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한국 술집 ‘안씨막걸리’에는 유독 두 부류의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젊은 층의 손님과 외국인이다. ‘음식점 최고의 인테리어’라고도 불리는 손님은 때로 그 음식점의 정체성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꾸준하게 같은 부류의 손님이 찾아오도록 이끄는 건 바로 음식이 아닐까?
안씨 막걸리는 올해 들어 주방장을 새로 바꾸고 비스트로 콘셉트를 완성하고 있다. 완성 중이라는 증거는 주방에서 찾을 수 있다. 김봉수 요리사가 주방장이 되자 음식도 바뀌었다. 단골의 방문이 끊어질 수도 있는 주방장 교체였지만, 손님들은 바뀐 음식에도 거부감이 없는 눈치다. 지난 1월 매출은 일 년 중 가장 높을 수밖에 없는 작년 12월 매출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리고 매출 기록은 매월 경신하고 있다.
사실 최근 들어서 안씨막걸리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건 이런 매출이 아닌 주방장의 연봉이었다. 1988년생인 젊은 요리사에게 5,000만 원의 연봉을 책정한 것. 참고로 우리나라 10년 차 대졸 직장인의 평균 연봉이 4,100만 원 정도고, 특급호텔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요리사의 월급이 300만 원 정도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요리사에게 이런 많은 연봉을 주게 된 것인지, 안상현 대표와 김봉수 요리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 “연봉 5000만 원의 주방장을 모십니다.”
작년 11월 안씨 막걸리의 안상현 대표가 새 주방장을 구한다는 채용 공고를 올렸다. 5,000만 원이라는 많은 연봉을 제시하자 업계가 술렁였다. 충격적인 조건은 연봉이 다가 아니었다. 한국 술집이니 한식 요리사이어야 한다거나 특정 경력 이상의 요리사만 지원할 수 있다는 제약이 없었다. 다만, ‘한국 술과 어울리는 음식이면 어떤 요리를 만들어도 된다’는 것이 계약 조건의 골자였다.
처음 공고를 내자 주변의 반응이 갈렸다. 응원의 메시지 또는 너무 무모하다는 것이다. 그 중 무모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이태원동에 다수의 음식점을 운영 중인 장진우 대표도 술자리에서 “형은 이제 망할 거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ChefNews – 근데 아직 망하지 않았네요? (웃음) 제가 봤던 조건 중에는 연봉 5,000만 원이 가장 눈에 띄더라고요. 그런 조건을 내건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상현 – 지난번 공고를 낸 이유는 직원을 뽑기보다는 좋은 동업자를 찾기 위한 것이었거든요. 사실 안씨 막걸리가 2년 반 정도 됐는데, 그동안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첫해에는 특별한 요리 없이 (위스키)바처럼 운영했는데 잘 안 됐죠. 월 매출 1,000만 원 정도? 거의 망한 거나 다름없죠. 하하하. 그래서 ‘요리사가 필요하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젊은 요리사들이 많이 일했는데, 맘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땐 저도 셰프의 역할이나 주방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요리도 할 줄 몰랐으니까 상황은 더 심각했다고 봐야죠. 그러다 안주원 요리사가 주방을 맡게 되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구글 직원이었던 안주원 요리사는 <구글보다 요리였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녀가 직접 개발한 안주는 안씨막걸리가 맛있는 요리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고 손님이 몰려들자 주방의 피로도도 덩달아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녀는 작년 12월을 끝으로 안씨막걸리를 떠났다.
안 – 제가 가진 신념 중에는 ‘훌륭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있어요. 식당은 일류 요리사와 일류 경영진의 합이 맞아야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봐요. 우리는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일류 요리사가 필요했고, 그에 맞는 조건을 내걸 필요가 있었던 거죠.
아무리 그런 목표가 있다고 해도 요리사에게 과도한 급여를 책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메뉴를 새로 만들어내야 했고, 계절별로 신메뉴도 만들어야 한다면, 급여 외에도 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안 – 우리는 일반 식당과는 조금 다른 경영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저도 월급을 받는 CEO입니다. 안씨막걸리는 주식회사의 형태로, 100명이 넘는 투자자가 있고, 저를 포함해서 이분들이 안씨 막걸리의 주인인 거죠. 아시다시피 회사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매출의 일정 비율을 재투자할 필요가 있잖아요? 식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오너의 탐욕 때문에 재투자로 이어지는 순환고리가 끊어지거든요.
우리는 창업할 때부터 남다른 목표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핵심 투자자와 저는 3가지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국수주의와 사대주의, 이색주의에 갇히지 않는 것. 이 세 가지 목표는 투자에 대한 관점도 바꾸게 했습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에 가게의 정체성을 만들어낼 때까지 얼마든지 투자해야만 했습니다. 요리사를 쪼면서 메뉴를 급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던 거죠. 자금이 많아야 할 수 있을 법한 일이라고 하셨죠? 어쩌면 확고한 목표의식이 우리의 자본이라면 자본일 수 있었겠네요.
여타 식당과는 다른 부분이 이것이다. 안씨막걸리는 주방장이 바뀌어도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도록 음식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주방을 책임지는 사람이 달라지면, 음식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식당에 보고 배우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요리사는 비용이 아닌 투자의 대상이다”
정식당에서의 경력 외에도 호주와 미국에서 요리사로 실력을 쌓아온 김봉수 요리사. 그가 바로 안씨막걸리의 새로운 주방장이다. “동년배 요리사 중 가장 먼저 헤드 셰프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것”이라는 안 대표의 설명만으로는 그가 어떤 요리사인지 다 알 수 없었다.
김봉수 요리사는 호주에서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상태여서, 안씨막걸리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당연히 높은 연봉으로 요리사들 사이에서 쟁점이 된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평소 믿고 있던 선배요리사의 ‘좋은 일자리가 생겼으니 한번 미팅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김봉수 – 지금까지 음식과 술을 페어링 할 때 와인으로만 해왔기 때문에 우리 술로 페어링 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를 갖게 했습니다. 근데 알고 보니 이 자리가 굉장히 쟁점이 된 자리더라고요. 사실 5,000만 원이라는 높은 연봉을 알았거나, 주변에서 이 자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눈치챘다면, 안 했을 거예요. 하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이런 조건을 알았죠.
김봉수 요리사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원했던 조건은 이러했다. 첫째 식당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줄 것. 두 번째 시장에 갈 때 이용할 차량을 제공해줄 것. 그리고 만드는 음식에 최대한 관여하지 말 것. 모든 조건은 음식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요리에 대한 수준은 요리사가 지켜야 한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었을까? 안 대표는 물론 이 조건을 모두 들어줬다. 그래서 지금은 식당 2층에 마련된, 원래는 안 대표가 지냈던 방을 김봉수 요리사에게 내줬다.
CN – 일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어땠나요? 주변 반응이 뜨거웠을 것 같은데요.
봉 – 처음에는 요리사분들이 손님으로 많이 오셨었어요. 저를 아는 분뿐만 아니라 저를 모르고 오신 분들도 많았죠. 술집인데, 술은 안 드시고 안주만 드시고 간 경우도 많고요. 어떤 요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셨나 봐요. 아무래도 요리사 손님이 오면 더 부담되기는 해요. 음식을 즐기기보다는 검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니까요.
혼자서 주방 일을 하다 보니, 주 7일을 꼬박 출근했다. ‘빨리 달리면 오래 달리지 못한다.’ 안 대표는 너무 열심히 일하는 주방장의 몸 상태를 고려해 주 5 일만 일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방안 가득 조리도구를 채워놓을 만큼 요리에 집중하고 있던 김봉수 요리사는 업무시간도 정해놓지 않았다. 새벽에라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1층 주방으로 내려와 음식을 만들어 볼 정도였다.
봉 – 저도 5 일만 일하면 좋죠. 근데 제가 여기서 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요리사분들이 손님으로 계속 오시는 거예요. 절대 대충 할 수가 없었죠. 다행히도 지금은 같이 일하는 요리사가 생겨서 더 나은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지금은 5일 정도 일하고 있어요.
실례를 무릅쓰고 2층 방으로 올라가 봤다. 개인 공간이라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방에는 옷가지와 컴퓨터, 책상을 제외하고는 최신식의 조리 기구밖에 없었다. “아침에 음식 냄새 맡으며 일어나면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는 김봉수 요리사에게 다른 질문을 더 할 필요는 없었다.
| “구직자로서의 요리사, 매너를 지킬 필요가 있다.”
채용공고가 공개된 후 한달 동안 받은 이력서는 40개. 이 중에 25개만 봐줄만한 정도였다. 새벽에 안 대표에게 전화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사실을 확인하는 요리사도 있었다. 정당 부대변인, 소셜커머스 업체의 전략 기획실장 등의 이력을 갖고 있는 안 대표로서 요리사들의 비즈니스 미팅 실력에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안 – 이력서를 받고 채용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요. 요리사들이 요리 실력 뿐 아니라, 비즈니스 예절에 대해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새벽에 전화해서 누군지 밝히지도 않은 채 ‘진짜 그 연봉 주는 거냐, 얼마나 일할 수 있냐?’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거죠. 또한, 요리사들이 이력서 작성이나, 구직자로서 경쟁력을 더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과거 자신이 어떤 레스토랑에서 일했는지 속이거나 과장하지 않고 정확하게 알려야 하는 문화도 정착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말한 일류 요리사와 일류 경영자의 만남은 식당의 규모와 상관없이 중요하다. 술집을 넘어 고급 한식전문점 오픈도 계획하고 있다는 이들의 포부는 그래서 더 기대된다. 안씨막걸리의 도전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현대카드에서 제공하는 상권별 매출 기록에서 동상권에서 상위에 오를 정도로 장사가 잘되고 있다. 앞서 말한 매출 신장 기록도 증거다.
과연 우리는 요리사를 투자의 대상으로 삼은 ‘술집’의 성공을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