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쉬면 퍼포먼스가 떨어진다. 꾸준히 하면 오르고 멈추면 떨어진다. 이 컨디셔닝의 공식이 얼마나 정직한지 오늘날 운동생리학자들은 이를 수치화해서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강도,빈도,지속시간 세 요소를 측정해 총 운동성과를 수치로 나타내기도 하고 각 요소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지 분석해 성과마다의 특성을 회귀도출하기도 한다.

성장의 속도란 어느 정도 달성한 후로는 그 속도와 기울기가 점차 완만해진다. 정비례해서 계속 증가할 순 없다. 정말 일분일초의 낭비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쏟아놓는 인간의 최선의 노력까지 쥐어짜내고 전세계인이 주목하는 상황에서 정신력까지 극도로 끌어올려 초월적인 능력까지 발휘하는 올림픽리스트의 신기록이 한계라고 한다면 그것에 근사해질수록 차이는 작아진다. 이 상태에서는 최대한의 노력을 들이부어도 성장은 이뤄지지 않고 현상유지만 할 수 있다. 노력과 성과가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상태.

그래서 정체기를 만나면 재미가 없다. 더 나아져야 재미를 느끼는데 열심히 해도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니 외적동기와 내적동기가 모두 상실된다. 계단식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믿어서 조금은 버틸 수 있지만 한동안 지나도 그 성장마저 보이지 않는다면 노력대비 성장은 불가하고 심지어 최대한의 노력을 들여도 퍼포먼스는 오히려 하락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역치값은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성장을 이끌기 위해 들여야 하는 점진적으로 과부하의 정도는 계속 커지기만 한다.

온 종일 운동만 하는 전문스포츠맨이 아닌 우리들은 생업을 꾸리느라 운동빈도가 뜸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퍼포먼스의 한계치가 빠르게 찾아온다. 게다가 추워지는 겨울이면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생기니 좋은 변명거리 삼아 운동을 쉬고, 어김없이 초기화가 진행된다.

초기화가 있기에 급진적인 성장의 기울기와 그 과정에서 찾아오는 자기효능감을 반복해서 느낄 수 있다. 한 종목의 달인이 되어버리면 성장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종목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거의 모든 종목을 다 섭렵해버려 성장쾌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운동하는 것만으로 다시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다. 초기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제로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다행인 것인가.

초기화를 받아들일 때 초기화 전의 최대 퍼포먼스를 기준으로 잡으면 안 된다. 그건 작년의 최대치였다. 그 결과는 4,000키로의 라이딩 마일리지라는 인풋이 있었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아웃풋이었다.

아예 운동을 하기 전의 시점을 제로점으로 잡자. 너무 처음보다는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즈음, 그러니까 자전거라면 클릿슈즈를 처음 꽂던 시점, 달리기라면 런닝팬츠를 처음 산 시점 정도가 되겠다.

인간은 본디 학습에 재미를 느낀다. 모르는 정보를 아는 것도 그 정보를 통해 내 사냥실력이 늘어는 것도 재미를 느낀다. 그렇게 배움에 재미를 느낀 조상들만 살아남아서 700만년동안 대를 이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배움이 재미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현대 교육 때문이다. 배움을 교육과 학습으로 구분해보자. 사전적 정의는 다르지만 나는 이 둘을 능동수동으로 구분한다. 학습주체가 능동적이면 학습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교육이다. 교육은 선생이 있어야하고 학습은 스스로가 선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배움은 본디 재밌는 것이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전공은 다양해져서 사람마다 배움의 성과가 덜나오는 분야를 재미없게 느낄 뿐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잘 맞는 분야를 찾기만 한다면 누구나 배움에서 재미를 느낀다.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아이들도 공부엔 집중 못하지만 게임엔 누구보다 집중을 잘한다. 공부는 적성에 맞기 어렵지만 게임은 누구에게나 적성이 잘 맞다. 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일 뿐. 게임이 적성에 잘 맞는 이유는 그렇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게임기획자들은 인간이 어떻게 재미를 느끼는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해 게임의 요소로 구현해낸다. 그리고 그 요소 중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가 배움과 성장이다. 재미있을 수 밖에 없도록 겨냥해서 디자인했으니 재미가 없을 수 없을 수 밖에.

그런 게임에서도 초기화 개념은 있다. 육성과 성장에 한계를 느끼는 것을 알게 되자 게임 기획자들은 한 캐릭터를 계속 성장시키기보다 매 게임마다 반복성장시키기로 했다. 매판 1렙부터 새로 키워야 하는 롤은 매판 짜릿해 최고야 늘 새로워. 성장을 통한 만족감이 가장 특화된 게임은 idle장르다. 자원을 캐서 그 돈으로 업드레이드하고 효율을 높여 다시 자원을 더 모으길 반복하는, 또는 전투력을 키우길 반복하는 이런 유형의 게임은 게임의 작동원리가 어느 정도 파악되기 시작한 순간 재미가 없어진다. 게임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눈에 들어오는 순간 현타가 오더라.

직선적인 게임 진행방식을 정기적으로 초기화시켜 같은 게임도 새로운 게임이 되는 것이다. 열배나 많은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콘텐츠로 열 번을 반복시킬 수 있으므로 생산성도 좋다. 모두 초기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라이트유저는 세계에 발을 담궈본 것만으로도 충족시키고, 헤비 유저는 초기화를 반복하며 열배의 플레이타임을 즐겨도 만족스럽게 게임할 수 있다. 이전과 똑같은 반복을 하게 된다면 재미가 없겠지만 이전에 어렵게 깬 것을 쉽게 깨부수게 되면서 자기효능감을 느낀다. 1.5배 정도 강해지게 해주는 것만으로 엄청 만족스러워진다. 환생 개념도 초기화고 부케 생성도 초기화고 시즌제로 돌리는 것도 초기화다.

초기화를 시킨 다음엔 게임의 양상이 달라진다. 성장결과의 정도가 아니라 성장의 기울기, 즉 성장의 속도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초기화도 반복하다보면 초기화를 극복하는 데에도 속도가 붙는다. 초기화를 극복하는 데 처음에는 3주가 걸렸다면 그 다음 초기화극복엔 보름밖에 걸리지 않고 그 다음엔 열흘 정도면 본격적인 운동강도를 받아낼 정도의 몸 상태가 준비될 것이다. 잔차 타는 사람들은 이걸 몸이 올랐다고 표현하더라.

그러니 초기화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초기화가 없다면 우리는 성장 기울기가 완만해져버린 영역 속에서 아무리 과부하를 먹여도 보상은 조금밖에 못 얻는, 게임을 할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성장의 연속이다.
내 삶에 생기를 다시 불어넣기 위해 지난 5개월 유산소를 끊었었다.
게을러서 안 뛴게 아니라니까요?

두달만에 7키로가 불었다. 이십대 초반에 근육이 하나도 없을 때보다 붙는 속도가 빠르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하나는 근성장의 원리를 이해한 덕분이다. 운동은 근성장을 지시하기 위한 자극제공일 뿐이고 실질적 근성장은 영양공급이 충분이 이뤄진 휴식기간에 이뤄진다. 이걸 안 이후로 운동을 악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자극을 제대로 먹이는 데에 집중하고 잘 챙겨먹고 누워서 종일 유튜브나 책을 본다.

두번째 이유는 운동 말고 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백수가 되니 하루에 운동만 세시간씩 조질 수 있다. 백수는 오늘도 느지막히 점심을 챙겨먹고 카페로 간다. 카페는 9시에 닫기 때문에 중간에 허기지지 않도록 견과류와 단백질음료를 챙겨간다. 공급이 끊기면 근성장기회의 낭비 혹은 근손실이다. 백수가 되었으니 지출을 줄여야 한다. 배낭을 짊어지고 3키로 남짓 거리를 걸어서 오간다. 50분 쯤 걸린다. 게을러서 하지 않는 유산소운동을 이걸로 떼우고 있다. 지방 연소 효과가 나오는 유산소운동은 심박이 110을 넘겨야 하는데 걷는 것 만으로는 90언저리를 오가는 것 같아 오늘은 조금 뛰어 보았다.

운동을 처음 배운 건 군대에서다. 과월호 잡지를 파는 상점에서 2000년대 초반에 나왔던 헬창잡지를 열권씩 사서 들고왔다. 그 책에서 나오는 운동방식이 요즘 나오는 정보와 다를 게 없다. 근육의 성장원리와 공략법은 백년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일도 이처럼 변함없음 좋으련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현대인들은 따라가기 벅차다. 이런 시대에 운동은 더욱 매력적이다. 이만큼 정직하고 공평한 일도 없다. 노력을 들이는 만큼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보장되는 운동. 이 매력에 빠져 백수가 일은 놓아도 운동은 놓지 않고 꾸준히 한다.

 

사진 기록 💪

내 성격을 아는 사람들이 나에게 한 조언은 한결같았다. 그냥 적당히 시키는 것만, 남들만큼만 하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내 눈에 보이는 영역, 아니 조금 양보해서 내 손에 닿는 영역은 무조건 내 방식과 원칙대로 일이 돌아가야 했다. 어릴 때에도 새우깡 봉지를 세로로 찢거나 뒤집어서 뜯거나 뜯는 중에 삑사리가 나면 나는 나뒹굴며 통곡을 했고 그 새우깡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들었다.

성격을 바꾸려고도 노력해봤다. 하지만 예외를 용납하거나 원칙을 어기는 상황은 언제나 비극으로 귀결되었고,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원래 성격대로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원칙은 나날이 빡빡해졌고, 나는 보통 이상의 꼰대가 되어간다.

새우깡을 어떻게 뜯어야 잘 뜯는 것인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지적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내게도 유쾌하지 않은 사건이다. 돈벌기 위해 하는 일에 유쾌하고 말고를 따질 건 아니지만. 부양할 가족, 자식, 와이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지도 않고, 챙길 건 고양이 한 마리 뿐. 그래서인지 생계유지가 가능해진 시점 이후로는 일이 돈을 벌기 위한 행위가 아니게 된 것 같다. 일을 통해 자존감을 충족시키거나, 정체성을 찾으려 시도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못하면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낙담에 빠져 좌절한다는 걸 이번 계기로 알게 되었다.

관계의 지속가능성은 계산이 가능하다. 40점 이하는 서로 손해보는 거래, 40~60점은 죽지 못해 사는 사이, 60~80점은 윈윈 관계의 파트너십, 80점 이상은 환상의 콤비. 이렇게 숫자로 딱 짚어낼 수 있다. 후하게 줘도 60점을 넘기진 못할 것 같다는 계산이 나오자 난 결별을 준비했다.

이별의 순간은 말처럼 쉽진 않다. 지난 금요일부터 닷새를 누워 지냈다. 짜장면도 탕수육도 치킨도 시켜먹었다. 담배도 폈다. 동굴이다.

이젠 이 곳이 동굴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동굴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게 된다는 것도 안다. 불안해하거나 미리 나오려고 해도 달라질 것 없다는 것도 안다. 나란 짐승은 일년에 열흘 정도는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냥 그렇게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스스로를 놓아두었다.

오늘은 동굴에서 나온 날이다. 몸무게가 2키로가 불었다. 일주일간 밀렸던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네 봉지 버렸고, 냉장고 청소를 했고, 대형폐기물 하나를 버렸고, 옷장의 규칙을 새로 만들었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했고 새벽엔 쇠를 들었다.

어디든 상관없어. 목적지는 자전거 위니까!

자전거에 올라타는 것만으로 목적을 달성한 거야. 어딘가를 가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된 자전거지만 때로는 자전거 그 자체만으로도 목적이 될 수 있지. 오늘은 그런 날이고, 그러니 어딜 가든 상관없어.

목적지를 정한다는 것은 내게 큰 스트레스야. 마치 직장인이 점심메뉴를 정하는 것만큼이나 중대한 사안이거든. “어제 먹었으니까 안돼, 주말에 먹을거니까 안돼, 기름져서 안돼, 단백질 비중이 적어서 안돼….” 선택에 앞서 제거의 과정부터 거쳐야 하는 것도 마음을 어렵게 해.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선택지가 불만족스러워서가 아니야. 포기할 선택지가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선택의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지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현상이 생겨. 단순히 아쉬운 마음을 넘어 무력함과 좌절을 느끼게 만들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까지 하게 되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문명의 혜택은 늘어도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야. 우리는 조상 대대로 불만족하는 욕망덩어리의 기질을 물려받았어.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고, 그것을 갖자마자 금새 흥미를 잃고 불만족하도록 디자인되어있어. 그래야 새로운 것을 다시 욕망할 수 있으니까. 이 기질은 DNA 깊은 곳에 새겨져 있어. 생존경쟁에선 불만종자들이 우월했고 대를 이을 확률이 높았거든. 하지만 때로는 조상들이 물려준 기질들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에는 도움되지 않을 때가 있어. 에너지를 장기간 저장시키는 시스템은 기근이 만연한 시대엔 필요했지만, 현대인에겐 탄수화물 중독과 비만이라는 부작용을 야기하는 것처럼 말이야.

선택지가 많지 않던 조상님들의 삶. 그리고 내 삶. 달라. 너무나 달라. 다르니까 다르게 해보기로 했어. 선택하지 않기로. ‘자전거를 끌고 나가 안장 위에 앉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의 기로란 대체로 둘 중 하나야. 그럼 왼쪽으로 갈 지, 오른쪽으로 갈 지만 정하면 되는 거거든. 어디든 상관없지 않겠어? 자전거 위에 앉아있는 건 매한가지니까.

갈림길에 도착해서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그건 반길 일이야. 그 때 마음의 소리가 들리거든. 난 오늘 마음에 귀를 기울였더니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들리길래 바로 핸들을 꺽었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평소에 하던 것과 반대의 선택을 해보는 건 어때? 분명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거야. 난 오늘 평소와 반대의 선택을 했다가 실수로 한강을 건너버렸지만 말이야. 다리 위에서 안 죽으려고 시속 40으로 째느라 고생 좀 했지만 말이야. 라이딩이 끝나고 나니 분명 오늘 라이딩의 하이라이트는 그 때였단 생각이 들어.

‘불필요한 선택고민을 없애는 것’ 그것은 감사만족을 느끼는 마음의 기술. 건강한 마음으로 도시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현대인에게 필요한 필수 소양.

 

주행 기록 🚴‍♀️

올 봄, 자전거 학원을 다녔다. 4주 짜리. 수강일기를 썼었다. 한데 모아 기록해둔다.

 

평로라에서 외전근 페달링 리듬 찾기 (학원 첫날)

제가 알던 페달링을 다 써봐도 그 리듬감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제까지 전 다른 걸 외전근 페달링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나봐요? 실망스럽진 않아요. 오히려 좋은 소식이죠. 그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걸 깨우치게 되면 제 실력은 또 얼마나 성장할까요? 벌써 설렙니다.

강습이 끝난 뒤 한시간 더 탔습니다. 말씀해주신 힌트들을 의식할수록 어색해졌습니다. 몸이 박자감을 찾기보단 독립적으로 동작하는 느낌. 머리로 안 찾아지니 몸으로 찾아보려 했습니다. 눈을 감고도 하늘을 보고도 땅을 보고도 해보았습니다. 탈진한 상태라면 무의식적으로 찾아내지 않을까 싶어 서너번 털어보기도 했습니다.

이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비슷한 리듬을 찾은 것 같습니다.

힘의 타이밍. 제 몸의 느낌대로라면 무릎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왔을 때부터 짧게 스트로크를 쳐야 했습니다. 12-5는 정말 찰나의 순간입니다. ‘12시부터 5시까지만 힘을 줘’라는 코딩이 작동할만큼의 제 하드웨어는 좋지 않습니다. 명령어를 바꿔보았습니다. ‘12시에서 짧게 툭툭’ 더 잘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당기는 근육의 습관도 잠시나마 잊혀집니다.

힘의 시작점. 무릎의 위치. 제 습관대로의 페달링보다 무릎은 안으로 2~3cm 가량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외전근은 다리를 바깥으로 회전시킬 때 쓰이는 근육 너댓개를 묶어 부르는 것인데, 이름 그대로 바깥 회전이 일어나려면 시작점이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의 방향. 외전근은 무작정 바깥으로만 빼는 줄 알았는데 안으로 넣었다가 밖으로 밀어내듯 밟았습니다. 수직보다 5도 정도의 작은 차이였지만 몸 바깥쪽 근육이 많이 개입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릎의 시작점과 벡터의 방향만 정해두니 새끼발가락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습니다. 새끼발가락에 힘준다는 코딩도 안하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Q. 이게 제대로 찾은 것인지 그 리듬감만 비슷하게 흉내내기 위한 요령을 부린건진 모르겠습니다.

Q. 발목을 펴고 11-3시까지 앞으로 던지듯이 내미는 페달링은 무엇인가요? (둔근과 대퇴직근만 사용)

Q. 860칼로리밖에 안태웠는데 왜때문에 필드라이딩에서 1200태운만큼 힘들죠?

Q. 두시간 지났는데도 심장이 쿵쾅대는데 저 죽는건 아니죠?

 

클릿 압수 (학원 둘째 날)

오늘도 종일 외전근 시팅 리듬만 찾으려다 아무것도 못했다. 이걸 못하면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없단다. 별 지랄을 다 했다. 당기는 근육의 관여를 줄여보자고 클릿도 압수당했다.

선생님을 퇴근시키고 혼자 돌리자니 오늘은 다른 회원이 없다.
나 하나 때문에 사장님이 퇴근 못하시는 것 같아 챙겨 나왔다.

나왔다.
나오니 나왔다.
필드에 나오니 리듬이 나왔다.

안장 코가 사타구니를 치고 사타구니는 다시 안장을 튕겨내는 이 리듬.

이 리듬. 나 안다. 아는 수준도 아니고 잘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주 우수한 동작으로 우아하게 리듬에 변주까지 먹일 수 있다.

나 평생 이 리듬으로 타왔다. 세발자전거도 이렇게 탔던 것처럼 페달에 발만 올려도 이 리듬은 나온다.

평로라에서만 안 나온다.

 

당겨 올리는 페달링 연습 (학원 셋째 날)

■ 선생님 말씀

오늘은 당겨 올리는 것만 연습할 거에요. 직근이에요. 대퇴직근. 장요근과 대퇴직근으로 끄집어 올리세요.
프로 중에서도 직근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기량이 크게 차이납니다. 이게 필살기에요.
끝까지 끌어올려서 앞으로 밀어내는 것까지 얘 역할이에요. 뒤에서 앞으로 끌어 당기듯이 무릎으로 니킥 차듯이 당겨 올리세요.

■ 훈련 후 소감

당기는 근육 아예 쓰지 말란 사람도 있고 조금씩만 쓰란 사람도 있었는데 아니네? 오늘 두시간 동안 당기기만 했다.
고관절 주변 근육을 위주로 쓰니 무릎 주변 근육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무릎에 대미지도 없다.
선생님은 장요근과 복근이 당기면서 온몸이 웅크려지듯이 힘들거라 했는데 작년에 뺑뺑이 돌리면서 이 근육 자주 썻는지 몸에 전혀 무리 없고 너무 상쾌하다.
당기는 근육만으로는 평로라 시속 80 넘기기 힘들다. 케이던스도 높이기 어렵다. 그리고 다른 페달링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얘는 얘만의 타이밍이 따로 있는 것 같다.

■ 짬내서 던진 막간 질문에 대한 답변

장요근은 자주 쓰면 안 되는 줄 알고 가끔씩만 20번 스트로크 치고 말았다고 했더니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계속 쓰라 하셨다.
모든 근육은 수축하면서 힘을 낸다. 그래서 관절을 뻗는 것보다 관절을 굽히는 힘이 더 세다. 온 몸을 굽히면서 니킥으로 당기는 페달링은 가장 큰 파워를 단기간에 뽑아낼 수 있다.
최대심박측정방식은 계단을 뛰어오르는 때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니킥 댄싱으로 심박을 240까지 올렸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만큼 온 몸의 에너지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신호다.
3분 정도의 업힐 코스를 공략할 땐 밟는 페달링에서 당기는 페달링으로 점점 바꿔나가는 게 좋다. 큰 근육을 나중에 써서 마지막에 쥐어 짜는 것이 에너지를 모두 쏟아낼 수 있어 효율적이다.
평소에 훈련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당기는 페달링을 먼저 써서 밟는 페달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당기는 근육으로 젖산역치에 빠르게 다다른 후에 밟는 근육으로 지속지극을 주는 방식이다. 그렇다. 젖산역치 훈련이다.

■ 나의 상태 진단

당기는 페달링에선 파워밸런스 60:40 까지 커졌다. 오른다리에 비해 왼다리엔 자극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에 자주 사용한 것이다. 오른다리는 왼다리가 굴리는 페달링에 얹혀가듯 살아온지라 상사점에서 좌우로 흔들렸다.
왼쪽은 수직 직선운동이 이뤄지지만 오른다리는 11자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허벅지가 근육량이 적어 얇은데도 싯포스트에는 더 가깝게 붙어 있었다. 선생님은 골반이 열리지 않은 것이라 말했다. 오른 골반만 열어야 했으나 그것은 무릎의 위치만 바꾼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 처방

선생님도 이정도의 언밸런스는 본 적이 없다며 비장한 표정으로 이걸 고치는 게 가장 시급한 숙제라고 말씀해주셨다.
정 안 된다면 오른발에 스페이서를 넣자고 하셨다. 그럼 힘점을 더 이르게 줄 수 있어 근육의 개입을 조금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그 방법은 최후의 처방인데다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선택지라며 머리를 쥐어 뜯으셨다. (아… 선생님… 모발을 소중히…) 선생님의 모발건강을 위해 나는 이 숙제를 기필코 풀어야 한다.
외발페달링 훈련에 대해선 좋은 생각이 아니라 하셨다. 자세한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자전거는 몸이 대칭된 상태로 좌우가 번갈아가며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항상 말해왔던 사람이다.
우선의 처방으로 오른 골반만 살짝 뒤로 빼라고 했다. 골반을 뒤로 뺄수록 큰 근육을 사용하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골반을 살짝만 뒤튼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익숙한 자세를 지우는 의식을 지속하기도 어려웠다.
이윽고 골반을 틀어내는 요령을 찾았다. 왼손은 후드, 오른손은 바엔드를 잡았더니 어깨와 골반이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확실히 오른다리가 페달링에 개입을 많이 한다. 밸런스 수치도 53:47 까지 줄어든다. 당분간은 일반 주행 자세에서도 이렇게 뒤틀어 잡아 교정해볼 계획이다.

■ 선생님의 화법에 대해

선생님의 수업을 세 번 들어보니 참 완곡한 표현이 잦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저는 그렇게 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어요”는 경상도 선생님의 “시킨거나 똑바로 해라임마”에 맞먹는 피드백이다. “그래도 엄청 잘하고 있으신거에요.”는 경상도 말로 “이정도는 할 줄 알았다. 등신새끼야” 정도에 맞먹는 피드백이다. 서울살이 어언 10년. 나도 스윗한 서울남자의 표현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이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10점만점에 3점쯤 되는 것 같다. 박수를 열번 연속 치는 것은 5점 쯤 된다. 나는 평생 누가 나에게 박수를 열번 연속 쳐준 적이 거의 없다. 이 선생님이 나에게 쳐준 박수, 그 빠르고 경쾌한 박수소리를 들었을 땐 내가 자전거 천재인줄로 착각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이은호를 자전거학원에 수강하게 만든다.
박수는 생각보다 자주 터져나왔다.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50대 아저씨가 한 손을 놓아 물통을 꺼내 마시고 다시 꽂아넣는 것을 성공했을 때에도 박수를 열번 쳐주셨다. 같이온 다른 아저씨가 양손을 놓고 셀카를 찍었을 땐 스무번 쳐주셨다.
아… 이분은 서비스 마인드가 아주 훌륭하신 분이구나… 이분 자전거 안타고 장사 하셨으면 뭘 팔아도 꽤 많이 파셨을 것 같다.

 

 

채우려면 비우라 (학원 넷째 날)

난 몸이 나빠서 머리가 고생하는 타입. 그런데 머리가 좋지도 않음. 혼자 주법연구하고 유튜브보면서 배운 게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음. 소프트웨어가 엉망진창인 상태. 명령어들이 충돌을 일으키고 새로운 명령어는 실행되지도 않음.

나는 제대로 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 찍어보면 전혀 다르게 타고 있음. 성립하지 않는 주법도 많고 비효율적인 주법을 몸에 익혀버린 탓에 결론적 연비가 나빠졌음.

다 버려야 함. 주법 많은 거 다 필요없음. 이소룡은 만가지 발차기를 연습한 놈은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했음. 그런데 한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무섭다고 했음.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 함. 주법을 다양하게 구사할수록 조빱이란 게 쉽게 들통날 뿐. 다 버려도 됨. 만가지 주법 다 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음.

망치를 들어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야 함. 고통과 위험을 스스로 받아들여 극복하는 자-초인-이 되기 위해.

——— 기타학원에서(어렸을 때 호호깔깔 유모어집에서 읽은 구절) ———
기타 강습료가 얼마인가요?
> 십만원입니다.
저… 다른 곳에서 배운 적이 있는데 강습료를 절반으로 깍아주실 수 있나요?
> 그렇다면 이십만원입니다.
깍아주진 못할 망정 왜 두배가 돼요?
> 다른 곳에서 배우셨다면 잘못된 습관이 들어있을거에요. 잘못된 습관을 지우는 건 백지 상태인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두배로 어렵습니다. 그러니 두배로 내셔야지요.
————————————————————————————————

스스로 백지의 상태가 되지 않으면 선생님은 올바른 가르침을 입력할 수 없음. 백지가 되지 않으면 수강료를 두배로 청구받게 될지도 모름. 이를 악물고 지워내야 함.

차사장님의 가르침, 친구의 훈수, 나름대로의 연구, 자덕유튜버의 자기주장, 다른 프로 선수의 설명, GCN콘텐츠, 이 모든 것을 버린다. 옳은거 틀린거 가리지 않고 모두 통째로 내다 버린다.

1. 모두 지운다.
2. 선생님이 “바로 그거에요” 라고 한 것만 남긴다.
3. 반복한다. 몸에 새긴다. 머리말고 몸에 새긴다. 머리로 이해하고 싶어지면 당장 생각을 멈춘다. 동작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잘못된 습관을 덮어버릴 정도로 반복한다. 백지의 상태에서 학습하는 것보다 최소 다섯 배는 많이 반복해야 할 것.

…. 라는 각오로 학원에 갔는데
더이상 가르칠 게 없다며
평로라 거꾸로 타보라고 시키심
거꾸로 타지니까
댄싱까지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댄싱을 또 시키심
댄싱이 되니까
제일 가벼운 기어로 케이던스 50놓고 손놓고 타보라는
말도 안되는 서커스를 숙제로 내주심 ㅡㅡ;;;

종일 서커스 연습을 하다가 어느덧 열시가 되었고
여느날처럼 가파른 지하주차장 언덕을 오르는데
아니 이거 뭐야
왜 자전거가 저절로 올라가지
이상하다 싶어서 또 평지를 달리는데
어라 이상하다
자전거가 가만히 서있네
어허 거참 이상하다
자전거가 저절로 서서 가네
난 얹혀만 있고 얘가 자율주행을 하네
밸런스 미쳐따리 오져따리

자전거 SNS에 라이딩 로그를 남기곤 하는데 보는 사람 몇 없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싸낸다.
지금까지 써오던 글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글을 써 본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마음에 드는 대목들이 있어서 블로그에 복사기록한다.

 

라이더 정보 : https://www.strava.com/athletes/30110228


상암뱅뱅 * 10

지도를 보고 뱅뱅을 찾았다. 뱅뱅은 무정차구간이다. 뱅뱅을 찾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한바퀴를 크게 그릴 수 있는 곳을 우선 찾는다. 우측통행을 하는 도로에서 좌회전은 신호를 받아야 하지만 우회전은 신호와 상관없이 언제든 가능하다. 경로상에 삼거리나 횡단보도가 있어도 무정차에 방해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지나가거나 속도를 늦춰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사거리가 있다면 정차해야 하기 때문에 뱅뱅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무정차뺑빼이 구간은 총 열아홉 개로 다음과 같다. 성산, 상암, 상암롯데, 하노이*, 망월, 대덕, 향동, 정발산, 호수공원청평지, 경복, 백범, 효창, 운양, 용산, 고양종운, 광명스피돔*, 아라*, 올공, 공항로* (*표시는 이미 알려진 곳들)

새로 찾은 뱅뱅 중 하나를 조질 작정이었다. 노면이 마른 아침에 나가려 했으나 새벽에 잠이 안오는 것이었다. 새벽에 나가면 차량이 없어서 뱅뱅을 만끽하기엔 더할나위없이 좋다. 세바퀴만 돌리려고 나갔다가 열바퀴를 돌리고 말았다.

워밍업없이 무리했더니 근육이 다 찢어진 것 같다. 적당한 자극은 근육의 성장을 견인하지만, 과도한 자극은 근육의 파열을 야기한다. 사흘 정도는 걷지도 못할 것 같다.

20년 8월 16일

 

대덕뱅뱅 * 5 + 2

안녕~ 친구들!
아무도 안가본 뱅뱅을 찾아서 소개하는 RBTC(Robin’s Bangbang Training Club) 로빈 아저씨야~
오늘 소개할 코스는 대덕뱅뱅이야.

대덕뱅뱅은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대덕동에 걸쳐서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아파트단지도로를 타기 위해서 만들어진 코스야. 아파트단지는 22년 11월에 완공된다고 하니 내후년 가을까지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코스라고 봐.

다만 공사중이다보니 오가는 대형 트럭이나 공사차량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 언제 어떤 공사 때문에 뱅뱅을 돌리지 못하게 될지 사전에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은 감안해야해.

이런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코스를 추천하는 이유는 완전한 무정차 코스이기 때문이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지점이 딱 두 곳 밖에 없고 이마저도 코너링을 과격하게 하면 브레이크 밟지 않고 통과할 수 있어. 평속에 환장하는 친구들이라면 정말 혹할만한 부분 아니겠어?

코스의 시작과 끝은 4시야. 5시부터 8시까지 약 1.9km의 구간이 공사중인 아파트단지의 주요 통행로이자 대덕뱅뱅의 메인 스프린트구간이야.

9시와 1시에는 20m짜리 깔딱고개가 있는데 탄력받아서 단숨에 넘어가버려야 해. 탄력을 잃고 평속 25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딱 기운이 빠져버리니까 기왕이면 평지에서 힘을 아끼더라도 고개를 넘는데 사력을 다하길 추천해. 그래야 뭔가 코스를 돌린다는 느낌이 들거야.

어이어이, 뱅뱅코스에 웬 20m짜리 언덕이 두개나 있냐며 불평할 평속충 친구들, 실망하진 마라구. 이 언덕을 넘어도 평속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 말이야. 내리막에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40Km까지 속도가 오르는 완만한 경사가 펼쳐지기 때문에 오르막에서 감속한만큼 그대로 보상받을 수 있거든.

한바퀴 돌리면 5.7km에 약 11분 정도 소요되니까 한시간동안 5바퀴를 무정차로 돌린다는 목표를 세우면 같은 코스를 돌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한계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거야.

저녁 8시까지는 퇴근차량과 현장철수차량이 꽤 있었는데 9시가 지나면서 이동량이 현저히 줄었다는 점 참고하길 바라.

그리고 메인 스프린트 구간을 제외하곤 시골길 중에서도 상태가 꽤 안 좋은 편이니 홀, 자갈, 흙더미, 공사잔해는 조심해야 해.

9시 방향에 미친 흑구 한마리가 갑자기 뛰쳐나와 추격전을 펼칠 수도 있으니 물리지 않게 조심하라구.

아저씨는 대덕뱅뱅에 별 네개반 줄 수 있어.

카본 하이림이 수명을 다해서 뱅뱅에 맛들이자마자 싸구려 알루휠로 타야하지만, 대신 변명거리가 하나 생겼으니 다운그레이드라고 무조건 나쁜점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 뭐. 하하.

다음에 또 보자구.
요호호~

20년 9월 1일

 

개화뱅뱅 * 10

난 뱅소남! 뱅뱅을 소개하는 남자!
오늘 소개할 코스는~
바로바로바로~
개화뱅뱅!

지도에서 중식도 모양 찾아봐. 거기가 거기야. 개화뱅뱅. 제일 서쪽에 있어.

여기 도착하면 기억할 거 단 하나. 철조망을 오른쪽에 둔다. 그것 말곤 없어. 그러고 계속 돌아. 한바퀴 3.65km 평속 32로 달리면 7분쯤 나오니까 페이스 조절에 참고하시고.

그나저나 코스가 왜 저렇게 생겼냐. 저 꼬부라진 손잡이 모양. 지상철이 지하철이 되는 지점이야. 개화역은 9호선의 시작역이야. 개화역 빼곤 다 지하에 있지. 지하철과 경주하는 무한도전 같은 건 하지 말고. 걘 곧바로 땅굴로 사라질 거거든.

원래는 다른 뱅뱅을 가려했는데 오늘 하늘이 미쳤지 뭐야. 안되겠다. 하늘 많이 보이는 데서 돌려야겠다. 그래가지고 일이고 뭐고 내팽겨치고 여기 오게 된거야. 그래 맞아. 뱅소남은 하늘 보는 거 좋아해. 무일푼으로 스무일곱에 서울에 올라와서 지하방에 살….

됐고. 오늘은 조망권에 대한 얘기를 하러 온게 아니라서 말이야. 오늘은 말이야. 10바퀴를 돌리기로 작정해서 말이야. 나름대로의 전략을 짰단 말이야. 그 전략이 뭐냐면 말이야.

강약중중약 중약중중중

아~ 아주 도움되었어. That helped alot. 뱅소남이 자전거를 16년을 탔어도 한시간 넘게 무정차로 꾸준히 밟아본 적이 많이 없단 말이지. 그런데 해냈단 말이지. 그것도 아주 거뜬히.

회복과 전념의 계획이 구분되어 있는 상태로의 라이딩은 뭐랄까, 아주 안정적이야. 페이스오버라거나 중도포기라거나 잠시라도 멘탈이 흔들려서 타기 싫어져버리는 그런 나태의 마음이 조금도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굳건해진 느낌이랄까. 처음 돌아보는 코스인데도 두려움이나 의심은 전혀 없이 오로지 질주와 완주를 향해서만 온 정신과 체력이 일치합동협력한 상태. 솔직히 10분짜리 업힐을 타도 중간에 아 시바 때려칠까 생각이 다섯번 드는데 오늘은 한번도 그런 마음이 안들었단 말이지. 그래서 더욱 뿌듯하단 말이지.

아, 쫌 아쉬운것도 있다! 시멘트 길이야. 약 65프로가 시멘트 길이야. 아스팔트도 있는데 거긴 또 과속방지턱이 6개 있네. 중간에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홀 3개 있다. 오늘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물도 다섯 곳 있더라. 피치못할 감속구간은 두 곳 이다.

그래서~
뱅소남은~
개화뱅뱅에~
별점~
두구두구두구~~~
3.5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뱅소남은 고기 먹으러 갈게!
모두 즐뱅!

20년 9월 3일

 

국회뱅뱅 * 11

뱅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도 새로운 뱅뱅을 찾아 수도권 방방곡곡 헤집고 다닌 저는 뱅뱅매니아, 뱅마닙니다.

오늘 방역당국은 코로나 재확산을 억제하고자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일주일간 연장하기로 발표했죠. 이런 시기엔 떼라이딩보단 한적한 곳에서 솔뱅을 돌리는 것이, 나라의 방침에 협조하는 일이고 곧 애국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다녀온 곳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바퀴에요. 줄여서 국회뱅뱅이라 부를게요. 국회뱅뱅은 국회의사당 정문에서부터 출발해요.

국회뱅뱅은 이제껏 소개한 뱅뱅 중에서 가장 길이가 짧아요. 2.46km밖에 안돼요. 37km/h로 달리면 한바퀴 4분컷. 얼마나 짧은지 열바퀴 돌리려다 실수로 한바퀴를 더 돌려버렸어요.

과속방지턱이 대여섯개 있었던 것 같고, 두 개의 코너가 있는데 브레이크를 잡지 않아도 약간의 감속만으로 진입할 수 있어요.

오늘은 별점부터 줄까요?
빠밤-
5.0 드리겠습니다!

국회뱅뱅은 여의도 가장 서쪽 도로인 여의서로를 달리는 게 메인인 코스인데요, 여기 줄지어 있는 나무들은 벚꽃이에요. 여의서로라고 검색하면 벚꽃 핀 풍경만 나올거에요. 벚꽃축제 기간엔 차량을 통제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4월에만 사람들이 몰리고 그 외의 기간엔 아무도 찾지 않죠.

이렇게 좋은 코스를 8명 밖에 타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길 예쁘죠. 완전 무정차죠. 도심지에 있죠. 차없죠. 사람없죠. 자전거도 없어요. 있는 건 나무랑 의경이에요. 둘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서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국회의사당 주변에 의경아저씨가 많다고 겁낼 필요가 없어요. 군인들은 하달받은 명령대로만 움직이거든요. “난봉꾼이 나타나면 잡아와”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저를 제재했겠지만 그들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어요. 추측컨대 “가만히 서있어”라는 지시를 받은 것 같아요. 자유를 만끽하는 민간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부러움이란 감정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그들이 저를 의식하는만큼 저는 더 열심히 달렸어요.

아직 뱅뱅을 돌려보지 않은 뱅린이가 있다면 뱅뱅은 체력으로 타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멘탈로 타는 거에요. 특히 솔뱅은 더욱 그래요. 솔뱅의 목표는 내가 정하고 내가 달성해요. 지금 당장 마주할 한시간 동안 “나는 쉬지않고 몇 W를 유지할 수 있는가.” 또는 “평속을 몇 km/h이하로 안 떨어뜨릴 수 있는가.” 이런 간단하고 단순한 목표를 세우는 거에요.

중요한 점은 충분히 달성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거에요. 쉬운 목표부터 시작해 차츰차츰 점진적으로 높여야 해요. Winning Habit을 위해서에요. 승리의 습관. 너무 쉬운 목표를 세우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목표를 너무 쉽게 달성했다면 남은 구간의 페이스를 올리거나 바퀴수를 추가하면 그만이거든요. 내가 세운 목표를 초과달성함으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표현도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이 악물고 근성으로 이겨내는 혹독한 느낌이 아니거든요. 경쟁이라는 프레임에서 완전 벗어나야해요. 솔뱅은 그 무엇과도 경쟁하지 않아요.

저는 알아요. 일년에 만키로를 탄 사람을 이길 수 없단 걸.
저는 알아요. 타고난 사람은 따로 있단 걸.
저는 알아요. 제 자전거 구린거.
저는 알아요. 초기화돼서 세달 전보다 훨씬 못타는거.
저도 알고 모두가 아는 현실을 외면한 채로 이상을 추구하진 말아요.
나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 외부의 기준에 따라 목표를 세우진 말아요.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서 실패한 경험이 쌓이면 Losing Habit이 생기거든요. 이내 포기를 쉽게 생각하게 될거에요. 어느 순간 시도도 하지 않고 “난 안될거야” 생각하게 될거에요. 생각이 습관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아요.

솔뱅을 돌리다보면 이런 생각이 순서대로 들거에요.

아직 1/5밖에 못 돌았네
아직 1/3밖에 못 돌았네
아니벌써 1/2이나 돌았네
이거웬걸 1/3만 더 돌면 되네
아아십네 1/5밖에 안남았네
와따야마 벌써 다 탔네?

솔뱅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를 도는 게 무의미하다 생각할지 몰라도, 돌려본 사람은 다 알아요.

그 모든 바퀴가 다 다르다는 걸.

무정차로 꾸준히 뱅뱅을 돌릴 동기는 꾸준한 진척을 지켜보는 데서 와요. 하지만 길이가 너무 긴 코스는 진척이 너무 더뎌서 잡생각이 날 수 있어요.

국회뱅뱅은 한바퀴의 길이가 짧은 만큼 멘탈 변화의 단계가 빨리 찾아와요. 멘탈이 흔들릴 여지조차 주지 않고 어느새 성공은 코앞에 다가와있죠. 별점 만점을 주면서까지 뱅린이에게 추천하는 이유에요.

20년 9월 4일

 

망원트랙 * 100

안녕하세요, 뱅뱅에 미친남자 미치뱅입니다.
여러분 BBTC라는 클럽을 들어보셨나요? 수도권에서 돌릴 수 있는 뱅뱅코스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훈련하는 클럽입니다. BangBang Training Club. 어제 만들어진 클럽이라 다들 처음들어보셨을 겁니다.

제가 뱅뱅을 탐사하고 있지만 제 라이딩 기록은 live feed에서 한 번 보여진 뒤 휘발됩니다. 정보를 기록하고 조회하기 편하도록 분류하는 archiving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 클럽에 제가 찾은 뱅뱅 코스정보를 정리해둘 계획입니다. 올 가을까지 약 20여개의 수도권 뱅뱅을 탐사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저 미치뱅, 지금은 뱅뱅만 돌리지만 두어달 가지 않아 흥미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단기과몰입형인 저, 제가 잘 압니다. 하지만 제게 뱅뱅현타 찾아오더라도 뱅뱅 탐사 프로젝트의 성과는 길이길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잘 정리된 코스 정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호인 뿐만 아니라 후대의 자덕들에게도 라이딩의 새로운 면면을 찾을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제 뱅뱅탐사의 가장 큰 동기이며 그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입니다.

아무쪼록 오늘은 망원트랙에 다녀왔습니다. 일년 전부터 벨로드럼을 타보고 싶었으나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트랙이 떡하니 있었습니다. 비록 경사가 없는 평지 트랙이었지만 제가 원하던 무정차 뺑뺑이를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망원유수지체육시설 또는 망원유수지공원으로 불립니다. 유수지라함은 홍수가 발생했을 때 하천 수위를 일시적으로 낮추기 위해 빗물을 옮겨담아두는 인공 저수지를 말합니다. 유수지시설은 평소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기에 이렇게 근린체육시설로 활용하거나 주차장으로 씁니다. 다만 5~10월에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비 때문에 주차장은 폐쇄됩니다.

망원동은 본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굽이쳐 흐르던 한강을 직선화하기 위해 높은 제방을 쌓고 복개하여 만들어낸 땅입니다. 고도가 낮다보니 비가 올 때마다 물난리가 났고 73년에 유수지가 만들어진 후에야 사람들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합니다. 그 전에는 둑방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니 난지 쓰레기섬과 함께 서울 최대의 슬럼가였던 곳입니다.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기도 하고 조금 찝찝하단 생각이 들어서 제가 좀 딴데로 샜습니다. 죄송합니다. 코스 소개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 코스의 이름은 뱅뱅이 아닌 트랙입니다. 뱅뱅은 연구하고 탐사해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 트랙은 애초에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길입니다. 뱅뱅과 트랙은 회전방향도 다릅니다. 뱅뱅은 신호정차를 피하기 위해 시계방향으로 돌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트랙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돕니다. 제가 탐사할 20개의 코스 중 유일하게 CCW(Counter Clock Wise)로 돌릴 수 있는 곳입니다.

달리기를 CW로 돌릴 때와 CCW로 돌릴 때를 비교했더니 CCW방향이 200미터 기준으로 1초 가량 더 빨랐다는 실험결과를 어릴 적 호기심천국에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오른팔을 크게 흔들 수 있는 왼쪽 커브가 오른손잡이에게 편하다거나, 심장이 왼쪽에 있어서라거나, 여러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어떤 것도 확실하게 증명되진 못했습니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많은 선수들이 왼쪽으로 도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국제육상연맹은 1913년부터 뺑뺑이는 왼쪽으로 돌아라고 명문화했습니다.

사족동물이나 자전거도 왼쪽으로 돌려야 성적이 잘 나오는지까진 모르겠으나 관객이 있을 경우 골인지점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경마장이나 경륜장이나 다른 각종 대회장도 자연스럽게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좀 TMI네요. 코스 소개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망원트랙은 세 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가장 가운데는 달리기용, 중간은 인라인스케이트용, 가장 바깥은 자전거용입니다. 꽤 넓습니다. 달리기 트랙을 돌면 한 바퀴 400미터입니다. 바깥쪽 자전거 트랙으로 돌리면 460미터입니다. 오늘은 무정차 100바퀴를 돌려 46키로를 탔습니다. 비오는 날 커브에 접어들 때 슬립나지 않을지 걱정했으나 바닥의 접지력은 좋았습니다.

비오는 날이었음에도 트랙엔 6명 정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맑은 날 저녁에 평속 30이상으로 달리면 보행자 분들과 위험한 상황이 수차례 발생할 것 같습니다. 나 운동 좀 하자고 시민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 일부러 비오는 날 탔습니다. 비오는 날 타기엔 더없이 좋은 코스인 것 같습니다. 마침 자전거에 진흙도 많이 묻어있던 터라 일거양득으로 세차도 할 수 있었습니다. 트랙에 고인 물은 맑디 맑은 빗물이었습니다. 80바퀴쯤 돌리니 물통에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입을 좀 열고 탔더니 앞바퀴가 뿌려 올리는 물방울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90바퀴째부턴 쿨다운하려고 페이스를 늦췄는데 어두운 수풀 속에서 원숭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상하다, 이런 곳에 짐승이 있을 리가 없는데… 생각하며 91바퀴째 같은 지점을 지났습니다. “우.. 우욱!! 우꺅!!!!!” 이번엔 분명히 들렸습니다. 뭐지? 92바퀴째 그 소리는 더욱 크고 선명해졌고 개체수는 추정컨대 3마리 쯤으로 늘어났습니다. 94바퀴째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응원해주는 여성분들이었습니다. 오밤중 불꺼진 유수지 공원에서 빗속을 가르는 라이더의 수중투혼은 흔히 볼 수 없는 구경거리였나봅니다. 그들의 나이대를 짐작해보았습니다.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저는 여고생 여대생 아줌마를 불문하고 원숭이 소리를 내는 여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짐승이 아닐거란 생각에 일단 안심한 저는 어두운 수풀 지점을 지날 때마다 스프린트 댄싱을 쳐서 더욱 큰 환호를 유도했습니다. 응원해주는 고릴라 무리가 있었던 덕에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무정차 100바퀴를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말이 유난히 많은 것 같습니다.
빨리 별점 매기고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4.5입니다.
모두 즐뱅하세요.

그리고 혹시 망원트랙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셨다면
방문객이 적은 시간대에 찾아가시길 추천드리며
고릴라를 조심하세요.

20년 9월 7일

 

목운트랙 * 32

“좋은 뱅뱅있으면 소개시켜줘” 좋뱅소TV의 조퐝메이입니다.

오늘 다녀온 곳은 목동 종합운동장 트랙입니다. 별점 4.5입니다.

체크포인트는 북문에서 시작합니다. 야구장과 주경기장 두 개를 묶어서 바깥으로 돌립니다. 자전거 타라고 만들어놓은 길은 아닙니다. 코로나 때문이겠지만 차량이 없어서 지금 가면 달리기 딱 좋습니다. 완전 무정차코스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코너링이 익숙해지면 감속하지 않으면서 페달을 종일 굴릴 수 있습니다.

한 바퀴가 1.09Km입니다. 33km/h 놓고 타면 한바퀴에 딱 2분 걸립니다. 2분으로 30바퀴 돌리면 1시간 무정차 훈련이 가능해집니다. 이 계산을 기준으로 32바퀴 돌려 1시간을 채웠습니다.

과속방지턱이 9개쯤 됩니다. 가쪽으로 붙어서 가면 충격을 덜 받을 수 있습니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 위에서 과감한 코너링을 할 때 바닥에 달라붙는 맛이 좋은 코스입니다. 길 옆에는 평지와 높이가 같은 대리석 연석이 있는데 코너링을 한 뒤 연석을 살짝 밟고 다시 도로로 들어오면 마치 F1레이싱카의 코너링을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멋짐이 막 넘쳐 흐르기 때문에 또 힘을 내서 돌릴 수 있게 됩니다. 한 바퀴의 3/4지점에 5미터 정도의 완만한 언덕이 있습니다.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탄력으로 넘겨버리는 것이 페이스 유지에 도움되므로 댄싱을 치거나 외전근 밀어내기로 꾹꾹 밟아 올라가면 좋습니다. 이 오르막이 있기에 오히려 지루함이 줄어들고 몸이 코스에 따라 리듬감있게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실감이 안나는 분들을 위해, 한 바퀴를 돌릴 때 페달을 열심히 굴리는 것 외에 해야 하는 것들을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코너에서 아웃인으로 과감하게 눕히기
코너에서 파워높여 튕겨나오듯 인아웃하기
맨홀피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아웃인을 대비해 가쪽으로 연석밟고 달리기
아웃인아웃 코너안쪽 과감하게 찍기
코너에서 잃은 속도 다시 올리기
물마시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댄싱으로 업힐 공략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S커브 감속없이 아웃인인아웃으로 빠져나오기
연석에 살짝 올라탔다가 도로로 복귀하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내리막길 에어로 모드로 바람 가르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연석 살짝 올라타기
과속방지턱 살살 피해넘기
골인지점까지 라스트 스프린트

2분이 채 안되는 시간에 위 내러티브가 쉴새없이 채워집니다. 이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고 타면 그냥 지겨운 뺑뺑이입니다.

하지만 F1카레이서가 모든 코너링에 최선을 다하듯 온 신경을 곤두세워 최적의 경로로 지나가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면 더욱 재밌게 탈 수 있고 과속방지턱도 더이상 장애물이 아닌 공략대상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20년 9월 8일

 

경복뱅뱅 * 10

뱅뱅오타쿠 오타뱅의 “오늘도 탄다 뱅뱅!”
오늘 다녀온 코스는 경복궁 열바퀴입니다.

지금까지 총 10개의 뱅뱅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로써 뱅뱅탐사 시즌1이 종료되었습니다. 시즌2는 할지말지, 한다면 언제할지, 기약 없습니다. 10뱅의 요약은 <아래>에 붙여 정리합니다.

가는 길에 홍제동을 지나다 가파른 언덕을 만났습니다. 근래에 평지만 뺑뺑 돌다가 만난 언덕, 얼마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댄싱을 조졌는데 와 이게 바로 자전거의 맛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즌1 종료를 단호하게 결심했습니다.

줄창 뱅뱅만 타니까 솔직히 이제 뱅뱅 재밌는 줄 모르겠습니다. 콘셉도 다 떨어지고 남아있는 아이디어도 억지노잼입니다. 콘셉만 잘 정해지면 글이 술술 나오는데 콘셉이 어설프니까 글도 잘 안나옵니다. 오타뱅은 뭐고 오타쿠는 또 뭡니까. 개연성도 없고 파생되는 것도 없고 언어유희도 아니고 해석할 것도 없고 반전도 없고 그냥 마 억지콘셉인겁니다.

오타뱅 아니고 안타뱅입니다. “안탈란다 뱅뱅따위” 돈나오는 일도 아닌데 저도 마 대충 아무말이나 지껄이고 빨리 누워 잘랍니다. 여러분도 이런 뻘글은 그만 읽으시고 우리집 고양이 사진이나 감상하시고 생업으로 돌아가 현실세계에 집중하십시오. 스트라바는 인생의 낭비입니다.

경복궁에 도착했을 때 저에겐 두 가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 시즌1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자. 둘, 컨디션도 안 좋은데 어차피 시즌 끝난 마당에 대충 타다 집에 가자. 두번째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레임덕이 온 거지요.

한시간 무정차를 채우려면 15바퀴를 돌려야 하는데 10바퀴만 돌리고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혼자 피자를 한판 다 처먹지만 않았어도 더 열심히 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좀 더 열심히 탔다면 뱃속에 있던 피자가 다 튀어나왔을 것 같습니다.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개방된 것은 2017년도 부터입니다. 50년만의 개방이라 합니다. 그 전엔 일과시간에만 통행할 수 있었답니다. 개방되었어도 경비원 많습니다. 총들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전거로 뺑뺑이 돌지마라고는 안 합니다.

완전 무정차구간이고 전구간 자전거도로가 있습니다. 평점 4.0드립니다.

6시부터 시작입니다. 11시까지 약오르막이고 12시까지 급격한 언덕이 있습니다. 1시부터 다운힐이 시작되어 50키로까지 올라갑니다. 탄력을 유지해 40키로를 유지하다 체크포인트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급격한 오르막에서 탄력을 유지해 30키로로 넘길지, 전체적인 페이스를 고르게 분배해 25키로로 넘을지에 따라 경복뱅뱅을 돌리는 리듬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다운힐에서 페이스를 늦춰 주행한다면 효율적인 주행에는 도움될겁니다. 하지만 다운힐에서 얻은 속도를 에어로 자세로 바람을 가르며 45키로를 유지하며 최대한 버텨보는 것도 꽤 재밌습니다.

< 아 래 >
아라뱅뱅 4.46km 8:16 32.4km/h 224W 1.5
용산뱅뱅 6.51km 11:42 33.4km/h 215W 2.5
상암뱅뱅 5.22km 8:22 37.5km/h 256W 3.5
서식뱅뱅 3.12km 5:17 35.4km/h 220W 3.5
대덕뱅뱅 5.72km 10:35 32.5km/h 225W 4.5

개화뱅뱅 3.65km 6:21 34.6km/h 273W 3.5
국회뱅뱅 2.46km 3:59 37.1km/h 272W 5.0
망원트랙 0.46km 0:45 37.1km/h 280W 4.5
목운트랙 1.09km 1:45 37.5km/h 287W 4.5
경복뱅뱅 2.61km 4:15 36.9km/h 249W 4.0

20년 9월 10일

 

사르트르는 인생이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고 말했다. 알베르 카뮈는 “자살을 할까, 커피를 마실까”라는 명언을 남겼다. 가장 일상적인 사건과 가장 낯선 사건을 선택지로 두니 실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지난 글 <라이딩 콘셉 결정 방법론>에서 방법론적 접근을 시도했다. 결론이 썩 만족스럽진 않다. 방법론은 언제나 그렇듯 한계가 있다. 구성원이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따르지 않는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방법론은 도움되기보단 탁상공론으로 남는다.

라이딩 코스를 짤 때, 그저 모두가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코스였다면 의사결정 방법론을 적용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또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수준의 케미가 있었다면 방법론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손해 혹은 불만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이익 혹은 만족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론을 꺼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안타까운 수준을 넘어 절망스럽고 비참하다. 올바르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정작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선택지로 향하는 집단적 오류도 흔히 발생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명제를 도덕시간에 배웠음에도 우리는 그 상태에 한발짝이라도 다가갈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방법론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집단적 협력을 통해 인류를 진보의 길로 이끌 유일한 희망이라 믿는다.

기업의 임원은 실무적 노동은 전혀 않고 종일 의사결정만 하는데 그 양이 80회에 달한다. 도구적, 기술적 방법이 없다면 처리할 수 없는 분량이다. 세계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자주 일어나는 언택트(un-tact)의 시대를 맞이했다. 대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훨씬 더 적은 정보만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잦아져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비용 손실은 커질 것이다. 직관, 촉, 케미에 의한 판단은 이미 비합리적인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활용되기 어려워진다. 앞으로 인류는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 뼈저리게 실감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단순히 라이딩 코스를 더 잘 결정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지구적인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물론 나의 본업과도 연관이 있다. 나로선 1타 3피다. 구조적인 선택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다가오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선진적인 자세, 생존과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슬기로운 자세다.

인류가 이제껏 제안한 의사결정방법론만 간단히 추려도 60개 이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먹물들이 써놓은 것들이라 실용적이지 않다. 분야가 상이해 적용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기존에 제시된 방법론도 검토는 하겠지만,  라이딩이라는 분야에 적합한 의사결정방법론을 내가 기필코 새로이 창안하겠다는 각오로 접근할 것이다. 철저하게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구조적인 관점을 고수할 것이다.

 

가위바위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줄곧 즐겨운 친숙한 의사결정 방법론이자 게임이다.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상호 격렬한 대립이나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가위바위보를 통해 결정하게 되면 긴장감도 즐기며 빠르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각자 한 가지씩의 선택지를 주장해야 하고, 자신의 선택지가 선택되길 강렬히 원해야 이 게임의 의미가 있다. 결정 방식은 거의 랜덤에 가까워 비이성적이다. 따라서 승자는 있으나 패자는 없는 경우,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자가 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주로 경품을 추천할 때나, 길거리에서 주운 만원을 누가 가질지를 결정할 때 적용되곤 한다.

동전 던지기 / 사다리타기

가위바위보와 다른 점은 참가자들이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외부의 무작위성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최종결과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순응하게 된다. 승리의 쾌감은 반감되지만, 패배의 충격도 완화시킬 수 있다.

다수결

민주사회에서 만장일치를 이뤄낼 수 없을 때 이용하는 대표적인 차선책이다. 다수의 횡포에 의한 패권주의가 형성되어 소수를 배척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특정 분야에선 다수의 비전문가들 오답을 선택하곤 하기에 이 의사결정 방법이 해당 사안에 적합한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일차원적으로 추구할 땐 좋은 선택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의 총합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고, 문제를 감안하고 갈 뿐이다.

리스트 제시 & 투표

선택지의 이름만 달랑 있고 디테일이 결여되어 있는 불완전 정보로는 올바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없다. 구성원 모두가 선택지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고 있다면 제목만 적힌 리스트로도 충분하겠지만, 추가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택지의 추가 정보를 어떤 형식으로 준비할 지에 따라 다음 4가지 방법론으로 분화된다.

요요 다 붙어라 **

집단의 규모가 너무 커서 부분 집단을 만들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의 맹점은 제안자가 수용적인 상황에 놓인다는 데서 발생한다. 일단 지원자가 모집되면 제안자는 지원자를 검토하거나 심사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지원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상황에 주로 적용되곤 한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제안을 할 때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명시해 공고를 배포하면 지원자를 박탈할 권한을 가질 수 있다.

피칭 & 투표

<요요 다 붙어라>와 개념이 같지만 제안자가 2명 이상일 때 선택 절차가 추가된 것이다. 선택 절차는 다수결의 원리에 따른다. 집단이 분리되어도 괜찮은 상황이라면 <요요 다 붙어라>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도 선택 절차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선택지로 추려야 한다는 상황이다. <요요 다 붙어라>는 제안자가 지원조건을 설정하는 권한을 가진 갑이었지만, <피칭 & 투표>에서는 반대로 구걸과 부탁을 해야 하는 을이 된다. 제안자는 자신의 선택지가 선택될 수 있도록 경쟁적인 홍보활동을 펼쳐야 하는 게 관전포인트 꿀잼 팝콘각이다.

장단점{Pros/Cons} 서술 > 순위 조정

<피칭 & 투표>의 절차에 주관을 빼고 객관성을 가미한다. 개인의 주관이 들어갔던 피칭은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나열하는 것으로 바뀌고, 구성원들의 주관적인 의사표현은 조직 관점에서 합리적인 우선순위 조정으로 바뀐다. 순위의 조정은 1군, 2군, 탈락 정도로 불명확하게 그룹핑한 뒤 1군의 선택지에 대해서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빠른 진행에 도움된다.

시나리오 서술 > 순위 조정 *

시나리오 기법은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상황과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예측해 서술하는 것이다. 장단점을 융통성없이 나열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끌리는 지를 가늠해보려면 생동감있는 정보가 이야기를 전달하듯이 시나리오로 작성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미래의 경험에 대해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냄으로 의사결정권들은 상황별 판단의 근거를 제공받을 수 있다.

후회 최소화 선택 방법론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 창업을 결심할 당시 사용한 방법론이다. 무탈하게 잘 다니고 있던 연봉 2억의 회사를 계속 다닐지, 리스크를 감안하고 모험을 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그는 고민했다. 확정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이익을 모두 포기할 리스크 앞에서 리스크만 따지면 1대 99의 차이다. 그는 리스크를 보지 않기로 했다. 선택을 포기했을 때 얼마나 큰 후회가 남을지를 따지기로 했다. 실리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마음이 동하는 곳으로 향했던 그는 20억의 자산을 포기한 대신 200조의 자산가가 될 수 있었다.

형이 짜르고 동생이 골라 **

케익을 먹을 때마다 싸우는 형제에게 내린 현명한 부모의 지혜를 빌린다. 코스를 제안하는 사람과 선택하는 사람을 분리한다. 코스를 제안하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만 제안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 내려지더라도 만족할 것이고, 선택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만족할 것이다.

모든 구성원의 강제 제안 > 탈락 > 선정 *

우리 회사에서 점심 식당 고를 때 쓰는 방법론이다. 각자 2개의 식당(또는 메뉴)을 제안한다. 제안 개수는 무조건 채워야 하기에 별다른 의견이 없는 날엔 김밥천국이나 3만원짜리 한정식 같은 얼척없는 제안으로 개수를 채우면 된다. 그렇게 6~8개의 선택지가 후보로 제시되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최악의 선택지를 제거한다. 누구부터 선택지를 제거할지, 1인당 몇 개를 제거할 지는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 최종 선택지가 2~3개로 좁혀질 때까지 계속 돌아가며 선택지를 탈락시킨다. 최종 선택지가 2~3개로 좁혀진다면 그 중 1개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체로 최종 단계에선 만장일치로 결정되기 때문에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식당에 향할 수 있어 밥맛도 좋게 느껴진다.

이 의사결정 방법론을 거치면 모든 구성원이 모든 절차에 같은 무게로 관여하게 되므로 입체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의견을 평면배치한다는 것도 좋은 점이지만, 아무런 의욕없이 집단생활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아싸도 참여할 수 밖에 없는 강제사회화 기능도 있다.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무례하다 여겨지는 문제, 내성적인 사람의 소극적인 태도 문제,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해서 자신의 의견을 숨기는 문제를 유쾌하게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매번 무난한 식당을 가게 된다. 탈락 과정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예측불허하고 기발한 선택지는 매번 탈락할 수 밖에 없어 평균 편향 현상이 발생한다.

다중 기준 의사 결정 (Multiple-criteria decision analysis)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여러 기준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경우 적합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입할 때라면 가격, 연비, 승차감, A/S편의성, 기업이미지와 같은 기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평가 기준들은 속성(Attribute) 혹은 목적(Objective)으로 나뉠 수 있다. 속성은 스펙을 따지는 것이고 목적은 해당 선택지를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를 따져보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여러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 MCDA를 사용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평가해도 좋다.

등간 척도와 비율 척도로 나타낼 수 있다면 수량화, 정량화 할 수 있다.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면 연산할 수 있다.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준마다 가중치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관적 판단의 영역, 정성적인 영역을 정량적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준이 많아지면 오히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MCDA + 표준편차 분석 + 끝장 토론

나는 운이 좋게도 어린 나이에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한 적이 있다. 스타트업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 대부분의 스타트업 평가 담당자들은 나름대로의 MCDA를 만들어 썼는데, 자신이 개발한 MCDA의 이유와 근거를 알진 못했다. 이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으나 아무도 해법을 제시하진 못했다.

심사위윈이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온 의견과 실제로 MCDA과정을 거친 평가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작성할 때가 문제인지, 취합하는 과정에서 문제인지를 찾아내야 했다. 우선 점수를 취합하기 전 심사위원들 간의 점수 격차를 눈여겨보았다. 극단적인 점수 차이를 보이는 스타트업을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으로 쉽게 계산해 추려낼 수 있었다. 사업에 대해 이해할 수 없기에 0점을 줬다는 심사위원의 점수는 평균점으로 제출하도록 조정했고, 프로그램과 별개로 이미 스타트업과 인연을 맺어오고 있어 평가에 중요한 정보를 공유한 심사위원 덕에 다른 심사위원의 최종 점수가 바뀌기도 했다. 이런 끝장토론을 한차례 거치고 나니 10팀 중 3팀의 운명이 바뀌었다.

정량의 기법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면서 정성적 논의를 중점적으로 전개시킨 훌륭한 사례랄까. 7년 전 고안한 절차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스럽다.

목표지향(Goal Oriented) & 제한조건(Don’t) 수렴 > 선택지 구성 **

이 방법론엔 모더레이터가 필요하다. 선택지를 제시하기에 앞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다. 구성원은 “이런 라이딩을 하고 싶어요”, “이런 라이딩은 싫어요”와 같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조건을 수렴한 뒤 선택지를 찾거나 생성하기 때문에 선택지 결정 과정은 생략, 축소될 수 있다.

제한 조건이 많아질수록 선택지가 줄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구체적인 제한 요건이 있어야 선택지가 명확하게 추출된다. “흰색 물체 10개를 말하시오”라고 물었을 때보다 “당신의 방 안에 있는 흰색 물체 10개를 말하시오”라고 물었을 때 더 많은 답을 할 수 있다.

Goal은 지향점이고 Don’t는 지양점이다. 추구하는 것과 피하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고려한다. 제한조건(Don’t)을 수렴한다면 구성원들의 불만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악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으로 향할 수 있다.

간혹 대립하는 목표들이 제시될 수 있다. [침질질 운동하고 싶어요]와 [샤방으로 타고 싶어요]는 대립한다. 조건의 대립이 있다면 합의점을 애써 도출하는 것보다 그룹을 쪼개는 판단이 나을 때도 있다.

실질적 문맹률이 높은 대한의 현대인들은 문장보다 키워드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자신이 원하는 라이딩의 해시태그로 표현하라고 하면 의견을 더 많이 수렴할 수 있다.

의견을 수렴할 때 의견의 무게를 구분하는 것이 좋다. [알러지가 있어서 꽃가루 날리는 곳은 불가능해요]는 필수 조건으로 접수해야 하지만 [차량통행이 적은 곳이면 좋겠어요]는 부수적인 조건으로 접수해야 한다. 필수조건과 욕심조건을 구분한다면 의견 수렴에 도움된다.

 

 

* 표기는 라이딩 코스 결정 방법론에 적합한 것

하노이, 그곳이 어딘지도 모른채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다 관두고 떠날 작정이었다. 그러니 하노이가 어떤 곳인지, 어디 붙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뜬지 20분만에 결제는 완료되었다. 출국일을 사흘 앞두고야 그곳이 베트남의 수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떠나본 해외 여행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만족스러운 여행의 조건으로 도시의 매력도 중요하겠지만 여행자의 마음상태는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내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던 지난 겨울은 참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잔인할 정도로 가학적인 사람이란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난 정체(停滯:발전없이 한자리에 머무는 상태)가 발견될 때마다 윽박지르고 채찍질하는 사람이었다. 이 방식은 좋은 방식이 아닐 뿐더러 좌절한 사람에겐 더욱이 부적절한 처방이다. 그걸 알면서도 난 습관을 고치지 않았다. 지난 겨울 난 정체했고 좌절에 빠졌다. 가학의 대상이 누군지 따지지않고 처방은 예외없이 이루어졌다. 이윽고 자기파괴가 시작되었다. 정체를 벗어나긴 더욱 어려워졌고 처방은 잔혹하게도 멈추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당장 벗어나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난 미지의 도시에 몸을 던졌고 하노이는 날 품었다. 종일 걸었고 종일 구경했고 종일 멍때렸고 종일 스쿠터를 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날이다. 비가 왕창 내렸고 난 스쿠터를 타고 온 도시를 구석구석 조지고 다녔다.

20년 봄, 자기파괴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첫째가 하노이고 둘째는 자전거다. 하노이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미친듯이 자전거를 탔다.
정체된 일과 커리어는 내버려두고 클릿을 꽂았다. 반백수의 상태로 자전거만 탔다. 다소 인위적이고 인스턴트적인 응급처방이었지만 자전거는 분명 결여되어있던 성취감을 공급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수단이었다.
20년 여름, 나는 지금 완전히 회복했다. 주당 50키로도 못타고 있는 라이딩 로그가 회복의 증거라는 점은 조금 안타깝지만.

구정에 귀국하고 나니 코로나가 창궐해 전 지구가 떠들썩해졌다. 한동안은 꿈도 꾸지 못할,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도 모를, 해외여행의 마지막이 하노이였다니. 시간이 지날수록 하노이의 기억은 더욱 특별하게 여겨진다.
지난 주엔 연남동에 있는 베트남 콘셉의 카페를 20분이나 들여 찾아갔다. 현지에서 먹었던 에그커피가 아니었다. 전혀 달랐다. 공통점을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제멋대로의 액체를 5,000원 내고 먹다 반을 남겼다.
도시 하노이로부터 받았던 마음의 안식을 미각경험를 통해 조금이나마 회상하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완전 짓뭉개졌다. 서울사람들의 현대적 관습대로 솔직한 피드백은 숨겼다. 잘 마셨단 거짓말을 던졌다.
다시 돌아온 차엔 불법주차 딱지가 붙어있었다.

하노이에 다시 갈수도 없거니와 그리워하는 것마저 허락지 않으니 나의 마음은 일종의 실연 상태에 빠졌다.
어제 스트라바 피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하노이라이딩’은 그 이름만으로 내 마음에 적셔들었다. 20년도에 내가 제일 좋아한 두 가지가 모두 들어가있는 이름.
하노이에서 스쿠터를 탄 기억은 자전거를 탄 기억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아이레벨, 주행경로, 흘러가는 풍경의 속도까지 거의 흡사하다. 그날의 기억을 살짝 조작해보니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탔던 것 같기도 하다.
조작된 기억이 아주 흡족하기에 같은 이름의 파일이 이미 있습니다. 기존 파일을 덮어쓰시겠습니까? 네네. 아무렴요. 그렇게 해주세요.

하노이에서의 마지막날엔 비가 왕창 내렸고 난 자전거를 타고 온 도시를 구석구석 조지고 다녔다.
어제 스트라바 피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하노이라이딩’은 그 이름만으로 내 마음에 적셔들었다. 20년도에 내가 제일 좋아한 두 가지가 모두 들어가있는 이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끌림에 오후 8시 정모 장소에 덜컥 참석해버렸다.

‘하노이라이딩’은 하늘공원 노을공원 라이딩의 줄임말이었다. 오늘은 샤방이라 1회전만 가볍게 돌린 후 편의점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고 예상치못한 선물도 받게되어 민망함과 감사함을 표했으며 이젠 낯선 사람들을 만나도 꽤나 여유로운 척 할 수 있게 된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칭찬한 뒤 15키로만 타고 집에 돌아가기엔 쫄쫄이를 꺼내입은 수고에 비해 운동성과 회수가 경제적이지 못하단 판단에 서오릉을 찍고 집에 돌아오던 중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하노이에서의 마지막날 자전거 탈 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그토록 고맙고 그리웠던 하노이가 오늘 여기 있다. 코로나도 자가격리도 다 이겨내고 와주었구나. 난 오늘 하노이라이딩을 했다.

 

 

 

 

 

 

 

 

 

“건강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누구나 기억하는 광고 문구다. 제품을 팔지 말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교과서적 가르침을 지켰다. 고객은 쇳덩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매를 구입하는 것이다. 쇳덩이라면 오만 원도 아깝겠지만, 건강한 몸매를 가질 수 있다면 오십만 원도 쓸 수 있다. 고객의 문제에서 출발해 제품으로 향하는 것은 판매의 기본이다. 모든 광고는 이 기본원칙을 준수해 만들어진다.

제품의 값어치는 고객 문제의 크기에 비례한다. 문제가 클수록 비싸게 팔 수 있다. 그래서 판매자는 고객이 문제를 크게 인식하도록 부추긴다. 작은 문제는 부풀리고 없는 문제도 만들어낸다. 불안을 조장하고 공포를 유발하는 판매 방식은 지푸라기도 십 억에 팔 수 있는 고급 기술이다. 사람을 물에 빠트린 뒤 지푸라기를 내밀면 된다. 지푸라기를 팔겠다고 사람을 물에 빠트리는 것도, 물에 빠졌을 때 십 억을 내고 지푸라기를 사는 것도 이 곳에선 정상이다. 건강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합법적 거래다.

판매자는 모든 대화를 구매로 귀결시킨다. 나도 꽤 팔아본 사람인지라 그들의 공격 패턴을 훤히 읽을 수 있다. 판매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접근한다면 어디 한 번 지껄여 보란듯이 지켜본다. 그들이 아무리 다양하고 창의적인 공격을 펼쳐도 나의 방어는 한결같다.
“안사요”
모든 종류의 창을 막아내는 만능 방패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쉴 새 없이 공격받았다. 속도를 더 내고싶다 했더니 뭘 사야 한대, 삭신이 쑤신다 했더니 뭘 바꿔야 한대, 훈련을 제대로 하고싶다 했더니 또 뭘 사야 한대, 멀리 가려고 했더니 뭐가 필요하대, 자전거 얘기를 할 때마다 지갑을 열어래. 그래서 입 닥치고 가만 있었더니 먼저 다가와서 문제가 많대. 20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탔다 했더니 자기가 볼 땐 너무 위험해서 곧 사고가 날거래. 이놈들이 나를 아주 물에 빠트리려고 작정했나보다. 뻔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수법이구먼.

“안사요” 방어모드로 일관했지만 이번 공격은 왠지 끊이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났다. 욕을 한 바가지 쏟아 붇고 소금을 뿌릴 참이었다. 그러다 눈을 마주쳤다. 초점없는 광신도의 눈이었다. 판매자가 아니었다. 소비자였다. 딴에는 날 위한답시고 조언했지만 의도치않게 공격이 된 것이다. 이들은 진심으로 돈을 쓰는 게 이로운 것이라 믿고 있었다.

 

판매자를 대신해 서로 물에 빠트리고 돈을 안 쓰면 큰일난다고 호들갑떤다. 자본주의 피착취계급이 자가증식하는 신비로운 관경이다. 부익부빈익빈이 왜 갈수록 심해지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찾았다. 가난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나.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종교나 이념도 이정도의 전파력은 갖지 못했다. 개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디어환경에선 잘못된 신념이 더욱 빠르게 퍼진다. 자전거 레이스는 하덜 않고 경쟁적인 소비 레이스만 펼친다.

돈을 한 웅큼 쥔 채로 문을 박차고 들어와 “Shut up and take my money”라고 외치는 고객을 물에 빠트릴 필요는 없다. 더러운 작업은 하지 않고 신성한 구세주 역할만 하면 되니, 판매자는 신이 나서 고객의 엉덩이에 최고 호갱등급 도장 VVIP를 찍어 준다. 감격한 호갱은 펄쩍 뛰어올라 발로 박수를 치고 앞돌기를 한 뒤 착지와 동시에 넢죽 엎드려 절을 두 번 한다. 감격의 눈물을 닦으며 다음달 월급도 모조리 갖다 바치겠다 맹세하고 뒷걸음질치며 퇴장한다.

 

자전거 고객의 소비행태는 기존의 구매행동이론으론 설명되지 못한다. 기존 이론에선 상품을 보아야 구매의사가 생긴다고 전제한다. Attention Interest [발견>관심] 순서다. 1920년도에 정립된 구매행동이론 AIDMA도 2010년도 미디어 환경변화에 맞춰 개정된 AISAS도 모두 AI단계가 선행한다.

하지만 요즘 고객은 다짜고짜 ASS다. Action Search Share [구매결정>검색>자랑] 어떤 상품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기변 결심부터 한다. 돈이 생기는 족족 다 털어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상품을 검색해 예정된 소비를 하는 셈이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제 구실을 못하는 제품들이 있다. 아껴 써야 하는 수첩, 비를 맞히면 안 되는 가방, 한 달째 비닐포장 뜯지 않은 새 차, 김치국물 한 방울 튀었다고 종일 기분이 우울해질 정도로 비싼 정장. 닳는 게 아까워서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명품 신발. 그런 신발을 신고 어떻게 달리겠는가? 달리는 게 목적이라면 닳아도 아깝지 않을 신발을 신어야 한다.

자전거도 너무 비싸면 제구실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자전거가 월급보다 비싸면 마음껏 밟을 수 없을 것이다. 난 월급이 작아서 중국산 가품을 타지만 대신 마음껏 찢어발길 수 있다. 자전거는 밟고 뜯고 비틀어 당겨서 밀고 던지고 엎어치듯 찢어발겨 타는 것이다. 타다 보면 기름때도 묻고 닳고 망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건 보물이 아니다. 탈 것이다.

 

돈이 썩어 남아서 자전거에 수천만원을 쓰건, 없는 잔고를 쥐어짜 장만하건, 미래를 저당 잡혀가면서까지 빚내 지르건,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나도 판매자들의 소비조장 공격이 달갑지 않듯이 내 자산운용 철칙을 알려주는 것도 상대방에겐 불쾌한 일일 것이다.

“정녕 당신의 인생이 자본주의 소비이념을 전파시키기 위한 숙주로 쓰이다 내팽개쳐져도 괜찮단 말입니까? 깨어나서 주체적 삶을 살아가십시오.”
라고 내 진심을 전하는 순간 그들은 나를 광신도 쳐다보듯 할 것이다. 이어서 나의 공격을 막아낼 만능 방패를 들어올릴 것이다.
“니는 니 대로 살아라(live) 내는 내 대로 살게(buy)”

 

같을 同, 좋을 好. 같은 걸 좋아해야 동호인인데 내가 자전거 쇼핑 동호회로 잘못 찾아왔나 싶다.

당신과 나 사이에 라이딩의 즐거움이란 교집합이 존재하길 바랄 뿐이다.

쓸모를 위해 살았다.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더 큰 영향력을 가져라. 산업을 성장시켜라. 경쟁해라. 승리해라. 승리에 만족하지 말고 압도해라. 내가 요구받은 그대로 남에게도 강요했다. 회유, 협박했다. 쓸모에 도움되지 않는 당신의 가치관을 박살내고 이념을 주입했다. 당신을 생산기계로 만들어야 쓸모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나로썬 불가피했다. 나덕에 당신도 조금은 쓸모있는 존재가 되지 않았느냐. 사과하진 않겠다.

미안하다. 용서해달라. 나도 이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

난 쓸모에 지쳤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에 빠지는 것이다. 자전거보다 더 쓸모없는 게 어디 있느냐. 나는 여지껏 찾지 못했다.

차나 오토바이에 비하면 자전거는 운송수단으로서의 값어치가 전혀 없다. 오늘 내가 먹은 소고기 값보다 기름값이 더 적게 치일 것이다. 인간 신체능력만 활용해 스스로自 돌아가는轉 수레車는 엔진과 모터의 효율이 높아질수록 쓸모가 없어진다. 어제보다 오늘 더 쓸모없고 내일은 더욱더 쓸모없는 게 자전거다.

원시적인 동력원을 사용하는 자전거지만 요즘엔 최첨단의 기술이 사용된다. 최첨단의 기술을 활용한 원시회귀라. 마음에 든다. 쓸모없어지기 위해 최첨단의 기술까지 동원한다니. 나도 더 격렬하게 나의 신체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운동효율을 극한으로 높여 최대심박으로 최대파워로 최장시간동안 쓸모없는 발길질을 해야겠다.

자전거야. 너와 내가 협력해 이루어낸 최선의 결과를 보아라. 고작 여기서 저기로 옮겼을 뿐이다.

쓸모없어지는 너가 마냥 안쓰럽진만은 않다. 우린 동병상련한 사이다. 이 사회는 더이상 인간에게도 쓸모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사실이기에 굳이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인간은 생산수단으로써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로봇의 높은 생산성으로 만들어진 잉여자원을 기본소득으로 분배받았음에도 좋다며 헤죽거리고 있다.

로봇이 생산의 주체요, 인간은 잉여다. 할아버지는 16시간, 아버지는 12시간, 난 6시간 일한다. 자식이 태어나면 3시간만 일할 것이다. 생산은 로봇이 도맡고 인간은 철학 문화 예술 따위나 즐기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일상이다. 난 자전거를 통해 미래인류의 삶을 앞당겨 즐기고 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쓸모없었다.
내일 쉬고 주말에도 최선을 다해 격렬하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