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위해 살았다.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더 큰 영향력을 가져라. 산업을 성장시켜라. 경쟁해라. 승리해라. 승리에 만족하지 말고 압도해라. 내가 요구받은 그대로 남에게도 강요했다. 회유, 협박했다. 쓸모에 도움되지 않는 당신의 가치관을 박살내고 이념을 주입했다. 당신을 생산기계로 만들어야 쓸모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나로썬 불가피했다. 나덕에 당신도 조금은 쓸모있는 존재가 되지 않았느냐. 사과하진 않겠다.
미안하다. 용서해달라. 나도 이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
난 쓸모에 지쳤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에 빠지는 것이다. 자전거보다 더 쓸모없는 게 어디 있느냐. 나는 여지껏 찾지 못했다.
차나 오토바이에 비하면 자전거는 운송수단으로서의 값어치가 전혀 없다. 오늘 내가 먹은 소고기 값보다 기름값이 더 적게 치일 것이다. 인간 신체능력만 활용해 스스로自 돌아가는轉 수레車는 엔진과 모터의 효율이 높아질수록 쓸모가 없어진다. 어제보다 오늘 더 쓸모없고 내일은 더욱더 쓸모없는 게 자전거다.
원시적인 동력원을 사용하는 자전거지만 요즘엔 최첨단의 기술이 사용된다. 최첨단의 기술을 활용한 원시회귀라. 마음에 든다. 쓸모없어지기 위해 최첨단의 기술까지 동원한다니. 나도 더 격렬하게 나의 신체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운동효율을 극한으로 높여 최대심박으로 최대파워로 최장시간동안 쓸모없는 발길질을 해야겠다.
자전거야. 너와 내가 협력해 이루어낸 최선의 결과를 보아라. 고작 여기서 저기로 옮겼을 뿐이다.
쓸모없어지는 너가 마냥 안쓰럽진만은 않다. 우린 동병상련한 사이다. 이 사회는 더이상 인간에게도 쓸모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사실이기에 굳이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인간은 생산수단으로써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로봇의 높은 생산성으로 만들어진 잉여자원을 기본소득으로 분배받았음에도 좋다며 헤죽거리고 있다.
로봇이 생산의 주체요, 인간은 잉여다. 할아버지는 16시간, 아버지는 12시간, 난 6시간 일한다. 자식이 태어나면 3시간만 일할 것이다. 생산은 로봇이 도맡고 인간은 철학 문화 예술 따위나 즐기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일상이다. 난 자전거를 통해 미래인류의 삶을 앞당겨 즐기고 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쓸모없었다.
내일 쉬고 주말에도 최선을 다해 격렬하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다.