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교 동기인 친구를 만났다. 모 회사의 인사부 행정직으로 6개월 째 일하고 있다는 그녀는 겨우 반년 만에 300명이던 직원의 수가 90명으로 줄어든 것에 허희탄식했다. 이제까지 해고당한 200명의 직원들을 생각만 하면 너무 미안하다며 특히 40~50대의 아저씨들은 이직할 곳도 마땅찮아 생각 날때마다 입맛이 씁쓸해진다고 했다. 내 친구가 직원들 월급을 챙겨주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해고통보를 날려야 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보람보다는 자책감을 많이 들게하는 나쁜 직장이라고 했다. 동시에 그런 일을 하는데도 돈을 많이 챙겨줘서 좋은 직장이라고도 했다.
직원들을 해고한 이야기를 계속 하다보니까 그들을 누가 해고시킨 것인지가 애매해졌다. 회사에서 잘려나간 직원이 불과 반 년 만에 200명. 설마 입사 6개월 경력밖에 없는 내 친구가 자른 것인가? 최후통첩을 날리고 직원들을 자른 것에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으니 정말 내 친구가 자른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가 그 회사 안에 있지 않았더라도 200명의 직원들은 잘려질 운명을 갖고 있었으니 내 친구의 탓은 분명 아닐게다.
그럼 회사의 우두머리인 사장이 잘라낸 것인가? 회사의 직원들이 나가서 회사의 규모가 작아지면 가장 안타까워 할 사람은 사장이 아닌가. 또 잘라놓고 가장 미안해 할 사람또한 사장이다. 애플사를 설립했던 스티븐잡스는 직원들과 트러블이 생겨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으니 기업에서 쫓아내는 사람이 사장이라고 말하면 안되겠다.
그럼 자른 사람은 없단 말인가? 잘린 사람은 수두룩한데 자른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Give and Take, 액션과 리액션, 작용과 반작용, 자극과 반응이라는 인과법칙을 기본으로 하는 많은 자연현상들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있으면 따라서 자른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자른 사람이 없나? 아무래도 자른 사람은 어디에도 안보인다!!
자른 회사는 있는데 자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사가 잘랐지 어떤 사람이 자른 것은 아니다. 잘린 사람들도 ‘여보, 나 회사에서 잘렸어. 엉엉’ 이라고 말하지 ‘여보, 인사과장 그새끼가 마침내 나를 잘라버렸어’ 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내 친구가 자른 것은 아니지만 내 친구의 직위인 인사과 행정직이 자른 것은 맞다. 그 회사 사장은 자르고 싶지 않아지만 사장이라는 자리가 직원들을 쳐낼 수 밖에 없었다. 기업의 조직적 체계가 기업원들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 목적으로 기업에 들어갔던 신입사원들도 기업이라는 조직에 흡수되고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입사하는 순간부터 명함에는 자신의 이름보다 먼저 회사의 이름이 더 화려하게 나온다.
분명 회사를 세운 것은 사람들인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회사라는 조직의 구성원이나 일부 부품 따위로 취급되고 형체도 실체도 없는 기업이라는 체계에 이끌려 다니게 된다. 형체도 실체도 없는 기업따위가 이성이나 감성이 있을리가 없고 인간과의 정이 통할리도 없다. 차가운 철근 콘크리트를 빌려 존재하는 기업체는 냉철하게 자신의 번식과 생존만을 목표로 인간을 동력원 삼아 부피를 키워간다. 어쩌면 SF영화에서 벌어질 법한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과 같은 일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 덧붙임 (2015.12.18) —–
2010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회로 진출하는 게 겁이 났던 나머지 이렇게 변명의 글을 쓰곤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실 도피를 목적으로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