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다. 내 생의 시작과 끝은 이미 정해졌다. 거기엔 내 의지가 개입할 여지도 없었다.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내가 결정할 수 있고 집중해야 하는 문제는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한 것이다.

내가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작게나마 내 방식으로 돌아가는 더 나은 세상을 일궈 냄으로 내 존재 가치를 만들어낸다. 생물학적 욕구인 행복, 쾌락, 고통회피, 안위를 충족되는 환경이 건강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태생적 동물 욕구만을 위해 사는 것은 저급한 일이다. 나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사유를 하고 작은 세상을 설계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만들기 위해서 지금의 세상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인식은 관점의 문제다. 만든다는 것은 곧 바꾼다는 의미다. 무엇을 바꿀지 바라보기 가장 좋은 것은 비판적인 시각이다. 세상의 변화는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향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 어렵다. 대체로 직전 세대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한 단계만 나아갈 뿐이다. 한 번에 열 단계를 건너 뛰어 이루려고 시도해 성취한들 그것 또한 바로 다음 단계다.

이전 시대엔 기근, 가난, 전쟁, 불균형, 비효율, 단절의 문제가 있었다. 인류는 그 문제를 풀었다. 이미 풀어진 문제에 붙들려 있을 필요는 없다. 인간 유전자 구조가 모두 파악되고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정신노동력은 인공신경망에 의해 추월 당한 지금 생체적인 한계의 극복은 무의미해졌다. 공급이 소비를 넘어서서 기본권이 보장된 시대에 부의 축적이나 사치를 추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소비기계로 전락해버리게 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세상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모든 문제가 사라지면 인간은 그저 사육당하는 개체가 되어버린다. 인간 스스로가 이룩한 문명에 의해 스스로 사육당하는 짐승의 상태로 회귀하게 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개척하는 역할과 구축하는 역할을 맡을 기회는 적어진다. 비극이다. 하지만 이 비극 또한 문제다.

다음 단계의 세상에 도달하면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앞으로도 꾸준히 비극이 발생할 것이란 사실은 얼마나 다행이고 희망적인 일인가.

비드폴리오를 시작한 이유와 접근방법을 기록하기 위해 쓴다.

영상제작 거래중개에 궁극적으로 최적화되며 이상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앞서 6개 이상의 사업체가 실패했다. 나라고 몇 달만에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몇 년은 걸릴까?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보자.

시장에 맞는 중개 방식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누구보다 깊게 바닥까지. 탐험의 깊이에 따라 성공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2년 정도. 큰 투자 없이 시작할 수 있다. 앞서 진행된 시도들처럼 탐험 후 빈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탐험 중 끼니라도 챙기면 도전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며, 보상은 그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2017년 8월 17일 첫 장사가 시작됐고, 10월 1일 사업자를 냈다. 지금까지 8개월이 지났다. 잠시 발을 들여본 결과, 앞서 출발했던 선발대의 탐험지역은 해안가의 일부에 불과했단 걸 깨달았다. 나는 진득하게 눌러앉는 데에는 자신이 있다. 지구상에서 누구보다 영상제작 거래과정을 깊이있게 들여다 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잘 되면 스타트업이 되어 버티컬 중개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잘 되지 못하더라도 에이전시 형태로 입에 풀칠을 할 것이다.

중개가 가능한 거래의 조건을 따져보자.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가 발생하는 시장이어야 한다. 인력시장과 부동산시장은 중개자가 직업으로 인정받는 대표적 시장이다. 인력 중개는 건당 규모가 작지만 양적으로 많은 처리가 가능하고, 부동산 중개는 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에 오랜 기간과 노력이 소요되지만 건당 규모가 크다. 영상제작 분야는 중개자가 존재할 수 있는 거래규모 조건은 우선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유통단계는 최소화되어야 하고, 미들맨은 없어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역사적으로 그래왔고 앞으로는 중개자가 더욱 필요없어질 것이라 한다. 정말일까? 지나치게 일반화된 이야기인 것 같다. 먼 미래도 모르겠고, 당분간만 내다보더라도 특정 산업에서는 미들맨을 통핸 거래가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산업의 복잡도는 계속해서 증가하게 될 것이니까. 산업의 복잡도가 증가할수록 중개자는 필요해진다. 그리고 물론 중개자가 필요하다는 것과 중개사업의 전망이 밝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소비자는 거래를 확정하기까지 두 단계를 거친다. ‘정보 수집’ 단계와 ‘정보 검토’단계다. 인력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각 시장에서 활약하는 역할의 종류가 다르다. 인력시장의 중개자는 정보 수집을, 부동산시장의 중개자는 정보 검토를 더 중점적으로 제공한다. 수집단계는 기술의 발전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효율이 증대될 수 있다. 하지만 검토 단계는 효율과 속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중개자를 필요로 하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정보의 수집이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소비자가 매 거래를 발생시킬 때마다 정보를 수집하지만, 이를 재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개자가 이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 유지, 관리해서 재사용하는 것만으로 산업 전체적인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중개자는 정보수집 및 정보검토를 대신 수행해 도와준 대가를 직접 받기 어렵다. 정보의 질이 압도적으로 괜찮다하더라도 수단에 그친다. 궁극적으로 소비자는 공급자를 만나는 미션을 달성하면 되는 것이지, 공급자를 만나는 과정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는 없다.

정보 검토 단계가 사업의 핵심이 된다면 확장성에 문제가 생긴다. 정보처리기술을 활용하거나 기계적 알고리즘을 통해 일련의 연산시스템으로 서비스를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서비스라면 고객의 만족도 또한 높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가 일일이 상담해주는 것도 고객 만족을 높여줄 수는 있겠지만 확장성에서 문제가 생긴다. 고객의 서비스 만족도를 충족하자니 확장성을 포기해야 하고, 확장성을 지향하자니 고객 서비스의 퀄리티를 다소 포기해야 한다. 상반되는 명제의 적정선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상반되는 두 명제를 충족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무래도 공급자의 풀이 더 넓은 곳에서 적합한 공급자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경쟁 플랫폼의 갯수는 계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유사 플랫폼과 비교해서 공급자의 양이 압도적이지 않다면 정보 수집 단계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히가 힘들다.

정보는 적어도 문제고, 많아도 문제다. 적으면 수집의 문제, 많으면 검토의 문제가 생긴다. 이상적인 것은 많은 정보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검토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든다. 필요한 것은 기준이다.

숙박업계 중개 플랫폼은 이미 포화되어 경쟁이 치열해진 나머지, 선두권 업체들은 상호 제휴를 맺어 공급자 공유를 한다. 동시에 후발주자의 플랫폼에 가입한다면 공급자 자격을 박탈시키겠다며 조항을 내건다.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방증이다. 정보의 검토가 중요하지 않은 공급자이거나, 혹은 소비자가 직접 정보 검토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렇게 중개자에게 정보 수집의 역할만 요구한다. 배달업체정보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보서비스는 양적으로 많은 정보를 처리가능하지만 정보검토의 역할을 위임받지 못하기때문에, 광고 모델을 수익사업으로 채택한다.

영상제작 거래중개 서비스의 필요성과 어려운 점이 모두 여기서 발생한다. 영상제작은 업체 정보만 있다고 해서 이뤄지지 못한다. 정보의 수집도 고역이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정보의 검토과정과 기준이 없는 것이다. 많은 잔소리꾼들이 플랫폼인데 탈플랫폼 현상에 대해서 왜 그렇게 방임하고 있냐는 얘기를 하지만, 정보 검토에 대한 요청이 있는 이상, 고객이 이탈할 이유는 없다.

시장의 필요는 너무 당연하다. 중개자는 거래량을 창출할 수도 없고, 거래금액을 조정할 수도 없다. 소비자의 필요는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 그 자체인 것이다. 중개자가 해야하는 일은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문제는 시장이 아닌 나에게 있다. 처리가능 중개량의 최대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시장에서 허용하는 중개수수료의 크기는 갈수록 낮아진다. 중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제법 똑똑해지고 업무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허용 수수료 하락속도를 중개자의 업무효율성이 따라잡아야 한다. 따라 잡았다면 역할이 창출될 것이다. 따라잡지 못했다면 자연히 소멸할 것이다.

“가벼운 거래는 가볍게, 무거운 거래는 무겁게” 앞으로의 중개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저관여 중개를 하게 되더라도, 우선은 극고관여 중개를 진행해야 한다. 탐사하는 모험가의 실제 하루는 종일 엑셀을 돌리느라 충혈된 눈이다. 모든 과정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올바른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없다. 결론은 나의 주관, 영감, 창의성이 내리는 것이 아니다. 방대한 경험의 양과 집요한 조사를 통해 나올 것이다. 이렇게 귀찮고 지루한 과정을 통해 도달된 결론은 결과적으로 ‘통찰’이라는 짧은 단어로 축약될 것이다.

고관여 중개를 하며 제작사를 찾고 선택하는 과정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방법도 착안해내었다. 지금까지 전형 과정을 7가지 만들어냈다. 기존 사업체가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사업을 실패한 이유는 중개자의 필요성을 인정받을 만큼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전에 효과적으로 해내지도 못한 사업체가 대부분이다. 앞서 실패한 사업체들은 어땠는가? 7가지 전형 과정 중 1가지 아이디어에 심취되어 모든 것을 내던졌고, 효율성을 내지 못하고 사업은 성장을 멈췄다. 효과적으로 커버리지를 넓혀내 증명하기보다는 작은 시장의 필요에 집착하고 공급자와 수수료 비율로 싸움을 벌였다. 그들이 해법이라 믿고 선택했던 아이디어는 현재 내가 사용하는 7가지 방식 중에서 가장 산업에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다.

이제껏 영상제작 거래중개를 시도한 곳은 독점 플랫폼 통제 전략을 취했다. 그 누구도 정보를 독점할 수 없다. 10년 전에 이미 유행이 지나버린 모델이다.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해야겠다는 목표는 추구하지 않고, 불필요한 단계를 추가로 거치라고만 근거없이 주장하니 거래가 일어나지 못한다.

요란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정보는 결국 간단한 것이니까. 정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처리과정을 다듬어낼 수 있어야 한다. 웹기술은 포기한다. 회원가입과 로그인기능을 만들만한 기술조차 없지만, 그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용자들에게는 결국 새로보는 환경일 뿐이다. 빠르게 새로운 전형방식을 개발해내고 적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소비자 인터페이스마저 생략된 구조로 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비드폴리오라는 프로젝트가 매력적인 이유는 정보의 순환과 배움의 크기에 있다. 프로젝트의 최종적인 성공을 떠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회사와 마케팅 담당자를 접하는 기회를 얻는 것만으로 즐겁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챌 수 있는 포지션이라 어깨가 우쭐해진다. 발주 과정을 배우는 것도 값지다. 결국 협업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다. 내부 팀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외부 협력자와의 커뮤니케이션도 모두 중요하다. 발주도우미를 한다는 것은 앞서 다가올 협력의 시대에 필요한 경쟁력을 학습할 좋은 환경이 된다.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물질적 풍요는 충족되지 못했을 때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 또한 결여되어 있을 경우 좇게 되는 것이다. 예술적 창조성은 내면에서 분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은 배움을 갈망하는 자가 원하는 것이다. 욕구가 없는 내 인생은 갈 곳을 잃었다.

욕구가 없는 내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1., 욕망의 대상을 가지는 것이다. 2. 역할을 통해 의무와 책임에 구속되는 것이다. 3. 내면의 창조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4. 가장 순수한 내 모습을 찾는 것이다.

직업이란 종종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단순히 여겨지고 있지만, 어쩌면 이 네 가지, 순수한 욕구를 일깨우는 일이다.

나는 나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할수록 나의 추악함에 실망하고 경명감을 느낀다. 인간은 아름답지 않으며, 나는 그 인간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한,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은 별종인 셈이다. 인간적이지 않으며 더 우월하다고 착각하지만 전혀 그렇지도 않은, 그저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먹고, 보고, 반응하는 기계로서의 인간에 그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그 이상의 존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도망쳤다. 기계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도망쳤고, 생존의 위협에서 도망쳤다. 월세 30만 원짜리 지하방에서 도망쳤고, 싫은 놈들로부터 도망쳤다. 싸움과 분쟁이 있으면 도망쳤으나 내가 간 곳에 평화와 이상이 있는 곳 또한 아니었다. 목적지를 정해두고 달린 적도 있었으나, 이내 달성하고 지루해져 탈출하고자 안달이 난다.

기계단계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기계로서의 인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기계 내에서 서로 갈등을 일으켰다. 기계적 인간 단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정교하게 기계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해진다 한들 일련의 자극-반응 과정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천천히 우연적으로 일어나던 반응이 더욱 빠르고 실수없이 일어나는 쪽으로 인간이 향해가고 있다면, 아마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일 것이다.

그렇다고 경이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계적으로 계산된 쾌락 알고리즘이 나에게도 장착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작동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미녀를 마주하거나, 동물을 만지거나, 새로운 풍광을 보고, 음악을 듣고, 스토리를 듣는다. 특정한 감정을 활성화하는 자극들은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에 손만 뻗으면 언제나 취할 수 있다.

미션 달성을 통한 만족감, 성취감은 그보다 더욱 크다. 나는 사회적 관계에서 이런 성취를 느끼지도 않고, 창작물을 통해서 느끼지도 못한다. 두 목표는 내가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앞서 나의 욕구가 향할 곳을 찾지 못했다는 혼란스러움을 고백한 바에 따르면, 나는 성취를 통한 쾌락도 충족이 어려운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쉽고 빠르게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인스턴트 성취를 좇는다. 게임이다. 미션이 주어지고, 단시간에 몰입 가능하며, 내 노력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고, 성취를 통해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정신적 쾌락이 엄청나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것이 쾌락이 아니라, 어떤 숭고한 가치는 있을까? 과연 있을까? 이렇게 염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그런 가치가 있을까?

 

— 덧붙임 (21.02.24) —

이놈의 허무주의가 또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네. 이 에너지를 추구와 탐구를 향하게 해야 한다. 이놈에게 잠식당해선 안 된다.

  • 정보 전달 방식의 시대적 변화

정보전달 매체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 정보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던 시대에는 정보 중개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언론사가 정보 유통의 관계를 독점했다. 기술적인 진입장벽도 높았고, 비용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편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효율적인 정보를 공유 방법이었다. 언론사를 중심으로 일련의 정보 유통 규약과 문법이 생겨났다.

시대는 바뀌어 모든 사람이 웹이라는 완전 개방 정보생태계에 접속될 수 있게 되었고, 인터넷을 손에 쥐고 다니게 되자 정보와 정보소비자가 직접 연결되었다. 이런 환경의 변화로 인해 기존의 규약과 문법은 파괴되고 있다. 매체는 간소화되었고, 특정 분야별로 버티컬화가 진행된다. 정보는 파편화되어 독자 입장에서 다시 재배열되는 정보 맥락의 변화 또한 생긴다.

 

  • 기업 입장에서 브랜드 저널리즘이란

기업은 여러 타겟에게 기업의 활동을 알림으로 관계를 맺고자 한다. 그 타겟으로는 고객, 잠재고객, 사업파트너, 내부 직원, 경쟁사 등 다양하다. 각각의 타겟과 관계를 맺기 위해 기업은 마케팅 부서와 홍보 부서를 운영했다. 두 부서의 업무는 약간 다르지만 외부의 정보 플랫폼, 광고 솔루션을 빌려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기업의 메시지 전달을 내재화할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 환경이 다변화되고 복잡해지자 이를 트리플 미디어 전략으로 묶어내고 있다. 기존의 광고 홍보 방식을 페이드 미디어(Paid Media), 자체적으로 미디어를 운영하는 것을 온드미디어(Owned Media), 사회관계망을 겨냥한 독자 중심의 콘텐츠 전략을 언드 미디어(Earned Media)로 분류한다. 타깃에 접근할 방안은 갈수록 다양해지므로, 성격이 비슷한 것들 것 묶어 분류하는 것으로 거시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전략을 통일시킬 수 있다.

기업의 브랜드 저널리즘은 트리플 미디어 전략 중에서 온드 미디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미디어 브랜드를 구축해 정보를 직접 소싱, 제작, 발행하는 것은 여러 장점이 있다. 빠르게 실행하고 대응할 수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손실이 적다. 맥락 통제권을 직접 가질 수 있다. 원하는 타겟을 직접 설정하고 겨냥할 수 있다. 독자의 문법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직접 기획할 수 있다. 피드백을 직접 받고 관리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장점을 찾을 수 있겠다.

 

  • 브랜드 저널리스트가 갖춰야 하는 태도

브랜드 저널리스트는 바깥으로는 독자를 바라보되 귀는 안으로 기울여야 한다. 정보 생산은 소싱, 제작, 유통의 과정이 거치기 때문이다. 좋은 정보는 올바른 소싱으로부터 나온다. 미디어의 체계와 발행 전략이 수립되고 나면 콘텐츠는 소싱에서 8할이 결정된다. 좋은 콘텐츠는 좋은 소싱에서 비롯된다.

브랜드 저널리스트는 내부인이면서 외부인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유는 전달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메시지를 전달받는 독자의 입장이 되어 객관적으로 기업을 바라볼 수 있는 롤플레잉 시뮬레이션을 반복해야 한다. 좋은 브랜드 저널리스트라면 구축한 브랜드와 콘텐츠가 외부의 시선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와 정의는 각각 달라지고 있지만, 넓게 ‘전파에 대한 책임’이라고 포괄할 수 있다. 정보 중개자라면 응당 가져야 할 자세다. 기업이 미디어를 직접 운영하더라도 기존의 언론사가 추구하던 저널리즘의 정신은 지켜질 필요가 있다. 언론이 사회와 가지는 관계의 성과는 영향력으로 측정되지만, 이 또한 신뢰가 구축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브랜드 저널리즘 또한 신뢰 구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미디어 운영과 기사 작성 과정에서 객관성, 독립성, 투명성을 지향해야 한다.

살고자-함. 고작 살아 숨쉬는 것만이 목표인 존재는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암만 먹고 살기 힘들다지만, 어떻게든 밥을 먹고들 산다. 굶어 죽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상태를 인생의 지향점으로 삼는다. “뭐 해먹고 사나”를 입에 붙였다.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살고자-함이었다면 어떤 동기보다도 강한 에너지를 뿜을 것인데, 자신의 삶과 환경을 바꿀 수 없다고 믿는 낙담한 존재는 원초적인 생-의지를 표출하는 것에도 순수한 동기를 잃었다. 현대인의 살고자-함은 생존본능이 아니라 타협, 변명, 자기합리화에 가깝다.

하고자-함. 행위의 동기를 내재화시키면 수십 배 강한 존재로 거듭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을 배로 해야 하듯이, 나에게 주어지는 일은 완전히 자기목적적이지도, 완전히 외부기인적이지도 않다. 놀이의 연장선상에 놓인 행위. 일과 휴식의 구분은 필요치 않다. 노동이 곧 삶이다. 행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의식을 망각하는 수준에 다다른다. 그 순간에는 자아를 의식하지 못하지만 행위를 성취한 이후에는 자아감이 더욱 충만해진다. 이를 반복하며 성취 중독을 이어간다. 이 상태를 경험해본 강한 존재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는 진부한 이분법적 사고방식 따위에 마음을 흔들리지 않는다.

되고자-함. 되고자 하는 자는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다….

 

라고 세 문단으로 글의 구조를 짰다. 마지막 문단의 내용을 채워 넣지 못한 채로 두 달이 지났다. 세 번째 문단의 주장이 내 생각과 틀려서는 아니다. 근거를 찾지 못한 탓이다.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철학적으로 보이는 명제는 “커서 뭐 될래?”라는 유치한 질문의 다른 버전에 불과하다. 나는 청년기 이후로 이 질문을 주기적으로 던졌고, 아저씨가 된 32살의 나이에 이 글을 씀으로 한 번 더 시도했다.

나는 자신의 되고자-함을 찾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살아지는 대로 살아놓고, 살아보지도 않은 인생까지도 한 데 묶어 정의 내리곤 했다. 되고자-함을 성급히 말하는 부류는 대체로 허튼소리만 늘어놓았다.

결국 내가 찾아야 할 답 아닌가. 나는 지난 6년 동안 꽤 열심히 무엇인가가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존재에 대한 추구는 아니었나 보다. 사회생활 첫 2년은 팀원으로, 다음 2년은 팀장으로, 최근 2년은 회사대표가 되려고 아득바득한 것 같다.

나는 이번에도 성급히 답을 내리기보다는 보류를 택한다.

기술기반도 아니고, 혁신적이지도 않았으며, 비즈니스 모델도 명확하지 않아 좋은 투자대상도 아니었다. 따라서 스스로를 스타트업이라 하지 않았다.

산업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발을 들이려 미디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창업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간다. 이 쯤되니, 스타트업이고 말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나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일까? 라는 궁금증이 든다. 그래서 기록을 남겨보자면;

 

2014년 06월 온라인 큐레이션 매거진 & 페이스북 페이지
2014년 07월 식품산업의 MICE 활동을 온라인화
2014년 09월 셰프를 소재로 하는 버티컬 미디어 – 셰프에 관한 뉴스, 셰프가 보는 뉴스
2014년 12월 F&B 관련 업체들이 함께 쓰는 코워킹 스페이스
2015년 01월 미식 콘텐츠 기업 – 식품기업 홍보 & 마케팅 대행
2015년 03월 요리사에게 가장 신뢰받는 온라인 미디어
2015년 05월 주방근무자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2016년 02월 News & Jobs 모델로 F&B의 산업인력을 위한 구인구직 서비스
2016년 04월 레스토랑의 수발주 시스템 – 외식산업의 B2B 시장 47조 중 음식점납품은 27조
2016년 06월 ….

 

이렇게 많은 일을 벌이고, 조사하고 그림 그리기를 반복한다. F&B 산업은 테크황무지라는 것은 명확한데, 내가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 수 있겠단 확신이 없으니까 계속 헤매는 것이다. 기술이 있어야 한다. 기술을 내재화해야 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함께 작업한 해외 미디어 동향 보고서가 나왔다. 셰프뉴스는 한 페이지 가량 소개되었다. 이메일로 문의왔던 당시 답변했던 내용을 이 곳에 기록으로 남긴다.

보고서 다운받기(169MB) : http://www.kpf.or.kr/downloadfile.jsp?num=6369&board_data_id=7824

 

정보전달발전역사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이전 세대의 기술은 매정하게도 세상에서 잊혀졌습니다. 봉화, 전령, 목판인쇄, 타공프린터, 모스부호, 흑백 TV, 모뎀 등 모두 잊혀졌습니다. 인류는 정보전달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고 있고, 불과 몇 년 전에 사용하던 전달기술들이 새로운 기술들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적인 환경 속에서 언론사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콘텐츠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반대의 의견을 내겠습니다. 기존 언론사들이 콘텐츠를 못 만들어서 위기가 왔나요?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는 전적으로 시대적인 현상이며, 언론사 외부의 환경적인 문제입니다. 내부에서는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콘텐츠가 아닌 역할입니다.

이전 세대까지 언론사가 하고 있던 역할은 수많은 대체재에 의해 대체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남길 것이며, 다른 서비스에 의해 대체되어버린 분야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언론사들이 각자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시점일수록 업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현대적인 ‘언론사’의 범위를 넘어, 더 큰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미디어의 본령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결국 ‘중간자’, ‘매개자’, ‘연결자’, ‘전달자’입니다. 여전히 연결이 필요한 곳은 많이 있고, 새로운 기술로 그 연결을 더욱 효과적으로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14년 7월 셰프뉴스를 창업하기 전까지 IT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에서 3년 가까이 근무했습니다. 없던 IT산업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고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 산업미디어가 필요하다. 산업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하고, 사람들의 연결을 도모한다.”라는 산업미디어의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이 맥락에서 외식산업은 미디어가 가장 필요한 산업입니다. 테크황무지에 가깝지요. IT기술을 아는 사람은 외식 산업을 이해하지 못해 매번 실패하고, 외식 산업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기술을 이해하지 못해 실패합니다.

이 산업에는 총 25종 가량의 오프라인 매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려는 시도를 안 한 게 아닙니다. 매번 실패했고, 지금도 여러 시도들이 실패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많이 있겠지만 공급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외식 산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F&B(Food & Beverage)두 개로 구분하거나, HoReCa(Hotel & Restaurant & Café)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공급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소비자 중심적인 관점에서 매체를 기획하면 산업 종사자를 독자로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측정 가능한 외식업 종사자가 3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주방 근무자는 140만 명입니다. 이들이 볼만한 매체가 있을 법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없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기존 언론은 “셰프에 관한 뉴스”만들 생각은 하지만, “셰프가 보는 뉴스”를 만들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간 ‘버티컬 미디어’라는 어휘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소재를 버티컬하게 접근하면 보기엔 그럴싸한 미디어가 만들어지겠지만 역할을 찾기 힘들 것입니다. 독자를 버티컬하게 설정하면 그들이 역할을 알려줄 것입니다. 구인구직서비스도 독자분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셰프뉴스가 지금까지 매체 영향력을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저희가 잘해서라기보다 독자의 특이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리사라는 독자는 다소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습니다. 하루에 14시간씩 창문도 없는 주방에서 육체노동을 하지요. 잠시 담배를 피러 나와 휴대폰을 보는 게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취미, 특기, 진로가 모두 요리인 삼위일체형 직군입니다. 인생에 요리밖에 없다고 합니다. 다른 매체가 독자들과 가지는 약한 연결고리에 비교하면 훨씬 큰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는 두 가지로 구분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콘텐츠 생산자(Media as Contents Creator)이며, 또 다른 하나는 채널(Media as Channel)입니다. 콘텐츠를 돈 주고 사보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으므로 미디어 운영의 목적은 채널을 구축하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콘텐츠는 목적이 아닌 철저한 수단이 됩니다.

채널로서의 미디어도 전환(transition)을 일으키지 못하면 아무 짝에 쓸모가 없습니다. 전환도 안 일어나는 채널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콘텐츠 생산부서는 애물단지 지출부서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셰프잡스에서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셰프뉴스는 애물단지 지출부서에 해당하므로 1.2명의 최소 리소스만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중입니다. 셰프뉴스로부터 전환을 일으켜 셰프잡스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셰프뉴스의 미디어 운영 비용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입니다. 셰프뉴스의 독자와 셰프잡스의 고객이 같으므로 전환 효율이 아주 높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그 당시 공사가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언제 쯤에야 개관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저 확인하고 싶었다. 저 공간이 뭐하는 곳인지, beLAUNCH가 담길 수는 있는 공간인지.

몇 달에 걸쳐 서울시와 디자인재단에 수십번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는 연결되지 않았고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말하거나, 그런 계획은 없다는 답을 들을 뿐이었다.

한 번은 공사장 개구멍을 통해 몰래 들어가 훔쳐본 적도 있다. 공사와 관련된 사람인척 행세하며 시치미를 뗐으나 “안전모도 안쓰고 어디서 거짓말을 하냐”며 이내 쫓겨나고 말았다.

13년 11월, 드디어 사업담당부서가 신설되었다. 담당자와 연결된 후 하루 세끼 밥은 걸러도 담당자 안부전화 세번은 안거르는 적극적인 구애 후에 beLAUNCH2014 @ DDP 유치 계획서를 보낼 수 있었다.

DDP는 다른 컨벤션 센터와 비교해 대관 Hall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체 전시 이외에는 1년에 10개 정도의 외부 행사만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 가능성을 믿어주신 통찰력있는 담당자분(그분은 유명 방송국 PD 출신이라 하셨는데 나도 모르는 해외 VC이름도 알고 계셨다.)덕에 개최가 승인되었다.

3년차 행사지만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다. 지금까지 올 수 있도록 가능성을 믿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beLAUNCH2014를 그저 대관 고객으로 여기지 않고, 좋은 콘텐츠를 함께 담겠다며 협력해준 DDP에도 감사드린다.

힘찬 출발이었다. 앞으로 남은 한달도 힘내서 화이팅!

나 어릴 적엔 학교에서 꿈에 대해 적어내라고 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때 잘만 적어냈던 친구들이 여전히 그 꿈을 가지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이 글을 한번 끄적여 본다.

왜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꿈꾸는 학생들을 좋아할까?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뭔가 위대한 삶을 살길 바랐던 것일까? 사실 선생님들도 그 작은 아이들이 커서 양아치나 공사판 인부가 되거나 잘해봐야 박봉의 월급쟁이 아저씨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어느 날, 형이 갑자기 유리병을 들고 와가지곤 타임캡슐을 만들자며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는 게 기억난다. 타임캡슐이 뭔질 몰랐는데 형의 설명에 따르면 그 당시의 기억을 담아서 흙 속에 묻어두고 한 십년 지나서 파보면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아주 좋은 거였다. 그러면서 형은 허겁지겁 유리병 속에 뭘 처넣기 시작했다. 사실 그 속엔 아주 소중한 것들이나 그 당시를 기억시킬 수 있는 의미심장한 아이템들이 들어가야 하는데 별로 쓰지도 않고 소중하지도 않았으며 유리병 크기에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장난감 몇 개를 골라 집어넣었었다. 그리고 공책을 북북 찢어서 ‘나는 커서 이 되겠다.’라는 꿈을 한 장씩 적어 넣기로 했다. 그 당시 형은 뭘 적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 전까지 한 번도 커서 뭐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잖게 당황했다. 형은 빨리 타임머신을 묻어야 한다며 재촉했다. 5분간의 고민 끝에 ‘소방관은 타죽을 수도 있으니까 경찰관이 되어야겠다.‘며 “나는 커서 10년 후에 경찰관이 되어있겠다.”라고 적어서 넣었다. 그 후 그 타임캡슐의 행방을 찾아본 적도 없지만 아마 지금 가보면 그 때 살던 집 뒤의 작은 마당엔 새로운 건물이 올라와있을 것이다.

그 다음 년도에 6학년으로 올라가서 만난 담임선생님은 꿈에 무척 집착했다. 모든 학생들이 장래희망 카드를 만들어 게시판에 붙이는 난리법석을 떤 것이었다. 그것도 부모님들이 찾아오는 가을운동회 직전에 말이다. 나는 그 때까지 13년의 인생을 살면서 장래희망이라는 것에 생각해봤던 적이 작년 5학년 때 5분 동안 생각해봤던 게 전부였는데 이젠 6학년이니 더 진지해봐야겠다며 머리를 싸맸었다. 밤이 새도록 고민해서 만들어간 나의 장래희망 카드에는 ‘샐러리맨’이 적혀있었다. 평범한 학생들을 부풀리고 과장시켜 학부모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담임선생님의 허영심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고민하던 나를 떠올려 보면 나는 커서 별로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장래희망카드를 제출하고 난 뒤에도 그 카드가 게시판에 붙고 난 뒤에도 가을운동회 때 엄마가 와서 내 카드를 보고 혀를 찼을 때에도 나는 샐러리맨을 꿈이라고 적은 것을 무척 후회했다. 그렇게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나는 도무지 무엇을 꿈으로 가져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은 흘러 고3이 되었다. 고 3이라면 이미 장래계획과 진로설정이 다 되어서 수능공부에만 집중해야 할 시기이지만 나는 여전히…..

부끄럽게도 이제까지 18년의 인생을 살면서 장래 희망에 대해 생각해봤던 적이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두 번 밖에 없었다.

고3 야자시간에 떠들던 녀석들이 단체로 야단맞던 중 훈육에 한창이던 ‘김갑상’선생님이 한숨을 푹푹 쉬며 “느그들 도대체 꿈은 있나?” 라고 물어봤었다. 단체로 야단맞던 애새끼들이 10명 쯤 되었는데 나를 포함한 두 명을 제외하곤 다른 친구들은 자신들의 꿈이 무엇인지 대답했고 꿈이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한 나와 그 친구는 꿈도 미래도 희망도 없는 한심한 잉여인간 취급을 받았었다.

“꿈이 없으면 공부를 할 이유가 안 생긴다. 내일까지 당장 꿈부터 가지도록 해라.”

정말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다. 그렇긴 해도 내일까지 당장 꿈이 생기길 바라셨던 것은 일리가 없는 말씀이었다.

꿈이 없었기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는 대충 수능을 쳤고, 나온 수능 점수에 맞춰서 원서를 적어보기 시작했다. 대학교들에서 날라 온 찌라시들과 복잡하게 분석된 적성검사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대학원서라는 백지장에 그려 보려니 막막했다.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런 복잡한 심정으로 또 다시 한번 꿈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바쁘신 고3담임선생님의 귀한 시간을 뺏어서 5분 동안 상담을 받았다. 그 때 추천해주신 ‘경성대학교 멀티미디어대학 디지털콘텐츠학부 디지털영상전공’(가장 이름이 길어서 눈에 튀었다.)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그 쪽으로 원서를 넣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아직도 나는 내 꿈이 뭔지 모르겠다. 이러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휴학한 뒤 호주로 도망 와 있는데 여기서 생활하는 동안 꿈이 생기긴 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사실 사람들이 꿈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도 가지고 있긴 한데, 나의 꿈은 특정한 직업이나 인생계획 따위로 세워놓진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정직하게 사는 것,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정도로만 세워 놓았다. 인생의 기로가 어떻게 바뀔 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호주에 오기로 한 것도 한 달 만에 결정한 것이고 브리즈번을 떠나 멜버른으로 가야겠다는 결정도 저번 주에 했다.

알지도 못하는 앞으로의 인생을 꿈이라는 황급한 계획을 세우면서 가능성을 모두 닫아버릴 수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