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효율적인 정보습득도구에 대한 고민

정보의 과잉/홍수/공해 이런 시대적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큐레이팅 서비스도 많이 나오고 있고 무엇보다 UI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입니다.

지금 필요한 완전한 혁신의 모습은 우선

1) 수동적인 정보가 능동성을 가지고,
2)웹 브라우징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 매칭 알고리즘이나 큐레이팅도 좋지만 이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이 두가지 방식은 많은 정보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낸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인간이 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드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정확도를 아무리 높인다 한 들 인간이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Glance하고 빠르게 Choice해서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접근해야 합니다. 가장 쉬운 방식으로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모자이크UI를 자동적으로 스크롤다운되게 만들어 빠른 Glance를 유도하고, 그 다음에 간편한 조작으로 흘러 지나가는 콘텐츠를 Choice할 수 있도록 하면 어느정도의 성취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다 개인화된 큐레이팅을 제공해 소비할 콘텐츠의 개인적인 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도 좋은 기능이 되겠네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간이라는 현재 웹 브라우징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조작을 하지 않으면 정보는 언제까지고 하염없이 멈춰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삽입하게 된다면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더욱 빠른 콘텐츠 소비를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들 인터넷 하다보면 어느새 목이 의자 엉덩이 부분까지 내려가 있지 않나요?)

이 생각은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목도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사람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수많은 알파벳이 모니터에 흘러들어오고 입력하고 싶은 알파벳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아이트래킹되어 인터랙티브하게 UI를 콘트롤 하는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이는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UI는 http://famo.us/ 에서 만든 프로토타입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저 뿐만이 아닐테고… 프로토타입도 만들어졌으니 웹 브라우저가 조금만 더 발전하면 5년 내로 실현가능하다고 보는데… (마우스와 키보드 외의 입력방식이 근미래에 보급되길 바라는 1인)

 

— 덧붙임 (2015.12.19) —

내가 안하면 아무도 안 할 것 같다.
famo.us는 서비스가 약간 피벗된 것 같다.

나는 지금 가장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금전적인 부분도 아니오, 고용보장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앞으로 60년 더 일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살아 남아야 한다.

언어의 자의성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지을 수 있는 많은 기준들 중에서 가장 명확한 구분은 ‘말(음성언어)’의 유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언어는 동물의 것들과는 확실히 수준이 다르다. 제스쳐나 표정과 같은 동물들의 직접적인 전달 방법과 다르게 다른 매체를 통해서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원숭이가 표정을 찌푸리고 땅을 내리치면서 소리를 지르면 다른 원숭이는 ‘저새끼가 기분이 나쁘구나’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인간은 ‘나 기분이 안좋아’라고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이모티콘도 날릴 수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과 전달받는 사람 사이에 어떠한 것이 개입되어 대신 전달한다는 것에 그 수준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이에 끼어있는 것들을 매체라고 부르고 그 과정에서 의미가 매체로 암호화(Coding)되고 매체에서 의미로 다시 해석(Decoding)되었다고 한다. 머릿속에 있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데, 현대인류는 이 매체사용법을 주로 교육기관에서 배운다. ‘나무’라는 적힌 글자가 실제의 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연결고리들을 학습하지만 사실 나무를 ‘나무’라고 부를지 ‘tree’나 ‘木’이라고 부를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필연성도 없다. 이를 기호학에서는 ‘자의성(arbitarire)’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나무를 니무로 부르든 내무로 부르든 사회적으로 약속이 되어 서로가 알아듣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로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옷장을 만들 때 사용된 재료를 ‘나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tree’라고 할 수 없고 ‘wood’라고만 할 수 있다. 에스키모들에게는 ‘눈(snow)’를 칭하는 단어만 20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 이러한 code들은 사회적인 약속에 불과하고, 언젠가부터 부르던 것들이 약속이 되면서 그 단어나 소리들에 의미가 고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준어로는 ‘자장면’만 인정되어 왔다. 2011년 8월이 되어서야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되었는데, 이를 보면 code에 대한 정의가 우선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지칭하는 사회적인 약속이 우선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분야에서 요리를 비유로 든다

<지의 편집공학> – 마쓰오카 세이고

조리를 할 때에는 야채 따위의 떫고 쓴 맛을 우려내거나 곁들일 것을 잘게 썰거나 가스렌지의 세기를 조절하며 몇 가지 과정을 함께 처리한다. 그리고는 도자기 접시나 옻칠한 그릇 등을 선택해서 보기 좋게 양을 조절해서 담는다. 심지어는 ‘솔잎을 곁들인 성게 알젓 순무찜’ 등과 같은 타이틀을 생각해 내기도 하고 손님의 식사 습관에 따라 음식을 내는 시간까지 맞춘다. 이것은 정말 훌륭한 편집이다.

<빡신기획스쿨> – 박신영

“생활속에서도 많은 기획을 합니다. 어떤게 있는지 찾아볼 시간 7초 드릴게요.” (샹송이 흐른다.) “뭐가 있나요?” “요리!” “스냅 두번~ 요리, 어떤 재료를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이 다르게 나오는 요리는 기획의 좋은 예죠.”

광고나 마케팅 뿐만 아니라 결혼식, 요리와 같이 기획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과제를 찾고 해결책을 내놓는 이 모든 과정이 기획이다.

디자인학도 – 윤춘근

요리도 물론 디자인이다. 외향적인 모습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 뿐만 아니라, 결과물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과정까지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적인 의미는 모두 다르지만 이렇게 요리가 자신의 분야라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기획, 디자인, 편집이라는 행위들을 조금 큰 그릇에 담는다면 담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그 그릇에는 편집/기획/디자인 이외에도 문제점, 과제에 대해서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으려는 시도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이것들을 ‘인류의 삶 개선’이라는 또 다른 큰그릇에도 담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내 에너지를 여기다가 쏟아붓고 싶다.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 노동자가 되기 싫은 이은호가 노동절에 (2012-05-01)

잘 되는 카페가 잘 되는 이유.

올해 설, 부산에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부산에서 3번째로 번화가인 부산대 앞에 멋진 카페가 새로 오픈했다며 친구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차피 현대인들은 하루에 일정량의 카페인을 마셔야 하고, 이왕 커피를 마실거면 본인이 추천하는 곳으로 가보자고 우겨댔다. 카페의 이름은 제이스퀘어(JQUARE)였다. 이 카페의 건물은 본래 고급 양식전문 식당이었는데, 매출이 좋지 않아 현재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로 넘어간 듯했다. 구글지도에 검색을 해봤더니 ‘㈜세일기업 제이스퀘어’라고 검색결과가 나왔다. 주식회사로 등록된 카페였다. 그럴 수가 있는 이유는 총 4층짜리 건물 중에 1, 2층은 카페로 운영되지만 3층에는 세미나룸, 4층에는 학술공간이 마련되어 카페 이외의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와 다른 공간을 잘 융합시킨 것을 제외하더라도 카페가 잘되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았다. 많은 매력들 중에서도 무엇보다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그 카페로부터 큰 감동을 받은 나는 다른 카페들은 어떤 방법들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고객과의 소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잘되는 카페가 잘되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다양한 종류의 카페와 다양한 컨셉의 카페들이 있는 것처럼 성공한 카페들이 잘되는 이유들 또한 각기 다를 것이다. 반면에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들려서 커피를 마시는 장소’라는 의미는 어느 카페든 가지고 있는 요소일 것이다. 모든 카페들이 가지는 공통요소 ‘커피의 맛’과 ‘매력적인 공간’을 고객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매력을 느끼도록 만드는지, 제이스퀘어에서 경험한 것들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본다.

 

부산에서 3번째로 큰 번화가인 부산대 앞에 위치한 제이스퀘어에 들어서면 한 쪽 벽면에 크게 틀어지고 있는 영상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 2층은 아주 거대한 복층 구조인데 2층 높이가 되는 한쪽 벽면의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상을 1층의 고객도, 2층의 고객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내가 갔을 때에는 두 종류의 영상이 반복되어 틀어지고 있었다. 하나는 지난 11월 카페 새단장을 위해 카페경영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가 기록된 3분정도의 영상이었고, 또 하나는 외국의 유명 바리스타의 에스프레소 추출시범영상이었다.

카페 한가운데에는 빵이 전시되어있는데, 새단장 하면서 베이커리가 새로 생겨났다. 젊은 아가씨 제빵사 두 분이 모든 빵을 만드는데, 완성된 빵을 카페 한가운데 있는 진열대에 올려다 놓는 순간 모든 고객들의 시선은 파티셰에게로 집중하게 된다. 파티셰가 진열대에 빵을 가져다 놓으면서 이렇게 외치기 때문이다.

“제이스퀘어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블루베리 에클레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모든 스탭들이 동시에 이렇게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파티셰 김성희님, 계속해서 맛있는 빵 만들어 주세요^^”

나는 파티셰가 진열대에 빵을 놓으로 온 틈을 타서 최고의 빵을 추천해달라고 말을 걸었다가 한참동안 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를 고르려고 메뉴를 보던 중에는 바리스타가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얘기할수록 나도 궁금한게 많아져서 주문하는데만 1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바리스타와 파티셰가 진심으로 나와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 하고 있었다. 나또한 전문가를 통해서 탁월한 선택을 하게 되었으므로 큰 만족을 했다.

주문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베이커리 안에 김성희 파티셰가 어느새 또 자리로 돌아가 반죽을 밀고 있는 게 보였다. 밤 9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파티셰 두 명은 피곤한 기색은커녕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했다. 2층에 올라가서 일부러 난간 쪽에 자리를 잡았다. 주방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통유리방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방은 카페를 만들기 위해 작업한 흔적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경영기획팀의 방이었다. 아이맥이 2대 있고 많은 양서들과 참고할 카페정보들, 디자인작업중인 흔적들이 남아있어서 경영자가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벽에 영사되고 있는 영상 또한 이 방에서 제작되었고, 간판과 프로모션 안내문도 직접 제작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이스퀘어라는 카페는 모든 공간이 이렇게 투명했다. 평소 나는 고객으로서 무뚝뚝한 편인데 카페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던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나선다면 나는 이 카페를 신뢰할 수 밖에 없다! 2층에서 턱을 괴고 1층의 주방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주방이 가장 전망이 좋은 모서리 창가 쪽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었다. 나는 이렇게 바깥쪽에 위치한 카페의 주방은 본 적이 없다. 일반적인 카페라면 당연히 좋은 전망을 가진 위치에 손님의 좌석을 놓고 주방은 구석으로 위치시키겠지만 제이스퀘어의 주방은 모든 손님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모든 손님들도 주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카페의 구조, 스탭들의 마인드, 경영기획팀의 통유리방, 벽면에 틀어지고 있는 영상을 포함한 카페의 모든 요소들이 하나같이 제이스퀘어의 철학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처음 이 카페에 들어설 때 이런 정보들이 불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커피와 빵을 고르는데는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내가 먹을 것을 누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만드는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한 고객이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니! 나는 나의 통찰력과 카페의 명료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서 또 다시 한번 감탄해서 고개를 떨군 뒤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조금 후 조심스럽게 블루베리 에클레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생크림이 잔뜩 묻은 나의 입가엔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그곳엔 내가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부드러움이 있었다.

 

앞에서 카페가 잘되거나 안 되는 조건으로 ‘커피의 맛’과 ‘매력적인 공간’ 두 가지로 구분지어 생각해보자고 했었는데,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커피가 맛이 좋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모든 카페가 자신의 커피가 최고라고 외치고 있어서 똑 같은 방식으로 커피 맛을 홍보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서 커피의 맛이 좋고 나쁨을 구별하여 카페를 고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즘 대부분의 커피전문점들이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힘들기도 하겠지만, 언젠가 ‘커피 소믈리에’라는 직업도 있다고 들은적이 있다. 그만큼 커피의 종류가 다양하고 맛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커피의 품질차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커피의 맛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커피를 선택하도록 선택권을 주려는 방법은 안일한 생각일 것이다. 사람들이 혀로 커피맛을 구분해내지 못하는 지금, 커피의 맛을 증명하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돈이 많다면 언론홍보를 할 수 있다. ‘조인성이 멋진 펜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내린 커피를 들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커피가 고파질 것이다. ‘카메라를 보고 미소를 한 번 짓는’모습까지 보게 되면 커피가 두 배로 고파진다. 혹여나 커피가 고파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해당 커피의 매출상승엔 기본빵을 하지 않겠는가? 인쇄나 방송을 통해서 홍보되는 것들은 대부분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미각적인 자극을 비유해내는 방식이다. 그럼과 동시에 타 사물의 품격과 명성을 빌려오기도 한다. 많은 커피광고에서 남자연예인의 훈남 이미지를 빌려온다. 본고장의 명성을 빌려오기도 하고, 자격증이나 각종 수상경력들과 같은 인증을 통해 품격을 높인다. ‘세계 최고의 판매량’, ‘우리나라에 10대 밖에 없는 에스프레소 머신’,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 우승’ 따위의 객관적인 사실들은 맛을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프렌차이즈 지점 그 자체로도 홍보수단이 될 수 있다. 브랜드 프랜차이즈 카페에겐 수많은 가맹점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의 간판이 되고 홍보매체가 된다. 이것을 잘 이용한 카페베네는 1년 마케팅 예산을 초창기 3개월에 몰아서 사용함으로 3개월만에 200개 지점을 개업시켰다. 단기간에 지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현상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는 장사가 잘된다.]

[장사가 잘되는 카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지점을 늘릴 수 있다.]

[그러므로 지점이 많은 브랜드 카페는 맛있는 커피를 만들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많은 지점을 무리해서라도 단기간에 개업함으로 ‘사업이 흥하는 이유는 커피 맛이 좋기 때문이다’라는 논리를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심어주었던 것이 카페베네의 전략이었다.

강남대로의 CGV뒤편 골목에 있는 잘되는 카페들 중에 COFFEE REPUBLIC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카페는 커피전문점으로서의 명성을 스스로 표현하고 있었다. 제이스퀘어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얼마나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는데 2층 카운터 앞에 사람 5명의 크기정도 되는 커피 로스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고 비싼 전문기계를 쓸 정도라면 분명 이 커피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커피맛 또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신뢰감이 높아진다. 입구에 널부러져 있는 커피포대자루와 커피원두가 담겨있는 거대한 깡통은 직접 엄선한 커피콩을 공수해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스스로 명성을 인정해내는 카페들의 태도는 여느 카페와는 다른데, 그것은 손님에 대한 관습적인 접대가 아닌 것 같다. 무조건 손님의 취향에 맞춘다거나, 손님이 왕이라며 넙죽거리는 자본주의 시대의 얼빠진 노예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곳에서의 바리스타들은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예술가이자 장인이다.

커피의 맛을 증명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최고의 커피를 만든다는 사실보다 훌륭한 홍보아이템은 없다고 생각한다. COFFEE REPUBLIC과 제이스퀘어에서는 실제로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커피전문점들이 장사가 잘되도록 도모하여 많은 손님들에게 커피를 팔도록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올바른 소비와 판매를 이루어지게 하는 긍정적인 일이다. 반대로 적당히 인지도가 있는 커피원두를 가져와 시급이 낮은데도 불평이 없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커피를 내리게 하는 카페들의 커피가 홍보하는 것은 부정의한 일이다. 인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정정당당한 마케팅이 많으면 좋겠다.

 

카페가 잘되거나 안 되는 또 하나의 조건으로 ‘매력적인 공간’이 있다. 이미 모든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어떻게 차별화 할지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안되는 카페들의 안되는 이유들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인테리어에만 집착하는 실수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카페가 카페를 카페처럼 꾸미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왜 카페가 카페처럼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 장소에서 커피를 팔고 있다는 사실은 간판과 메뉴판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는데 말이다. 언젠가 외국인 친구와 고풍스럽고 이국적인 카페에 들렸다가 “이 인테리어가 너네 나라의 것과 비슷하지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면서 “It’s cheesy”라는 말을 덧붙였다. 건축양식과 외향에 문화와 역사가 깃들어있지 않으면서 그 겉모습만 따라 하는 것은 가식적이고 저급하다는 직설적인 비판이었다. 인테리어가 이국적이고 고풍스럽다고 해서 맛있는 커피를 만든다는 증명이 될 수는 없다. 인테리어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페인트를 두번 칠해서 사포로 문지르면 빈티지한 느낌을 낼 수 있다. 칠판에 분필로 메뉴를 적어놓거나, 폴라로이드 사진을 잔뜩 벽에 붙여놓고, 라이트 브라운의 매끈한 목재로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를 구비한다던지 조경나무를 설치하는 것도 카페를 카페답게 꾸미기 위한 유행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인테리어들에는 피상적인 분위기만 있을 뿐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내지도 못한다. 보편적인 카페 인테리어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이런 양식들만으로는 ‘커피를 만들어 파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있으나 ‘좋은 커피를 만들어 파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담을 수는 없다.

다방에 가면서 커피 맛을 따지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카페에 들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카페들은 다른 공간의 매력을 빌려서 사람을 유도하기도 한다. 특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만을 위한 타게팅이다. 독서공간을 병합한 북카페, 커피도 마시며 운세도 아는 사주카페, 고양이 매니아들을 위한 고양이카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무그늘이라는 카페에서는 닥터피쉬를 체험할 수 있게 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 했었다. 최근 주춤하고 있는 듯한 민들레영토는 어느 카페보다 편안한 최고의 쉼터이고, 음악인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문화와 예술이 함께 숨쉬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카페도 있다. 제이스퀘어는 학술공간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세미나도 개최하여 자기계발에 힘쓰는 청년들의 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카페들이 있을 것이다.

카페들이 다양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카페에 오는 이유들도 다양하다. 노트북을 들고 혼자 개인공부를 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도, 사업얘기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조용히 쉬러 오는 사람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떨기 위해 오는 아가씨들도 있다.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공간을 마련해주는지가 지속적으로 방문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조건이 아닐까? 대부분의 카페들은 이런 공간에 대한 만족을 주려고는 하지 않고 특색 있어 보이려 하고, 튀려고만 하던지, 신기한 것들을 가져다 놓아서 이슈가 되려고만 한다. 카페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그런 카페들은 결국 Cheesy하다는 평을 듣고 카페의 겉모습을 따라해서 돈을 벌어보려는 속내를 들키고 말 것이다.

설 연휴가 지나고 서울로 올라 온 뒤, 제이스퀘어의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보느라 반나절 정도를 보냈던 것 같다. 카페에서 보고 느꼈던 것 이상으로 카페운영진들에 대한 호감을 느낄 수 있었고 젊은 친구들이 참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산다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블로그에는 실제로 카페에 들렸을 때 알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인 ‘내가 먹을 것을 누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들이 충분히 있었다. 바리스타가 웃으며 커피를 내리는 모습, 세계적인 명성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았다는 이야기, 밥보다 빵이 좋다는 파티셰의 이야기, 신상품으로 나온 빵이 너무 잘 팔려서 직원들도 아직 맛보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 실감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또 다시 커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빵 사진을 보면서 침을 한 바가지 흘렸다.

내가 제이스퀘어를 이렇게까지 예찬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하자면; 하나는 앞서 충분히 소개한 카페 자체의 매력이고, 또 하나는 그 카페의 모습을 드러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려 카페를 노출시키는 것은 여느 카페나 하고 있겠지만 제이스퀘어만큼 잘하지는 못한다. 내색을 겸손하게 잘 하는 것, 노력한 만큼 티를 내는 것, 그를 통해서 정정당당하게 인정 받는 것, 그것이 잘되는 제이스퀘어가 잘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PS

여기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으나, 글을 쓰는 중에 나는 지갑을 정리한 적이 있다. 설 연휴 동안 썼던 영수증들을 모두 꺼내놓고 하나씩 보면서 버리다가 이 영수증을 발견하고는 고이 접어서 보관하고 있다. 아.. 다시 한 번 커피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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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가 되기 위한 준비

결국 목적없는 준비들은 모두 더 나은 노예가 되기 위한 자격요건을 갖추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타인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노예가 되기 위해서 현대인들은 그렇게들 열심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회구조상 60%의 임금노동자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죠.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다행히도 자발적인 노예들이 충분히 있고, 또 유연하게 그 비율을 조정합니다.

취업이데올로기, 스펙이데올로기 따위의 것들이 자발적 노예를 육성하기 위한 도구들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돈이라는 기준으로 재평가되고 평준화되기 때문에 노예들 간의 계급구조들도 만들어집니다. 계급구조가 만들어진 노예들간의 새로운 생태계는 아주 큰 우물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우물 안에는 대중문화라는 마약이 존재하죠.

주의의 추이를 관찰 – <지의 편집공학>

나는 편집공학을 준비하면서 기묘한 훈련을 나 자신에게 부과하기로 했다. 그것은 지금 현재 내 머릿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편집 프로세스를 리얼 타임으로 관찰하는 훈련이었다. 즉 생각이 흘러가도록 그대로 두고, 이와 동시에 그 프로세스를 관찰하는 훈련이었다. 잇달아 전개되어 가는 ‘주의’의 ‘추이를 관찰하겠다는 것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 知의 편집공학 중에서

오, 오오… 저는 지금 훌륭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정보’가 가진 네 가지 성향

정보는 네가지 성향을 가진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성향

정보의 성향은 인간의 기술을 통해서 더욱 빠른 속도로 실현된다.

정보과잉시대에선 정보전달자가 더이상 우위에 서있지 않다.

광고라는 커뮤니케이션은 보여주는 사람이 유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정보에 대한 편집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전달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광고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지게 되고 사람들이 수용할 한도를 넘어서게 되자 그 우위는 반전되었다.

보는 사람이 많은 정보들을 골라서 보게 되고, 유익하지 못한 것들을 골라내는 편집권을 가지게 되었다. 웹2.0이 나타난 시점을 기준으로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한도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 전세는 더욱 심해지게 되었다.

광고기피증이라는 단어가 최근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심각성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기울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인지 기업과 고객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새로운 방향으로 진보하게 되었는데, 플랫폼을 통해서 기업과 고객이 더 밀접한 공간에서 더 집중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플랫폼의 예로는, 소개팅 주선자나 구인구직 사이트, 각종 fair 및 세미나, 또 최근에 세상의 흐름을 가장 많이 바꾼 애플의 앱스토어를 들 수 있다.

기존의 커뮤니케이션과 비교되는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이 나서느냐, 고객이 직접 나서느냐는 점이다.

기존의 광고나 홍보 따위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고객을 찾아나서는 과정이었다면, 플랫폼에서는 공통된 욕구를 가진 고객들이 서로 무리를 형성한 뒤 그 장소에 기업들이 찾아 드는 방식으로 플랫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이는 플랫폼 설립 순서에 따른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이 서로 부합하는 두 집단이 만나서 집중된 커뮤니케이션을 벌이는 곳이 플랫폼이다.

납품형 인간

납품형 인간 [명사]

1. 방송이나 영상제작 업계에서 종사하며 제한기간안에 작품을 제작하여 납품하는 일장단에 맞춰 생활패턴이 결정지어지는 21C신인류의 한 형태. 대체로 게을러 터져서 일을 미루다 미루다 결국 납품기일 3일 전에 내리 밤을 새는 작업을 하곤 한다.

2. 3일 밤샘 작업을 하고 나서도 납품을 했다는 해방감에 술마시느라 하루 더 밤새는 사람. (유) PD, 방송인, 광고인, 프리랜서 듸자이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