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 달인

50, 촥, 촥, 51, 촥, 촥, 52, 촥, 촥…

문득 고등학교 때 줄넘기를 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점심시간에 줄넘기를 하곤 했다. 02년도 강서고등학교 2학년 4반 교실 뒤편에서 나는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던 2단 뛰기 50개를 성공한 뒤 쓰러져서 한동안 숨을 헐떡였다. 친구들은 쓰러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대단하다는 존경심을 표하며 내가 숨을 되찾을 수 있도록 부축해주었다. 내가 50개 신기록을 세우면서 줄넘기는 반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친구들도 내 기록에 도전했지만 50개는 커녕 30개를 성공하는 친구도 없었다. 그 당시 옆 반의 한 친구가 유일한 경쟁상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친구는 2단 뛰기로는 내 기록을 깨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3단 뛰기로 11개를 성공해서 이목을 끌었다. 그것은 2단 뛰기 50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나는 무시했고 내가 줄넘기의 최강자라고 우겼다. 그렇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상에서 2단 뛰기를 가장 잘하는 사나이가 되었다.

59, 촥, 촥, 60, 촥, 촥…

나는 이미 내가 세웠던 2단 뛰기의 기록 50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숨은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2단 뛰기의 최고신기록 보유자가 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다물지 못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내가 줄넘기 할 때마다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던 서경진이라는 녀석이 갑자기 줄을 잡더니 필요 이상의 점프를 하며 2단 뛰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점프를 높게 하면 에너지 소비가 커서 20개도 채 못할 것이라고 떵떵거렸다. 그런 나를 무시하듯 20개를 거뜬히 넘기고 30개가 되어서야 콧소리를 조금 내면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서경진은 절대 내 기록을 깨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붉어진 얼굴은 더 이상 붉어지지 않았다. 호흡도 규칙적으로 리듬감을 찾아갔다. 불안정한 점프였지만 사방팔방을 다 활보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2단 뛰기를 성공해내고 있었다. 좀체 멈추지 않는 줄넘기 소리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경진이에게로 모였다.

71, 촥, 촥, 72, 촥, 촥…

경진이는 그렇게 첫 도전에서 74개의 기록을 세웠다. 나는 그 당시 너무 충격이 컸던지 코웃음이 나왔다. 줄넘기에선 나를 능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을 거라 자부했는데 너무나 쉽게 깨지고 말았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서경진은 줄넘기의 신이다. 인간의 한계는 50개이고 신의 한계는 75개쯤 되나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 하면서 나는 인간으로서 2단 뛰기의 최고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74, 촥, 촥, 75, 촥, 촥…

그 이후로 내가 줄넘기 할 때 시선을 주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줄넘기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렇게 경진이의 기록을 넘어섰다. 줄넘기의 신을 능가했다. 신의 한계인 75개도 넘었다.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나는 장담할 수 없었다.

83, 촥, 촥, 84, 촥, 촥…

나는 이미 내 몸의 한계를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산소 공급이 많이 안되는지 팔 끝이 저려오기 시작했고, 눈 앞도 차츰 캄캄해져 갔다. 이제껏 오래달리기를 할 때에도 줄넘기를 할 때에도 이렇게 힘들어본 적은 없었다. 내 몸의 모든 부분들이 고통을 부르지었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턱을 처들려 졌다. 거울 위에 적혀있는 ‘투지’와 ‘집념’이 눈에 들어왔다.

89, 촥, 촥, 90, 촥, 촥…

10개만 더 하면 100개다. 벌써부터 나의 뛰는 폼은 서경진이 뛰던 폼보다 훨씬 불안정해져 있었다.

92, 촥, 촥, 93, 촥, 촥…

단 몇 개만 더하면 100개를 성공할 수 있고 세자리 숫자라는 값진 의미의 신기록이 된다. 나는 숨을 참았다. 눈도 감았다. 입도 다물었다.

97, 촥, 촥, 98, 촥, 촥, 99, 촥, 촥, 100!

줄넘기가 나의 발아래를 빠져나가자마자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100개를 성공했다! 나는 인간의 한계도 넘었고 신의 한계도 넘은 2단 뛰기에 있어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강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고등학생 때 고작 50개를 해놓고 저질렀던 서툰 오만을 나는 반성했다. 그럼과 동시에 더 이상의 최고기록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또 확신했다.
한참을 숨을 고른 뒤 여전히 쓰러진 채로 외쳤다. 누군가와 이 희열을 공유하고 싶었다.

“관장님!! 헉, 헉, 100개 했습니다! 100개! 헉헉.”

관장님이 대답했다.

“뭐.”

관장님은 내가 그렇게 열심히 2단 뛰기 신기록을 세우는 동안 신경을 쓰지도 않으셨나보다.

“헉헉헉. 2단 뛰기 백개 했습니다! 백개!”

관장님이 대답했다.

“그래, 열심히 해라.”

어리둥절해 했다. 관장님은 2단 뛰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으신 것일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왜 모르시는 걸까. 관장님은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오시더니 다시 말씀했다.

“열심 해라, 열심. 막 300개도 하고 그래야 된다. 초딩들 300개 막 쉽게 한다. 열심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