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3년 사이에 발생했던 사건 중, 오늘 아침의 인생 첫 요가는 가장 재밌는 사건이었다. 스노우보드를 처음 탔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스노우보드를 타기 위해 태어났다고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 복싱 도장을 한 달 쯤 다녔을 때에도 그런 느낌이 들었었고, 비트박스로 뽀꼬찌꼬 비트를 쪼갤 수 있게 되었을 무렵에도 그랬다. 내 인생이 나아가야 할 선명한 길이 펼쳐지던 순간들이었다.
물론 나는 그 길들을 걸어가진 않았다. 그런 느낌들은 아주 잠깐 동안만 지속되는 착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한 착각에 빠지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설령 착각에 빠진다 하더라도 그 몰입의 상태를 온전히 즐기기보다는 경제적인 계산을 하는 탓에 몰입의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게 되었다.
어른이 된 나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얻었다. 그린스톤을 쥐면 14,000,605가지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만, 나는 신통한 돌 없이도 100가지 미래 정도는 예상해낼 수 있다. 물론 모든 상황이 통제되었을 때에만 해당하는 얘기지만, 비즈니스나 업무라는 환경은 딱히 달라질 것도 없어서 예상은 대체로 들어맞고, 나는 능력을 계속 강화시켰고, 그덕에 밥벌이는 하고 있고.
문제는 이 능력이 업무적 환경이 아닐 때에도 계속적으로, 상시적으로, 반사적으로, 자동적으로 정보를 처리해댄다는 점이다. 나는 OS를 셧다운하지 않으면서 이 프로그램을 끄는 방법을 아직 익히지 못했다. 이 저주받은 능력은 생각의 습관을 넘어, 행동의 습관에도 젖어 들었다. 나는 어떤 활동을 하기보다는, 그 활동을 했을 때에 전개될법한 100가지의 미래를 예상하고, 결실을 이미 맛보았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다시 내려올건데 산에 오르면 뭐하나. 고작해야 바람 시원하고 경치 좋겠지. 밥맛도 좋겠지. 좋은 것들은 딱 거기 까지야. 그리고 산에 오른다고 했을 때에 지금부터 할 일은 대분류 6가지와 하위분류 17개로 꼽을 수 있는데, 그럴바에 그 시간에…” 미래예상과 선택지의 경제성 검토는 몇 시간이고 계속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순환 루프에 빠지면 마치 폐쇄회로에 갇힌 듯, 의식적으로 그 과정을 강제 종료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이쯤되면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생각을 당한다는 쪽에 가깝다.
이러한 상태는 분명 정신장애로 진단될 것임이 분명했다. 현대의학에서 정신장애의 진단 기준은 “일상생활이 가능한지”로 구분되고 있는데, 미셸 푸코가 말했듯이 생산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인간이 생산의 도구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생산성이고 나발이고, 지금 내 정신상태와 같이 살아가는 것은 하루하루 매순간 버거우니 고쳐줄 방법이 있느냐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물었더니, 거의 모든 정신상태를 지칭할 수 있는 포괄적 만능 진단인 우울증으로 귀결시키고는 약이나 받아가라 하길래, 약을 먹어서 생명활동을 둔화시키는 처방은 근본적 문제를 전혀 고치지도 않고 현상만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조치일 뿐인데다, 너의 고정고객이 되어 지갑에 빨대까지 꽂히게 되는데 내가 왜 그 처방을 받아들여야 하냐고 대꾸했더니, 상담치료라는 것도 있다곤 하셨는데 진심으로 상담치료를 제안한 것은 누가봐도 아니었으며, 대화가 길어지니 상담을 급히 마무리하고 싶어 환자가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에도 없는 선택지를 제시하셨던 것이었다.
나는 선택지를 예상하고 계산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며, 그 능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이미 설명드리긴 했으나, 이번에는 직접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이 제시한 선택지를 나는 즉시적으로 계산해냈다. 당신은 환자 개인의 멘탈웰빙이나 주체적 자아를 찾게 해주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파악되는데, 이 약국이 번화가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용이한 점을 내세워 간단히 약만 처방받길 원하는 분들을 주요 고객으로 설정했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이 비싼 부동산 값을 감당하지 못할 건인데다 앞서 진료실에 들어갔던 분들이 5분만에 진료가 마쳐지는 것을 토대로 나의 추론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내가 파악한 정황이 맞다면 나는 이 병원에서 유치하고자 하는 환자의 유형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내 상태를 진단하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이렇게 당신을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상담치료를 하더라도 진솔한 대화는 애초에 시작되지도 못할 것이라고, 속사포처럼 쏟아내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5분진료-처방전수령 서비스를 희망하는 주요고객이 진료실 밖에 다섯이나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리를 비켜드렸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실망스러운 상담경험은 낙담으로 이어졌다. 100가지의 미래 중에서 적합한 상담 선생님을 찾을 수 있는 미래는 3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33회의 시도를 해야 만날 수 있을 것인데, 그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상담 비용이 3만원씩 발생한다고 해도 100만원의 탐색-기회비용이 발생할 뿐더러, 비용은 제쳐두더라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더라도 몇 개월은 족히 걸릴 것이라, 나에겐 그정도의 의욕이 없으므로, 이번에도 역시 실행으로 옮기기보다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내고 100가지의 삶을 살았다고 착각하고 탐색을 종결했다.
이럴 땐 몸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에, 수영을 끊어 6주째 다니고 있다. 요가를 다닐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스트레칭 같은 거라고 생각해서 뭉친 근육을 풀러 갔던 것이었다. 기괴한 자세로 자해적인 고통을 발생시키는 변태적인 활동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요상한 놋그릇을 때리며 영적인 느낌에 빠져드는 음침한 분위기에도 영 거부감이 있었다.근 3년 사이에 발생했던 사건 중, 오늘 아침의 인생 첫 요가는 가장 재밌는 사건이었다. 내 정신은 새로운 탈것을 얻었다. 세 번째 자세를 했을 때부터 내 OS는 [Ctrl+Alt+Del > 작업관리자 > 요가 외 모든 프로그램 일괄 즉시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