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쉬면 퍼포먼스가 떨어진다. 꾸준히 하면 오르고 멈추면 떨어진다. 이 컨디셔닝의 공식이 얼마나 정직한지 오늘날 운동생리학자들은 이를 수치화해서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강도,빈도,지속시간 세 요소를 측정해 총 운동성과를 수치로 나타내기도 하고 각 요소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지 분석해 성과마다의 특성을 회귀도출하기도 한다.
성장의 속도란 어느 정도 달성한 후로는 그 속도와 기울기가 점차 완만해진다. 정비례해서 계속 증가할 순 없다. 정말 일분일초의 낭비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쏟아놓는 인간의 최선의 노력까지 쥐어짜내고 전세계인이 주목하는 상황에서 정신력까지 극도로 끌어올려 초월적인 능력까지 발휘하는 올림픽리스트의 신기록이 한계라고 한다면 그것에 근사해질수록 차이는 작아진다. 이 상태에서는 최대한의 노력을 들이부어도 성장은 이뤄지지 않고 현상유지만 할 수 있다. 노력과 성과가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상태.
그래서 정체기를 만나면 재미가 없다. 더 나아져야 재미를 느끼는데 열심히 해도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니 외적동기와 내적동기가 모두 상실된다. 계단식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믿어서 조금은 버틸 수 있지만 한동안 지나도 그 성장마저 보이지 않는다면 노력대비 성장은 불가하고 심지어 최대한의 노력을 들여도 퍼포먼스는 오히려 하락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역치값은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성장을 이끌기 위해 들여야 하는 점진적으로 과부하의 정도는 계속 커지기만 한다.
온 종일 운동만 하는 전문스포츠맨이 아닌 우리들은 생업을 꾸리느라 운동빈도가 뜸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퍼포먼스의 한계치가 빠르게 찾아온다. 게다가 추워지는 겨울이면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생기니 좋은 변명거리 삼아 운동을 쉬고, 어김없이 초기화가 진행된다.
초기화가 있기에 급진적인 성장의 기울기와 그 과정에서 찾아오는 자기효능감을 반복해서 느낄 수 있다. 한 종목의 달인이 되어버리면 성장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종목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거의 모든 종목을 다 섭렵해버려 성장쾌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운동하는 것만으로 다시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다. 초기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제로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다행인 것인가.
초기화를 받아들일 때 초기화 전의 최대 퍼포먼스를 기준으로 잡으면 안 된다. 그건 작년의 최대치였다. 그 결과는 4,000키로의 라이딩 마일리지라는 인풋이 있었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아웃풋이었다.
아예 운동을 하기 전의 시점을 제로점으로 잡자. 너무 처음보다는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즈음, 그러니까 자전거라면 클릿슈즈를 처음 꽂던 시점, 달리기라면 런닝팬츠를 처음 산 시점 정도가 되겠다.
인간은 본디 학습에 재미를 느낀다. 모르는 정보를 아는 것도 그 정보를 통해 내 사냥실력이 늘어는 것도 재미를 느낀다. 그렇게 배움에 재미를 느낀 조상들만 살아남아서 700만년동안 대를 이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배움이 재미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현대 교육 때문이다. 배움을 교육과 학습으로 구분해보자. 사전적 정의는 다르지만 나는 이 둘을 능동수동으로 구분한다. 학습주체가 능동적이면 학습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교육이다. 교육은 선생이 있어야하고 학습은 스스로가 선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배움은 본디 재밌는 것이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전공은 다양해져서 사람마다 배움의 성과가 덜나오는 분야를 재미없게 느낄 뿐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잘 맞는 분야를 찾기만 한다면 누구나 배움에서 재미를 느낀다.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아이들도 공부엔 집중 못하지만 게임엔 누구보다 집중을 잘한다. 공부는 적성에 맞기 어렵지만 게임은 누구에게나 적성이 잘 맞다. 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일 뿐. 게임이 적성에 잘 맞는 이유는 그렇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게임기획자들은 인간이 어떻게 재미를 느끼는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해 게임의 요소로 구현해낸다. 그리고 그 요소 중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가 배움과 성장이다. 재미있을 수 밖에 없도록 겨냥해서 디자인했으니 재미가 없을 수 없을 수 밖에.
그런 게임에서도 초기화 개념은 있다. 육성과 성장에 한계를 느끼는 것을 알게 되자 게임 기획자들은 한 캐릭터를 계속 성장시키기보다 매 게임마다 반복성장시키기로 했다. 매판 1렙부터 새로 키워야 하는 롤은 매판 짜릿해 최고야 늘 새로워. 성장을 통한 만족감이 가장 특화된 게임은 idle장르다. 자원을 캐서 그 돈으로 업드레이드하고 효율을 높여 다시 자원을 더 모으길 반복하는, 또는 전투력을 키우길 반복하는 이런 유형의 게임은 게임의 작동원리가 어느 정도 파악되기 시작한 순간 재미가 없어진다. 게임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눈에 들어오는 순간 현타가 오더라.
직선적인 게임 진행방식을 정기적으로 초기화시켜 같은 게임도 새로운 게임이 되는 것이다. 열배나 많은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콘텐츠로 열 번을 반복시킬 수 있으므로 생산성도 좋다. 모두 초기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라이트유저는 세계에 발을 담궈본 것만으로도 충족시키고, 헤비 유저는 초기화를 반복하며 열배의 플레이타임을 즐겨도 만족스럽게 게임할 수 있다. 이전과 똑같은 반복을 하게 된다면 재미가 없겠지만 이전에 어렵게 깬 것을 쉽게 깨부수게 되면서 자기효능감을 느낀다. 1.5배 정도 강해지게 해주는 것만으로 엄청 만족스러워진다. 환생 개념도 초기화고 부케 생성도 초기화고 시즌제로 돌리는 것도 초기화다.
초기화를 시킨 다음엔 게임의 양상이 달라진다. 성장결과의 정도가 아니라 성장의 기울기, 즉 성장의 속도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초기화도 반복하다보면 초기화를 극복하는 데에도 속도가 붙는다. 초기화를 극복하는 데 처음에는 3주가 걸렸다면 그 다음 초기화극복엔 보름밖에 걸리지 않고 그 다음엔 열흘 정도면 본격적인 운동강도를 받아낼 정도의 몸 상태가 준비될 것이다. 잔차 타는 사람들은 이걸 몸이 올랐다고 표현하더라.
그러니 초기화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초기화가 없다면 우리는 성장 기울기가 완만해져버린 영역 속에서 아무리 과부하를 먹여도 보상은 조금밖에 못 얻는, 게임을 할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성장의 연속이다.
내 삶에 생기를 다시 불어넣기 위해 지난 5개월 유산소를 끊었었다.
게을러서 안 뛴게 아니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