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가는 박성규에게

성규야
어렸을 때 어른들은 항상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들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어른인가보다.

33살은 분명 아저씨의 나이지만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는 니가 제일 먼저 장가 간다.

내는 우리 행님 결혼식 때
봉투 걷느라고 바빠 갖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근데 막상 니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까,
새로운 가정이 꾸려진다는 게
참 경이로운 일이구나 새삼 느낀다.

7년 사귄 여자친구랑 헤어진 만석이도
9년 사귄 여자친구랑 헤어진 경진이도
그렇게 결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뭐, 내도 그렇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결혼은 사치라고 합리화 하지만
한 여자에게 평생을 같이 가자고
제안할 용기가 없었던 건 아닌지
못난 우리들을 반성하게 된다.

내가 니를 안지 20년이 지났다.
첫 10년은 같은 학교 같은 동네에서 매일 붙어 다녔고
후 10년은 다른 직장 다른 도시에서 영 볼 기회가 없었다.

친구는 항상 곁에 있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니까 그것도 아니더라.
근데 자주 못 보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어도 니는 그대로더라

내는 니가 커서 개그맨이나 야구해설자가 될 줄 알았다.
니는 어딜가든 말잘하는 웃긴 놈이었다 아이가.
지금도 내 주위에 니보다 웃긴 놈이 없다.

그 웃긴놈 이미지 뒤에
깊이 고민하는 박성규, 성실한 박성규가 있다는 것을
어릴 때는 내가 잘 못 봤더라.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까
니만큼 어른스러웠던 아이도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소풍 갔을 때 기억나나.
다들 김밥에 사이다를 마시고 있었는데,
니 혼자 솔의눈 마시고 있더라.
6학년 1반 박성규가
할아버지 음료수 마신다고 소문나가지고
전교생이 니 주위로 몰려 들었는데
니는 눈하나 깜짝않고 꿋꿋이 마시더라.
그 뚜렷한 주관과 소신과 고집은, 나는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100명이 아니라 해도 옳다 생각하면
니는 그 길을 갔고
설령 그 길이 틀려서 100명이 흉을 보더라도
니는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

웃긴 놈 이미지 때문에
그런 니를 내도 엉뚱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진정한 어른만이 행할 수 있는 용기였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런 소신있는 태도가
안으로는 가정의 기둥이 되고
밖으로는 가정의 방패가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내 니랑 매일 붙어 다닐 때는 몰랐다.
매일 매일이 당연하게 즐거웠고
매일 매일이 당연하게 평안했다.
그런 당연함들이
두 사람의 가정에도 가득가득 넘쳐나길 바라겠습니다.

유쾌한 박성규씨도, 어른스러운 박성규씨도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으니까
남편이 되어서도, 아빠가 되어서도
계속 한결같길 바라겠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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