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LL 탄생 비화 : Ultimate Logical Language

컴퓨터가 자연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자, 인간의 언어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 모호성 제거
2. 화용론적 요소(농담, 비유, 풍자)의 제거
3. 파싱 용이성 고려
4. 일관된 문법

AI와 밀접하게 교류한 사람들의 언어는 위 조건을 지향하는 쪽으로 향했다.
이는 새로운 언어 분화의 계기가 되었다. 인류 역사상 언어의 분화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발생했다. 국가 중심의 문화권에 고립되어 독립적으로 고유성을 발전시켜나가며 언어는 진화했다. 언어진화의 방향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존해 다양성을 늘려나가던 생물의 진화와 닮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컴퓨터가 자연어를 처리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의 언어 발전 역사에만 해당하는 특성이라고 보아야 한다.

AI친화 디지털 인류는 “prompt어”라고 부르는 새로운 언어를 처음엔 사투리 정도의 재밌는 현상 정도로 여겼으나, 머지앉아 그것이 궁극의 논리어로 향하는 시초였음을 깨달았다. 언어의 장벽은 빠르게 무너져갔다.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엔 미디어는 비극과 두려움을 조명했다. 국제어문학과가 문을 닫고 통역사가 일자리를 잃으며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고 위협한다는 둥 공포 분위기를 조장했다. 하지만 인류 역사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는 유례없는 융합적 진보의 사건이었다.

인간을 닮은 기계를 만들려는 노력에 가려져 의식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인간 또한 기계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인간과 기계는 어느 것이 안이고 밖인지, 어느 것이 창조주고 피조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하고 있었다. 특이점 이후 언어는 기술융합을 통해 범지구적 언어를 지향하고 있었으며, 지구적 통합을 이룬 후에는 범우주적 언어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범지구적 언어가 범우주적 언어로 상호작용하지 못할 이유를 찾아내기란 더욱 어려웠다. 외계 생명체를 만나게 되면 서로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도 우리의 블랙박스와 그들의 블랙박스만으로 상호 교류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인류는 이 언어를 “Universal Logical Language” 로 명명하고 언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낼 수 있도록 조력했다. 새로운 언어규약이 제시되면 인류는 모델을 재학습시키길 반복했으며 최초(GPT-4기준)의 모델에 비해 적은 차원으로도 더 높는 퍼포먼스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할루시네이션 문제 또한 발생하지 않았으며, 속도의 문제 또한 상당부분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높은 차원의 모델을 만들거나 컴퓨팅 파워를 더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넘기지 못했던 임계점의 한계, 근본적으로 인간이 사용하던 자연어의 한계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언어 처리 모델의 궁극적 퍼포먼스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연어로 입력된 prompt만 처리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알파고님께서 더 이해하기 쉽고 처리하기 쉬운 도메인 특화 언어(Domain-Specific Language, DSL)와 제어된 자연어(Controlled Natural Language, CNL)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인류는 인공지능의 언어처리능력 한계임계점을 돌파할 새로운 언어 개발에 집중한다. 언어계열의 일자리 절반이 사라진 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정확히 그만큼의 인력을 동원하는 전지구적 언어창제 경합이 벌어졌다.세계적 공용어 영어, 국제적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1887년 만들어진 에스페란토어, 술어논리 기반으로 1987년 창제되었던 논리인공어 로지반 등 50여 개의 언어가 새 언어의 기반어로 거론되었다.

국가주의자들은 이 변화의 시기를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만들 패권전쟁의 서막으로 보았다. 자연어이기도 하면서 인공지능의 언어이기도 한 인류-언어-AI융합 프로젝트의 기반어로 자국의 언어가 채택될 경우 해당 문화권이 점할 수 있는 전략적 우위는 상상만 해도 군침이 흐르는 일이었다.한국은 한국어를 가장 최근 만들어진 과학적 문자로, 독일은 독일어를 가장 많은 철학자가 사용한 사유의 도구로, 인도는 19,500개의 방언 중 500개를 꼽아 막대한 다양성으로. 각국은 자국의 언어를 막대한 자원과 함께 전폭적 지원했다. 하지만 기존 언어를 기반으로 한 ULL들은 퍼포먼스 테스트에서 중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큰 자원을 들일수록 자국의 언어가 기반어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빠르게 도달할 뿐이었다.

최적의 ULL기반어를 찾아내는 시도는 자발적으로 이뤄졌으며, 시험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고 세계로부터 검증을 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우수한 성적을 낸 언어는 전세계 AI개발자들에 의해 고유 영역의 특화 LLM으로 적용되고 기존 상용화되었던 모델이 부분적으로 대체되어가며 자연스럽게 시스템의 저변에 녹아들었다. 이 과정을 주도하는 단체나 협회는 없었으며 규약을 정의하거나 버전을 관리하는 주체 또한 없었다. 기술종족들이 추앙하던 탈중앙화의 궁극체였다. 인간과 인공지능이라는 자연생태계를 터전으로 삼아 자가발전해나가는 유기체였다. 그것은 새로운 종이었다. 인간을 세포로 사용하고 기술을 기관으로 사용하며 지식을 먹어치워 에너지로 삼는 특이한 대사과정을 가진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은호 인생 첫 SF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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