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결정 방법론 연구 (자전거 코스 결정 방법론)

사르트르는 인생이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고 말했다. 알베르 카뮈는 “자살을 할까, 커피를 마실까”라는 명언을 남겼다. 가장 일상적인 사건과 가장 낯선 사건을 선택지로 두니 실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지난 글 <라이딩 콘셉 결정 방법론>에서 방법론적 접근을 시도했다. 결론이 썩 만족스럽진 않다. 방법론은 언제나 그렇듯 한계가 있다. 구성원이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따르지 않는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방법론은 도움되기보단 탁상공론으로 남는다.

라이딩 코스를 짤 때, 그저 모두가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코스였다면 의사결정 방법론을 적용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또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수준의 케미가 있었다면 방법론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손해 혹은 불만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이익 혹은 만족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론을 꺼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안타까운 수준을 넘어 절망스럽고 비참하다. 올바르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정작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선택지로 향하는 집단적 오류도 흔히 발생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명제를 도덕시간에 배웠음에도 우리는 그 상태에 한발짝이라도 다가갈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방법론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집단적 협력을 통해 인류를 진보의 길로 이끌 유일한 희망이라 믿는다.

기업의 임원은 실무적 노동은 전혀 않고 종일 의사결정만 하는데 그 양이 80회에 달한다. 도구적, 기술적 방법이 없다면 처리할 수 없는 분량이다. 세계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자주 일어나는 언택트(un-tact)의 시대를 맞이했다. 대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훨씬 더 적은 정보만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잦아져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비용 손실은 커질 것이다. 직관, 촉, 케미에 의한 판단은 이미 비합리적인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활용되기 어려워진다. 앞으로 인류는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 뼈저리게 실감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단순히 라이딩 코스를 더 잘 결정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지구적인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물론 나의 본업과도 연관이 있다. 나로선 1타 3피다. 구조적인 선택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다가오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선진적인 자세, 생존과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슬기로운 자세다.

인류가 이제껏 제안한 의사결정방법론만 간단히 추려도 60개 이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먹물들이 써놓은 것들이라 실용적이지 않다. 분야가 상이해 적용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기존에 제시된 방법론도 검토는 하겠지만,  라이딩이라는 분야에 적합한 의사결정방법론을 내가 기필코 새로이 창안하겠다는 각오로 접근할 것이다. 철저하게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구조적인 관점을 고수할 것이다.

 

가위바위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줄곧 즐겨운 친숙한 의사결정 방법론이자 게임이다.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상호 격렬한 대립이나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가위바위보를 통해 결정하게 되면 긴장감도 즐기며 빠르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각자 한 가지씩의 선택지를 주장해야 하고, 자신의 선택지가 선택되길 강렬히 원해야 이 게임의 의미가 있다. 결정 방식은 거의 랜덤에 가까워 비이성적이다. 따라서 승자는 있으나 패자는 없는 경우,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자가 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주로 경품을 추천할 때나, 길거리에서 주운 만원을 누가 가질지를 결정할 때 적용되곤 한다.

동전 던지기 / 사다리타기

가위바위보와 다른 점은 참가자들이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외부의 무작위성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최종결과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순응하게 된다. 승리의 쾌감은 반감되지만, 패배의 충격도 완화시킬 수 있다.

다수결

민주사회에서 만장일치를 이뤄낼 수 없을 때 이용하는 대표적인 차선책이다. 다수의 횡포에 의한 패권주의가 형성되어 소수를 배척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특정 분야에선 다수의 비전문가들 오답을 선택하곤 하기에 이 의사결정 방법이 해당 사안에 적합한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일차원적으로 추구할 땐 좋은 선택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의 총합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고, 문제를 감안하고 갈 뿐이다.

리스트 제시 & 투표

선택지의 이름만 달랑 있고 디테일이 결여되어 있는 불완전 정보로는 올바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없다. 구성원 모두가 선택지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고 있다면 제목만 적힌 리스트로도 충분하겠지만, 추가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택지의 추가 정보를 어떤 형식으로 준비할 지에 따라 다음 4가지 방법론으로 분화된다.

요요 다 붙어라 **

집단의 규모가 너무 커서 부분 집단을 만들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의 맹점은 제안자가 수용적인 상황에 놓인다는 데서 발생한다. 일단 지원자가 모집되면 제안자는 지원자를 검토하거나 심사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지원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상황에 주로 적용되곤 한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제안을 할 때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명시해 공고를 배포하면 지원자를 박탈할 권한을 가질 수 있다.

피칭 & 투표

<요요 다 붙어라>와 개념이 같지만 제안자가 2명 이상일 때 선택 절차가 추가된 것이다. 선택 절차는 다수결의 원리에 따른다. 집단이 분리되어도 괜찮은 상황이라면 <요요 다 붙어라>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도 선택 절차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선택지로 추려야 한다는 상황이다. <요요 다 붙어라>는 제안자가 지원조건을 설정하는 권한을 가진 갑이었지만, <피칭 & 투표>에서는 반대로 구걸과 부탁을 해야 하는 을이 된다. 제안자는 자신의 선택지가 선택될 수 있도록 경쟁적인 홍보활동을 펼쳐야 하는 게 관전포인트 꿀잼 팝콘각이다.

장단점{Pros/Cons} 서술 > 순위 조정

<피칭 & 투표>의 절차에 주관을 빼고 객관성을 가미한다. 개인의 주관이 들어갔던 피칭은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나열하는 것으로 바뀌고, 구성원들의 주관적인 의사표현은 조직 관점에서 합리적인 우선순위 조정으로 바뀐다. 순위의 조정은 1군, 2군, 탈락 정도로 불명확하게 그룹핑한 뒤 1군의 선택지에 대해서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빠른 진행에 도움된다.

시나리오 서술 > 순위 조정 *

시나리오 기법은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상황과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예측해 서술하는 것이다. 장단점을 융통성없이 나열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끌리는 지를 가늠해보려면 생동감있는 정보가 이야기를 전달하듯이 시나리오로 작성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미래의 경험에 대해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냄으로 의사결정권들은 상황별 판단의 근거를 제공받을 수 있다.

후회 최소화 선택 방법론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 창업을 결심할 당시 사용한 방법론이다. 무탈하게 잘 다니고 있던 연봉 2억의 회사를 계속 다닐지, 리스크를 감안하고 모험을 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그는 고민했다. 확정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이익을 모두 포기할 리스크 앞에서 리스크만 따지면 1대 99의 차이다. 그는 리스크를 보지 않기로 했다. 선택을 포기했을 때 얼마나 큰 후회가 남을지를 따지기로 했다. 실리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마음이 동하는 곳으로 향했던 그는 20억의 자산을 포기한 대신 200조의 자산가가 될 수 있었다.

형이 짜르고 동생이 골라 **

케익을 먹을 때마다 싸우는 형제에게 내린 현명한 부모의 지혜를 빌린다. 코스를 제안하는 사람과 선택하는 사람을 분리한다. 코스를 제안하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만 제안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 내려지더라도 만족할 것이고, 선택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만족할 것이다.

모든 구성원의 강제 제안 > 탈락 > 선정 *

우리 회사에서 점심 식당 고를 때 쓰는 방법론이다. 각자 2개의 식당(또는 메뉴)을 제안한다. 제안 개수는 무조건 채워야 하기에 별다른 의견이 없는 날엔 김밥천국이나 3만원짜리 한정식 같은 얼척없는 제안으로 개수를 채우면 된다. 그렇게 6~8개의 선택지가 후보로 제시되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최악의 선택지를 제거한다. 누구부터 선택지를 제거할지, 1인당 몇 개를 제거할 지는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 최종 선택지가 2~3개로 좁혀질 때까지 계속 돌아가며 선택지를 탈락시킨다. 최종 선택지가 2~3개로 좁혀진다면 그 중 1개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체로 최종 단계에선 만장일치로 결정되기 때문에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식당에 향할 수 있어 밥맛도 좋게 느껴진다.

이 의사결정 방법론을 거치면 모든 구성원이 모든 절차에 같은 무게로 관여하게 되므로 입체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의견을 평면배치한다는 것도 좋은 점이지만, 아무런 의욕없이 집단생활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아싸도 참여할 수 밖에 없는 강제사회화 기능도 있다.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무례하다 여겨지는 문제, 내성적인 사람의 소극적인 태도 문제,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해서 자신의 의견을 숨기는 문제를 유쾌하게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매번 무난한 식당을 가게 된다. 탈락 과정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예측불허하고 기발한 선택지는 매번 탈락할 수 밖에 없어 평균 편향 현상이 발생한다.

다중 기준 의사 결정 (Multiple-criteria decision analysis)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여러 기준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경우 적합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입할 때라면 가격, 연비, 승차감, A/S편의성, 기업이미지와 같은 기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평가 기준들은 속성(Attribute) 혹은 목적(Objective)으로 나뉠 수 있다. 속성은 스펙을 따지는 것이고 목적은 해당 선택지를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를 따져보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여러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 MCDA를 사용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평가해도 좋다.

등간 척도와 비율 척도로 나타낼 수 있다면 수량화, 정량화 할 수 있다.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면 연산할 수 있다.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준마다 가중치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관적 판단의 영역, 정성적인 영역을 정량적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준이 많아지면 오히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MCDA + 표준편차 분석 + 끝장 토론

나는 운이 좋게도 어린 나이에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한 적이 있다. 스타트업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 대부분의 스타트업 평가 담당자들은 나름대로의 MCDA를 만들어 썼는데, 자신이 개발한 MCDA의 이유와 근거를 알진 못했다. 이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으나 아무도 해법을 제시하진 못했다.

심사위윈이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온 의견과 실제로 MCDA과정을 거친 평가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작성할 때가 문제인지, 취합하는 과정에서 문제인지를 찾아내야 했다. 우선 점수를 취합하기 전 심사위원들 간의 점수 격차를 눈여겨보았다. 극단적인 점수 차이를 보이는 스타트업을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으로 쉽게 계산해 추려낼 수 있었다. 사업에 대해 이해할 수 없기에 0점을 줬다는 심사위원의 점수는 평균점으로 제출하도록 조정했고, 프로그램과 별개로 이미 스타트업과 인연을 맺어오고 있어 평가에 중요한 정보를 공유한 심사위원 덕에 다른 심사위원의 최종 점수가 바뀌기도 했다. 이런 끝장토론을 한차례 거치고 나니 10팀 중 3팀의 운명이 바뀌었다.

정량의 기법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면서 정성적 논의를 중점적으로 전개시킨 훌륭한 사례랄까. 7년 전 고안한 절차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스럽다.

목표지향(Goal Oriented) & 제한조건(Don’t) 수렴 > 선택지 구성 **

이 방법론엔 모더레이터가 필요하다. 선택지를 제시하기에 앞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다. 구성원은 “이런 라이딩을 하고 싶어요”, “이런 라이딩은 싫어요”와 같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조건을 수렴한 뒤 선택지를 찾거나 생성하기 때문에 선택지 결정 과정은 생략, 축소될 수 있다.

제한 조건이 많아질수록 선택지가 줄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구체적인 제한 요건이 있어야 선택지가 명확하게 추출된다. “흰색 물체 10개를 말하시오”라고 물었을 때보다 “당신의 방 안에 있는 흰색 물체 10개를 말하시오”라고 물었을 때 더 많은 답을 할 수 있다.

Goal은 지향점이고 Don’t는 지양점이다. 추구하는 것과 피하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고려한다. 제한조건(Don’t)을 수렴한다면 구성원들의 불만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악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으로 향할 수 있다.

간혹 대립하는 목표들이 제시될 수 있다. [침질질 운동하고 싶어요]와 [샤방으로 타고 싶어요]는 대립한다. 조건의 대립이 있다면 합의점을 애써 도출하는 것보다 그룹을 쪼개는 판단이 나을 때도 있다.

실질적 문맹률이 높은 대한의 현대인들은 문장보다 키워드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자신이 원하는 라이딩의 해시태그로 표현하라고 하면 의견을 더 많이 수렴할 수 있다.

의견을 수렴할 때 의견의 무게를 구분하는 것이 좋다. [알러지가 있어서 꽃가루 날리는 곳은 불가능해요]는 필수 조건으로 접수해야 하지만 [차량통행이 적은 곳이면 좋겠어요]는 부수적인 조건으로 접수해야 한다. 필수조건과 욕심조건을 구분한다면 의견 수렴에 도움된다.

 

 

* 표기는 라이딩 코스 결정 방법론에 적합한 것

라자냐 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

며칠 전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정리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야망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과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꽤 도움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경제의 구조, 경제의 구성원과 관계, 거래의 기술, 협상의 범위, 가치, 신용 따위의 항목들을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했다. 더 잘 정리된 책이나 자료들은 많이 있지만, 책장에 꽂힌 지식과 소화시킨 지식은 다르기 때문에 어설프더라도 정리하는 것은 도움될 일이다. 이 작업을 통해 경제적인 성공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따져보았다.

내가 지금 하고있는 서비스 중개업으론 부자가 되기 어렵겠단 계산이 나왔다. 애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익을 크게 발생시키는 욕심을 내진 않았다. 사업을 통해 경험자산과 지식자산을 관리하는 순환고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했고, 어느 정도 달성했다. 지금 이 사업으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선 확장성을 높이거나 사업의 통제불가능요인을 제거할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딱히 찾아내지 못했다. 또는 그게 가능하더라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으로 보였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충족요건에 맞아 떨어지는 아이템을 난 이미 갖고 있었다. 라자냐다. 라자냐는 피자와 치킨을 대체시킬 수 있는 배달음식이 될 수 있다. 비싼 양식의 메뉴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방안을 찾아낸다면 지금은 없는 시장을 만들어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땄던 한식조리기능사자격증으로 군대에서 2년 동안 취사병을 했고, 그 기간에 양식조리기능사를 땄고, 호주에 나갔을 때도 주방에서 일하다 온 뒤, 셰프뉴스라는 매체를 3년간 운영하며 국내 외식업계에 있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외식사업에 대해 머리로는 배운 상태이기 때문에 라자냐를 사업화하려는 시도로는 크게 결격사유는 없는 것 같다. 창업도 두 번 했더니 대충 사업이란 무엇인지 감을 잡은 상태라 구상이 빠르게 진척되었다. 최근 나의 일상은 아주 늘어지고 마음이 향하는 프로젝트가 없어서 한동안 방황하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온 종일 하나의 프로젝트만 생각하는 완벽한 몰입의 상태에 접어들 수 있었다. 3년만이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이웃집 라자냐라는 식당 한 곳이 같은 전략으로 라자냐를 9,900원에 팔고 있었다. 처음엔 8,900원에 팔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와우라자냐라는 곳은 6,900원에 파는데 너무 품질이 떨어져 패스트푸드의 대체음식으로 포지셔닝되었다. 두 곳 모두 확장성은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일단 작은 업장을 운영하는 것에 그치거나 배달 및 단체주문을 통해 업장외 수익을 내고 있었다.

내가 라자냐가 확장성이 있다고 생각한 데에는 생산 프로세스에서 효율을 높일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재료준비/라구소스끓이기/라자냐조립/라자냐굽기/라자냐포션/배식] 총 6단계로 나뉘는 생산공정은 세부액션까지 계산하더라도 29단계밖에 되지 않는다. [라자냐포션/배식]은 생산량에 비례해서 단계가 늘어나지만 그 앞 단계들은 생산량이 늘어나도 양만 늘리면 되기 때문에 단계가 늘어나지 않는다. 라자냐 한 판을 구우면 12개가 나온다. 라자냐 하나를 만들어도 29액션, 12개를 만들어도 29액션이다. 24개를 만들면 31액션, 48개를 만들면 33액션, 120개를 만들면 49액션이다. 물론 실제 노동량은 이렇게 극단적이지 않겠지만, 공정의 개선으로 생산성을 높일 지점은 분명 있는 아이템이다.

공정의 개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확장이 가능하다. 한 개의 업장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한계수익은 어떤 아이템이든 얼마나 잘되든 기대수익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월 천만 원 이상 벌진 못할 것이다. 확장을 해야 하는데 그게 직영방식이든 가맹방식이든 확장을 하려면 공정 개선과 공정 통제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가맹사업도 포화시장이기 때문에 본사 측에서 웬만한 생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브랜드만 빌려주는 가맹사업은 존속이 어려울 것이다.

생산 프로세스의 효율을 높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거와 통합의 의도로 접근한다. quantity이다.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효율을 우선적으로 따지지 않는다. Quality다. 이 둘은 대립적이다. 어중간하게 중간에 타협점을 찾으려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가성비로 싸게 팔려면 quantity로 접근해야 하고, 비싼 값에 높은 고객만족도를 얻으려면 quality로 팔아야 한다. 결국 내가 정할 일이 아니고, 고객의 수요가 있는 지점을 공략해야 하지만.

8,900원짜리 라자냐로 연매출 3억을 올리고 1억의 이익을 남기려면 개당 마진 5,000원으로 하루에 300개를 팔아야 한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루에 300개는 하나의 업장에서도 달성하기 어려운 상태이긴 하지만, 라자냐를 통해 부자가 된다는 것은 이보다 더 많은 라자냐가 자동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하되 내가 라자냐의 공급라인을 확실히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략 하루에 3,000개의 라자냐가 어떤 방식으로 팔리는 상태를 라자냐로 부자가 된, 라자냐 왕의 상태라고 설정해보자.

라자냐를 통해 부자가 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출발은 여러 방식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의 출발점과 목적지를 구분해보자면 목적지는 하나, 출발지는 여럿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임대주방에서 배달로만 시작하는 방법도 있고, 동네 골목에서 1차상권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또는 59쌀피자나 피자스쿨이 폐업한 업장을 인수받아 (조리설비를 거의 그대로 쓸 수 있으니)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출발하든 거쳐야 하는 중간 목표들이 있다.

하나의 업장에서 300개를 판매하는 것 > 직영이든 가맹이든 판매 접점을 5배로 늘리는 것 > 생산공정의 중앙화를 이루는 것이다.

여전히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저가의 라자냐 판매점들은 조리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고객의 불만족을 떠나 회전률의 한계가 발생한다. 라자냐의 조리는 슬로우푸드지만 배식은 패스트푸드처럼 빨라야 한다. 배식의 효율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면 판매접점 확장은 이루지 못할 것이다.

생산공정의 중앙화는 반조리상태로 판매점에 납품되는 것을 말하는데, 고객입장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양식이란 해외의 르꼬르동 같은 어려운 이름의 조리대학교를 나온 젊은 사람이 점잖게 내어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조리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하물며 패스트푸드도 각 매장마다 직접 조리가 이뤄지는데.

생산공정 / 포지셔닝 / 마일스톤 / 수익화계획도 대충은 산출할 수 있었다. 이정도 사업성을 따지는 데에 불과 2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도 칭찬하지 않았음에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라자냐를 통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은 “할 수 있냐, 없냐”가 아니다. “할 거냐, 말 거냐”

내 마음이 답을 해야 한다. 라자냐 왕이 된다는 것은 이런 이성적인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자냐 왕이 되기까지의 5년의 기간동안 나는 라자냐에 미쳐야 할 것이다. 초기 창업의 2년 동안은 육체 노동에 시달려 하루에 5시간 이상 못 잘 것이다. 이후 3년은 내가 해보지 못한 사업적 확장과 경영적 도전들로 인해 난관을 겪을 것이다. 그것을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니 라자냐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라자냐 왕이 될 것인지에 대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라자냐 왕이 되는 것을 인생과업으로 여긴다면 앞선 마일스톤을 달성하는 것과 요구되는 자원, 맞이하게 될 난관 모두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의 극복의지가 나에겐 있을까? 없다. 지금의 사업도 매진하지 않고 지난 6개월 동안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하면 다 한다. 그리고 해내는 것이 일이기 때문에 해내지 못하면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얼만큼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지도 어느정도 알고 있다.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장대한 장대한 여정을 하기로 결정할 것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성공한 부자는 자신의 일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니 아이템도, 사업성계산도, 단계구상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누구도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고, 두 배로 살 수도 없다. 그 분야에 전력을 다할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사업구상의 진도를 이틀 동안 빠르게 진척시킨 것만으로 충분하다. 라자냐 왕의 꿈은 이렇게 접었지만, 너무나 통쾌하고 시원하다. “너 그럼 식당차려라”라는 얘길 자주 들었다. 그럴 때마다 “식당일은 나이 50먹고 할 거 없을 때나 해야지”라고 답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틀린 답변이었다. 50먹고 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본업에 집중해야 하겠다.

 

자전거 쇼핑 동호회

“건강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누구나 기억하는 광고 문구다. 제품을 팔지 말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교과서적 가르침을 지켰다. 고객은 쇳덩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매를 구입하는 것이다. 쇳덩이라면 오만 원도 아깝겠지만, 건강한 몸매를 가질 수 있다면 오십만 원도 쓸 수 있다. 고객의 문제에서 출발해 제품으로 향하는 것은 판매의 기본이다. 모든 광고는 이 기본원칙을 준수해 만들어진다.

제품의 값어치는 고객 문제의 크기에 비례한다. 문제가 클수록 비싸게 팔 수 있다. 그래서 판매자는 고객이 문제를 크게 인식하도록 부추긴다. 작은 문제는 부풀리고 없는 문제도 만들어낸다. 불안을 조장하고 공포를 유발하는 판매 방식은 지푸라기도 십 억에 팔 수 있는 고급 기술이다. 사람을 물에 빠트린 뒤 지푸라기를 내밀면 된다. 지푸라기를 팔겠다고 사람을 물에 빠트리는 것도, 물에 빠졌을 때 십 억을 내고 지푸라기를 사는 것도 이 곳에선 정상이다. 건강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합법적 거래다.

판매자는 모든 대화를 구매로 귀결시킨다. 나도 꽤 팔아본 사람인지라 그들의 공격 패턴을 훤히 읽을 수 있다. 판매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접근한다면 어디 한 번 지껄여 보란듯이 지켜본다. 그들이 아무리 다양하고 창의적인 공격을 펼쳐도 나의 방어는 한결같다.
“안사요”
모든 종류의 창을 막아내는 만능 방패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쉴 새 없이 공격받았다. 속도를 더 내고싶다 했더니 뭘 사야 한대, 삭신이 쑤신다 했더니 뭘 바꿔야 한대, 훈련을 제대로 하고싶다 했더니 또 뭘 사야 한대, 멀리 가려고 했더니 뭐가 필요하대, 자전거 얘기를 할 때마다 지갑을 열어래. 그래서 입 닥치고 가만 있었더니 먼저 다가와서 문제가 많대. 20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탔다 했더니 자기가 볼 땐 너무 위험해서 곧 사고가 날거래. 이놈들이 나를 아주 물에 빠트리려고 작정했나보다. 뻔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수법이구먼.

“안사요” 방어모드로 일관했지만 이번 공격은 왠지 끊이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났다. 욕을 한 바가지 쏟아 붇고 소금을 뿌릴 참이었다. 그러다 눈을 마주쳤다. 초점없는 광신도의 눈이었다. 판매자가 아니었다. 소비자였다. 딴에는 날 위한답시고 조언했지만 의도치않게 공격이 된 것이다. 이들은 진심으로 돈을 쓰는 게 이로운 것이라 믿고 있었다.

 

판매자를 대신해 서로 물에 빠트리고 돈을 안 쓰면 큰일난다고 호들갑떤다. 자본주의 피착취계급이 자가증식하는 신비로운 관경이다. 부익부빈익빈이 왜 갈수록 심해지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찾았다. 가난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나.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종교나 이념도 이정도의 전파력은 갖지 못했다. 개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디어환경에선 잘못된 신념이 더욱 빠르게 퍼진다. 자전거 레이스는 하덜 않고 경쟁적인 소비 레이스만 펼친다.

돈을 한 웅큼 쥔 채로 문을 박차고 들어와 “Shut up and take my money”라고 외치는 고객을 물에 빠트릴 필요는 없다. 더러운 작업은 하지 않고 신성한 구세주 역할만 하면 되니, 판매자는 신이 나서 고객의 엉덩이에 최고 호갱등급 도장 VVIP를 찍어 준다. 감격한 호갱은 펄쩍 뛰어올라 발로 박수를 치고 앞돌기를 한 뒤 착지와 동시에 넢죽 엎드려 절을 두 번 한다. 감격의 눈물을 닦으며 다음달 월급도 모조리 갖다 바치겠다 맹세하고 뒷걸음질치며 퇴장한다.

 

자전거 고객의 소비행태는 기존의 구매행동이론으론 설명되지 못한다. 기존 이론에선 상품을 보아야 구매의사가 생긴다고 전제한다. Attention Interest [발견>관심] 순서다. 1920년도에 정립된 구매행동이론 AIDMA도 2010년도 미디어 환경변화에 맞춰 개정된 AISAS도 모두 AI단계가 선행한다.

하지만 요즘 고객은 다짜고짜 ASS다. Action Search Share [구매결정>검색>자랑] 어떤 상품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기변 결심부터 한다. 돈이 생기는 족족 다 털어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상품을 검색해 예정된 소비를 하는 셈이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제 구실을 못하는 제품들이 있다. 아껴 써야 하는 수첩, 비를 맞히면 안 되는 가방, 한 달째 비닐포장 뜯지 않은 새 차, 김치국물 한 방울 튀었다고 종일 기분이 우울해질 정도로 비싼 정장. 닳는 게 아까워서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명품 신발. 그런 신발을 신고 어떻게 달리겠는가? 달리는 게 목적이라면 닳아도 아깝지 않을 신발을 신어야 한다.

자전거도 너무 비싸면 제구실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자전거가 월급보다 비싸면 마음껏 밟을 수 없을 것이다. 난 월급이 작아서 중국산 가품을 타지만 대신 마음껏 찢어발길 수 있다. 자전거는 밟고 뜯고 비틀어 당겨서 밀고 던지고 엎어치듯 찢어발겨 타는 것이다. 타다 보면 기름때도 묻고 닳고 망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건 보물이 아니다. 탈 것이다.

 

돈이 썩어 남아서 자전거에 수천만원을 쓰건, 없는 잔고를 쥐어짜 장만하건, 미래를 저당 잡혀가면서까지 빚내 지르건,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나도 판매자들의 소비조장 공격이 달갑지 않듯이 내 자산운용 철칙을 알려주는 것도 상대방에겐 불쾌한 일일 것이다.

“정녕 당신의 인생이 자본주의 소비이념을 전파시키기 위한 숙주로 쓰이다 내팽개쳐져도 괜찮단 말입니까? 깨어나서 주체적 삶을 살아가십시오.”
라고 내 진심을 전하는 순간 그들은 나를 광신도 쳐다보듯 할 것이다. 이어서 나의 공격을 막아낼 만능 방패를 들어올릴 것이다.
“니는 니 대로 살아라(live) 내는 내 대로 살게(buy)”

 

같을 同, 좋을 好. 같은 걸 좋아해야 동호인인데 내가 자전거 쇼핑 동호회로 잘못 찾아왔나 싶다.

당신과 나 사이에 라이딩의 즐거움이란 교집합이 존재하길 바랄 뿐이다.

주법의 해체분석과 새로운 주법의 발견

▣ 연구 배경

주법을 연구하고 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순간 주법을 무한정 다양화시키는 것으로 목적이 변질되었다. 종류만 많아질 뿐 나의 라이딩 스타일 스펙트럼이 넓어지진 않는다.

어떤 일이건 진행과정에서 퇴적물이 쌓여 복잡도가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주기적으로 리팩토링 해줘야 한다. 바탕화면 정리, 디스크 조각모음, 안쓰는 책 버리기 같은거.

미분 후 경우의 수 조합 방법론을 적용한다. 어떤 이는 이런 나를 보고 분류를 하지 않고선 못배기는 분류불안에 빠졌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이런 나의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분류병자라고 욕했다. 어쩌나. 이게 나인 걸. MECE는 나의 삶인걸.

▣ 주법 해체분석 개요

주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속성을 계열로 삼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조합한다.

자전거 위에서 구현가능한 페달링은 무궁무진하지 않다. 안장에 골반의 위치가 속박되는 시팅일 경우 더욱 제한적이다.

밟땡, 밀땡은 가능하지만 밟밀은 불가능하다. 밟거나 밀거나 둘 중 하나다. 크랭크를 회전시키는 역할을 밀어서 수행할지, 밟아서 수행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골반의 위치와 주동근의 차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는 것은 둔근 위주 밟는 것은 대퇴근 위주라고 보면 된다.

시팅에서는 힘의 전달이 안장을 중심으로 전해진다. 핸들 그립의 위치나 상체의 각도, 움츠린 정도는 댄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에어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면 각 주법에 자연스러운 상체 각도와 핸들의 위치를 취하면 된다. 시팅의 상체 포지션까지 의식할 필요는 없다. 척추 모양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니 제 몸이 알아서 찾아낼 것이다.

반면 댄싱은 핸들 그립의 위치와 상체의 기립정도, 무게중심이 중요하다. 골반이 안장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변수들이 많아진다. 변주를 통한 확장응용이 가능하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 연구 난이도는 높아진다. 댄싱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장기연구과제이므로 오늘은 시팅에 관한 얘기만 한다.

▣ 미분, 연산, 출력, 정리

시팅의 경우의 수 : 독립행위 9개에 복합행위 6개 총 15가지 나온다. (3*3)+(2*3)=9+6=15

댄싱의 경우의 수 : 독립행위 18개에 복합행위 12개 총 30가지 나온다. (3*2*3)+(2*2*3)=18+12=30

상체기립의 정도와 그립의 위치까지 고려한다면 경우의 수는 (3*2*2*2*3)+(2*2*2*2*3)=72+48=120가지가 되어 너무 어려우므로 두 속성은 제외한다.

경우의 수가 나온다고 주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현이 불가능한 주법도 있고, 활용효율이 떨어지는 주법도 있다. 제거한다.

▣ 연구 결과

본 연구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시팅주법은 5가지 밖에 없다.

나는 구현할 수 있는 시팅이 7가지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제로는 4가지만 쓰고 있었다. 결국 같은 주법에 이름만 다르게 붙였던 것.

본 연구에 따르면 댄싱주법은 6가지 밖에 없다.

네이밍이 입에 잘 붙는 형태는 아니지만 코드화 해두어서 정보가 함축적이다. ex) 싵전밀땡 : 시트의 앞부분에 앉아 밀고 당기는 주법이란 뜻이다.

▣ 실전 적용 후기 (일단 오늘은 시팅만)

싵후밀 : 둔근으로 민다. 새끼발가락이 앞으로 향하도록 힘주면 신체와 머신은 리듬감있게 비틀어진다. 12시-3시까지 민다. 라이더는 느낌상 수평으로 앞으로 미는 것 같은 착각이 들 것이다. 미는 발 쪽의 후드를 힘껏 잡아 당겨야 후면코어가 골반을 통해 힘을 전달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또는 바탑을 주먹 바깥쪽에 힘을 주어 잡고 팔꿈치를 약간 굽혀 흉곽을 넓히는 것도 방법이다. 프룸의 업힐 그립이다.

싵중밟땡 : 엄밝으로 2-4시 밟는다. 발 끝으로 통통 튀듯이. 반대편 발은 보조하듯 7-11시 당긴다.

싵전밟땡 : 엄밝으로 3-5시 밟는다. 발 끝으로 통통 튀듯이. 스트로크를 짧게 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대편 발은 보조하듯 8-12시 당긴다. 안장 위치만 조금 당기면 각도조절은 알아서 다 된다.

싵전땡 : 장요근으로 허벅다리 당긴다.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립적으로 사용해 다른 주동근들을 모두 쉬게 할 수도 있는데, 파워가 약하고 장기지속이 불가능하므로 스트로크 20번 이내에 다른 주법으로 교대해주어야 한다.

싵전밀밟땡 :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내밀고 숙여 TT자세를 억지로 만들어내낸다. 내전근 주법과 안장위치가 같지만 상체의 각도에서 차이가 생긴다. 둔근도 쓰고 햄스트링도 쓸 수 있어 폭발적인 파워를 낼 수 있다. 지오메트리가 이 자세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둔근을 쓰려면 발목이 꺽인 상태로 눌러야 한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고 안장의 좁은 부위에 골반을 걸어야 하므로 노면이 좋지 않은 상태에선 위험할 수 있다.

▣ 싵전밀밟땡 주법 심층분석

둔근을 활용해 다리를 펼치면서 햄스트링으로 당기는 모션도 동시에 취할 수 있다. 밀어내는 데에 최적화된 포지션은 아니지만 더블 스트로크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단일 근육에 걸리는 부담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더 적은 힘으로 스트로크한다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파워를 낼 수 있다.

싵전밀밟땡을 4월 9일 북악 다녀오는 길에 우연찮게 구현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내전근으로 빠르게 굴린답시고 안장의 앞에 앉아서 에어로 자세를 취했던 것인데, 내전근 페달링으로 굴린다는 느낌과는 뭔가 달랐다. 잘 나가길래 6키로 정도를 그 상태로 밟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 구간 동안 심박이 210이 찍혀 있었다.

높은 심박은 동시에 활용한 근육의 양이 많았다는 것이다. 밟는 근육인 대퇴부는 보조적으로 지원되지만 밀밟땡이 어느정도 가능한 주법이다. 대미지를 큰 근육들이 골고루 분담하기 때문에 심박과 심폐의 능력을 끌어쓸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세의 변화없이도 장기간 지속시킬 수 있다.

이 자세에선 상사점이 1시 하사점이 7시가 된다.

싵후밀을 주주법으로 쓰면 근전환을 자주 해줘야 한다. 안장 뒤에 앉았을 때는 하사점까지 내려갔을 때의 다리가 너무 펴져있는 상태라 땡기는 모션이 비효율적이며 파워를 내지도 못한다. 또 단일 스트로크를 좌우가 번갈아서 반복할 뿐이다. 이 경우 밀어내는 둔근에만 피로가 축적되기 때문에 근전환을 자주 해주어야 한다. 싵전밀밟땡만으로 지속적으로 조질지, 싵후밀을 주주법으로 사용하되 근전환으로 풀어주며 조질지는 선택의 문제다.

▣ 연구 이후

싵전밀밟땡 자세가 더 잘 나올 수 있도록 안장코를 5mm정도만 높이겠다.

주법들의 전환 순서를 묶어서 묶음동작화 시켜 숙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숙달 과정은 이와 같은 이론적 접근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주법들을 조합하는 것 또한 5! 또는 6! 또는 11!의 조합갯수가 발생한다. 39,916,800가지의 조합방식이 존재한다. 전환 순서는 몸이 알아서 찾아내도록 하자. 이제 몸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여라.

팩라이딩 커뮤니케이션 개론

▣ 팩라이딩 개요

솔로로 라이딩하면 200W를 써야 30키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피를 빨면 150W만 써도 30키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룹 중앙에 서면 130W만 써도 된다.
속도가 높아지면 이 차이는 더 커진다. 선두가 40키로를 유지하기 위해 350W를 써야 한다면 바로 뒤에서 피빠는 사람은 220W만 써도 되고, 그룹 중앙에선 200W만 써도 된다.
무리지어 바람저항을 이겨내는 진영을 활용한다면 FTP가 200W인 사람들이 모여서 FTP 250W인 사람의 솔로 라이딩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또는 멀리 갈 수 있다.
모든 이동수단인 본질은 “더 빠르게, 더 멀리”이고,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효율적인 드래프팅과 팩라이딩 기술을 통해 우리는 혼자 달리는 것 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갈 수 있다.

▣ 드래프팅

가깝게 붙을수록 앞차가 일으킨 난류 속에 내 몸을 집어넣을 수 있다. 주행효율을 높일 수 있는 대신 사고 위험은 커진다. 적당히 빨고 안전을 챙기자.
라이딩 호흡을 맞춰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2m 정도가 적당하다. 서로의 라이딩 패턴이 익숙해졌다면 1m까지 좁혀도 좋다. 하지만 1m보다 가까우면 너무 위험하다.
지그재그로 1m의 거리를 두고 달리면 시야도 확보되고 상황 대처의 거리도 있으며 정지가 필요할 때 좌우로 퍼질 공간도 마련되기 때문에 동호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진영이다.

▣ 팩라이딩의 원리

기량의 차이가 크다면 바람을 맞음으로 체력을 의도적으로 소진시킬 수 있다.
기량이 높은 사람이 2~3명 있다면 로테를 돌려도 된다.
로테를 돌리는 선두 중에서도 기량차이가 약간 있다면 60초/30초/10초 씩 로테유지시간을 달리해 체력소진을 배분한다.
5명이서 로테를 돌리되 4,5번은 선두에 서기 힘들 정도로 기량이 떨어진다면 로테방법은 2가지가 있다.
① 60초/30초/10초/0초/0초로 돌리는 방법
② 1,2,3번은 로테가 끝난 후 3번 자리로 껴들어가는 방법

▣ 체력한계 공유의 필요성

팩 구성원 간 서로의 체력한계를 공유해야 한다. 힘에 부치거나, 힘이 남아도는 사람은 자신이 한계에 임박했음을 알려야 한다.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것은 팩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다.
내가 힘이 남는다면 선두에 서서 바람을 맞아 팩에 기여하면 되고, 내가 힘이 부친다면 팩 후미에 서서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야 한다.
체력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버리면 나중에 팩에 합류할 때 바람을 직접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에너지 손실을 혼자 감당하게 되고, 장거리 라이딩이 될 경우 피로도는 더욱 누적된다.
결과적으로는 팩 선두로 2교대를 돌린 사람보다 혼자 흘러서 뒤늦게 쫓아온 사람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결과가 될 것이다.
흐르기 시작하면 에너지 소진 격차는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흐름이 반복될수록 팩 전체의 속도를 더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 번 흘렀다면 속도를 아예 늦춰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 합류해야 하는 것이 좋다.
일부 구성원만 바람을 맞는 것을 미안하다거나 불평등하다고 여겨선 안 된다. 내 체력을 보존하는 것은 나를 위한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팩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이다.
팩라이딩은 함께 간다는 전제가 있다. 퍼포먼스가 가장 떨어지는 구성원을 기준으로 속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팩의 최저속도를 더 낮추지 않게 하려면 나의 체력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존하고 효율적인 주행을 해야 한다.

▣ 팩 찢기

팩의 크기가 너무 크면 아코디언 효과가 발생해 후미의 부담이 커진다. 선두의 가속과 감속이 후미로 전달될 때 증폭되어 급가속과 급감속을 하게 된다. 이는 후미에 급격한 체력부담을 안긴다. 그래서 기량이 부족한 사람은 2~3번째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코스에 변수가 많고, 서로 라이딩 호흡도 익숙하지 않으며, 팩라이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껴있거나, 평속 30이상으로 달릴 계획이라면 찢어야 한다.
난 3~5명의 팩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 커뮤니케이터의 역할

기량이 부족한 사람은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야 한다. 말을 끊임없이 하는 것은 팩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다. 타인의 체력한계를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챌 사람은 없다.
신호는 후미에서 선두로 전달되어야 한다. 선두는 뒤돌아보기 힘들다. 뒤돌아봐서도 안 된다. 선두는 바람을 이겨내고 도로의 상황을 파악하는 두 가지 역할 이외에는 다른 역할을 맡아선 안 된다.
5명 이상의 팩이라면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뒤에서 중간으로 중간에서 다시 앞으로 신호를 전달해야 한다. 팩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페이스 조절을 커뮤니케이터가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가도 좋다는 신호 : 붙었다/더더더/오라이/높여
늦춰야 한다는 신호 : 흘렀어/같이가/못붙어/천천히
오라이는 alright을 말한건데 일본어처럼 들렸다면 기분탓이다. 내가 마 경상도 사람이어가…

▣ 솔직한 의사표현의 필요성

힘이 넘치는 굇수도 힘에 부치는 초급도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해야 그날의 라이딩 콘셉을 결정할 수 있다.
초급이 굇수에게 맞추려고 무리하는 것도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 굇수가 초급을 배려하면 불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게 된다. 달리는 중간에 라이딩 콘셉을 바꾸는 것도 모두에게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2019년 오크밸리 그란폰도에서 울분이 폭발해버린 미녀라이더가 기억난다. 처음엔 자신의 완주를 위해 서포트해줄 것처럼 보였던 남성들이 라이딩 도중 변심해 그녀를 버리고 질주한 것이다. 라이딩 시작 전에 솔직하게 자신의 라이딩 목적을 알렸다면 서로에 대한 원망도 아쉬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달리려고 마음잡고 나왔는데 마음껏 달리지 못하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보통 선두가 가장 열심히, 의욕적으로 타려고 하기 때문에 기량 차이가 클수록 아쉬움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기량이 부족한 사람의 부족의 정도를 솔직히 공유한다. 서로 기량의 차이가 20%정도일지, 30%일지, 40%이상일지 측정한다.
기량의 부족을 커버하며 달릴지, 커버하지 않고 달릴지는 기량이 뛰어난 사람이 우선 결정권을 가진다.
이 의사결정 방법론은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공리주의>에 의거한다.

▣ 라이딩 콘셉 개요

아래 라이딩 콘셉은 기량차이가 발생하는 상황을 전제로 작성되었다. 기량차이가 없다면 이런 콘셉 구분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기량차이가 없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기량차이가 난다고 누군가를 원망해서도 안 된다.
자전거 좀 타려고 생업을 미룰 순 없지 않은가.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하자. 자전거가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라이딩 콘셉과 코스의 상관관계

기량 차이는 곧 선두의 에너지를 의도적으로 소진시킴으로 좁힐 수 있다.
평지라면 라이딩에 가해지는 저항의 대부분이 공기저항이기 때문에 40%의 기량차이가 나더라도 팩라이딩이 가능하다.
하지만 업힐에서는 저항의 대부분이 중력이기 때문에 누구나 같은 저항을 받고, 때로는 후미가 더 큰 저항을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때문에 팩 구성원 간 기량차이가 크다면 평지 중심의 코스를 선택하고, 기량차이가 크지 않다면 업힐 위주의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 라이딩 콘셉 제안

[사이좋은 토끼와 거북이] 후미 최저속도 기준 함께가기 라이딩
모두가 가장 느린 페이스로 맞춰 가는 것이다. 선두는 아마 근질근질할 것이다. 후미는 미안해할 것이다. 좋은 콘셉이 아니다.

[그룹1] 오픈과 팩라이딩의 적절한 배분
오픈 구간에서는 버리고 중간 지점에서 모여서 다시 팩을 이루길 반복한다.
선두의 남는 에너지는 평지 바람막이로 소진시킨다.
구성원의 퍼포먼스가 30% 이상 벌어진다면 이 방식으로도 팩을 구성하기 적합하지 않다.

[그룹2] 오픈과 팩라이딩의 적절한 배분 & 선두의 에너지 의도적 낭비
평지에서는 드래프팅 효과로 퍼포먼스가 40% 차이나는 사람도 후미에 붙으면 선두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해 팩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업힐에서는 선두와 후미의 소진 에너지가 크게 차이나지 않기 때문에 언덕을 몇개 넘다보면 선두와 후미의 잔여배터리양이 크게 차이날 수 있다.
업힐에서 발생하는 잔여 배터리양을 선두가 소진시키면 기량차이와 상관없이 함께 체력을 고갈시켜나갈 수 있다.
방법 ① 선두는 업힐을 두번탄다.
방법 ② 선두는 업힐을 오른 뒤 내려온다. 후미를 만나서 다시 꼭대기를 찍는다. 다시 내려온다. 후미를 만나서 다시 꼭대기를 찍는다.
방법 ③ 쉬는 시간에 선두는 혼자 인터벌 5번 친다.

[그룹3] 팩 찢기 & 코스 찢기
대회 코스가 그란폰도와 미디어폰도로 구분되듯이 실력에 따라 코스를 분리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뺑뺑이 코스라면 그룹을 나눠 목표 회차수를 달리 설정할 수도 있다.
후미그룹은 최단직선거리로 코스를 완주하고, 선두그룹은 남은 체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의도적 우회용 코스를 추가할 수도 있다.
함께 달린다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레이싱] 흐르면 버린다. 버리기 위해 짼다. (더더마 벙)
흐르는 사람을 버리기로 약속하면 각자의 라이딩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한 퍼포먼스의 사람들끼리 묶이게 된다.
팩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후미에게도 요구되는 최소한의 파워가 높아지기 때문에 아무리 선두보다 효율적으로 바람저항의 이득을 보다라도 커트라인이 생겨 흐르게 된다.
피를 빠는 것도 기술이기에 파워와 스태미너가 남아 있더라도 효율적으로 피를 빨지 못해 팩이 분리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높은 저항을 유지하는 지구력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 팩이 분리되기도 한다. 팩이 너무 길어지게 되면 작은 속도 변화가 후미에서는 크게 증폭되게 된다. 선두 가속에 대한 반응을 즉각 하지 못함으로 격차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며 함께가는 것이 리드아웃이고 이를 이용하여 분리시키는 것이 어택 혹은 BA다.
어느정도 팩이 분리되면 선두와 후미의 실력격차가 크지 않게 된다. 기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위에 언급한 팩 분리요인들이 적게 작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팩이 유지될 수 있다.

▣ 마무리

구성원간 퍼포먼스가 30%이상 차이난다면 선두는 선택해야 한다.
후미를 찢고 레이스를 할지, 레이스는 포기하고 서포트 모드로 라이딩할지.
어떤 선택지든 장단점이 공존하고 선두가 결정할 일이다. 최선을 다해 체력의 한계에 몰아붙이는 것의 장점이 있다면 동료와 함께 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고, 동료와 함께 달리는 즐거움의 장점이 있을 땐 만족스러운 운동이 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어떤 선택에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반대로 아쉬운 부분도 남기 마련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선택이 그러하다고 법륜스님이 얘기했다. 때문에 콘셉을 한 번 정했다면 마음의 미련을 버려야 한다.

자가피팅을 고집하는 사람의 개똥철학

나의 머신은 이미 한 명의 무릎을 박살냈다. 전주인은 이번 생엔 더이상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되었다며, 자전거를 나에게 넘겼다.

그렇게 로드바이크에 입문한 지 2년이 되었다. 난 20대 초엔 MTB를 탔다. MTB를 타듯이 로드 탔더니 온몸이 아팠다. 대부분의 통증은 일시적 사건으로 지나갔다. 몸이 적응한 것이다. 하지만 무릎 통증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MTB를 십년 넘게 타면서도 무릎이 아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로드는 왜?

무릎이 박살난 전주인은 문제가 뭐였는지 정확히 모른다.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는 있었다. 『실내에서 고정된 로라를 오래 탔다. 저회전 고파워 페달링을 사용했다. 안장을 높이고 당기는 근육을 너무 많이 썼다. 클릿의 유격을 넉넉하게 줬어야 했다… 』 하지만 어떤 단서가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혔는지 확신하진 못했다. 원인이 하나일 수도, 여럿이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켰을 수도, 또는 파악하지 못한 다른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잦은 무릎 통증을 걱정하는 지인들의 피팅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가피팅을 고집하고 있다.

피터가 내 무릎 통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피팅-서비스는 3가지 꼭지점의 적정 위치를 찾아주는 데에 그치기 때문이다. 정상범주 피팅은 어렵지 않다. 책도 있고 구글도 있고 유튜브에도 있다. 모르는 내용은 찾으면 금새 나온다. 나도 정상범주를 벗어났던 피팅을 교정함으로 통증을 해결해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새로운 종류의 통증이 발생했다. 피팅이 안 맞아서가 아니다. 피팅이 안 맞는 것이 문제라면 육각렌치만으로도 해결되었어야 할 일이다.

피터가 내 무릎 통증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난 해법만 덜컥 받고 싶진 않다. 과정까지 알아야 하겠다. 피터가 내린 처방이 어떤 이론적 배경과 추론을 통해 도달한 것인지 나는 알아야 하겠다. 피터는 피팅 다 받았으면 자전거 갖고 빨리 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피터는 버럭 화낼 것이다. 내가 당신 선생이냐며,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왔냐고 할 것이다.

이번 통증에 대한 처방을 받아 오더라도 머지않아 새로운 통증이 발생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 무릎 통증에 영향을 미치는 수십가지 단서를 찾았다. 어제도 새로운 통증이 나타났고 새로운 단서를 찾았다. 다음달에 통증이 발생한다면 어제와는 다른 원인으로 인한 새로운 문제일 것이다. 누구도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통증까지 예측하고 예방할 순 없다. 그렇다고 매번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피터를 찾을 수도 없다. 왜 또 왔냐고 버럭 화낼 것이다.

결국 내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피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외부의 존재에게 의존하려는 태도. 그것은 나약함이다. 나는 강해지기 위해 자전거를 탄다. 타인에게 의존하면서 강해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모순이다. 그것은 강해진 것이 아니다. 자력으로 생존이 불가능해진 원숭이일 뿐이다.

오소리는 착한 원숭이의 먹이를 빼앗을 목적으로 꽃신을 선물했다. 원숭이는 꽃신이 다 닳아 다시 맨발로 다니려고 했지만 이미 꽃신에 익숙해져 맨발로는 발이 아파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오소리는 처음과 달리 꽃신을 선물로 주지 않고 값을 올려 비싸게 판매하려 하였다. 결국 더 이상 꽃신을 살수 없게 된 원숭이는 오소리의 종이 되어 ‘내힘으로 살아갈수 없게 된 것’을 후회한다. ─ <원숭이 꽃신>의 줄거리, 1977, 정휘창

 

    • 피팅의 3가지 꼭지점 : 안장 / 페달 / 핸들

안장의 종류 : 내 척추가 snake / cameleon / bull 셋 중 어떤 타입인지
안장의 위치 : 안장이 높다 / 낮다 / 앞으로갔다 / 뒤로갔다 / 각도가 내려갔다 / 각도가 올라갔다

페달 : 페달의 종류(평페달 / MTB클릿 / 시마노 / 스피드플레이 / 룩)
페달의 위치 : 앞으로갔다 / 뒤로갔다 / 안으로갔다 / 바깥으로갔다
페달의 각도 : 안짱으로모으냐 / 팔자로벌리냐 / 유격이몇도냐

핸들 : 좁냐 / 넓냐 / 깊냐
스템 : 머냐 / 가깝냐

    • 3가지 꼭지점으로 인해 결정되는 신체의 각도

상체와 팔의 각도
골반과 허벅다리의 각도 (가장 높을 때, 가장 낮을 때)
허벅다리와 종아리의 각도 : 무릎 (가장 높을 때, 가장 낮을 때)
종아리와 발의 각도 : 발목 (펴졌을 때, 당길 때)

    • 피팅 : 원인 >> 증상 >> 처방

3가지 꼭지점으로 적정 위치를 찾아내는 피팅은 어렵지 않다. 의사가 진료를 볼 때 증상을 통해 원인을 추측하고 처방을 내린다. 똑같이 [원인 >> 증상 >> 처방]의 틀에 넣어보면 해법이 정리된다.

3시 방향 무릎이 페달보다 앞에 위치 >> 무릎 앞 통증 >> 안장 위치 뒤로 or 클릿을 슈즈에서 앞으로
3시 방향 무릎이 페달보다 뒤에 위치 >> 무릎 뒤 통증 >> 안장 위치 앞으로 or 클릿을 슈즈에서 뒤로
큐팩터를 너무 좁힌 문제 >> 내측관절부하 >> 슈즈에서 클릿 안쪽으로 밀기
슈즈와 클릿의 나사가 헐거워져서 플로팅 발생 >>무릎 전체 통증 >> 나사 죄기

일반적인 피팅-서비스는 [꼭지점세팅 > 신체각도구현] 두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고 했다. 더 포괄적인 의미의 피팅을 구현하기 위해선 신체특이성과 주법이라는 요소도 포함시켜야 한다. 네 가지 요소의 상관관계를 순서를 바꾸면 다양한 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다. 피팅을 접근하는 방법이다.

① [꼭지점세팅 > 신체특이성 > 신체각도구현 > 주법]
② [신체특이성 > 꼭지점세팅 > 신체각도구현 > 주법]
③ [주법 > 꼭지점세팅 > 신체특이성 > 신체각도구현]
④ [주법 > 신체특이성 & 신체각도구현 > 꼭지점세팅]

①번은 이상적인 꼭지점을 세팅한 뒤 자세를 교정해서 신체각도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경험이 없는 입문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다양한 주법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기본부터 잘해라.
②번은 신체에 특이사항이 있거나 뒤틀림 정도가 심각해 피팅에 반영해야 하는 경우다. 안장 또는 신발을 체형에 맞는 것으로 고른다거나, 다리길이의 차이를 반영하기 위한 스페이서를 꽂는다거나.
③번은 라이더의 주법을 유지한 채로 세팅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라이딩 습관이 몸에 익어버렸거나, 습관을 바꿀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더 이상 강해질 욕망이 없는 나약한 존재들.
④번은 새로운 주법을 위해 머신 위에서의 이상적인 신체각도를 먼저 구상한 뒤 꼭지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①②③번은 공통적으로 [꼭지점세팅 > 신체각도구현] 순서를 따르고 있다. 자전거에 몸을 끼워맞추는 것이다. 자전거에 몸을 끼워 맞춰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플라톤주의적이다. 플라톤의 세계에서는 현실이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꼭지점과 신체각도를 맞추는 것만이 이상이라 생각한다면 자전거의 세계를 너무 좁게 본 것이다. 이런 태도는 성장가능 퍼포먼스 한계를 스스로 봉인시키는 꼴이다. 이 세상에 절대피팅이상주의자들만 가득했다면 스파이더 댄싱 같은 건 탄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④번은 [신체각도구현 > 꼭지점세팅]순으로 이뤄진다. 이게 맞다. 자전거의 세팅은 나중에 따라와야 한다. 자생력을 잃은 원숭이들은 ①②③번 피팅 서비스를 받으면 되고 나같은 야생의 라이더는 ④번 피팅을 통해 성장할 것이다. 퍼포먼스 향상에 적합하도록 자전거를 세팅하는 접근방식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오르막만 줄창 타는 코스라면 안장을 앞으로 당기고 코를 낮출 것이다. 공기를 뚫어야 하는 평지라면 스템을 길게 빼고 안장 코는 약간 올릴 것이다. 산에서는 MTB가, 장거리 오프로드는 그래블바이크가, 평지에서는 에어로가 적합한 것처럼 피팅도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는 상식처럼. 자세와 주법에 자전거가 따라와야 한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단순히 정해진 자세로 페달을 열심히 굴리는 것이 아니다. 같은 자세로 페달만 굴려선 퍼포먼스를 일정 수준이상 높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자세로 다른 근육을 쓰는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새로운 주법을 익히는 것은 곧 새로운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주법이 다양해질수록 엔진은 강해진다. 6기통에서 8기통 정도로, 차츰차츰 주법을 다양하게 숙달시키면 12기통정도까지는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절대피팅이라는 만들어진 이상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피터들도 피팅을 하며 피드백을 귀담아 들으며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피팅만사해결주의로부터 좀 벗어나자. 피팅은 상품이 아니다. 한 번의 구입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다. 자전거에 대한 이해다. 정비 상식, 근육성장에 대한 이해, 훈련에 대한 이해와 같은 주제들인 것이다. 자전거와 함께 하면 자전거 라이프가 풍성해지는 주제들.

나는 MTB를 10년 넘게 타면서 잘못된 자세와 습관이 몸에 익었다. 습관대로 타기 편하게 세팅하게 된다면 정상적인 라이딩 자세를 취하지 못할 것이고, 나의 성장한계는 딱 거기까지. 선이 그어질 것이다. 정상적인 라이딩 자세를 취하거나 더 좋은 주법을 익히지 않으면 성장은 없다. 성장 과정에서 통증이 발생할 수 있고 몸이 적응하는 기간도 가져야 할 것이다. 단번에 급작스럽게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무릎통증은 현명하게 극복할 문제지, 피할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은 내가 나의 피터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원리와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내 자전거 세상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무릎 통증의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 이 문제는 정말 재밌고 보람차다. 도전의식도 끓어 오른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북악 PR을 단축하는 것보다 더 큰 성취감을 가져다준다.

이은호의 《자본론 : 돈이 시키는 대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멸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가 우려하던 부작용은 여전히 가진 채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세상을 집어삼켰다. 돈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돈이 사람행세를 한다. 사람은 되려 돈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개인의 의지와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흐름의 방향에는 더욱 가속이 붙고 관성은 커진다. 패러다임 쉬프트의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한 두 건의 사건만으로 이 관성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고쳐나가자는 사람은 있어도, 자본주의를 엎어버리자는 극단적인 사람은 없다. 그만큼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위에 삶의 터전을 쌓아 올렸다.

 

  • 시작과 방향

이 모든 사건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돌도끼를 만들고, 바퀴를 만들고, 옷을 만들어 입으며 시작되었다. 만드는 행위가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었으니 인간은 만드는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도구를 가진 부족은 생존확률이 높아졌다. 만들지 못하는 부족은 자연 도태되었다. 살아남은 부족은 만드는 능력을 후대에 물려주었고, 후대는 다시 발전시키는 것을 반복하며 인간은 더욱 잘 만드는 존재로 거듭났다. 만드는 존재, 지금 경제가 가지고 있는 벡터의 시작이다.

만들어진 물건을 교환하며 경제가 생겨났다. 경제의 가장 작은 단위는 교환이며, 중간 단위는 시장이고, 가장 큰 단위가 경제다. 교환을 쉽게 하고자 조개 껍데기로 환산하던 약속이 발전해 돈이 되었다. 돈은 노동가치를 환산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만드는 데에 12시간 들어간 의자는 12시간 동안 포획한 생선과 같은 값어치를 가졌다. 노동이 있으면 돈을 벌어낼 수 있고, 돈이 있으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돈은 노동본위제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비결, 승리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고객 중심” 돈을 가진 자의 번영과 풍요를 위해 모든 것을 최적화하면 그만이다. 돈을 가진 자의 게으름과 탐욕을 위해 모든 것을 최적화하면 그만이다. 혁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에도 공통점이 있다. 더 많은 양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효율적으로,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빠르게, 더 직관적으로, 더 편리하게, 더 쾌적하게,  더 더 더 더 더 뒤에는 무엇을 붙여도 맞는 말이 된다. 더 하기만 한다면 승리의 전략이 된다.

 

  • 최적화

경제에는 세 가지 구성원이 있다. 생산자, 소비자 그리고 중간자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이어지기 어려우니 연결의 역할만 하는 중간자가 생겨났다. 재화시장에서는 유통업자라 불리고 서비스 시장에서는 중개업자라 불린다. 교환은 가치의 이전이다. 가치는 고유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교환이 이뤄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가치다. 가치의 차이를 통해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이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보다 쉬운 방법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높은 가치의 상품을 싸게 사거나 낮은 가치의 상품을 비싸게 팔면 이익이 남았다. 포장, 설득, 제안, 협상 능력이 생산능력보다 중요해졌다.

생산자와 중간자는 돈 맛을 봤다. 신이 나서 손을 잡고 춤을 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전만큼 팔리지 않았다. 필요에 대한 공급은 포화되었다. 욕망에 공급하니 조금 더 팔 수 있었다. 오래가지 않아 필요도 욕망도 포화되니 더이상 팔 것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더 더 더 관성을 유지하고 싶어했다. 시장의 합인 경제는 더 더 더욱 그러했다. 국가도 나선다. 생산자, 유통자, 국가가 함께 손을 잡고 미친듯이 소비자를 만들어냈다.

모든 것이 포화되었다 싶으면 침체가 찾아왔다. 몇년 주기의 소침체, 기십년 주기의 대침체를 겪고 나면 경제는 다시 일어서서 가던 길을 갔다. 지구의 땅덩이는 좁고 인구는 무한정 늘어날 순 없으니, 소침체 대침체는 넘겨도 기백년 주기의 태침체는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드디어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는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나왔다. 실체는 없어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주장. 어떤 상품도 서비스도 없다. 알맹이는 가라. 껍데기는 남고. 거래의 형식만 남겨라. 가상의 가치를 교환하자. 희망과 불안이란 감정에 팔자. 실존하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다. 돈만 오가면 그만이니까. 금융시장 얘기다. 실존하지 않음에 거래는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물리적인 제약도 시간적인 제약도 없다. IT기술이란 부스터도 달았다. 거래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거래가능한 품목의 수량도 무제한에 가깝게 늘어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 [객단가*거래수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 비판

생산 도구로서의 인간 값어치는 하루가 다르게 무의미해진다. 결정된 미래이기에 이미 무의미해졌다는 미래완료시제를 써도 틀리지 않다. 생산성 측면에서 인간은 로봇에 한참 못미친다. 이 이유로 사람을 해고해도 비난받기는 커녕 우수한 경영자라고 상을 준다. 만 명의 일자리를 없앤 사람도 백 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

유통업자와 중개업자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같다. 중간자는 곧 시장이 된다. 시장의 앞면엔 번영과 풍요가 그려져 있다. 뒷면엔 인간의 게으름과 탐욕이 그려져 있다. 당연하게도 모든 시장은 앞면의 모습으로만 보여지길 바란다. 활기 넘치는 건강한 시장의 모습이지만,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미친 자본의 사회를 가속화시키는 것도 시장이다. 연결이 조금만 천천히 되었다면 지금의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인류가 적응할 시간을 조금은 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인간의 의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돈의 의지로 돌아간다.

나에게도 다른 대책은 없다. 내일도 출근하면 돈이 시키는대로 직원의 생산성을 측정하고 평가해 키워내라고 닦달할 것이다. 인간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한없이 나이브하고 비생산적인 낭만주의자로 취급받겠지만. 빨리 이 자본주의 룰속에서 게임을 승리시킨 뒤에 여생을 보장할 만큼의 현금 다발을 쥐고 낭만을 찾아 세속을 뜨고 싶다. 낭만의 세계는 성과로 측정되지 않으니 낭만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적어도 그 곳에선 미친 자본이 나의 의지와 판단을 조정하진 않을 것이다.

 

  • 그리고

게임의 룰이 그렇다. 이익을 조금 취하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익을 많이 취하면 나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쁜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룰에 따라 이겼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더군다나 개인의 안녕과 풍요, 가족의 안녕과 풍요를 위한 일이기에 선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폐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으니 악한 것이다. 거래상대는 상대적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의 욕망, 이익추구, 이기심이 부딪혀가는 곳이라는 배웠기에 나쁜 것은 아니다. 한 건의 거래에도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잣대를 들이대면 이렇게 복잡해진다. 이곳엔 윤리가 없다.

가치판단이다.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그르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대립하는 사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모순되는 가치관을 한 사람의 좁은 마음에 품어낼 순 없다. 누구든 치우친다. 치우친 상태로 대립하고 혼돈에 빠져 허우적 대는 것이 한낱 개인의 최선이다.

치우치면 편할 것을, 선택하면 편할 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이렇게 정리해보려고 글을 쓴다. 돈을 벌고자 한다면 부자의 가치관과 생각구조를 따르면 될 것이고, 다른 곳에 삶의 의미를 두고 있다면 그것을 따르면 될 일이다. 선택한 사상 이외의 가치관은 배척하고 부정하면 될 일이다. 굳이 모순되는 가치관을 내가 다 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나는 선뜻 택하지 못한다. 모순만 발견했다. 나는 오늘도 치우치지 못했다.

세상이 그러하듯 나 또한 카오스모스다. 괜찮다. 혼란과 대립이 존재하기에 당신은 균형의 상태다. 그저 엔트로피가 조금 높을 뿐이다.

 

— 덧붙임 —

생각숙제1 : 생산하는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무가치해진 시대, 인간의 가치는 0인가 null인가.

생각숙제2 : 비생산의 영역에서 인간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생각숙제3 : 노동은 이미 무의미해졌는데(미래완료), 왜 돈은 여전히 노동본위제일까?

 

— 덧붙임 210619 —

경제가 시키는대로 움직이다보니 존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였다. 정반대로 향하려는 가치 사이에서 고민했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이 답을 주었다. 존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경제활동을 추구하면 된다.

일의 단위화

  • Mission / Job / Work / Task

전형적인 상하위 hierachy구조, 피라미드 구조다. 이 구분법은 “그 일은 너무 중요하지 않아.” 혹은 “그 일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와 같이 현실적으로 오늘 당장 집중해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할 때에 자주 쓰인다. 또는 미래 계획을 세울 때에 너무 구체적인 실행단계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실행에 집중해야 할 때에 근원적인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을 막아야 할 때에도 도움된다. 하지만 일의 계층을 구분하고 레벨을 구분하는 것은 추상적으로 도움될 뿐, 실무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 일의 단위화

일을 Chunk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모두 파악된 상태라는 것이다. 일에 대한 파악은 [현황파악 > 문제정의 > 해법제시 > 실행방안] 네 단계로 진행한다. 지금 비드폴리오의 구성원들과의 협업관계에서는 일을 Chunk단위로 만드는 단계가 생략되어 있다. 현 구성원들은 일을 Chunk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Chunk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현황파악 > 문제정의]을 제시해야 한다. 현황파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불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더라, 저렇더라. 보이는 대로 씨부리면 그것이 현황파악이다. 현황과 문제를 구분하는 이유다.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 풀어야 하는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 문제를 구분해내지 못하는 단계에서 현황만 지껄여대는 것은 도움 되기는커녕 정보의 공해를 만들어 훼방을 놓는다.

때문에 정의되지 않은 현황, 정의된 문제, 완성된 Chunk의 과업은 모두 구분되어야 한다. 현황은 쏟아 내고 끄집어 내야 한다. 문제의 정의는 파고들어야 한다. 각각의 행위가 다른 것임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구성원들의 role playing도 정의되어야 한다. 업무 논의, 기록 공간 또한 각 행위에 최적화되어 마련되어야 한다.

완성된 Chunk의 과업은 따질 게 많다. 완성된 일의 성과가 얼마나 큰지, 소요 자원은 얼만큼 들어가는지 input과 output을 비교해 가치를 판단한다. 해법이 얼마나 적합한지도 따져야 한다. 실현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도 따져야 한다. 해당 일을 담당하는 사람의 역량도 따져져야 한다.

  • 로드맵을 짭니다.

실행하는 사람의 로드맵은 실행자 각자 짜여져 있어야 합니다. 실행자의 로드맵이 없는 상황에서 상관, 상부 관리자는 어떤 판단과 지시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로드맵의 부재는 부하의 문제입니다.

  • Priority Management

상관은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부하는 판단기준과 판단방법을 배웁니다. 상관의 판단과 부하가 판단이 일치해지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상호 노력합니다.

  •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빠지지 않습니다.

[문서냐 이메일이냐 노션이냐 GDSS냐 카톡이냐 대면맞짱이냐 커피타임이냐 이면지낙서냐 단체회의냐 좌장주도지시냐 상명하복하달이냐 실무자의바텀업이냐 브레인스토밍이냐 연구조사냐 R&D냐 정보취합이냐 데이터기반통계냐 머신러닝이냐 MECE냐 귀납이냐 연역이냐 린스타트업이냐 해커톤이냐 역할게임이냐 OO학원이냐 스프린트냐]에 상관없습니다. 그건 그저 매개체일 뿐입니다. 실행방안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방법일 뿐입니다. 도구일 뿐입니다. 뭐든 어떤방식으로 하든 문제가 문제해결의 틀에 맞춰져야 합니다.

사람에 맞는 일, 일에 맞는 사람

일을 지독히도 못하는 조직에 몸 담은 적 있다.
그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을 망치고 있었다.
공통점을 찾으라면 ‘지들 마음대로’
그들은 천성대로 일하고 있었다.

성급한 사람은 아무 소리나 지껄였고,
주장이 강한 사람은 고집을 피웠으며,
소심한 사람은 의견을 숨길 수 밖에 없었고,
권위적인 사람은 결속력을 헤쳤다.

경험삼아 용돈벌이삼아 방학이면 노가다판에 종종 나갔다. 공사장에서는 6시가 되면 조례를 하고, 안전수칙을 외고, 운동으로 몸을 풀며, 서로 조심하고 주의하라고 반복했다. 팔자에 없는 요리를 하느라 주방에서도 몇 년 일했다. 주방에서는 정신을 팔면 손가락이 날아간다. 흉터가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일에 임하기에 적합한 태도와 자세를 익히게 된다.

셔츠입고 출근해 궁둥짝 깔고앉아 모니터 앞에서 하루를 보내는 우리는 육체노동하는 분만큼 일에 적합한 태도와 자세를 갖추려고 할까? 대체로 아닌 것 같다. 일에 임하는 태세가 일의 품질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올바른 태세를 취하지 않고 일을 한다. 가끔 보면 일을 망치려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것 같다. 아이고! 제 인생 밖에서 망해주세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럽답니다.

일에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없다. 반대로 사람에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일도 없다.

인간은 본디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태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업무 능력은 돌 쪼개기, 물건 수집하기, 개구리 사냥하기 따위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업무능력은 현대 인류에게 부자연스러운 과업이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위적 학습과 숙달이 요구된다.

천성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발전하는 기계화와 자동화로 인해 대체되고 있다. 표면적인 현상으로 경쟁과잉이라 일컫어진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은 지속가능성이다. 결국에는 일자리 소멸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해진 미래의 역사다.

태생적인 능력과 업무요구자질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질 것이다. 인구의 절반이 농사를 짓던 시대에는 태생적 업무 능력만으로 절반가량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업무는 더욱 전문화될 것이고, 하나의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전교육과 준비기간도 길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이 평생 과업인 것으로 여긴다. 천성에 맞는 직업을 찾은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특별한 케이스들이 많겠지만, 내 인생계획에 대체로 참고되지 않으니 일반화 시켜선 안 되겠다.

사람에 맞춰진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해선 안 된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진입장벽이 낮은 시장은 쉽게 포화된다. 시장이 포화되면 보상의 크기가 작아진다. 보상이 작아지면 지속가능성이 없어진다. 지속가능성이 없는 일은 1년 뒤에 어차피 망한다.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일이라는 것은 대체로 우리의 습관에 반대한다. 어렵고 불편한 과제다. 하지만 천성을 거스르고 이겨낼 수 있을 때, 그 보상의 크기는 커진다. 어려운 과제일수록 도전하는 사람은 적고, 성공하는 사람은 더 적다. 경쟁자가 자연히 줄어들어 성공확률은 높아진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고유한 가치란 없다. 모든 가치는 관계 속에서만 평가된다. 일하는 사람은 일로 평가된다. 반대로 일 또한 독자적이지 않다. 인간 천성에 맞춰지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지만, 너무 어려워도 달성하지 못한다. 사람을 일에 맞추려는 노력만큼 일도 사람에 맞춰야 한다.

일을 사람에 맞추고, 사람을 일에 맞추려는 노력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노동의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시대에 가장 확실하게 성과를 추구하는 방법이다.

일을 줄이고 성과를 내자.

일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은 헛되다.
일 안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성과가 필요한 것이지, 일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일은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일이 아닌, 성과를 좇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일은 성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은 성과가 아니다.
되레 일은 비용이고, 지출이다.

일은 input이고,
성과는 output이다.
적은 input을 들이되, 많은 output을 내어야 한다.
최대 output이 한정적이라면, input을 최소화해야 하며,
요구 input이 고정적이라면, output을 극대화해야 한다.

조상님들은 일을 하면 돈은 자연 따라온다 했다.
조상님들은 집을 직접 지었고, 벼를 직접 키웠다.
당시엔 일이 성과로 직결되었다.
당시엔 일을 적게 하면 output이 줄었고,
당시엔 일을 많이 하면 output이 늘었다.
당시엔 input과 output이 정비례했다.
집구석에서 밥만 축내는 삼득이는 input이 0으로 계산되었다.
따라서 output을 늘리기 위해 input을 최대투입하는 게 옳은 계산이었다.

직업의식, 노동정신, 올바른 인간상이 만들어졌다.
피땀흘린 노동은 보람차고, 요령을 피워선 안 되며, 불로소득은 죄악이라 했다.
식충이 삼득이를 생산인력으로 만들 설득논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필요에 따른 이데올로기였을 뿐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일이 성과로 직결되지 않는다.
일과 성과의 거리가 꽤 멀어졌다.
고차 산업에서는 생산결과물이 가시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일을 한다고 해서 성과가 약속되지 않는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다.
성과가 나지 않으면 돈이 따라올 리 없다.

자동차가 나온 뒤 마차는 무의미해졌다.
세탁기가 나온 뒤 손빨래는 무의미해졌다.
농약드론이 보급되면 농약치는 행위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output이 input보다 작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output이 input보다 작아졌다는 것은 생산성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뜻한다.
정말 지긋지긋하고 숨막히는 싸움이지만 도망칠 길은 없다.

일을 정면으로 응시해보자.

일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의 통념을 뿌리뽑아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습관과 행동양식을 교정해야 한다.

일을 좇는 사람은 노예가 되고,
성과를 좇는 사람은 자유인이 된다.
피땀흘린 노동은 미련한 짓이며, 요령껏 효율적으로, 소극적 소득을 추구해야 한다.
최대한 적게 일하고, 최대한 쉽게 일해야 한다.
일은 수단이다.
일은 비용이다.

일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성과가 가장 우선이다.
일은 가장 나중이다.
무턱대고 일에 달려드는 태도는 올바른 순서가 아니다.
일이 무의미해진 시대에 일로 승부를 보려다간 몸이 박살나고 말 것이다.
기대되는 output을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input을 따져보아야 한다.
input대비 output이 상회한다면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input대비 output이 2배수라면 짭짤하겠다.
input대비 output이 4배수라면 재미 좀 있을까?
input대비 output을 10배로도 만들 수 있을까?
이미 이긴 게임을 확인하는 과정으로서 일에 임해야 한다.

어떤 일이건 목표는 똑같다.
빨리, 많이, 잘하면 된다.
잘하는 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생략된다.
잘하지 못한다면 속도와 양을 따질 필요도 없이 무의미해진다.
빨리는 input을 줄이라는 뜻이고,
많이는 output을 늘리라는 뜻이다.
이 둘을 합쳐 Quantity라 부르고, 잘하는 것을 Quality라 한다.
잘한다는 전제 하에,
빨리, 많이 하면 된다.

성과가 유의미하고,
일은 무의미하지만,
일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은 유의미하다.
성과를 높여야 하고,
일은 줄여야 하기에,
일을 줄이기 위한 일을 해야 한다.

일을 줄이고,
성과를 내자.

— 덧붙임 —

인생철학 아니다.
게임공략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