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자의성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지을 수 있는 많은 기준들 중에서 가장 명확한 구분은 ‘말(음성언어)’의 유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언어는 동물의 것들과는 확실히 수준이 다르다. 제스쳐나 표정과 같은 동물들의 직접적인 전달 방법과 다르게 다른 매체를 통해서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원숭이가 표정을 찌푸리고 땅을 내리치면서 소리를 지르면 다른 원숭이는 ‘저새끼가 기분이 나쁘구나’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인간은 ‘나 기분이 안좋아’라고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이모티콘도 날릴 수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과 전달받는 사람 사이에 어떠한 것이 개입되어 대신 전달한다는 것에 그 수준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이에 끼어있는 것들을 매체라고 부르고 그 과정에서 의미가 매체로 암호화(Coding)되고 매체에서 의미로 다시 해석(Decoding)되었다고 한다. 머릿속에 있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데, 현대인류는 이 매체사용법을 주로 교육기관에서 배운다. ‘나무’라는 적힌 글자가 실제의 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연결고리들을 학습하지만 사실 나무를 ‘나무’라고 부를지 ‘tree’나 ‘木’이라고 부를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필연성도 없다. 이를 기호학에서는 ‘자의성(arbitarire)’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나무를 니무로 부르든 내무로 부르든 사회적으로 약속이 되어 서로가 알아듣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로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옷장을 만들 때 사용된 재료를 ‘나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tree’라고 할 수 없고 ‘wood’라고만 할 수 있다. 에스키모들에게는 ‘눈(snow)’를 칭하는 단어만 20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 이러한 code들은 사회적인 약속에 불과하고, 언젠가부터 부르던 것들이 약속이 되면서 그 단어나 소리들에 의미가 고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준어로는 ‘자장면’만 인정되어 왔다. 2011년 8월이 되어서야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되었는데, 이를 보면 code에 대한 정의가 우선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지칭하는 사회적인 약속이 우선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