한가지다.

BURN THE ICE
얼음 기계에 원치 않은 소스가 묻어버렸다면? 또는 깨진 유리조각이 들어가버렸다면? 뜨거운 물을 끼얹으면 된다. 얼음과 함께 있던 이물질을 씻어 내거나, 얼음 기계를 완전히 청소할 때 “얼음을 태워버린다.”라고 표현한다.

SOS
‘Sauce On the Side’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즉, 소스를 사이드로 달라는 소리다. ‘부먹, 찍먹’ 논란은 어디에나 있나보다.

ALL DAY
요리사가 주방장에게 무슨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 확인할 때 묻는 표현이다. “셰프, 제가 지금 몇 개의 요리를 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Can you give me all-day, Chef?”라고 할 수 있다. “넌 지금 링귀니 4개, 스파게티 3개, 카펠레티 2개, 어린이용 파스타 2개 만들어야 해” 라고 확인해줄 것이다.

WAXING A TABLE
테이블을 왁스로 닦으라는 이 표현은 VIP에게 극진한 응대를 하라는 뜻이다.

 

원저자 Scalett Lindeman은 솔트레이크시티, 로스앤젤레스, 뉴욕에 있는 식당에서 10년간 일했으며 지금은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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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 본 콘텐츠는 First we feast의 <KITCHEN SLANG 101: HOW TO TALK LIKE A REAL-LIFE LINE COOK>를 번역, 편집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