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미 사이보그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안경을 꼈다. 태생적 신체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신체를 후천적으로 개조하거나 외부의 물질로부터 도움받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다.
옷과 신발은 피부의 확장이고, 안경은 시력의 확장이며, 보청기는 청각의 확장, 탈 것은 다리의 확장이 되었다. 더 찾아보자. 백신은 면역력의 확장이고, 노트는 기억력의 확장이며, 컴퓨터는 연산능력의 확장이고, 인터넷은 사회적 연결의 확장이다. 사이보그는 신체 외적인 도구,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욱 강한 존재로 거듭난다.
어디까지가 신체의 개조이고, 어디부터가 신체의 확장인지 경계는 불분명하다. 인간사회에선 인간들끼리 법적으로 허용되는 기준을 마련해두고 있을 뿐이다.
더 강한 존재가 되길 원하는 사이보그는 고민한다. “나의 미천한 신체 능력을 어떻게 더 강화할 것인가” 태생적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외부의 물질적, 기계적 도움을 얼마나 많이 활용할 수 있는지가 곧 능력의 총합이 된다. 인간이 기술을 만들었지만 그 기술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
사람을 그리라고 하면 누구나 옷을 입고 있는 상태의 사람을 그릴 것이다. 나체를 그릴 사람은 없다. 원시인을 그리라고 해도 나체에 창 같은 무기를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릴 것이다. 사용하는 도구까지 포함시켜 사람으로 정의된다. 도구까지가 신체다. 도구도 존재에 귀속된다.
갓난 상태의 조카는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의 신체를 조작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물체를 집으려 할 때 모든 손가락을 한번에 쥐어 잡는 방식에서 엄지를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익혔다.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렸지만 동시에 꽤 빠른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 감탄했다.
우리 모두의 출발이 갓난아이였던 것을 생각하면 태생적 신체 또한 도구다. 난 아직도 네번째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정교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일상에서 필요하지 않은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36년 달고 살았던 신체가 새로운 도구를 조작하는 것보다 때론 더 낯설다.
반면 내 젓가락질은 아주 정교하다. 하루에 두번 이상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판도 잘 친다. 자판을 처음 칠 땐 손가락의 방향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50타를 넘기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분당 700타를 쳐내고 있다. 그리고 자전거도 잘 탄다.
신체 조작 숙달의 과정과 도구 조작 숙달의 과정은 전혀 다르지 않다. 유아기를 벗어난 아이가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조작하듯, 성인인 우리들은 도구를 자유롭게 조작한다. 숙달된 도구는 직관적이다. 직관적이란 말은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난 자전거를 직관적으로 다룬다. 자전거는 이미 내 신체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