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는 카페가 잘 되는 이유.

올해 설, 부산에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부산에서 3번째로 번화가인 부산대 앞에 멋진 카페가 새로 오픈했다며 친구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차피 현대인들은 하루에 일정량의 카페인을 마셔야 하고, 이왕 커피를 마실거면 본인이 추천하는 곳으로 가보자고 우겨댔다. 카페의 이름은 제이스퀘어(JQUARE)였다. 이 카페의 건물은 본래 고급 양식전문 식당이었는데, 매출이 좋지 않아 현재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로 넘어간 듯했다. 구글지도에 검색을 해봤더니 ‘㈜세일기업 제이스퀘어’라고 검색결과가 나왔다. 주식회사로 등록된 카페였다. 그럴 수가 있는 이유는 총 4층짜리 건물 중에 1, 2층은 카페로 운영되지만 3층에는 세미나룸, 4층에는 학술공간이 마련되어 카페 이외의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와 다른 공간을 잘 융합시킨 것을 제외하더라도 카페가 잘되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았다. 많은 매력들 중에서도 무엇보다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그 카페로부터 큰 감동을 받은 나는 다른 카페들은 어떤 방법들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고객과의 소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잘되는 카페가 잘되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다양한 종류의 카페와 다양한 컨셉의 카페들이 있는 것처럼 성공한 카페들이 잘되는 이유들 또한 각기 다를 것이다. 반면에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들려서 커피를 마시는 장소’라는 의미는 어느 카페든 가지고 있는 요소일 것이다. 모든 카페들이 가지는 공통요소 ‘커피의 맛’과 ‘매력적인 공간’을 고객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매력을 느끼도록 만드는지, 제이스퀘어에서 경험한 것들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본다.

 

부산에서 3번째로 큰 번화가인 부산대 앞에 위치한 제이스퀘어에 들어서면 한 쪽 벽면에 크게 틀어지고 있는 영상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 2층은 아주 거대한 복층 구조인데 2층 높이가 되는 한쪽 벽면의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상을 1층의 고객도, 2층의 고객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내가 갔을 때에는 두 종류의 영상이 반복되어 틀어지고 있었다. 하나는 지난 11월 카페 새단장을 위해 카페경영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가 기록된 3분정도의 영상이었고, 또 하나는 외국의 유명 바리스타의 에스프레소 추출시범영상이었다.

카페 한가운데에는 빵이 전시되어있는데, 새단장 하면서 베이커리가 새로 생겨났다. 젊은 아가씨 제빵사 두 분이 모든 빵을 만드는데, 완성된 빵을 카페 한가운데 있는 진열대에 올려다 놓는 순간 모든 고객들의 시선은 파티셰에게로 집중하게 된다. 파티셰가 진열대에 빵을 가져다 놓으면서 이렇게 외치기 때문이다.

“제이스퀘어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블루베리 에클레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모든 스탭들이 동시에 이렇게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파티셰 김성희님, 계속해서 맛있는 빵 만들어 주세요^^”

나는 파티셰가 진열대에 빵을 놓으로 온 틈을 타서 최고의 빵을 추천해달라고 말을 걸었다가 한참동안 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를 고르려고 메뉴를 보던 중에는 바리스타가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얘기할수록 나도 궁금한게 많아져서 주문하는데만 1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바리스타와 파티셰가 진심으로 나와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 하고 있었다. 나또한 전문가를 통해서 탁월한 선택을 하게 되었으므로 큰 만족을 했다.

주문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베이커리 안에 김성희 파티셰가 어느새 또 자리로 돌아가 반죽을 밀고 있는 게 보였다. 밤 9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파티셰 두 명은 피곤한 기색은커녕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했다. 2층에 올라가서 일부러 난간 쪽에 자리를 잡았다. 주방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통유리방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방은 카페를 만들기 위해 작업한 흔적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경영기획팀의 방이었다. 아이맥이 2대 있고 많은 양서들과 참고할 카페정보들, 디자인작업중인 흔적들이 남아있어서 경영자가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벽에 영사되고 있는 영상 또한 이 방에서 제작되었고, 간판과 프로모션 안내문도 직접 제작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이스퀘어라는 카페는 모든 공간이 이렇게 투명했다. 평소 나는 고객으로서 무뚝뚝한 편인데 카페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던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나선다면 나는 이 카페를 신뢰할 수 밖에 없다! 2층에서 턱을 괴고 1층의 주방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주방이 가장 전망이 좋은 모서리 창가 쪽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었다. 나는 이렇게 바깥쪽에 위치한 카페의 주방은 본 적이 없다. 일반적인 카페라면 당연히 좋은 전망을 가진 위치에 손님의 좌석을 놓고 주방은 구석으로 위치시키겠지만 제이스퀘어의 주방은 모든 손님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모든 손님들도 주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카페의 구조, 스탭들의 마인드, 경영기획팀의 통유리방, 벽면에 틀어지고 있는 영상을 포함한 카페의 모든 요소들이 하나같이 제이스퀘어의 철학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처음 이 카페에 들어설 때 이런 정보들이 불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커피와 빵을 고르는데는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내가 먹을 것을 누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만드는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한 고객이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니! 나는 나의 통찰력과 카페의 명료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서 또 다시 한번 감탄해서 고개를 떨군 뒤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조금 후 조심스럽게 블루베리 에클레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생크림이 잔뜩 묻은 나의 입가엔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그곳엔 내가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부드러움이 있었다.

 

앞에서 카페가 잘되거나 안 되는 조건으로 ‘커피의 맛’과 ‘매력적인 공간’ 두 가지로 구분지어 생각해보자고 했었는데,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커피가 맛이 좋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모든 카페가 자신의 커피가 최고라고 외치고 있어서 똑 같은 방식으로 커피 맛을 홍보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서 커피의 맛이 좋고 나쁨을 구별하여 카페를 고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즘 대부분의 커피전문점들이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힘들기도 하겠지만, 언젠가 ‘커피 소믈리에’라는 직업도 있다고 들은적이 있다. 그만큼 커피의 종류가 다양하고 맛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커피의 품질차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커피의 맛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커피를 선택하도록 선택권을 주려는 방법은 안일한 생각일 것이다. 사람들이 혀로 커피맛을 구분해내지 못하는 지금, 커피의 맛을 증명하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돈이 많다면 언론홍보를 할 수 있다. ‘조인성이 멋진 펜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내린 커피를 들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커피가 고파질 것이다. ‘카메라를 보고 미소를 한 번 짓는’모습까지 보게 되면 커피가 두 배로 고파진다. 혹여나 커피가 고파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해당 커피의 매출상승엔 기본빵을 하지 않겠는가? 인쇄나 방송을 통해서 홍보되는 것들은 대부분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미각적인 자극을 비유해내는 방식이다. 그럼과 동시에 타 사물의 품격과 명성을 빌려오기도 한다. 많은 커피광고에서 남자연예인의 훈남 이미지를 빌려온다. 본고장의 명성을 빌려오기도 하고, 자격증이나 각종 수상경력들과 같은 인증을 통해 품격을 높인다. ‘세계 최고의 판매량’, ‘우리나라에 10대 밖에 없는 에스프레소 머신’,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 우승’ 따위의 객관적인 사실들은 맛을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프렌차이즈 지점 그 자체로도 홍보수단이 될 수 있다. 브랜드 프랜차이즈 카페에겐 수많은 가맹점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의 간판이 되고 홍보매체가 된다. 이것을 잘 이용한 카페베네는 1년 마케팅 예산을 초창기 3개월에 몰아서 사용함으로 3개월만에 200개 지점을 개업시켰다. 단기간에 지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현상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는 장사가 잘된다.]

[장사가 잘되는 카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지점을 늘릴 수 있다.]

[그러므로 지점이 많은 브랜드 카페는 맛있는 커피를 만들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많은 지점을 무리해서라도 단기간에 개업함으로 ‘사업이 흥하는 이유는 커피 맛이 좋기 때문이다’라는 논리를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심어주었던 것이 카페베네의 전략이었다.

강남대로의 CGV뒤편 골목에 있는 잘되는 카페들 중에 COFFEE REPUBLIC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카페는 커피전문점으로서의 명성을 스스로 표현하고 있었다. 제이스퀘어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얼마나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는데 2층 카운터 앞에 사람 5명의 크기정도 되는 커피 로스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고 비싼 전문기계를 쓸 정도라면 분명 이 커피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커피맛 또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신뢰감이 높아진다. 입구에 널부러져 있는 커피포대자루와 커피원두가 담겨있는 거대한 깡통은 직접 엄선한 커피콩을 공수해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스스로 명성을 인정해내는 카페들의 태도는 여느 카페와는 다른데, 그것은 손님에 대한 관습적인 접대가 아닌 것 같다. 무조건 손님의 취향에 맞춘다거나, 손님이 왕이라며 넙죽거리는 자본주의 시대의 얼빠진 노예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곳에서의 바리스타들은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예술가이자 장인이다.

커피의 맛을 증명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최고의 커피를 만든다는 사실보다 훌륭한 홍보아이템은 없다고 생각한다. COFFEE REPUBLIC과 제이스퀘어에서는 실제로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커피전문점들이 장사가 잘되도록 도모하여 많은 손님들에게 커피를 팔도록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올바른 소비와 판매를 이루어지게 하는 긍정적인 일이다. 반대로 적당히 인지도가 있는 커피원두를 가져와 시급이 낮은데도 불평이 없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커피를 내리게 하는 카페들의 커피가 홍보하는 것은 부정의한 일이다. 인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정정당당한 마케팅이 많으면 좋겠다.

 

카페가 잘되거나 안 되는 또 하나의 조건으로 ‘매력적인 공간’이 있다. 이미 모든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어떻게 차별화 할지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안되는 카페들의 안되는 이유들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인테리어에만 집착하는 실수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카페가 카페를 카페처럼 꾸미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왜 카페가 카페처럼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 장소에서 커피를 팔고 있다는 사실은 간판과 메뉴판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는데 말이다. 언젠가 외국인 친구와 고풍스럽고 이국적인 카페에 들렸다가 “이 인테리어가 너네 나라의 것과 비슷하지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면서 “It’s cheesy”라는 말을 덧붙였다. 건축양식과 외향에 문화와 역사가 깃들어있지 않으면서 그 겉모습만 따라 하는 것은 가식적이고 저급하다는 직설적인 비판이었다. 인테리어가 이국적이고 고풍스럽다고 해서 맛있는 커피를 만든다는 증명이 될 수는 없다. 인테리어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페인트를 두번 칠해서 사포로 문지르면 빈티지한 느낌을 낼 수 있다. 칠판에 분필로 메뉴를 적어놓거나, 폴라로이드 사진을 잔뜩 벽에 붙여놓고, 라이트 브라운의 매끈한 목재로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를 구비한다던지 조경나무를 설치하는 것도 카페를 카페답게 꾸미기 위한 유행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인테리어들에는 피상적인 분위기만 있을 뿐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내지도 못한다. 보편적인 카페 인테리어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이런 양식들만으로는 ‘커피를 만들어 파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있으나 ‘좋은 커피를 만들어 파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담을 수는 없다.

다방에 가면서 커피 맛을 따지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카페에 들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카페들은 다른 공간의 매력을 빌려서 사람을 유도하기도 한다. 특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만을 위한 타게팅이다. 독서공간을 병합한 북카페, 커피도 마시며 운세도 아는 사주카페, 고양이 매니아들을 위한 고양이카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무그늘이라는 카페에서는 닥터피쉬를 체험할 수 있게 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 했었다. 최근 주춤하고 있는 듯한 민들레영토는 어느 카페보다 편안한 최고의 쉼터이고, 음악인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문화와 예술이 함께 숨쉬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카페도 있다. 제이스퀘어는 학술공간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세미나도 개최하여 자기계발에 힘쓰는 청년들의 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카페들이 있을 것이다.

카페들이 다양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카페에 오는 이유들도 다양하다. 노트북을 들고 혼자 개인공부를 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도, 사업얘기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조용히 쉬러 오는 사람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떨기 위해 오는 아가씨들도 있다.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공간을 마련해주는지가 지속적으로 방문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조건이 아닐까? 대부분의 카페들은 이런 공간에 대한 만족을 주려고는 하지 않고 특색 있어 보이려 하고, 튀려고만 하던지, 신기한 것들을 가져다 놓아서 이슈가 되려고만 한다. 카페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그런 카페들은 결국 Cheesy하다는 평을 듣고 카페의 겉모습을 따라해서 돈을 벌어보려는 속내를 들키고 말 것이다.

설 연휴가 지나고 서울로 올라 온 뒤, 제이스퀘어의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보느라 반나절 정도를 보냈던 것 같다. 카페에서 보고 느꼈던 것 이상으로 카페운영진들에 대한 호감을 느낄 수 있었고 젊은 친구들이 참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산다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블로그에는 실제로 카페에 들렸을 때 알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인 ‘내가 먹을 것을 누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들이 충분히 있었다. 바리스타가 웃으며 커피를 내리는 모습, 세계적인 명성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았다는 이야기, 밥보다 빵이 좋다는 파티셰의 이야기, 신상품으로 나온 빵이 너무 잘 팔려서 직원들도 아직 맛보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 실감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또 다시 커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빵 사진을 보면서 침을 한 바가지 흘렸다.

내가 제이스퀘어를 이렇게까지 예찬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하자면; 하나는 앞서 충분히 소개한 카페 자체의 매력이고, 또 하나는 그 카페의 모습을 드러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려 카페를 노출시키는 것은 여느 카페나 하고 있겠지만 제이스퀘어만큼 잘하지는 못한다. 내색을 겸손하게 잘 하는 것, 노력한 만큼 티를 내는 것, 그를 통해서 정정당당하게 인정 받는 것, 그것이 잘되는 제이스퀘어가 잘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PS

여기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으나, 글을 쓰는 중에 나는 지갑을 정리한 적이 있다. 설 연휴 동안 썼던 영수증들을 모두 꺼내놓고 하나씩 보면서 버리다가 이 영수증을 발견하고는 고이 접어서 보관하고 있다. 아.. 다시 한 번 커피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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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이상의 요소들이 만나서 생성되는 이미지들

It’s getting hot.
Don’t get me wrong.
Get off at the next station.
She hasn’t got any excuse.

네개의 문장에 쓰인 동사는 모두 같다. Get. 하지만 의미는 모두 다르다. 한 단어의 뒤에 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미가 단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한국어에서도 예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을 때리다.
문자 한통 때리라.
아, 골때리네.

여기서도 ‘때리다’라는 동사는 여러가지 의미로 쓰였다. 이 동사 뒤에 ‘치다’, ‘보내다’, ‘아프게하다’라는 세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머리가 아파진다.

사실 기호의 뒷면에는 어느것도 없다. 기호는 양면이 아니다. 기호의 모습은 보이는 것 그대로이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다.

기호의 의미가 때마다 달라지는 이유는 뒤에 여러가지 의미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기호들을 만나면서 조합을 이루어내기 때문이다.

영상에서도 한 컷, 한 컷이 다른 컷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기호들은 서로 만나 연결되면서 문맥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의 2차원 선상에 올려놓아진다. 그리곤 해석을 기다린다.

기호들이 만나면서 생성되는 이미지들은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가 가능한지 알 수 없다. 한계를 보지 못할 정도로 광범위한 창작가능의 장이다.

인간들도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요소로 간주한다면, 인간들과 인간들이 만나서 생겨나는 새로운 이미지들은 얼마나 또 많을까. 백명의 사람을 만나면 백개의 인간관계가 생겨나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새롭고 개성있는 색깔의 만남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 인간관계에서는 이 이미지 생성의 가능성이 적절하게 대입되지 못하는 것 같다. 모든 인간관계가 전형적이다. 나는 아직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그 타인은 이미 나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결정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