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고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대국이 힘들다고 장기의 규칙을 탓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쓰촨성 지진이 일어나면서 3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진은 남아시아 대륙판이 유라시아 대륙판을 밀어 올려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인은 대륙이동설을 알고 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위치도 알고 있었음에도 대비를 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진이 일어나기 몇 일전 개구리들이 힌트를 줬다고 한다. 쓰촨성 부근에 있는 모든 개구리가 튀어나와 온 도로를 덮었고 차에 밟히면서도 어디론가 황급히 이동하였다는데, 동물들은 이런 본능이 있어 지진을 알아채고 대피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진이 일어날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지진이었기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에겐 애석하지만 하늘을 원망할 자격이 없다. 인간의 무지는 무척 슬픈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은 재앙이 너무나 많은 나라라서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하면 큰 이슈거리도 되지 않는다. 매번 일어나는 일본의 대지진은 일본의 건축력을 발달시켜 주었다. 우리나라 또한 매년 여름에 태풍은 찾아오는 것이라 당연히 여기고 철저한 대비를 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태풍이 몰아치고 홍수가 났다며 불평하는 일이 없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홍수가 들일이 없는 높은 곳에 집을 짓고 바람이 불면 덤덤하게 테이프를 창문에 바른다. 그리곤 어떤 영화를 보며 태풍을 보낼지를 고민한다. 반면 미련한 사람들은 TV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에 호들갑을 떤다. 100년만의 폭설이니 50년만의 대지진, 30년만의 무더위라는 등등 말이다. 어떤 이들은 지구가 멸망할거라며 마당에 소금을 뿌리고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오늘날 환경운동가들은 잘못된 지식을 바탕으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인데, 사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져서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온도가 높아져서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가 따뜻해지는 것은 인간의 탓이 아닌 지구의 운명에 가깝다고 한다. 그리고 지구가 따뜻해지면 바다가 넓어져서 땅이 잠기기는 하겠지만 따뜻하고 비옥한 토지도 늘어나 풍요로워 질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물에 잠기는 땅만을 강조하며 객관적이지 못한 관점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은 과학적이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못하며 감정적이다. 그런 환경운동가들에게 모든 자연현상은 불안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오늘도 내일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게 된다. 100년 전에도 일어났던 일이고 200년 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니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마땅하다. 빙하기가 있었던 적도 있는데 조금 춥다고 난리를 쳐서야 되겠는가? 사실 지구의 10억년 역사동안 이렇게 평화롭고 안정적인 적도 없었을 건데 말이다.

우린 이런 당연한 일들에 대해서 실망도 하고 분노도 치밀었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세상은 내 맘대로 되는 테이스터스 초이스 커피믹스가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하루에 열쇠를 두 번씩 잃어버렸다가 두 번을 찾아낸다. 열쇠가 어디론가 숨어서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아 자존심도 상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사실 지갑은 무생물이라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열쇠가 어디론가 숨어있어 내가 화가 난 것은 맞지만, 나의 화를 돋우기 위해 열쇠가 숨바꼭질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잠금장치를 전자식으로 바꾸어 열쇠가 필요 없어졌다. 문명의 발달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나의 분노를 줄여주었다. 문명의 혜택에 감사를 느낀다.

이와 같은 이치로 태풍 또한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곯려주려는 속셈은 없다. 단순한 에너지의 순환일 뿐이다. 쓰촨성 아래의 땅덩이가 제 위에 사람들이 버글거리니 귀찮아서 몸부림을 친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진동이 이는데 마침 사람이 그 위에 살림을 꾸린 것이다.

인간은 이를 잘 이해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 다녀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간은 역사와 전통, 문화를 너무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미련을 가진다. 본인이 자신의 발에 족쇄를 채웠다면 그에 따른 피해가 생겼을 땐 스스로 책임져야 마땅하겠다.

한 사람의 인생은 주사위놀이보다는 장기판에 가깝다. 포가 왜 하나를 건너뛰어야만 이동할 수 있고 차는 왜 수직으로밖에 못 움직이는 지에 대해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와 같이 너무나 당연한 룰에 대해 불평을 하게 될 경우 인간은 불행해지게 된다. 세네카는 장기판의 룰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마디 항의 없이 최후의 장군을 받아들였다. 장기판 위에서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수들이 존재한다. 예측하지 못한 수를 통해 자신의 말이 먹히게 된다면 슬프고 억울하여도 받아들여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상황을 대처할 수가 있고 또 말이 먹히더라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

장기를 잘 두는 고수처럼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먼저 최악의 수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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