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적 허무주의에 맞선 사상투쟁역사

언어는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결정한다. (는 사피어-워프 가설이 있다.) 시간에 대한 개념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시간을 좀체 인지하지 않거나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어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인식하기 위한 개념어로 인해 우리는 시간을 단절적이고 선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인식론적 관점은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는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게 되었다. 인과성은 자연계의 절대법칙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뉴턴의 기계론적 결정론) 자연의 인과법칙을 찾아내는 일은 처음엔 재미있는 일이었으나, 어쩌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결정론적 허무주의는 종의 위협이 되었다. 모든 의미와 가치를 상실케하여 동기를 잃게 했으며, 스스로 생을 중단하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도 덜어주었다. 이 인식론적 세계관의 오류를 찾아내야만 했다.

인간이라는 종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상적 투쟁이 시작되었다.“살 이유는 없지만, 자살할 이유도 없지 않느냐” 카뮈는 그럼에도 그냥 살아가자 했다. 듣고보니 그러네? 일단 자살을 보류하고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는 그런거 없다고 했다. 본질이나 운명따윈 없으며,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세상이 결정되어 나타난다고 했다. 반박부정하기보다는 그냥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개무시한 느낌.

“삶에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라” 니체는 운명애(amor fati)를 강령으로 제시했다. 닥치고 따라오라 했다. 따라오지 않으면 노예가 될 것이라고 가스라이팅했다. 죽음보다 무서운 호통이었다. 용기가 있다면 자신이 제시한 궁극의 인간, 초인(Übermensch)이 되어보라며 이상적인 캐릭터를 가시적으로 그렸다.

“인간은 내던져진 존재다” 하이데거는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리지 말라고 했다. 삶이 시작될 때 누구도 언제-어디서-어떤존재로 태어날지 자의적으로 결정한 사람은 없다며 피투(Geworfenheit, 彼投)된 존재라며 어리둥절함을 느끼게 만들어 끄덕임을 이끌어냈다. 이어서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내던져짐 다음의 구성 – 기투(Entwurf, 企投)라고 했다.

결정론적 허무주의가 나타나기 한참 전에도 이와 같은 삶의 자세는 제시되어 왔었다. 고대철학자 세네카는 “인생은 장기와 같다.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순 없다. 주어진 말을 가지고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다”라고 말했고 같은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토스는 “바람을 통제할 순 없지만 돛은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장자 또한 “비가 온다고 하늘을 원망하진 말라”고 한 바 있다.

과학계는 패러다임의 한계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결정론적 허무주의와 양립될 수 없는 양자역학이 등장했다. 불확정성 원리와 관찰자 효과라는 새로운 이론들이 제시되자 우리는 세상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늘었다.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따위를 고민하고 있을 팔자좋은 시대가 아니라며, 개척자의 후손은 자신의 기질대로 미지의 영역으로 삶을 던져 넣으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냈다.

이제 더이상 큰 문제가 되진 않아 보였지만, 사상투쟁은 계속해서 전개된다. 결정론적 허무주의라는 인식론적-사고-암세포는 시간 개념어의 잘못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시간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사고오류부터 벗어나는 첫작업이 되어야 한다. (들뢰즈의 시간론)

사건의 영향력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과거의 사건을 트라우마로 여기지만, 같은 사건을 경험한 누군가는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도 한다.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관점이나, 미래의 행동에 따라서 과거는 변한다. 과거 사건 또한 객관적으로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다른 시제와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의미와 가치를 창출한다.

❌ 결정론적 반응체 = 사건의 노예 = 환경의 산물 = 자극-반응 기계 = 숙명론적 존재 > 자살

⭕ 능동적 창조자 = 초인 = 주체적 자아 = 자기 자신의 입법자 >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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