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이 부족했을 때에는 필요에 의해 소비했다. 90년도에 접어들자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소비는 더이상 자연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자 하기에, 인위적으로 소비를 늘릴 방안을 강구했다. 광고 기법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제품이라고 주장해 보았다. 합리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라고 하니 현명하신 분들이 조금 더 사주셨다. 이 제품이 당신의 결핍과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며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줬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던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속아주었다. 진정성을 담아 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적선했다. 수려한 이미지를 브랜드에 덧씌워 이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며 현혹했다. 자신의 결핍에 유난히 신경 쓰던 자존감 낮은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지갑을 열었다.
아! 팔고 싶다! 미치도록 팔고 싶다! 자, 가만… 생각을 해보자. 팔릴려면 사주셔야 한다. 사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해야 하겠지. 필요하도록 생각하게 만들려면? 그렇다! 이 게임은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진짜 필요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필요하다고 착각하거나, 사기만 한다면 매한가지 아닌가? 비용을 지불하는 그 순간까지 착각의 상태를 유지시키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타인을 통제하는 manipulation 중 최근 익히 알려진 기술이 있다. 가스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스스로 의심을 갖게 만들어 자기 통제력을 잃도록 만든다. 지배하고자 한다면 대상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대상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선 우선 두뇌에 침투해야 한다. 두뇌 침투와 지배력 약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효과적인 소구법은 공포소구다. 판매자놈들은 무례하게도 이런 말을 잘도 건넨다.
건강이 안 좋으십니까? 성공하지 못하셨습니까? 노후 대비가 안 되어 있습니까?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으십니까? 트렌드에 뒤처지진 않으셨습니까? 이 제품을 사용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이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주 위험합니다. 당신의 모든 문제는 이 제품을 사용하지 않아서 생겼습니다. 당장 지갑에서 돈을 꺼내지 않으면 당신은 위험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삶에 희망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 제품을 구매하지 않은 당신은 초라하게 죽어갈 것입니다.
광고 카피라는 게 뭐 대단한 게 있는가. 이토록 무례한 발언을 험하게 들리지 않도록 바꿔내는 일이다.
지푸라기를 1억에 판매하는 비결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을 물에 빠트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푸라기를 건네면서 가격을 1억으로 책정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생존권을 위협하기에 아마도 위헌일 것이다. 세일즈와 강도짓의 차이는 지갑에서 현금이 빠져나갈 때, 자의에 의해서 이뤄졌는지 타의에 의해서 이뤄졌는지로 구분할 수 있다. 상대방의 두뇌에 침투해 판단을 조직하는 행위는 분명 강도짓 만큼이나 흉악한 일이지만 현행법상으로는 합법이다.
가스라이팅당한 소비자들은 자의적으로 자신의 가치판단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지출을 주체적으로 결정했다고 착각한다. 착각할 만하다. 경제성장과 GDP갱신이라는 범지구적 기조아래 법, 정치, 학문, 교육, 가정, 종교, 언론, 미디어, 문화가 합심해 소비를 조장하고 있다. 제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세상 아닌가. 속는게 정상이고, 안 속아주는 내가 비정상이다.
??? : 니는 니 대로 살아라(live) 내는 내 대로 살게(buy)필요한 것은 없다.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대부분은 가짜 필요들이다. 의식주 외에 무엇이 그렇게 더 많이 필요하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