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잘 된 이야기를 들으면 배가 아프다. 매출이 높다고, 이익이 크다고, 직원이 늘었다고, 투자를 받았다고 하면 배가 아프다.

다행히도 복통은 일시적이다. 타인의 행복에 배알이 꼴리는 반사적 반응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보양식을 공급한 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금새 낫는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부럽지가 않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 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내가 그 일을 할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소름이 막 끼쳐. 오싹해져. 지금 내 인생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져.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아마도 나는 일에 대한 가치기준이 더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고 성과가 뛰어나 보여도 그 속성이 저급한 것이 있고,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어떤 이도 부러워하지 않지만 그 속성이 숭고한 것이 있다.

하면 안 되는 일부터 구분해본다.

 

1. 앵벌이

잘나가는 누구 밑에서 일하기, 로또 당첨되기, 구걸하기, 정부지원사업으로 연명하기.

돈을 벌려면 그릇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앵벌이들은 그릇을 키우지 않고 들어오는 돈만 키우려고 한다는 점이다. 본인 또한 자신의 그릇보다 큰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앵벌이로 돈을 크게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배가 아프다. 하지만 복통은 금새 낫는다. 작은 그릇에 담기지 못하고 흘러 넘칠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앵벌이로 돈을 크게 버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외려 불행이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수동적 용역

모든 회사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을이다. 이 일을 반복하다보면 갑질을 감내하는 것이 을질이라고 믿게 된다. 을질을 잘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면 배가 아프다. 하지만 복통은 금새 낫는다. 그 크기가 작거니와, 그 이상으로 키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을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거래의 결정권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사업의 성패는 갑이나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공급만 하다가보면 산업 내에서의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될 경우 더욱 수동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3. 밑빠진 독

시스템화할 수 없는 일은 개선할 수 없다. 개선하지 못하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개선하지 않은 상태로 돈을 벌었다는 소식도 들으면 배가 아프다. 하지만 복통은 금새 낫는다. 비효율과 손실을 감안할 정도로 큰 input을 투입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었다면 분명 몸 어딘가가 망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미래 수익은 고정적이다. 다른 사업체들은 개선한다. 남들은 개선할 때 나는 개선하지 못하면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그 역할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개선이 가능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밑빠진 독의 구멍을 메울 생각은 않고 더 열심히 들이 붓기만 한다.

 

4. 맨손

문명과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도구없이 맨몸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 선조가 발전시켜온 문명의 혜택 위에 우리는 역량을 펼친다. 도시의 높은 산업밀집도, 정보통신의 인프라,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진 거래규약, 도구와 기술의 보급, 직무적으로 훈련된 인력을 활용해 우리는 사업을 구성한다. 바퀴와 인터넷을 새로 발명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발명을 하는 게 아니라면 나머지는 발명된 것들을 현 시대와 상황에 맞게 구성해내는지의 싸움이다. 문명과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는 소식도 들으면 배가 아프겠지만, 이 소식은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이렇게 구분하면 부러워보이는 일 90%는 부럽지 않게 된다.

① 100번의 노가다

Do things that don’t scale. 확장성이 없는 일을 하라. 왜냐면 확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일은 이미 확장성을 갖추었거나, 쉽게 확장될 수 있거나, 이미 누군가가 확장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일을 해내더라도 효용이 없는 일이며 보상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의 본질은 확장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영역을 확장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② 행위의 미분

“콜라병을 따고, 컵에 따라서, 마신다”는 3단계로 보이는 행위를 최소 단위로 미분하면 147단계로 정의할 수 있다. 행위를 최소 단위로 미분하는 것은 테일러리즘의 첫 단계다. 행위를 정의할 때 위계가 [과업단위, 수행단위, 작동단위]중에서 일관적이어야 한다.
일을 더 잘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100번의 노가다 과정을 거치면서 행위를 통합하기도, 지름길을 만들기도, 요소들의 배치를 변경하는 요령을 부리게 되며, 도구의 필요성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일을 더 잘하려는 노력 없이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반복했다면 비효율을 숙달하게 되고, 이 경우 미분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미분하는 행위는 일을 올바르게 해내는 것은 물론, 더 잘해내기 위한 노력이 반영된 행위 최적화가 이뤄졌을 때 이뤄져야 한다.

③ 기계 위임

미분된 행위 중에서 일부를 위임할 수 있다. 피위임 대상은 도구다. 도구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 인간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해주거나 (보완)
– 인간의 능력을 양이나 질적으로 더 잘해내거나 (강화)
– 인간이 해낼 수 없는 행위를 가능케 하거나 (초월)

2차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부족했던 물리적 노동력을 보완하며 일어났고, 3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처리 능력을 강화하며 일어났다. 현대인의 업무 대부분은 정보처리이며, 정보처리 기계인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수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연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업무를 재구성해야 한다.
컴퓨터가 연산할 수 있으려면 연역적 연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컴퓨터가 널리 활용되기 전에도 인류는 이미 정보처리 모델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독립변인 – 모델 – 종속변인] 또는 [input – process – output] 의 모델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원인만으로 결과를 예상하거나, 결과만 관찰하면서도 원인을 파악해낼 수 있다.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감정의 영향을 제외시킬 수 있는 인간이라면 정보처리과정을 쉽게 컴퓨터로 연산위임을 시킬 수 있게 된다.

④ 재편성

행위의 일부가 도구에게 위임되는 순간, 사람의 역할도 바뀌게 된다. 도구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을 재구성해야 한다. 도구가 할 일을 임시로 맡았던 사람의 역할은 해임되고, 사람에겐 도구를 활용하는 새로운 역할이 배정된다. 돈 세는 일은 계수기가 더 잘하고 녹취록을 문자언어로 바꿔내는 일은 클로바노트가 더 잘해낸다. 도구가 없는 상황에서 100번을 노가다하며 터득한 사람의 숙달능력 중 일부는 폐기되어야 한다. 전체 역할 수행 과정을 도구와 사람을 함께 고려해 재편성해야 한다.
사람과 도구가 통합되어 시스템을 형성하기 때문에 사람과 도구를 융합시켜야 한다. 도구의 성능 자체를 높이는 일과, 사람의 사용성을 높이는 일도 진행해야 한다. 반복되는 부분 행위를 모듈화해야 한다. 모듈끼리 연동관계를 조정하면서 전체 구조를 리팩토링 해야 한다.

⑤ 최적화

재편성의 단계를 반복하는 최적화의 기간을 가져야 한다. 비정형의 작업 수행 과정을 정형화시키고 최대한 일렬로 배치하는 것이 좋다. 일렬려 배치해내지 못하면 경우의 수가 늘어나 복잡도가 늘어난다. 시스템 설계의 요령과 모델링 방법은 더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함의 추구다. 재편성 과정에서 단순함을 추구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기존의 작업보다 더 복잡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⑥ 회고

Version 1이 만들어졌다. 이 방식이 더 나은 방식인지 돌아보자. 더 나은 방식이 아니라면 ②번이든 ③번이든 ④번이든 다시 돌아가서 해야 한다. 더 나은 방식이라면 다시 ①번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방식으로 100번 노가다 하며 다음 개선을 준비하자.

 

이 과정이 한 사이클이다. 사이클을 반복한다.

 

— 덧붙임 —

언제적 테일러리즘이냐. 4차산업에 적합한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서도.

보상을 바라는 인간은 결국 돈을 벌지 못한다. 보상을 좇고자 하는 생각은 결국 이익을 얻을 수 없는 판으로 자신을 내몬다. 당장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이미 만들어진 게임에 참가하고, 이길 수 없는 게임의 공략법만 파헤치게 만든다.

이들은 게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게임이 내 것으로 만들어진다면 보상이야 얼마든지 조정해낼 수 있다. 그래서 이걸 깨우친 사람들이 “돈을 좇지 마라. 돈이 따라오게 만들어라”라는 얘기를 했다. 절반의 개소리라 생각하고 절반은 믿는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 대부분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겸손하고 바른 태도로 살아 덕을 쌓으면 업보가 돌아올 것이다” 정도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모두가 게임의 판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모두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면 소는 누가 키우나. 게임에 참여할 사람이 있어야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에도 지배자는 노예를 인정하고 존중했다. 노예가 없이는 지배자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임 참여자를 존중하지 않은 채로 만들어진 게임은 곧 사이비 다단계 폰지사기가 된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서 당장의 이익만 생각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의 크기에 유혹되어 장기적으로 큰 불안과 위험에 빠지게 된다. 목표는 주어지고 계획도 제공받는다. 그 계획이란 절대로 실현될 수 없거나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계획이다.

게임 참여자들은 계획의 실현가능성을 판단하지 못한다. 기대값은 기대성과와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곱해 계산된다. 로또는 기대값이 50%이며 보험도 그 언저리다. 이런 기본적인 계산을 하지 못하고 게임에 참여하는 이유는 게임의 판을 만드는 측에서 일부러 잡음을 넣기 때문이다. 종교에서의 간증과 서비스의 성공사례는 실현가능성이 100%에 가깝다고 믿게 만드는 모함 장치다.

5년 전, 요리사를 위한 구인구직 서비스를 기획했다. 요리를 위한 매체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럴싸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경쟁 서비스는 17년 전에 만들었으므로 내가 새로 만들면 당연히 더 나을 것이고 사람도 끌어모을 수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했다. 하지만 나는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게임을 접었다. 싸우기도 전에 졌다. 링 위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최근 구인구직 서비스를 하나 더 기획했다. 어느정도 윤곽이 보이자 서비스를 공개하기 부끄러웠다. 이 서비스 또한 링 위에 올리지 않았다. 5년 전 발생한 사건과 너무 흡사해서 스스로 놀랐다. 나는 이 분야에서 하나도 나아지지 못했구나. 생산의 결과는 공정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므로, 같은 공정을 거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또한 유추 가능하다. 이번 복기는 내가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공정에서의 잘못들을 되돌아보기 위한 복기이다.

 

복기를 하기에 앞서서, 복기에 대한 생각부터 정리한다. 복기는 보통 같은 종류의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 적용하면 좋은 패턴 파악 방법이다. 게임이나 운동에 적용하기 좋다. 형식이 제거된 게임의 규칙이란 대체로 단순해서 궁극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목적지와 그 경로를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사업은 상대적으로 복합적이다.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 원인이 다양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따라서 복기를 하더라도 정확한 원인이나 개선방향을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해석하려고 하더라도 내가 개입되었던 사건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또한 현재의 내 마음이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에 따라, 현재의 결정이 옳다고 판단내리기 위해 과거를 해석하는 관점에 투영되어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태도는 불가지론에 어긋나며, 복기를 통해 큰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성급한 결론 도출로 이어지거나 사소한 사안을 과장해서 받아들이려는 중요도 파악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사업을 되돌아볼 때에는 복기를 하더라도 구체적인 결론을 찾아내진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접근해야 한다. 결론을 찾지 못하더라도, 절차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세상은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성급한 체계화와 규격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복기의 틀은 마련되어야 한다. 과정으로서의 복기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해법을 찾지 못했더라도, 나중에 내공이 더 쌓인 나를 위해서라도 틀에 맞춰 사태를 객관화시켜야 한다. [문제정의/개선]의 2가지 구성이 일반적이겠다.

 

확장과 초심의 문제

한 번 형성된 서비스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변경되긴 어려웠다. 덕지덕지 붙이는 것도, 억지로 늘여 넓히는 것도 올바른 운영방식이 아니었다. 특정 고객의 수요를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공급자와 연결하는 서비스의 콘셉이 바뀔 수 없었다. 그래서 확장 계획을 성급하게 몇 가지 생각했다. 에딧폴리오(구인구직) 에딧팜(직접공급) 하지만 이 두 계획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결에 맞지 않았다. 한 그릇에 담기지 않았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지금껏 3년 8개월 동안 축적한 경험과 경쟁력이 신사업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접근이였다. 실행되더라도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 비드폴리오의 초심은 아래 세 글에 잘 쓰여져 있다. 초심을 지키면서, 산업 내에서의 역할을 지키면서, 중개자의 철칙을 지키면서도 서비스를 확장할 방법은 나온다. 까다로운 조건이 설정되어 오히려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비드폴리오 창업 동기 (파트너스 편지) http://vidfolio.kr/?p=6251

비맴심서(比買心書) – 비드폴리오 매니저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 http://vidfolio.kr/?p=7483

영상제작 거래중개서비스를 창업한 8개월의 기록https://leeunow.mycafe24.com/?p=781

 

내가 만든 세상에 스스로 갇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가진 것이 세상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더욱 깊게 들여다보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잘 만들었다고 만족스러울 때면 멋드러진 이름을 붙이고 흐뭇해했다. 그럴수록 애착이 생기고 이것은 어떤 의미인지 곱씹어보며 자화자찬을 내뱉으며 구성원의 공감을 억지로 이끌어냈다. 그럴수록 내가 만든 세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 가진 것에서부터 생각하는 잘못. 나의 solution은 고작 수단일 뿐인 기능이나 필요에 따라 형성된 절차들일 뿐이었다. 생각의 출발은 고객이어야 하고 생각의 끝도 고객으로 향해야 한다.

 

목표 동기화의 문제

추상적인 미션은 있으나 구체적인 목표가 가시화되지 않았다. 실행 계획들이 미션에 전혀 일치하지 않음에도 수행하는 이유는 alignment를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한참이나 진행된 후에야 많이 어긋나있음을 알게 되었다.

>> 목표를 가시화해야 한다. 가시화란 눈앞에 선히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구체적이어야 한다. 숫자로 표현되면 가장 구체적이다.

 

필요 역량의 파악 문제

모른다는 것은 두 가지다. 알지 못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뉜다.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번 실패를 통해 기획자, CPO, 디자이너, 코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 (당연하게도) 필요한 역량을 끌어오거나 직접 갖추어야 한다. 필수조건이다.

 

투자(도전)에 대한 태도 문제

7년 전, 사업을 시작할 때 보험이 될만한 장치나 완충지대가 없었다. 나는 쫄보 기질이 강했다. 때문에 리스크 최소화의 태도로 사업에 임했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적은 보상을 확보하는 low risk low return을 불가피하게 택했다. 이런 태도가 장기화된 습관이 되었다.

>> 이런 궁상맞은 태세는 적은 비용으로 실패의 경험을 사는 데에는 적합하겠지만, 어느 정도 여건이 갖춰진 뒤에는 리스크를 감안하는 도전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위험감수와 비용절감은 다른 것이다. 제프 베조스는 누구보다 큰 위험을 감당하지만 여전히 문짝책상을 쓴다.

 

필요 역량의 공급 문제

‘자원을 적게’라는 것이 우선 조건으로 걸리다보니 선택지가 좁아졌다. 쉽고 빠르게 결과를 낼 수 있는 솔루션이라는 방법을 우선 결정했다. 그리고 구인구직 사이트를 기획했다. 그리고 시장이 받아들이기를 기도했다. 시장이 원한다고 믿으며 그 증거를 수집했다.

>> 정반대의 순서로 접근했다. [시장의 수요 > 수요의 서비스화 > 서비스의 수행]의 순서로 전개되어야 올바른 서비스의 기획이다.

 

공정의 문제

나는 꽤 훌륭한 기획자라고 자부하지만 웹 기획의 영역에선 얘기가 달랐다. 웹 기획자의 영역에서 보자면 3개월차보다도 못할 것이다. 웹 기획의 분야에서 올바른 공정은 따로 있으나 나는 알지 못했다. 백지의 PPT를 켜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만으로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총체적인 서비스는 여러 기능과 시스템이 통합되어 제공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프론트 이지만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겉모습만 흉내내어 만들어낸 서비스는 경쟁력이 있을 리 없으며 ‘영원한 베타’ 정신과 정반대로 향하는 것이다.

>> 끊임없는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 [현상 및 현황파악 > 착상의 파편 기록 & 정제 > 기획(실현계획수립) > 실행] 네 단계를 거치도록 기획의 절차를 마련했다. 오래 걸리더라도 이 과정을 거쳐야 올바른 제품을 만들 수 있다.

>> 첫 삽 뜨기 전에 설계도부터, 악셀 밟기 전에 네비부터, 칼 들기 전에 레시피부터

 

공정이 해답이라 생각하는 문제

생산성을 10배 높이는 과정에서 공정과 방법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루틴한 업무들은 공정을 개선하거나 루틴한 절차를 만들어내면서 운영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 재미를 보다보니 만능해결책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갈수록 공정과 방법론에 집착하게 되었는데 집착이 커지는 과정에서도 많은 공정과 방법론을 시도했으므로 약간의 성과는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성과가 0으로 수렴해가고 있었고 더 이상 시스템에 의존하는 태도로는 혁신은 커녕 개선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실전에 뛰어들기 무서워 대타를 내보내는 비겁한 태도다. 공정이나 절차를 통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분야도 있겠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 땐 공정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공정을 파괴하고 기존의 방법을 버리면서 개선이 일어난다. 이 몹쓸 태도는 나의 의식의 전원을 꺼버린다. 동물적인 감각을 아예 잃어버렸다.

 

분류집착

분류를 잘한다고 사용성이 좋아지진 않는다. 분류를 하는 입장의 사람은 명확한 개념의 구분이나 더욱 상세한 구분, 범주의 레벨조정 등을 신경쓰지만 그런 요인을 신경쓸수록 실제 사용자의 직관성과는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 분류불안있는 분류병자 정신차려. MECE는 도구이지 만능이 아니야.

 

MVP와 Prioritize

MVP를 겨냥하지 않았다. 기획자의 스위치를 켜면 망상이 시작되고 5개월은 족히 걸릴만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그리고 있었다.

>> 책임감이라곤 1도 없는 겁쟁이 기획자가 실언하도록 허용하지 말아라.

>> Prioritize는 하던 방식으로 하면 된다. “Reset Everyday, Reset Everyweek.”

 

합리적인 당나귀는 굶어죽는다

언젠가부터 일은 하지 않고 옳은지 그른지 판단만 한다. 하루 종일 생각을 하고 하루 종일 정리하고 하루 종일 판단을 내려도 한 발짝도 나는 나아가지 않았더라.

>> 복기도 이정도면 과한 것 같다.

 

몰입 가능한 환경의 조성 문제

몰입할 대상이 없었다. 시스템화와 위임을 너무 지향한 나머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도 모두 넘기게 되었다. 내가 넘겨버린 문제를 구성원이 풀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그들이 풀거나 풀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넘기는 것이 문제였다. 문제를 넘기고나니 나에겐 더 이상 문제가 남아있지 않았다. 더 이상 어떤 문제도 없는 삶은 비참했다. 존재의 가치를 잃었다. 몰입의 대상이 없는 삶. 허무함과 우울함이 밀려왔다. 무엇이 문제인지 당시엔 몰랐다. 

>> 내가 무엇인가를 만들었던 경험을 되돌아보면 모두 초 과몰입 상태에 빠졌었다. 몰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내기는커녕 올바른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비단 사업뿐만 아니라, 앨범을 만들어내는 뮤지션에게서도, 기록을 갱신하는 운동선수에게서도,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학자에게서도 몰입의 상태가 발견된다. 나는 과몰입을 통해 자아를 잊어버릴 지경에 다다를 때에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이다. 자아를 상실할 정도로 대상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팀으로 일한다면 팀 전체의 자아가 망각시켜야 한다.

 

인사의 문제

사람을 고치려고 한 문제. 문제를 특정한 사람의 특정한 요인으로 정의하는 문제.

>> 기계의 문제는 깊이 들여다보아도 된다. 깊이 들여다볼수록 좋다. 모든 행위를 미분하고 작동원리를 파악해 오류를 수정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사람은 깊이 들여다보면 안 된다. 깊이 들여다본다고 타인을 고칠 수 없다. 오히려 한 걸음 두 걸음 열 걸음 물러서야 한다. 열 걸음 쯤 물러서서 우리가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우선 확인해야 한다.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면 부딪히더라도 어깨를 부딪히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이다.

>> 노동이 사라진 시대, 판단만 남은 시대에 필요한 것은 역량 평가가 아닌 케미다.

>> <구심점>으로 추가 심층 복기

조직은 민주주의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곳의 목적은 평등하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은 목적이 있다. 목표가 있다. 하나의 미션을 바라보고 치고 나가서 달성해나가는 것이다. 치고 나가서 달성하기에 적합한 조직마다의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은 기업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황파악, 의견제시, 판단기준, 의사결정, 결론도출 등의 모든 활동에 스며들어 있다. 조직이란 일종의 유기체다. 조직이 겪는 현상은 다양하고 활동 또한 다양하므로 조직의 메커니즘을 하나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조직의 메커니즘은 곧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문제를 찾아내는 것 / 문제를 정의하는 것 / 문제의 해법을 도출하는 것 / 문제해법을 실행하는 것 – 전체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공정이나 방법론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적절하지 않다. 공정과 방법론이라면 다른 상황에 옮겼을 때도 작동하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은 다른 조직으로 옮겨지지도 않고, 옮기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은 이 곧 조직의 구심점이다. 모든 구성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같아야 한다. 같은 방식을 갖춘 사람을 합류시켜야 한다. 같지 않아도 이 방식을 따르는 사람을 합류시켜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을 지키지 못할 사람은 핵심조직 안에 들여선 안 된다.

함께 뭉쳐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함께 문제를 풀어보면 드러난다. 별도의 평가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를 함께 풀면서 각자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 문제를 정의하는 판단, 해법을 제시하는 창의력, 실행하는 수행능력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 여기서 ‘이끌든지’는 빠져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내 상황에선 소용없다. ‘이끌든지’는 적임자, 총책임자의 문제해결방식의 개별성과 독창성을 인정하고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는 뜻인데, 나는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는 2명짜리 조직이다. 조직이 20명을 넘기기 전까진 ‘이끌든지’는 필요없을 것 같다. 그럼 “따르든지, 비키든지”만 남는다. 조직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주 단순명료해졌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곧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내 방식을 고집하고 내 구심점을 강요해야 한다. 구심점을 고집하는 것으로 많은 문제가 사라진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다. 구심점에 맞지 않는 사람을 평가하고 해고할 필요도 없다. 구심점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알아서 모이고, 알아서 비킨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알아서 모일 수 있도록 구심점을 공개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선택지가 없다고 마음을 쓸 필요도 없다. 없다면 그냥 없는대로 가면 될 일이다.

내 문제해결방법이 모든 문제를 풀진 못한다. 당연하다. 그리고 괜찮다. 나는 모든 문제를 풀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문제만 잘 풀리면 그만이다. 그 문제를 푸는데 내 방법이 적절하지 않으면 개선하면 된다. 우선 내 방법이 옳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의심은 소용없다. 옳은지 그른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책에 나와있어도 나의 것이 아니다. 잔소리를 해줘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경청하더라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끝을 봐야만 내 방법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끝까지 가봐야 한다. 끝을 보는 것만이 문제해결 방법을 검증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끝을 볼 때까지는 내 방법을 믿어야 한다. 세상엔 다양한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푸는 조직도 많지만 문제해결방식이 문제의 갯수나 조직의 갯수만큼 다양하진 않다. 제대로 일하는 곳은 다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내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취향이 반영되거나 내가 창안한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옳다고 배운 것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 방식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옳은 방식이라 표현하면 좋겠다. 옳은 방식대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내 방식이 옳다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휘발성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면 좋다. 문제를 찾고 정의하고 풀어나가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글로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구심점만 생각한다면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우리만의 방식”을 가시화하기 위해 슬로건을 만들어 붙이거나 매일 외칠 수도 있다. 송파구에서 일잘하는 10가지 방법 포스터를 만들거나, 우수한 사례에 수상하는 등의 문화적인 접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강령을 만드는 것은 실수다.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해 기계어로 작성된 알고리즘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대한민국에 살기 위해 헌법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심점을 제시하는 것과 행동강령을 하달하는 것은 작동원리가 정 반대다. 바라보게 하는 것과 관리당하는 것은 힘의 작용이 정 반대로 일어난다. 구심점을 추구하면 구성원의 능동성을 이끌어내지만 룰을 하달하는 순간 피하달자는 수동적으로 변한다. 지시와 통제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피하달자에게 하달하는 순간 서로 마주보게 된다. 마주보면 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푸는지를 설명하는 글을 쓴 적은 있다. <1> <2>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다. 적어도 이 글이 선언된 덕에 조직에 맞지 않는 구성원은 자발적으로 나가게 되었다. 남은 구성원은 이 글에 공감하고 또 같은 태도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적어도 명문화된 구심점은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글만 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글이 쓰여져 있으면 근거가 된다. 명문화하고 선포해서 모든 의사결정이나 판단의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글만 쓰고 최소한의 시범을 보여주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우리만의 일하는 방식 없이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삽질을 하는 안쓰러운 상태로 접어들었다.

간다. 오면 오는대로 같이 가고 없으면 없는대로 홀로 간다. <leadership lesson from dancing guy>

비즈니스를 확장한다는 것은 더 많은 수요를 받아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수요를 가장 많이 받아낸다는 것은 Capacity다.

‘많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려면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공간은 복제를 통한 확장이 가능하고 시간은 연산처리의 기계화를 통해 줄여낼 수 있다. 이 둘은 Velocity다. 그러므로 Capacity를 달성하려면 Velocity부터 우선 충족시켜야 한다.

Velocity가 충족되었다고 Capacity가 자연스럽게 달성되진 않는다. Capacity를 키우기 위해서는 territory를 넓혀야 한다. 이를 웹 용어로는 Domain이라 부르지만 Domain의 개수만 많다고 Territory가 넓은 것은 아니다. 브랜딩이 잘 되어 있거나, 각인성이 좋거나, 도메인의 경계를 넘어서는 접근이 가능한 방법이 있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넓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Territory가 넓다고 수익이 자연스럽게 뒤따르지도 않는다. 기업의 최소 존속 요건인 수익은 Funnel에서 나온다. Funnel은 수익모델이다. 목 좋은 곳에선 어떤 장사를 해도 잘 되겠지만, 수익이 나려면 어떤 장사든 해야 한다. 사람만 모으고 장사를 하지 않으면 수익이 날리 만무하다. Domain이 없다면 Funnel을 갖다 댈 곳이 없기 때문에 돈을 내고 도메인에 대한 접근 권한을 빌려와야 한다. 접근 권한을 빌려오는 것을 광고라 부른다.

정보처리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분류의 도구를 익혀야 한다.
어떤 도구들이 있는지, 각 도구는 무엇인지, 언제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다.
몇 가지는 실무에 적용하고 활용하면서 이해하는 중이다.
2020년도 36살의 이은호로선 대단한 수준의 정리요약을 해낼 순 없으므로, 간단한 항목들만 리스트업한다.

 

Type 유형
Class 구분
Property 속성
Stage 단계
Level 등급

Affiliation
Asset
Tag
Labeling
Statement
Coverage 역할범위
Key figure 요인

명목척도 nominal scale 속성을 분류하는 척도
서열척도 ordinal scale 순서 관계를 밝혀주는 척도
등간척도 interval scale 순서 사이의 간격이 균등한 척도
비율척도 ratio scale 순서 사이의 간격이 균등하고, 절대값(0)이 존재하는 척도

+
메타데이터
더블린코어
데이터맵

세상엔 많은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그 중 어떤 이야기가 중요하고
어떤 이야기는 덜 중요한지
쉽게 분간하기 어렵다.

보편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야기들은
양적으로 많이 생성되었거나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요소를 갖춘 이야기들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가능성이 높다.

가짜가 판치고 진짜를 구분해내기 어려워진
시대를 맞이한 현대 인류는
‘큐레이션’, ‘검증된’, ‘엄선된’ 등의 키워드를 들먹이며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을 뿐이다.

안건이 중요한지 또는 중요하지 않은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크게 4단계의 구분, 다시 3단계의 하위 구분으로 나누어 총 12단계로 구분해본다.

 


화학
물리

가치
희망
믿음

경제 : 시장이 모인 것
시장 : 거래가 모인 것
거래 : 경제활동의 최소단위

전략 : WHY
해법 : HOW
실행 : WHAT

 

수, 화학, 물리는 역학영역이다.
가치, 희망, 믿음은 추구영역이다.
경제,시장,거래는 체제영영역이다.
전략, 해법, 실행은 수행영역이다.

각 항목은 경제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적용될 가장 일반적인 예를 든 것이다.
경제활동이 아닌 여가활동을 한다면 체제영역, 수행영역은 다르게 바뀔 것이다.
문학, 창작, 예술, 정치, 사회 등의 활동을 할 경우 추구, 체제, 수행의 영역이 다르게 바뀔 것이다.

이 개념도는 어떤 일을 진행시키거나 조직을 구성할 때 도움될 수 있다.
아래 단계에서 이슈가 발생했을 경우 상위 개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수행 단계의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수행의 차이를 좁히기보단 가치의 동기화를 진행시켜야 한다.
상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어야 역할을 맡거나 일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화면부터생각하면망해요>쓰고나서 연장, 관통된 글이다.
이 글에서는 뿌리-기둥-줄기-잎파리의 순서를 예시로 들었다.
일이 제대로 안 될 때의 현상의 공통적인 이유를 파헤치다 찾아낸 틀이다.

나와 다른 수행방식, 다른 사회에서의 성장,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인간의 다양성의 한계가 얼마나 넓은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일부 사람들에겐 역학영역 위에 신의 영역이 존재한다.

역학 영역에서 모순이 되는 이슈는 내 삶에서 좀체 발생하지 않는다.
때문에 일상에서 신경써야 할 정보 분류는 대체로 2~4단계의 것들이다.

하위 개념은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상위 개념이 결정되지 않았을 경우 무의미해지는 선행-후행 관계에 놓인다.

나에게 20년도는 생각을 전혀 정리하지 못한 절망적인 한 해였다.
최근 이 틀에 넣어보니, 내가 할 일과 생각을 정리해내지 못하고 패닉을 맞았던 상황들을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13단계, 14단계와 같이 수행단계보다도 더 하찮은 단계의 매몰되어있었다.
14단계의 이슈를 A6크기 카드로 50장 넘게 만들어 온 벽에 도배했었다. 압도당했다. 그 외의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결국 현상계에 갇혀버린 나는 폭주해버렸다.
상위 단계를 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두뇌는 병렬적으로 정보의 동시처리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생각을 동시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이슈를 단위화시켜야 한다.
저장해두었다가 다시 불러내 이슈를 처리해야 한다.
직전의 생각 context가 지워진 상태에서도 즉각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저장해두어야 한다.
저장하는 공간과 규칙도 중요하다.
물리적인 공간을 떠올려 구조화하는 것도 좋다.

hierarchy를 시각화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상하위 트리구조
트리구조 (뿌리 > 기둥 > 줄기 > 잎파리)
Circle (내핵, 외핵, 표피)
좌-우 선형선상

사르트르는 인생이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고 말했다. 알베르 카뮈는 “자살을 할까, 커피를 마실까”라는 명언을 남겼다. 가장 일상적인 사건과 가장 낯선 사건을 선택지로 두니 실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지난 글 <라이딩 콘셉 결정 방법론>에서 방법론적 접근을 시도했다. 결론이 썩 만족스럽진 않다. 방법론은 언제나 그렇듯 한계가 있다. 구성원이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따르지 않는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방법론은 도움되기보단 탁상공론으로 남는다.

라이딩 코스를 짤 때, 그저 모두가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코스였다면 의사결정 방법론을 적용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또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수준의 케미가 있었다면 방법론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손해 혹은 불만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이익 혹은 만족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론을 꺼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안타까운 수준을 넘어 절망스럽고 비참하다. 올바르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정작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선택지로 향하는 집단적 오류도 흔히 발생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명제를 도덕시간에 배웠음에도 우리는 그 상태에 한발짝이라도 다가갈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방법론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집단적 협력을 통해 인류를 진보의 길로 이끌 유일한 희망이라 믿는다.

기업의 임원은 실무적 노동은 전혀 않고 종일 의사결정만 하는데 그 양이 80회에 달한다. 도구적, 기술적 방법이 없다면 처리할 수 없는 분량이다. 세계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자주 일어나는 언택트(un-tact)의 시대를 맞이했다. 대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훨씬 더 적은 정보만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잦아져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비용 손실은 커질 것이다. 직관, 촉, 케미에 의한 판단은 이미 비합리적인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활용되기 어려워진다. 앞으로 인류는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 뼈저리게 실감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단순히 라이딩 코스를 더 잘 결정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지구적인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물론 나의 본업과도 연관이 있다. 나로선 1타 3피다. 구조적인 선택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다가오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선진적인 자세, 생존과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슬기로운 자세다.

인류가 이제껏 제안한 의사결정방법론만 간단히 추려도 60개 이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먹물들이 써놓은 것들이라 실용적이지 않다. 분야가 상이해 적용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기존에 제시된 방법론도 검토는 하겠지만,  라이딩이라는 분야에 적합한 의사결정방법론을 내가 기필코 새로이 창안하겠다는 각오로 접근할 것이다. 철저하게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구조적인 관점을 고수할 것이다.

 

가위바위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줄곧 즐겨운 친숙한 의사결정 방법론이자 게임이다.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상호 격렬한 대립이나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가위바위보를 통해 결정하게 되면 긴장감도 즐기며 빠르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각자 한 가지씩의 선택지를 주장해야 하고, 자신의 선택지가 선택되길 강렬히 원해야 이 게임의 의미가 있다. 결정 방식은 거의 랜덤에 가까워 비이성적이다. 따라서 승자는 있으나 패자는 없는 경우,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자가 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주로 경품을 추천할 때나, 길거리에서 주운 만원을 누가 가질지를 결정할 때 적용되곤 한다.

동전 던지기 / 사다리타기

가위바위보와 다른 점은 참가자들이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외부의 무작위성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최종결과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순응하게 된다. 승리의 쾌감은 반감되지만, 패배의 충격도 완화시킬 수 있다.

다수결

민주사회에서 만장일치를 이뤄낼 수 없을 때 이용하는 대표적인 차선책이다. 다수의 횡포에 의한 패권주의가 형성되어 소수를 배척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특정 분야에선 다수의 비전문가들 오답을 선택하곤 하기에 이 의사결정 방법이 해당 사안에 적합한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일차원적으로 추구할 땐 좋은 선택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의 총합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고, 문제를 감안하고 갈 뿐이다.

리스트 제시 & 투표

선택지의 이름만 달랑 있고 디테일이 결여되어 있는 불완전 정보로는 올바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없다. 구성원 모두가 선택지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고 있다면 제목만 적힌 리스트로도 충분하겠지만, 추가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택지의 추가 정보를 어떤 형식으로 준비할 지에 따라 다음 4가지 방법론으로 분화된다.

요요 다 붙어라 **

집단의 규모가 너무 커서 부분 집단을 만들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의 맹점은 제안자가 수용적인 상황에 놓인다는 데서 발생한다. 일단 지원자가 모집되면 제안자는 지원자를 검토하거나 심사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지원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상황에 주로 적용되곤 한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제안을 할 때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명시해 공고를 배포하면 지원자를 박탈할 권한을 가질 수 있다.

피칭 & 투표

<요요 다 붙어라>와 개념이 같지만 제안자가 2명 이상일 때 선택 절차가 추가된 것이다. 선택 절차는 다수결의 원리에 따른다. 집단이 분리되어도 괜찮은 상황이라면 <요요 다 붙어라>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도 선택 절차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선택지로 추려야 한다는 상황이다. <요요 다 붙어라>는 제안자가 지원조건을 설정하는 권한을 가진 갑이었지만, <피칭 & 투표>에서는 반대로 구걸과 부탁을 해야 하는 을이 된다. 제안자는 자신의 선택지가 선택될 수 있도록 경쟁적인 홍보활동을 펼쳐야 하는 게 관전포인트 꿀잼 팝콘각이다.

장단점{Pros/Cons} 서술 > 순위 조정

<피칭 & 투표>의 절차에 주관을 빼고 객관성을 가미한다. 개인의 주관이 들어갔던 피칭은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나열하는 것으로 바뀌고, 구성원들의 주관적인 의사표현은 조직 관점에서 합리적인 우선순위 조정으로 바뀐다. 순위의 조정은 1군, 2군, 탈락 정도로 불명확하게 그룹핑한 뒤 1군의 선택지에 대해서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빠른 진행에 도움된다.

시나리오 서술 > 순위 조정 *

시나리오 기법은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상황과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예측해 서술하는 것이다. 장단점을 융통성없이 나열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끌리는 지를 가늠해보려면 생동감있는 정보가 이야기를 전달하듯이 시나리오로 작성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미래의 경험에 대해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냄으로 의사결정권들은 상황별 판단의 근거를 제공받을 수 있다.

후회 최소화 선택 방법론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 창업을 결심할 당시 사용한 방법론이다. 무탈하게 잘 다니고 있던 연봉 2억의 회사를 계속 다닐지, 리스크를 감안하고 모험을 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그는 고민했다. 확정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이익을 모두 포기할 리스크 앞에서 리스크만 따지면 1대 99의 차이다. 그는 리스크를 보지 않기로 했다. 선택을 포기했을 때 얼마나 큰 후회가 남을지를 따지기로 했다. 실리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마음이 동하는 곳으로 향했던 그는 20억의 자산을 포기한 대신 200조의 자산가가 될 수 있었다.

형이 짜르고 동생이 골라 **

케익을 먹을 때마다 싸우는 형제에게 내린 현명한 부모의 지혜를 빌린다. 코스를 제안하는 사람과 선택하는 사람을 분리한다. 코스를 제안하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만 제안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 내려지더라도 만족할 것이고, 선택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만족할 것이다.

모든 구성원의 강제 제안 > 탈락 > 선정 *

우리 회사에서 점심 식당 고를 때 쓰는 방법론이다. 각자 2개의 식당(또는 메뉴)을 제안한다. 제안 개수는 무조건 채워야 하기에 별다른 의견이 없는 날엔 김밥천국이나 3만원짜리 한정식 같은 얼척없는 제안으로 개수를 채우면 된다. 그렇게 6~8개의 선택지가 후보로 제시되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최악의 선택지를 제거한다. 누구부터 선택지를 제거할지, 1인당 몇 개를 제거할 지는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 최종 선택지가 2~3개로 좁혀질 때까지 계속 돌아가며 선택지를 탈락시킨다. 최종 선택지가 2~3개로 좁혀진다면 그 중 1개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체로 최종 단계에선 만장일치로 결정되기 때문에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식당에 향할 수 있어 밥맛도 좋게 느껴진다.

이 의사결정 방법론을 거치면 모든 구성원이 모든 절차에 같은 무게로 관여하게 되므로 입체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의견을 평면배치한다는 것도 좋은 점이지만, 아무런 의욕없이 집단생활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아싸도 참여할 수 밖에 없는 강제사회화 기능도 있다.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무례하다 여겨지는 문제, 내성적인 사람의 소극적인 태도 문제,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해서 자신의 의견을 숨기는 문제를 유쾌하게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매번 무난한 식당을 가게 된다. 탈락 과정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예측불허하고 기발한 선택지는 매번 탈락할 수 밖에 없어 평균 편향 현상이 발생한다.

다중 기준 의사 결정 (Multiple-criteria decision analysis)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여러 기준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경우 적합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입할 때라면 가격, 연비, 승차감, A/S편의성, 기업이미지와 같은 기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평가 기준들은 속성(Attribute) 혹은 목적(Objective)으로 나뉠 수 있다. 속성은 스펙을 따지는 것이고 목적은 해당 선택지를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를 따져보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여러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 MCDA를 사용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평가해도 좋다.

등간 척도와 비율 척도로 나타낼 수 있다면 수량화, 정량화 할 수 있다.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면 연산할 수 있다.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준마다 가중치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관적 판단의 영역, 정성적인 영역을 정량적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준이 많아지면 오히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MCDA + 표준편차 분석 + 끝장 토론

나는 운이 좋게도 어린 나이에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한 적이 있다. 스타트업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 대부분의 스타트업 평가 담당자들은 나름대로의 MCDA를 만들어 썼는데, 자신이 개발한 MCDA의 이유와 근거를 알진 못했다. 이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으나 아무도 해법을 제시하진 못했다.

심사위윈이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온 의견과 실제로 MCDA과정을 거친 평가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작성할 때가 문제인지, 취합하는 과정에서 문제인지를 찾아내야 했다. 우선 점수를 취합하기 전 심사위원들 간의 점수 격차를 눈여겨보았다. 극단적인 점수 차이를 보이는 스타트업을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으로 쉽게 계산해 추려낼 수 있었다. 사업에 대해 이해할 수 없기에 0점을 줬다는 심사위원의 점수는 평균점으로 제출하도록 조정했고, 프로그램과 별개로 이미 스타트업과 인연을 맺어오고 있어 평가에 중요한 정보를 공유한 심사위원 덕에 다른 심사위원의 최종 점수가 바뀌기도 했다. 이런 끝장토론을 한차례 거치고 나니 10팀 중 3팀의 운명이 바뀌었다.

정량의 기법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면서 정성적 논의를 중점적으로 전개시킨 훌륭한 사례랄까. 7년 전 고안한 절차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스럽다.

목표지향(Goal Oriented) & 제한조건(Don’t) 수렴 > 선택지 구성 **

이 방법론엔 모더레이터가 필요하다. 선택지를 제시하기에 앞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다. 구성원은 “이런 라이딩을 하고 싶어요”, “이런 라이딩은 싫어요”와 같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조건을 수렴한 뒤 선택지를 찾거나 생성하기 때문에 선택지 결정 과정은 생략, 축소될 수 있다.

제한 조건이 많아질수록 선택지가 줄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구체적인 제한 요건이 있어야 선택지가 명확하게 추출된다. “흰색 물체 10개를 말하시오”라고 물었을 때보다 “당신의 방 안에 있는 흰색 물체 10개를 말하시오”라고 물었을 때 더 많은 답을 할 수 있다.

Goal은 지향점이고 Don’t는 지양점이다. 추구하는 것과 피하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고려한다. 제한조건(Don’t)을 수렴한다면 구성원들의 불만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악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으로 향할 수 있다.

간혹 대립하는 목표들이 제시될 수 있다. [침질질 운동하고 싶어요]와 [샤방으로 타고 싶어요]는 대립한다. 조건의 대립이 있다면 합의점을 애써 도출하는 것보다 그룹을 쪼개는 판단이 나을 때도 있다.

실질적 문맹률이 높은 대한의 현대인들은 문장보다 키워드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자신이 원하는 라이딩의 해시태그로 표현하라고 하면 의견을 더 많이 수렴할 수 있다.

의견을 수렴할 때 의견의 무게를 구분하는 것이 좋다. [알러지가 있어서 꽃가루 날리는 곳은 불가능해요]는 필수 조건으로 접수해야 하지만 [차량통행이 적은 곳이면 좋겠어요]는 부수적인 조건으로 접수해야 한다. 필수조건과 욕심조건을 구분한다면 의견 수렴에 도움된다.

 

 

* 표기는 라이딩 코스 결정 방법론에 적합한 것

며칠 전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정리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야망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과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꽤 도움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경제의 구조, 경제의 구성원과 관계, 거래의 기술, 협상의 범위, 가치, 신용 따위의 항목들을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했다. 더 잘 정리된 책이나 자료들은 많이 있지만, 책장에 꽂힌 지식과 소화시킨 지식은 다르기 때문에 어설프더라도 정리하는 것은 도움될 일이다. 이 작업을 통해 경제적인 성공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따져보았다.

내가 지금 하고있는 서비스 중개업으론 부자가 되기 어렵겠단 계산이 나왔다. 애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익을 크게 발생시키는 욕심을 내진 않았다. 사업을 통해 경험자산과 지식자산을 관리하는 순환고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했고, 어느 정도 달성했다. 지금 이 사업으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선 확장성을 높이거나 사업의 통제불가능요인을 제거할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딱히 찾아내지 못했다. 또는 그게 가능하더라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으로 보였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충족요건에 맞아 떨어지는 아이템을 난 이미 갖고 있었다. 라자냐다. 라자냐는 피자와 치킨을 대체시킬 수 있는 배달음식이 될 수 있다. 비싼 양식의 메뉴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방안을 찾아낸다면 지금은 없는 시장을 만들어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땄던 한식조리기능사자격증으로 군대에서 2년 동안 취사병을 했고, 그 기간에 양식조리기능사를 땄고, 호주에 나갔을 때도 주방에서 일하다 온 뒤, 셰프뉴스라는 매체를 3년간 운영하며 국내 외식업계에 있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외식사업에 대해 머리로는 배운 상태이기 때문에 라자냐를 사업화하려는 시도로는 크게 결격사유는 없는 것 같다. 창업도 두 번 했더니 대충 사업이란 무엇인지 감을 잡은 상태라 구상이 빠르게 진척되었다. 최근 나의 일상은 아주 늘어지고 마음이 향하는 프로젝트가 없어서 한동안 방황하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온 종일 하나의 프로젝트만 생각하는 완벽한 몰입의 상태에 접어들 수 있었다. 3년만이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이웃집 라자냐라는 식당 한 곳이 같은 전략으로 라자냐를 9,900원에 팔고 있었다. 처음엔 8,900원에 팔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와우라자냐라는 곳은 6,900원에 파는데 너무 품질이 떨어져 패스트푸드의 대체음식으로 포지셔닝되었다. 두 곳 모두 확장성은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일단 작은 업장을 운영하는 것에 그치거나 배달 및 단체주문을 통해 업장외 수익을 내고 있었다.

내가 라자냐가 확장성이 있다고 생각한 데에는 생산 프로세스에서 효율을 높일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재료준비/라구소스끓이기/라자냐조립/라자냐굽기/라자냐포션/배식] 총 6단계로 나뉘는 생산공정은 세부액션까지 계산하더라도 29단계밖에 되지 않는다. [라자냐포션/배식]은 생산량에 비례해서 단계가 늘어나지만 그 앞 단계들은 생산량이 늘어나도 양만 늘리면 되기 때문에 단계가 늘어나지 않는다. 라자냐 한 판을 구우면 12개가 나온다. 라자냐 하나를 만들어도 29액션, 12개를 만들어도 29액션이다. 24개를 만들면 31액션, 48개를 만들면 33액션, 120개를 만들면 49액션이다. 물론 실제 노동량은 이렇게 극단적이지 않겠지만, 공정의 개선으로 생산성을 높일 지점은 분명 있는 아이템이다.

공정의 개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확장이 가능하다. 한 개의 업장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한계수익은 어떤 아이템이든 얼마나 잘되든 기대수익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월 천만 원 이상 벌진 못할 것이다. 확장을 해야 하는데 그게 직영방식이든 가맹방식이든 확장을 하려면 공정 개선과 공정 통제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가맹사업도 포화시장이기 때문에 본사 측에서 웬만한 생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브랜드만 빌려주는 가맹사업은 존속이 어려울 것이다.

생산 프로세스의 효율을 높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거와 통합의 의도로 접근한다. quantity이다.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효율을 우선적으로 따지지 않는다. Quality다. 이 둘은 대립적이다. 어중간하게 중간에 타협점을 찾으려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가성비로 싸게 팔려면 quantity로 접근해야 하고, 비싼 값에 높은 고객만족도를 얻으려면 quality로 팔아야 한다. 결국 내가 정할 일이 아니고, 고객의 수요가 있는 지점을 공략해야 하지만.

8,900원짜리 라자냐로 연매출 3억을 올리고 1억의 이익을 남기려면 개당 마진 5,000원으로 하루에 300개를 팔아야 한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루에 300개는 하나의 업장에서도 달성하기 어려운 상태이긴 하지만, 라자냐를 통해 부자가 된다는 것은 이보다 더 많은 라자냐가 자동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하되 내가 라자냐의 공급라인을 확실히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략 하루에 3,000개의 라자냐가 어떤 방식으로 팔리는 상태를 라자냐로 부자가 된, 라자냐 왕의 상태라고 설정해보자.

라자냐를 통해 부자가 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출발은 여러 방식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의 출발점과 목적지를 구분해보자면 목적지는 하나, 출발지는 여럿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임대주방에서 배달로만 시작하는 방법도 있고, 동네 골목에서 1차상권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또는 59쌀피자나 피자스쿨이 폐업한 업장을 인수받아 (조리설비를 거의 그대로 쓸 수 있으니)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출발하든 거쳐야 하는 중간 목표들이 있다.

하나의 업장에서 300개를 판매하는 것 > 직영이든 가맹이든 판매 접점을 5배로 늘리는 것 > 생산공정의 중앙화를 이루는 것이다.

여전히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저가의 라자냐 판매점들은 조리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고객의 불만족을 떠나 회전률의 한계가 발생한다. 라자냐의 조리는 슬로우푸드지만 배식은 패스트푸드처럼 빨라야 한다. 배식의 효율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면 판매접점 확장은 이루지 못할 것이다.

생산공정의 중앙화는 반조리상태로 판매점에 납품되는 것을 말하는데, 고객입장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양식이란 해외의 르꼬르동 같은 어려운 이름의 조리대학교를 나온 젊은 사람이 점잖게 내어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조리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하물며 패스트푸드도 각 매장마다 직접 조리가 이뤄지는데.

생산공정 / 포지셔닝 / 마일스톤 / 수익화계획도 대충은 산출할 수 있었다. 이정도 사업성을 따지는 데에 불과 2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도 칭찬하지 않았음에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라자냐를 통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은 “할 수 있냐, 없냐”가 아니다. “할 거냐, 말 거냐”

내 마음이 답을 해야 한다. 라자냐 왕이 된다는 것은 이런 이성적인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자냐 왕이 되기까지의 5년의 기간동안 나는 라자냐에 미쳐야 할 것이다. 초기 창업의 2년 동안은 육체 노동에 시달려 하루에 5시간 이상 못 잘 것이다. 이후 3년은 내가 해보지 못한 사업적 확장과 경영적 도전들로 인해 난관을 겪을 것이다. 그것을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니 라자냐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라자냐 왕이 될 것인지에 대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라자냐 왕이 되는 것을 인생과업으로 여긴다면 앞선 마일스톤을 달성하는 것과 요구되는 자원, 맞이하게 될 난관 모두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의 극복의지가 나에겐 있을까? 없다. 지금의 사업도 매진하지 않고 지난 6개월 동안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하면 다 한다. 그리고 해내는 것이 일이기 때문에 해내지 못하면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얼만큼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지도 어느정도 알고 있다.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장대한 장대한 여정을 하기로 결정할 것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성공한 부자는 자신의 일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니 아이템도, 사업성계산도, 단계구상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누구도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고, 두 배로 살 수도 없다. 그 분야에 전력을 다할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사업구상의 진도를 이틀 동안 빠르게 진척시킨 것만으로 충분하다. 라자냐 왕의 꿈은 이렇게 접었지만, 너무나 통쾌하고 시원하다. “너 그럼 식당차려라”라는 얘길 자주 들었다. 그럴 때마다 “식당일은 나이 50먹고 할 거 없을 때나 해야지”라고 답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틀린 답변이었다. 50먹고 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본업에 집중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