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없어도 주방이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먹고 싶은 음식을 요청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주방 말이야. 오늘 저녁엔 멕시칸 타코를 먹고, 내일 아침엔 이탈리안 브런치를, 저녁엔 인도 스타일 카레를 먹을 수 있다면 좋겠어.
누구나 해봄 직한 상상이다. 우리가 어려서 읽은 과학 만화에도 자주 등장했던 소재로, 미래를 배경으로 상상한 이야기가 있다면 자동화된 스마트 주방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어설프게 그려져 있던 미래의 주방을 실제로 만들어내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지난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 CES에서 가장 주목받은 제품 중 하나인 몰리 로보틱스Moley Robotics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활동이나 지루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 처리해줌으로 인간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주방의 자동화나 업무 효율 향상에 대한 시도는 인류 역사와 함께 꾸준히 이뤄져 왔다. 현대의 주방은 탈피기, 블렌더, 식기세척기 등과 같이 갖은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선 음식을 만들어낼 수 없을 정도로 기기 의존도가 높다. 무엇 하나 고장이라도 난다면 그 날 주방은 마비되고 만다. 뭐, 이미 초밥도 컨베이어벨트가 대신 나르는 시대가 아닌가.
자동화에 능한 로봇이 새로 개발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인간의 일자리 대체 문제’도 함께 나온다. 컴퓨터기술과 로봇기술이 발달해 2030년이면 지구 상에서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단순 반복 작업이라면 더욱 대체되기 쉬워 요리사도 단골로 등장한다.
몰리 로보틱스의 설립자 마크 올리니크Mark Oleynik,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로봇전문가인 그가 한국에 들렀다는 소식에 찾아 나섰다. 그는 지난 11일, 상암동 누리꿈 스퀘어에서 개최된 미래창조과학부의 주최 ‘K-ICT VR Festival 2015’에 초청되었다.
청중은 몰리의 작동원리나 기술만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다. 마크 올리니크는 인간이 지루하고 단순한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야 삶의 질이 더 높아질 수 있다며,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 가능성을 더 넓힐 수 있도록 몰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Q. 몰리는 어떤 요리를 할 수 있나?
인간의 팔 동작을 흉내 내는 것으로 몰리는 모든 종류의 음식을 재현해낼 수 있다. 세상에는 120종류의 음식문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를 전파하려면 요리사가 다른 요리사에게 조리법을 가르쳐주고 교육과 연습을 시켜야 한다. 몇 년이 걸릴 일이지만 로봇은 이를 복제하는 데 제한사항이 적다. 같은 재료만 제공된다면 어떤 나라의 음식도 세계 전역에서 복제해낼 수 있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의 메뉴는 일 년에 두어 번 바뀔 뿐이다. 몰리는 제한 없이 메뉴를 바꿀 수 있다.
Q. 몰리는 어떻게 작동하나?
영국의 마스터셰프 우승자인 팀 앤더슨Tim Anderson의 동작을 보고 학습하고 있다. 앤더슨은 카메라 앞에서 같은 요리를 20회 이상 반복했고, 그 과정의 손동작을 센서로 기억해 재현하는 방식이다. 로봇팔에 장착된 20개의 모터, 24개의 관절, 129개의 센서가 정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요리 장면을 재편집, 이를 디지털 알고리즘으로 변환한다.
Q. 요리사의 영역을 대체하는 것인가?
두 종류의 고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고기가 더 좋은 고기인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이건 절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가치 판단이 다를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선 로봇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기계 자체가 똑똑해지기란 어렵다. 여전히 셰프의 영역은 남아 있다.
Q. 왜 휴머노이드인가? 왜 인간의 팔을 흉내 내는가?
로봇이 인간의 모든 시중을 들고 있다면? 로봇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면? 로봇이 이런 일을 대신 일을 해준다고 해서 인간이 행복해지진 않는다. 하지만 베토벤의 연주를 똑같이 재현해내는 로봇이 있다면? 피카소의 붓터치를 한 획 한 획 재현하는 로봇이 있다면? 이런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모두 감성적인 영역이다. 우리는 그저 복제품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작업 과정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과정도 받을 수 있다. 요리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손동작을 그대로 기억해야 요리하는 당시에 셰프의 영감과 감정상태를 그대로 기억할 수 있다.
Q. 아무래도 인간의 행동을 기억해야 범용성이 넓어지겠다.
주방을 작은 공장에 비유해보자. 이미 자동화 기계는 많이 나와 있다. 초밥을 만드는 기계라거나, 국수 면발을 뽑아내는 기계라거나, 라면을 끓여내고 피자를 구워내는 기계는 많이 있다. 하지만 그 기계들은 한 가지 요리밖에 만들어내지 못한다. 1,000가지의 요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주방에 1,000대의 기계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자동화 기술이라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복잡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단순하게 일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동화기기들이 맛의 표준화를 이뤄낸 반면, 몰리는 고급 음식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다.
Q. 로봇만이 할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안전함과 편의를 추구한다. 로봇이 요리하면 어린아이가 주방에서 펄펄 끓는 냄비를 쏟을 가능성을 줄여준다. 보호 유리창으로 조리공간이 모두 막혀 통제되기 때문에 안전하게 조리할 수 있다. 같은 수준의 음식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도 절감시킬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조리과정을 최대한 간소화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들어가는 에너지의 총량은 줄어든다.
Q. 10명밖에 안되는 회사라 들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기술을 다 만들어 냈나?
많은 파트너와 함께 일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개발할 수 있다. 식기세척기, 인덕션 등 모든 기기는 기존의 제작사와 협력해서 그들의 기술을 넣고 있다. 로봇팔 또한 18년간 로봇을 개발해온 전문업체 섀도우 로봇 컴퍼니Shadow Robot Company에 의뢰해 제작했다. 우린 로봇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쓰일 가능성을 찾고 있다.
아직 한계점도 많이 남아 있다. 로봇은 녹화 당시의 요리사 동작을 흉내 내기에 재료가 제자리를 벗어난다면 조리과정에 문제가 생긴다. 식재료의 신선함을 검사하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몰리 로보틱스는 2018년도까지 시제품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 각국의 레시피를 입력해 놓으면,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받듯이 레시피를 설치할 수 있다. 레시피는 한 번 입력해 놓으면 그 이후로는 무제한 공유가 가능하니 전 세계와 주고 받을 수 있는 디지털 레시피 창고가 만들어진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
몰리 로보틱스라는 미래 주방이 널리 사용되는 게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는 아직 모른다. 요리사 대신 몰리가 주방에서 일을 하는 레스토랑이 생기거나, 신혼부부들이 혼수품으로 하나씩 장만하는 유행을 불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