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와 약속

“이거 하면 대박 날 것이다”, “저 아이템은 이제껏 없던 혁신이다” 따위의 이야기들에 진절머리가 난다. 사업은 도박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의 시도에 모든 것을 걸어선 안 된다. 성공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성장이라도 이뤄 내려면… 아니, 그보다 앞서, 최소한의 밥벌이라도 하려면, 실행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오늘 할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통제가능성이 높아야 하고, 통제가능성을 높이려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곱씹기 위함이다.

성과를 낼 수 있겠단 확신이 들면 통제가능성이 높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면 통제가능성이 낮다고 말할 수 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시간, 자본, 인력, 지식, 인프라 따위를 쏟아 붓는데, 인풋 대비 아웃풋을 예측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통제가능성을 알지 못하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무작정 시작하더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한다.

첫 창업에서는 통제가능성이 높게 나오지 않는다. 처음 해보는 일 투성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어느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 개발/생산/인사/전략/영업… 언제 어디서 사건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심지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통제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성공확률도 낮다.

사람의 일자리를 로보트가 대체해나가고 있다. 인간보다 생산성이 뛰어난 이유도 있지만, 로보트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전력이 공급되는 한 약속을 지킨다. 성능이 일정해 비용, 시간, 성과를 사칙연산만으로도 쉽게 도출해낼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일을 로보트에게 맡기고 싶지만, 로보트가 맡을 수 없는 영역의 일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로보트를 만드는 일?

나는 꽤 로보트처럼 일하고자 하는 타입이다. 내 역량과 속도, 체력을 파악하고 있으면 내가 맡은 일의 성과를 미리 계산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안정감이 든다. 내게 주어진 일은 내가 실력을 키운다면 통제가능성을 높여 완수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일해야 한다면? ‘인성이 바르고, 적극적이며, 업계 경력을 보유하고, 특정 툴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의 인재상을 충족시킨 사람이라도 일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은 약속을 종종 어기고, 아무래도 로보트보단 통제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을 더 치밀하게 세우는 것은 어떨까? ‘거짓말 안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가정환경이 화목했던 사람, 취미 특기가 요란하지 않은 사람’ 따위의 항목을 추가하는 것이다. 또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들 하니, 매일 아침 조례를 통해 희망의 연설을 하는 것은? 아쉽게도 이런 방법들이 먹히지 않는 걸 경험했고, 또 전해 들었다.

생각해보면 꽤 간단한 일이다. 사람을 통제할 순 없어도 사람과의 약속은 통제할 수 있다. 약속을 한 번 지킨 사람은 앞으로도 약속을 지킬 확률이 높고, 약속을 자주 어긴 사람은 앞으로도 약속을 자주 어길 것이다. 처음에는 신뢰가 낮기 때문에 주고받는 약속의 크기가 작지만, 약속을 지킨 횟수와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 약속의 크기를 키워나갈 수 있다. 사회에서 어디 일방적인 약속이 있는가? 조금 더 기대했다가 더 받아 내고, 더 받았으니까 더 주고, 더 준 것에 비해 다시 더 큰 걸 받고… 약속의 크기를 키워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사장이 할 일인가 싶다.

나는 누군가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꽤 관대했던 편이다. 쓴소리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약속을 어기는 사람과는 그 이상의 관계를 안 가지면 그만 아닌가?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속 관계가 꽤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그만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 내가 다른 이와 맺은 약속도 어겨지는 구조에 놓였다.

내가 약속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상대가 약속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