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가 족히 10미터는 되었던 것 같다.
전시에 참여했던 부스 업체들이 물밀듯 빠져나가자
바닥에는 전시패널들과 각종 쓰레기들이 나뒹굴었고
천장에는 지름 1미터 크기의 헬륨풍선이 붙어 있었다.

풍선을 준비한 부스는 여럿이었지만
대형 풍선을 준비한 곳은 분명 한 곳이었기에
범인을 특정해 전화로 문책하자
잘 안들린다며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겼다.

연기가 어설펐지만 민망함과 송구스러움은 묻어났기에
사과를 받은 셈 치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천장에 붙어버린 헬륨풍선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사다리차를 부른다거나
10m의 막대를 구하면 된다거나
총을 쏴서 터뜨리자는 등
대부분의 최초 아이디어가 그러하듯
실현가능성이 낮은 안들이 나왔다.

지난 일주일동안 잠을 10시간도 못 잤지만

자발적으로 모여든 풍선제거TF는 어느덧 여섯이 되었고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음에도
실현가능성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바람이 빠질 것이라는
태평한 얘기를 늘어놓던 셋은 떠나고 셋만 남았다.

대관담당자를 불렀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그 경험 속애 해법이 있는지 여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행사장소를 원상복구하는 건 임차인의 책임 이라고
당부한 뒤 사라졌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동료들 뿐이었다.

집념의 두 사내는
막대로 당겨오는 방법과
투사체로 터뜨리는 방법을 실현하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당겨오기 위한 테이프
터뜨리기 위한 금속류
닿기 위한 막대기
던져질 투사체
가 될만한 것들을 모았고
이 안에 분명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각 재료를 조합해보고 있는데
30분 전 TF를 떠난 배신자가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쓸데없는 짓 말고 짐이나 하차장으로 옮기라며 윽박질렀다.

가위를 던지려고 하던 녀석을 진정시키고 나니
다른 녀석은 비비탄 총을 사오겠다며 법카를 달라 했다.
사비로라도 사오겠다는 녀석을 말리는 와중에
테이프를 뭉쳐 만든 투사체에 압정이 바깥으로 꽂힌
해결책이 완성되었다.

천장을 향해 날아오르는 압정테이프공을 바라보며
던져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성공의 희열은 실현가능성을 찾아낸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강호의 도리였다.

팔힘이 떨어져 더이상 던질 수 없다고도 했지만
어깨에 목청껏 파이팅을 질러주고
피칭 순간엔 제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숨죽여 기다려주었다.

스무번의 시도 끝에 풍선은 터졌다.
투수의 어깨를 주무르며 축하해주었고
낙하하는 풍선을 낚아채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환호했다.

투수는 자신이 만든 압정테이프공이 뿌듯했는지
전시장을 정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머니에 넣어 간직하다가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상징적인 물건임에도
본질적으로 쓰레기일 수 밖에 없는 그것을
전시장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야 폐기하고
우리의 TF도 그렇게 해산했다.

 

다음 해에는 행사 장소가 바뀌어
천고가 족히 15미터는 되었던 것 같다.
전시에 참여했던 부스 업체들이 물밀듯 빠져나가자
천장에는 헬륨풍선 30개 묶음이 붙어 있었다.

던진다해도 닿지 못할만큼 높았고
터뜨린다해도 30번을 터뜨려야 했기에
함께 과제를 풀어보자며 인원을 모집했으나
올해의 서포터즈 중에선
집념은 커녕 흥미조차 보이는 사람 없었다.

환상적이었던 작년 TF의 팀워크가 그리웠지만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며 해법을 공모했다.

현장 경험이 많았던 업체 실장님 중 한 분이
풍선은 풍선으로 갖고 오면 된다는
수수께끼같은 힌트만 남긴 채 사라지셨다.

장내 청소를 맡았던 분들이
남은 풍선을 밟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서
몸을 날려 풍선을 사수했다.
풍선을 손에 쥐고나니 해법이 이해됐다.

낚시줄로 길이를 연장하고
테이프를 뒤집어말아 접착기능을 추가하니
해결책이 금새 완성되었다.

풍선낚시는 단 번의 시도에 성공했고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격정적인 환호와 박수로
나의 월척을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왠지
성공의 희열은 작년만치 못했다.
민망하고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문제를 풀어내는 고민은 없었고
해법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해결했다.
작년대비 3배 적은 인력으로 3배 빠르게 문제를 풀었음에도
과정없는 실행만으로 도달한 성공엔 성취감이 없었다.
나는 부지런한 실행가라고 할 순 있어도
발명가나 개척자라고 할 순 없었다.
나는 박수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리버스엔지니어링 패스트팔로우 전략으로
비어있는 기회를 선점하는 데에 집중했던
창발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성장과정을
나 개인이 그대로 답습한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과정을 거친 사람보다 빠르게 완료한 사람에게
성공의 과실이 돌아가는 결과중심주의
경제보상체계가 시키는대로
요행과 편법, 합법적 반칙을 실행하는 것이
성공의 공식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넘어
챗GPT까지 튀어나와 실행자의 속도만 높여주고 있으니
과정의 낭만은 사라져가는 경향이다.

하이퍼 커넥티드 글로벌 시대에는
불가능해보이고 막연해보이는 과제들도
누군가에 의해 진즉 도출된 해법이 이미 존재할 것이기에
풍선을 처리하는 방법 또한 검색만 하면 나올 것이기에
문제를 직접 풀겠다는 시도는
바퀴를 다시 발명하겠다는 시도처럼 미련한 일로 격하된다.

해법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지만
해법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기에
성취감은 느껴지지 않고 도전의 의미와 의욕이 상실된다.

남아있는 과제 중에
과연 내가 직접 해결할 문제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 세대에 남겨진 과제들은
지나치게 거대해서 엄두가 나지 않거나
형편없이 초라해서 같잖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 뿐이라
개척과 발명의 기회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를 갖게 된다.

과제는 사라지지 않았고 피하고 있을 뿐이다.
과제대비 높은 보상을 좇거나
보상대비 쉬운 과제만 찾거나
해법을 손쉽게 취하려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당면 과제에 집중하지 않아야 하는 변명거리만 찾아내
본인의 비겁함을 가려 덮고 있을 뿐이다.

과제가 없다면 과제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우선적인 과제가 되는 것처럼
우리 세대에 남겨진 대부분의 과제는
거대하거나 초라한 것이 아니다.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이다.

 

오늘 지금 여기 살자.

과제가 있음에 감사하자.
천장에 붙어버린 헬륨풍선을 처리하는 방법을 두 가지나 알고 있는 나는
같은 과제가 다시 주어지더라도 과정을 누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실행만 해야 하기에 성공의 희열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어버린 당신도 그렇게 되어 버렸다.
성공의 희열이란 보상의 크기와 전혀 연관성이 없으며
원초적인 쾌락 보상 체계에 의해 작동하는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인간 고유의 인간성이다.

과정을 인내하며 문제해결능력을 키우자.
남겨진 과제가 없어 보이는 시대지만
역설적이게도 문제를 풀어내는 고유한 능력은
더욱 희소한 자원이 되고 있다.

복잡하고 복합적인 과제가 주어졌음에 감사하자.
문제해결능력은 더이상 창의와 연산에만 국한되지 않고
부지런한 실행력과 완수가능성을 분간하는 예리함까지
포함시켜야 할 정도로 개념이 넓어지고 있다.

높은 난이도와 낮은 성공률도 환영하자.
내가 풀기 어렵다면 남들고 풀기 어려울 것이고
그렇게나 어려운 문제를 내가 풀게 된다면
남들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의
진입장벽을 세울 수 있다.

풍요를 경계하고 척박한 환경에 머물자.
복잡하고 복합적인 과제들은
자원의 투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보유한 자원의 여부로 승부가 갈리지 않는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환영하자.
시련이 있어봐야 죽을 시련은 아닐테고
적당한 긴장감과 분노 또한 에너지의 원천이 되며
날파리 따위에 신경을 뺏기지 않을 집중력과 관대함을 키우게 될 것이다.

 

– 2024년을 맞이하며

know what 교육과정을 마칠때쯤 know where 중요하다고 하더니
이젠 know what to know 중요한 시대가 되어부렀다.

배움의 속도는 0으로 수렴하기 what to know 올바르게 인지하는 순간, 배움을 완료한 상태, 지식과 지혜가 반영된 시스템, 시스템을 통해 도출하는 결과까지 정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지식의 계보를 파악하고 올바른 셀프 맞춤 커리큘럼을 세우는 것은 빠른 학습속도보다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이 되었다.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이지만
다음의 시대도 같은 거리만큼 가까워졌으리.
다음은 분명 adoptation, amalgamation 시대일 것이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남이 잘 된 이야기를 들으면 배가 아프다. 매출이 높다고, 이익이 크다고, 직원이 늘었다고, 투자를 받았다고 하면 배가 아프다.

다행히도 복통은 일시적이다. 타인의 행복에 배알이 꼴리는 반사적 반응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보양식을 공급한 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금새 낫는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부럽지가 않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 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내가 그 일을 할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소름이 막 끼쳐. 오싹해져. 지금 내 인생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져.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아마도 나는 일에 대한 가치기준이 더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고 성과가 뛰어나 보여도 그 속성이 저급한 것이 있고,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어떤 이도 부러워하지 않지만 그 속성이 숭고한 것이 있다.

하면 안 되는 일부터 구분해본다.

 

1. 앵벌이

잘나가는 누구 밑에서 일하기, 로또 당첨되기, 구걸하기, 정부지원사업으로 연명하기.

돈을 벌려면 그릇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앵벌이들은 그릇을 키우지 않고 들어오는 돈만 키우려고 한다는 점이다. 본인 또한 자신의 그릇보다 큰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앵벌이로 돈을 크게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배가 아프다. 하지만 복통은 금새 낫는다. 작은 그릇에 담기지 못하고 흘러 넘칠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앵벌이로 돈을 크게 버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외려 불행이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수동적 용역

모든 회사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을이다. 이 일을 반복하다보면 갑질을 감내하는 것이 을질이라고 믿게 된다. 을질을 잘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면 배가 아프다. 하지만 복통은 금새 낫는다. 그 크기가 작거니와, 그 이상으로 키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을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거래의 결정권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사업의 성패는 갑이나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공급만 하다가보면 산업 내에서의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될 경우 더욱 수동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3. 밑빠진 독

시스템화할 수 없는 일은 개선할 수 없다. 개선하지 못하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개선하지 않은 상태로 돈을 벌었다는 소식도 들으면 배가 아프다. 하지만 복통은 금새 낫는다. 비효율과 손실을 감안할 정도로 큰 input을 투입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었다면 분명 몸 어딘가가 망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미래 수익은 고정적이다. 다른 사업체들은 개선한다. 남들은 개선할 때 나는 개선하지 못하면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그 역할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개선이 가능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밑빠진 독의 구멍을 메울 생각은 않고 더 열심히 들이 붓기만 한다.

 

4. 맨손

문명과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도구없이 맨몸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 선조가 발전시켜온 문명의 혜택 위에 우리는 역량을 펼친다. 도시의 높은 산업밀집도, 정보통신의 인프라,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진 거래규약, 도구와 기술의 보급, 직무적으로 훈련된 인력을 활용해 우리는 사업을 구성한다. 바퀴와 인터넷을 새로 발명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발명을 하는 게 아니라면 나머지는 발명된 것들을 현 시대와 상황에 맞게 구성해내는지의 싸움이다. 문명과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는 소식도 들으면 배가 아프겠지만, 이 소식은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이렇게 구분하면 부러워보이는 일 90%는 부럽지 않게 된다.

① 100번의 노가다

Do things that don’t scale. 확장성이 없는 일을 하라. 왜냐면 확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일은 이미 확장성을 갖추었거나, 쉽게 확장될 수 있거나, 이미 누군가가 확장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일을 해내더라도 효용이 없는 일이며 보상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의 본질은 확장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영역을 확장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② 행위의 미분

“콜라병을 따고, 컵에 따라서, 마신다”는 3단계로 보이는 행위를 최소 단위로 미분하면 147단계로 정의할 수 있다. 행위를 최소 단위로 미분하는 것은 테일러리즘의 첫 단계다. 행위를 정의할 때 위계가 [과업단위, 수행단위, 작동단위]중에서 일관적이어야 한다.
일을 더 잘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100번의 노가다 과정을 거치면서 행위를 통합하기도, 지름길을 만들기도, 요소들의 배치를 변경하는 요령을 부리게 되며, 도구의 필요성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일을 더 잘하려는 노력 없이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반복했다면 비효율을 숙달하게 되고, 이 경우 미분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미분하는 행위는 일을 올바르게 해내는 것은 물론, 더 잘해내기 위한 노력이 반영된 행위 최적화가 이뤄졌을 때 이뤄져야 한다.

③ 기계 위임

미분된 행위 중에서 일부를 위임할 수 있다. 피위임 대상은 도구다. 도구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 인간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해주거나 (보완)
– 인간의 능력을 양이나 질적으로 더 잘해내거나 (강화)
– 인간이 해낼 수 없는 행위를 가능케 하거나 (초월)

2차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부족했던 물리적 노동력을 보완하며 일어났고, 3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처리 능력을 강화하며 일어났다. 현대인의 업무 대부분은 정보처리이며, 정보처리 기계인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수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연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업무를 재구성해야 한다.
컴퓨터가 연산할 수 있으려면 연역적 연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컴퓨터가 널리 활용되기 전에도 인류는 이미 정보처리 모델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독립변인 – 모델 – 종속변인] 또는 [input – process – output] 의 모델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원인만으로 결과를 예상하거나, 결과만 관찰하면서도 원인을 파악해낼 수 있다.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감정의 영향을 제외시킬 수 있는 인간이라면 정보처리과정을 쉽게 컴퓨터로 연산위임을 시킬 수 있게 된다.

④ 재편성

행위의 일부가 도구에게 위임되는 순간, 사람의 역할도 바뀌게 된다. 도구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을 재구성해야 한다. 도구가 할 일을 임시로 맡았던 사람의 역할은 해임되고, 사람에겐 도구를 활용하는 새로운 역할이 배정된다. 돈 세는 일은 계수기가 더 잘하고 녹취록을 문자언어로 바꿔내는 일은 클로바노트가 더 잘해낸다. 도구가 없는 상황에서 100번을 노가다하며 터득한 사람의 숙달능력 중 일부는 폐기되어야 한다. 전체 역할 수행 과정을 도구와 사람을 함께 고려해 재편성해야 한다.
사람과 도구가 통합되어 시스템을 형성하기 때문에 사람과 도구를 융합시켜야 한다. 도구의 성능 자체를 높이는 일과, 사람의 사용성을 높이는 일도 진행해야 한다. 반복되는 부분 행위를 모듈화해야 한다. 모듈끼리 연동관계를 조정하면서 전체 구조를 리팩토링 해야 한다.

⑤ 최적화

재편성의 단계를 반복하는 최적화의 기간을 가져야 한다. 비정형의 작업 수행 과정을 정형화시키고 최대한 일렬로 배치하는 것이 좋다. 일렬려 배치해내지 못하면 경우의 수가 늘어나 복잡도가 늘어난다. 시스템 설계의 요령과 모델링 방법은 더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함의 추구다. 재편성 과정에서 단순함을 추구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기존의 작업보다 더 복잡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⑥ 회고

Version 1이 만들어졌다. 이 방식이 더 나은 방식인지 돌아보자. 더 나은 방식이 아니라면 ②번이든 ③번이든 ④번이든 다시 돌아가서 해야 한다. 더 나은 방식이라면 다시 ①번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방식으로 100번 노가다 하며 다음 개선을 준비하자.

 

이 과정이 한 사이클이다. 사이클을 반복한다.

 

— 덧붙임 —

언제적 테일러리즘이냐. 4차산업에 적합한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서도.

내려 놓았다.

도통 무엇을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느낌은 수 개월이 아니라 년 단위를 넘어섰다. 출근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데도 개선의 진척이 없으니 나는 방향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출근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자전거를 탔다. 동네에서 자전거를 제일 잘 타는 놈이 되었다. 출근자덕보다 무직자덕이 아무렴 잘 타야 했다. 일의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운동으로 만들어낸 성과를 확인하며 자존감을 지켜냈다.

다른 회사에 출근도 해봤다. 지식도 능력도 요령도 많은 나같은 일꾼이 일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국가적으로 산업경쟁력에 손실이 발생하는 낭비이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내 모습도 관찰해볼 겸 회사도 다녀봤다.

기세를 몰아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기로 했다. 모든 역할을 직원에게 위임했다. 출근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모든 책임을 내려 놓는다고 명문화해 사인까지 하고나니, 완전한 자유인이다. 평소라면 전혀 만날 일이 없던 호화궁상을 만나보고 철학공부를 유튜브로 2달 내내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깥으로 돌았다. 갇혀버린 상태에서 벗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알차게 보냈다. 장장 2년의 기간이었다.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만큼이나 모든 것을 내려 놓아본 시간 또한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기에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사람도 떠났다.

부친상을 당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여읜 후의 감상을 공유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덧붙였다. 사람들은 으레하듯이 나에게 상실을 위로했지만 나는 요상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공유하고자 했던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되었다. 부친상은 조부모상과 분명 달랐다. 나는 비로소 내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 좋으나 싫으나 내 존재를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되었다. 트라우도 흑역사도 짧은 인생의 덧없음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더이상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가장 오래 일한 직원도 떠났다. 국가는 무엇이고 기업은 무엇이며 개인은 무엇이고 존재란 무엇인가.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때로는 아주 중요하기도, 때로는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한다. 혼자서 달성해낼 수 없는 목적이기에 여럿이 모이고 조직을 형성한다. 또 다른 구성원의 조합으로 또 다른 조직이 되어 또 다른 도전에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한다.

 

유사 서비스도 생겼다.

매해 서너개씩 나왔지만 궤도에 오른 것은 그동안 하나도 없었다. 다들 모냥새만 흉내내다 요구되는 비용과 자원과 시간과 복잡성에 손을 들고 떠났다. 미련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에서 나만큼 미련한 사람은 없었다.

실행의 싸움도 기술의 싸움도 디자인의 싸움도 마케팅의 싸움도 효율의 싸움도 자본의 싸움도 아니다. 이것은 개념파악의 싸움이다. 누가 다음 개념을 찾아낼 수 있을 때까지 미련하게 들러 붙어 있을지의 싸움이다.

적어도 나는 창조자가 아니다. 정리하는 사람에 가깝다. 지저분한 귀납적 현상들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이고 정제하고 재분류하고 정의하고 종합적으로 정리해내는 정보처리기계이다. 이전보다 나은 다음을 한 단계씩 만들어내며 도달한 게 지금의 문명이다. 오늘도 분야마다 한 단계씩 다음 모습을 찾으려고 아둥바둥거리는 게 현대 문명인의 책무다.

나 또한 앞선 서비스의 시도를 오답노트삼아 만들어낸 유사서비스였다. 그리고 더이상 참고할 성공사례도 실패사례도 없을 때 나는 정체기를 맞았다. 앞서 존재한 서비스를 내가 이겨낸 것이 아니다. 앞선 서비스의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존재했기에 유사 서비스들이 또 나올 수 있었다. 나 또한 유사 서비스 덕분에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다.

이렇듯 동시대를 살아가며 교류하는 모두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감사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일이 많았던 때도 아니고, 문제가 어려웠던 때도 아니다. 일이 없었을 때다.

일이 많다는 것은 세상을 인지할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역량을 강화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사회에 쓸모있는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다.

문제가 어렵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어려운 문제일 것이기 때문에 문제의 어려움은 문제가 아니다. 내 능력의 한계를 돌파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도전과제이며 이 또한 축복이다.

나는 오히려 일이 없었을 때 방향을 잃었다. 내 존재가 무의미해졌고, 짧은 생을 살면서 세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기력을 느꼈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작년 여름부터 일의 호흡을 바꾸었다. 주단위로 끊어 가기로 했다. 주마다 결산을 하며 한 줄 평이 남겨진다. 문장들이 쌓이니 내가 어떤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 잘 보여지는 것 같다. 묶어본다.

 

 

Reset everyweek.

정리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습니다.

“솔직, 간결, 즉시”

설레는 일을 합시다.

비효율은 적이다. 적을 섬멸하자.

Concise and Precise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제대로 일하게 된다.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수요가 시스템에 선행한다.

Active한 일을 Passive로 바꾸는 일

어떤 바람이 불더라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면 세상은 우리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양의 영역은 AI인공지능기계에 맡기고 우리 인간은 질에 집중하자.

숨쉬듯 운영정비

문제를 Universal하고 Permenant하게 풀자.

개인의 업무 역량을 키우는 일은 가장 확실하게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다.

see wider, aim higher.

[목표설정 > 시도 > 회고]의 무한반복

구조는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구조가 없는 환경에 내던져 지더라도 올바른 판단을 찾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끔 나는 구조가 없는 환경 속으로 제발로 걸어 들어간다.

Due가 있고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일은 마무리된다.

당장의 문제에 집중. 오늘의 최선.

KISS & MISS(Keep It Super Simple, Make It Super Simple.) Simple is best.

자원은 언제나 부족하고 기술의 제약은 누구에게나 있다. 부족한 자원임에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제약이 있는 기술임에도 궁극의 구현을 해내는 것이 가치 창출의 본질이다.

일이라는 것은 내 능력과 기술을 시대와 환경과 산업에 최적화시키는 일이다. 사업의 기회도 직무의 역할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잠시 주어질 뿐이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이상 될 수 없다. 같은 일을 120% 집중할 때 도달하는 제로의 영역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일을 절반 이상 버리는 것이 시작이다.

기술이든 콘텐츠든 디자인이든 모두 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자원은 언제나 부족하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은 우리를 더욱 우리답게 만든다. 자원이 풍족하면 오히려 우리답지 못하게 된다.

being Original.

기술의 보급, 낮아지는 요구 자원, 높아지는 구현 가능성, 짧아지는 사업 경쟁력 지속시간.

같은 일을 같은 방법으로 하면서 같은 성과를 내고 있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다.

10번을 개선하는 게 아니다. 10번을 버리는 일이다.

노동은 사라지고 올바른 판단만 남는다. 올바른 판단은 다시 노동을 없앤다.

Do the right thing, right way, right now.

It takes time. It takes steps.

한 가지 발차기의 만 번 연습.

테크가 별건가. 일 잘하는 게 테크다. 높은 생산성이 테크다. 적은 자원으로 높은 성과를 내는 게 테크다.

나의 강점은 교집합이 아닌 차집합에 있다.

Get Things Done.

나 자신은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자기확신을 가지자. 설령 오늘 정답을 찾지 못했더라도 내일의 나는 정답을 찾을 것이라는 긍정을 가지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뛰어나듯이, 오늘의 나보다 뛰어난 내일의 내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자기확신을 가지자.

사업은 시대 속에서, 산업 속에서 존재한다.

나는 거래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시장을 만들 수 있었다.
거래가 계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고, 개인에 의존하지 않고도 거래가 계속 창출되는 시장을 만들었다.

거래를 할 줄 알면 시장을 만들 수 있고, 시장을 만들 수 있으면 다음엔 산업을 만들 수 있다.
산업은 밸류체인을 일컫는다. 수직적인 묶음도 수평적인 묶음도 밸류체인이 될 수 있다.
법인의 경영자가 되는 것은, 1985년에 이 세상에 피투된 한낱 개인이 맡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다.

법인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나의 사업 범위와 법인의 범위를 동일시해도 된다.
사업의 여럿 운영하며 그것을 아우르는 상위 개념을 목적으로 두어도 된다.
사업을 여럿 하자는 것도, 좋은 직장을 만들자는 것도, 좋은 팀웍을 우선시하는 것도, 수익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도 다 괜찮다.
정해진 것은 없다. 정하면 된다.
우리 법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이 법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고민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함으로 찾을 수 있다.

① 어디로 향할 것인가?
② 어떤 도전이 도사리고 있는가?
③ 어떤 과실을 얻게 되는가?
④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나는 경영자로써 사회와 조직 내부 구성원에게 가치를 제공한다.

① 사회, 경제적인 실익을 가져다준다.
②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은 시기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③ 개인이 역할을 맡아 수행하는 것도 추후의 생존에 도움된다.
④ 우리가 하는 일 자체도 재밌고 보람차다.

 

 

—- 덧붙임 —-

법인 전환 7개월차

이렇게 법인 대표가 되어간다.

운동을 쉬면 퍼포먼스가 떨어진다. 꾸준히 하면 오르고 멈추면 떨어진다. 이 컨디셔닝의 공식이 얼마나 정직한지 오늘날 운동생리학자들은 이를 수치화해서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강도,빈도,지속시간 세 요소를 측정해 총 운동성과를 수치로 나타내기도 하고 각 요소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지 분석해 성과마다의 특성을 회귀도출하기도 한다.

성장의 속도란 어느 정도 달성한 후로는 그 속도와 기울기가 점차 완만해진다. 정비례해서 계속 증가할 순 없다. 정말 일분일초의 낭비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쏟아놓는 인간의 최선의 노력까지 쥐어짜내고 전세계인이 주목하는 상황에서 정신력까지 극도로 끌어올려 초월적인 능력까지 발휘하는 올림픽리스트의 신기록이 한계라고 한다면 그것에 근사해질수록 차이는 작아진다. 이 상태에서는 최대한의 노력을 들이부어도 성장은 이뤄지지 않고 현상유지만 할 수 있다. 노력과 성과가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상태.

그래서 정체기를 만나면 재미가 없다. 더 나아져야 재미를 느끼는데 열심히 해도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니 외적동기와 내적동기가 모두 상실된다. 계단식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믿어서 조금은 버틸 수 있지만 한동안 지나도 그 성장마저 보이지 않는다면 노력대비 성장은 불가하고 심지어 최대한의 노력을 들여도 퍼포먼스는 오히려 하락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역치값은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성장을 이끌기 위해 들여야 하는 점진적으로 과부하의 정도는 계속 커지기만 한다.

온 종일 운동만 하는 전문스포츠맨이 아닌 우리들은 생업을 꾸리느라 운동빈도가 뜸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퍼포먼스의 한계치가 빠르게 찾아온다. 게다가 추워지는 겨울이면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생기니 좋은 변명거리 삼아 운동을 쉬고, 어김없이 초기화가 진행된다.

초기화가 있기에 급진적인 성장의 기울기와 그 과정에서 찾아오는 자기효능감을 반복해서 느낄 수 있다. 한 종목의 달인이 되어버리면 성장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종목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거의 모든 종목을 다 섭렵해버려 성장쾌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운동하는 것만으로 다시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다. 초기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제로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다행인 것인가.

초기화를 받아들일 때 초기화 전의 최대 퍼포먼스를 기준으로 잡으면 안 된다. 그건 작년의 최대치였다. 그 결과는 4,000키로의 라이딩 마일리지라는 인풋이 있었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아웃풋이었다.

아예 운동을 하기 전의 시점을 제로점으로 잡자. 너무 처음보다는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즈음, 그러니까 자전거라면 클릿슈즈를 처음 꽂던 시점, 달리기라면 런닝팬츠를 처음 산 시점 정도가 되겠다.

인간은 본디 학습에 재미를 느낀다. 모르는 정보를 아는 것도 그 정보를 통해 내 사냥실력이 늘어는 것도 재미를 느낀다. 그렇게 배움에 재미를 느낀 조상들만 살아남아서 700만년동안 대를 이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배움이 재미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현대 교육 때문이다. 배움을 교육과 학습으로 구분해보자. 사전적 정의는 다르지만 나는 이 둘을 능동수동으로 구분한다. 학습주체가 능동적이면 학습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교육이다. 교육은 선생이 있어야하고 학습은 스스로가 선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배움은 본디 재밌는 것이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전공은 다양해져서 사람마다 배움의 성과가 덜나오는 분야를 재미없게 느낄 뿐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잘 맞는 분야를 찾기만 한다면 누구나 배움에서 재미를 느낀다.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아이들도 공부엔 집중 못하지만 게임엔 누구보다 집중을 잘한다. 공부는 적성에 맞기 어렵지만 게임은 누구에게나 적성이 잘 맞다. 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일 뿐. 게임이 적성에 잘 맞는 이유는 그렇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게임기획자들은 인간이 어떻게 재미를 느끼는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해 게임의 요소로 구현해낸다. 그리고 그 요소 중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가 배움과 성장이다. 재미있을 수 밖에 없도록 겨냥해서 디자인했으니 재미가 없을 수 없을 수 밖에.

그런 게임에서도 초기화 개념은 있다. 육성과 성장에 한계를 느끼는 것을 알게 되자 게임 기획자들은 한 캐릭터를 계속 성장시키기보다 매 게임마다 반복성장시키기로 했다. 매판 1렙부터 새로 키워야 하는 롤은 매판 짜릿해 최고야 늘 새로워. 성장을 통한 만족감이 가장 특화된 게임은 idle장르다. 자원을 캐서 그 돈으로 업드레이드하고 효율을 높여 다시 자원을 더 모으길 반복하는, 또는 전투력을 키우길 반복하는 이런 유형의 게임은 게임의 작동원리가 어느 정도 파악되기 시작한 순간 재미가 없어진다. 게임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눈에 들어오는 순간 현타가 오더라.

직선적인 게임 진행방식을 정기적으로 초기화시켜 같은 게임도 새로운 게임이 되는 것이다. 열배나 많은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콘텐츠로 열 번을 반복시킬 수 있으므로 생산성도 좋다. 모두 초기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라이트유저는 세계에 발을 담궈본 것만으로도 충족시키고, 헤비 유저는 초기화를 반복하며 열배의 플레이타임을 즐겨도 만족스럽게 게임할 수 있다. 이전과 똑같은 반복을 하게 된다면 재미가 없겠지만 이전에 어렵게 깬 것을 쉽게 깨부수게 되면서 자기효능감을 느낀다. 1.5배 정도 강해지게 해주는 것만으로 엄청 만족스러워진다. 환생 개념도 초기화고 부케 생성도 초기화고 시즌제로 돌리는 것도 초기화다.

초기화를 시킨 다음엔 게임의 양상이 달라진다. 성장결과의 정도가 아니라 성장의 기울기, 즉 성장의 속도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초기화도 반복하다보면 초기화를 극복하는 데에도 속도가 붙는다. 초기화를 극복하는 데 처음에는 3주가 걸렸다면 그 다음 초기화극복엔 보름밖에 걸리지 않고 그 다음엔 열흘 정도면 본격적인 운동강도를 받아낼 정도의 몸 상태가 준비될 것이다. 잔차 타는 사람들은 이걸 몸이 올랐다고 표현하더라.

그러니 초기화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초기화가 없다면 우리는 성장 기울기가 완만해져버린 영역 속에서 아무리 과부하를 먹여도 보상은 조금밖에 못 얻는, 게임을 할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성장의 연속이다.
내 삶에 생기를 다시 불어넣기 위해 지난 5개월 유산소를 끊었었다.
게을러서 안 뛴게 아니라니까요?

가슴 뛰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온 삶을 소명에 향하도록 하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그 시작은 너무나 강렬하고 확실한 성공의 기세이기 때문에 발동시키기만 하면 그 끝엔 풍족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과정 또한 가슴 뛰며 매일이 즐거울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부터 그 상태가 되겠다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발동되지 않는다. 내 의식이 그렇게 단순하게 이뤄져 있진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가슴에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 보다 깊은 아랫배에서 욱하고 올라와야 한다. 잠재의식에서도 갈망하면 자는 중에도 그것을 원하고 궁리하게 된다. 잠결에 해법을 생각해낼 정도로 그것을 열망해야 한다. 그것을 열망해야 한다. 열망해야 한다. 열망. 그렇다. 열망.

나는 열망하는 방법을 잊었다. 무엇을 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런 것인 줄로 알았다. 하고 싶은 것은 참고, 갖고 싶은 것은 미루고, 내 욕망보다는 상대의 욕망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른만이 가질 수 있는 기술이고 지켜야 할 품위로 배웠다. 그렇게 나를 훈련시켰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책임과 의무 밖에 없었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아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머리로만 생각한들 내면에서 반응이 전혀 생길 리 없었다.

 

◾열망하는 법을 되찾자. 마음이 가는 곳이 무엇이라도 있다면 그대로 직진해보자.

◾ 마음을 드러내보자. 마음을 글로 말로 표현해보자. 더 많은 사람에게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그대로 드러내보자.

◾ 마음을 다스려보자. Mind Routine을 통해 건강한 마음을 갖자. 긍정희망-마음이 열정-행동을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행동이 의식을 만들기도 한다. 부지런히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