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뒤엔 작은 또랑이 흐르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흐르는 물소리가 내내 넘어들어왔던 할머니집의 큰방에 누워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잠에서 깨었을 때 그 느낌이 착각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착각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 한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 또 한 번 착각의 상태로 잠에서 깨었을 때, 의식을 완전히 깨우지 않은 상태로 어떤 점에서 착각에 빠지게 되었는지 찾으려고 감각을 […]

없음이 있고 있음은 없는 이 곳에선 고가소성과 고결합성을 요구하는 현대사회로부터 강요받았던 약동과 정동을 잠시 멈춘다 끊임없는 생성과 결합을 요구하는 도시 그 중심에 있는 요가원은 고장나버린 생산부품을 정비하고 도구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곳이 아닐까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 숨어도 완전한 사육장인 트루먼쇼 세트장 빨간약을 먹고 진실을 마주하려해도 토템없이 들어선 인셉션 이것이 돼지에게 틀어주는 클래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나 […]

쥐새끼도 코끼리도 모두 평생 15억 번의 심장이 뛴다. 작은 설치류는 빠르게 뛰는 심장 덕에 2년 만에 이 숫자에 도달하고, 느리게 뛰는 심장을 가진 코끼리는 60년을 살아간다. 작으면 대사율이 높아서 빠르게 뛰고, 크면 대사율이 낮으니 느리게 뛴다. 인간은? 인간은 80년 동안 30억 회 정도 뛴다. 하지만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면 절반 정도인 40년만 살았을 것이다. […]

컴퓨터가 자연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자, 인간의 언어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 모호성 제거 2. 화용론적 요소(농담, 비유, 풍자)의 제거 3. 파싱 용이성 고려 4. 일관된 문법 AI와 밀접하게 교류한 사람들의 언어는 위 조건을 지향하는 쪽으로 향했다. 이는 새로운 언어 분화의 계기가 되었다. 인류 역사상 언어의 분화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발생했다. 국가 중심의 문화권에 고립되어 […]

어디든 상관없어. 목적지는 자전거 위니까! 자전거에 올라타는 것만으로 목적을 달성한 거야. 어딘가를 가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된 자전거지만 때로는 자전거 그 자체만으로도 목적이 될 수 있지. 오늘은 그런 날이고, 그러니 어딜 가든 상관없어. 목적지를 정한다는 것은 내게 큰 스트레스야. 마치 직장인이 점심메뉴를 정하는 것만큼이나 중대한 사안이거든. “어제 먹었으니까 안돼, 주말에 먹을거니까 안돼, 기름져서 안돼, 단백질 비중이 […]

이것은 꽃이 아니다 사업의 성과다 반기 거래액이 최고점을 갱신 감흥이 없다 숫자로 표현되는 사업의 성과 감흥이 없다 재미없는 기울기의 성장세로 예측 대로의 뻔한 미래가 찾아왔다고 모니터 너머의 직원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성과를 알렸다 이건 분명 축하할 일이고 뻔한 일도 아니라며 사업의 성과를 꽃으로 만들어왔다 무채색의 내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꽃이 되어 나타난 녀석을 보니 실감이 […]

올 봄, 자전거 학원을 다녔다. 4주 짜리. 수강일기를 썼었다. 한데 모아 기록해둔다.   평로라에서 외전근 페달링 리듬 찾기 (학원 첫날) 제가 알던 페달링을 다 써봐도 그 리듬감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제까지 전 다른 걸 외전근 페달링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나봐요? 실망스럽진 않아요. 오히려 좋은 소식이죠. 그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걸 깨우치게 되면 제 실력은 또 얼마나 성장할까요? […]

자전거 SNS에 라이딩 로그를 남기곤 하는데 보는 사람 몇 없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싸낸다. 지금까지 써오던 글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글을 써 본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마음에 드는 대목들이 있어서 블로그에 복사기록한다.   라이더 정보 : https://www.strava.com/athletes/30110228 상암뱅뱅 * 10 지도를 보고 뱅뱅을 찾았다. 뱅뱅은 무정차구간이다. 뱅뱅을 찾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한바퀴를 […]

“건강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누구나 기억하는 광고 문구다. 제품을 팔지 말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교과서적 가르침을 지켰다. 고객은 쇳덩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매를 구입하는 것이다. 쇳덩이라면 오만 원도 아깝겠지만, 건강한 몸매를 가질 수 있다면 오십만 원도 쓸 수 있다. 고객의 문제에서 출발해 제품으로 향하는 것은 판매의 기본이다. 모든 광고는 이 기본원칙을 준수해 만들어진다. 제품의 값어치는 […]

마르코 판타니라는 라이더를 알게 된 이유는 단순히 그가 빡빡이이기 때문이다. 머리숱이 풍성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나도 몇년 전부터 머리가 한웅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약을 추천했지만 나는 세월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대꾸하며 무시했다. 그렇게 일말의 저항도 하지 않고 머리털의 절반을 떠나 보내었다. 보름 전 엄마는 아들의 두피가 훤히 들여다보이자 크게 놀라시었다. 당신의 자식도 당신만큼이나 늙고 있다는 것을 평소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