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철학해야 하는가?

<구닥다리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왜 알아야 하는가?>

고대 철학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플라톤. 그리고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400년 전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지금이 무슨 시대인데, 그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왜 아직도 배우는 거야?”
“AI랑 뇌과학이 철학보다 앞서간 지 오래인데?”
“그냥 다 옛날 얘기 아냐?”

그런데 이 ‘옛날 얘기’가 오늘날 철학의 기초 골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좀 다르다. 마치 수학을 배우는데 피타고라스를 모른다거나, 문학을 공부하면서 셰익스피어를 빼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첫째, 플라톤은 철학의 ‘질문 방식’을 만들었다.
우리가 뭔가를 묻고, 따지고, 개념을 정리하는 그 방식. ‘정의란 무엇인가?’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식으로 개념의 본질을 캐묻는 방식을 처음 정립한 사람이 바로 플라톤이다. 현대 철학자들이 쓰는 ‘개념 분석’의 뿌리는 전부 여기서 왔다.
게다가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은 “보이는 것 뒤에 보이지 않는 진짜가 있다”는 생각의 원형이다. 종교, 과학, 예술, 정치 이론까지—모두 이 그림자-실재의 틀 안에서 자라났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의 틀’을 만들었다.
플라톤이 질문하는 법을 만들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질서를 세우는 법을 만들었다.
동물의 종류, 사물의 원인, 인간의 행위와 목적, 논리의 구조. 그가 남긴 분류 체계는 이후 2천 년 동안 서양 지성사의 근간이 된다.
‘철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 같은 학문명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 안에서 태어났다. 지금 우리가 ‘학문’이라고 부르는 건 전부 그의 그림자 안에 있다.

셋째, 이 둘은 ‘모든 것의 기초’를 건드렸다.
현대철학은 종종 그들을 비판하면서 출발하지만, 그걸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들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증거다.
니체는 플라톤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며 해체했고, 하이데거는 서양 형이상학이 플라톤의 실수에서 시작됐다고 비판했으며, 들뢰즈는 아리스토텔레스식 분류를 뒤집으려 했다.그런데 그런 비판조차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지 않고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궤변만 늘어놓는 말장난꾼 소크라테스를 왜 알아야 하는가?>

소크라테스에 대한 인상은 대체로 이렇다.
“아는 게 없다고 말하더니, 결국 상대를 바보로 만드는 사람.”
“자기는 말 안 하면서 남 말 꼬투리 잡기만 하는 얄미운 스타일.”
“진짜 뭘 말하는지는 끝까지 안 밝히고, 그냥 계속 질문만 던지는 사람.”
요즘으로 치면, 모든 질문에 “그건 꼭 그런가요?”라고 되묻는, 극한의 ‘꼰대형 토론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라기보다 ‘말싸움의 고수’, 혹은 ‘토론 테러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단순한 말장난꾼이었다면 왜 수천 년 동안 기억되었을까?

첫째,소크라테스는 철학의 ‘방식’을 바꿨다.
그 전까지 철학은 주로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같은 자연철학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버린다. “정의란 무엇인가?” “좋음이란 무엇인가?” “사는 게 옳다는 건 뭔가?”
그는 인간의 삶 자체를 철학의 중심에 놓았고, ‘세계가 뭘로 되어 있는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철학을 우주의 구조에서 인간 존재로 이동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둘째, 그는 답보다 ‘질문’을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철학 체계도 남기지 않았다. 책도 없고, 이론도 없다. 남은 건 전부 ‘질문하는 방식’이다.
“그건 무슨 뜻이죠?”
“당신이 말한 정의는 이런 상황에서도 성립하나요?”
“그렇다면 아까 말한 건 모순 아닌가요?”
이런 식의 질문은, 사유를 강제로 끌어내는 장치다. 사람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 충격요법.
결국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셋째, 그는 철학을 ‘삶의 태도’로 만들었다.
소크라테스는 신념 때문에 죽었다. 자기 말이 아테네 사회에 불편함을 준다는 걸 알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고, 결국 독배를 마셨다.그는 철학을 책상 위 개념놀음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거는 실천으로 끌고 온 사람이다. ‘사는 방식으로서의 철학’은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무교인데, 중세 철학과 신학을 왜 알아야 하는가?>

중세 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종교가 없는데, 왜 신학을 알아야 하지?”
“철학을 한다면서 성경 얘기만 늘어놓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그 시기엔 그냥 교회가 다 씹어먹던 시절 아닌가?”

맞다. 중세 철학은 실제로 신학과 철학의 경계가 무너졌던 시기였다. 사유의 출발점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고, 철학은 그 전제를 이성으로 정당화하려는 작업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왜 그런 시대의 철학을 지금도 배워야 할까?

첫째, 중세는 ‘이성’과 ‘믿음’이 싸운 시기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믿음보다 이성을, 신보다 과학을 우선시하는 시대다. 그런데 이런 시대가 그냥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중세 철학자들은 이성과 믿음을 조화시키려 했고, 그 충돌과 실패의 역사 속에서 지금의 ‘세속적 이성’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는, “믿으라, 그러면 이해하리라”고 했고, 아퀴나스는,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이 남긴 논쟁은, 현대 철학의 이성과 신념, 과학과 가치 사이의 갈등을 예고하는 전조였다.

둘째, 중세는 ‘논리’의 훈련장이었다.
의외로 중세 신학자들은, 지독할 정도로 논리적인 글쓰기를 했다. 모든 주장은 전제와 반론, 재반론, 반박까지 구조적으로 서술됐고, 지금 우리가 글을 쓰고 논증하는 방식의 원형이 거기서 만들어졌다. 특히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은 ‘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의 훈련 장치로 작동했다. 그들의 글은 지금 봐도 딱딱하고 답답하지만, 그 안엔 논리적 글쓰기, 구조화된 사유, 개념 정의의 기술이 집약돼 있다. 쉽게 말해, 철학적 글쓰기의 체육관이다.

셋째, 중세는 ‘서양의 뼈대’를 만들었다.
중세는 단지 종교의 시대가 아니다. 오늘날 서양의 윤리, 법, 정치 개념의 대부분은 중세 신학에서 파생되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존엄하다’, ‘양심은 법보다 앞선다’, ‘정의로운 전쟁이란?’ 같은 개념들은 전부 중세 철학자들의 사유에서 태어났다. 무신론이건 뭐건, 현대의 도덕과 권리 개념은 중세 신학의 토양 위에 자라난 것이다.

 

<난해함의 끝판왕 칸트를 왜 알아야 하는가?>

칸트를 처음 읽는 사람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이건 철학이 아니라 수학이잖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단어는 아는데 문장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뭘 말하고 싶은 건데?”

그런데 놀랍게도, 이 반응은 철학 전공자들도 같다. 칸트는 정말 읽히지 않는 철학자다. 문장은 길고, 개념은 생소하고, 구획은 엄격한데 논지는 자주 흔들린다. 요약하려고 해도 “칸트에 따르면…” 이라는 말 다음에 뭐가 나올지 아무도 장담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를 빼고 철학을 말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왜일까?

첫째, 칸트는 철학의 좌표계를 다시 그렸다.
칸트 이전의 철학은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인간이 그걸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단순히 기술하거나 믿었다. 칸트는 거기서 한 걸음 물러나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인식할 수 있는가?” 즉, 인식 그 자체의 조건을 묻는다. 그 결과, 세계가 인간에게 그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구조에 따라 구성된다는 주장에 도달한다. 우리가 보는 시간, 공간, 인과— 이 모든 건 사물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 인식의 틀이라는 것. 그는 철학을 “존재의 철학”에서 “조건의 철학”으로 전환시킨 사람이다.

둘째, 칸트는 감각과 이성의 갈등을 정밀하게 정리했다.
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 양쪽 모두를 비판하며 이성과 감각의 관계를 새로 배열한다. 감각만으론 아무것도 개념화할 수 없고, 개념만으론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이건 지금 우리가 쓰는 모든 ‘인식’, ‘판단’, ‘앎’의 기본틀이 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 기준을 철학적으로 세운 사람이 바로 칸트다.

셋째, 칸트는 ‘자유’를 새롭게 정의했다.
칸트는 이성과 도덕을 연결하면서, “자유란 충동에서 벗어나 도덕법칙에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건 듣기에 따라선 모순처럼 들린다. 복종하는데 자유라고? 하지만 이 말은, 외부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법칙에 따라 행동할 때, 비로소 인간은 도덕적이고 자유롭다는 철학적 정의다. 현대 윤리학, 법철학, 정치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다 이 정의에서 출발한다.

 

<헛소리처럼 들리는 헤겔을 왜 알아야 하는가?>

헤겔을 읽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왜 말을 이렇게 어렵게 하지?” “뭔가를 말하려는 게 맞긴 한가?” 이건 결코 독자의 잘못이 아니고, 오히려 당연한 반응이다.

첫째, 문장이 미쳤다. 한 문장이 몇 줄이 넘어가고, 주어와 술어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참을 읽어도 구조가 안 보인다. ‘정신은 타자 속에 머물며, 그것을 지양하여 자기 자신을 회수하고…’ 이런 문장은 의미를 붙잡기도 전에 개념의 미끄러짐에 휘청거리게 만든다.

둘째, 단어들이 일반적 의미와 다르게 작동한다. ‘지양’, ‘부정’, ‘절대정신’, ‘변증법’ 같은 단어들은 사전적 정의로는 도무지 감이 안 온다. 게다가 똑같은 단어가 다음 문단에선 또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읽는 사람 입장에선 일종의 개념적 혼수상태에 빠지는 셈이다.

셋째, 모든 것을 아우르려는 과잉의 야망. 헤겔은 철학뿐 아니라, 역사, 예술, 종교, 국가, 심지어 자연까지 하나의 거대한 사유 체계 안에 넣으려 했다. 이건 독자에게 “넌 지금 이 체계 안에 들어와야 해”라는 무언의 강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낯설고, 불쾌하고, 고압적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헤겔은 난해하고 자기 도취적인 ‘철학 마술사’처럼 보인다. ‘읽으면 현자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읽으면 약간 미친다’는 전설이 생긴 철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철학사에서는 그렇게까지 헤겔을 중요하게 다루는 걸까?

그건, 헤겔이 철학의 판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칸트는 “우리는 세계 그 자체를 알 수 없다. 인식 구조만 알 수 있다”고 했지만, 헤겔은 “그 구조조차도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변한다”고 말한다. 즉, ‘인식의 조건’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처음 펼친 것이다.

그는 이 생각을 밀어붙여, 세계 전체를 ‘변증법적 자기 전개’의 과정으로 파악했다. 존재, 정신, 국가, 예술, 도덕, 종교, 역사까지 모두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회복하는 운동으로 서술된다. 이 구조를 통해 철학은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과정이 되었다.

덕분에 이후 등장한 거의 모든 현대철학자들 – 마르크스, 니체, 사르트르, 들뢰즈, 푸코 – 전부가 헤겔을 넘어서려는 시도 속에서 자기 사유를 형성하게 된다. 심지어 헤겔을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해체하려는 이들조차, 그의 프레임 없이는 출발선을 만들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기준점이 되어버린 거다.

결국 요약하면 이렇다: 헤겔은 읽을 땐 헛소리처럼 들리지만, 철학을 진지하게 파고들기 시작하면 벗어날 수 없는 좌표가 된다. 그는 ‘이해하고 넘어서야 하는 이상한 산’이다. 그러니까 헛소리 같다는 직관, 정확해. 그 직관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해해보는 것, 그게 진짜 철학적 독해의 시작이야.

 

<망한 빨갱이 이념, 마르크스를 왜 알아야 하는가?>

마르크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먼저 이렇게 반응한다.“아직도 그 낡은 사회주의 얘기를 하냐?”
“현실 공산주의는 다 망했잖아. 북한, 소련, 중국 다 보면 답 나오지.”
“이념 하나에 미쳐서 역사까지 폭력으로 몰고 간 위험한 사상가 아냐?”

맞는 말도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이름만 빌려다가 폭력과 독재로 끌고 간 정권들이 있었고, 그 실패는 전 세계에 강한 반작용을 남겼다. 하지만 그건 마르크스의 사상이 아니라, 그 사상을 오독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한 결과다. 정작 마르크스를 철학적으로 읽는다는 건 혁명가나 선동가를 읽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한 날카로운 해석자를 만나는 일이다.

첫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구조’를 해부한 사람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다. 그건 마치 공기처럼 당연해서 의식되지 않는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그 공기를 의심한 첫 번째 철학자다. 노동이 어떻게 분절되고, 사람이 어떻게 상품이 되며, 관계가 어떻게 ‘가치’로 환원되는지— 지금도 유효한 자본주의 분석의 도구들이 마르크스에게 있다. 그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자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작동 원리를 가장 정확히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

둘째, 마르크스는 ‘사유 방식’을 뒤집었다.
그전까지 철학은 대체로 “세계가 이성적으로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를 따졌지만, 마르크스는 한 방에 뒤집는다. “인간의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즉,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우리의 삶의 조건—노동, 생산,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거다. 철학이 머리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발 아래 땅, 손 위의 일, 그리고 사회의 구조에서 시작된다 이 관점은 이후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등 수많은 현대 사상에 영향을 준 핵심 토대가 된다.

셋째, 마르크스는 ‘현실에 개입하는 철학’을 열었다.
마르크스는 철학이 현실을 해석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고 말한다. 유명한 말이 있다: “철학자는 단지 세계를 해석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건 철학을 행동의 무기로 만든 선언이다. 사유가 사유에서 끝나지 않고, 현실을 바꾸는 동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요청.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지금까지도 가장 위험한 철학자이자, 가장 현실에 깊게 닿은 철학자다.

 

<죽음 앞에서 벌벌 떨었던 불안에 불과한 실존주의를 왜 알아야 하는가?>

실존주의 철학을 처음 접하면, 이런 인상이 먼저 떠오른다.
“철학이라기보단 인생에 우울증 온 사람들 기록 같아.”
“자기 존재가 무섭다느니, 죽음 앞에서 떤다느니… 너무 감정적이고 비관적인 거 아닌가?”
“그냥 다 불안하다고 징징대는 얘기 아냐?”

실제로 실존주의자들은 자유, 고독, 불안, 죽음 같은 무거운 주제를 파고든다. 현실 사회나 시스템을 분석하기보단, ‘나’라는 존재의 밑바닥에 가 닿으려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겐 이 철학이 지나치게 내면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심지어 멜랑콜리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불안과 멜랑콜리 속에 20세기라는 시대가 숨겨져 있다.

 

첫째, 실존주의는 전쟁과 붕괴의 시대에서 태어났다.
두 차례 세계대전,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광기, 그리고 신과 이념, 제도마저 무너진 허무 속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아무것도 믿을 수 없고,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는 존재”로 던져졌다. 그 불안은 단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시대 전체의 감정 구조였고, 실존주의는 그 고통을 철학으로 말한 것이다.

둘째, 실존주의는 철학을 ‘선택의 윤리’로 바꿨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자유 속에 저주받았다.” 모든 선택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 신도 없고, 본성도 없고, 정해진 목적도 없다. 내가 뭘 하든, 그건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게 된다. 이건 말 그대로 철학을 선택과 실천의 문제로 전환시킨 선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시간의, 구체적인 윤리학이 된 것이다.

셋째, 실존주의는 철학을 ‘살아 있는 체험’으로 만들었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물건처럼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묻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사유했다. 즉, 우리는 단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자각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건 철학이 단순한 개념 정리가 아니라, 삶 전체를 걸고 직면해야 하는 문제라는 의미다.
불안, 무의미, 죽음— 이 모든 건 회피할 수 없는 존재의 구조적 조건이고, 실존주의는 그 조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다.

 

<현대철학에 당도해 해체당한 철학, 구조주의를 왜 알아야 하는가?>

철학에 발을 들이고 구조주의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대부분 이런 반응을 한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겠는데, 뭘 주장하는 건지는 모르겠어.”
“구조를 본다면서 왜 그렇게 흐릿하고 해체적인 거지?”
“이건 철학 같지가 않아. 문학 이론이야? 언어학이야?”

실제로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는 기존 철학과는 꽤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존재란 무엇인가’ 대신 ‘의미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묻는다. 주어, 목적어, 기호, 의미작용, 차이, 텍스트, 권력 관계— 익숙한 철학적 단어 대신 언어, 기호, 구조, 차이, 맥락 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현대철학은 이 구조주의 없이는 말이 안 되는 걸까?

첫째, 구조주의는 ‘개인의 환상’을 깨부쉈다.
전통 철학은 종종 ‘나는 생각한다’는 확실한 주체로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구조주의는 그걸 정면으로 부정한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롭지 않다.” “네 생각은 이미 언어, 문화, 관습, 규범이라는 구조 안에 갇혀 있다.” 이건 철학이 개인의 의식에서 벗어나 언어와 제도, 사회적 코드의 ‘배후 시스템’을 보기 시작한 전환점이었다. 푸코는 “인간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고,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이 무너지는 순간, 철학은 ‘주체’가 아니라 ‘구조’를 보기 시작한다.

둘째, 구조주의는 ‘철학이 아닌 것을 철학으로 끌어들였다.’
문학, 인류학, 언어학, 정신분석학— 전에는 철학의 바깥에 있던 것들이 구조주의 이후 전부 철학의 재료가 된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를 분석하며 인간 사고의 구조를 파악했고, 푸코는 감옥, 병원, 광기를 통해 권력의 구조를 드러냈다. 이건 철학이 단지 ‘사유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조건’을 해부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는 뜻이다. 철학은 더 이상 고상한 탑 위의 작업이 아니다. 삶 전체의 배경을 파고드는 분석 도구가 된다.

셋째, 구조주의는 철학을 ‘해체의 시대’로 이끌었다.
구조주의는 언어, 기호, 담론의 규칙을 밝히는 데 머무르지 않고 곧이어 포스트구조주의로 이어지며 그 구조들마저도 안정된 게 아니란 점을 드러낸다. 데리다는 말했다. “중심은 결코 중심에 있지 않았다.” 철학, 윤리, 진리, 주체, 역사— 모든 것이 해체 가능하고, 유동적이며, 맥락적이다. 이건 철학이 스스로를 해체하고, 자기 기준을 의심하며, 지식의 권력성을 반성하는 새로운 지점으로 진입했다는 뜻이다.

 

[마무리 글]

“틀린 줄 알지만, 거쳐야만 하는 사상들이 있다”
→ 철학은 진리 탐구라기보다, 일단 빠지고 넘어야 하는 사유의 통과의례다.
“철학자는 거쳐야 하는 것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 사상가란 진리를 말하기보단, ‘그 시점에서 진리가 말하던 구조’의 대변자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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