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건물 뒤엔 작은 또랑이 흐르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흐르는 물소리가 내내 넘어들어왔던 할머니집의 큰방에 누워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잠에서 깨었을 때 그 느낌이 착각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착각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 한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

또 한 번 착각의 상태로 잠에서 깨었을 때, 의식을 완전히 깨우지 않은 상태로 어떤 점에서 착각에 빠지게 되었는지 찾으려고 감각을 더듬었다. 어릴 때 느꼈던 자극이나 감각의 기억 속에서 공통점을 찾으려 했다. 흐르는 물소리, 담배연기가 쩌들은 벽지에서 다시 배어나오는 구수한 향, 오래된 자개농에 묵은 곰팡이와 섞인 이불냄새, 할머니의 화장품 냄새에서 비슷한 요소가 있었을 지 모른다. 또는 온도나 습도나 감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광량의 정도가 같았을 수도 있다.

착각의 상태에 의도적으로 빠질 순 없었다. 착각의 상태로 잠에서 깨는 것만이 유일한 기회였다. 운 좋게 순간이 찾아오면 최대한 오랫동안 머물려고 노력했다. 구체적으로 할머니집의 특정한 장소의 특정한 위치에서 냄새와 물체와 이미지를 떠올렸다. 지금의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그 때의 그것들과 같은 것이라고 속여내는 방식은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최대 20분 정도 착각 속에 머문 적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집은 허물어졌고, 지대가 낮았던 터는 흙으로 덮였고, 그 위에 새 도로가 놓였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착각에 빠지지 못했는데 세어보니 십오년 전이 마지막이다.오랜만에 요가원에 와서 사바사나 비몽사몽간에 착각의 낌새가 찾아왔다. 세타파가 최대한 꺼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 공간의 요소들을 떠올려 감각정보와 연결지어 스스로 속이기를 시도했다. 끼릭거리며 돌아가는 환풍기의 소리는 또랑의 물소리와 닮았고, 원장님이 덮어준 담요는 할머니가 천장만큼 높이 띄웠다가 덮어주던 이불과도 분명 닮은 점이 있었으나 이어내진 못했다.

착각에 머물려고 발버둥칠수록, 감각에 집중할수록, 다름만 확인하게 되었다. 한참이나 늙어버린 내 신체의 감각기관과 신경계에서 오가는 정보체계는 너무나도 달라진 탓일까. 조져놓은 하체에서 올라오는 슈퍼컴팬세이션 상태의 묵직함, 오른 어깨에서 느껴지는 관절 충돌 상태의 지릿거림. 마저 묶이지 못한 머리카락이 뒷목을 간지럽히는 느낌처럼 어릴 땐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극이 현재의 나에겐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반대로 내가 기억하는 어릴 때의 감각도 정확하지 않다. 내 신체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은 최소한 세 번씩 전체교체되어 같은 원자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하니 감각의 기억이 흐릿한 것도 잊혀지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있는 공간이 할머니집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못했지만 착각의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은 여전했다. 그 장소와 시간의 기억은 아니었지만 아늑한 고향에 와있다는 안정감은 다르지 않았다. 어떤 감각이 어떤 기억과 연결되어 내면의 고향에 도달하게 됐는지는 알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나이듦에 따라 내가 고향이라고 여길만한 기억의 장소들이 늘어난 것이 분명하다. 요가원도 그 중 하나인가보다. 벌써 익숙해지고 아늑해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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