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오늘의 판단에 대해 후회하진 않을까?

후회할 것이다. 분명 후회할 것이다. 또는 후회의 마음을 덮기 위해 합리화할 것이다.

절대적인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이란 어떤 방향에서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 사건이 후회스러운 일이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합리화의 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후회스러운 사건을 다시 떠올렸을 때 후회스러운 마음이 자책으로 이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합리화하는 것은 어쩌면 마음을 다독이는 기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회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스스로 합리화를 하면서도 그것이 완전히 후회되지 않는다고 속일 순 없다. 대충이나마 결론을 내리고 덮어두어 새로운 사건들 속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건으로 미뤄내기를 반복할 뿐이다.

나는 후회하는 것이 겁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훗날 이 사건이 후회스럽게 여겨지거나, 과거의 나 – 그러니까 지금의 나 – 를 미래의 내가 자책하고 원망할까봐 겁이 난다. 타인도 아닌 내가 나를 미워한다는 것은 자기파괴적인 상황이다. 나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 녀석이란 걸 알기에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사건이 발생할 당시에 최선이었다면 후회할 일 없다. 최선이 아니었어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면 그것도 후회할 일이 아니다. 시궁창 같은 결론으로 향했어도 당시에 더 이상 손쓸 방도가 없었고 당시의 노력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면 후회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늦은 밤 잠을 자지 않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시늉만 하는 것 만으로도 더 나은 선택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인데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어떤 사건은 절대적인 사실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이란 어떤 방향에서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건과 그 결과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그 사건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 사건을 대했던 나의 태도에 대해서 후회한다.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는 갖은 사건들은 사건 저마다의 규칙이 있다. 목표도 다르고 공략하는 방법도 다르다. 한 가지 사건이라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사건을 운전미숙으로 볼 것인지, 교통사고로 볼 것인지, 보험과 법체계의 작동원리를 직접체험해보는 경험으로 볼 것인지, 우리 인생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사건들을 어떻게 대비하고 대처하는 방법으로 볼 것인지, 그동안 갈고 닦은 협상 실력을 겨뤄볼 실전으로 여길 것인지 여러 관점으로 게임을 정의할 수 있다.

이번 게임이 우리 인생에서 몇 차례 발생하지 않으면 – 반복숙달하거나 특별히 경험을 통해 배울 것이 없다면 – 빨리, 쉽게, 적은 감정을 써서 사건을 흘려 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돈 백만원의 차이가 발생하더라도 내 평생에 거쳐 내 주머니에 들어오고 나갈 전재산의 총액에 비하면 극히 소량의 금액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복귀해서 그 시간에 내가 주력하는 본업으로 그만큼의 금액을 벌어들여 손실을 메우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일 수도 있다.

오늘이 저물어가는 지금 생각해보니, 이 게임은 다른 게임이 아니라 ‘강도를 대하는 우리의 태세’를 다잡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의도적으로 손해를 입히고 자신은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점에서 강도와 다를 바가 없다. 거기에 사회적 자존감과 인간적 존엄까지 챙기려 하는 개쌍놈새끼는 돈만 뺏아가는 강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놈은 아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도덕이 바닥을 칠 때 법이 필요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법으로 판단되는 결과가 도덕성을 OO하지 못한다.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약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 착취, 강탈의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올 때 그 의도를 뻔히 알아채고 있으면서도 두눈뜨고 강탈행위가 강도의 뜻대로 완수되도록 허락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자애의 부족이다. 단순히 강도당하는 것으로 사건이 끝나지 않는다. 총도 들지 않은 강도에게 지나치게 겁먹은 나의 비겁함에, 일말의 저항을 하지 않은 소극성에 나를 자책할 것이다.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고요”라고 말했듯이 누구나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 있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결정의 범위를 포기하게 만들고 자신이 쥐려고 하는 것은 현대적 강도질의 첫 수순이다. 내 주체성을 타인에게 넘기는 일이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돈이 아니다. 시간이나 조건도 아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방어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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