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업계, 진로를 포기한 요리사, 재기의 다짐

마스터셰프코리아. 2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에는 요리에 인생을 걸어 도전하는 9,000명의 지원자가 모였다. 자신을 ‘요리하는 돌아이’로 소개한 윤남노 지원자. 예선전 요리를 준비하며 “다 죽이러 왔어요”라고 말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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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중에 잘난 척한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혼낼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먹어보니 너무 맛있는 거예요. 칭찬 한마디 했더니 펑펑 울어요. 알고 보니 선생을 잘못 만나서 칭찬 한마디 못 듣고 맘고생을 많이 했더라고요.”
– <‘마셰코’ 심사위원 김소희, 김훈이, 송훈 셰프> 조선일보 인터뷰 중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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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하기 어려운 오리가슴살 스테이크를 먹어본 심사위원은 “TOP5로 봅니다” “키워주고 싶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칭찬을 처음 들어 그토록 서럽게 울었던 것일까? 악덕업주를 만나 심적으로 힘들어져 요리까지 그만두게 되었다는 고백이 거짓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만났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1년 동안 요리를 쉬었어요. 쉰 게 아니라 포기했던 거죠. 제가 너무 순진했어요. 순수하게 요리만 사랑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독을 조금 품어야 하더라고요.” 그는 자신이 너무 바보처럼 요리했고 앞으로는 독하게 살겠다는 다짐과 함께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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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씨는 중학생 때 요리 자격증을 다섯 개 땄다. 요리대회만 나가면 상을 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공부를 너무 안 해 부모님과 선생님 속을 썩였지만, 전문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요리대회에서 우승해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조리과로 진학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실력을 좋게 평가받아 국내 최고급인 S호텔 외식조리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요리사의 업무와는 많이 달랐다. “일이나 진로에 관한 충고는 없이 자신을 따르길 강요하는 선배들이 많았어요. 처음엔 그 분들을 따르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양파와 과일만 썰고 있다 보니까 제가 배우고 싶은 요리를 할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움의 열망이 너무 컸던 그 때, 더 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마침 친분이 있던 선배로부터 새로 준비하는 레스토랑의 오픈팀에 들어오라는 러브콜을 받았다.

하루 최대 18시간 근무, 받기로 한 급여보다 적게 지급되는 일은 이 업계에 만연한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에 감안했다. 폭언이나 가벼운 체벌도 주방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요리사 중 요리할 때 완전히 딴사람이 된다고 무서워하는 후배요리사들도 있어요. 그런데 바뀌는 건 당연해요. 저도 그래요. 어떤 직업인이든 자기 일에 엄격해지고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잖아요. 그리고 일이 끝나면 다시 일상적인 관계로 돌아오는 거죠.”

윤씨가 요리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이 기간, 주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고용주가 수면제를 타오라고 시켰어요. 혼자 살 수 있는 양이 적으니 직원을 시키는 거죠. 나중에는 제가 데려온 동생한테 다이어트 약을 먹였어요. 동생이 어지러워하면서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버티니 집에 보내야 했어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을 싫다고 하는 애한테 장난으로 먹여놓고 재밌어 하는 거예요. 술 마시고 여직원을 성추행하기도 했어요. 한 번은 교통사고를 냈는데 유리한 쪽으로 증언하라고 목격자로 동원돼서 거짓증언도 해야 했어요.”

(윤씨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사실판단이 어려워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지난 고용주와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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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씨는 합류한 지 6개월 만에 자신의 발로 레스토랑을 걸어 나와야 했다. 그만둔 후 못 받은 두 달 치 월급을 달라고 연락했을 땐 “어디 가서 요리한다고 하지 마라. 내가 한국에서 너 발 못 붙이게 하겠다”라고 되려 협박받았다.

요리나 주방의 일로 문제가 생겼으면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었으나 자신이 손 쓸 수 없는 문제가 계속 발생하니 낙담이 컸다.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이 계속되었는데 어째서 6개월 동안이나 그만두지 못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무조건 잘하고 싶었어요. 저도 진짜 요리를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 사람이 저에게 희망을 심어준 것도 있고요. 내 밑에서 3년만 일하면 잘 클 수 있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었어요. 업계에서 계속 일할 각오를 해서 누구에게도 밉보이기 싫었거든요.”라 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지금껏 만난 최고의 스승은 그 6개월 동안 같이 일했던 헤드셰프였다.

요리사가 일하고 싶은 환경, 요리사가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환경이 공존했던 모순적인 상황. 윤 씨의 경험을 단순히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분쟁으로 여겨야 할까?

좋은 고용주,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해 좌절했던 요리사는 마셰코에 지원하는 것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좋은 멘토를 만나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어요. 적어도 5년 동안 한 스승 아래에서 일하며 배우는 게 지금의 목표에요.”

가스를 많이 마셔서 폐병에 걸리기 쉽다거나, 무거운 조리기구를 다루느라 어깨와 손목에 염증이 생긴다거나,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직업 고유의 고단함은 많이 알려졌다. 수많은 사람이 이를 이미 알고 도전하기에, 요리사가 진로를 포기하는 이유가 열악한 처우 때문만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더 성숙한 외식업계가 되기 위해, 요리사의 열정과 재능이 올바르게 쓰일 수 있는 건강한 근무 환경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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