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픽의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들

나는 매체를 운영했다. 하루에 2만 명씩 들어왔다. 서버 전송 트래픽은 일 50기가에 달했다. 팬 수는 쌓여 7만 명의 팔로워가 생겼다. TAT지수도 아주 높았고 좋/댓/공의 비율도 타 채널과 비교해 아주 높게 유지됐다. 핵심 독자 층이 어느 매체보다도 높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확보한 이 트래픽의 값어치가 대단히 가치있는 것인 줄 알았다. 트래픽 장사치였던 나는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렇게 자신을 속였다.

트래픽 측정 단위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각각의 전환에 대한 값어치를 계산해보자. 일반적인 계산법이 없으니, 나의 지난 3년 경험을 토대로 상대 비교 공식을 마련해본다.

 

PV (Page View)

PV는 가장 낮은 트래픽 측정 단위이다. 한 페이지가 보여졌다는 조회 기록이다. 어떤 이는 2분 동안 정독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페이지에 들어오자마자 3초만에 나갔을 수도 있다. 또 해킹 로봇에 의해 공격 당해 증가하기도 한다.

1PV

좋아요 / ♡ / 공감

콘텐츠를 단순히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한 번의 클릭을 통해 자신의 감정반응을 남긴다. 10PV가 발생하면 그 중 1/10의 사람이 피드백을 남긴다. 10PV는 1좋아요와 맞먹는다.

10PV = 1좋아요

댓글 / 공유

댓글과 공유는 단순한 클릭 피드백보다 높은 단위이다. 텍스트를 입력해야 하고, 공유시 소개할 멘트를 새로 생각해야 한다. 피드백을 남기기 위해 더 큰 수고와 시간을 요한다. 10좋아요는 1댓글 혹은 1공유와 맞먹는다.

100PV = 10좋아요 = 1댓글(공유)

도달

Social Network Service는 네트워크 서비스다. 이름대로 연결을 촉진시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그들이 연결을 많이 발생시키기 위해 쓰는 전략으로 트래픽을 쪼개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PV보다도 낮은 단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리보기 콘텐츠를 만들어 냄으로 콘텐츠의 목차를 만들어낸다. 세분화된 프리뷰 콘텐츠를 묶어서 보여주기도 하고, 빠르게 다수의 콘텐츠를 검토할 수 있도록 사용자 환경을 제공한다. 페이스북의 ‘도달’이 대표적이다. 자발적으로 퍼져나가는 아웃링크 콘텐츠는 도달>PV 전환비가 5:1 수준이지만, 광고 콘텐츠의 경우 100:1이하의 전환이 일어나기도 한다. 평준화하기에는 너무 폭이 크지만, 트래픽 계산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 광고이기 때문에 조금 후하게 쳐서 10도달이 1PV와 맞먹는다 하겠다.

1,000도달 = 100PV = 10좋아요 = 1댓글(공유)

메시지

매체 운영자 혹은 콘텐츠 게시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댓글 혹은 공유보다 높은 트래픽 단위이다. 댓글에 친구를 소환하거나 시덥잖은 농담을 남기는 것보다 적극적인 피드백이기 때문이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면 메시지의 비중이 아주 높을 것이다. 나는 콘텐츠 배포가 주요 활동인 매체를 운영했기 때문에 메시지로의 전환은 낮은 편이었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100개의 댓글이 달리면 1개의 메시지가 왔다.

100,000도달 = 10,000PV = 1,000좋아요 = 100댓글(공유) = 1메시지

메일 / 전화문의

메일을 받았다면 메시지를 받는 것보다 10배 기쁜 일이다. 메시지는 SNS에서 연결을 늘리기 위해 마련해둔 여러 장치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증폭된 트래픽이기 때문이다. 페이지 관리자의 메시지 응답률 및 평균 응답시간을 노출시킴으로 메시지가 활성화되길 넛지 유도한다. 메일을 보낸다는 것은 이런 인위적인 공작활동과 상관없이 진정 연락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어서 연락하는 것이다. 메시지는 ‘하이, 헬로, 저기요’라고 구어체로 말을 해도 되지만, 메일은 자기소개와 함께 비즈니스 매너를 갖춰 맥락에 맞춰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역시 요구되는 시간과 노력 측면에서도 차이 난다. 전화문의는 메일과 거의 동일한 무게를 가진다. 나는 메시지 10개를 받으면 메일은 1통 정도 받았다.

1,000,000도달 = 100,000PV = 10,000좋아요 = 1,000댓글(공유) = 10메시지 = 1메일(전화)

대면 미팅

나는 매체를 운영함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도달되었다. 동시에 온갖 세상 뜨내기들과 연결되었다. 댓글도 보고, 메시지도 주고 받고, 메일도 주고 받고, 전화 통화도 온 종일 하는데, 실제로 쓸모있는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 의아했다. 직접 대면미팅으로 이어질 정도로 강한 관계는 없이, 상대가 별 생각 없이 엄지손가락으로 10초 만에 남긴 피드백에 내가 10분씩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 억울했다. 각 트래픽 마다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서 서로의 손을 쥐며 인사하고, 커피를 서로 사겠다며 다투는 정도의 인연은 10통의 메일 혹은 전화를 받으면 1회 발생했다.

10,000,000도달 = 1,000,000PV = 100,000좋아요 = 10,000댓글(공유) = 100메시지 = 10메일(전화) = 1미팅

 

따라서, 내가 당신을 만나 커피를 한 잔 마신다는 것, 그 관계는 페이스북에서 1천만 명에게 도달하고, 10만 명에게 따봉을 받는 것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

이 외에도 술자리를 갖는 관계의 무게 X10, 메말라빠진 디지털 시대에 쓰여진 아날로그 감성 손편지의 무게 X10,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관계의 무게 X10로 측정해보려고 했으나 무리수인 것 같아 그냥 관둔다.

 

난 3년간 매체를 운영했고, 3달 전부터는 거래 중개일을 하고 있다. 다시금 확인한다.

10만 개의 페이스북 좋아요 보다 10만원 짜리 거래 한 건이 훨씬 중요하다.

사업의 정체성 찾기

기술기반도 아니고, 혁신적이지도 않았으며, 비즈니스 모델도 명확하지 않아 좋은 투자대상도 아니었다. 따라서 스스로를 스타트업이라 하지 않았다.

산업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발을 들이려 미디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창업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간다. 이 쯤되니, 스타트업이고 말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나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일까? 라는 궁금증이 든다. 그래서 기록을 남겨보자면;

 

2014년 06월 온라인 큐레이션 매거진 & 페이스북 페이지
2014년 07월 식품산업의 MICE 활동을 온라인화
2014년 09월 셰프를 소재로 하는 버티컬 미디어 – 셰프에 관한 뉴스, 셰프가 보는 뉴스
2014년 12월 F&B 관련 업체들이 함께 쓰는 코워킹 스페이스
2015년 01월 미식 콘텐츠 기업 – 식품기업 홍보 & 마케팅 대행
2015년 03월 요리사에게 가장 신뢰받는 온라인 미디어
2015년 05월 주방근무자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2016년 02월 News & Jobs 모델로 F&B의 산업인력을 위한 구인구직 서비스
2016년 04월 레스토랑의 수발주 시스템 – 외식산업의 B2B 시장 47조 중 음식점납품은 27조
2016년 06월 ….

 

이렇게 많은 일을 벌이고, 조사하고 그림 그리기를 반복한다. F&B 산업은 테크황무지라는 것은 명확한데, 내가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 수 있겠단 확신이 없으니까 계속 헤매는 것이다. 기술이 있어야 한다. 기술을 내재화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요리를 비유로 든다

<지의 편집공학> – 마쓰오카 세이고

조리를 할 때에는 야채 따위의 떫고 쓴 맛을 우려내거나 곁들일 것을 잘게 썰거나 가스렌지의 세기를 조절하며 몇 가지 과정을 함께 처리한다. 그리고는 도자기 접시나 옻칠한 그릇 등을 선택해서 보기 좋게 양을 조절해서 담는다. 심지어는 ‘솔잎을 곁들인 성게 알젓 순무찜’ 등과 같은 타이틀을 생각해 내기도 하고 손님의 식사 습관에 따라 음식을 내는 시간까지 맞춘다. 이것은 정말 훌륭한 편집이다.

<빡신기획스쿨> – 박신영

“생활속에서도 많은 기획을 합니다. 어떤게 있는지 찾아볼 시간 7초 드릴게요.” (샹송이 흐른다.) “뭐가 있나요?” “요리!” “스냅 두번~ 요리, 어떤 재료를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이 다르게 나오는 요리는 기획의 좋은 예죠.”

광고나 마케팅 뿐만 아니라 결혼식, 요리와 같이 기획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과제를 찾고 해결책을 내놓는 이 모든 과정이 기획이다.

디자인학도 – 윤춘근

요리도 물론 디자인이다. 외향적인 모습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 뿐만 아니라, 결과물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과정까지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적인 의미는 모두 다르지만 이렇게 요리가 자신의 분야라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기획, 디자인, 편집이라는 행위들을 조금 큰 그릇에 담는다면 담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그 그릇에는 편집/기획/디자인 이외에도 문제점, 과제에 대해서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으려는 시도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이것들을 ‘인류의 삶 개선’이라는 또 다른 큰그릇에도 담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내 에너지를 여기다가 쏟아붓고 싶다.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 노동자가 되기 싫은 이은호가 노동절에 (2012-05-01)

사물은 발전할수록 사물은 본질에 가까워진다.

내가 디지털영상을 배우는 학교엔 암실이 하나 있다. 흑백사진을 인화하는 곳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필름 소비량은 줄어만 가는데 사진과에서도 배우지 않는 암실수업이 영상전공 학과에 떡하니 있다. 사진과에서 고지식한 교수 하나가 넘어왔는데 영상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니 머라도 가르친다고 가르쳤던 게 검은 방에서 약품냄새 풀풀 풍겨가며 사진 현상하는 수업이었다.

DSLR 카메라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암실수업은 필요한가? 난 필요 없다고 말해보겠다. 내가 필요 없다고 말하면 우리 교수님께선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실 게 눈에 선하다. “사진이 발전해온 역사를 배우지 않고선 사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거나 “정성들여 사진을 한 장씩 인화해 본 사람만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디지털편집이 보급화 되면서 방송국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테이프 두 개를 동시에 기계 안에 넣고 복사를 했던 ‘리니어 편집’방식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컴퓨터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넌-리니어 편집’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전에 비하면 너무 고생을 덜 한다는 이유였다. 고생을 하지 않는 편집,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태우지 않는 편집은 편집자의 참 모습이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술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아마 ‘오리지널’과 ‘본질’의 차이점을 오해하는데서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리지널’은 그야말로 시간상에서 앞서 존재했던 것들을 말하지만, ‘본질’은 그 사물의 존재의 목적에 더 가까운 것이다. 위의 사람들은 두 개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이 고지식한 아저씨들을 보면서 원시인들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구석기인들은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차례대로 맞으면서 기술의 발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돌도끼를 쓰던 중, 청동도끼가 나오니 돌도끼를 버리고 쇠도끼가 나오니 청동도끼를 버렸다. ‘Orignal’이라는 단어에는 ‘기원이 되는’ 이나 ‘최초의’ 라는 좋은 뜻도 담겨 있으나 동시에 ‘구식의’라는 뜻도 함께 담겨있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새 기술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한 구식에 정을 떼질 못한다. 이유는 사실 기술이 너무 급속도로 발전하다 보니 자신들은 그 기술을 따라갈 자신이 없는 거다. 나이가 어린것들이 순식간에 배워버리는 그 기술이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정체는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상대적인 퇴보를 겪게 되니 난감하여 헛소리가 저도 모르게 세어 나오는 것이다.

청동기인들은 새로 나온 쇠도끼를 보고 ‘이것이야 말로 도끼의 진정한 완성형’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도끼는 도끼의 오리지널이긴 했지만, ‘날카롭고’, ‘단단하고’, ‘사용하기 편한’ 도끼의 본질에는 전혀 거리가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이다.

필름 사진기가 사진의 역사에서 오리지널이긴 하겠지만, ‘선명하고’, ‘사용이 편하고’, ‘셔터스피드가 빠르고’, ‘색감이 좋고’ 등의 사진이 지향하는 목적까지 발전하기엔 한계가 있는 기계라는 것이다.

기계뿐만이 아니다. 파피루스나 대나무 또는 천 쪼가리 위에 글을 썼던 옛날에 비하면 오늘날의 책이 ‘기록을 남기기 위한’ 책의 의도나 목적에 가깝다.

성냥보다는 라이터가, 소보다는 트랙터가, 연필보다는 샤프가, 짚신보다는 나이키가, 선풍기보다는 에어컨이, 삽보다는 포크레인이, 디스켓보다는 CD나 USB가, 편지보다는 e-mail이, 브라운관보다는 LED가 제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술이 인간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너무나 명백하게 역사적으로 남겨진 사실들이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기술들은 발전되었고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은 기술은 개발되지도 않았다.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했고, 자유로운 인간은 더욱 기술을 발전시켰다. 오늘날까지도 인간과 기술은 뗄 레야 뗄 수가 없다.

한참을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얼핏 기술 예찬론자처럼 보인다. 기술의 장점만을 떠들어댔다. 하지만 기술도 완벽하지 못하다. 내가 위에 나열한 것들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구식의 것을 도태되게 만든 최신기술의 선두주자’ 쯤이 될 수 있다. 오늘날의 기술들이 가지는 한 가지 더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효율’이다.

효율이 대량생산체제를 만들어서 실업자를 무지막지하게 쏟아냈다. 효율이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도록 하였고 일부 인간은 비인간적인 계산기로 만들고 일부의 인간들은 낙오자로 만들어냈다. 효율성을 지향하는 기업이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람을 버린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인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효율에서 나온 것이며, 효율은 기술이 지향하며 달려가는 종착역이다.

인간의 손을 통해서 실현되지만, 전혀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기술은 인간의 친구인가? 적인가? 기술이 앞으로도 계속 효율을 따지며 자가발전 할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부정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 인정해야 할 암흑시대의 임박이다.

글을 쓰는 중에 글의 의도가 많이 바뀌어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되었다. 시간도 늦었고 어딜 손봐야 될지도 모르겠다. 글은 이만 줄인다.

애초의 의도는 ‘기술은 발전하는 만큼 교육자는 퇴보한다.’는 의도였다.

몇일 전에 썼던 글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예술도 발전한다.’ 와 대칭되는 글이다.

20100614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