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조카를 보러 갔다가 큐브를 만졌다. 바삭거리며 돌아가는 플라스틱 구조물이 내 오기를 자극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조카는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큐브만 한 시간 만졌다.
이 재밌는 걸 왜 마흔 직전에야 알게 된 걸까?
이 재밌는 걸 왜 우리 엄마는 안 사줬던 걸까?
조카는 하늘같은 삼촌에게 장난감을 양보하지 않았다.
흥치뿡!
나도 하나 샀다. (사실 두개 샀다)
큐브가 처음 도착한 날, 13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서 물 두 잔만 마시면서 큐브를 만졌다. 이튿날 되어서야 처음으로 공식을 보지 않고 큐브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사흘째 1분대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전에 잠시만 만지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니 새벽 세시였다. 내 핸드폰 노트엔 이런 기록이 남겨져 있다.
02:30 / X / X / 03:05 / 02:54 / X / 02:12 / 02:42 / 02:40 / 02:58 / 02:23 / 01:48…..
처음엔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추론과 관측 행위였다. 지금은 수행의 숙달을 훈련하고 있다. 닷새 전에도, 오늘도 나는 같은 큐브를 만지고 있지만 다른 종목에 임하고 있다. 처음엔 퍼즐이었지만 지금은 스포츠를 하고 있다. 다음주엔 또 다른 종목이 열릴 것이다. 새로운 해법을 익히게 된다면 새로운 차원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어떤 종목에 임하는지는 게임의 종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파일럿에 의해 종목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에 따라 게임의 규칙이 달라진다. 게임의 목표가 달라진다.
자전거도 파일럿에 따라 다양한 종목이 된다. 신체단련, 한계극복, 스릴질주, 기록갱신, 경쟁과쟁취, 친목도모, 맛집투어, SNS콘텐츠창작활동, 심신수련, 사유의시간, 자연체험 등 파일럿에 따라 다양하다. 탈 때마다 새로운 라이딩의 맛을 발견하게 된다.
사업은 일반적으로 위험도가 높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나에게 사업은 가장 안정적인 선택지다. 나는 쫄보 기질이 강했고 사업을 시작할 때 보험이 될만한 장치나 완충지대가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리스크 최소화의 태도로 사업에 임했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적은 보상을 확보하는 low risk low return을 불가피하게 택했다. 지금은 이런 태도가 습관이 되어 모든 의사결정에 스며드는 것 같아 걱정이다.
같은 사업이라도 임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종목이 된다. 대부분은 나와 다른 혹은 정반대의 태도를 취한다. 마크 큐반은 사업을 스포츠로 여긴다. “몇 번을 실패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한 번만 제대로 해내면 된다” 이 관점이라면 사업은 어떤 종목보다 승률이 높으며 큰 보상도 보장되는 안정적인 선택지다. 게임에 임하는 태도만 바뀌었는데 low risk high return이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도 제각각이다.
삶이라는 게임에 접속한 사람들 모두 각자의 게임을 한다.
오늘은 어떤 어떤 종목을 즐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