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엔 학교에서 꿈에 대해 적어내라고 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때 잘만 적어냈던 친구들이 여전히 그 꿈을 가지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이 글을 한번 끄적여 본다.

왜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꿈꾸는 학생들을 좋아할까?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뭔가 위대한 삶을 살길 바랐던 것일까? 사실 선생님들도 그 작은 아이들이 커서 양아치나 공사판 인부가 되거나 잘해봐야 박봉의 월급쟁이 아저씨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어느 날, 형이 갑자기 유리병을 들고 와가지곤 타임캡슐을 만들자며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는 게 기억난다. 타임캡슐이 뭔질 몰랐는데 형의 설명에 따르면 그 당시의 기억을 담아서 흙 속에 묻어두고 한 십년 지나서 파보면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아주 좋은 거였다. 그러면서 형은 허겁지겁 유리병 속에 뭘 처넣기 시작했다. 사실 그 속엔 아주 소중한 것들이나 그 당시를 기억시킬 수 있는 의미심장한 아이템들이 들어가야 하는데 별로 쓰지도 않고 소중하지도 않았으며 유리병 크기에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장난감 몇 개를 골라 집어넣었었다. 그리고 공책을 북북 찢어서 ‘나는 커서 이 되겠다.’라는 꿈을 한 장씩 적어 넣기로 했다. 그 당시 형은 뭘 적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 전까지 한 번도 커서 뭐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잖게 당황했다. 형은 빨리 타임머신을 묻어야 한다며 재촉했다. 5분간의 고민 끝에 ‘소방관은 타죽을 수도 있으니까 경찰관이 되어야겠다.‘며 “나는 커서 10년 후에 경찰관이 되어있겠다.”라고 적어서 넣었다. 그 후 그 타임캡슐의 행방을 찾아본 적도 없지만 아마 지금 가보면 그 때 살던 집 뒤의 작은 마당엔 새로운 건물이 올라와있을 것이다.

그 다음 년도에 6학년으로 올라가서 만난 담임선생님은 꿈에 무척 집착했다. 모든 학생들이 장래희망 카드를 만들어 게시판에 붙이는 난리법석을 떤 것이었다. 그것도 부모님들이 찾아오는 가을운동회 직전에 말이다. 나는 그 때까지 13년의 인생을 살면서 장래희망이라는 것에 생각해봤던 적이 작년 5학년 때 5분 동안 생각해봤던 게 전부였는데 이젠 6학년이니 더 진지해봐야겠다며 머리를 싸맸었다. 밤이 새도록 고민해서 만들어간 나의 장래희망 카드에는 ‘샐러리맨’이 적혀있었다. 평범한 학생들을 부풀리고 과장시켜 학부모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담임선생님의 허영심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고민하던 나를 떠올려 보면 나는 커서 별로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장래희망카드를 제출하고 난 뒤에도 그 카드가 게시판에 붙고 난 뒤에도 가을운동회 때 엄마가 와서 내 카드를 보고 혀를 찼을 때에도 나는 샐러리맨을 꿈이라고 적은 것을 무척 후회했다. 그렇게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나는 도무지 무엇을 꿈으로 가져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은 흘러 고3이 되었다. 고 3이라면 이미 장래계획과 진로설정이 다 되어서 수능공부에만 집중해야 할 시기이지만 나는 여전히…..

부끄럽게도 이제까지 18년의 인생을 살면서 장래 희망에 대해 생각해봤던 적이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두 번 밖에 없었다.

고3 야자시간에 떠들던 녀석들이 단체로 야단맞던 중 훈육에 한창이던 ‘김갑상’선생님이 한숨을 푹푹 쉬며 “느그들 도대체 꿈은 있나?” 라고 물어봤었다. 단체로 야단맞던 애새끼들이 10명 쯤 되었는데 나를 포함한 두 명을 제외하곤 다른 친구들은 자신들의 꿈이 무엇인지 대답했고 꿈이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한 나와 그 친구는 꿈도 미래도 희망도 없는 한심한 잉여인간 취급을 받았었다.

“꿈이 없으면 공부를 할 이유가 안 생긴다. 내일까지 당장 꿈부터 가지도록 해라.”

정말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다. 그렇긴 해도 내일까지 당장 꿈이 생기길 바라셨던 것은 일리가 없는 말씀이었다.

꿈이 없었기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는 대충 수능을 쳤고, 나온 수능 점수에 맞춰서 원서를 적어보기 시작했다. 대학교들에서 날라 온 찌라시들과 복잡하게 분석된 적성검사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대학원서라는 백지장에 그려 보려니 막막했다.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런 복잡한 심정으로 또 다시 한번 꿈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바쁘신 고3담임선생님의 귀한 시간을 뺏어서 5분 동안 상담을 받았다. 그 때 추천해주신 ‘경성대학교 멀티미디어대학 디지털콘텐츠학부 디지털영상전공’(가장 이름이 길어서 눈에 튀었다.)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그 쪽으로 원서를 넣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아직도 나는 내 꿈이 뭔지 모르겠다. 이러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휴학한 뒤 호주로 도망 와 있는데 여기서 생활하는 동안 꿈이 생기긴 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사실 사람들이 꿈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도 가지고 있긴 한데, 나의 꿈은 특정한 직업이나 인생계획 따위로 세워놓진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정직하게 사는 것,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정도로만 세워 놓았다. 인생의 기로가 어떻게 바뀔 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호주에 오기로 한 것도 한 달 만에 결정한 것이고 브리즈번을 떠나 멜버른으로 가야겠다는 결정도 저번 주에 했다.

알지도 못하는 앞으로의 인생을 꿈이라는 황급한 계획을 세우면서 가능성을 모두 닫아버릴 수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