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을 바라는 인간 (게임을 만드는 사람과 게임참여자의 관계에 대하여)

보상을 바라는 인간은 결국 돈을 벌지 못한다. 보상을 좇고자 하는 생각은 결국 이익을 얻을 수 없는 판으로 자신을 내몬다. 당장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이미 만들어진 게임에 참가하고, 이길 수 없는 게임의 공략법만 파헤치게 만든다.

이들은 게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게임이 내 것으로 만들어진다면 보상이야 얼마든지 조정해낼 수 있다. 그래서 이걸 깨우친 사람들이 “돈을 좇지 마라. 돈이 따라오게 만들어라”라는 얘기를 했다. 절반의 개소리라 생각하고 절반은 믿는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 대부분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겸손하고 바른 태도로 살아 덕을 쌓으면 업보가 돌아올 것이다” 정도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모두가 게임의 판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모두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면 소는 누가 키우나. 게임에 참여할 사람이 있어야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에도 지배자는 노예를 인정하고 존중했다. 노예가 없이는 지배자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임 참여자를 존중하지 않은 채로 만들어진 게임은 곧 사이비 다단계 폰지사기가 된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서 당장의 이익만 생각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의 크기에 유혹되어 장기적으로 큰 불안과 위험에 빠지게 된다. 목표는 주어지고 계획도 제공받는다. 그 계획이란 절대로 실현될 수 없거나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계획이다.

게임 참여자들은 계획의 실현가능성을 판단하지 못한다. 기대값은 기대성과와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곱해 계산된다. 로또는 기대값이 50%이며 보험도 그 언저리다. 이런 기본적인 계산을 하지 못하고 게임에 참여하는 이유는 게임의 판을 만드는 측에서 일부러 잡음을 넣기 때문이다. 종교에서의 간증과 서비스의 성공사례는 실현가능성이 100%에 가깝다고 믿게 만드는 모함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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